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부르심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
I. 본문 해설
열린교회 이제껏 계속 되어온 교회학교 이야기를 해달라고 그렇게 저한테 부탁을 했는데 그런데 제목은 교사와 부르심이라는 제목으로 그렇게 잡았습니다. 저희 교회가 93년도 12월에 개척했을 때에는 교인이 7명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7명 중에는 아기를 가진 교인이 없었어요. 결혼 안했거나 이혼했거나 아니면 뭐 결혼은 방금 해서 아직 아이를 낳을 때가 안됐거나 이런 사람들이 전부다 모여 있었고 우리 집의 아이들이 하나는 그저 뭐 세워 놓으면 간신히 설 정도였으니까 그저 뭐, 아마 그 정도는 아니었나 아마 한 세 살 정도 됐겠네요. 세 살, 두 살 정도 되고 아들은 이제 7살 인가 8살 인가 된 처지였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해서 교회를 시작을 했는데 94년 되면서 부터 당장 아이들은 없지만 94년도 되면서부터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청년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그 이듬해인가 94년도쯤에 하여간 세워지고 얼마 안 되어서 학생들도 열 서너 명 밖에 안됐을 때 어쨌든 전도사를 세워갖고 교회학교를 이끌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주일학교 학생들이 그렇게 모여서 처음에는 주일학교를 제가 많이 해봤지만 그러게 배운 것들을 적용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적었었어요. 그러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유년 주일학교만 하는 전도사를 따로 불러다가 그래서 이제 유년 주일학교만 따로 사역을 해 나가게 됐어요. 유치부 그런 거 없이 한꺼번에 모두 합쳐서. 그래서 이제 주일학교 학생들을 해나가게 된 거예요. 그래도 그 때 가만히 보면 그 때 교사로서 열심히 활동하고 또 사역하고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 미국에 공부하러 간 박헌준 목사 그리고 박헌준 목사의 사모님 다 청년들이었지요. 정말 열심이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 대해서 아이들의 영혼에 대한 사랑은 아주 확실했고 그리고 그 때에는 정말 은혜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몇 명 안 되는 교인이었지만 함께 전심으로 예배하고 그렇게 은혜를 받고 하여튼 전체적으로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몇 명 안 되는 교사였지만 정말 뜨겁게 영혼을 위해서 하고 그 때 특징은 전도를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어린이 전도를 따로 나갔다기 보다는 어른 전도를 다니면서 그 집에 아이가 누가 있는지 찾아내서 그래서 토요일 다시 찾아가서 전도하고 이렇게 해서 데려오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45명 50명 이렇게 늘어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하면서 교역자가 한두 번 바뀌는 가운데에 건터 편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러면서 이제 여기 교회 이사 오기 전에 큰 교회당으로 이사를 가면서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확 늘기 시작 했어요. 그러면서 이제 처음으로 미취학 부서를 말하자면 만들었던 거지요. 그래서 처음에 한 19명밖에 안되는데 거기를 미취학 부서. 미취학 부서가 아니고 유치부를 만들고 얼마 있다가 영유아 부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교회를 꾸려 갔는데 아주 급속하게 아이들이 모이면서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교역자들이 체계를 갖추어서 영유아부, 유치부, 그 다음에 유년부, 초등부 1,2,3,4,5,6 중고등부는 합쳐서 모이고 그러다가 이제 다시 갈라지면서 중등부 고등부 나뉘어지고 유초등부 나뉘어지고 그래서 여기 이사 오면서 영아부까지 전체가 세팅이 됐어요. 6년 7년 전에 여기 이사를 왔는데 그 때 아이들이 600명 정도 됐어요. 아이들이. 그래서 여기에 와서 1200명, 1200명 모이는 걸 보니까 꼭 갑절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서 우리들이 교회를 꾸려가면서 교회학교를 했는데 그동안에 사실은 프로그램이나 이런 것들도 굉장히 많이 발달을 하고 그리고 또 여러분들이 보시면 알겠지만 주일학교 사역이라고 해서 저희 교회에서 절대로 소외되지 않고 겨울쯤 되면 수련회도 매번 따로 모였어요. 교회학교 교역자들이 따로 담임목사하고 수련회를 하고 그러니까 장년교구 하고 후발대로 교회학교가 와서 같이 하루 반 동안 수련회를 하고 그 다음에 장년 교역자 가고 그 다음에 교회학교 교역자들이 모여서 꼼꼼하게 일 년 동안의 사역을 돌아보면서 그러면서 내년의 계획을 짜면서 또 조정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반성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그 때 야단맞을 건 야단맞고 반성할 건 반성하고 그렇게 하는 시간을 우리들이 일 년에 최소한 두 번씩을 15년 동안 거의 계속 가져왔어요. 제가 아파서 입원해서 수련회를 못 간거를 빼고서는 빠짐없이 가서 그렇게 해서 교회를 그렇게 해나갔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해 나가는데 결국 경험을 통해서도 그리고 이론을 통해서도 보면 아무리 좋은 교육의 시스템이나 제도를 맡기어도 사실은 하나님의 큰 성령의 은혜는 제도나 시스템에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각자 각자에게 부어져요. 그래서 아이들이 선생님의 손에서 변화되지 않고 교회생활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심련이 굉장히 단단해져요. 그래서 결국은 왜 밭은 망가뜨린다고 하쟎아요. 그렇게 되기 쉬워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부르심을 되새기자 하는 것이에요. 맨 처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을 때에 그 부르심을 가슴에 깊이 되새기면서 우리가 그렇게 사역을 해 나가는 것이 옳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러면 맨 처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이 무엇이겠어요? 교회에 많은 일들은 억지로 맡기면 되는 일도 있는데 이 교사는 절대로 억지로 맡기면 안됩니다. 이 교사의 사명은 마음속에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넘쳐나서 그래서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래서 그것들이 영혼들을 사랑하는 그것으로서 이 사역을 감당하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이제 이 영혼을 돌보는 사역 그 자체는 맨 처음 이 길로 들어설 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선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주님을 만나도 조금 만난 사람은 딴 걸 하는데. 그렇다고 지금 딴 걸 하는 사람이 모두 조금 만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을 조금 만나면 딴 걸 하면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데 주님을 정말 깊이 만나고 나면 그러면 영혼을 섬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다른 모든 것 보다 이 교사의 소명이야말로 목회자의 소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맨 처음 은혜를 받고 소명을 강력하게 느꼈을 때에도 주일학교 학생들을 돌보면서 그런 소명을 느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소명의 순간을 이렇게 생각하면 참 신비로워요. 직장 다니고 있고 그러다가 주님을 깊이 만났는데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웁고 감사한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에 깊이 감사하면서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 때 주님을 깊이 만나고 나니까, 깊이 만나지 못했는데도 주일학교 선생을 하고 있었어요. 자격미달이었죠. 그렇게 아이들을 돌보다가, 제가 언젠가 간증을 했나. 저 교사 하면서도 술 먹고 다니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토요일이면 술 먹고 길길 데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입에서 냄새나면 안되는데 이거 어떡하지 김을 먹으면 좋데는데 그러면서 껌이나 잔뜩 가지고 가서 수시로 씹으면서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쳤으니 무슨 생명이 있겠어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토요일에 술을 먹었기 때문에 주일에 교회를 안 간적은 없었어요. 하나의 책임감 같아요. 그래서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주일학교 예배하고 주일 낮 예배는 꼭 갔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믿음도 별로 없고, 회심은 했지만 믿음은 별로 없는 애가 그렇게 다니는 것이 그래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게 싫지가 않으셨나봐요.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데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교사를 몇 년 하셨습니까 하고 평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요. 마음이 분산된 가운데 하는 3년은 집중된 가운데 하는 6개월을
사역한 거 보다 배운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이제 사역을 했어요. 사역이라기보다 봉사를 했어요. 봉사를 했는데 그 때 또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마침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번민도 많고 욕망도 많고 그랬어요. 그래서 공부도 좀 열심히 하려고 그러고 그랬거든요. 뭐 어쨌든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복도에서 직원을 만났는데 “교회 다니시죠?” “네, 제가 교회 다니는 거 어떻게 아냐” 그러니까 아, 식당에서 밥 먹을 때 기도하는 거 보고 알았데. 그러냐고, 다닌다고. 그러니까 우리 회사에 주일 점심 때 마다 성경 공부를 하는데 한 번 나와 보시겠냐고 그래서 나는 별로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 그래도 한 번 나와 보시라고 몇 번을 권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갔더니 뭐 그럴듯한 회의실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창고에 모여서 책 같은 걸 잔뜩 싸아 가지고 하나씩 걸터앉아 가지고 한 6명이서 네비게이토 교제를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더라고. 그런데 이상하게. 12시 정각에 딱 모여서 30분 동안 도시락을 먹고 30분 동안 공부를 하고 이제 1시에 헤어지는 거에요. 그런데 도시락을 안 싸온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빨리 먹고 내려오고 나머지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오는데, 그 30분의 시간이 식당에 가서 줄 서고 하는 게 이게 않맞아요. 그런데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요. 그러고 갔는데 굉장히 그 모임이 따뜻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게 뭐냐 하면 살아있는 모임은 이렇게 처음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거죠. 이게 인간의 기교에서 나온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물론 거기에는 지혜도 좀 필요하지만. 근데 어쨌든 내가 처음 갔는데 아주 따뜻했어요. 그러고 나서 거기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성경공부를 그렇게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별로 없거든요. 텐 스텝도 공부하고 네비게이토도 공부하고 그 때 유행하던 교제를 여러 가지 갖다 놓고 성경을 찾아가면서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 아주 신실하게 잘 이끌던 형제가 있었는데 그 형제가 같이 하면서 봉사활동도 하고 그러면서 저의 신앙이 아주 놀랍게 그 창고에서 서서히 회복되어 갔어요. 그러고 나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교회에 가니까 어린이들이 아주 남다르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정말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은혜죠. 그렇게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결국 그 직장 생활 하면서 성경공부에 나갔더니 제가 가장 열심이 있는 몇 명 중에 한 명이 된 거예요. 몇 달 안 빠지고 나갔는데도. 그런데 여태까지 성경공부를 인도하던 형제가 있었는데 덜컥하고 허리가 아파가지고 몇 달 동안 직장을 못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성경공부를 떠맡게 된 거예요. 그렇게 같이 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부어지니까 영혼들을 향한 그렇게 애틋한 마음을 주시더라구요. 그전에는 전도 안다녔어요. 그런데 이렇게 은혜를 받고 보니까 이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운 거에요. 주님을 조금 만난 사람들은 다른 일을 하면서도 살 수 있는데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들은 영혼들을 위해서 봉사하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이 영혼들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그럴 수 있는 생활을 하게 된 거에요. 그때에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가 주일학교를 하는데 여름성경학교를 할 때 제가 일주일을 금식하면서 마지막 날 아주 분명하게 목회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어요. 그 때는 아주 순진한 마음에 아, 나는 어린이 사역만 했으면 참 좋겠다. 어른은 말도 안 들을 것 같고 키 큰 사람들 하고 얘기해봐야 뭐하리. 그래서 애들만 있으면 일평생을 거기가 어디든지 혹은 돌아다니면서 하든지 그 영혼들을 위한 사역에 자기를 바쳐서 그렇게 헌신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아주 절실하게 나의 심령 속에 파고들어 왔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을 잘 돌보잖아요. 그러면 우리 영혼에 복을 주셔요. 보세요. 우리가 만일 영적인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매주 점검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죠. 주일날 일주일 상태가 아주 안 좋게 생활을 했는데 성경 찬송 들고 가기 싫은 거 억지로 갔더니
애들은 오기 싫어서 아무도 안 왔어. 그때에 그렇게 휑하게 비어 있는 자기의 반자리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거죠. 아, 나도 빨리 그만둬야지. 그래도 은혜가 남아 있을 때에는 아,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시는구나. 일주일 동안 내가 기도도 안하고 말씀도 안 보고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이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도 하지 않고 사니까 하나님이 이제 나 싫어하시는구나. 그게 막 선명하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아이들만 매주 모여 줘도 사실 그만두겠다는 말 잘 안 해요. 그런데 아이들이 안 나오고 시험에 들고 하면서 어느 순간에 마지막 부르심의 끈을 놓아버리는 거죠.
그래서 교사의 본래의 부르심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사도들을 보내시던 그 마음으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이에요. 그 부르심이 뭐냐 하면 사도들을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 보내어서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던 사역과 꼭 같이 귀신을 내어 쫓고 약한 것을 고치고 모든 병을 치료하는 권능을 주신 거예요.
그거를 원래 예수님이 하시던 사역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하게 하신 거예요. 그러면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런 일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맡기셔서 사도라고 부르셨는데 그러면 예수님이 이 제자들을 계속해서 그냥 가르치시기나 하시지 이 사람들을 이렇게 사도로 세우셨는가. 그러면 여태까지 가르쳤을 때 예수님께서는 얘들아 너희는 훌륭하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하산 하거라. 그 마음이었을까요. 아니거든요. 이 뒤에 가보면 제자들이 바람 잡는 행동을 많이 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힘들게 하거든요. 그러면 제자들이 완전하게 갖추어져서 사도들로 세우신 게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 거거든요. 그러면 뭐냐 하면 두 번째 가능성이 오늘 성경에 나오는데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면서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던 것이 동기가 되어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예수님이 파송을 하셔서 당신의 하신 일을 뒤잇게 하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깨달을 수 있는 바는 우리가 영혼들을 돌보도록 불러 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을 하고 맨 처음에 이 영혼들을 위해서 부르셨을 때에 주님의 마음을 계속 마음에 간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계속해서 마음에 간직해야 할 마음이 무엇이겠어요? 그게 바로 예수님이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파하던 그 마음을 간직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보세요. 우리에게 이러한 마음이 항상 듭니까?
나는 목사인데도 그런 마음이 항상 드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어느 순간 여러 시험과 많은 근심으로 마음이 혼란하고 견딜 수 없이 마음이 힘들 때가 있어요. 그리고 목회 사역은 나의 고백으로는 매일 매일 경험하는 보통 정신의 크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나는 한 번도 이 일이 나에게 딱 맞고 정말 적합하고 잘 할 수 있고 내가 이거 아니면 딴 거는 전혀 어울리는 것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해봤어요. 그런 고백을 하는 목사님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나도 한 번 그래보고 싶어요. 그런데 정말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오늘도 사실은 마음 깊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주님이 세워 주신 이 자리에서 너무 부족한 인간이 흠이 너무 많은 인간이 교인들에게 생명을 주라고 했더니 고통과 아픔을 주면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한 같은 것들이 항상 마음에 있어요. 82년도서부터 사역을 시작했으니까 27년의 세월이 흘렀으면 삼십년의 세월도 다가오는데 그러면 좀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하나도 익숙해지지가 않고 어떤 때는 작은 일에 새가슴처럼 마음이 떨리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머리가 하얘지는 때도 있어요. 그러면서도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 그래서 맨 처음에 목자 잃은 양 같이 방황하며 고생하는 영혼들 바라보시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던 그 예수님의 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않은 이 목회 사역에 들어 선 것처럼 교사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예수님의 사랑에 이끌려서 영혼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 길을 들어서게 된 거에요. 아무도 강요에 못 이겨서 이 길을 들어서게 된 사람은 없어요.
마음 깊은 곳에서 그렇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언제 교사 일 년 하면 돈 준다는 얘기 들었습니까? 이년만 교사 열심히 하면 신학교 다니는 사람 전도사 시켜 주께. 우리 그런 약속 받은 적 있습니까? 없죠. 우리를 움직였던 힘이 뭐에요?
(찬송)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참 이 마음은 말이죠. 사랑의 마음이 분명해요. 그래서 그 마음에 자기를 구원하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혼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은혜가 사라지면 이러한 맨 처음 교사로서의 부르심의 흔적이 놀랍게도 우리의 마음에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걸 발견해요.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깊이 두드리고 우리의 심령에 자극을 줄 때에 우리의 마음속에서 아주 뜨겁게 우리의 심령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서 그래서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심령에 큰 변화가 일어날 때 그때 돌아가는 은혜의 경험이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가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주님은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을까? 주님이 구원해 주셨어도 뭐 하나 하는 것도 없고 봉사하는 것도 없이 이렇게 개기면서 하나님 앞에 맡겨진 영혼들을 마치 내 신앙 성장의 도구인 것처럼 그렇게 사용하면서 제멋대로 사는 인간인데. 왜 그러셨을까? 그러면서 오랫동안 마음에서 잊혀졌던 십자가의 사랑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죽지 않으셨다면 그 사랑을 몰랐다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겠으며 또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을 몰랐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도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을 위해서 그렇게 가슴을 졸이며 그렇게 아파하며 때로는 멸시를 당하며 그렇게 하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려고 하겠어요? 섬기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이 곤고해질 때가 되면은 그런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속에 주셔요. 그래서 깊이 이 벌레 같은 나를 위해 주님이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는데 나는 우리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게 있나? 그런데 처음 한 주님과의 약속.
주님이 계셨더라면 돌보셨을 영혼들에게 나를 보내주시면 미력이나마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품고 그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못할 때 내가 대신 기도해주고 그들이 눈물 흘릴 수 없을 때 내가 대신 그들의 영혼의 아픔을 끌어안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빌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는 거죠. 그게 뭐냐 하면 정확하게 성화의 생활이야. 우리 흔히 교사하다가 이러이런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너무 힘들어서 그런 이야기 하쟎아요. 또 상황이 바뀌어서 그런 이야기 하쟎아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기에 적합한 환경이 되는 때는 우리의 일생에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주님을 섬길 때에 고통을 주는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고 편안하게 주님을 섬기게 놔두면 열 사람 중에 아홉 사람은 부패해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걸어가신 부르심의 길을 흉내 내며 뒤따라갈 때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다양한 고통을 겪게 하시는 거죠. 그게 뭐냐 하면 시련이에요. 만약에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는데 많이 축복해주셔서 어려움도 모두 제거해주셨다고 할 거 같으면 그러면 그 길이 어떻게 십자가의 길이 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렇게 되는 법은 없어요. 이 세계 세상에 있는 식물들 가운데 항암 식품으로 미국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식품 중에 하나가 불루베리에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 열매를 좋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비싸서 사먹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양식으로 재배한 블루베리보다 야생에서 혼자 자란 블루베리는 항암물질이 다섯 배가 더 많대요. 2재배하는 건 비닐하우스를 쳐주고 물이 없으면 물을 부어 주고 이렇게 하면서 기르쟎아요. 그런데 야생에서는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이 비바람을 맞으며 모진 바람을 견디며 추위를 이기며 병충해와 몸부림을 치면서 싸우며 최고의 항암 성분을 가진 그러 불르베리가 되는 거에요.
항상 교사로 섬기며 교역을 하며 이 길을 걸어 갈 때에 편안한 길이 아니라 오늘 주님이 오셔서 우리 대신 이 길을 걸으시어도 눈물을 흘리며 가실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다 하는 생각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해석하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야해요. 가정에 많은 사연이 있고 직장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내게 하나님이 맡겨 주신 영혼은 손해 볼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영혼들 하나하나를 돌보면서 신앙의 길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울 때마다 기도하면 오히려 그 어려움 때문에 비바람 맞고 추위를 견딘 블루베리의 항암물질이 생기는 것처럼 우리에게 예수님의 흔적이 남고 더 어려움이 와도 견디고 흔들리지 않고 이 자리에서 영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그 같은 마음과 힘이 생기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영혼을 돌보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셨어요. 그렇게 맨 처음 교사로 부르신 주님의 그 마음이 우리 속에 살아있으면 영혼은 아주 소중하게 보이고 우리들이 직면한 시련과 어려움은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것이에요. 그런데 오늘 아주 재밌는 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열두제자를 불러서 사도를 부르셔서 귀신을 쫓아내며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영적 권능을 주셨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이 사람들을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로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렇게 갈 길을 명령하시면서 그들에게
주신 임무는 당연히 귀신을 쫒아내고 병과 약한 것을 고쳐라 그럴 텐데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 안하고 가면서 너희들은 전파하거라.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이 가까워왔다. 이것을 전파하라. 그러니까 사도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귀신을 쫒아내고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 다시 말해서 천국의 복음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라는 거에요. 천국이 가까워 왔다고 전파하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에요. 예수님과 함께 도입되어 들어오는 구원과 구원을 통해 들어오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들에게 임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인 통치. 이것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담대히 선포하고 외치라는 것이었어요. 그것이었어요. 그것이 바로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었어요.
교사가 하는 일이 너무 많잖아요. 전도 나가는 것,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 심방을 하는 것, 공부 못하는 아이들 어떤 선생님들은 불러다 놓고 공부도 시켜 주더라고요. 착하죠. 그런거. 심지어는 저 전도사 때는 아이들이 사고 치면 뒷수습 하는 거 까지 그렇게 해요. 그런데 그중에 어떤 것도 본업은 아니에요. 본업은 뭐냐 하면 진리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에요. 제가 항상 이야기하죠.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 다녔는데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녔어요. 아무도 나에게 “남준아, 너 구원받았니? 복음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니? 네 마음에 예수님 계시니? 예수님이 네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너는 그 사실이 믿어지니?” 한 번도 나에게 물어 본 선생님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 긴 세월 다녔는데 한 번도 교회의 가르침이 내 마음에 스며든 적이 없었어요. 저 선생님이 나를 사랑한다라는 느낌을 준 선생님이 한 분도 없었어요. 난 정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한 명도 없었어요. 내 영혼에 대해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열린교회 회심집회에서 주님 만나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더 어린 나이에 회심했다면 저의 인생은 참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후회 아닌 후회를 참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미 모두 지나간 일이고 적어도 내가 돌보는 교회에서는 나처럼 그렇게 뼈저리게 후회하는 청년들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그런 어른들이 나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면 보세요. 결국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영혼과 마음의 방향이 바뀌어지지 않으면 누구도 예수 믿을 수 없어요. 여러분은 안그래요? 교회 다니면서 그냥 편안하니까 교회 와서 졸더라도 그냥 꾸역꾸역 교회는 나오지만 회심하지 않잖아. 왜 교회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기대하는 바도 없고 실망하는 것도 없고 그냥 꾸역꾸역 교회 다니는 거죠. 어린 영혼들도 똑같아요.
진짜 복음을 듣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고 하나님이 누구시고 자기의 죄인됨이 무엇이고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돌이켜야 되는지 영혼에 대한 인식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결코 주님 만날 수 없어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5년, 10년씩 데리고 있는 것은 결국은 구원받을 수 있는 모든 길을 차단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자기들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문을 가로막는 그런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하는 그런 일들 같이 흉내 내는 거라 이거예요.
우리의 사역이 많이 있지만 주님이 우리를 교사로 부르셨을 때에 영혼들을 해주시기 원하시는 일이 핵심적으로 따지면 딱 둘 밖에 더 있어요? 예수 안 믿는 아이들을 회심에 이르러, 거듭남과 회심에 이르게 하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구원받지 못한 아이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 두 번째는 구원받은 아이들이 예수님 더 많이 사랑하고 진리를 알아가게 하는 것. 그래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게 하는 것. 두 가지잖아요. 그런데 그 두 가지 모두가 데리고 놀고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아이들의 관심을 사고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진리의 말씀이 그 영혼 속으로 들어가야 돼. 3살 4살 아이는 5분, 초등학교 아이는 20분, 아니면 고등학교 아이들은 50분. 그렇게 정해도 좋고 안정해도 좋고 얼마가 됐든지 간에 그 아이의 마음을 열고 거기에 깨끗하고 순수한 말씀을 거기에 깊이 심을 때 그 때에 성령님이 그 아이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구원에 이르지 못한 아이들은 자기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그렇게 조그만 아이들 마음속에 어쩜 그렇게 주님을 향한 큰 사랑이 들어가 있는지 몰라요. 그러니 제가 배운 게 있겠어요? 뭐가 있겠어요? 교사가 되고 나서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까 그러다가 옛날에 배운 성경공부 교제를 가져다가 청년들하고 같이 공부하는 걸 3,4,5,6학년 학생들한테 나눠주고 그리고 천천히 복음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너무 놀아운게 그때는 지금처럼 집에서 학교에서 공부하라고 막 야단치고 그러지 않을 때였거든요. 주일날 하루 종일 교회에서 데리고 있어도 집에서는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애들 봐주니까. 그렇게 앉혀놓고 공부를 하는데 나도 깜짝 놀란 게 아이들이 세 시간씩 성경공부를 해도 눈이 초롱초롱 한거예요. 그러더니 변화가 일어나는 거에요. 학교 가기 전에 맨날 와서 기도하고 학교 끝나면 제일 먼저 달려와서 기도하고 일주일에 성경을 백 장씩 읽어요. 줄치면서. 그러면서 성경을 읽어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가서도 기도하고. 그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예요. 그러니까 구원받지 못한 아이들은 구원에 이르게 하고 구원받은 아이들은 은혜 안에서 생활하게 한다라고 할 때 그것이 결국은 어른 사역이나 아이들 사역이나 다름이 없는 거에요. 그러면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깊이 기도하면서 이 아이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넣어주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선생님이 문제가 되는 거죠. 왜냐하면 누구든지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마음에 들어가 있는 데로 쏟아져 나오는 거야. 그러면 마음이 세속적인 것으로 가득하면 세속적인 것이 흘러나오는 거야. 마음 깊은 곳에 신령한 것들이 가득차면 그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고. 아침에 일어나면 눈 비비고 신문 보는 사람들은 설교할 때 어쨌든 동아일보 한 번 얘기를 해야 설교가 풀려요. 바둑 두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여튼 어떻게 해서든 바둑 쪽으로 한 번 끌고 가서 얘기를 해야 혹이 시원한 거야. 누구나. 그러니까 교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늘 젖어 있어서 그 말씀에 은혜를 받게 되면 영혼들을 만나면 제일먼저 진리를 가르쳐 주고 싶은 거예요.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진리가 무엇이겠어요?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 중 우리가 무엇을 가르쳐야 되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그게 뭐에요? 자, 교리 시험을 좀 봐야지.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그게 뭐에요? 이거 어떡해. 교사들 교리반을 다시 해야 되겠어. 자 뭐죠? 하나님의 말씀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뭐죠? 신약과 구약. 아이구. 뭐 하러 그래? 가죽과 종이라 그러지. 율법과 복음으로 이루어져 있잖아. 그러니까 그것을 학생들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치되 그 율법과 복음을 통해서 두 가지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에요. 자, 무엇과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요? 믿어야 할 규칙과 살아야 할 교훈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에요. 이 두 가지는 따로 따로 떨어져서 성경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믿음의 규칙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의 몸을 생축과 희생으로 드렸으니‘ 믿어야 할 규칙이에요.’그러므로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살아야 할 교훈이에요. 그 두 가지를 잘 조직해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넣어주는 거예요.
지하실 교회 있을 땐데 수요일인데 학생들이 우르르해서 청년들이 한 여서 일곱 명 왔어요. 앞자리에 와서 말씀을 듣는데 초롱초롱하게 말씀을 듣는 거야. 그리고 참 신기해. 끝나고 나서 인사를 꾸벅해. 그래서 “너희들은 어디서 왔냐?” 난 청년들인지 알았어. “저희 거창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입니다.”
거창고등학교라고 좋은 학교 있쟎아요. 전라도인가 거기. 그래서 “ 그래? 나도 거기 아는데. 그런데 여길 왜 올라왔냐?” 그러니까 “우리 기차타고 올라왔습니다.” “ 왜 올라왔냐?” 그러니까 “수요예배 드리려고 올라왔습니다” 그래. 그래서 “아니, 왜 그런 생각을 했냐?” 그러니까 “우리 모두 목사님 책을 읽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1학년, 2학년이래요. 그래서 “뭘 읽고 은혜를 받았냐?” 그러니까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 하하하하.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따로 하는지 알아요? 그 정도 되면 고등부 따로 안 만들고 여기 장년부 데려다 놓고 설교를 해도 다 알아들어요. 애들의 이해력이 놀라워요. 여러분, 새가족반 성장반 들어가면 배우는 거 있쟎아요. ‘십자가를 경험하라’ 그거 내가 고등학교 1,2학년들한테 설교한 건데. 이십년 전에. 원고 토시도 거의 안 틀려요. 그 원고 막 시험지에다가 정리한 거 그거 책으로 정리해서 낸 거예요. 지금도 그 원고 가지고 있어요. 다 이해를 해요. 더욱이 은혜를 받으면 놀랍게 이해를 해요. 놀라워요. 오늘도 여기 오셨을 텐데. 사랑부 우리 부장 집사님 아들내미두. 열린교회에서 설교된 것 중 제일 어려운 것 ‘천지창조의 목적’ 2번. 고등학교 1학년 땐가 2학년 땐가 휠체어 타고 들어왔어. 그 설교 듣고 나서 주님 만났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아이들을 어리게 보면 안 된다 이거에요. 진리에 대한 흡입력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만난 크기에 비례하는 거예요. 지성에 많이 달려있는것이 아니에요. 쫙 빨려들어오는거죠.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궁금한 건 뭐냐 하면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나. 그거죠.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공과공부에 정성을 기울여야 되요. 예전에 가르친 것이라고 자만심에 빠지면 안 돼요. 그래서 그 가르치고자 하는 말씀이 내 마음에 불붙어야 되요. 불붙어야 돼. 그래야지만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불붙을 때에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에 남의 이야기 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고 아주 생생하게 지금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말씀처럼 들리는 거예요. 제가 전도사때 데리고 있던 사람들은 그 점에 있어서는 거의가 철저한 사람들이었어요. 워낙 모범적인 사람들이니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준비한다고 그러더라구요. 공과준비를. 꼼꼼하게 앉아서. 그래서 자기가 깊이 은혜를 받고 오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화된 진리는 원고 없어도 굉장히 쉬워요.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사업에 실패한 이야기 하는데 원고가 필요해요? 첫사랑에 실연당한 여성이 그 쓰라린 실연의 아픔을 이야기하는데 서론 본론 결론이 필요하냐구요? 그냥 눈 지그시 감고 풀어놓기 시작하면 어쩜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한 편의 간증처럼 쏟아져 나오는 거에요? 왜? 마음에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던 거니까 쏟아져서 나오는 거에요. 그런거에요. 그러니까 공과공부를 꼼꼼하게 잘 준비해야 해요. 그것이 중요해요. 잘 몰라도 그거 하나만이라도 꼼꼼하게 잘 준비해야 된다라는 거죠.
사랑은 모든 창조력의 근원이에요. 그래서 사역을 하면서도 자기의 사역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남이 하는 것을 되풀이만 하지 않아요. 창조적이에요. 사랑은 모든 창조력의 원동력이에요. 정말 사랑하면 창조력이 생겨나게 되요. 아주 놀라운 창조력이 생겨나게 되요. 그래서 창조적인 능력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준비를 해오는 거에요. 그래서 보면은 공과책에 뭘 준비하라고 돼있지 않아도 자기가 이렇게 하면서 아이들이, 그거 뭐죠? 글 없는 그림책 있쟎아요? 그거 어느 교수가 만든 게 아니라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데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만든거에요.
여기봐봐, 여기봐봐, 그러면서 큰 글씨를 써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니면 ‘맨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 우리의 마음은 하예씁니다. 그리고 글씨를 썼는데 아이들이 보는거에요. 그리고 그 다음에 검은 색 이야기 하겠구나. 그래서 그 다음엔 책으로 만든 거에요. 그래서 볼 수 없게 해서 맨 처음에 하얀 걸 딱 보여주는 거에요. 저게 뭘까? 그리고 하얀 것에 대해서 주욱 설명해주는 거에요. 그리고 까만걸 설명하는 거에요. 그리고 빨간 거. 그 다음에 황금색. 이렇게 설명하면서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거쟎아요.
사랑은 모든 창의력의 바탕이에요. 자기가 그 공과공부를 잘 준비해서 이거를 아이들의 가슴 속에 넣어주어야 되겠다라고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그거 원고 덜렁 들고 가게 안 되고 이거를 어떻게 설명하면 아이들이 기가 막히게 이해를 하게 될까 이런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꽃 한 송이라도 준비해가는 거야. 꼭 숨겨놨다가 “ 너 이거 뭔지 아니? 꽃이지. 이거 네가 볼 때 조화 같지? 만져봐. 종이같애요. 그런데 실제로는 이게 생화야. 우리의 판단은 이렇게 틀리단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행복할 거 같았지. 틀림없이 이걸 만져보면서 이걸 종이라고 그러지 누가 꽃잎이라고 그러겠어요? 창호지처럼 바시락바시락 해. 그런데 여기에 보면 생화야” (강대상 옆 꽃잎을 뜯어서 앞자리로 던져주며) 그죠. 안 믿어지죠. 그런데 생화야. 하나만 봐도 아이들이 벌써 탁 하고 들어오게 되는 거야. 아, 그렇구나. 우리의 판단이 그렇게 틀릴 수도 있구나. 풀어가는 거야. 관심이 식을 때쯤 되어서 또 하나를 이야기 하는 거죠. 백합화가 있다고 쳐요. 백합화 향기가 아주 아름답잖아요. “아름답지? 너희들이 보기에는 한껏 자기의 자태를 뽐내기 위해서 향기를 뿜어내는 것 같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 해충에 위협을 받을 때 가시에 찔려서 누군가에게 자기의 몸에 상처가 날 거 같을 때 자기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뿜어내는 게 이게 꽃향기야. 그러니까 지금 네가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을 꼭 붙들고 믿음으로 살면 그것을 통해서 너는 예수님을 닮은 향기가 확 이렇게 솟아나게 되는 거야.” 그러면서 한 번 만져 봐 이러면서 주는 거예요. 누가 가르쳐 줘서가 아니라 하나하나 생각이 나. 그게 뭐냐 하면 진리의 말씀을 아이들 속에 넣어주어야 되겠다 라는 마음이 생겨나니까 그런 것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야. 지금은 너무 너무 발달한 시대이기 때문에 조금만 애정을 가지면 너무 너무 쉬워요. 텔레비전 장면도 캡처가 되잖아요. 그러면 영화 장면 하나 딱 캡처 해가지고 저걸 꼭 가르쳐줘야 되겠다 그런 생각들이 일주일 내내 들고 그런 생각들이 드는 거예요. 사진을 찍어가지고 가서 아니면 꽃 한 송이 들고 가서 차례차례 봉투에 넣어가지고 가서 하나씩 보여주면서 자기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거예요. 그 정도로 말씀을 잘 담게 되면 자기가 은혜를 받게 되면 술술 나오는 거예요. 자기가 정리가 안 된 게 어렵지 자기가 정리가 되면 아무리 어려운 것도 이 속에서 이해되서 돌아가서 나올 때에는 깨끗하게 나오는 거예요. 방앗간에 가서 밥을 해가지고 가서 쏟아 부을 때는 엉망인 거 같아도 꽉 꽉 눌러서 기계를 돌리면 이쪽에서 떡볶이 떡이 깨끗하게 나오는 것처럼 쫙 쏟아져 나오는 거죠. 그래서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잘 준비해가지고 가야돼. 이게 첫 번째에요.
그리고 그것은 자기가 하고 싶건 하고 싶지 않건 그건 기본적으로 교사의 의무에요. 근데 이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아. 왜냐하면 이것은 식물로 말하자면 줄기 가지야. 그런데 그 줄기 가지가 쭉쭉 뻗어서 아주 튼실한 줄기 가지가 되고 거기에 열매를 맺히기 위해서는 나무 자체가 튼튼해야 돼. 그게 뭐냐 하면 몇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는 뭐냐 하면 교리적인 지식이에요. 그거는 성경 자체를 많이 읽는 것 보다 더 선행되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보면 이단일수록 교리 공부를 안 시키고 그리고 성경을 교리 지식이 없는 가운데 성경을 자기 나름대로 자의적으로 해주는 거죠. 그래서 교리적인 지식이에요. 차근차근 교리적인 지식들을 배워가야 해. 그러니까 우리 교회 같은 경우 너무 좋잖아요. 교리반 있고 성화반 올라오면 거의 이천 사백 페이지 기독교 강요를 읽게 해주는데. 뭐 그렇게 신기한 표정으로 볼 거 없고. 매주 그렇게 다 시험을 봤어요. 쪽지 시험까지 매주 다 봤다구. 그리구 이천 사백 페이지를 다 띠었다구. 그렇게 공부를 해 나가는데 얼마냐 좋아요? 그렇게 가르치는 교회 많지 않잖아요. 철저하게 교리를 배우는 거죠. 이제 여러분 아이들도 교리학교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잖아요.
그럼 여러분 어릿어릿 하다가는 애들한테 물려. 교리 물어볼 때에 버벅데거나 엉뚱한 거 가르쳐주면 애들이 정말 아니라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교리를 철저하게 배우는 것이 첫 번째예요.
그리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성경을 꾸준히 읽는 거예요. 다른 새로운 거 없어요. 성경을 꾸준히 읽어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읽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빨리 빨리 성경을 통독으로 쭈욱 읽어 나가는 것과 그것과는 별도로 하루에 한 번씩이라두 작은 구절을 읽으면서 묵상을 하는 거에요.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으면 너무 좋죠. 아니면 이런 방법도 있죠. 석장 씩 읽기로 하고 그 중에서 가장 가슴에 다가왔던 부분을 꼼꼼히 읽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두 개를 같이 병행해 나갈 수도 있죠. 그리고 또 내가 너무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다 그러면 듣기로 한다. 요즘 엠피쓰리도 있고 너무 많잖아요. 제가 직장 다닐 때 항상 빌립보서를 했는데 빌립보서는 거의 다 외워요. 하도 많이 들어서. 그리고 벌써 한 삼십년 전에 일인데도. 한 이 삼백 번 들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한다든지 많은 방법들이 있잖아.
성경 자체를 읽는 거죠.
그리고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배 시간은 설교를 통해서 교육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새겨져 들어오지 않게 되면 그러면 예배 자체가 하나님께 올려드려지지 않게 되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자기가 교리를 많이 알고 있고 성경을 꾸준히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공과공부를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마음이 예배 시간에 하나님 만나서 불붙지 않는데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겠어요? 어렵죠. 그래서 예배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쳐 가는 거예요. 그 때에 나무로 말하면 둥치와 이런 것들이 자라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 튼튼한 뿌리와 둥치를 가진 나무에서 싱싱한 잎사귀들을 가진 그런 가지들이 뻗어 나오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렇게 공과공부를 하게 되면 이렇게 교리적인 지식, 그다음에 성경을 구체적으로 통독하고 묵상하는 훈련, 설교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예배드리는 훈련 이런 것들이 안 되어 있을 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깨달음들이 공과책 속에 주욱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끊임없이 나가는 거죠.
요게 주일날 설교한 거거든요. 한 시간 한 이십오 분 정도 설교했는데 요렇게 써가지고 와서. 이렇게 아는 게 많이 있으면 간단하게 써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해도 이 속에서 이렇게 풀어낼 수가 있는데 공과공부를 준비를 안 해오면 남의 옷 입은 거처럼 어색한 거예요. 그래서 빨리빨리 끝내려고 그러는 거죠. 그러면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는 거라 이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진하게 주욱 먹이면서 아이들이 공과공부가 끝나고 나면 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 깨달았다 하는 기쁨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잘 가르치고 있어요. 내가 소식을 들어요. 아이들이 집에 가서 확실하게. 깜짝 놀랐어요. 유아부의 아이가 너 지난주에 뭘 배웠니? 물어 보니까 또박또박하게 대답을 하는 거죠. 그 어린 아이가. 그러니까 아주 분명하게 가르치는 거죠. 선생님들이 그렇게 가르쳐야 돼. 그리고 자기가 잘 가르치는 거 믿지 말고 우리는 뿌렸으니 성령님이 역사해주시도록. 아까 전도사님 말씀 안해주세요? 그것도 뭐냐 하면 뿌린 것도 없이 주님이 책임져 달라고 하면 뭘로 책임을 지냐 이거에요. 아니 뭐 씨를 뿌리고 싹이 나게 해달라고 그래야지, 물만 주면서 빈 화분에다 물만 주면서 무슨 싹이 나냐 이거지. 씨를 심어야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심고 그 아이를 위해서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해주면 우리는 뿌렸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이러면서 아이들이 변화되어 가는 거예요. 여러분도 열린 뉴스 같은데 보면 초등학교 밖에 안됐는데도 야, 얘는 정말 예수 믿는 사람 같다 그게 눈에 띄는 거예요. 우리들의 눈에도 보이는 거예요. 확실하게 변화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입시제도가 복잡하고 난리를 쳐도 놀라워요. 주님의 말씀이 심겨지고 은혜에 붙들려 있는 아이들은 여러분처럼 이렇게 머리 많이 굴리지 않아요. 단순해요. 예수가 전부에요. 그 사랑에 풍덩 빠지고 싶은 거예요. 열렬해요. 그래서 교회 역사를 보면 위대한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모두 십대에 회심해요. 그것도 십대 전반. 열둘, 열셋, 열넷 그 때에. 그 때에 회심하는 거예요. 그리고 일생에 갈 길을 딱 정하는 거예요. 이렇게 나처럼 늦게 회심을 하니까 별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그렇죠. 그래서 우리들이 이 절망적인 이 학교 교육, 그리고 이 사회와 더불어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밖에는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민망히 여기시던 그 마음을 바탕으로 진리의 말씀을 영혼들에게 뜨겁게 심어주는 교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