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장 수련회 저녁집회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5-16)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든지 예수 믿는 사람이면 경험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결국 주위에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요일 날 밤에 수요 예배 들어가기 위해서 마당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왠 자매 하나가 찾아왔어요. 인사를 하는데 내가 다 알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누구냐?” 그랬더니 저기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그래서 “아 그래요?” “목사님이 여러 달 전에 여길 왔다 갔는데 제가 왔다고 그러니까 책도 한 권 주시고 사진도 찍어줬다”고 그래서 ”“아..그랬니?” 그랬어요.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정말 곤고하고 어지러웠는데 열린교회 사이트에 들어와서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정리가 되면서 너무 감사한 그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새 가족 환영회 때 나눠주는 그 쪼그만 화분, 그것을 들고 왔어요. 그러면서 이 “너무 작은 것이지만 목사님,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지 않고 화분은 작지만 그 때 마음이 참 크게 크니까 내가 받아준다 그러고 받았어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누구에게 고맙고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게 무엇이든지 그렇게 안 하고는 안 되는 것이 그게 사람의 마음이고 성도의 마음인데, 하물며 하물며 그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큰 사랑을 입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 섬기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죠. 그런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면에 있어서는 모든 섬김이 다 하나님을 향한 거니까 어느 것은 높고 귀하고 어느 것은 하찮고 그런 것이 없을 것이고, 또 누구든지 봉사하는 사람은 그게 하나님 앞에 꼭 필요한 일이니까 그 일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많이 경험하게 되면 도저히 안 하고는 못 베기는 일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영혼을 섬기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영혼을 직접 섬기는 그 일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그 직접 섬기는 그 섬김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약에 영혼을 섬기는데 주님과의 사랑의 과거가 없이 섬긴다면 그것은 그 부르심 자체가 잘못된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을 경험하고 나면 그러면 그 사람이 영혼을 섬기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드는 거죠. 모든 일들이 결국은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는 일이지만 왜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사무칠 때 그가 누구이든지 한결 같이 결국은 영혼을 섬기는 일을 선택하게 되느냐 하는 의문이 남죠.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면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에요. 그것이 무슨 지혜냐 하면 영혼을 섬기는 이 일은 자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그리고 자신의 행복이 중심적이라고 생각하면 영혼을 섬길 수가 없어요. 섬길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거기에는 끊임없는 자기 포기와 자기 꺾음, 그리고 자기를 버리는 끊임없는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끝없이 자기를 꺾고 포기하고 영혼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게 하는 이 힘은 당신을 사랑하는 참된 성도의 마음이 그 사람에게 있을 때만 그게 가능한 거죠. 그래서 못 하는 거예요. 물론 여러 가지 형편으로 지금은 당장 영혼을 돌보지 못 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강하게 그 사람의 마음을 때리고 지나가면 그는 영혼들을 위해서 직접 사역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것은 즉시 나타나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은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예수 믿고 나서 주님의 사랑이 너무 뜨겁고 감사해서 그래서, 전도하던 기억이 나잖아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양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시죠. 근데 그 사랑이 어디에서 오냐 하면 그 앎에서 오는 거예요. 앎에서..‘아버지가 나를 아시는 것 같이 아시고 또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그랬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 나오는, 구약도 마찬가지지만, ‘알고’라고 하는 단어의 대부분이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하나님께 대한 앎이 그 앎 속에서 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앎 속에서 그 관계 속에서 영혼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노라하는 고백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영혼을 섬긴다고 하지만, 이것은 머슴이 장작을 패고 물을 긷고 그리고 농사를 짓는 것 같은 그런 일이 아니잖아요. 이건 영적인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 일을 항상 잘 한다고 보장이 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의 기도 생활과 같이 누구도 기도에 있어서 ‘나는 이미 대가가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이 그렇게 우리가 영혼을 돌보는 것은 잘 감당할 때가 있고, 잘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에요. 늘 가변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뜨거운 사랑으로 영혼을 섬기던 사람들이 얼마 가지 못 해서 싸늘하게 식고 양떼들이 이리저리 유리 방황하는 것을 우리들이 늘 보게 되는 것이에요. 한 사람의 영혼의 사랑에 대한 깊이는 그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능가할 수 없고 한 사람의 영혼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는 그 앎을 넘어설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영혼을 섬기다가 보내는 고난도 있고 시련도 있고 여러 가지 많은 역경들을 만나게 되죠.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그러한 많은 사람들 만나면서 그런 고통을 겪는 거죠. 그러나 사실은 가만히 보면 우리의 영혼을 섬기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두 날개로 나뉩니다. 하나는 외적으로 영혼들을 잘 돌보는 구역장, 순장으로서의 다양한 의무들이 있어요. 그것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들을 느끼는 거죠. 또 한편으로는 그 환경이 어려워서 결국은 영혼을 돌보는 일을 못 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고, 은혜가 떨어질 때, 우리는 그 일을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거죠. 그래서 구역장에 가장 어려움은 한편으로는 영혼을 돌보면서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은혜에 넘치는 삶을 사는 거죠. 다시 말하면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게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속에 다가오고 어제 보다 오늘, 오늘 보다 내일, 우리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에요. 그것이 어려운 거죠. 여러분 한 번 구역장, 순장을 하다가 한 경험도 있고, 그만 둔 경험도 있지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 충만한 가운데 구역장을 그만한 적이 있습니까? 겉으로는 이런 저런 상황의 이야기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안에서 은혜가 식을 때 그 때 이 일은 감당하기가 어려운 일이 되는 거죠. 충만하면 보람이 있었던 그 일이, 은혜가 식고 나면 견디기 힘든 어려운 일이 되는 거죠.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 느껴져도 은혜가 살아있을 때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놓으셔요. 바꿔 놓으셔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돌려놓으시죠. 그리고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가 왜 이 일에 들어섰나...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예전에는 어려움이 생기고 나면 내게 어려움을 가져다 준 사람이 원망스럽고 미웠지만, 다시 묵상하면서 내가 왜 여기에 서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은 나를 일으켜 움직인 것은 누구도 나에게 강요한 사람 없어요. 주님의 사랑이 나로 하여금 영혼을 위해 봉사하고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는 것을 보지 못 하면 마음에 깊은 고통과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렇게 매달렸던 것이죠. 거기에는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있었단 말이죠. 우리 열린 교회가 어디에 가서도 교역자들이 자랑하는 게 뭐냐면 우리 열린 교회 큰 힘은 그 속에서 영혼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교사들과 구역장들이 많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힘은 교회의 시스템이나 체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각자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한 그 속에서 오는 거예요. 지금은 여기에 있지 않지만 지금도 교회 가면은 구역장 후보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요. 주님을 모르고 이 세상에 자기 같이 인생의 주인인 줄 알고 살다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시고, 그리고 생명까지 다 버리시고, 그 피로 자기를 구원하신 은혜에 감격하기 때문에
(찬양)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이런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다른 것이 많이 보이면 안 됩니다. 여러분, 경주하는 말을 잘 보면, 여기 안경 쓰고 경주하는 거 아세요? 여기다 이렇게 안경을 써서...여기가 안 보이게 이렇게..앞만 보게...왜 그래요? 이게 없으면 사방에 눈이 시야가 멀리 들어오게 되면 그러면 경주에 몰입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딱 하고 앞만 보고 막 달려가도록 말에게 여기 이렇게 기구를 씌우고, 경주를 하게 하는 거죠. 사랑은 집중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모두 한 때는 그런 고백을 가졌잖아요. 주님만 있으면 전 충분합니다. 주님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놀랍게 집중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이 집중도를 보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죠. 누구나 세워놓으면 다 하지요. 왜 못하겠습니까? 은혜가 식는다고 교리적 지식이 도망가겠습니까, 교회에서 배운 것이 어디 없어지겠습니까? 그러나 집중이 되지 않아요. 산탄처럼 확 흐트러지는 마음으로는 목양이 안 되죠. 그래서 일념을 가져야 된다 이거죠. 그래서 영혼을 섬기는 그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해야 합니다. 요즘은 뭐 너무 나이가 들어서 어디 가서 이런 얘기 해도 별로 도전도 안 되지만, 제가 신학교 가면 항상 그럽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머리에 아무 것도 든 것 없이 교회 가서 바람 잡고 수많은 성도들 주님 만나서 무엇이든지 배우고 싶어하는 성도들, 오락가락 하게 만들지 말라.” 최근에도 목회자 세미나를 갔는데 잘 들어보세요..세미나를 갔어요. 그래서 강의를 두 시간이나 했어요. 질문 시간인데,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성화가 뭡니까?” 목회자의 질문이에요. 어떻게..그래서 포기하고 왔어요. 공부 많이 하시고 책도 읽으시라고..그제서 물어보면 어떻해...목회한 지 10년 20년 지나고 나서..상황이 그런 상황이에요. 그래서 내가 “너희 그러면 절대 못 쓴다. 공부 열심히 해라” 그러면서 이제 내가 이야기를 “양복을 입고 예배당에 들어갈 때 배낭을 메고 가는 이유는 자기 암시다 나는 대가가 아니라 공부하다가 온 서생이다 학생이다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고 펑펑 울어도 가방을 메고 나오면서 나는 대가가 아니다 나는 학생이다” 그래서 얘기가 “항상 나는 고3이다”그렇게 생각해요. 고3은 다 대학 들어간 다음으로 미뤄요. 구역장 하는 동안 고3이야. 여고도 있잖아. 여고 3학년..남자 고등학교 3학년..고3이에요. 고3..끝난 다음, 고3이 끝난 다음에,,,그렇게 얘기하니까 어떤 상상력 없는 사람이 “그러면 고3이 언제 끝납니까?” 그러는데 죽으면 끝나. 죽으면...그래서 세상에서 못 한 것 ...하늘나라에서 해 봐...깊이 집중해야 해요. 집중은 아주 놀라운 힘이 있어. 목양을 하다가 보면 가슴 아픈 이야기가 왜 안 들리겠습니까? 항상 승리하는 광경만 보는 목양하는 사람도 없고요, 또 항상 실패만 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그렇게 안 될 때 안 좋은 이야기가 들려오고, 영혼들이 강퍅해진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 그 때 겸손해지죠. ‘아..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 많은 지식, 그 좋은 기술, 구역장으로서의 경험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그리고 엎드려지는 거죠.
(찬양) 우리를 사랑하신 자비의 주 아버지 주께로 나갈 때에 기도 들으사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릴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마음이 녹아 내립니다. 그 때 내가 많은 지식이 있다는 것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구역장으로서 경력이 많다는 것도 떠오르지 않고 옛날에 내가 영혼을 돌볼 때 수많은 사람이 회심한 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냥 머리가 하얘지는 거...오직 하나.. ‘주님이 영혼을 돌보는 나의 사역에 복을 주셔야 됩니다. 영혼을 내 손에 붙여 주십시오..’그런 기도가 절실하게 나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자기 교만과 그리고 자기의 경험을 의지하던 것 다 버리게 되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됩니다. 옛날에 제가 모시고 있었던 박기찬 목사님이 그 분이 그렇게 근엄해 보이셔도 어린이 설교를 아주 잘 하십니다. 한때는 고신에서 유명한 어린이 부흥사였어요. 그래서 그 옛날 시절에 200명도 안 모이던 주일학교 가서 그 목사님이 전도사 때 700명을 만들었어요. 주일학교를 혼자서...그러니까 막 여기저기서 오라고 막 하는데 당신 자신이 고백하는데 자신이 생기는 거예요. ‘아 이제 나도 주일학교 사역에선 전문가가 됐구나’ 근데 어느 한 순간서부터 서서히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400명까지 줄어들더래요. 그 때 이제 금식을 하면서 강대에 엎드렸는데, 하나님이 그러시더래요.“ 봐라 이 놈아..네가 날 의지하는 동안에는 내가 너에게 복을 주었지만 네가 나를 의지하지 않고 너 혼자 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니” 깊이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다시 목회 사역에 복을 주시는 거죠. 아주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에요. 그래서 만약에 그 사람이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깨뜨려지고 다시 태어나는 일 없이 막 기가 막히게 영혼 돌보는 사역이 잘 된다고 하면 저 같은 사람도 만들어 낼 거 아니에요? 그럼 교회가 될 수 있겠어요? 근데 자기가 깨뜨려지고 자기가 죽는 가운데 그 영혼들이 세워지니까 이 사람은 거칠고 모나고 이 사람이 깨뜨려지는 속에서 사람들이 세워지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그 사람들의 죽음을 자기 죽음을 통해서 죽는 사람들을 세우시는 거죠.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만인이 열매를 맺을 것이나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느니라” 영혼을 돌보는 이 사역이 자기를 자기를 썩히는 사역이에요. 성질 못 되고 혈기 있는 사람, 구역장키면 둘 중의 하나예요. 그 혈기 간직하고 목장이 망가지든지, 깨뜨려지고 변화되어서 결국은 목장도 되고 자기도 변화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제 삼의 선택이 없습니다. 정확합니다. 자기가 죽는 것만큼 하나님이 그를 붙드시는 것만큼 하나님이 그 목양시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상반기를 결산하면서 기도할 때, 내 영혼을 돌보는 사역에 분산된 마음이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 게 일념을 주시옵소서..내게 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영혼을 향해 집중된 마음을 주시옵소서 먼저 내가 영혼을 섬기면서 날마다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목양에서 오는 많은 어려움이 나를 깨뜨리고 새롭게 하시기 위함임을 알도록 도와달라고’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