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구역장 수련회 저녁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이 세상에는 힘든 일이 참 많아요. 그리고 그 힘든 일을 감당하노라면 많이 애를 쓰지 않을 수가 없지요. 사실 교회 안에서도 우리 성도들이 하는 일을 보면 한, 두 가지 일이 아니라 다양하고 아주 많은 종류의 일을 성도들이 합니다. 그리고 그 많은 섬김과 일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며, 섬기며 교회가 교회다워 가는 것이죠. 어느 섬김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 섬김이 없지요. 그 섬김은 정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꼭 교회에 필요한 일들이고 또 그 일들이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의 종류에 따라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동기를 가지고 섬겼느냐에 의해서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 앞에 평가받는 것이죠.
오늘 우리 앞에 있는 이 본문은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이 전해준 처음 그 복음을 배반하고 유대주의자들의 꼬임에 빠져서 복음을 떠나려는 위기 속에서, 이미 그런 일들이 교회에 누룩처럼 번지고 있었을 때에 사도 바울이 아주 격한 감정을 가지고 써내려간 편지에요. 오죽했으면 인사말도 없이 시작한 이 편지는 만약에 우리가 전해준 것 이외에 다른 것을 누가 전한다면 천사들이라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할 정도로 격한 감정이 되었어요. 자신들만 그릇 믿을 뿐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을 그릇 믿게 만드는 그 모든 잘못을 이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이 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그들을 아주 심하게 책망하면서 그러면서 율법과 복음의 교리를 가르치다가 이 지점에 와서 목에 메인 것이죠. ‘나의 자녀들아!’ 그까짓 것들이 뭐 자기의 자녀겠어요? 복음을 전해준 사도 바울도 얕잡아보고 그까짓 게 무슨 사도냐고 시비를 걸어서 사도의 권위에 도전하고, 복음의 가르침을 버리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이단적인 사상에 흔들리는 이 인간들이 어떻게 자녀일수 있겠어요? 그런데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 그랬습니다.
사실 남자는 영원히 애를 낳아본 적도 없고 낳을 수도 없기 때문에 사실은 이 해산의 고통에 대해서 할 말이 없습니다. 해산의 고통을 경험한 모든 여자들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봐서 그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작으면 2.5킬로, 크면 4.5킬로, 심지어는 5킬로씩 되는 아이들을 그 아이들을 살을 찢는 고통 속에 아이를 출산할 때 그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지요.
언젠가 제가 한 3년 전에 편도선수술을 했습니다. 나는 심방을 갔을 때 ‘편도선 수술’ 그러면 항상 ‘같잖은 병’ 그렇게 생각을 하고 건성으로 심방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커지고 나서는 편도선 같은 것은 심방 받을 자격도 안 되지요. 교회가 작았을 때의 일이지요. 그런데 하여튼 무지무지하게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저 정상적인 상태에서 절개를 하면 그 정도로는 아프지 않답니다. 그런데 저는 궤양이 아주 심각하게 발전해있었고 이비인후과 의사가 자기가 의사생활을 20년을 했는데 당신같이 큰 편도는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고 이미 편도속이 곪을 대로 곪아서 그래서 고름이 꾸역꾸역 나오고 밥을 먹으면 밥알이 그 속에 들어갈 정도까지 발전을 했어요. 그래 그것을 떼어냈는데 얼마나 아픈지 아무튼 눈을 뜨면 감기 싫고 눈을 감으면 뜨기가 싫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누워있으니까 문병을 온 표정이 내가 건성으로 심방하던 그 표정으로 와서 그렇게 별것이겠느냐는 듯이, 창자가 구만리라는 식으로 그렇게 해요. 그중의 성도 한분이 있었는데 나와 똑같은 상태에서 수술을 했대요. 내가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절히 느끼는 것이에요. 아휴! 목사님, 그것 자지러지게 아픈데……. 자기가 그것을 똑같은 상태에서 수술을 해서 얼마나 아팠는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고 그래요. 딱 그 사람 한사람만이 진지하게 심방을 하고 나머지는 다 건성이에요. 우리 집사람까지도 건성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자매가 문병을 왔는데 어떠시냐고 해서 아픈 것을 다 설명했더니 자매 하나가 마지막 얘기가 ‘목사님 아무리 아파도 애기 낳는 거에다가 대면 댈 것이 아니에요.’ ‘그래 나는 애기를 안 낳아 보았으니까 부인할 수 없지만 얼마나 아팠으면 저렇게 말할까…….’ 그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에요. 편도선 수술을 했는데 8킬로가 빠졌어요. 그래서 의사한테 가서 ‘아니 편도선수술을 하고 내가 8킬로가 빠져서 그렇게 아팠는데 당신은 왜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느냐’고 했더니 ‘당연하지요. 편도선 수술을 하고 8킬로 빠지는 것은 보통이고 아픈 것은 아무리 아파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한 그것은 괜찮다고 그러는 것이에요.’ 다 자기가 아니고 남이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가슴을 찢을 정도로 아픔을 가져다주지는 않아요. 물론 교회마당을 쓰레질 하면서도 가슴이 에이는 것과 같은 애절함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요, 식당에서 식기를 세척하고 국을 끊여도 주님을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어요. 그것은 틀림없어요. 그러나 영혼을 섬기는 것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긴 세월을 살을 에는 것처럼 그렇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섬김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다른 많은 일들도 하나님 사랑이 동기가 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일을 하면 적어도 일은 무너지지 않아요. 그런데 영혼을 향한 섬김은 그냥 일상적으로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일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결국은 영혼을 섬기는 그 일은 시간도 있고 건강도 있고 물질도 다 있어도 하나가 없으면 도저히 계속할 수 없고 계속하는 그 자체가 아주 견디기 힘든 고통인 것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에요. 다른 일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일하는 것 사이에 구별이 모호할 수 있지만 영혼을 섬기는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자기 안에 있을 때는 섬기는 것이 쉽고, 섬기는 것이 감사하지만 그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을 때에는 도저히 섬길 수가 없는 것이에요.
영혼을 섬기면서 여러분들이 힘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세요. 시간이 없어서 힘들었습니까? 아니면 물질이 부족해서 힘들었습니까? 때로는 건강이 힘들어서 힘들었습니까? 물론 그것도 우리가 영혼을 섬기는 사역을 힘들게 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 사역을 접을 정도로 우리를 힘들게 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자기 자신이에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에서 멀어지는 자기 자신, 그것이에요.
저는 오늘도 차를 타고 교회에서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교회를 설립을 하고 14,5년의 세월이 이렇게 지나갔는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정말이에요. 그리고 지나온 세월들이 아스라하고 몸부림치면서 살았지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그런 세월이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젊은 시절에 이것보다 더 큰 교회를 하고 싶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만큼밖에 못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것이죠. 자기 자신에게……. 주신 많은 은혜는 주신만큼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데 쓰지를 못했고, 열심히 섬기고 일한 많은 날들은 순수함에 있어서 모자랐고, 순수하고 기쁜 맘으로 섬겼던 여러 날들은 지혜에 있어서 모자랐기 때문에, 살아온 모든 날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영혼을 섬기는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는 계속할 수 없는 섬김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영혼을 섬기는 일에 부름을 받고 많이 섬기다가 어느 날 섬김의 자리에서 멀어질 때 더 이상 우리들이 이 영혼을 섬기는 일에 애정을 갖지 않게 될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십시오. 그 때는 우리의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을 때 영혼으로 보이던 많은 사람들이 그저 인간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죠. 그 때 우리들이 멀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영혼을 향해서 오래 참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인내하시는 그 사랑에 대해서 우리들이 깊이 느끼고 그 큰 사랑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지 않으면 우리가 영혼을 돌보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리고 영혼을 섬기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그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에요. 영혼을 섬기는 이 일에 있어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든지, 혹은 내게 고통을 주는 영혼에 대해서 악한 마음을 품든지, 그렇게 하게 되면 우리의 목장이 황폐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영혼을 섬기면서 깊은 고통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면서, 주님의 은혜를 절실하게 구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여기에서 우리는 영혼을 섬길 때에 당하는 많은 고난들을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을 이루는 그러한 경건의 비밀을 위한 도구로 삼아야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영혼을 섬기면 섬길수록 사람이 진실하고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는 성화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어요. 그 비결이 뭐냐 하면 영혼을 섬기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리고 갈등을 겪을 때마다 항상 마음속에 충성되게 섬기셨던 예수를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그 충성된 섬김 때문에 나 같이 더러운 인생이 용서를 받아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가슴에 아로새겨야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영혼을 섬기는 사람의 가장 어려운 일은 그 소명의 동기가 되는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맨 처음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며 영혼을 섬기게 되었죠. 누가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정말 붙들리게 되면 그는 영혼을 섬기지 아니하고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덜 받으면 영혼을 안 섬길 수 있는데 사랑을 많이 받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영혼을 섬길 수밖에 없고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데 이바지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그 영혼을 직접적으로 돕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 이 일을 하다가 자의적으로 그만두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주님의 충성됨을 생각해야 해요. 덜 주무시고, 그리고 덜 잡수시고, 그리고 고난과 고달픈 노역의 연대기를 지내시면서, 그러면서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던, 주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구역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이 목회자의 마음을 잘 알아요. 너무나 잘 알아요. 그래서 충성되게 섬겨야하는 것이에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를 바라봐요. 왜냐하면 목사가 부른 것도 아니고 환경이 부른 것도 아니에요. 예수님이 직접 부르셔서 영혼을 섬기도록 세우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충성스럽게 섬겨야 해요. 그것이에요.
저기 강릉의 남대천에 가면 가을에 연어가 올라와요. 이 새끼를 까서 저기 태평양까지 갔다가 돌아와요. 그 돌아오는 연어는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오직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가야된다는 그 귀소본능 하나로 그 수만리 먼 바닷길을 헤엄쳐서 그래서 그 개천으로 올라오는 것이에요. 낚시꾼의 낚싯밥의 유혹과 그리고 많은 난관이 있지만 오직 가는 것이에요. 개울이 그럴 때에 폭포 같은 것을 만나면 그 큰 연어가 자기 몸에 멍이 들도록 부딪히면서 그러면서 폭포를 거슬러서 올라가는 거예요. 그게 연어에요. 충성되게 섬겨야 해요.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세계에 박해와 고난이 있을까요? 영혼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있어요. 그 영혼에 대한 끊임없는 헌신…….
그리고 두 번째는 오래 참아야 해요. 우리들이 어느 한순간 자기를 불사르게 내어줄 것처럼 순간적인 열정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충성 되다’고 말하지 않아요. 충성된 사람은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자신이 충성된 사람임을 보여줘요. 영혼을 섬기다보면 기쁘고 보람된 날들도 있고 멸시와 수치를 당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나는 아무리 많은 애를 써도 이제는 더 이상 이 영혼을 섬기는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것 같이 생각되어서 낙심할 때가 있어요. 영혼을 섬기기는커녕 나 자신 하나의 영혼을 감당 못해서, 그 자체가 버거워서 매일 매일의 삶을 이어갈 수 없어서 허덕거릴 때가 있어요. 그래도 참아야 해요. 참아야 해요……. 하나님이 맡겨주시는 영혼들을 저버리고 자기의 사명에서 쉽게 마음이 떠나는 사람들이 첫 번째 경험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상실이고, 두 번째는 마음이 급격히 굳어지는 것이에요. 사명의 자리에서 떠나면 마음이 급히 굳어져요. 그리고 때로는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 영혼을 버린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깊이 고통을 받기도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래 참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오래 참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인내해야하는 것이에요. 그게 사랑이에요.
제가 전도사로 있을 때에 모셨던 목사님이 어느 날 교역자 회의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세요. 어느 지체가 이 목사님에게 심히 대들었어요. 참 버르장머리도 없지요. 그러면서 목사님이 목회를 잘못해서 자기의 영혼이 매우 곤고하다는 식으로 얘기해요. 목사님이 깊이 낙심하시면서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그런데 그 형제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년 전에 목사님을 만나서 하는 말이 ‘제 인생에서 목사님을 만나서 정말 행복합니다. 수요일마다 들려주는 목사님 말씀 때문에 내 영혼이 삽니다.’ 그렇게 얘기했던 사람이 3년 뒤에는 ‘목사님 설교가 내 영혼을 죽입니다.’ 그게 영혼을 돌보는 것이에요. 그게 어려운 것이에요. 그 때마다 사람에게서 위로를 구하고 인정을 구하면 정말 추한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한분을 바라보고 내가 얼마를 살든지 내 인생에 연습이라는 것이 없고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데 내가 주님 앞에 갔을 때에 이 날이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오래 참으면서 기다려요.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도 호랑이가 잡아먹지 않는 사람이 둘이 있대요. 그게 누구냐 하면 첩을 둔 남자와 목사는 안 잡아먹는대요. 사자나 호랑이가 사람을 물면 어디부터 먹을 것 같아요? 모르죠? 여기부터 먹어요. 배부터……. 그런데 목사의 마음은 첩을 둔 남자의 마음과 같이 썩어서……. (그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괴로우면 썩겠어요.) 그렇죠? 그것과 똑같은 게 목사의 마음이라서 씹는 순간 뱃속에서 쓴물이 나온대요. 그래서 안 잡아먹는대요.
영혼을 섬기면서 걸어온 지난날들이 자신만만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은 아무도 없고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을 못 만난 것이죠. 정말 부끄러운 것이죠. 그러나 영혼을 위해 흘린 내 눈물 한 방울에 내 뼛속깊이 사무쳤던 나의 패역이 녹고, 그리고 영혼을 위해서 나를 죽이는 한 번의 자기 꺾음이 나의 혈기를 죽여서, 그래서 결국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십자가의 고난을 본받게 되고 그래서 예수를 본받게 되는 것이죠. 오래 참아야 해요. 거기 서있어야 해요. 거기 가만히 서있어야 해요. 때로는 달려갈 때도 있고, 때로는 도저히 달려갈 수 없어서 멈추어 설 때도 있고, 때로는 나도 병들어서 주저앉을 때가 있지만 그러나 돌아서서는 안 돼요. 가야 되요.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은 항상 영혼들보다는 주님을 더 많이 생각하고 예수를 묵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참 신기한 게 말이죠.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을 때에는 그렇게 밉고 원망스럽던 영혼들이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면 그 영혼들이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어요. 내게 행한 모든 악한 일, 그리고 악한 말, 그리고 내게 행한 그 모든 그릇된 행실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소외되어서 강퍅하게 살아가는 그 영혼이 그렇게 불쌍할 수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오래 참는 일이에요.
마지막으로 영혼을 섬기는 일군들은 그러한 고통과 깊은 인내 속에서 섬기되 눈물의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구속의 길을 가셨는데 그 길이 액체로 가신 길이었어요. 그래서 주님이 가신 그 길은 액체로 가신 길이었어요. 땀과 피와 눈물로 가신 길이었어요. 그래서 영혼을 위해서 섬기는 우리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도 살고 영혼도 살지만 우리의 눈에 눈물이 마르게 되면 영혼들은 살지 않아요. 구역 원들에게 앙케트를 해보니까 어떤 구역장이 싫으냐고 했더니 혼자서만 장황하게 떠드는 구역장이 제일 싫대요. 사실은 구역장이 혼자 많이 떠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혼자 있을 때에 해야 할 일이에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혼은 위해서 많이 기도하고 아주 많은 말로 하나님께 그 영혼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해요. 온 마음과 온 뜻을 다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아뢰고 그리고 영혼들 앞에서 나타나서는 말보다는 실천으로, 많은 장황한 말보다는 한마디의 지혜로, 그렇게 영혼을 먹일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구역장들이나 순장들은 학교선생님이 아니에요. 학생들을 죽 앉혀놓고 칠판에다 글씨를 쓰면서 떠드는 애들은 뒤에 무릎을 꿇고 손들고 있으라고 하는 학교선생님 같은 정신을 가져서는 안 돼요. 엄마의 정신을 가져야해요. 그래서 배고픈 아이를 옷섶을 풀어서 젖을 물리는 마음으로 그런 애정을 가지고 영혼들을 온전히 먹일 때 그것이 정말 구역장이에요.
그래서 오래 참아야 해요. 그리고 충성되어야 해요. 그리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구역장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영혼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그것보다 더 순수한 마음일 때가 없고 우리가 그렇게 영혼을 위해서 간절히 눈물로 기도할 때 그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요. 닫혔던 지체들의 마음을 열고, 굳었던 심령의 각성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도하지 않던 영혼에 기도의 은혜가 부어져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구역장이 해야 할 일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