교사수련회 새벽예배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5-18).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나면 성령이 강림하실 것이었고, 그 성령 강림과 함께 그 교회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럼 구약 시대에는 교회가 없었느냐 하면 사실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있었죠. 교회가 있었지만 그 교회는 이미 완전하고 다 성장한 그런 교회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구속을 이루시면 거기에 접붙여져서 온전한 교회가 되도록 그렇게 예표 적으로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교회이죠.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이제 그 교회가 세워지는 그 모습을 태내에서 아이가 자라는 것에 비유를 했어요. 그래서 아이의, 이 뱃속에서 아이가 잉태되서 자랄 때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손과 발이 나오고 후에 머리의 모양이 구체적으로 생겨나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아직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형체를 분별하기 어려운 구약교회의 성장이 바로 그런 모습이라는 거죠.
그러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교회의 온전한 머리가 되심으로 교회는 온전한 교회가 되는 것이죠. 이런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시려고 하실 때에 그 처음 이 교회를 맡기시려고 한 그 지도자는 얼마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입니까? 근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베드로를 찾아오셨어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이 사람을 찾아오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세 번 주님을 부인한 것을 하나씩 지워버리시기라도 하는 듯이 그렇게 세 번을 물으신 후에 베드로가 그렇다고 대답을 하니까 네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이게 결국은 영혼 섬김의 원리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영혼을 섬기는 계기가 되는데 섬기겠다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그 사랑에 사무치게 되는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영혼을 위해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그 사람이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하는 것을 드러내시도록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이끄시고 인도하십니다. 주님을 만나고 영혼을 섬기겠다는 길에 들어섰다 할지라도 우리의 은혜와 믿음이 항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은 주님을 잘 섬기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기면서 영혼을 돌봐도 결국 그 주님 뜻대로 그것을 참지 못하는 때가옵니다. 그래서 맨 처음 교사로 부른 그 소명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후에 섬겨가면서도 매일 매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 그러셨습니다. 여기서 ‘내 양’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이 나의 돌봄을 받고, 또 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지만 그들이 네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이어서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을 잘 믿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목양의 정신이에요.
그래서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고 우리 모두를 붙들고 계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리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이요, 그것이 곧 올바른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당신의 양떼들을 맡기시기 전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직 이것 하나만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네가 양떼들을 정말 사랑하느냐, 그런 거 물어보지 않으시고 ‘오직 내 양을 먹이라’,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직 이것만 물어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이 목양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불러서 당신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 질문은 영혼을 맡기시는 그 처음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아침마다, 저녁마다 매일매일 우리에게 던져 주시는 질문이에요.
그래서 교사의 가장 훌륭한 교재는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이에요. 그것이 최고의 교재이고, 최상의 교재예요. 나머지는 모두 부교재예요. 그것이 최상위 교재입니다. 내 영혼이 날마다 주님을 만나 누리는 진정한 행복과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축복, 사랑과 은혜 이것이 바로 최고의 교재예요. 그것을 따라서 영혼을 섬기는 것이 교사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주목해 보려고 하는 것은 그 다음 구절이에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니거니와’ 마지막에 베드로가 순교할 것을 보여주는데 그 이전에 결국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로 부름을 받지 않았더라면 베드로가 순교의 길을 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결국은 복음 때문에 순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인데 오늘 성경의 표현은 ‘젊어서는 네 스스로 띠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영혼을 돌보는 교사의 직분을 맡게 되면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게 참 많습니다. 우선 영혼을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거는 아니지만 주일날 교회에 빠질 수 없죠. 좀 더 늦잠을 자고 싶어도 아이들 때문에 가야합니다. 공휴일도 계획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 공휴일은 교회학교 밥이죠. 그래서 꼭 공휴일마다 무슨 사건을 만들어서 이렇게 어딜 끌고 오고 이렇게 하다가 그것도 의미가 없어요.
제가 처음 교회생활을 시작한 그 교회에서 후에 전도사 생활을 했는데 서울 변두리고 하니까 교육 수준도 별로 없고 옛날에 그랬죠. 애들은 하여튼 무지하게 많았어요. 교육 잘 못 받은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애를 많이 낳았거든요. 그러니까 뭐 피임이나 이런 것도 잘 할 줄 안하고 하니까 아이들이 수없이 많아, 그 애들을 누가 가르쳤냐면 공장 다니는 청년들이 가르쳤어요. 거기에 크라운 제과라고 그 공장이 있는데 하여튼 거기서 밤마다 과자 냄새를 쏟아내는데 보통 공해가 아니더라고요. 처음에는 그게 달콤하고 냄새가 좋은데 이게 매일 쏟아지니까 토할 거 같아요. 밤중이면 애들이 12시간 이상씩 근무를 시켜요, 맞교대로. 그러니 뭐 그냥 저녁때 들어가서 일하고는 그 다음에는 낮에 집에 와서 실컷 자고, 또 밤에는 가서 또 일하는 거야. 그렇게 지독하게 일을 시키고 공휴일도 놀려주는 게 아니라 절자 들어가는 것만 놀아. 그러니까 걔네들은 왜 어린이 날이냐고, 어린이 절 이래야 되는데, 어린이 절, 어버이절 그러면 놀텐데 그거를, 남들이 놀 때에 그 절자 들어간 날 밤 새우고 또 출근을 하는 거야.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모아서 여름성경학교에 나와서 봉사를 하고, 그러니 토요일날 가서 밤새도록 일하고 얼굴은 퉁퉁 부었고 서서하니까 다리도 붓고 이러는데 근데도 한 숨 못자고 그리고는 교회학교로 뛰어오는 거야. 그래서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예요. 어쩌다가 공휴일이면 끌고 야유회를 가든지 교회에 청소를 하든지 뭘 하든지 시켜요. 그게 뭐냐 하면 다 속박이에요. ‘젊어서는 내 맘대로 띠띠고 다녔거니와’ 우리가 교사하기 전에는 자유로 왔어요. 근데 이제는 그렇게 안 돼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예요.
그래서 저도 회심하고 나서 한 2년 후서부터 교사를 했는데 그게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되었어요. 제가 목회자로 소명을 받은 것도 여름 성경학교 앞두고 일주일 금식 기도하다가 주님을 깊이 만나고 목회자의 길로 가겠다고 하나님께 약속을 했어요. 그런 하나님은 자기의 영혼들을 위해서 섬기는 우리들이 결국은 구속밖에 안 되세요. 그런데 그 구속이 때로는 우리에게 너무 괴롭고 힘들어 보이지만 그 구속의 길을 그 구속받는, 속박 받는 길을 걸어가다가 보면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뜻들을 보여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되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신앙으로 영혼들을 인도하도록 부르실 때에 속박을 통해서 우리를 성숙시키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속박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게 ‘하나님의 은혜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실 때에 자꾸 쓰러지니까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워주잖아요. 교회 전승에 의하면 그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이 계기가 되어서 주님을 믿게 되고 후에 인도 지방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억지로 우리를 속박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신앙의 젖줄이 되어서 여러분들이 벌써 주님을 떠났을 사람들이 이렇게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죠. 세월이 많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목양의 원리가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은 유능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거예요. 유능한 사람을 통해서 하는 일은 본질적인 일이 아니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본질적인 일을 하셔요. 영혼을 돌보고 그리고 그 영혼을 변화시키고 이렇게 하는 일들을 주님께서 근본적으로 하셔서 그래서 역사하시고,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셔서 당신을 위해서 살게끔 그렇게 이끄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요, 일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매순간 오늘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영혼을 돌보도록 사명을 맡겨 주셔요. 그리고 그 일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다시 물으셔서 우리를 또 다시 무기력했던 자리에서 떨쳐서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오늘 이 아침의 시간에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지만, 오늘 여러분들을 찾아오시는 그 주님은 오늘 여기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그렇게 주님께 질문을 받았을 때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주님의 영혼 섬김을 위해서 주신 속박을 즐거운 것으로 지고, 주님을 위해서 끝까지 사랑하고, 영혼을 돌보는 충성스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