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1부 MT 특강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2).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나이가 40대라고들 그래요.
40대되면은 이제 외모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하고 죽음에 기운이 서서히 몸속에 침투하는것이 느껴져요.그래서 여러가지 질병도 생기고 노화에 현상이 나타나요.
그리고 뿐만 아니라 이제 그때 되면은 이제 심리적으로도 아주 힘든 시기를 거치게 되요.
이게 인체에 일어나는 호로몬이나 이런 변화와도 관계가 되어서 어떤사람은 사추기라고 말하기도 해요.
굉장히 힘든 시기를 지나던 어느 중년 남성이 있었어요.
잘나가던 회사에서 승승장구했고 모든 샐러리맨들이 부러워하던 그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어요.근데 어느날 전혀 예기치 못하게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더 심각한 것은 어느 병원을 찾아가봐도 그 병에 대해서 올바른 치료법은 커녕 진단조차 잘 못내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질병이 뭐냐하면은 그 밤이 되면은 잠을 이룰 수가 없는거예요.불면증에 시달리고 그 다음에 잠이 들면 항상 누가 와서 목을 누르는것과 같은 가위에 몸부림치다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잠을 깨는데 이게 벌써 여러날 계속되면서 이 심리적인 공항상태가 시작이 되었어요.
그래서 좋다는 병원엔 다 다녀봤는데 마땅한 치료책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아는 사람들에 소개로 어느 신실한 그리스도인인 정신과의사가 하는 병원이 있다 그래서거기를 가보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이 의사는 아주 친절하게 그 병원에서 맞아주면서 인내심있게 자기 이야기를 한시간반이나 넘게 했는데도 친절하게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어요.
그러더니 이제 그 이야기가 다 끝날을때 이 젊은 의사가 확신에 차서 대답을 했어요.
"선생님 걱정마세요. 제가 고쳐드릴께요."
치료를 해보자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은어떻게 젊은 사람이 저렇게 "내가 고쳐주겠어요." 그렇게 용기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그게 좀 이상했어요.
그래서 계속 물었어요. "약을 먹어야되겠죠? 그리고 병원에 입원해야 되나요?"
아무 대꾸없이 그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처방전을 썼어요.그리고는 이제 이상하게 그 처방전을 봉투에 넣어서 풀로 붙여서 주면서 약국으로 바로 가지 마시고 집에 가서 아무도 없을때 혼자 조용히 뜯어보십시요.당신에 병이 낫는 비결이 여기 써있습니다.
이 사람이 또 이제 순진하게 그걸 가슴에 품고가서 그러고 이제 집에가서 그래서 혼자 아내가 잠든 다음에 스탠드에 불을 켜고 품속에서 그 의사가 지어준 처방전을 펼쳐봤어요.
그랬더니 진짜 병원에서 쓰는 처방전이예요.
처방전 아무 아무개귀하. 귀하가 속히 쾌유하길 바라며 다음과 같이 처방합니다.
아래에 약을 꾸준히 복용하시면 됩니다.
약이름 구약.그리고 약의 종류 시편 23편.
용법 및 용량 하루 다섯번씩 식전 식간에 물없이 천천히 씹어드십시요.
그래서 인제 이 사람이 그것을 확 꾸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요.
그리고 내가 병이 들리니까 별 거지같은 녀석들이 나를 놀리는구나.
그런데 밤새토록 한 잠도 못자면서 가위에 눌리고 식은땀을 흘렸어요.새벽에 아내는 아직 잠들어있는데 엄금엄금 기어가서 쓰레기통을 뒤졌어요.그리고는 어젯밤에 던져버린 그 의사에 얄궃은 처방전을 다시 펼치면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의사가 돈을 벌려면 수술을 하던지 입원을 시키든지 약을 팔던지 주사를 놔주던지 해야될땐데 이 사람은 나보고 구약을 먹으라는데 그럼 이 사람이 도데체 뭣때문에 이런 처방전을 나에게 썼을까? 그러면서 생각하니 설령 이 사람이 시킨대로 해본단고 한들 내가 손해날게 뭐가 있겠는가?돈주고 사오는것도 아니고 또 구약을 먹어서 부작용이 생겼다는 사람도 본적이 없는데, 그리고는 옛날에 읽던 성경책을 꺼내어서 시편 23편을 독서카드에다가 옮겨적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것을 품에 넣고 의사가 시킨대로 새벽에 일어나서 공복에 한번 먹고, 아침먹고 나서 30분후에 한번 또 먹고, 점심먹고 나서 한번 또 먹고, 저녁먹고 나서 한번 또 먹고, 자기직전에 공복에 한번 또 먹고 다섯번씩 공복을 한거야.
일주이면 35번. 그죠? 그러면 한달이면 140번 한달쯤 읽고 나니까 그 다음에 자기는 그럴 의지가 전혀없었는데 독서카드가 이제 필요가 없어 졌어요.
그러고 두달쯤 된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을 산책하면서 그거를 천천히 외우기 시작했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에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나에 평생에 선하심과 주께서 내 원수에 목전에서 내게 기름을 부셨으니
기름을 바르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에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에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근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생전 한번도 경험한적이 없는 아주 이상한 일이 생겨난 거예요.
갑자기 자기에 마음속이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콘크리트더미가 무너지는 것처럼 자기 존재와 마음을 지탱하고 있던 어떤 얼개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 마당에 꽃밭옆에 주저앉아서 막 통곡하며 울었어요.
그러면서 너무 놀라운 새 사실을 깨닫게 된거예요.자기에 인생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것은 운이 없기 때문이고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질병때문이고 어떤 사람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편 23편에 말씀이 자신속에 스며들고 나서는 자기 인생에 모든 불행은 목자없이 유리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거예요.
그리고는 어린 아이때 교회에 다녔던 생각을 하면서 주님앞에 무릎을 꿇고 아무도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 당신을 멀리 떠났던 길잃은 양과 같던 나를 용서해주십시요.
내가 다시 주님께 돌아옵니다. 나에 목자가 되어 주시옵소서.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에 음성너는 내것이라 내것이라~
그리고 기도했어요.자 그 정체불명에 질병이 나았을까요? 안 나았을까요?
안 나았으면 간증거리가 안되지.
이 시편 23편이 다윗의 시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자들이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소수 있지만 거의 없어요.그러나 이 시편이 언제 쓰였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아요.
그러나 나는 나를 비롯한 많은 구약학자들은 이 시편이 시인의 생애에 말기에 저작되었다고 봐요.저는 말기중에서도 아주 후기에 속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되요.
그 이유가 무엇때문이냐면 목가적인 내용들로 1절 2절에서 노래하고 있지만 3절을 지나가게 되면은 영혼에 깊은 침체에서 벗어나는 경험이 담겨있고 4절로 지나가면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
그 다음에 원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목동시절에는 그런 원수들을 만난적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어렷을때 양을 치던 소년때의 목가적인 경험을 재료로 삼아서 자기에 인생에 살아온 그 치열한 삶에 여정에서 그 고난과 시련을 통과했던 그것을 결합시킨 형태로 문학작품을 만난거예요.
그래서 이 속에서는 이제 시인에 그런 말하자면 그 오버랩되는 심리적 묘사들이 아주 아름답게 결합되어 있어요.그래서 그것을 우리들이 풀어보면서 그러면서 이제 시편 23편속에 있는 진수들을 더듬어 가야 되요.
이 시편 23편은 세토막으로 되어있어요.
첫째 토막이 1절이예요. 총론적인 고백인데 '여호와는 나의목자시다'라는 고백이예요.
2절부터 5절까지가 두번째 토막인데 왜 여호와가 자신에게 목자이실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2절 3절 4절 5절 각각 색깔을 달리하면서 크레파스처럼 설명을 해가요.
그러고 마직막에 6절이 여호와를 목자삼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각오와 결단을 그려내고 있어요.
1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영어 성경에 보면은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이렇게 나오죠. 그래서 신학교에서 애들이 영어공부를 잘 못하니까 선생님이 기말고사에 아주 쉬운문제를 냈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이거를 영문으로 하시오.
한 학생이 죽어도 못나오고 끙끙대면서 그걸 번역을 하는데 'The LORD is my '까진 했는데 그 뒤를 뭐라고 해야 되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확 들더니 "알았다" 그러더니 딱 써놓고 "다 마쳤어요" 그러고 나오더래 답안을 보니까The LORD is my cowboy''
'shepherd'
시인은 제일 먼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는 이라고 말해요. 히브리말로 하나님에 존함을 나타내는 많은 이름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성함이 둘이예요.'야웨'라고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엘로힘'이라는 것이예요.
야웨는 여호와일 가능성은 전혀 없어요. 잘못된 번역이예요. 야웨일 가능성이 가장 많은데 이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해보는거죠.왜 그러면 엘로힘은 하나님이라고 번역이 되는데 왜 하나님은 나에 목자시니라고 시인이 노래하지 않고 야웨는 나의 목자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했을까?
이렇게 묻는것은 아주 사소한 질문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이 안에 담고 있는거예요.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많은 학자들이 여러가지 학설을 내놓지만 그 얘기를 다 하면 머리가 아프고 시간이 많이 가니까 가장 설득력있는 학설이 울이라는 명사에서 왔을거라 보는데 울은 도토리나무라. 도토리 나무가 굉장히 뿌리가 강해서 웬만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거야. 거기에서 복수 형태가 되면서 엘로힘이 왔을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근데 성경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이 존함이 사용될때에는 하나님의 어떤 특성들을 각각 구분하여 설명하는 용도로 그 이름이 선택이 되는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라고 할때에는 대개 모든 신들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큰 능력 자연계를 모두 지배하고 통솔하시는 위대한 힘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 모든 종교위에 뛰어난 신들중에 신이신 하나님 그런거를 보여주는 의미로 하나님이라는 존함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야웨는 출애굽기 1장에 의하면 언약백성들에게만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이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의 이름이 애칭도불리우고 여러가지 별명도 불리지만 주민등록상에 이름이 참이름 이듯이 이 야웨가 하나님의 고유한 원 이름이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처럼 이렇게 야웨라고 부르질 않아요.그래서 '아도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거 번역이 'LORD'예요.
근데 이 야웨라고 하는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된 이름이 아니라 당신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에게만 계시된 그런 종류의 이름이예요.
그러니까 이 여호와의 이름은 아무나 부를 수가 없는 이름이예요.
그러면 여기에서 시인이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라고 말하는것은 이미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공동체로서의 바디, 몸이 있고 그 몸속에 속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언약의식'을 깔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거예요.
이것은 굉장한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이 모든 만물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시면서도 특별히 시인과 시인이 속한 이스라엘 공동체와 각별한 관계를 가지시고 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여기에서 보여주는 거예요.이게 바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언약사상'이예요.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를 찬란하게 드러냈고, 인간은 죄가 들어오지 않아서 아주 맑고 그리고 깨끗한 심성으로 그 찬란하게 빛나는 자연속에 있는 계시들을 이해하면서 하나님이 거룩하고 위대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충분히 경배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성경이 필요가 없었죠.
죄가 들어오면서 자연의 이 모든 세계들이 부패하게 되었어요.그래서 본래 하나님을 보여주던 자연속에 담긴 그 아름답고 아주 아름다운 계시들이 빛을 잃어버리게 된 거예요.
죄가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인간의 마음속에 어두움이 내리고 지성은 눈멀게 되었어요.그래서 마치 두 눈을 뜨고 밝게 보던것을 어두움도 오고 눈에 안질도 생겨서 형체를 분간할 수 없게된 사람처럼 그렇게 된거죠.
그런데 그런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을 얻기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했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이번에는 자연을 통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가정을 택하시고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민족을 택해서 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심으로서 그들에게 은혜와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것을 가르쳐주고자 하셨던 것이예요.
이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이유였어요.
그 언약관계속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나 이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그 위대한 신에 대한 묘사를 배척하고있진 않아요.
어느 중학교에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물어봤어요. 과학시간에.
"선생님 이 우주가 얼마나 크죠?" 선생님이" 야 이놈아 그걸 내가 알면 여기서 널 가르치고 있겠니? 너희 집이 어디냐"그랬더니 "저희집이 목동아파트에 살아요." "그래 그러면 내가 설명해주지."
온 세계가 아파트로 다 뒤덮였다고 치고 그리고 그 중에 대한민국 그 중에 목동 그 중에 304동 207호가 니 집인데 니 집에도 방이 4개나 5개가 되는데 화장실이 있어 화장실에 빨간 전구가 하나 켜져있고 그리고 아홉개의 날파리들이 그 주위를 돌고있어. 그런데 그 중에 세번째 날파리가 지구야. 거기에 달라붙어서 세균들이 수 없이 많은데 그 세균중에 한마리가 너야.
목사님은 우주에 대해서 관심이 참 많아요. 근데 뭐 관심은 있어도 시간이 없으니까, 제가 오죽했으면 일년동안 천문학을 배웠어요.
근데 그 천문학을 배우면서 전 신학에서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던 그런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볼 수 있었어요.좀더 공부하고 싶다그랬더니 복소수 베타를 비롯해서 이제 대학의 고차원 과학 수학을 해야된대요. 그래서 내가 목회안하고 그거까지 해야겠어요?
그래서 거기서 접었지 인제 수식계산하기에서 접었어요.
너무 놀라워요.우주 이끝에서 저끝까지 길이가 얼마냐에 대해서도 사실은 통일된 학설이 없어요.많이 본 사람이 960억 광년까지 보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의 합일은 150억광년정도라고요.
이끝에서 저끝까지가 150억 광년정도라고해요.
그러면 도데체 그 끝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죠? 사실은 그 끝에 가면 어떻게 될까 그러는데 최근에 학설은 가봐야 소용이 없다.
초당 2000km씩 우주는 팽창을 한다는건데 도데체 팽창을 한다면 우주 바깥엔 뭐가 있길래 팽창을 하는걸까? 우주에 속하지 않은 또다른 세계는 무엇일까?
수없이 고민이 되죠.그래 요즘 많은 과학자들이 멀티유니버시 이론을 받아들여요.
이 우주는 사실은 다른 차원에서 보면 물방울 하나만큼도 안된 작은 크기일 수 있다.그래서 아마도 우주는 또다른 우주로 그 우주는 또다른 우주로 그렇게 무한히 많은 우주들이 연결되어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지만 누가 어느것이 맞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대충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종합을 하면 이 우주는 수 많은 은하계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들이 속한 이 은하계를 '우리은하계'라고 해요.
은하계는 타원형으로 기다랗게 생겼는데 이 끝에서 저 끝까지가 20만 광년정도.
별들은 약 1000억개 정도가 모여있는데 여기서 별이라함은 위성은 제외하고 항성만 가르키고 항성 중에 1000억개의 항성중에 하나가 태양이예요.
항성은 우리가 밤하늘에 볼 수 있는 빛나는 별들인데, 그 빛나는 별은 기체덩어리로 되어있는건 아시죠? 불덩어리예요.
그런데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항성까지에 거리가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500원 동전에 들어간다면 그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별이 대구쯤 떨어져 있대요.
그러니 달에 갔다왔다라고 하는것은 우주 전체에서 보면 너무 우스운 거죠.
그런 일천억개 내지 이천억개의 별이 모인 은하계가 약 1000억개 내지 2000억개 있는 곳이 아마 우주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별들이 폭발을 통해서 탄생하고 마지막에 사라지는 대까지에 나이를 40억년이라고만 잡으면, 이 밤하늘에는 4초정도에 별이 하나 생기고 별이 하나 사라집니다.그 끝없이 넓은 우주, 거기에 은하계, 그 수천억개의 별중 하나인 태양,그걸 돌고있는 아홉마리에 날파리중 하나인 지구, 그 중에서도 저 귀퉁이에 붙은 토끼같이 생긴 그 꼬랑지 하나 그것도 반토막이 나서 그것도 또 서울도 아니고 촌, 평촌.
주 여호와는 관대하시도다
그 거룩한 하나님성에서
땅과 하늘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그 하나님에 지극히 높고 위대하심을 묵상해봐요.
우리는 그 위대한 하나님앞에서 아주 티끌같은 인간일 뿐이다라고 느끼는것 자체가 기독교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시점이예요.
그런데 그 후~하고 불면 날라갈것같은 티끌같은 인간.
100년도 살지 못하는 티끌같은 그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오늘 시인이 뭐라 그래요?감히 그 하나님에 대해서 소유격을 사용하며 my 나의 주여 my shepherd 나의 하나님.
사람이 누구를 친구를 사귀는걸 보면 그 사람에 수준을 안다며?근데 하나님은 그렇게 위대하신 분이신데 티끌같은 나에 인생과 관계를 맺으시고 그래서 내가 이 학교에 들어가는지 저 학교에 들어가는지, 대학원에 진학하는지 취업을 하는지, 내가 헬스클럽에 가서 살을 빼는지 마구 먹고 찌는지, 내가 남자친구를 만났는지 시집을 언제 가든지 이런 모든 티끌같은 인생에게 달라붙은 더 티끌같은 문제와 관계를 맺으시면서 거기에 하나 하나에 당신에 실오라기같은 뜻들을 다 새기셔서 그리 돌보시는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수준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그게 뭐냐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거예요. 사랑.
근데 그 위대한 하나님 . 지극히 티끌같은 나를 연결시켜서 도저히 관계를 맺을실 수 없는 지극히 높으신 그 분과 나를 관계 맺어주게 만들어주는게 뭐예요?신앙이에요. 신앙.
신앙을 통해서 그 위대하신 하나님과 내가 관계를 맺고 그리고 특별한 약속속으로 우리가 함께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을 안믿고 사는 그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죠.놀라운 기적이에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을 아는것이예요.그 분이 나와 맺으신 그 관계를 하는것 그래서 그 생명되신 그 하나님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이예요.
더하고 싶은데 진도를 나가겠어요.더하게 하고 싶은데 그냥 나갈께요.
근데 이어서 뭐라 그러냐면 '나의 목자이십니다' 이렇게 고백을 해요.
목자는 뭐하는 사람이예요?대답을 해봐 목자는 뭐하는 사람이예요?
근데 여긴 아무리 뒤져봐도 양이라는 이야기는 안나와요.
아니 목자가 양을 치는 사람이면 목잔가?돼지 치는 사람도 목자고 소를 키우는 사람도 목자고 염소를 치는 사람도 목자고 우리나라처럼 개를 집단적으로 키우는 사람도 개목자가 아닐까?
그런데 이걸 읽으면서 자기가 돼지라거나 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이 시편 23편 1절을 읽으면서 여호와는 나에 목자시니 할때 나를 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아무리 늦잠을 많이 자도 자기가 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항상 뭐라고 생각해요? 양. 그 양도 그냥 양이 아니예요.
파란 풀밭에 금방 샴푸하고 드라이로 말린, 린스까지 하고 그리고 그것도 어린 양이래.
할머니도 자기가 어린 양이래. 그 양이 저쪽 풀밭 그것도 우리나라 풀밭은 안돼.
뉴질랜드나 호주쯤 청정 그 풀밭에 위에는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떠가고 이쪽에서는 하얀 양이 슬로우비디오로 막 뛰어가는 거예요.
그게 자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사는건 개꼴같이 살면서 자기가 그런 양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는거예요.근데 이런 상상은 코리안컨텍스트야. 이 성경은 팔레스티아컨텍스트에서 쓰여졌어요.물론 성경은 양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별히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할때에는 속죄재물로 바쳐진다는 의미에서에 어린양이에요.
그러나 성경은 팔레스타인 문맥에서는 이 양을 그렇게 긍정적인 짐승이라고 안봐요.
긍정적인 짐승이라는건 뭐예요? 양, 긍정적인 짐승이잖아요 그쵸?
목사님은 양띠거든. 양 그러면 법없이도 살사람처럼 우린 그렇게 느껴. 양같이 온순하다 이렇게. 근데 부정적인 짐승도 있잖아요 그죠?
어떤게 부정적인 짐승일까요? 뱀. 물론 뱀탕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긍정적인 짐승이겠지.
열린 교회가 자그마한 개척교회였을때 수련회를 갔단다. 갔는데 그 주위에 기도원주인이 와서 뱀이 굉장히 많으니까 그 철조망 너머로 교인들 가지말라고 해서 광고시간에 얘기를 했어요.
교인들보고 철조망 너머에 뱀들이 자주 나온다니까 아주 많답니다. 가지 마십시요. 그랬더니 저 뒤에 집사님들이 아주 얼굴이 환해지고, 목사님 정말 뱀이 많아요?
그런분들에겐 굉장히 긍정적인.. 근데 뱀은 어째튼 부정적인 짐승이잖아요? 그래도 좀 긍정적으로 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예쁜 꽃뱀. 아직도 긍정안돼? 예쁜 소리를 내는 방울뱀. 그것도 안돼? 안돼? 할 수 없지.
부정적인 짐승이예요.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이 양이 부정적인 짐승이예요.
제 동생이 이라크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었어요. 근데 그 동네에 가장 험한 욕이 양같은 놈이래. 양같은 놈은 돼지처럼 많이 먹고 고집세고 머리는 나쁜 그런 그림을 합쳐논 것이 양이라고.
그러고 그 양이 목욕도 안하고 온 몸에 뜬물 다 뒤집어쓰고 그러고 다니는 짐승의 대명사가 양이예요.실지로 이사야서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나오죠.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거늘'
그럼 우리는 이런 의문을 한번 제기해 보는 거예요. 그러면 왜 성경은 그렇게 팔레스타인 문맥에서 보면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짐승인데 왜 우리를 하나님이 언약백성들을 양이라고 묘사를 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양의 생태를 이해를 해야되요.
우선 이 양은 지독한 근시안이예요.그래서 맨눈으로 2.5m정도 거리밖에 못본대요. 나머지는 어떻게 보이냐면 고도 근시인 사람이 안경을 벗었을때 희미하게 보이듯이 그렇게 보인데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은 양이 길을 잃는 이야기는 많이 나와요.근데 돌아온 양이라는건 없어요.
근데 여러분 돼지, 되게 미련하게 생겼잖아요. 양하고 비교가 안될것 같죠?
우리가 어렷을때 시골에서 돼지를 키웠거든요.우리 부모님들이.
근데 이 돼지가 어느날은 이 저기 돼지우리를 뚫고 외출을 합니다. 외출하는데 이게 온 동네를 쏠쏠거리고 돌아다니다가 지 집을 찾아와요.놀라와요.
근데 양은 절대 못해요.그래서 친구들하고 무리를 지어서 그 엉덩이를 보면서 목자의 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따라가면은 그냥 가는건데 뭔가 정신이 팔려서 딱 이탈하잖아요?근데 그 다음에 이 대열이 가고 나면 스스로 이 대열을 못찾아가요.
그래서 이렇게 목초지에서도 보면은 양떼들이 항상 무리를 지어서 다닙니다.
그게 그 양들에 생태예요. 그런데다가 이 양에 특성이 뭐냐하면 물을 엄청 무서워해요.
그래서 2절에 보면 뭐라고 하냐면 '그가 나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이렇게 나오잖아요. 전혀 사실이 아닌 번역이예요.그래서 메호노트라는 히브리어로 되있어요.
직역을 하자면 '움직이지 않는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이렇게 번역을 해야되요.
그래서 영어 성경에 보면은 he leads steel waters라고 나와요. 그래서 그게 움직이지 않는 물이예요. 무슨 뜻이냐 하면 양이 목이 말라도 흐르는 물은 도무지 못먹어요.
그 이유가 무엇때문이냐면 물에 대한 생애적인 공포심이 있어요. 이유가 무엇때문이냐면 이게 이렇게 털이 두껍잖아요 그래서 물에 딱 빠지면 잠수에 천재예요.
떠올리지를 않아요.근데 시골에서 살때보면은 그때 막 산사태가 엄청 많아서 막 흙탕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든요. 그러면 온갖 가축들이 다 떠내려가.
여러분 소 헤엄 잘칠것같에요 못칠것 같에요? 소가 500k씩 되잖아요? 잘칩니다.
음메 음메하면서 계속 떠내려가.
돼지는 어떨것 같에요? 잘 칩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비계잖아 그러니까.
개는 어떨것 같에요? 개헤엄있잖아요. 개헤엄.
그 담에 닭은 어떨것 같에요? 물속으로 푹 들어갈것 같죠?뜹니다.
오리는 지 세상 만난거지. 나 고양이 떠내려가는거 봤어요. 고양이도 문제없이 떠내려가
근데 양 떠내려가는거 못봤어요. 들어가면...
자기 자신을 아니까 물을 그렇게 무서워하는거예요. 물이 흘러도 흐르기만 해도 못먹는거에요, 움직이는 물은.그러니 인제 이 양을 아는 목동이 이제 가서 돌멩이 풀뿌리 같은걸 캐.그래서 이렇게 댐을 쌓아, 그러면 물이 내려오다가 막혀 그래서 이렇게 steel water가 되는 거예요.
움직이지 않는 물이 되는 거예요. 그게 메호노트예요.
쉴만한 하고는 아무상관이 없어요.움직이지 않는 물이되는거예요.그럼 그때 양을 몰고오면 양이 그 물을 먹기 시작하는거예요.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는 거에요.
그 뿐만 아니예요.이 양은 달리기는 해요 그렇지만 아주 빠르게 달리지는 못해요.
잘 보이지도 않고 하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은 그 가축들을 방목한 다음에 마지막에 그 짐승에 우리에 집어넣는 광경을 보셨을거예요. 그죠? 서부 영화같은데 보면 말들을 방목하다가 카우보이가 나오죠.그죠?그리고 카우보이가 개들을 데리고 막 총을 쏘면서 원을 그려요.
위협을 하면 말들이 막 달려가는거예요 그렇게 햇거 집어넣으면 끝나는 거예요. 근데 양은 그렇게 몰지를 않아요.
양은 어떻게 모냐면 목동이 맨 앞에서 피리를 불거나 소리를 내요.그러면은 양떼들이 그 목자에 소리를 듣고 따라오는 거에요.
이스라엘을 여행했던 어느 여행객이 글을 썼어요. 그런데 이런 얘기을 썼어요.
그 길이 큰 도로가 있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 이쪽이 풀밭이 있고 이쪽이 풀밭이예요.
그래서 이쪽에 있는 양떼들이 수백마리가 일루 이동을 하는데 도로에 이렇게 걸쳤어요.
그런데이 목동이 갑자기 소변이 마려운거예요. 그러니까 이놈들을 놓고뭐 화장실이 어딧겠어요. 아무튼 온천지가 다 화장실이니까 뛰었어요. 그러고 거기서 볼일을 보는데 차들이 다 섰어요. 그래서 인제 클락션을 눌러도 양들이 안움직이는 거야. 캄빡캄빡하고 빵빵거려도 비키면 차 지나갈텐데 개같으면 벌써 비켰을텐데 안비키는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창문을 열어놓고 운전수들이 줄을 쭉 서있는데 목동이 와서 피리를 불기시작하니까 양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동을 하는거야.
그렇게 하면서 양들이 이 양이 인도를 하는거예요.
그래서 결국 이 그림이 보여주는 봐가 뭐냐하면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자기를 방어할수 있는 기재를 다 가지고 태어나요. 뭐 사자같은 이빨이라든지 아니면 아주 빠른 다리를 가지고 있는 동물도 있잖아요. 하다가 안되면 좀 비겁하지만 스컹크같이 가스를 확 내뿜어서 췌루탄을 발사하고 위기를 모면하는 짐승도 있어요. 몇번이나 할 수 있는지 되게 궁금해요. 무한정발사하진 못할텐데..
고슴도치도 있고고슴도치 어려서 가지고 놀았는데 확 오무려버리면 아무도 손 못대요.
완전히 가시덩어리니까 보통 가시가 아니예요.
포크 날같이 그렇게 날카롭다고. 근데 그러면은 근데 양은 어떻게 양은 아무것도 없어요.
이빨인데껌씹기에 적합한 넓적한 이빨이예요. 빠른 발도 없고 그리고 뿔이 있는데 만두처럼 이렇게 장식용이지 전혀 도움이 안돼요.
그래 결국은 그 양은 처음 창조될때부터 사람에 돌봄을 받으면서 생존하게끔 그렇게 창조된 동물의 대명사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거기에다가 딱 비교하시는 이유는 뭐냐면은 너희는 모든 피조물중에 가장 뛰어난 만물의 영장이지만 너희들은 나에 의해 돌봄을 받으면서 생존하게끔 그렇게 만들어진 피조물이란다 하는 메세지가 그 속에 숨어있는 거예요.
결국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사는것 그게 신앙이예요. 신앙.
이 목자라고 하는 말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 이 목자란 말을 쓴 이 사람이 진짜 목자였잖아 자기 자신이. 양을 치는 목자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자기가 그 하나님에 양인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을 믿고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방법이 내가 양들을 돌보고 인도하던 방법과 아주 유사한 방법이었단 사실을 깨닫게 된거에요.
그게 뭐냐면은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하실때에 자기가 양에 약점을 알고 인도하는것처럼 하나님이 이 양, 자기를 인도하실때에도 그 약점을 알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것이에요.
깨닫게 된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다 똑같이 다루시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앞에 가지고 있는 성격과 그리고 우리의 성품을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에요.
제가 교회에서 중등학생 중학교학생들을 가르치는 전도사였던 때의 일이었어요.
그 교회에는 이상하게 좋은 학교 다니는 대학생들이 되게 많이 몰리는 그런 유명한 교회였어요.그래서 애들이 지방출신이 많아.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올라면 둘 중에 하나여야돼.
공부를 잘하던가 아버지가 부자이던가 둘중에 하나예요. 그러니까 애들이 많았어요 똑똑한 애들이.
같이 이제 지금은 서울대 교수하는데 그 저기 그때 서울대학교 박사과정을 다녔었는데 뭐냐면자기는 태어나서 여태까지 시험이라는걸 한번도 떨어져본적이 없대요.운전면허까지 포함해서.
모두 한번에 다 붙었대요.근데 어느날인데 어느날인데 예배가 다 끝났는데 저녁시간에 저 구석에서 어느 집사님하고 아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거야.
그래서 인제 끝나고 물어봤어요.그 집사님은 왜 와가지고 그렇게 사연이 많으세요?
에이 전도사님 뭘 물어봐요? 뻔한거죠. 그 아무개 그녀석 공부못한다고 지금 갑갑해가지고 저 집사님이 저한테 지금 하소연하는거 아닙니까?그래?
개 요새 공부안해? 못해요.
그러고 이제 집에 갈려고 막 보따리를 싸는데 지기 혼자 그러는거야.
근데 전도사님. 왜?
궁금한게 있어요. 왜?
근데 애들이 왜 공부 못하죠?전 이해가 안가요.억지로 노력도 안하는데 어떻게 공부를 못할 수 가 있어요?
근데 이렇게 교만하게 물어보는게 아니라 진짜 순수하게 물어보는거에요.
그래서 속으로 '씨 난 이해가 잘되는데..'
자기는 그냥 그렇게 특별히 노력한 것도 없는데 잘됐고 정말 학원 한번도 안다녔다는거야.그러고 고3때 정확하게 8시간씩 잤다는 거예요.
근데 아니 그럼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 할수 있냐 그랬더니 나보고 반문을해요.
아니 전도사님 어떻게 못할수가 있어요? 책에 다 나오고, 책에 다 나오고 모르면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가르쳐주는데 어떻게 못할수가 있어요?
짜증이 나더라고. 그 어떻하면 공부 못할 수가 있는지를 도저히 가르쳐줄 실력이 안되서 헤어졌어요.그러고 나서 한 두달쯤 지났는데 하루종일 우울한거야.
그래서 전도사님 왜그래요? 뭔일 있어?
전도사님 저 이제 살기 싫어요.그래서 머리좋은 사람이 왜 살기 싫어?
그랬더니 제가 계속 공부하느라고 움직이질 않았더니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그때 테니스가 유행이었어요. 대 유행이었어요.
그래서 인제 학교옆에 있는 테니스장을 그것도 거금 7만원을 주고 끊었다는거야.
그랬더니 우리나라는 참 이상해 뭘 가르켜도 재미 되게 없게 가르쳐 그쵸?
이거 공치고 싶어서 갔으면 공을 치게 해줘야 될꺼아냐 공도 안주고 이거만...
일주일 내내 이거야..
그러더니시키는데로 했다네요 일주일동안은.
그리고 코치가 공을 이렇게 탁 던져주더라는거야 치라고 하는데 잘안되더래.그래가지고 계속했더니 코치가 씩씩거리고 오더래. 어떻게 그렇게 못하냐고 여기에 코치생활7년 했는데 당신같이 못하는 사람 처음이라고 왜 못하냐고 교본에 다 나와있는데...모르면은 나한테 물어보면 되는데....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된게 아 공부도 이럴수 있겠구나. 근데 이게 딱 맞을것 같은데 치면 공은 항상 헛방이야.아 공부못하는 아이들에 심정이 이런거였구나 그렇게하면 될것같은데 아 못할수도 있겠구나 생애적인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거야. 그 생애적인 깨달은게 뭐냐면은 공부못하는 애들은 못할려고 노력을 한적이 없다그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거봐라 하나님은 세상에서 우리들을 한번 쭈르르 가르쳐주고 잘 알아들으면 넌1등 그 다음은 2등 넌 있으나 마나 그러지 않아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다루시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다루고, 어떻게 하나님한테 다루어졌다는 것이 참고는 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기준은 되지 않는 거예요.
제가 목회를 이렇게 하면서 여러분들 나에게서 어떤 선생 기질같은거 느껴지지? 안느껴져?
더 세게 해야되나. 결국은 물 먹은데로 나온다고 제가 약관34에 나이에 만 32었을때 정말 기적적으로 난 박사학위도 없었는데 석사학위 달랑 가지고 대학에 교수로 가게 되었어요.
거기서 경쟁을 했는데 필기시험을 본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 프랑스에서 유학하고온 사람 뭐 영국에서 유학하고온 사람 다 떨어지고 내가 붙었어요.
물론 여러가지 어드밴티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째튼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러고 인제 거기서 가르쳤어요. 그 얘기하면 굉장히 재밌지만은, 이제 하나님이 참 지혜를 주셔서 사람을 다룰줄을 아는 기술들을 터득하게 하셨어요.
가니까 막 신학교가 아주 험해요. 험해.
그때는 뭐냐면 공부 안하던 애들이 막 신학교 들어오는 때였거든.
그래서 일차 떨어지고 신학교는 다 2차야 신학대학은.
그래서 일차에서 떨어지는 애들 주슬려고 삼테기들고 기다리는 거야.
그러니 재수는 하기 싫고 아무대나 쑤시고 들어갈려니까 별애별 놈이 다 오는거야.
그래가지고 들어오면 심지어는 입학시험에 와가지고 내가 하도 속이 상해서 그것도 막 불이익을 주면 바로 소송들어가고 그러잖아, 그래서 인제 애들을 풀어가지고 담배피는 놈들 이름을 다 적었어 면접시간에.
그래서 담배피는 녀석들 명단하고 신학과 진학 명단하고 대조를 하는거야.
그래서다 표시를 해서 노놔주는 거야.그런데 인제 그렇게 사람들이 이렇게 보면 다 틀려요.
근데 이게 가장 괴로운게 뭐냐면 그 컨닝하는거, 제가 그 되게 싫어하거든요.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하여튼 그 부정직한거에 대해서.근데 애들은 그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야 다하는거야. 그래서 하는거야.내가 가르치던 과목이 또 히브리어였거든 히브리어는 그거는공부를 죽어라고 하든지 컨닝을 하든지 해야 점수가 나오는 과목이거든.
근데 애들이 컨닝을 하는거야 그래서 컨닝을 하지 말아라. 그래도 컨닝을 하는거야.
근데 그때는 이제 레포트를 써내면 그 레포트를 보통 한학기에 한 400장정도 받았는데 그거를 모두 읽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것을 다 골라내서 그래서 사본과 원본을 대조를 해요.
조교하고 쫙 펼쳐놓고 선생님들에겐 어떤 감각이 있냐면은 막 이렇게 읽어도 한번 읽으면은 다른것들 펼쳤을때 어 이게 내가 본건데 이런 감각이 있어요.
그래서 인제 어떻게 했냐면 쭉해서 그렇게 놓고 인제 다 묶어.그러고 게시판에다 방을 붙이는거야.신학과 1학년 1번과 7번이 레포트가 비슷함10번과 27번이 비슷함 9번레포트는 28번+32번+42번을 조합한것임 이 사람들이 각각 손잡고와서 해명을 하지 않을시는 모두 F처리됨
그건 이제 히브리어가 아니라 이제 다른 과목들 논술에서나.
그렇게 이제 방을 써서 붙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씩 들어와서 해명을 하고 어떤놈은 나는 그냥 냈는데 가져갔다는애도 있고 어떤 애는 하나가 썻는데 샘물체 명조체 그담에 옛체 고딕체 해가지고 막 그렇게 해서 내는거야.
그러니 인제 인제 다 정리한 다음에 마지막에 면담을 하는거야.
그때는 뭐 충성발이 뻣쳤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하는거야.
근데 이제 먼저 면접하기전에 면접들어오는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인가 이걸 보는거야.
아 이제 들어와 이제 똑똑똑 두드리니까녜
문을 벌컥 열고 안녕하세요 들어온다고,그래 넌 뭐냐?
히히히 웃으면서 교수님 저 레포트 비슷하다 그래서 베껴썼다고 해서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이제 화가 안났어도 큰 화를 내는 것처럼 해서 이거를 초반에 기세를 꺽어버려야돼.
그래서 레포트를 가지고 내가 과격한 성격은 아닌데 확 던져버리는 거야.
확 던져 그러고 천천히 하면 안돼 완전히 정신을 못차리게.
니가 전도사야 임마니가 신학생이야? 니가 신학생이야?
이렇게 레포트를 베껴쓰고 이렇게 레포트를 베껴쓰고도 니가 신학생이야?
소리를 지르고 너 그리고 이제 뭐 잘됐지 그땐 뭐 이제 다 나오는거야 너 출석부를 보니까 다른 과목도 수시로 결강하던데 너 어디 가는거야?
이런 나쁜놈 말이지...어쩌구저쩌구....난 너같은 녀석하고 말하고 싶지않아 내가 보기에 넌 소명하고 상관이 없어 진짜 나쁜 사람은 따로 있어임마.
너 신학교가도 된다고 도장찍어준 그 사람하고도 얘기하고 싶다 니네 담임목사님 전화번호대
전화통을 딱 드는거야 그럼 이제 완전히 기세가 꺽여져져요.
목사님 교수님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용서하면 뭐해 니가?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아는데 가서 임마다른길 찾아 하지말고.
우리애들이 너같은 녀석들한테 목양을 받을 생각을 하면 내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용서하긴 뭘 용서해 그러고 이제 소리를 지르지.
그러면서 레포트를 다시 쓰면...끝났어 임마.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나가 소리를 지르면서 또한번 집어던지면 그럼 이제 나가.
그럼 이제 밖에서 애들이 대기하면서 야 어떻게 됐니?
그 다음에 학생이 딱 들어와 야 너 같은 놈은 대학 당장 그만둬 자퇴해 임마
걔는 절대 자퇴 안할애야 근데 이제 그 다음 녀석이 그 딱 들어와.
인제 앞에서 벌써 난리 치는걸 봤기때문에 난 이제 죽었구나 들어와서 이제 숨소리가 벌써 고르질 않아. 너 거기앉아라 소파에 앉아라. 괜찮습니다.
앉아 임마. 녜. 그러고 이제 가까이 가서 얘기를 커피 녹차 둥글레차 홍차 중에서 이렇게 다섯가지가 있는데 뭐 먹을래? 그러면 괜찮습니다.
그래도 뭐 한잔마셔 물줄까? 커피줄까? 아닙니다.
그럼 냉수라도 먹어 그러고 냉수하나 줬어요.그러고 얘기하는거야 이제.
아직도 밤에 아르바이트 다니냐? 녜.
아내가 그때 무슨 어디서 일한다고 했지? 인쇄소 다닙니다.
힘들겠구나. 가만히 있어요. 니 아내가 되게 힘들겠구나 어머니가 권사님이시라며?
매일 너를 위해 기도하시겠지?
눈물이 쭈르르 흐르면서 걔는 이 자식 임마 당장 신학교 집어쳐 그러면 걔는 일층으로 바로 내려가서 바로 자퇴원서 쓰는애야 그런애들을 그렇게 다루면 안돼지.
그럴수도 있지. 니가 원래는 성실한 앤데 너무 힘들게 학업을 하다보니까 아르바이트 하면서 책읽을 시간이 있었겠냐? 이해한다.
눈물이 쫙 쏟아져 그러면서 나도 옛날에 고생 많이 했거든.근데 나중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꺼야 힘들때마다 철야기도하는 권사님 생각하고 너하나 뒷바라지 할려고 밤늦게까지 인쇄소에서 일하는 자매 생각해서,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애쓰겠니? 너 하나 참된 주에 종 되라고 그러는거 아냐? 그담엔 막 콧물까지 쏟아지는 거야.
3일안에 다시 써가지고와 학점줄테니까.
그 대신 아무한테도 말하지말고. 예. 그러고 막 울면서 나갑니다.
그러면 밖에 있는 놈들이 또 물어보는 거예요.어떻게 됐어?
근데 그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이 나에게 있어선 굉장히 잘 적용이 됐어요.그래서 지금도 역사가 이렇게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전설처럼 내 이름이 남아 있대요.
선배들이 옛날에 그 이상한 교수 하나 있다 갔다.
근데 그게 바로 뭐냐면 좋은 교육에 방법이라는 거야. 우리도 지혜의 눈을 가지고 보면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잖아요?
그렇게 다르게 대해준다는것 자체가 그게 뭐겠어?
뭐로 20명씩 30명씩 그거를 일주일 내내 상담을 하면서 그렇게 핏대를 올리고 커피를 타주고 왜 그러겠어?
그냥 방 써붙여서 레포트 베껴낸놈들 다 F다 재수강해라 그리고 이상 끝.
그리고 전화 꺼놔버리면 끝나는거지 그런데 그건 사랑이 없는거지 그렇지 않아요?
무슨 교육이 되겠어? 그거 바로 잡아 주어서 그래서 충격을 주고, 자극을 주고 인격적으로 설득해서 깨닫게 만들어주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하신다고.
제가 주님을 만나고나서 정말 감동을 받은게 뭐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셔요. 주님앞에 무릎을 꿇기 싫은데 군화발로 조인트를 후려까듯이 그렇게 우리 무릎을 차서 아구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무릎을 꿇게끔 그렇게 안하시고 절 안하겠다는 놈을 목을 쳐서 목뼈를 부러뜨려서 고개 숙이게끔 그렇게 안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자존심 상해서도 그렇게 안하시는 거예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경배가 아닌데 그게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참다운 경배가 되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그걸 원하시는 거예요.
그 늘 항상 얘기하는게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속에서 선 은혜의 작용땜에 우리들이 주님을 믿게 된다고 가르치지만은 그러나 사실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이 믿고 싶으면 믿고 안 믿고 싶으면 안믿는거야. 지금이라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안믿겠다 못믿겠다. 그러고 뻐대고 두 발 뻗으면 안 믿으시는 거예요. 안믿으시는 거예요.
그게신앙에 있어서 인격적인 승복이예요. 인격적인 승복.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인격적인 승복을 우리에게 받아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다양한 삶에 경로로 우리를 이끄시는 거에요.
그래서 때로는 우리들에 이 마음이라고 하는것은 환경에 의해서 변하잖아요?
그래서 때로는 시련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구나 하는걸 깨달을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 마음을 붙잡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에 그 음성이 매우 특별하게 다가오도록.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거야그런거야.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는 동안에 일평생 가슴에 새겨야할 단어가 있는데 그게 인격적이라고 하는 단어예요.누구의 강요나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과 관계에서 책임있는 인격적인 존재로써 주님을 믿기를 뜻하고 마음을 먹고 그 분께 마음을 드리고 그분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그것을 마음속에서 가져야 되는 거예요.
그게 인격적인 신앙이예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인격적인 인격적인 작용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되요?
상대방에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이고 내 말을 나에 마음을 언어로 표현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때 이게 인격적인 관계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인격적인 관계는 결국 뭐예요? 하나님에 말씀을 통해서 주님에 마음을 전달받고 내가 마음에 먹고 있는 것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아뢰는 거에요.
어떤 사람들은 가끔 나한테 어떤 청년들이 그렇게 물어보거든?안 믿어지는데 어떻게요?
그거 사람들 붙들고 안믿어지는데 어떻게요?그러고 물어봐야아무도 해결해주는 사람 없다.
대놓고 하나님께 얘길 해라 니가.
하나님 제가 진짜 안믿어지거든요 그렇게 얘길해라. 그래서 믿고 싶으면 믿게 해달라고 해라.
내가 너에게 믿음을 주는게 아니라 주님이 주시니까 안 믿어지면 주님께 직접 안믿어진다고하고 주님을 보고싶으면 직접좀 보여달라고 그분께 직접 아뢰라. 그러면 하나님이 신기한 방법으로 너에게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 하나님께 매달려라.매달리는것 자체가 신앙이니까 말이죠.
오래전에 일인데 지하실에 교회 있을때 였어요.
지금은 우리교회를 떠났는데 형제가 하나 있었어요.
근데 전혀 신앙과 별로 상관이 없는 형제였는데 우리 교회 나왔어요.
회심을 했어요.
예수그리스도를 만난거야. 너무 행복한 거야.
근데 결혼을 약속한 자매가 있었어요. 근데 일주일 내내 일하느라고 연애를 못하다가 이 자매가 인제 주일날 좀 일요일이지 그 자매한텐 일요일날 그 형제를 만나려는데 안만나주는거야
왜 그러냐면 예배드리러 간다는 거야.
아침에 와가지고 대예배 낮예배 드리고 전도나가고 오후예배드리고 저녁 세미나까지 듣고
그러고 밤중에 나가니까. 그러니까 이 자매가 마음이 상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가 이제 형제가 나를 만나려면 교회로 와라 자신이 있었나 보죠?
인제 자매가 교회에 온거야. 그러니까 인제 그 자매가 너무 불쌍하니까 영적으로 불쌍하니까 우리 함께 하나님 잘 믿자 그렇게 된거야. 그런데 벌써 자매는 마음 한구석이 찌그러진거야 왜냐면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분이 내 애인을 뺏어간거야 모르니까 느낄 수 있는거지.
그래가지고 둘이 와서 하는데 그때는 설교가 진짜 길었거든요. 내가 생각해도.
100분이었어요 100분. 그러고 길면 120분 60분하고 내려오면 교인이 모두 어디 아프시냐고, 지금은 뭐 근데 그게 그런데다가 또 얼마나 길고 복잡하고 그 다음에 소리소리 지르고 이렇게 조용히 안했거든요 소리소리 지르고.
자매가 앉아있는데 계속 조는거야 형제가 계속 꼬집는거야.
이것도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거잖아 한두번이지.
그러니까 딱 뿌리치더니 그러더니 이 자매가 드디어 교회를 안나오기 시작했어요.
이제 뭐라고 그러냐면 나 인제 시골내려가겠다.
그래 무슨뜻이냐니까 난 너랑 결혼할려고 했는데 안해도 좋다. 내가 진짜 너 만나러 그 교회에 다니는게 꼭 아부하는거 같에서 나는 적성에 안 맞는다. 싫다.
그러면서 형제가 와서 우는거야.어떻게 하냐고.
그래? 내가 해결해줄께 오라고해라.
그래서 자매가 왔어요. 그래서 인제 자매를 이렇게 대하다 보니까 어떤 사람인지 좀 알겠어요.
그래서 내가 이랬어요. 너 이제 이 자매한테 교회나와라 나오지마라 뭐 졸지마라 그런 얘기하지 마라 와서 둘이 붙어앉지도 말고 자매 앞에 앉으면 넌 뒤에 가고 자매 뒤에 앉으면 넌 앞에 앉아 양쪽에 떨어져 앉아 신경쓰지말고.
그러고 인제 자매하고 약속을 했어요. 자매 넌 나가 있어라 그랬어요.
저 형제가 니 맘에 드니?너무 사랑한다는거야.
결혼하고 싶으냐?하고싶다는 거야.
그런데 쟤는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에 아들이 됐으니 너도 예수를 진심으로 믿어야지만 결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건 자기가 이해를 한다는거야 근데 안되는걸 어떻게 하냐 이거야.
그래서 내가 이랬어요. 4주만 교회 나라와 4주만.
그래서 니가 주님을 못만나면 니 마음대로해라 시골을 가던지 말던지 니 맘대로 해라.
그래서 내가 이랬어요.너 언제 예배나오냐니까 어차피 그 형제 보려니까 수요일 날도 나오고 주일 오후에도 나오고 주일날도 나오는 거예요.
나오면 뭐해 이러고 있는데, 그래서 내 이랬어요.
수요일날 나오지 마라 그리고 주일 오후도 피곤하지? 주일예배 끝나면 집에 일찍 들어가서 씻고 텔레비나 보다 자라. 그대신 주일날 토요일날 일찌감치 자고 주님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주일날 요자리에 와서 앉아라. 그리고 너는 설교 끝날때까기 성경도 보지말고 찬송도 보지 말고 나만 쳐다봐. 그리고 4번만 예배를 드려 그러고도 주님을 못만나면 니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안계시구나 그리고 시골을 니가 그렇게 시골 내려가고 싶다니까 그러면 그 형제하고 헤어지도록 내가 허락을 할테니까 가라.
할 수 있겠냐? 한번 해보겠대. 그래서 인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제보고 들어오라 그랬어요.넌 다음부터 이제 얘보고 교회가자고 전화하지도 말고 언제 갔나 뭐 그런것도 알아보지도 말고 졸든지 자든지 깨우지도 말고 넌 절루 떨어져 넌 저쪽으로가 넌 거기 앉어.
그 다음 주일날 교회를 왔어요.아멘.
그래서 듣는거야 이제. 근데 정확하게 2주만에 회심했어요. 그 막 예배 딱 끝나고 나서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에게 소원이 굉장히 많으시다는것이 나왔다는 거예요.
끝나고 나서 이제 전도사님이 여전도사님이 상담을 했어요.
통곡 하면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님을 영접했어요.
그러니까 막 기쁨이 확 밀려들어오는거예요. 그 기쁨이 얼마나 놀라와요.
그 놀라운 기쁨이 확 밀려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 그랬냐면 그 형제하고 결혼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기는 신앙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가지고 몇달후에 내가 주례해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그러니까 내가 모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한 마디에 이야기가 있어요.
그 방황은 해결안돼. 다른 곳에서 수 없이 답을 찾아볼려고 방황해도 답이 안돼.
여러분들을 이렇게 보면은 참 답답해. 아니 인간적으로 생각할때 나는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삶과 죽음을 오가는 고민을 했거든요. 여러분보다 더 어릴때.
20,19,20,2121살에 내가 회심했으니까 17,18,19,20 그때 그때 그렇게 고민했거든.
근데 그거야. 아니 믿으면 믿고 안믿으면 집어치우는거지 그 뭐러 꾸역꾸역 그러고 나오냐 이거야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면 자기가 교회 출석하고 있는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될꺼 아녜요?
그러면 목적이 뭐냐 이거야 도데체..아 주님이 없나 하나님이 안계신데 이러고 꾸역꾸역 나와서 그거 수많은 피비린내 나는 경쟁이 존재하는 속에서 그거 뭐라도 해야할 그 시간에 교회 나와 가지고 찬송부르고 거 예배시간에 또 졸고 기도시간엔 또 딴 생각하고 아니 그러면서 젊은 시절을 왜 보내느냐 이거여?
없다고 믿어지면은 정직하게 하나님께 당신은 없는 걸루 제가 그렇게 오늘 생각을 하고 갑니다하고 생각있으시면 다시불러주십시요 하고 가서 열렬하게 아니 김연아처럼 피겨스케이트를 배우던지 아님 뭐 하다못해 당구를 배워서 당구도사가 되던지 공부를 하던지 그게 뭐예요 그게?
그래 내 항상 얘기하는거야 확실히 해라.믿든지 말든지. 그 대신 한번은 과정을 거쳐라.
목숨을 걸고 주님을 보여달라고 하고 한번쯤은 그런 기회를 가져야지 그게 책임있는 행동이지? 그렇잖아요?
그러면은 그렇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보여주시는 하나님에 방법은 둘도니고 딱 하나야.
이게 인격적으로 당신에게 다가와서 인격적으로 자기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건데 그 하나님은 우리에 지성속에 말을 거시고 그리고 우리에 지성속에 다가오시는 분이예요.
그래 그 자매보고 얘기한게 너 흐리멍텅한 태도로 교회에 나오면 수요예배 아니라 금요예배 나와도 소용없다 딱 한번만 예배드려.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거니까. 정신똑바로 차리고 똑바로 앉아서. 그리고 매 순간 깨닫게 해주십시요 깨닫게 해주십시요 내 마음을 주께 드리나이다 기도하면서 들어라.
딱 두주만에 통곡을 하면서 회개를 하고 변화되는거예요.
그거잖아요?
우리 교회 김남권장로가 내 바로 밑에 동생이예요. 근데 이 친구가 교회를 다니는거를 내가 10대때 한참 쇼펜하우어 그담에 사르뜨르 하이데커 고등학교 시절에 파졌었거든. 공부 안하고 매 그런 책만 읽었어요.근데 나중에 목자가 되고 나니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 섭리속에서 그렇게 지내온건데..그 뭐 마음속에서 사람들 다 우습게 여겼지 진짜. 또 내가 고등학교때에는 영어공부를 너무 좋아해가지고 자살하고 싶었는데 영어가 너무 재밌어서 못죽었어요 진짜예요 농담이 아니라.그래서 구원과 하나님에서도 얘기했잖아 누구야 저 버트라트러스책 그런거 읽는 재미로 살았어요.
그러니 뭐 성경이 눈에 들어올리가 있나? 뭐 보지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아이고 뭐 그렇게 치사하게 빼나? 보지못하고 믿는자는 복이있나니 아니 보여주고 믿으라고 그러지?
내 동생 교회 다니는거를 못다니게 핍박도 안했어요 살살 이야기해서 얼마나 헛된 책인지를 보여줬어요. 아니 뭐 신앙이 뭐가 있겠어요 우르르 무너져서 안나오는거야.
나중에 내가 회심하고 나서 정말 회개했죠. 그러고 다시 또 인도하느라고 형이 또 뭐저래 언젠간 나가지 말라고 조금 있더니 다시 또 나가야 된다고..
근데 그러고 이제 우린 떨어져 살았는데 정말 내가 가장 책속에서 비판하는 그리스도인었어요. 내가 책을 많이 썼잖아요? 나올때마다 한권씩 주잖아요.
집에 깨끗하게 꽂혀있어요. 어느 책이든지 내가 주는 책을 딱 펴면 오늘 처음 햇빛을 봅니다 그러고 얘기를 하고 있다고, 그러더니 개척교회한지 한 3년쯤 됐는데 어느날 나한테 찾아와서 심각하게 얘기를 해요.
형. 왜? 내가 아무래도 형교회로 옮겨야 될것같애. 그래서 나는 굉장히 감동을 받았어요. 아 뭔가 중대한 신앙에 결단을 하고 열린교회로 온다는 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그게 아니라 그때 내가 우리집에서 우리 아버님 어머님을 모셨어요 같이 살았어요. 한 2년동안.
근데 이 친구가 효자야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번은 부모님을 찾아뵈야되는데 집에서 모처럼 휴일인데 예배당 갔다오는것도 힘든데 그것도 형 형네 집에까지 와가지고 인사를 할려니까 이게 경제적이지 않는거야. 그래서 예배도 드릴꼄 교회에서 다 만날테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하고 한달에 한번씩 봉투나 하나 드리고 오면은 자기 주일이 굉장히 가벼워질꺼다 휴일이가벼워질꺼다 그러고 생각을 한거예요.근데 교회에 왔는데 중대한 오산이었지.
딱 들어왔는데 뭐라고 그러냐면 형님 우리 교회에서 주일예배 저녁예배 모두 합친거보다 여기 주일예배 낮예배가 더 길어.
그러니 등록을 했으니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나올 수 밖에 없잖아요? 그러고 또 뒤에가서나 앉지 항상 여기에 와서 앉는거예요 가운데.그땐 어떻게 됐냐면 가운데 통로가 있는데 지하실이었는데 딱 120명 들어가면 적합한데 180명을 집어넣었거든.그러니까 막 통로를 탁 마지막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밖에서 의자를 가져오는거야 통로를 봉쇄해 버리는거야.
그러니까 들어올땐 자유지만 나갈땐 못나가는거야. 그러고 이제 이렇게 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다른 교회는 주보라도 있잖아 그거라도 뒤적이다 보면 시간이 좀 가잖아 그런데 주보도 없어 그러고 예배를 드리는데 온 몸을 어떻게 할지를 몰라.
자다가 일어나도 설교는 계속되고 있어, 근데 참 내가 봐도 딱해.
그때는 내가 설교시간에 그러면 야단을 쳤거든 뭐러 그러고있냐고 똑바로하라고 근랬는데 동생이잖아 얼마나 자존심상하겠어 내비러뒀지 굉장히 눈에 거슬렸지.
근데 자기가 한달을 교회에 다닌 다음에 어느날 궁금하더라는거야.
이 100분이 다 되가는데도 끝나지 않는 이 끝없는 설교.이거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돌아봤는데 그게 이제 회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거야.
온 예배당에 자기처럼 예배를 드리는 사람 자기 딱 한사람이래.이렇게 쳐다보니까 수건으로 눈물을 닦고있는 사람 이렇게 쳐다보니까 눈이 빨개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여기서도 보니까 이사람은 똑바로 서서예배당 전체가.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했냐면 어쩔 수 없다 들을 수 밖에 없다, 주보도 없고, 나갈 수 도 없고, 자기하고 좀 박자를 맞춰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처음으로 한 달만에 듣자 그러고 결심을 했대요.그러고 와서 딱 앉아서 뭐라고 그러나 그리고 처음으로 듣기 시작하는거예요.
근데 한달만에 제 동생이 회심을 했어요 거기서. 그 전까지는 내가 보기엔 중생 없었던것 같애어째튼 그건 모르지만 회심을 했어요.그러고나서 그 다음서부터 하나님에 말씀이 들려오는 거예요.
집에 가니까 가족들이 인정을 해주는거야 자기 남편이 변하는 아빠가 변하는 일찍들어오는거야 그리고 오면 성경 읽고 아이들 위해서 기도해 주고 그리고 기쁨이 쏟으니까 온유해지는거야.
근데 그 아내가 캐톨릭 신자였거든요. 무섭더래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것 같더래.
저 사람은 만났고 나는 못만났다는 느낌을 받을때 두려움 그게 사실은 최상에 선교예요.
제가 말씀드리는건 뭐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격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그러니까 지성을 닫아버리면 절대 회심도 없고 절대 하나님 못만납니다. 이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그는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없는거예요.절대로 없습니다.그거예요.
그래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뜻을 탁 세우고 오래도 필요없어요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앞에당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내가 믿든지 떠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마음을 쏟아서 간절히 기도하고 예배시간에 설교를 잘 들어야되요.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요.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자기가 목소리를 내면 양들이 자기에 목소리를 듣고 따라왔던것처럼 자기는 그 하나님을 그렇게 믿고 따라간거예요.
그런 관계속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는데 이 모든 그림을 다 종합하게 되면 결국은 시인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에 목자되신 큰 사랑을 보여주는 거예요.
누가복음에서 잃은 양에 비유가 나오잖아요.돌아와서 양을 헤아려보니까 100마리에 여야 하는데 한마리가 없는거예요. 그러면 한 마리를 잃어버렸는데 그 양이 어떤 양인지 목자는 너무 잘 아는거예요.교회에서도 사고치는 사람이 계속 사고치지 돌아가면서 사고치지 않는거예요.
그 양을 찾아나서는거지 양을 찾아나서는데 때는 저녁시간인데 그러면 양 한마리에 그게 얼마나 된다고 찾아나서서 밤길에 사고가 나서 다치던지 도적이라도 만나는지 맹수라도 만나면 목숨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걸 찾아나서는거야. 그게 뭐냐면 목자에 심정이예요.
양을 찾았어 업었어 다리가 아플까봐 업고 두 어깨에 걸치고 오는거예요. 동네 사람들 보고 뭐라고 그러냐면은 야 너희들 저녁먹었냐? 아니 야 빨리 내려와 우리 잔치를 벌이자. 왜?
내가 잃어버렸던 양을 찾았거든. 오늘 너무 기쁜 날이야. 양한마리에 몇푼이 된다고 동네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버려 설마 그 양을 잡아서 바베큐가 될건 아니지.
수학적으로 계산이 안나오는거지.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구원하고 여러분들을 당신에 양떼삼으시려는데 뭔 덕을 그렇게 보시겠어요.여러분들이 인생을 살면서 나는 안 태어난것보단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자부할 수 있는 사람 이 중에 몇이나 되겠어요? 몇이나 되겠어요?
그게 부모에 마음이예요.자식이 나에게 뭘 해주고 내게 이익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게 바로 내 새끼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피붙이로써 사랑하는 그게 하나님에 사랑이란 말예요.
그게 주님에 사랑이야.그게 주님에 사랑이예요.
신앙은 바로 그렇게 당신을 떠난 나같은 인간을 찾아나서는 아버지에 사랑을 아는거, 이게 신앙이예요.인격적이어야 하는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간절히 말하고 싶어요. 태도를 분명히 하세요.
믿었으면 아멘하고 은혜를 받으며 순종에 길을 걸어가고 안믿었지면 친구들 앞에서 위장하지 말고 정직하게 주님께 대놓고 2년을 교회에 다녔는데 안믿어집니다. 주님은 계십니까? 안계십니까?안계시다면 내가 주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 갈 수 있도록 독립심을 주시든지 아니면 주님이 내게 당신 살아계신것을 보여주셔서 믿게 해 주시던지, 분명한 태도를 가져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교회에 다니는것이 여러분들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없어요.위선자들만을 만드는 거지.
그래서 주님을 만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그래서 누군가에 강요나 막연한 기대에 이끌리거나분위기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당신이 2000년전에 십자가에 메달려 죽으신 그것이 나에 죄때문이라는것을 나에게 명료하게 말씀해 주신 그 살아계신 주님때문에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고백을 하는거예요.
교회안에 잃어버린 양떼들이 더 많아요.
시인은 오늘 말합니다.그렇게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온땅과 하늘위에 높고 위대하신 그 분이 오늘 자기 마음속에 오셔서 자기 목자가 되어주셨노라고 고백을 하는 거예요.
다윗은 고백합니다.I shall notwant 내게는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거짓말이죠.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했으면 몰라도 다윗은 이 말을 할 수 없죠.
상처의 사람이었어요. 한 시대에 태어나서 위대한 정치가요 장군이요 한 나라에 재왕을 살았지만 개인적으론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죠.
어머니에게 사랑받은 이야기는 성경이 거의 침묵하고 있고 아버지가 있었는데 아버지에 편애때문에 자기는 아버지에 기억속에도 없는 아들이었어요.
사무엘 선지자가 기름 부으러 왔을때 이 자식입니까? 이 자식입니까? 형들을 계속 들여보내지만 아니다 너에게 또 아이가 없느냐?할때 겨우 생각난게 다윗이었습니다.
형들로 부터는 사랑을 받았습니까? 따돌림을 당했어요.
한 여자가 자기가 좋다고 결혼을 했는데 그는 자기에신앙의 세계를 이해못하는 영적인 수준이 안맞는 여자였어요.결국은 자기를 버렸어요.
살다가 가장 사랑하는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건 하나님이 죽도록 미워하시는 불륜에 관계였습니다.거기에서 아들을 낳고 위로를 얻었지만 하나님에 준엄한 심판은 네 집안에서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요 내 저들을 백주에 내가 욕을 보이리라.자기와 함께 살던 여자를 자기 배속으로낳은 자식이 동침하는 광경을 그 소식을 들어야했고, 자기 배 속으로 낳은 그 자식이 자기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칼을 들고 반란을 일으켰어요.
목숨을 함께 나누던 동지들이 배신을 했고 그리고 망명에 길을 떠났어요. 자기 배 속으로 낳은 녀석이 자기 배속으로 낳은 딸을 겁탈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어요.
그 중에 한가지에 사건만 일어났어도 우리에 인생은 상처 투성이에 인생이 됐을거예요.
마지막엔 하나님에 징벌을 받아서 7만 여명에 백성이 온욕으로 죽어갔고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앞에서 구원에 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성령을 거두어 가실것같은위기를 느끼는 영혼의 암흑속으로 들어갔어요.
근데 왜 오늘 부족하지 않다고 고백을 하는 거죠? 부족한것이 많은 상처투성이에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때 주님에 그 인격적인 사랑앞에서 자기에 모자란 모든것들이 채워졌어요.우리에 인생에 불행은 상처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녜요.
주님에 사랑은 모든 상처를 극복해요.너무 너무 놀라워요.
인간에 사랑하고에 차이야.여러분들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못받았으면 그 사랑의 결실이좋은 남편을 만나서 사랑을 받아도 채워지지 않아 그래 성격결함자로 남는거예요.
효성스러운 자식을 만나고 소중한 부모님으로 부터 사랑을 듬뿍 받아도 남편을 만나 사랑을 못받으면 그 마음에 공허함이 메워지질 않아요.부모로부터 사랑받고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아도 자식이 대못질을 해놓으면 남편에 큰 사랑이 위로가 안되는 거야.
이게 인간에 사랑이 각각 구획이 지어져 있어서 적당한 때에 사랑을 가득 부어줘야야 온전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그런데 그런 것들이 안채워졌을때 망가진 인간이 되는데 놀라운건 뭐냐면 하나님에 사랑은 이 모든 빈칸을 다 채울 수 있는 유통적인 사랑이란말예요. 공통적인 사랑이예요.
그래서 엄마 아빠 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어도 주님을 깊이 만나면 주님이 그러셔요.내가 너에게 열명의 엄마 백명에 아빠보다 더 낫지 않니?그래서 시인이 고백을 하잖아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에 음성 너는 내것이라 내것이라
괜찮아요. 소설같이 험한 인생의 길을 걷고 상처투성이에 인생을 걸어도 주님은 그 모든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예요. 약이예요.
정말 놀라워요. 그래서 이 시인이 그런 모든 결핍속에 인생을 가시밭길을 지나왔는데도 I shall not want 나는 모자라는 것이 없습니다.왜? 자기와 함께 하시는, 자기를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때문에.
그래서 우리에 모든것을 그 분앞에 쏟아놓을 수 가 있어요. 그게 하나님에 사랑이예요.
그 사랑에 붙잡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것이 아주 많은, 상처에 사람들이 오히려 오히려 상처받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을 보태어주는 그들이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는 거예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게 운동이예요. 운동. 스포츠를 얘기하는게 아니라 movement 잘 믿자충성하자 확 바람잡는거.
이게 다 헛개비야. 각자 각자 속에 하나님에 말씀이 들어가서 아 그렇구나 내가 어디든지 다 갈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다 갖고자 노력할 수 있지만 아 그렇구나!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에 하나님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 It's so good to me
확 밀려오는거예요. 어쩔 수 없이 교회다니고 어쩔 수 없이 기독교 신앙을 붙들고 있는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도 멀리 떠날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러나 내가 그 좋으신 주님을 떠나서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외로운 날에 나에 친구요 위로요 내 살아온 인생에 모든 고통스러운 길들을 다 아시고 용납해주시는 유일하신 하나님, 그러면서 우리 자신을 그분께 충분히 맡기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비로소 진리를 따라 살고 은혜의 세계를 향하여 걸어가는 순례자의 인생길이 겨우시작이 되는거예요 시작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