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상반기 교역자 수련회 4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녹취자: 박지성
오늘 본문은 아마 교역자 수련회 15년 동안에 제일 자주 들었던 말씀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언제 읽어도 아주 깊이 공감이 됩니다. 첫째는 잘하는 종들이 되어야합니다. 일은 하면 합니다. 그러나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해온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잘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할 때 완전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일하면 안 됩니다.
우리들이 캄캄한 밤바다에 배를 저어서 항해를 할 때에 북두칠성을 보고 항해하는 이유는 북두칠성에 배를 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공중을 날아서 북두칠성에 착륙하기 위해서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항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 북두칠성에 도달할 수가 없지만 그것을 항상 푯대로 삼고 갈 때에 올바른 항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당사자가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두둔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이, 다른 사람이 “괜찮다. 어떻게 사람이 완벽할 수 있겠니?”하고 얘기를 해야지 자기가 일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하는 것은 일꾼으로서의 대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데려다 놓으면 하다못해 불신자를 여러분의 자리에 데려다 놔도 그 일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잘 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잘 한다’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면 주어진 임무에 대해서 주인의 의도를 따라 온전하게 그 일을 이룬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 보면 “Well done”이라고 했습니다. “잘됐구나. 참 잘됐구나. 아주 잘됐다.” 혹은 “Perfectly done”, “완벽하게 됐구나.” 그렇게 예를 듭니다. 무엇이든지 다 합니다. 그러나 잘하는 것이 진짜 하는 것입니다.
(예화) 이런 생각을 해 보십시오. 예를 들자면 저도 뭐 그렇게 깊이 빠져들지는 못했습니다만 교인 중에 오디오 매니아가 있었습니다. 그분과 이야기를 하는데 50만 원짜리 오디오와 100만 원짜리 오디오는 음이 갑절의 차이가 난다고합니다. 그런데 300만원, 500만원, 1000만원이 넘어가게 되면 1000만 원짜리 오디오가 있고 그것을 팔아서 2000만 원짜리를 사면 음이 두 배가 더 좋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3%~5%만 나아진다고 합니다. 내 동생이 1억짜리 오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5000만 원짜리와 1억짜리는 두 배의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더 적어서 1%차이밖에 안 난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얘기냐면 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잘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자기가 한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라 실행자입니다. 지도자는 수백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한데 묶어서 마지막에 높은 위치에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예화) 여기 집을 보면 바닥을 하고 간 사람도 있고 철골을 하고 간 사람도 있고 전기를 하고 간 사람도 있고 유리 창호를 하고 간 사람도 있습니다. 다 뜯어졌습니다만 칠을 하고 간 사람도 있고 등을 단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이 그것을 잘해서 그 한 기술들을 한데 다 집적해서 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는 하나하나의 일에 대해서 다는 몰라도 그 일이 완전하게 이루어졌을 때 어떤 상태인가에 대한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집 전체를 아름답게 지을 수 있는 구도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벽주의 기질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일을 하지만 주님은 잘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본문에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은 사람들이 나오고 똑같이 칭찬을 하시는데 한 달란트 맡은 사람에게는 “잘 하였도다”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왜 일을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네가 어찌 그리 하였느냐.”하셨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일을 하긴 했지만 잘못 했기 때문입니다. 하기는 했는데 잘못 한 것입니다. 그러니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냥 하는 것은 50의 노력 밖에 안 드는데 잘하는 것은 100의 노력이 듭니다. 그런데 두 배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사람과 잘하려고 50%의 노력을 들인 사람의 차이는 10% 미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데 흠이 있는 것은 안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물의 귀가 찌그러졌습니다. 번제는 어차피 다 태워버리는 것이니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재물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규정하신 이유는 hearty한 섬김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성심의 섬김을 원하십니다. 그 성심으로 드리기 위해서는 잘하려는 마음이 아니면 성심을 드려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심의 섬김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온전하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100의 에너지를 드려봤자 온전해지는 정도는 1%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경제 논리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섬김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잘해야 합니다. 그 잘하는 것은 반드시 희생이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화) 자녀가 “엄마, 나 학교 끝났거든. 나 밥 줘.” 그러면 부담을 느끼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빨리 와라. 밥 줄게”합니다. 그러나 굉장히 어려운 손님이 “저, 가서 점심 한 그릇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할 때 엄청난 부담을 느낍니다.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닙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릅니다. 잘하기 위한 결국 가장 중요한 싸움은 대충대충 해치우려는 자기 안일과 자기 태만, 이런 자기 안에 깊이 깔린 본성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존 오웬 목사님은 섬김이 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섬김이 성화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섬김이 hearty한 섬김일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섬김만이 성화에 도움을 주지 그런 섬김이 아닌 경우에는 오히려 성화에 방해를 줍니다. “나도 섬겼다”라는 것 때문에….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항상 마음속에 ‘잘하고 싶습니다.’라는 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중심으로 기도할 때, 무슨 뜻이냐면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예화)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야구선수 하나가 있었는데 손가락이 길어야 야구하기가 좋은 손인데 이 사람은 손가락이 짧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가 원하는 볼이 구사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형외과에 가서 2㎝를 찢어버렸습니다. 기형이 된 것입니다. 이것만 2㎝가 떨어졌으니 너덜너덜 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너무 너무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잘하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hearty한 섬김을 하려고 애를 쓰다보면 자기 안에 있는 본성들이 다 드러납니다. 게으름, 주의 없음, 태만함, 체계적이지 않은 것,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경향에 쏠려서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다 나오고 어제 우리 교역자들이 지적받은 것처럼 덤기덤기 엉켜서 사역을 해나갈 때는 주님을 섬기는 것 같았는데 꼼꼼하게 돌아보면서 내게 영혼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것, 기도의 열정이 식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모든 발견들은 잘하려고 하는 데서만 발견되는 것이지 그냥 남만큼 하려는 거기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잘했을 때 그 잘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거기에 깊이 흡수되어서 함께 묻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그것을 보시고 네 마음이 흘러나온 것을 보면서 “잘 하였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화) 80년대에는 부실공사로 다리도 무너지고 그랬습니다. 나라의 수치를 너무 많이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요즘 보면 한국이 많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놀랄만할 일이지만 공사를 잘하는지를 감독하는 것을 감리라고 하는데 전에는 감리비용이 쥐꼬리만 하고 설계비용이 많이 들어갔는데 지금은 감리비용이 설계비보다 더 비싸다고 합니다. 설계비용이 1억이라고 하면 감리비용은 1억5천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90년대 이후로 바뀐 것입니다. 지금은 뭐라고 하냐면 혼을 담은 시공이라고 하는데 돈이나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혼을 다 담아서 시공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업자를 만났는데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지어진 건물은 신뢰해도 됩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가능할 것입니다.
(예화) 혼을 담은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하려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면 “자네가 설교에 관심이 많아? 그러면 자네가 가장 본받고 싶은 설교자가 누구지?” 대답을 못하려면 둘 중 하나여야 합니다. 자기가 너무 탁월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눈에 차는 사람이 없든지 아니면 워낙 잘하고자하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든지. 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가 눈에 들어 오냐면 잘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돈 벌고 싶어서 몸부림치고 포브스지에 올라가고 싶은 사람은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누구는 부동산을 해서 돈을 이렇게 많이 벌었대. 누구는 짠돌이처럼 돈을 절약하고 경영을 해서 이렇게 돈을 많이 벌었대.” 이런 사람들이 눈에 들어 올 것이 아닙니까? 똑같이 주의 일을 잘하려고 할 때는 잘하는 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물어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자네가 유치부면 우리나라에서 자네가 본받고 싶은 지도자가 누구야?” “눈에 차는 사람이 국내에 없습니다.” “그러면 미국의 누구야?”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죽은 사람 가운데 누구야? 아이라 생키야? 디엠 무디야?” 그것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결함을 가지는 사고입니다. 그것은 공부를 안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됩니다. “아무도 이 분야에서 앞서간 사람이 없어서 제가 떼어 놓는 사역의 한 걸은 한 걸음이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칠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지 않습니까?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렇게 잘하려고 하다보면 착한 사람이 됩니다. 왜냐면 자기의 힘으로는 그렇게 잘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합니다.’하고 가슴이 찢으며 늘 애통하는 사람은 상당히 온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개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회개를 많이 하고 진짜 회개할 필요에 놓여있는 사람은 회개를 안 합니다. 잘 하는 사람들은 ‘제가 정말 무익한 종입니다. 저는 지혜가 너무 부족합니다. 주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합니다. 이런 사람은 상당히 많은 일을 했고 지금도 잘하고 있는 사람이며 정말 지혜롭게 자기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만이 ‘나는 정말 지혜가 없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예화) 사람들을 만나보면 공부를 조금한 사람들은 입만 열면 학문에 대한 자랑을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학문의 세계를 생각할수록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 사람입니다. 바둑판이 이쪽으로 19줄 저쪽으로 19줄입니다. 구단을 가르쳐서 입신이라고 합니다. 입신은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입니다. 사카다라는 바둑의 천재에게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바둑에 신이 있다면 몇 점을 붙이고 두면 이길 수 있겠습니까?” 네 점 붙이면 한번 해 볼 만하지 않겠느냐. 그것이 신의 경지입니다. 입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모두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일급, 이급일 때는 손바닥 만해 보이던 바둑판이 입신의 경지에 이르면 중국의 중원의 벌판처럼 느껴진답니다. 그래서 겸손해 집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많이 의지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고 안하고 자기 의에 빠지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주님을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늘 눈물이 납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내게 맡겨주신 사역의 은혜의 문이 닫혔는가?’ 그러면서…. 나는 15년을 목회하면서 한 번도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추호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아, 난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 항상 남의 신을 신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 평생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의지해야합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사람이 포악해지고 나쁜 사람이 된다면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잘하면 착해집니다. 그리고 유순해지고 “나의 나 된 것이 주님의 은혜로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충성된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주님을 성심으로 섬기려하는데 어려움이 오고 시련이 와서 나를 흔들어도 사랑을 언제나 오래참고 흔들리지 않으려는 사람이 충성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잘하는 사람. 그러면 착해집니다. 그리고 충성된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착한 것과 충성된 것이 인격의 특징이 되고 잘하려는 몸부림이 사역에 놀라운 지혜로 그 사람을 인도해서 뛰어난 기술의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예화) 신학적인 견해가 다르기는 합니다만 워치만 리가 한참 중국에서 전도할 때 중국대륙을 가로지르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한번 전도하면 수천 명의 회심자가 나왔습니다.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그랬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까 “저에게 방법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영혼을 구원하고자 애를 쓰니까 하나님이 매순간 지혜를 주셨습니다.”라고 했답니다.
봄에는 세미나를 많이 하니까 전도세미나를 하자고 하는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것을 잘하려고 자기가 실제로 몸을 부딪혀보면 거기에서 어느 강사보다도 뛰어난 실제적인 지식들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전도하라고 하면 전도세미나 듣고 끝나고 기도하라고 그러면 기도에 관한 책을 읽고 덮고 그렇게 합니다. 결국은 개념만 있고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부딪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잘하는 사람이 되면서 착한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한 일도 주님 앞에 받으심직 하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사람도 하나님이 받으심직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