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세미나
결혼을 해서 새댁도 되고 새 아저씨도 되었는데 참 얼마나 고달프겠어요? 내가 충분히 이해를 하지요. ‘아! 목사님,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 깨가 쏟아집니다.’ 손들어보세요. 부인은 손을 안 드는데 남편 혼자서 손을 들었어요. 제가 결혼생활을 거의 30년을 했거든요. 내년이 30주년이에요. 신혼의 한 1년이 제일 힘들었어요. 우리도 중매해준 것이 아니고 연애해서 결혼했는데 우리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하기로 했거든요. 그리고 그것은 좀 과장이고 만나기 시작한 것은 1월에 만났지만 관심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2월, 3월 되다가 이제 정식으로 아! 이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되겠다고 만나고, 그리고 만나고 나서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시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괜히 시간을 뺏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제일 힘든 시간이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갔는데 재미가 없었을 때 분노가 하늘을 찔러요. 감독을 처단하고 싶어요. 입장료가 아까운 생각은 안 들어요. 내가 선택한 거니까. 그런데 재미가 없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어쨌든 농담이고…….
사귀어보고 그러고서 결혼하고 그러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면 사귀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한가하게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1월부터 1월, 2월, 3월, 4월까지 알고 지내다가 결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도 그때가 제가 26살이었는데 저는 한 서른 댓 살에 결혼을 하려고 그랬어요. 안할 생각은 안했고, 생전 처음으로 결혼을 위해서 기도를 하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정확하게 일주일 기도했는데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 빠졌어요. 그래서 그 때 66킬로 정도 나갔었는데 56킬로로 일주일동안 기도했는데 정확하게 56킬로가 되었어요. 지금은 상상이 안가지만 그 때 제가 허리가 27인치였고 몸무게 56킬로 지금 양 목사님보다 한 8킬로 정도 빼야 되요. 키는 양 목사님 키 정도 되고. 그런데 어쨌든 응답해주셔서 그래서 결혼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리고 두 달 만에 약혼하고, 석 달 만에 결혼하고 그랬으니까 한 6개월 정도 사귀었나요? 정식으로 사귄 것은 한 5개월 정도 되었겠죠. 그런데 만난 횟수나 그런 것으로 보면 한 2년 연애한 사람들 정도의 농축된 시간을 보냈어요. 거의 매일 만나고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야외에 나가고 그랬으니까……. 그것도 기차를 타고…….
그런데 그랬기 때문에 그랬는지 의사소통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집사람은 예수는 안 믿으셨지만 나중에 우리가 전도해서 다 예수님을 믿고 돌아가셨는데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좋은 가정에서 자라서 잘 성장했고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일찍 서울에 올라와서 유학을 하고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느라고 그렇게 반듯하게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그 때 20대 초반에 아가씨들이 그런 것을 무릎 꿇고 차근차근 배우려고 그러나요. 이조시대도 아니고……. 저는 뭐 더 개념이 없었지요. 가정적으로도 안정성이 없이 지냈고,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았고, 그리고 저는 그렇게 이사람, 저사람 많이 만나서 연애해 본적도 별로 없고 그렇게 해서 결혼을 했는데 의사소통이 너무 안 되는 것이에요. 그것이 제일 힘들었어요.
제가 왜 이 말씀을 서두에 꺼내느냐하면 신혼이라는 기간이 정의를 내리기에 따라 각각 틀리지만 그러나 대게 볼 때 아이를 낳기 전까지가 신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해요. 아이를 낳으면서 많은 변화가 오고 대개 아이를 낳을 때까지를 신혼이라고 그러는데 거의 허니문베이비가 되는 경우, 그럴 경우에는 신혼기간이 짧아지고 그렇지 않으면 조금 길어지겠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거두절미하고 상관없이 결혼 후에 일 년 정도, 길게 잡으면 이년정도가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결혼하는 남녀들은 결혼하자마자 신혼으로 들어가서 얼마나 단꿈을 꾸고 행복할까를 꿈꾸는데 사실은 인생의 커다란 비밀은 그 일 년 정도 안에 적응성이 빠르다기보다도 자기 형성이 빠른 사람은 사실 일 년도 안 걸려요. 육 개월 정도면 이 남편과 아내, 시댁과의 관계 모든 것들이 세팅이 딱 되어요. 그 틀을 이제 평생에 깨기가 굉장히 힘든 것이죠. 여러분 만약에 그 틀을 깨려고 든다면 이미 형성되어있는 사람은 굉장히 많은 희생과 출혈을 감내해야 되고 부부가 가정이 어때야 되겠는가? 하는 것들을 결혼하기 전에는 비교적 중립적인 개념인데 결혼하고 나면 이제 금방 이해관계가 얽혀요. 그래서 그 남편의 위치나 아내의 위치나 이런 것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러나 이제 결혼을 해서 딱 현실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익에 문제가 걸리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남편이 아내의 자리가 여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아내인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를 경우에 이익의 문제가 상충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말하자면 현실적으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러한 것들 때문에 결국은 어려움이 오게 되는데 이 틀을 잘못 잡게 되면 평생 동안 그 틀대로 가면서 누구 한 사람이 찌그러져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굴러가든지, 아니면 어떤 면에서는 이 사람이 찌그러지고 또 다른 면에서는 저 사람이 찌그러지고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이죠. 그것을 이제 둘이서 만족하면서 살아가면 그것도 괜찮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제 신앙적인 입장에서 보면 둘이 만족을 한다고 해서 좋은 결혼생활은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만족을 하셔야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더라고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런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결혼생활한지 오래된 구혼부부들을 안 부르고 여러분만 부른 이유는 뭐냐 하면 그런 분들은 고쳐지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오늘 강의를 잘 듣고 가서 뜻을 세우면 그러면 잘 고쳐질 수 있고, 또 아직 잘 형성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남편이 뭐라고 그러면 저것도 자기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것 아니야? 이럴 수 있지만 나야 자매편이겠어요? 형제편이겠어요? 그렇지요. 모두 다 양떼들인데……. 비교적 공정하게 그렇게 성경도 공부하고, 이해해왔고, 여러분과 같이 신혼시절을 보내고 30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러니까 거기서 오는 그 반면교사적인 성격도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들을 가슴에 잘 담아서 여러분들이 새기면서 가정에 이것들을 세워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면 거의가 다 기억에 다 못 담을 것 같아서 아주 필수적이고 중요한 이야기들만 여러분들에게 추려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에 한해서 다시 한 번 한 1년 뒤에 모여서 그래서 그 때 그렇게 얘기를 해서 살아보았더니 아 이런 것은 좋았지만 이런 것은 문제가 생기던데 그것은 도대체 왜 그렇습니까? 하는 이야기도 한번 들어볼 마음이 저에게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그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우선 말이죠.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이미 결혼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니까 결혼이 뭐고, 가정이 뭐고, 이런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요. 가장 현실적인 문제부터 시작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사랑은 둘이서 서로 사랑을 하니까 그러니까 사실은 두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싫었으면 사랑이 계속될 수가 없고 그리고 만약에 사랑을 하면 두 사람과의 관계가 계속되고 또 각자의 부족한 것을 용납하고 받아주었기 때문에 사랑이 지속되었을 것 아니에요? 그리니까 사실은 두 사람은 어차피 같이 가는 길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사은품처럼 따라오는 관계들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자매들에게는 시집식구들, 시집식구들과의 관계, 거기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연들과 자기는 원하지도 않는데 얽혀 들어가는 거지요. 예를 들자면 부모님, 피도 안 섞이고 살도 안 섞인 것 아니에요? 그 부모님은 나는 알지도 못했고 선택할리도 없고 결혼하려고 뜻을 세우고야 처음 만난 분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런데 솔직히 얘기해서 사랑이 가느냐? 이 얘기에요. 그럼 이제 남편이야 쳐다보면서 한눈에 이렇게 콩깍지가 탁 씌울 수 있지만 시부모님을 보면서 한눈에 반하는 며느리가 있어요? 없잖아요. 안 그랬죠? 그것 봐요. 솔직히 고백하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예를 들어 지금 시부모님들이 다 평안하시다고 쳐요. 한분이 앓아서 병상에 누우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이에요. 아들이 셋이면 며느리 셋이 돌아가면서 밤을 새워야 되는 거예요. 외아들일 경우에는 더 심각해지는 것이죠. 돈이라도 많아서 간병인이라도 몇 백만 원을 주고 쓰면 되는데 그럴 처지가 안 되면 흔들리는 것이에요. 그것도 남편이 능력이 있으면 살림이나 한다면 밤에 가서 돌봐주고 낮에 와서 자면 되는데 맞벌이를 해서 간신히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에요. 아니면 남편이 실직상태에 있어서 내가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해요. 이렇게 되게 될 때에 나와 아무상관이 없어도 되는 사람들 때문에 삶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런 관계를 결혼을 할 때는 다 짊어지고 결혼을 하는 것이에요. 시간이 없으니까 그 정도로 생략을 하겠는데 동생들이 사고를 쳤다 남편은 굉장히 성실한데 동생들이 전부 개념이 없는 인간들이 이상하게 사은품으로 엮어져서 따라왔다. 그래가지고 와서 ‘형수 내가 뭐 이런 상황인데 순순히 얘기할 때 돈 좀 보태주쇼!’ 이렇게 나오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만났을 때에 온 가족이 형님이면 형님, 동서면 동서, 그 다음에 시누이면 시누이, 시아버지면 시아버지, 시어머니면 시어머니, 또 시할머니 할아버지도 살아계실 수가 있잖아요. 그렇죠? 우리 집사람은 시집와서는 시 증조할머니까지 살아계셨었어요. 그렇게 된다고 치자고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위치에서 다 자기의 위치를 지켜서 그래서 나에게 손해나 고통을 안줄 뿐만 아니라 내 행복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이 되면 진짜 시집을 잘 간 것이지요. 그런데 이 땅에는 그런 시집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엮어지는 것이지요. 또 반대도 있잖아요. ‘아 그래도 반대는 영향이 적지요.’ 뭘 영향이 적어요.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목회하면서 경험한 것이에요. 누구인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못하게끔 내가 간유리를 씌워서 모자이크 인터뷰를 하듯이 예를 드는 것이에요. 두 부부는 문제없어요. 열심히 잘살아요. 그런데 막 가정이 막 뿌리째 흔들리면서 고통을 받아요. 왜? 이제 평안하게 돈도 벌만큼 벌면서 사는데 아내의 집이 너무 가난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처갓집에서 사위보고 돈을 달라고 그래요.(그것도 말하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개념이 없는 집도 많지요.) 딸한테 ‘야 돈을 빌려야 되는데 보증 좀 서다오.’ 그러면 남편도장을 꾹꾹 몇 번 찍어준 것이에요. 집이 날아가게 된 것이지요. 흔들리잖아요. 그래서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둘이 결혼을 하고 그리고 달나라 가서 살든지, 아예 의절하고 살면 모를까 결국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결혼은 두 문화의 만남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문제는 뭐냐 하면 어떻게 두 집안의 문화가 같을 수가 있겠어요. 양쪽 집안이 예수를 잘 믿고 신앙 안에서 살아도 화합이 잘 안되는데 문화가 현저하게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면 그럴 경우에 그런 집에 갔을 때는 한국 사람이 선교지에 가있는 것과 같은 말하자면 이질적인 분위기속에서 살게 되는 거잖아요. 더군다나 여러분들이 말로는 좋았지 형제가 좋으니까 안 믿는 집안이니까 시댁을 모두 구원해야 되겠다는 선교사가 되는 마음으로, 평소에는 전혀 없던 사명감에 불타서 시집을 가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럴 경우에 이제 더 많은 짐을 지게 되는 경우이지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뭐냐 하면 결혼의 참된 행복과 불행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신앙에 달린 것이고 그 신앙을 어떻게 결혼과 함께 만나는 수많은 당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올바르게 적용하면서 사느냐 하는 거기에 사실은 결혼의 행복을 위한 인간적인 많은 상황과 조건들이 달리게 되는 것이라는 얘기에요.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들에게 지금부터 그 관계의 문제를 이야기하려고하는 것이에요. 사실 이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거의 다에요. 신앙의 영역을 제하고 나면 그것이 거의 다인데 이제 제일 먼저 결혼을 하면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손들어보세요. 지극히 소수네요. 두 커플뿐이 없어요. 나머지는 전부다 혼자 살잖아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왜 문제가 되느냐하면 나도 맨 처음에 결혼을 했는데 아버님이 같이 살고 싶은 뜻을 비치셔서 아예 처음에 희망의 싹을 잘라드렸어요. 내가 봐도 잔인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많이 바뀌었고, 나중에 부모를 모실 수밖에 없어도 신혼 때에는 자기들끼리 살게 두자고 많이들 그러잖아요? 그런데 반대에요. 나중에는 부모님을 떠나버리고 가도 되요. 그런데 신혼 때에 아니 같이 살아야 된다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것이 많은 유익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에요. 지금은 그렇지 않고 반대잖아요. 신혼을 살다가 애를 둘쯤 낳으면 슬슬 들어가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그 때는 부모님이 안 받아 주시죠. 이제 부모님들도 약아서 옛날 같지 않아요. 옛날의 부모님들이 아니에요. 많이 변했어요.
그런데 왜 그러느냐하면 이제 나무를 여러분들이 생각해봐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분재라고 그랬잖아요. 나는 그게 싫어요. 볼 때에 아주 신비하고 예쁜 그런 감정을 안 느끼게 되요. 왜냐하면 거기다가 성장억제제를 주고 나무가 조그마한 게 예쁘게 자란 것 같은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구리철사로 감아놨어요.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처음에 자랄 때 구리철사를 감아버리면 그러면 그것은 그렇게 자라는 것이에요. 그 프레임을 빼버려도 굽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무를 보면 꼭 넝쿨식물이 아니더라도 외국에서는 이렇게 터널처럼 잘 만들잖아요. 나무가 이렇게 꺾어져서 터널이 되는 것 (놔두면 똑바로 올라갈 것인데 이렇게 꺾어가지고…….) 굉장히 무자비한 것이죠. 그것과 똑같이……. 뭐냐 하면 홀로 사는 1년, 2년 사이에 그 부부관계와 그 다음에 결혼과 함께 생겨나는 넓은 의미의 가족들과의 관계, 이런 것들이 세팅이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다행히 비록 따로 떨어져 살아도 형제, 자매가 아주 반듯한 가정에서 인간의 도리를 확실하게 부모를 통해서 배우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사는 훈련을 제대로 받았다면 쉽게 얘기하면 개념이 확실히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둘이 따로 떨어져서 살아도 부모에게, 그 다음에 동기간에게, 그 다음에 남편과 아내에게, 각기 자기 할 도리를 하면서 살아요. 그러니까 아주 싱그럽고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불행히 두 사람이 개념이 전부 다 현저히 부족해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그러면서도 신앙이 아주 뛰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계속 깨뜨려지고 또 교회의 교구목회자나 교회가 작으면 담임목사님이라도……. 옛날에는 내가 한 사람이 결혼을 하면 세 번을 심방했다고요. 먼저 결혼을 하겠다고 할 때에 면담을 하고 그렇게 하고 약혼날짜를 잡아주고 그 다음에 교육을 시킨 다음에 약혼식에 가서 약혼을 해주고(정혼예배라고 그랬는데…….) 그 다음에 결혼식 할 때는 내가 직접 결혼교육을 시키고 그 다음에 결혼식을 하고나서 한 달 안에 심방을 꼭 갔어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신혼부부 집에 심방을 가면 세 시간이 걸렸다고요. 다 그것을 머릿속에 다 있으니까 교과서처럼 남편한테는 이렇게 해야 한다, 아내한테는 이렇게 해야 한다, 다 이렇게 가르쳐 주어서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교회가 있다든지 그러면 그래도 좀 나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부족해요. 그런데 남편과 아내가 사는데 그나마 남편에게는 반듯한 가정에서 자라서 그런 개념이 있어요. 아내가 좀 부족해요. 그런데 남편이 세요. 아니면 자매가 아주 순종적이어서 남편을 사랑할 뿐 아니라 존경해요. 그래서 자기의 이익을 많이 포기하면서 남편이 가르쳐주는 대로 하려고 한다 이거에요. 그런데 그게 안 되고 오히려 거꾸로 형제는 그래도 개념이 있는데 자매는 개념이 좀 없는데 대가 훨씬 세요. 그래서 몇 번 부딪혀 보니까 이빨도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가정 평화를 박살낼 각오를 하고 덤벼들지 않는 한 이 여자를 꺾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기 싸움에서 지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하면 이 자매가 생각하는 틀이 결혼생활의 틀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그렇게 해가지고 탁탁 놓고 그 다음에 이제 진행되어나가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뭐냐 하면 질서도 없고 나름대로 일관성도 없는 상식적인 생각과 세속적인 생각 이기심 그 다음에 자기의 개똥철학 이런 것들이 뒤엉켜가지고 만들어놓은 것이 뭐냐 하면 이게 성경적인 가정의 원리와 맞을 리가 없거든요. 그러면 이제 성경말씀을 잘 배우면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다보면 이것 자체가 성경말씀을 배운 코드하고 안 맞는 것이에요.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하면 이것을 맞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벽을 딱 치는 것이에요. 그래서 신앙은 신앙이고, 실제의 삶은 삶이고, 가정은 가정대로 굴러가는 거고, 신앙은 신앙으로 가는 거고 그냥 치워버리는 거죠. 그게 이제 위선적인 신앙이 되는 것이죠. 그런 속에서 그런 가정생활은 영혼의 활동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성령님을 계속 슬프게 하고 믿음으로 살지 않고 가정생활의 원리들이 성경으로부터 떠나게 되면 이제 그 자체가 unspiritual frame이 되는 것이에요. 비영적인 틀들이 되어서 신앙생활 자체를 억누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것처럼 마치 그 가시 나무떨기나 그런 것들이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것과 같은 그런 형태의 신앙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뭐냐 하면 신앙이 영적으로 활짝 꽃피지를 못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럴 경우에는 굉장히 어려워지는 것이죠. 이번에 우리 열린 신문을 보면 1월 달 사경회가 끝나고 나서 어느 자매가 자기는 원래가 페미니스트였다고 하면서 간증을 쓴 것을 읽어본 적이 있지요. 그것을 결혼생활에 딱 대입을 하시면 되요. 그런데 또 이런 경우도 있어요. 남편, 아내 다 대가 없어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아무도 리더가 없는 거예요.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복잡한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가족들한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해서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그런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내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부가 어떻게 하든지 이 가정을 성경적인 토대위에 세우려고 하는 데에 있어서는 일치를 보아야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항상 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결혼을 하고나면 이런 문제를 이야기할 때 이해관계가 얽히니까 오히려 연애할 때 가정과 이런 것들에 대한 설교를 계속 들으면서……. 매년 했기 때문에 15년 치가 있어요. 뭐 그것만 다 들으려고 해도 일 년을 들어야 될 정도의 양일 거예요. 왜냐하면 보통 최소한 한 달을 했고 그렇지 않으면 두 달씩 가정시리즈가 되기 때문에 그러면 그것을 천천히 들으면서 아직 이해관계가 안 생겼을 때 남편의 도리와 길, 아내의 도리와 길, 부모님과의 관계, 이런 것들의 구획을 지어서 ‘결혼하면 우리가 이렇게 하자. 우리 부모는 이런 분이고…….’ 이렇게 하면서 토대를 놓고 그 다음에 합의를 보면서 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연애할 때 서로 좋아서 빠지느라고 그런 데에 관심이 없어요. 그러다가 현실에 부딪히게 되면 이제 울컥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나도 성경적인 원리를 세우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다 알고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잘 안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간섭하는 또 다른 원들이 나의 가정을 그리는 질서가 호수 위에 그려지는 하나의 파문이라면 이게 나 혼자만 마음먹어서 되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라 파문이 너무나 많은 것이에요.
예를 들면 우리교회 자매가운데 하나가 있었는데 되게 힘들어했었죠. 그게 뭐냐 하면 남편하고 간신히 남편이 학원도 하고 그러지만 실속이 없어요. 그래서 힘겹게 사는 것이에요. 그런데 결혼을 하자마자 시어머니가 하는 이야기가 그것을 어디서 배운 것인지 뜬금없이 ‘부모는 제사장이다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이니까 제사장을 잘 섬겨야한다. 무조건 나한테 오십만 원씩 바치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워낙 세게 나오니까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이행하려고 하는데 살림살이가 말이 아닌 것이에요. 그런데 뭐냐 하면 계속해서 푸시를 하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부모도 공경하지 못하면서 무슨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그러느냐? 나는 우리집안에 제사장이다. 나를 섬겨라.’ 그분은 그분대로 아주 기본적인 개념이 없는 그런 부부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자식을 올바로 가르친다고 가르쳤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오만 원을 달라고 그러면서 가르쳤으면 교육이 되는데 아니 한 달에 백오십만 원밖에 못 버는 사람에게 오십만 원을 바치라니까 생활의 위협을 느끼잖아요. 뭐 이런 것들……. 참된 요소 하나를 끌어들여서 자기가 확장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계속해서 이제 말하자면 부딪히는 것이에요. 그런 파문이 수없이 와요. 그럴 때 결국은 나만 올바르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올바르지 않은 파문을 그리면서 다가올 때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잖아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오는 것이에요. 그래서 쉬운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결혼은 안하면 안하는 것대로 지불한 비용이 많고 결혼을 하면 하는 대로 지불해야 되는 비용이 많은 것이에요. 그래서 어차피 우리들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는데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고난이 고통이나 괴로움들이 열매가 없고 무가치한 괴로움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고난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제일 먼저 결혼과 함께 만나게 되는 관계가 사실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아니라 부모의 관계를 더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남편과 아내는 이미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상당부분 잘못을 해도 이미 서로에게 용납하고 용서해줄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에요. 그런데 양쪽 집안의 부모들은 별로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에요. 자 예를 들어봅시다. 이제 자매의 입장에서 결혼을 해서 시집을 갔어요. 그러면 이제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만날 것 아니에요. 나는 경험을 못해보았지만 시아버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귀여워한다고 그래요. 귀엽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가 문제에요. 어머니는 자식이 장가갔을 때 상당한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에요. 보통 잘 훈련되고 생각을 바꾼 사람이 아니면 내가 결혼식에 주례사 하듯이 ‘아! 기쁘다. 딸이 하나 더 생겼구나!’ 주례사는 그렇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시어머니가 별로 없어요. 더군다나 장가를 갔는데 자기 아들이 마누라한테 꽉 잡혀서 살고 살도 자꾸 빠지는 느낌이 들고 며느리는 활짝 핀다고 할 때 이제 마치 그 자매가 아들의 등골을 빨아먹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결혼을 하고나서는 즉시 자매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건강관리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얼굴이 활짝 피게 잔뜩 먹여야 해요. 특히 야식을 많이 먹여서 현실적으로 살이 찌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해요. 아니 여러분! 이게 진짜 목사님이 피곤하니까 농담하는구나! 그러는데 아니에요. 잘 들어봐요. 결혼을 하고나서 한 삼년을 산 다음에 아들이 살이 빠지면 며느리가 속을 썩여서 그렇다고 생각을 안 하고 사업이 어려운가보다, 직장이 힘든가보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자기가 잘 해서 상품을 넘겨주었는데 6개월 만에 완전히 상품이 형편없이 망가졌다면 그럴 때에 요인이 뭐냐? ‘내 품을 떠났는데 결국은 너 때문에 그랬구나!’ 그러면서 ‘너는 덕이 있는 며느리가 아니구나!’ ‘왜?’ 그럴 때 어떠냐하면 나는 너한테 굉장히 기대를 걸었는데 그것은 다 쓸데없는 이야기이고 ‘고것 봐라,’ 그러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하면 아들이 자기 품을 떠났을 때에 상태가 안 좋아지기를 바라는 (그런 무슨 심리학적인 술어가 있는데 내가 지금 생각이 안나요.), ‘그것 봐라’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는 것이에요. 그것을 너무나 간절히 바라는 것은 아닌데 되었을 때에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것 봐라! 흥! 네가 내 품을 떠나더니 그렇게 되고…….’ 형제들은 자매를 만나면 하루아침에 엄마가 지워지는 거야! 엄마는 지워지고 엄마의 지갑만 딱 남는 거야. 본인이 부인해도 소용이 없는 게 이것 부모에게는 금방 느껴지는 것이에요. 특히 여성인 엄마에게는 금방 느껴져요.
그래서 그것도 지혜로우면 그렇게 안하거든요. 이렇게 하면 12시까지 해야 하는데 큰일 났다. 이제 결혼할 때도 둘이 사랑하잖아요. 죽어도 이 여자밖에 없어요.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해도 엄마한테 가서 빈말이라도 ‘어머니 제가 이제까지 어머니가 저를 길러주시고 그랬는데 어머니의 마음에 꼭 드는 며느리를 얻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러면서 이제 처음부터 그렇게 연막을 치는 것이에요. ‘어머니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뭐냐 하면 소개시킬 때도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요. 자기 마음속에서는 이 여자가 아니면 독신으로 살겠다고 마음을 먹을지라도 집에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뭐 있어요? 얼굴도 안 봤는데……. ‘엄마 3일후에 자매가 올 거거든. 그런데 나는 그 자매가 아니면 독신으로 살 거거든.’ 그런 얘기를 뭐 하려 하느냐 이거에요. ‘엄마 너무 큰 부담을 갖지 마시고 보세요. 몇 번 보셔서 어머니가 정 아니면 제가 접지요. 여자가 더 중요해요? 엄마가 더 중요하지요.’ 아 자매가 듣는데서 그러면 또 안 되지요. 안 듣는데서 해야지.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마음을 굳게 세워서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러면 부모가 볼 때 아들을 박탈당했다는 마음이 안 들잖아요. 이 녀석이 처음에 소개해주면서 무슨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 그게 벌써 곱게 안 보이는 거야.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면 ‘네가 마음이 기울었구나!’ 그러는 것이 아니라 ‘조것이 얼마나 마음을 훔쳤으면…….’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이에요. 여러분에게 얘기를 하면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려고? 그러는데……. 많아요. 아주 많아요. 그런데 그 때는 모르는 것이에요. 엄마도 여자잖아요. 자식이 마음이 떠나갔다는 것을 금방 느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왜 그래요? 엄마랑 나랑 잘 지내는데 그 관계 속에 사람을 불러들인다는 인식이 되게끔 해드려야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정도로 배려가 있으면 그게 20대 총각이 아니지요. 그게 문제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결혼교육을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일찍 받아야 해요. 아니 정말이에요. 그렇게 해가지고 쭉 가야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해서 부모님을 만나야 하잖아요. 그러면 자매의 입장에서 먼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에요.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사위와 장모와의 관계보다 훨씬 더 결혼생활에 영향을 더 크게 미치는 것이에요. 물론 또 모르죠. 자매가 부자고 형제가 의사여서 빌딩이라고 받게 되어 있다면 그것은 또 별개의 문제겠지만 그런 예외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그게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치명적인 관계가 아내와 그 다음에 시어머니와의 관계라는 거예요.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싸워서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아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자매들이 그것을 너무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간단하게 얘기하면 이거에요. 결혼하고 3년 뒤에 300% 잘하는 것 보다 결혼하고 6개월 안에 더 짧으면 3개월 안에 10%를 잘하는 것이 훨씬 더 가정생활의 행복을 위해서 이바지하게 된다고요.
그러면 제일먼저 가져야할 생각이 뭐냐 하면 결혼을 해서 그 집과 관계를 맺게 되잖아요. 그러면 제일 먼저 가져야 될 생각은 이 남자를 선택해서 시집을 갈 때에는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에요. 그래서 마음속에서 이분들은 나의 가족이다. 여러분들이 살아오면서 엄마, 아빠가 마음에 안들 때도 있잖아요. 에이, 이달만 관계를 맺고 다음 달에는 끊어야지……. 학원도 아니고 그런 생각은 안했잖아요. 그런데 시부모님을 향해서도 그런 생각을 가져야된다는 것이에요. 모든 판단이 거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하는 것이죠. 이분들과의 관계는 내가 접을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해야 돼요. 그런데 며느리들이 아주 빨리 접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단절을 하고 안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딱 닫아버리는 것이에요. 딱 걸어버리고 자기의 할 도리만 하는 것이에요. 할 도리를 한다는 것은 자기의 표현이고 남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하죠.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에요. 결혼생활이 고쳐지지 않는 거예요. 사랑이라고 하는 통로는 서로를 변화시키는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통로에요. 그래서 자식을 낳으면 사랑이라는 통로가 있으면 때리면 훈육이 되는데 사랑이라는 통로가 없이 때리면 폭력이 되어버리는 것이에요. 사랑이라는 통로가 있으면서 아이에게 가르치면 교훈이 되는데 사랑이라는 통로가 없으면 잔소리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통로자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에요.
그러면 어머니의 경우에요. 엄마는 아들을 박탈당한 상당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자매 쪽의 부모님들은 딸로 태어나서 성숙해서 시집을 보낼 때 마음이 아리지만 마음에 이미 많이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렇죠? 이제 이놈이 내 품을 떠나가면 마음이 쓰리고, 보고 싶고, 마음이 아프겠지만 출가외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그 생각이 옳으냐? 그르냐는 얘기할 것은 없고 한국사회의 문화에서는 그런 것들을 부모들이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아들을 낳으면 이놈은 죽어도 내가 만날 놈, 왜 제사를 통해서……. 딸을 낳으면 이 아이는 건너갈 얘,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시집을 보냈을 때 당시에는 아리고 그러지만 그러나 그것을 자기가 참아야한다고 부모는 이미 생각되기 때문에 충격이 적은 것이에요. 그런데 엄마는 아들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을 안 한 것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불쑥 이게 며느리가 딱 끼어들은 것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며느리입장에서 아주 지혜롭게 해야 되는 것이죠. 시어머니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 하겠어요. 왜냐하면 어차피 여러분들은 시어머니를 고칠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런 교육을 잘 받아서 정리가 된 시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면 그것은 더없이 감사한 것이죠. 그 얘기는 안하겠어요. 그 얘기를 하면 시간이 더 흘러가니까……. 치워버리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결혼과 함께 상대방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그리고 가끔 찾아가서 만나게 되는 관계가 아니라 어쨌든 늘 가족으로 관계를 갖잖아요. 마음속에 항상 어떤 생각을 가져야되느냐 하면 이 같은 여자로서 이 어머니가 핏덩어리를 낳아서 자기의 몸에 끼고 자고 먹이고 하면서 결국은 떠나보냈을 때에 결국은 그러한 굉장히 커다란 상실감 내지는 박탈감 더군다나 결혼을 반대했는데도 했을 경우에는 더 많은 박탈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한풀 꺾어야 되요. 그 대신 어떻게 되느냐하면 자기는 그렇게 꺾으면서 들어가지만 그러나 남편에게 사랑을 받잖아요. 남편의 마음이 이미 어머니가 아니고 자기잖아요. 거기에서 위로를 느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시어머니를 표현은 좀 이상하지만 피해자라고 보고 같은 여자로서 내가 참 미안하다는 그런 마음을 의식적으로 가지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여러분들도 이제 곧 경험을 하게 되니까…….
더군다나 부모가 네 인생은 네 인생, 내 인생은 내 인생 이렇게 키운 부모들은 이렇게 복잡한 감정이 없어요. 그런데 자식을 진짜 사랑했던 부모들에게는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큰 거예요. 나는 불행하게 어머님 슬하에서 못 자랐거든요. 어머님, 아버님이 지방에서 사업을 하시고 할머니 손에서 컸어요. 그러니까 내가 26살에 장가를 갔는데 부모님하고 같이 큰 기간은 6년도 안 돼요. 할머니가 키웠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나를 거의 신앙처럼 사랑하셨어요. 우리 형제가 넷인데 그 중에서 나 하나를 유독 첫 열매고 하니까 그렇게 사랑하셨어요. 나도 할머니를 사랑했고 할머니가 돌아 가신지가 30년이 되었는데 지금도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가끔 잠자리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여러분들은 믿겠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서로 사랑했다고요. 그런데 결혼을 하는데 그 전의 이야기는 그만두고 결혼식 하는 날이에요. ‘너, 날 봐라.’ 그렇게 엄숙한 표정을 할머니에게서 뵌 적이 없어요. ‘네가 이 결혼식에서 웃으면 나는 너를 다시 보지 않는다.’ 굉장히 준엄한 대법원의 선고 같았어요. 그 때 내가 확실하게 여자로서의 할머니의 마음을 느낀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지금도 결혼식을 하면 귀에다 대고 얘기를 해요.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마라 울면 사연이 있는 결혼 같고 웃으면 속이 없어 보이고 너의 웃는 그 미소가 네 엄마, 아빠에게 화살이 된다. 가만히 표정관리를 하고 40분만 지나면 된다. 간단해 차를 타고 가다가 웃고 난리를 치든지 그것은 네 맘대로 하는데 지금은 하지마라.’ 가끔 자매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웃는 거예요. 그래서 ‘웃지 마라, 웃지 마라.’ 이게 잘못하면 말이죠. 여러분들이 모든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기본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에요. 자기만이 아니라 결혼과 함께 만나는 모든 인간이 가엾다는 생각을 해야 해요. 그 어머니를 그렇게 깊이 이해해야 해요. 희생적으로 자식을 길렀을수록 더 심한 것이에요. 더군다나 외아들일 경우에는 그런 것을 각오하고 시집을 가야해요. 그것을 깊이 인정하면서 항상 힘들더라도 어머니가 우리의 결혼으로 인해서 아들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는 것을 최소한 느낄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해요.
여기에서 우리들이 제일먼저 유의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호칭이에요. 호칭. 여러분들도 부모님들에게 할 이야기를 못하지만 부모가 되어도 자식한테 결혼을 하고나면 할 말을 다 못하는 거예요.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방배동에서 목회를 할 때인데 그 때는 결혼을 하면 심방을 다 갔어요. 그런데 이제 홀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기른 것이에요. 어머니가 이제 그래도 변호사는 아니었지만 그런 법무계통의 일을 하시면서 아주 전문가가 되셨고 그 당시에도 아들을 잘 키웠어요. 그래서 대학까지 3학년을 다니다가 이제 둘이 너무 좋아하니까 25살짜리하고 22살짜리가 결혼을 했어요. 그분이 영 열린 교회에 대해서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사람 같지는 않고 아들이 그저 좋은 교회라고 그러면서 나오니까 할 수 없이 따라 나오는 negative한 게 배어있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목회자들은 잘 알잖아요. 심방을 가면 말씀의 은혜를 받고 그러기 때문에 영적으로 딱 달라붙는 그런 것이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그분은 너무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심방을 가서 앉았어요. 이제 똑같이 결혼을 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서 물어보고 이야기를 했어요. ‘야 너희들 서로를 부를 때 뭐라고 부르느냐?’ 그러니까 ‘오빠, 어쩌고’ 뭐 그런대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왜 그러면 안 되는지를 가르쳐주었어요. 이 어머니가 교회를 다녀도 다른 말씀으로는 은혜를 못 받았는데 심방에서 확실하게 은혜를 받은 거예요. 왜냐하면 이 아들이 25살이 되도록 홀로 길렀는데 어느 날 이 아이를 박탈당한 것도 자기는 너무나 마음이 아픈데 ‘어이 오빠, 이거 했어?’ 그러는 거예요. 어머니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이에요. 이것을 며느리한테 얘기를 해야겠는데 이게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서 그것을 얘기할 때에 ‘얘야 그렇게 불러도 좋지만…….’그렇게 얘기할 수가 없잖아요. 감정이 허락하지를 안하는 거예요. 어떻게 결혼을 했는데 내 아들을 얼마나 우습게보고 우리 집안을 우습게보면 여기에 와서 ‘어이, 오빠’ 그러느냐는 거예요. 더군다나 시어머니 앞에서 그것은 있을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너 어떻게 네 남편을 그렇게 부를 수가 있느냐?’ 그러면 관계가 깨어지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분이 나름대로 강단이 있지만 혹시 이렇게 해서 며느리와 깨지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아들하고의 관계가 이상해질까 봐 속을 끊이면서 한 달을 견딘 것이에요. 두 달째 들어가면서 두 달만 참아보고 이것을 얘기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것을 바보같이 아들에게 ‘야 네 아내한테 가서 여보라고 부르라고 해라’ 그러면 가서 형제가 그렇게 얘기를 하면 이 자매한테 얼마나 웃기는 사람으로 보이겠어요. 여태까지 몇 년 동안을 사귀면서 그렇게 불러왔는데. 그래서 틀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그렇지 않아도 박탈감을 느끼는데 이게 뭐 오빠, 아니면 이름까지 부른단 말이에요. 왜냐하면 익었으니까. 더군다나 연하일 경우에는 더 잘 그러잖아요. 그게 이제 여러분 자신에게는 문제가 안 되어도 부모님에게는 굉장히 엄청난 가정 사건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왜 그런 것 때문에 문제를 일이키냐는 것이에요. 그래서 둘이 마주 보아라 그랬어요. 둘이 동시에 불러보아라. ‘여보’ 그게 개통식이었어요. 그래서 개통식이라고 얘기해줘요.
내가 결혼하고 14년 동안을 우리 집사람한테 여보라고 말을 못했어요. 왜냐하면 결혼해서 24, 26살 새파란 애들이 ‘여보’ 그러면 사람들이 얼마나 웃겠어요. 그래서 못한 것이지요. 중요한지도 몰랐고요. 그래도 우리 집사람이 나한테 ‘오빠’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안 부르는 것이지요. ‘저기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전도사가 된 다음에는 좋잖아요. ‘전도사님’ 그렇게 부르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그것도 생각이 나지 않으면 불러도 될 것을 가서 붙들고 이야기를 해요. 나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도 목회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날 내가 딱 교정을 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게 말하자면 결혼생활에 있어서 초창기에 형성이 안 되면 자리를 못 잡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게 부모님에게 굉장히 많은 선입견들을 가져다주는 것이에요. 자! 둘이 마주봐요. 다른 부인 말고 자기 부인을 보란 말이에요. (웃음) 잘 들어요. 이제 오늘로부터 개통이에요. 그리고 눈을 잘 봐요. 자 동시에 부르는 거예요. 하나, 둘, 셋 ‘여보’ 다시 하나, 둘, 셋 하면 ‘당신’ 하는 거예요. 하나, 둘, 셋, ‘당신’ 되었어요. 이제 가서 신발을 신을 때부터 ‘여보, 내 신발 좀 줘.’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죠. 이게 열린 교회에서 내가 직접 심방할 때는 확실하게 다 정리했어요. 그래서 결혼식하고 한 달 만에 심방을 가면 요만한 부부들이 ‘여보 목사님 오셨어.’ 그런다고요. 그러면 심방 가는 대원들이 막 웃지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그것을 보고 웃는 당신들이 아직까지 개념이 없다고 그랬어요. 지금도 우리교회에 누구라고 말씀은 안 드리는데 20년씩 살아도 아직까지도 여보라고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누구아빠, 누구엄마, 이러는 것이에요. 그런데 영어에서 ‘Honey’ 이것은 얼마나 달콤한 말이에요. 그 말이 바로 우리말에서는 여보잖아요. 다른 이름인 김남준 전도사님, 목사님, 아무개아빠 이것은 누구나 다 부를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한사람 밖에 없어요. 그렇지요? 그럼 한번 생각해봐요. 그게 보통 특권이냐 이거에요. 그게 사실은 명칭을 잘 음미하면서 들어보면 눈물 없이는 부를 수 없는 단어에요. 안 그래요? 아니 태어나서 나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한 사람을 만나서 꽃피는 것 아니에요. 두 번의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한번 주어지는데 그래서 부르는데 그것을 평생 안 부르고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얘기할 때 막 징그러운 느낌이 드는 거예요. 말하자면 잘못된 게 굳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죠. 그렇게 한번만 해주면 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봐요. 자! 쳐다봐요. 시작 ‘여보’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보 내가 있잖아, 여보 나는 당신을 사랑해, 여보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에요.
그 때에 여러분들이 이제 신혼이잖아요. 잘 들어봐요. 그래서 언제 이것을 보란 듯이 하느냐하면 온가족들이 같이 모였을 때에 여러분의 동서 중에서 아직도 이것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많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 ‘여보 저쪽에 있는 그릇 좀 이쪽으로 줄래요.’ 그러면 부모님이 처음에는 놀릴 수도 있어요. ‘야, 쟤네들 봐라 벌써 여보란다, 참 꼴 같다.’ 그런데 그것은 빈말이에요.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며느리를 굉장히 고마워한다고요. 이 아이는 가정의 질서나 그런 것들을 아는구나. 그런데 나는 여러분들을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는데 부모는 웬만하면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 당사자에게 못해준다고요. 만약에 했는데 안한다고 하면 도전이 되는 것이고, 했다고 그러면 강요가 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말을 잘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 쾌활하게 ‘여보’ 그렇게 부르면서 부부의 호칭을 통해서 부부가 유별한 것을 부모들에게 잘 보여주세요. 그 어머니는 나를 볼 때 항상 존경하는 눈빛이 없었는데 그날 심방을 다녀온 이후로 교회당 마당에서 만나면 90도로 절을 해요. ‘아! 은혜로운 목사님!’ 그리고 틈만 있으면 ‘너희들은 목사님 말씀을 잘 들어야해.’ 자기 속의 큰 못 하나를 내가 쑥 빼 준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내가 잘 모르지만 얘네 들은 목사님 교회에 계속 다니면 제대로 된 가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하면서 살아야 해요.
또 하나는 뭐냐 하면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부모님들에게 도리를 하려고 생각을 먼저 하지 말고 사랑하려고 해야 해요. 우리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하면 교회 안에서 성도나 전도대상자를 마음에 품을 때에 깊이 사람들을 사랑해야 된다는 인식을 갖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대해야 되요. 그러고 보면 취향이나 언어, 교양의 수준 이런 것들이 전부 천차만별이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꽤 많이 배웠는데 남편도 꽤 많이 배웠는데 어머니는 영 아니고 그럴 수 있잖아요. 또 가난할 수도 있고 그런 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런 게 결국은 사랑이에요. 사랑……. 그래도 여러분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래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어머니가 비록 시골에서 자라고, 혹은 돈이 없고, 교육을 나보다 많이 받지 못하고, 그래서 언어도 이렇게 교양 있지 못해도, 그래도 이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 속에서 요구되는 것이 뭐냐 하면 의무에요. 의무……. 그래서 신혼 초에 체력관리를 잘해야 해요. 이것이 신혼생활을 보람 있게 잘하는 비결이 되는 것이에요. 체력의 싸움이에요. 그런데 의무를 잘해야 된다는 것이죠.
자! 이제 이런 경우가 있어요. 이제 결혼을 했는데 나는 우리 집안에서 맏이거든요. 아들만 사형제니까 둘째, 셋째, 넷째까지 있어요. 그런데 이제 우리 집에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서 어느 집에 삼형제가 있다고 치자고요. 그런데 막내가 방금 결혼을 했는데 집에서 가정의 행사가 있어서 모이게 되잖아요. 예를 들면 명절이라든지 시어머니 생신이라든지 해서 모이게 되잖아요. 그러면 항상 며느리로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되느냐 하면 내가 조금 더 희생한다는 생각을 가져야해요. 그런데 대부분 보면 그렇게 하려고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특별히 나쁜 것이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항상 그런 행사가 있을 때에 늦게 나타나거나 자기의 의무를 태만히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부모한테만 찍히는 게 아니라 동기간들한테 피해를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며느리로서 혹은 사위로서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올바르게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신혼생활이니까 다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잖아요. 그래도 만약에 여러분들이 감당할 수 없다면 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를 하지만 여러분들이 경제적으로 무엇인가 의무를 시댁식구들에 대해서 혹은 반대편인 처가에 대해서 해야 될 상황이 있다면 다른데서 아껴 쓰고 그런 것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의무를 정확히 수행하고 그리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시절에 무슨 일이 있어서 시집을 가든지 특히 시집이에요. 처가는 늦게 가도 문제가 안 되는데 시집에 갈 때는 다른 형제들보다 10분 먼저 가고 10분 늦게 온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의무를 다해야 되는 것이에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잘 안 해요.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아주 뛰어나서 항상 남이 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하려고해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굉장히 좋은 가족들 관계인데 동생하나가 늦게 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하면 부모님은 우리를 무시하는 것인가? 그리고 형님들은 보면서 막내가 이렇게 늦게 오다니 이것은 분명히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야! 등등의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그래서 귀여움을 받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큰 게 아니라, 작은 생활에 있어서 자신들을 존중해 준다고 하는 것을 그것이 결혼생활을 3년, 4년 한 다음에 ‘어머니 제가 장에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면 그것은 문제가 안 돼요. 이미 다 서로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첫인상이잖아요.
어떤 심리학자가 실험을 했어요. 두 집단을 만들고 똑같은 이야기의 정보를 전달한 것이에요. 이 사람은 뭐냐 하면 -사람이 인정은 좀 없는데 돈도 많고 실력도 좋아-그런데 이것을 이쪽 똑같은 정보를 요쪽에는 긍정적인 것을 먼저하고 나중에 부정적인 것을 하고 이쪽에는 부정적인 것을 먼저하고 나중에 긍정적인 것을 먼저 한 거예요. - 이 사람은 인간성이 나빠요. 그런데 돈도 많고요. 그리고 실력도 아주 뛰어나다고 얘기를 한 거예요.― 이쪽에는 -돈도 많고요 실력도 아주 뛰어나요 인간성이 좀 그래요.― 나중에 이 사람에 대한 투표를 했는데 26%이상 차이가 난 것이에요. 이쪽은 부정적으로 나오고 이쪽은 긍정적으로 나오고……. 그러니까 뭐냐 하면 결혼을 하고나서 신혼시절에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어떻게 새겨놓느냐가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요즘 같은 핵가족시대 때에 온가족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무리 열심 있는 집안이라고 해도 일 년에 다섯 번을 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 때에 항상 눈에 띨 허물을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스스로 자신의 결혼생활을 힘들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그 압박을 누가 받느냐하면 남편이 받는 것이에요. 너는 도대체……. (그런 얘기는 집에 와서 다 안하죠, 또 하면 그 사람은 남자도 아니죠.) 형이 당장 불러서 얘기하지 않겠어요? 내 동생이 그랬다면 불러서 얘기하지 않겠어요? ‘야 너 무슨 얘기냐? 집안의 큰일인데 너 막내가 되어서 아니면 셋째가 되어서 저기 형수들은 다 와서 저렇게 일하고 있는데 너 아침 늦게까지 퍼질러 자다가 밥 차릴 때가 되어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고 안녕하세요? 그런 것을 어디서 배워먹었느냐?’ 고 나는 당장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시아주버니의 입장에서 제수씨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하느냐?(나는 얘기해요. 왜냐하면 다 우리 교인이니까 나는 하지요.) 그러나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간섭 받는 거야. 아까 얘기했잖아요. 어머니가 박탈감이 남아있다고. 그러면 또 하는 거야 그러면 스트레스 받는 거야 그러면 집에 와서 그런 생각이 들 거 아니에요. ‘아이 씨 좀 잘하지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듣게 하나!’ 그럼 결국은 남편과 아내사이에도 이런 균열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아내가 더군다나 ‘내가 얼마나 힘든데 그것도 막아주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되면 ‘아 조금만 개념 있게 행동을 하면 될 것을…….’ 그러면서 갈라져 나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이에요.
결혼하자마자 자매가 그리고 형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뭐냐 하면 (어머니가 너무 타깃이 되어서 어머니들한테 미안한데 그렇게 좀 암초 같은 존재니까 이해를 해야 돼요.) 그래서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를 남편이 잘 안단 말이에요. 그것을 진지하게 잘 이해를 해야 해요. 그래서 시어머니가 가장 힘들어하는 행동, 예를 들어서 이런 시어머니가 있잖아요. 돈에는 상당히 너그러운데 시간을 칼같이 지키지 않는 사람을 인간처럼 안보는 그런 부모가 있잖아요. 그 다음에 돈 셈이 흐린 사람은 죽어도 못 보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것이 가치판단에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옳으냐? 그르냐? 그런 문제는 논하지 말고 그것은 자기가 부모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차피 그렇게 된 집에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는 거니까 그 얘기는 하지 말고 그게 뭐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한 얘기하지 말고 거기에 맞추어야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시어머니가 돈을 잘 꾸기도 하고 또 잘 꾸어주기도 해서 이런 것에 대해서 빌려가고 좀 덜 갚고 그래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 분인 경우에는 그런 것 좀 약속이 조금 더디게 되어도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돼요. 그런데 이 분이 시간 같은 것에 대해서 칼 같은 분이에요. 또 이런 경우가 있어요. 낭비하는 것은 죽어도 못 보는 그런 시어머니도 있지요. 그럴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그것을 건드리면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게 되는 것이에요. 자존심을 건드린 것처럼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다른 것들을 잘하려고 해도 거기에서 안 좋은 선입견이 꽉 박혀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목록을 잘 작성을 해서 이해를 하고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안 건드리면 그게 바로 효도라는 것이에요.
여러분도 이제 결혼을 해서 여러분 남편만큼 사람을 길러서 장가를 보낼 정도가 되었으면 어머니가 나이가 들었잖아요. 나이가 젊은 사람도 마찬가지고 나이가 든 사람도 마찬가지고 나이가 든 사람들일 경우에는 더 심해지는데 그게 뭐냐 하면 말을 많이 해서 부모를 기쁘게 할 가능성은 적어요. 왜냐하면 말이 많으면 허물이 묻어나요. 더 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잘 들어드리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게 가시방석에 앉은 것같이 힘들거든요. 얼른 남편하고 가서 파자마 갈아입고 침대에 벌렁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편한데 별로 공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맞장구를 치면서 들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가장 많이 부모님으로부터 점수를 많이 따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이 이야기를 할 때 주의를 집중하고 잘 들어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공감되는 이야기로 해서 의사소통의 길을 트는 것이에요. 그러면 뭐냐 하면 아무 이야기가 아니라도 훌륭한 상대가 되는 거예요.
가끔 이런 사람이 있어요. ‘목사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그러면 ‘오세요.’ 그러면 들어와요. 그러면 들어오자마자 이게 뭐 수돗물이에요. 말이 상담을 하러왔는데 막 퍼붓는 거예요. 이 정도쯤에서 끊어야지만 내가 충고를 해주겠는데 자기가 다 이야기를 하고나서 ‘하긴 뭐 다 내가 잘못해서 그렇지요 뭐 저는 사실 결점이 많거든요. 우선 저는 이런 게 문제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목사님, 오늘 상담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간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가서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아유 목사님은 상담을 아주 잘해주신다.’고 그래요. 해준 게 아니라 혼자 얘기하고, 자기 잘못까지 얘기하고, 결론까지 내리고, ‘목사님 아무래도 제가 더 말씀을 잘 듣고 기도를 많이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갔다고요.
그래서 내가 선교사들한테도 항상 충고를 하거든요. 한국에 오면 뭐냐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선교를 잘 모르잖아요. 여러분이 선교사라고 해봐요. 그러면 선교사들의 심정이 자기 선교사역을 확 소개시켜주고 그 다음에 자기가 무엇이 필요한 것을 얘기해주고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와서 뭐냐 하면 자기 얘기를 막 하는 것이에요. 자기는 언제 소명을 받아서 파송되고 뭐 이만한 사역을 하고 있고 뭐가 부족하고……. 다 하나의 노이즈야! 가슴에 안 와 닿아요. 오히려 와서 ‘목사님 목회를 굉장히 열심히 잘하신다고 그러는데 목사님 저희도 좀 가르쳐주세요.’
제가 성남에 있는 어느 교회로 설교를 하러갔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계신데 은퇴가 얼마 안 남으신 분이에요. 그런데 아마 후임으로 올 목사님인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교회를 전체적인 것을 돌보면서 그 때는 그래도 내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많이 알고 있었고 그 교회에서는 내가 간 것이 굉장히 좀 감사하고 자기네 교회로서는 아주 유명한 강사를 모셨다고 다를 들떠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설교도 뭐 그렇게 못하지 않고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는데……. 그 옆에 앉은 목사님이……. 사람이라는 게 직감이 있잖아요. 나는 그 목사님한테 예의를 갖추느라고 인사를 드렸는데 그렇게 거만하시고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아! 생각이 났다. 설교를 하러 들어가기 전이에요. 그런데 아주 굉장히 안 좋아요. 그래서 내가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사람들이 막 떠들고 다닌 것이에요. 김남준 목사를 우리가 모셔왔다고 그러면서 어쩌고저쩌고……. 그리고 책까지 또 그 교회에서 돌리고 막 그러니까 담임목사님이 보기에는 내가 곧 은퇴 할 텐데 뭐 저렇게 헌신예배에 한 시간 설교하고 가는데 저렇게 사람들이 그러는가……. 아마 그런 감정이셨던 것 같아요. 나도 뭐 사람을 좀 볼 줄 알잖아요. 그런데 눈치가 굉장히 딱딱하고 뭘 대화를 좀 하려고 해도 대화가 딱 끊어지는 것이에요. 주변이 아주 냉랭해요. 우리끼리 막 이야기하니까 꼭 이 목사님을 왕따 시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쳐다보면서 그랬지요. ‘목사님!’ ‘예.’ 표정도 별로 안 좋아요. ‘목사님 여기서 몇 해나 목회를 하셨어요?’ ‘36년이나 했지.’ ‘아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는 이제 6년쯤 했는데 이렇게 힘이 드는데…….’ 딱 쳐다보면서 ‘목사님!’ ‘예.’ ‘그런데 저를 그냥 보내시면 안 되지요!’ ‘뭐를요?’ ‘목사님이 36년 동안이나 한 교회에서 이렇게 훌륭하게 목회를 하셨는데 이 새카만 후배인 제가 이 교회에 왔는데 제가 이번에 오면 언제 또 올 기회가 있습니까? 설교는 제가 하고 가지만 그래도 이 새카만 후배한테 목사님이 -얘야 목회는 이렇게 하는 거란다.― 한두 가지만 가르쳐주십시오.’ 그랬더니 그 순간 얼굴이 활짝 피는 것이에요. 그러더니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그것도 다 아는 거예요. 그렇지만 ‘목회란 내가 해보니까…….’ 그러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지는 것이지요. ‘그러셨어요? 되게 힘드셨겠네요.’ ‘아! 말도 마’ 그러더니 이제 ‘목사님 들어가실 시간인데요.’ ‘어, 시간이 좀 더 있는데 좀 더 이야기하지.’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목사님!’ ‘그래서 내가 뭐 보따리 싸들고 기도원에 올라갔지…….’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뭐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셨지.’ ‘맞아요. 요새 젊은 목사들이 그런 것을 배워야하는데 그저 주보나 예쁘게 만들려고 그러지 그런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맞아! 맞아! 목회란 재주로 하는 게 아니지…….’ 그러면서 올 때는 저기까지 내려오면서 ‘김 목사 잘 가라.’ 라고……. 인생이라는 게 그런 것이에요.
부모님에게 잘 들어 드려요. 그리고 절대 옳은 얘기를 하지 마요. 소용없어요. 왜냐하면 너무 오래 사셨기 때문에 안 고쳐져요. 그런 것을 포기하고 전도나 잘 할 생각을 해요. 포기하고 자신이 삶으로써 보여드린다고 생각을 해야 돼요. 그리고 잘 들어드려야 해요. 그리고 이렇게 맞장구를 잘 쳐드려요.
또 하나가 뭐냐 하면 부모님들은 특히 그렇게 아들에 대해서 박탈감을 가지고 있는 시어머니들은 의존하는 며느리를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얘기했지요. 며느리가 둘이 있었는데 작은 며느리는 대책 없이 개기는 뻔뻔한 형이고(여러분들은 잘 모르겠구나! 오후예배 때에 얘기했거든요.) 첫째 며느리는 개념으로 무장된 며느리에요. 그래서 좋은 집안에서 보고 딱 했고, 성격자체가 완벽주의라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가정 일을 하다가 그냥 졸도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안 하고 자기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둘째 며느리는 아주 뻔뻔스럽고 대책 없이 개기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이제 시어머니가 있는데 큰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얼굴도 예쁠 뿐만 아니라, 공부도 많이 했고, 공부를 많이 하면 싸가지가 없는데 그렇지도 않고, 아주 자기할 도리를 분명하게 하는 거예요. 아까 얘기한 의무 이런 것들을……. 그래서 이제 집안에 무슨 제사다 그러면 뭐 직장 휴가를 내서 와가지고 온 맘을 다해서 돕는 거예요. 그것도 며느리가 기쁨으로 돕는 다기 보다 자기의 일이라고 암시를 하고 오는 거예요. 그렇게 열심히 해내다가 한번은 너무 열심히 했는데 그러면 서로 일을 나누고 남에게도 부탁하고 그래야 되잖아요. 그것을 안 하고 혼자 내가 큰며느리니까 그러면서 하다가 다 해내고는 집에 가서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는 스타일이에요. 아니!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둘째는 뭐냐 하면 사람은 좋아 그런데 개념이 없어요. 따르릉 전화해서 ‘어머니’ ‘왜’ ‘안녕하셨어요?’ ‘그래 어쩐 일이냐?’ ‘어머니 내일 모레가 애비생일이잖아요.’ ‘그렇지 우리아들 생일이지’ ‘어머니가 오셔서 음식 좀 하세요.’ 아니 이 시어머니가 하도 기가 막히니까 ‘야 인마 네 신랑 생일을 왜 내가 너희 집에 가서 식모처럼 밥을 하느냐?’ ‘아니 어머니! 내 신랑이기 전에 어머니 아들이었잖아요. 그리고 아유 난 그런 것 못해요. 기숙사에만 있어서요. 어머니 오실 것이죠? 같이 시장가야 되요.’ ‘아이 난 못한다.’ 그러니까 ‘아이 필요 없어요. 안 오시면 그냥 생일이고 뭐고 잠이나 잘래요.’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뭐 이런 것이 다 있나……. 그러면서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전화를 하는데 평소에 시쳇말로 아주 싸가지가 없게 행동을 하면 그걸로 더 찍히고, 찍힌 데를 밟히는 것이죠. 그런데 이게 그래도 가끔은 귀여운 구석이 있는 거예요. 그런 황당한 전화를 받고 보니까 큰며느리랑 비교가 되는 거야. 큰며느리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야, 내가 좀 도와주랴’ 그러면 ‘아니에요. 어머니 힘든데 오지마세요. 아무것도 안 차려요. 아니 제가하면 되요.’ ‘아니 그래도 내가 가서 김치라도 담가주랴?’ ‘아니 다 담가놨어요.’ 사실은 담가놓지도 않고 그리고 가면 한 상을 잔뜩 차려놓는 거예요. 그런데 이 작은 것은 그래요……. 그래서 갔더니 아무것도 안 해놓고 애를 보면서 허덕거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가자고 그리고 시장을 봐다놨느냐고 했더니 ‘아니 제가 어떻게 그렇게 큰 시장을 제가 어떻게 봐요. 어머니가 봐주세요.’ ‘그럼 너는 하는 게 뭐냐?’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저를 도와주셔야지요. 저는 어머니 없으면 쓰러져요.’ 그러니까 ‘도대체 너의 부모는 너한테 무엇을 가르쳤느냐?’ 그래도 그냥 개기는 거예요. 그래서 가서 반찬을 다 사고 다 해요. 자 보세요. 결국은 뭐냐 하면 만날 가족들 모였을 때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너희 형님을 본받아라, 나는 네가 얘만큼만 하면 걱정을 안 하겠다.’ 이래도 어머니 마음은 둘째에게 가있는 거예요. 그게 신기해요.
나는 딸이 하나밖에 없지만 딸 둘, 셋 가진 아버지들이 그 딸 셋을 시집보내면서 우는 딸이 있고 안 울고 보내는 딸이 있어요. 우는 딸이 누구냐면 항상 아빠한데 개기는 딸, 엄마를 제치고 ‘아빠 나 돈 좀 줘’ ‘아이 내가 돈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아빠를 귀찮게 굴고 신세를 지던 딸이 아빠의 마음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부모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집을 사놓고 잔금 치르는 것을 의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있어서 더 센스 있게 ‘어머니 제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재료는 사다가 다 다듬어 놨거든요. 그런데 제가 도저히 조리하려고 칼을 들다가 어머니처럼 할 자신이 없어서 기다립니다.’ 이것이 사랑받는 며느리지요.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계속 투덜대는 거예요. ‘도대체 왜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도 없고…….’ ‘그래도 어머니…….’ ‘네가 도대체 배운 게 뭐가 있냐.’ ‘큰 애를 봐라. 큰 애네 집에 가서 내가 이렇게 해준 적이 없다 너는 도대체 뭐 배운 거냐. 아무리 기숙사에 있었어도 밥은 할 줄 알아야지 어떻게 라면을 끊일 때 찬물하고 라면하고 같이 넣느냐?’ 그러면서 해놨어요. 큰며느리는 큰며느리대로 했어요. 큰며느리가 뭔가를 음식을 하는데 실수를 했어요. 그러면 시어머니 마음이 딱 접히는 거예요. 그것 봐라, 아까 얘기한 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것 봐라……. 이제 작은 며느리도 했는데 온 가족이 밥을 먹다가 ‘아이 여보! 이거 뭐 이래 너무 매워’ 그러면 시어머니인 자기가 범인이야. ‘아이 그냥 대충 먹어라! 에미가 고생하면서 했는데…….’ 감싸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티격태격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정이 들어가는 거예요.
요즘들은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자기 친정에 가서는 엄마라고 부르고 그 다음에 시댁에 가서는 어머님이라고 그랬다고요. 그런데 내가 얼마나 선각자인지 한번 보라고요. 개척한지 15년이잖아요. 10년 전부터 내가 뭐라고 그랬느냐하면 ‘너는 가서 어머니라고 그러지 말고 친정에서는 어머니라고 하고 시댁에 가서는 엄마라고 그래라.’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하면 무조건 엄마 그러면 충격을 받아서 뇌졸중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그리지 말고 어느 날 기분이 가장 좋을 때 그래라 ‘어머니 처음에는 제가 시집을 올 때 어머니가 어떤 분일까 너무 걱정을 했는데 제가 시집을 와서 보니까 어머니가 저의 친정어머니 같아요.’ 그러면서 ‘제가 엄마라고 불러도 되요?’그러면서 부르는 것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시어머니는 며느리야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아무개야’ 하고 부른다고요. 그러더니 그리고 나서 몇 년을 지나가니까 어디를 심방을 갔는데 그 시어머니가 신세대에요. ‘아무개야’ 그러면서 며느리 이름을 부르는 거야. 심방 간 사람들이 너무 충격을 받은 거야. ‘아니 며느리를 그렇게 불러요?’ 그러니까 ‘아이고 잘 모르시네요. 요즘은 이렇게 불러줘야 자기 집처럼 안정감을 가지고 시집생활을 한답니다.’ 그것을 나는 십 년 전에 주장했던 사람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그 거리간격을 없애는 것이죠. 그러면서 부모님의 마음속으로 이렇게 들어가는 거예요. 안착하는 기간이 6개월 정도밖에 안 걸려요. 그래서 신뢰의 선입견이 이속에서 딱 쌓이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가는 거예요. 그리고 스킨십도 자주하는 거죠. 뭔가 이렇게 간절하고 절실한 이야기를 할 때는 ‘어머님’ 그러지 말고 가서 이렇게 손을 딱 붙들고 손도 이렇게 해주면서 ‘어머니…….’ 그게 뭐냐 하면 부모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딸들도 그렇게 해주는 딸이 없어요. 여러분도 딸이지만 엄마 앞에서 그렇게 무릎 꿇고 ‘엄마…….’ 하면서 ‘얼마나 힘들어?’ 하면서 여러분이 그렇게 해줘본 적 있어요? 없잖아요. 그런데 그 나이 먹으면 소외감을 느끼면서 그런 관계를 원하는 것이에요. 그 때 뭐냐 하면 심한 집안은 엄마가 그 아들보다 그 며느리를 더 좋아해요. 그러면서 여자로서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뭐냐 하면 그 통로 자체가 그 다음에 선교적인 영향력, 가정을 바로잡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을 흘려보낼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거예요. 이런 얘기는 내가 안 하려고 했는데 유산도 그 며느리한테 물려주고 죽어요. 그걸 노리고 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친친애애’ 라는 말이 있어요. 영어로 옮기면 out of sight out of mind 그렇게 중심을 주어서 아주 사랑하는 마음이 들도록 그래서 뭐냐 하면 친정에 가서 엄마하고는 목욕탕에 자주 가는데 시어머니하고는 잘 안가잖아요. 그래서 며느리 자신이 줄을 죽 긋는 거야. 안 넘어가려고 하는 거지요.
나는 내가 며느리를 얻어도 나는 하나 밖에 없지만 여럿 있다면 나는 유산도 없지만 만약에 있다면 며느리가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유산을 더 주고 죽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그 어머니와 함께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며느리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무슨 얘기인지 알아요? 그러면서 살아가야 해요.
결국은 그 밑에 흐르는 가닥은 뭐냐 하면 사랑이에요. 자! 예를 들어봅시다. 이제 동기간들도 만나게 되잖아요. 시동생들도 만나고, 시누이도 만나고 시누이는 또 가시잖아요. 아주 뛰어난 사람들 아니면 또 그런 많은 문제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힘닿는 한도 안에서 많이 베풀어요. 그게 뭐냐 하면 돈이나 이런 것들이 아니라 항상 그의 편이 되어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리고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해요. 그러면 뭐냐 하면 사람들이 마음과 마음이 흐르면서 그것을 타고 영향이 행사되는 것이죠.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경제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 경제생활도 규모 있게 잘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일정하게 남는다. 이것은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섬길 수 있는 것이라는 한도 내에서 동기간이 꼭 필요할 때 돕는 것이에요. 이런 것들을 희생적으로 잘 수행해가면서도 균형을 잃지 말아야 되요. 덜컹 보증을 선다는 것은 안 되고요. 그렇게 하면서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말하자면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야 해요. 그래서 자기 자신이 시부모님과 맺는 관계 자체를 행복해 하고 그러면서 갈 수 있어야 해요 그러면 어른들은 생각보다도 아주 단순해요. 그래서 그 분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남편도 굉장히 편안하고 안정적인 양가 속에서 그런 안정적이고 평안한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남편들의 경우에는 아내가 친정에서 당하는 어려운 일들을 남편에게 부탁할 때까지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그것은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못하는 거예요. 아내가 시집은 와있지만 아내의 마음속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하면 자식의 도리를 다 못하고 왔다는 그런 것, 또 부모가 특별히 어려울 경우에는 어려움 속에서 나만 빠져나왔다고 하는 이런 부채의식 같은 것이 항상 있는 것이에요. 그런 것을 형제들이 잘 이해하고 헤아리고 그러면서 사랑으로 그것들을 갈무리 해줄 수 있는 그런 아량과 섬세한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는 터프해서 끌리지만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여자들은 터프한 남자는 싫어해요. 그래봐야 만날 성깔이나 부리고 까칠하게 굴고 매만 맞는데 그런 터프한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래서 가정의 통계를 보면 남자가 남자답고 여자가 여자다운 가정이 행복한 게 아니라 남성이 여성화가 많이 된 가정이 행복한 것이에요. 그런 것들을 잘 조화를 이루어가고 그리고 남편과 아내인 나와 시어머니와 시댁식구들하고 있을 경우에는 남편에 대한 주도권을 너무 많이 행사하지 말고 내주어요. 그렇게 해서 남편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집에 가서는 다르더라도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이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사과와 감사에요. 뭔가 하다가보면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까 잘못할 때가 있잖아요. 그 때는 깨끗하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죄송한 마음으로 사과하는 훈련을 해야 되는 것이죠.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하직원을 거느려보고 상사도 섬겨보고 여기에 와서도 직원과 교역자가 있잖아요. 그런데 무슨 일을 잘못해서 개념 없이 처리를 해서 화가 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억누르고 만났을 때 상황을 다 이야기하잖아요. 그 때에 ‘잘못했습니다!’ 라고 먼저 이야기하면 50%정도는 감정이 꺾이는 것이에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중심에서……. 그러고 나서 며칠 있다가 ‘사실은 그게 사안이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사연이 뒤에 있어서 일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 자존심도 안상하고 그러는 거예요. 뭐냐 하면 ‘목사님이 모르셔서 그러는데요.’ 그렇게 시작을 하는 거예요. 진짜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내가 진짜 잘못 알았구나 생각되면 부끄러워도 그게 수긍이 되지만 대부분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면 변명으로 밖에는 안 들려요. 그래서 잘못할 때가 있으면 깨끗하게 사과를 해야 해요. 그것도 느리면 안 돼요. 빨리 그것도 건성으로 하면 안 돼요. 중심으로……. 그래서 ‘이러이러한 것은 그 당시에는 제가 몰랐는데 제가 정말 잘못한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이것 때문에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손해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깨끗하게 용서를 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것은 누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깨끗하게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용서를 비는 관계가 되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감사에요. Thank you! 고맙다는 표시에요. 그것을 확실하게 해야 해요. 그 대신 어떻게 해야되느냐하면 본인이 고맙다고 생각되는 것보다 두 배 정도로 많이 표시해야 해요. 반 정도 표시하기가 쉽지요. 그러지 말고 두 배 정도 더 많이 표시를 해야 해요.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살아가다보면 별의별 사건들을 다 만나잖아요. 그러면 이제 누군가를 도울 때는 좀 불쌍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도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내가 언젠가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직원 하나가 계속 허리가 아프대요. 그래서 내가 걱정을 했어요. 집을 멀리 떠나서 허리가 아픈데 어떻게 하나……. 그리고 이제 간사한테 얘기를 해서 그 때는 메모리폼이 지금은 흔한데 그 때는 흔하지 않던 때였어요. 메모리 매트하고 베개하고 사서 그것을 주문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한 이십만 원정도 되더라고요. ‘이것을 전해 주거라.’ 그랬더니 전해주었어요. Thank you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일주일을 기다렸는데요. 없어요. 이 주일쯤 지나서 불렀어요. ‘이리와라. 너 나한테 왜 고맙다는 말을 안 하냐?’ 그랬더니 ‘예!’ ‘다 알지요.’ 그것이 내가 섭섭할 정도였으면 불러다가 그런 얘기를 못하지요. 내가 그랬어요. ‘네가 내 곁에 왔을 때 신앙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네가 개념이 있게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내가 잘 가르쳐야 되는데 왜 그랬느냐?’ 이게 뭐냐 하면 마음에 워낙 고마운 마음이 많은 사람들이 그 표현을 잘 못해요. 훈련이 안되어 있어서 오히려 이런 게 훈련이 잘된 사람들은 조금만 고마워도 ‘아이 고마워라 이것을 어떻게 하나? 고마워요…….’ 그래서 내가 얘기했어요. ‘나는 너의 목회자이고 내가 네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아니까 상처도 안 받았고 충분히 이해를 한다. 그런데 시집가서 시아버지한테 그렇게 하면 그것으로 끝장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회복하기 굉장히 힘든 그러한 상처를 네가 입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요. 작은 것이라도 선물을 받으면 아주 고맙다고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해외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그래서 많이 도와주고 그러잖아요. 어떤 사람은 조그만 책 한권을 보내줘도 꼭 고맙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상당한 금액을 보내주었는데도 전혀 메아리가 없는 사람이 있어요. 대부분의 경우에 그 사람은 그 한번으로 끝나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부모님으로부터 만약에 그런 선물을 받았다든지 돈을 받았으면 여러분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오버해서 그래서 아주 고마움을 표시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혹시 그것이 음식이라면 입에 맞지 않아서 나중에 그것을 쓰레기통에 넣더라도 그 순간에는 최대한의 감사를 표현해야 해요. 그래서 충분히 고마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해가는 거예요. 이것이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그런 관계에요.
마지막으로 부부에 대해서 조금만 정리를 하고 오늘은 마치도록 하겠어요.
첫째는 뭐냐 하면 의사소통이 문제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결혼을 하고 제일 힘들었던 것이 저는 신중하고 논리적인 성격이에요. 우리 집사람은 창의력이 뛰어나고 즉흥적인 성격이에요. 그런데 분명히 우리 집사람이 안 좋은 얘기를 했는데 나는 굉장히 마음이 상해서 저녁내내 가슴이 아팠는데 그 다음날 일어나서 농담이었다고 그러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답답한 거예요. 농담으로 한 것을 막 논리를 가지고 깊이 고민을 하는 거니까. 제 성격이 막 잔소리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항상 직원들이나 교역자를 만나서 잔소리를 안 하고 핸드폰에다가 다 적어놔요. 일주일동안 다 적어놨다가 회의시간에 그것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에요.
결혼 때도 뭐가 이렇게 거슬리는 것을 다 적어놨어요. 적어놨다가 한 달에 한번 정도씩 이제 이야기할 기회를 가져요.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고는 대화가 잘 안돼서 이제 둘이 불을 끄고 누워서 맨 처음으로 1번. 이것을 잘못했어! 그러면 완전히 법정에 세우는 것 같으니까 자기도 뭐 신학공부를 나보다 먼저하고 그랬는데 자존심이 있으니까 그러면 안 될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머릿속에다 전부 외워놓고 ‘여보 사람이 살면서 서로를 이렇게 존중해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 그러면 이제 자기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 ‘그럼 그렇지…….’ ‘여보, 그런데 지난번에 교회학교 교사들 왔을 때 당신이 나한테 반말했었잖아?’ ‘내가 언제?’ 그러는 거죠. 그러면 이제 ‘그랬었거든……. 그런데 아내는 그러면 안 돼’ 그러면서 왜 아내가 그러면 안 되는지를 쭉 설명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성격이 소리를 지를 때는 별로 심각할 때가 아니에요. 설교시간을 빼 놓고는……. 이런 대화를 하다가 진짜 중요한 일이 있으면 나는 톤이 계속 낮아져요. 그래서 우리 제자들은 여기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내가 톤이 낮아지면 안 들려서 책상을 끌고 계속 앞으로 나왔다고요. 심지어는 면담하다가 ‘목사님 안 들리는데 조금 크게 얘기해주시면 안 돼요.’ 그러면 천천히 얘기를 해요. 그렇게 말이 많던 자매가 조용히 듣는 거예요. 아 그럼 확실히 신앙이 있는 사람은 틀리구나!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여태까지 오랫동안 얘기가 안 되었으니까 1번, 2번, 3번 하면서 그런데 1번, 2번 하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요. 그래서 물 흘러가듯이 지금도 번호를 안 매기면서 쭉 왔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번호가 다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여보 그런 거야……. 그러니까 물론 나도 부족하지만 우리가 잘해야지……. 언젠가 이해할 수 있겠지…….’ ‘드르렁 커’ 언제 잠들었는지 아무도 몰라 그러면 그렇지 그러면서 머리를 홱 던지고 배신감을 느끼면서……. 지금 내가 짐작해보면 10분을 못 넘겼을 것 같아요. 그 나머지 20분은 어둠속에서 혼자 계속 떠든 거야. 그러면 그것을 적어놨다가 다음에 그것까지 또 해야지…….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의사소통의 기술이에요. 그래서 고양이하고 개하고 만나면 만날 싸우거든요. 우리도 어렸을 때 길러봤는데 왜 그러느냐하면 개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딱 들어요. 그런데 고양이는 화가 났을 때 꼬리를 들거든요. 고양이가 딱 보니까 이 녀석은 만날 자기만 보면 화를 내는 거야. 개는 무섭거나 굉장히 공격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에 꼬리를 내리는 거예요. 그런데 고양이는 기분이 좋을 때 딱 내리는 거예요. 개가 볼 때 고양이가 꼬리를 딱 내리는 것을 보니까 저놈은 항상 꼬리를 내리고 유감이 많다는 것이지.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하면 아내와 남편이 대화를 할 때에 서로를 가르치듯이 이렇게 하면 안 돼요. 더군다나 우리 때하고는 틀려요. 그러니까 자매도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스스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게끔 그렇게 해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에요. 성격이나 모든 것이 아무리 차이가 나도 일단 대화가 되면 그리고 그 대화가 유익한 결과를 얻으면 제일 힘든 게 뭐냐 하면 대화를 끝냈는데 이 인간하고는 이야기가 안 되는구나 이럴 때 절망이 확 밀려온다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 통로는 없애지를 말아야 되는 거예요. 아! 역시 이 사람은 그래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해서 대화가 되는 그 통로를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 기준도 그래요. 뭐냐 하면 참 착한부부들이 있는데 어느 날 둘이서 나를 찾아오는 거예요. 둘이 서로 견해가 엇갈리는데 목사님한테 가서 얘기를 들어보자고 왔다는 것이에요. 그것은 뭐냐 하면 최소한 부부가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이러하다면 우리는 거기에 따를 생각이 되어있다. 이런 정도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으면 그러면 대화의 통로가 아주 막히진 않은 것이에요. 대개 대화가 그렇게 안 되고 통로가 뭉개진 사람들은 누구냐 하면 둘 다 혹은 둘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밟아버리는 사람들이에요. 결혼생활에 있어서 상식으로 살려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아내의 위치가 뭐냐?’고 물어보면 그러면 ‘성경적으로 보자.’ 그렇게 나가야되는데 ‘너는 네 자리에 있냐?’ 그러면서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 대화가 안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질문을 던질 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나가라는 것이죠.
내가 주례를 서주었거든요. 3년 반을 연애를 했대요. 그런데 결혼한 지 석 달이 되었는데 해괴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형제가 자매를 팼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자매가 와서 울면서 상담을 하는데 3년 6개월을 사귀면서 전혀 그런 것을 못 봤는데 자기를 때리더라고 그래요. 나는 그것은 또 못 참는 성격이거든요. 일단 때리면 어떻게 하라고 그랬지요? 집어넣고 그 다음에 생각을 하자고 그랬지요. ‘그런 나쁜 놈이 어디 있느냐고……. 어떤 놈의 자식이 그 따위 짓을 하느냐고 알았어! 너는 가만히 있어. 혼을 내줄테니까…….’ 그래가지고 이제 당장 잡아오라고 그래가지고 일주일 만에 형제가 잡혀왔어요. ‘야, 너 결혼식하고 열린 교회에서 그렇게 오래 신앙생활을 하고 그랬는데 자매를 때렸다는데 그것이 사실이야?’ ‘네.’ 내가 혼을 냈어요. 폭풍우가 다 지나고 난 다음에 ‘그런데요 목사님! 물론 제가 백번 잘못했는데요. 그런데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다 끝나고 나서 속으로 뭐라고 그랬느냐하면 ‘맞을 짓을 했네!…….’ 이 세상에는 예와 아니요로 끝나기 어려운 일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에요.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데 피고가 묻는 말에 하도 말이 많으니까 재판장이 신경질을 내면서 ‘피고는 묻는 말에 예와 아니요로 대답을 하시오.’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피고가 ‘재판장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왜 못합니까?’ ‘그러면 재판장님은 제가 묻는 말에 예와 아니요로 할 수 있습니까?’ ‘그럼 왜 못해.’ 그럼 제가 묻겠는데요. ‘요즘도 부인을 때리세요?’ ‘예’라고 그러면 현재도 패고 있는 것이고, ‘아니요’ 그러면 옛날에는 팬 것이잖아요. 그것을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 이거야. 다 사연이 있는 것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결혼하고 석 달 동안 아침을 한 번도 못 먹었데요. 그래서 ‘아니 어떻게 그러느냐? 여자들은 아침에 남편에게 밥을 해서 먹여 보내면 뿌듯하다는데 왜 그러느냐?’ 자기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그냥 자취방에서 자듯이 잔다는 거예요. ‘여보 나 직장 가야되는데 아침 좀 해주지.’ 그러니까 ‘아이 몰라 귀찮아’ 그러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거예요. 또 ‘여보(그래도 여보라는 명칭은 써먹는 모양이에요) 나 밥 먹고 가고 싶어 밥 좀 차려줘’ 그러니까 ‘그냥 라면 끊여먹고 가든지…….’ 그리고 자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아침마다 라면을 일주일인가 끊여먹고 다녔는데 아주 화가 나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러고 나서 들어가서 줘 패면서 ‘왜 밥을 안 하니?’ 그랬겠어요? 그게 아니라 ‘결혼을 했는데 왜 밥도 안 해주느냐?’ 그러니까 ‘너는 손이 없느냐’ 그러면서 ‘말을 다했느냐?’ ‘너 신혼여행가서 이렇게 했지? 내가 그 때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아?’ 그러면서 티격태격하다가 손이 올라간 거예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가장 예의가 올바르게 서야 되는 거예요. 예의라고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의 존재로 인해서 남편도 남이고 다른 사람이야 자아는 아니잖아요.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불편과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그런 의식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 뿐만이 아니죠. 경제생활에 있어서도 가당치 않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형제가 돈 통을 쥐고 안주는 거예요. 또 자매들이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거예요. 제가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대학원을 다닐 때인데 형님, 형님 하는 전도사에요. 결혼했으니까 집에 집들이를 오라고 그래가지고 갔어요. 밥을 먹는데 ‘야 콜라 좀 먹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내가 가서 사가지고 올게’ 그러면서 막 뛰어가서 사가지고 오면서 코카콜라 두통을 사가지고 온 것이에요. 그러더니 콜라 통을 가지고 밥을 먹는 자리에 오더니 책상에 가더니 수첩을 꺼내서 거기에다가 콜라 두통 1900원 ‘김전도사 그게 뭐냐?’ 그러니까 ‘가계부야’ 그래서 ‘아니 결혼을 했는데 가계부를 왜 네가 적느냐’ 그러니까 ‘아내는 직장을 다니고 늘 언니들한테 얹혀살아서 이런 것을 못한다고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십몇 년을 살았기 때문에 이것을 다 내가 가정생활을 해서 내가 잘해.’ 그래요. ‘야야 그러면 안 된다. 영영 마른다. 네가 그런 것을 하고 있으면 지구는 누가 지키느냐 그것은 자매한테 넘겨줘라.’ 그러고 갔는데 이 친구에게 그것이 굉장히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부인을 불러서 ‘여보 아무래도 이것을 내가 하는 것은 선지자의 후예로서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러면서 ‘당신이 맡아서 해’ 그러면서 주었대요. 자매가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내가 어떻게 하느냐고 나는 못한다고 막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살림이 다 펑크 난다고 그런대요. ‘그래도 해봐’ 두 달이 지나니까 다 해요. 똑똑한 사람들인데 왜 못하겠어요. 훌륭하게 해내는 거예요.
무슨 얘기냐 하면 가보면 절대 안 그럴 것 같은데 결혼해서 이것을 안 내놓는 거야 여러분 만약에 지금 그런 것을 하고 있으면 지금은 문제가 별로 안 돼요. 수입도 얼마 안 되니까 그런데 원리가 잘못 된 거예요. 넘겨줘야 해요. 그러면 ‘자기 개인적으로 생활하는데…….’ 넘겨줘야 해요. ‘아내가 씀씀이가 헤픈데…….’ 아이 써봐야 자기가 어려움을 당하는 거지 자기가 써서 자기가 어려움을 당해봐야지만 경제관념이 생기는 거니까 실습 비 두 달 치면 되니까 다 넘겨줘요. 그래서 아내가 경제의 규모를 꾸릴 줄 아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아내의 경제적인 주권에 대해서 깊이 동의하면서 아내가 도시락 싸가지고 가라고 그러면 ‘네’ 하고 가고 ‘요번에 용돈을 줄여요.’ 그러면 ‘네’ 하고 가고 ‘요즘에는 이만큼만 써야 해요.’ 그러면 네하고 순종하면서……. 물론 사이드로 수입이 있어서 가끔 갖다가 줄 수 있을 정도면 더 좋겠지요. 그렇지만 어쨌든 가정의 경제에 있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서 아내가 책임을 지고 가정의 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참고로 아내들에게 얘기하는 것인데 남편을 바보로 만들면 안 돼요. 그게 뭐냐 하면 그게 용돈이에요. 용돈을 많이 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 가있든지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끔 남편을 챙겨줘야 해요. 집안에서 반찬은 제대로 된 것을 못 사먹고 옷을 뚫어진 것을 입어도 남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미지를 구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옛날의 여자들이 남편이 외출을 하면 세 가지를 챙겨주는 게 있는데 지팡이, 도장, 돈 한 냥, 이 세 가지는 사회생활에 기본이라고 본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얘기하는 게 뭐냐 하면 항상 남편의 호주머니에 쓰던지 안 쓰던지 일정액의 돈이 있어서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품위를 손상당하지 않을 정도로 아내가 그것을 배려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신혼생활인데 여러분들이 만약에 아내 모르게 나름대로 돈을 따로 해야 된다든지 그래서 이런데다가 감추고 넥타이 뒤에다가 감추고 그 다음에 책갈피 어디에 넣어놨는데 못 찾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웃지만 사실은 이런 것들 때문에 남자들이 고통 받는 것을 참 많이 보았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이 경제생활 자체를 아내가 책임을 지고 잘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해요. 장기적인 플랜에 대해서는 내가 지금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단기적으로 그렇게 규모 있게 살아가야 되는 것이죠.
한번은 교역자 아내들을 모아놓고 우리 집사람이 수련회를 같이 갔는데 뭘 하느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경제생활에 대해서 한번 강의를 좀 해줘라 그랬더니 책을 일곱, 여덟 권씩 읽고 수련회를 가서 sharing을 했는데 어느 교역자의 아내가 이야기를 하는데 사례금을 타면 일단 50%를 교회에 낸대요. 그것은 훌륭한 것이죠. 그렇게 되다 보니까 가정의 경제가 비정상적이 되는 것이에요. 그런 것들이 자기는 불편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이 모든 것을 균형 있게 해갈 수 있는 그러한 말하자면 관계들을 해나갈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야한다는 것이에요.
부부가 이렇게 살다보면 목회하고 비슷해서 서로에 대해서 에너지가 떨어질 때가 있어요. 사랑이 에너지거든요. 물론 이제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만 둘이 에너지가 떨어질 때가 있어요. 우리는 결혼을 하고나서 지금도 굉장히 후회가 되고 한편으로는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너무 너무 어려움 속에서 결혼을 시작했어요. 결혼날짜를 잡았을 때 제 수중에 딱 300원이 있었어요.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그러니까 가정생활이 굉장히 어렵고 그래서 그 때에 가계부를 우리 집사람이 가지고 있는데 하루지출 금액이 100원, 200원, 300원 그랬어요. 직장을 갈 때 나는 요만한 가방에다가 이쪽에는 도시락, 이쪽에는 성경, 그렇게 넣고 500원 들고 출근을 했어요. 굉장히 어려웠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는 많이 지났잖아요. 여러분들도 경제적으로 어려움들이 있겠지만 나는 너무 그렇게 살지 말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래서 알뜰하고 검소하게 그렇게 살되 가치 자체를 사람답게 사는데다가 가치를 두어요. 그게 뭐냐 하면 3년 만에 마련할 집을 4년, 5년 만에 마련할 집을 6년이나 7년 정도로 이렇게 1,2년을 늦춘 다고해서 삶 자체에 무슨 커다란 구김살이 생기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목표를 약간 늦춰 잡더라도 사람의 할 도리를 하면서 부부간에 이 모든 의사소통과 교제의 관계를 올바르게 가지면서 균형적으로 가정생활을 이루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좋은 것이에요.
예를 들자면 나이 30대 중반에 간신히 32평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집에서는 구두쇠로 낙인찍히고, 친구들에게는 빈대취급을 받고, 이런 식으로 해서 한 2년 정도 남보다 집을 빨리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의 질이 남다르게 좋아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내가 항상 결혼하는 부부들에게 충고하는 게 그것이에요. 그렇게 산다고 해서 그것이 꼭 먼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관계에요. 관계……. 그래서 헤어질 수 없는 시부모님과의 관계, 그럼 생각해봐요. 집을 일 년쯤 늦게 사도 시어머니와 그런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시동생들이나 아니면 시댁의 식구들과의 좋은 관계를 가지고, 처가와 그런 관계를 가지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 관계 자체가 행복이에요. 그렇지만 집이나 재산 그 자체가 행복은 아니라는 것이에요. 절대 이기적인 삶을 살지 말고 흘러가는 삶을 살라는 것이에요. 다만 젊었을 때는 흘러갈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물이 고이지 않았으니까 항상 그것을 유의하면서 더 많이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 더 충분히 정신적인 자원, 영적인 자원, 물질적인 자원, 사회적인 자원, 이런 것들을 마련하고 준비해야 되는 시기라고 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뭐냐 하면 꼭 그러지 말고 규모 있게 사용하면서 일 년에 한 번씩 1박2일이라도 좋으니까 여행도 가고, 대화도 나누고, 그리고 남편이 혹시라도 좋은데 가서 저녁이라도 사겠다고 하면……. 나는 수시로 좌절당했거든요. 그렇게 해줄 여유도 별로 없었지만 우리 집사람이 워낙 경제생활에 균형이 잡힌 사람이었고 독립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학에 다니고 그럴 때에도 통장에 항상 몇 십만 원씩 (그 때 몇 십만 원이면 굉장히 큰돈이었어요) 항상 넣어두고 집에 절대 손을 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면서 다녔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뭐 하러 잠깐 가서 하룻밤 밥을 먹고 자고 오는데 그런 돈을 쓰느냐고 그것을 집의 살림에 보태면 얼마나 좋은데……. 그런 능력도 없었지만 어쨌든 많이 좌절을 당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러지 말고 그냥 그렇게 사세요. 그래서 항상 마음속으로 우리가 가난하고 넉넉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관계가 소중하고 그렇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끔 그렇게 여러분들이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이 모든 것들의 중심이 결국은 뭐냐 하면 정신의 연합인데 그래서 뭐냐 하면 정신의 연합이라는 게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리워지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이 되고 하는 것들이죠. 이런 연합을 잘 이루어가야 하는데 이런 중심에 뭐가 있느냐하면 결국은 은혜의 생활이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보면 결혼하기 전에는 기도하고 싶으면 교회에 오고, 예배드리고 싶으면 교회오고, 기도원가고 싶으면 기도원을 가고, 금식하고 싶으면 금식하고, 결혼하고 나서 제일 불편한 게 뭐냐 하면 이런 것을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에요. 모두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섞여있어서 그래서 자기의 의무를 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 테두리를 잘 정하고 그 안에서 은혜생활을 잘 해야 되는 것이에요. 거기에서 이길 수 있는 힘들이 계속 공급되는 것이에요.
보세요. 자 예를 들어봅시다. 아까 파문이야기를 했지만 시어머니가 정말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데 거기서 ‘우리 어머니하고는 관계가 안 돼’ 그러면서 끊어버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런 경험들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 저희 아버님이 이제는 작고하셨는데 아버님이 저한테 그런 성격들을 모험, 도전, 호기심, 이런 성격을 굉장히 많이 물려주셨어요. 이 분이 65세가 되셨는데 다른 분들 같으면 노인네 아니에요. 그런데 어느 날 오시더니 ‘얘야 내가 부르는 대로 수첩에 받아 적어라.’ ‘뭐에요?’ 여관, 역, 경찰서, 병원, 화장실, 백화점, 쭉 생활명사를 부르는 것이에요. 이 양반이 이것을 가지고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양반이 혼자 중국을 가신 것이에요. 그 때부터 보따리 장사의 길을 트신 것이에요. 그래가지고 65세가 넘으셨는데 보따리장사를 계속 하시는 거예요. 뭐 한 달이면 4번을 가신다나 6번을 가신다나 그러면서 다니셔요. 딴사람들 같으면 다 편안하게 계실 나이잖아요. 사업을 하셔가지고 1억을 날리셨어요. 1억을……. 그러니까 목사가 돈이 어디 있겠어요. 있는 것을 다 털고 심지어 현금서비스까지 내어서 그동안 모아놨든 것 다 털어서 해드렸어요. 아무튼 들어간 돈이 1억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마음이 드느냐하면 처음에는 막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왜 우리 아버님은 저렇게 사셔서 자식들을 힘들게 할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떤 생각이 드느냐하면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에요. 그래 참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날 먼저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부모로부터 받은 많은 상처를 용서하게 해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알게 해주시더니 은혜에 있어서는 내가 부모가 되어서, 신앙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우리 아버지를 섬기게 하셨으니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을 하니까 은혜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부부들이 굉장히 속상하고 좌절해야 될 시기에 웃으면서 보냈어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에게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별명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미워할 수 없는 당신’, 그게 뭐냐 하면 너무 순수하시고 단순하시고 자식들을 사랑하시는데 사고를 계속 치시지만 미워할 수 없는 당신, 그러면서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왔어요.
그래서 내가 두서없이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의 절반쯤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얘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래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해요. 은혜는 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힘이에요. 그래서 시댁에, 친정에, 처가에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 앞에 그 영혼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하라고 그러시나보다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기회로 삼아요. 그러면 그 은혜가 놀랍게 들어와서……. 보세요. 아무도 우리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예수사랑의 빛이 나타날 기회가 없어요. 원하지 않으니까……. 사실은 사람들이 필요에 처했을 때 주님의 빛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기회가 아니겠어요? 여러분들이 그럴 때에 충분히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요.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하면 그 교회에 와서 교사나 구역장을 할 때에는 사람들을 영혼으로 보면서 모든 것을 용서해주고 싶어 하는데 가족들은 그렇게 안대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시어머니를 구역식구처럼 생각해요. 그리고 처갓집 식구들을 같은 순에 있는 순원이라고 생각하면 용납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죠. 그러면서 어려움이 오면 그것이 기회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래서 올바르게 잘살려고 하면 결혼하고 걸어가는 길이 눈물의 골짜기에요. 꼭 고난을 많이 당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나 혼자 있으면 내 부족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데 모자라는 가족들을 통해서 내 부족을 보게 하시는 거예요.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깊이 돌이켜서 그래서 다시 순종하며 이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에요. 그러면서 매일매일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죠.
지금도 우리교회에 나와요. 그래서 내가 만나면 항상 예뻐하는 자매가 잇는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한 1년 가까이 병수발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웬만한 며느리 같았으면 말은 안하지만 얼마나 시원했겠어요. 그런데 돌아가셨는데 거기에 갔는데 그렇게 슬프게 우는 거예요. 그래서 ‘울지 마라. 너는 네 할 일을 다 했다. 애, 많이 썼다.’ ‘아니에요 목사님!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못했어요. 일 년만 더 사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게 참다운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사랑으로 살아갈 때 자기 자신의 영혼도 맑고 깨끗해지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런 힘이 우리 자신의 자력으로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결혼하면서 기도생활에 게을러지고 있다면 기대하세요. 곧 기도제목이 나옵니다. 곧 기도제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기도제목을 주셔요. 그런데 그러지 말고 순순히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하나님이 결혼을 하면 기도제목을 주실 기회가 아주 많아요. 여러분같이 신혼에……. 두 집이 있었는데 아기를 갖는 것 때문에 여섯 번 밤중에 심방을 간적이 있어요. 여섯 번, 한집은 다섯 번, ‘목사님 애기를 가졌어요. 기도해주세요.’ ‘유산하려고해요. 기도해주세요.’ ‘유산했대요. 기도해주세요.’ ‘알고 보니까 임신을 안했었데요. 기도해주세요.’ 하나님이 기도제목을 주실 기회는 독신으로 살 때보다 무궁무진하게 많아요. 그러니까 곧 주실 거예요. 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해달라는 시간보다 1시간을 더 해주었거든요. 9시 반인데 한두 사람만 질문을 받아보지요.
(질문 1)
좋아하실 질문 같은데 부부생활(성생활)에 성경적인 원리는 무엇입니까?
(답)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우리는 오늘날의 분위기는 어떤 분위기일까요. 부부가 결혼을 한 것 자체가 성에 대한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고 도덕적인 허용이 이루어지잖아요. 그래서 이제 성생활(이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 주어졌잖아요.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탐닉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생활의 용도를 이렇게 세 가지로 얘기를 했어요.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성생활의 일차적인 용도는 자녀의 생산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성례전적인 연합, 성례전적인 연합이라는 게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아직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얼마 안 되었어도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있겠지요. 그게 뭐냐 하면 부부사이에 오해나 의심이나 무엇인가 정신적인 연합이 깨뜨려졌을 때 그 때에 그 대화하고 오해를 풀고 그렇게 하면서 그 다음에 성적인 연합이 이루어질 때 ‘아 우리가 정말 하나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을 어려운 말로 성례전적인 연합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세 번째 용도가 뭐냐 하면 정욕으로부터의 예방이에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요. 소극적인 용도지요. 그래서 적극적인 용도로는 자녀의 생산, 소극적인 용도로는 정욕을 해소함으로써 더 큰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 그 다음에 그 중간에 있는 것이 성례전적인 연합으로 본 것이에요.
래서 뭐냐 하면 오늘날의 가지고 있는 이런 성에 대한 모럴들은 성에 대한 탐닉들을 끌고 도덕적으로 허용된 부부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은 사실 성경적인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성생활을 억제하라는 뜻이 아니라 용도에 맞게끔 그래서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이 아닌, 그러면 무슨 얘기냐 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특히 약간 금욕주의적인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타락의 경험도 많고 하니까 강력하게 규탄했지요. 그래서 뭐냐 하면 만약에 당신이 성 자체에 대해서 탐닉해서 아내와 결혼을 하고 그렇게 생활을 한다면 나는 감히 말하건대 당신은 아내와 사는 것이 아니라 창부와 사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에 대한 정욕적인 위험을 경고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외부에서 어떤 성적인 문화에서 많은 자극을 받아서 온 것을 가정에서 쏟아놓으려고 할 때에 그 때 그 사람은 가정안에서의 그것만으로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무슨 얘기냐 하면 결혼을 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영화 계열이 세 가지 정도 있는데 호러, 멜로, 그 다음에 포르노에요. 제일 싫은 것이 멜로에요. 별로 그렇게 장엄한 이유도 없는데 찔찔 짜면서 왜 끊어질 듯 질질 이어지는 것 있잖아요. 제일 싫어요. 그런 것들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해야 해요. 그렇게 하면서 육체적인 연합 자체가 정신의 연합의 수단이라는 것을 생각해서 항상 영혼과 정신이 먼저 가고 육체가 거기에 조화를 이루는 그런 삶을 선택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성생활 속에서 어떤 기술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기쁨을 느낄까? 하는 것 보다는 물론 그런 것들도 포함이 되겠지만 아내와의 정신적인 연합을 이루는데 방해하는 요소들을 거기서 잘 제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죠. 어느 부부가 이혼을 했어요. 그런데 뭐냐 하면 밤에 성생활을 하는데 남편은 불을 환하게 켜놓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아내는 그때마다 엄청나게 수치심을 느끼는 거예요. 이 둘은 결국은 조화를 이루지 못해요. 그런데 남성 같은 경우에 너무 심하게 조건에 제약을 받으면 임포가 되거든요. 임포텐츠가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서 결혼의 부조화가 생기죠. 그 다음에 나중에 여러 가지 다른 사건도 생기고 해가지고 겹치면서 결국은 이렇게 소통이 안돼서 이혼하는 부부까지 보았어요. 그러니까 항상 그런 것들을 정신적인 연합이 먼저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에요.
(질문 2)
두 번째 질문인데요. 그 경제적인 부분과 기질적인 병이 있어서 자녀 출산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무자녀로 살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문제 가운데서도 자녀를 낳아야하는가요? 두렵습니다. 자녀가 저와 같은 병으로 고생할까 걱정됩니다.
(답)이제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해야 돼요. 뭐냐 하면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행복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먼저 보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 모든 인생에 있어서 주관자이시고 우주와 세상을 움직이시는 최종적인 통치자라는 것을 생각해봐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기회가 되면 내가 한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자살은 하면 안 되거든요. 여러 가지 면에서 자살은 하면 안 되는데 결국은 인간이 뭐냐 하면 그렇게 자살을 택하는 게 뭐냐 하면 인간의 본분의 위치를 떠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겪음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에요. 때로는 그것이 기쁨이 될 수도 있고, 슬픈 일이 될 수도 있고, 분노하게 하는 일일수도 있고, 혹은 시련과 고난일수도 있고, 궁극적으로 죽음일 수도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한 몸으로 겪으면서 그 겪음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회로 삼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생활이에요.
러면 예를 들자면 나는 그 질문을 한 분이 어떤 심각한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예를 들자면 이런 상태에서 아이를 가지면 이 아이가 100% 결함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든지 아니면 이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서 죽는다든지 이러한 경우라면 그것은 누가 감히 그 사람에게 뭐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에요. 그것은 기독교 윤리에서도 그것은 쉽게 판단내리기 어려운 부분이거든요. 그렇지만 좀 더 대국적인 견지에서 생각해보면 아이를 가져서 그 아이를 낳는다 할 때에 사실은 결혼의 목적이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아이를 낳는다고 할 때 그 아이가 어떤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느냐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라고 보고요. 그러한 결함을 가지고 아이가 태어난다고 할 때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이며 또 남아있는 사람은 그 아이의 인생으로 말미암아 어떤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인가? 이런 것이 많이 걱정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것도 주님께 속하는 것이라고 보고 우리 주위에는 오히려 정상적이지 못한 자녀를 낳았기 때문에 그 자녀를 기르면서 고생을 많이 하고 망가지는 가정도 있지만 신앙으로 살고 극복했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다운 영혼을 갖게 되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한국에서 거의 버리는, 완전히 망가진 어린아이인데 화재를 입어서 그래서 완전히 귀도 안 들리고 앞도 못보고 온몸이 완전히 화상을 입어가지고 도저히 볼 수 없는 다리도 하나, 팔도 하나 잘라진 이런 아이를 어느 독일인 부부가 입양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 아이가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그러면서 그 부부가 쓴 글을 읽어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는데 이 아이는 그들의 인생에 오히려 복덩이라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이 아이를 놓고 입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자기부모가 일주일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서 입양을 했는데 이 아이를 버린 부모에게는 이 아이가 재앙덩어리였는데 입양을 해간 독일인 부부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고 그 결함이 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가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소중한 보배덩어리였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문제는 이러한 종합적인 판단 속에서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많이 기도하고 의지하면 주님께서도 그 문제에 대해서 좋은 길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경제적인 문제가 어려워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반성경적인 생각이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아이의 식물은 하나님이 공급해주셔요. 그리고 그 아이의 인생 전체에 대한 주권을 부모인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물론 살면서 계획이 있어서 아이를 갖는 것을 조금 연기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그래서 내가 칠년 동안 아이를 못 낳은 것이에요. 처음 일 년 동안을 피임을 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아이가 안 들어서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칠년이 지나간 것이에요. 첫아이를 유산했거든요. 그 아이가 지금 살아있었으면 스물아홉이 되요. 결혼하고 얼마 안 있다가 아이를 가졌으니까 유산하고 나서 그 다음에 피임을 하고 나서 아이가 안 들어선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칠 년 만에 아들을 낳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들이 일곱 살 때 무엇을 해달라고 그래서 안 해주면 만날 문고리를 붙들고 ‘에이 씨 칠년 만에 낳은 아들인데……. 그것도 안 해주고…….’
(질문 3)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강의내용하고도 비슷한데요. 서로 간에 너무나도 다른 성격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답)성격이 차이가 나면 다투는데 성격이 똑같으면 안 살아요. 그게 답이에요. 이것은 내가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짝을 지어주실 때에 결혼을 하고나서 우리는 처음 만날 때부터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귀어보면 정말 안 맞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안 맞고 갈등이 있는 사람이 짝이에요. 성경적으로 보면 내가 ‘너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니’ 그러셨잖아요. ‘에제르네게도’ 는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니’ 라고 그러는데 ‘에제르’라는 말 자체가 응원군이라는 말인데 그 부대 안에 같이 있는 부대가 아니라 멀리 있다가 전쟁이 기울어지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응원군이에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결혼의 원리가 이렇게 남자가 이렇게 생겼는데 여자는 이렇게 생겨서 이렇게 보완의 관계를 이루는 그러한 관계로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똑같은 사랑을 하면 연애할 때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울 것이에요. ‘쓰자!’ ‘그래 내가 빚을 내올게 화끈하게 쓰자’ ‘놀자’ ‘그럼 일이 문제야 놀다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데 가자’ 이런 식으로 하니까 연애는 막 불이 붙는 것이죠. 연애를 막 갈등 없이 뜨겁게 한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나서 아주 순식간에 갈라지는 이유가 그것이에요. 결혼생활은 그렇게 하면 안 되거든요. 남자가 ‘야 오늘 기분이다 내가 한턱 쓸게’ 뒤통수를 툭 치면 안 돼요. 손을 딱 잡고 ‘여보 정신 차려!’ 이마를 짚으면서 ‘뜨거워? 밥 다해놨어 이것을 먹으면 되지 왜 거기를 가서 몇 만원을 써? 그 돈이 있으면 하이타이가 몇 개인데? 여보 정신 차려!’ 김이 픽하고 빠지는 거죠. 밤에 잘 때까지 말도 안 해요. ‘에이 베짱이 안 맞아서……. 손뼉이 맞아야지 뭐가 되지…….아이 사람이 말이지…….’ 그런데 그래서 안 무너지고 가정이 지탱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가는 거예요.
내 친구하나가 있었는데 자매하고 백화점을 같이 못 간대요. 왜 그러느냐하면 계속 사달라고 그런대요. 경제권을 이 형제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왜 못 주느냐하면 주면 다 쓴다는 거예요. 나는 그것도 그렇게 생각을 안 하거든요. 써봐야 되요. 아주 한 달 생활비를 날려가지고 끼니때가 없어서 쩔쩔매보면 책임감이 생기는데 형제가 그것을 쥐고 있으니까 조르면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생각이 바뀌어서 어떻게 돈을 더 타내서 쓸까를 생각하는 거예요.
결혼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데 이십대 때에는 아내가 백화점을 가자고 그러면 제일 무서워한대요. 삼십대에는 무엇을 제일 무서워할 것 같아요? 이혼하자는 거래요. 사십대 때에는 샤워소리가 들릴 때 무섭대요. 오십대 때에는 뭐가 무서워요? 곰국을 끊일 때가 제일 무섭대요. 곰국을 한 솥 끊이는 것은 이것이나 퍼먹고 있어라. 나는 어디를 갔다 오겠다는 거래요. 육십 대 때에는 뭐겠어요? 여행가자고 그럴 때래요. 놓고 오니까……. 그 다음에 칠십대 때에는 이사 가자고 그럴 때래요. 못 찾아 가니까 그래서 그런 상황이 도래 안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하면 젊은 날에 잘나갈 때 보험을 잘 들어놔요. 그 보험이 뭐냐 하면 오늘같이 이렇게 피곤하게 강의가 마친 날 형제는 좀 늦게 자더라도 눕혀놓고 발마사지를 해주는 거예요. 천천히 오일을 바르면서……. 나도 지금 가서 해야 돼요. 요새 우리 집사람이 재미 붙었어요. 소파에 탁 누워서 ‘여보’ 사역한다고 늘 바쁘니까 그것이라도 잘 해줘야지요. 그래서 이제 제법 실력이 붙었어요. 그래서 발마사지를 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하면 돼지 족발을 생각하면 되요. 아니 진짜야 왜 웃어요. 돼지 족발이 있을 때 칼로 자르는 부분이 있잖아요. 발톱이 있으면 칼이 들어가서 잘라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것을 따라서 거기가 누르는 지점이에요. 칼이 안 들어가는 데를 누르면 안 돼요. 아내의 발을 딱 보고 돼지 족발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칼을 댈 지점에다가 첫 번째 두 번째 손가락을 누르면 그것이 혈이에요. 시원하게 목덜미까지 쫙 뻗쳐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모두 가서 숙제에요. 다음에 만나면 내가 또 다른 숙제를 주겠지만 오늘은 족발을 숙제로 줄 테니까 가서 안 쓰고 버릴 것 같은 로션이 제일 좋아요. 콩기름을 바르지 말고, 새우젓도 안 돼요. 그래서 잘 들어! 이 사람들아……. 뜨거운 수건을 뜨겁게 아니면 물을 살짝 묻혀서 비닐에 넣어서 렌지에 살짝 2분만 돌리고 뜨끈뜨끈해진 수건 하나는 가져오고 하나는 또 거기에 넣고 그리고 와서 발을 깨끗이 닦아서 막 뜨거운 수건으로 감싼 다음에 눌러서 쭉 풀어주는 거예요. 그러면 한 삼십분 정도 하면 이제 잠자기 시작해요. 언제든지 그렇게 봉사할 수 있게끔 그게 생활화되어 있어야 해요. 그게 보험이에요. 그렇게 잘해서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곰국을 안 끊이고, 이사를 가지 않게……. 아마 아직은 가슴에 다가오지 않을 거예요. 좀 더 살아봐야지…….
그러면 이상으로 모든 질문을 마치고요. 마무리는 목사님께서 마무리 해주시고 모든 순서를 마치겠습니다.
이제 뭐 족발까지 먹었는데 끝내야지요. 그래서 뭐든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쓰는 것은 사람이에요. 사랑이 있으면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혜롭게 여러분들이 해서 그래서 가정 속에서 행복을 이루어가고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