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스러운 사람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마25:23)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연말이 다가오니까 이 성경본문이 우리의 마음에 더 깊고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시간 관계상 짤막하게 몇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미래에 당신이 다시 오실 것과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되는지를 아주 아름다운 비유로 가르쳐주셨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을 잘 예로 안 들고 항상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는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서 동지의식을 느낍니다. 그래서 위로가 되는 것이죠.
첫 번째 이 사람은 주님께 칭찬을 받기를 “잘하였도다.” 그랬습니다. 참 놀라운 게 주님께서 먼저 그 사람이 한 그 일을 보시면서 “잘하였도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죠. 이 사람의 일은 이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나왔고 주님은 그 일을 통해서 그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가시면서 이 사람을 헤아리며 종합적인 평가를 내려주신 것이죠. 그래서 첫째는 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다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데 잘 하는 사람이든 못하는 사람이든 다 주님께 사랑을 받는데 그 말은 맞습니다. 물론 교회는 세상의 직장과 성과만을 가지고 기업의 이익을 내는 것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그러한 경제 집단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회장과 사장, 주주 앞에서 일을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하기 때문이죠. 거꾸로 말하면 그러니까 더 잘해야 된다는 거죠. 그 사람들은 회장과 사장 앞에서 주주들 앞에서 일하고 그래서 잘 인정을 받아서 승진을 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 그 사람의 목적인데도 잘하는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더 잘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애쓰지 않는 사람은 평생 이 세상에 살면서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세계나 무슨 세계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종종 그 사람의 재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물론 재능이 훌륭하게 중요하죠. 재능이 훌륭하게 중요하긴 하지만 그러나 그 재능이라는 것은 다 드러났을 수도 있고 안 드러났을 수도 있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없을 수도 있고 없는 줄 알았는데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묻혀진 그것이 있는 것처럼 드러나는 것도 살아봐야만 아는 것이고 해봐야만 박 속에 있는 것들이 나오든지 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생활의 원리인 것이죠. 그래서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일을 맡았으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최선을 다해서 잘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예화)제가 몇 해 전에 수련회를 갔는데 그때 교회 학교 교역자들이 제게 혼이 많이 나는 수련회였습니다. 새벽 3시까지 저한테 야단을 맞았는데,
“그대가 담당이 뭐야?” “유년부를 담당합니다.” 그런데 사역이 신통치가 않아요. “자네가 우리나라에서 유년부 사역을 제일 잘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누구야?” 가만히 있어요.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자네는 틀렸다.” 그러면 결국은 무슨 이야기냐면 무관심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남들이 유년부 사역을 어떻게 하는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고, 더 잘하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고 너 자신이 잘해야겠다는 욕구 자체, 의욕 자체가 없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때우며 가는 거지.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는데 그대가 유년부 사역을 역사에 없이 새 장을 개척해 가기 때문에 아무도 네 유년부 사역에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예화)페렐만이라고 하는 러시아의 수학자가 프랭카라의 추측을 풀었어요. 프랭카라의 추측은 세계 8대 수학에 있어서 불가사의 중에 하나에요. 그것을 풀었다고 발표를 했을 때, 미국의 학자들이 코웃음을 쳤어요. 그런데 어떻게 자기가 그것을 풀었는지를 미국에 가서 보여주겠다고 했을 때 미국의 학자들이 비행기 표를 보내서 석 달 동안 미국을 돌면서 여러 대학에서 프랭카라의 추측을 능수능란하게 풀었어요. 그랬더니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수학자 중에 한 사람이 뭐라고 그랬냐면 “페렐만이 와서 프랭카라의 추측을 풀어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푼 것을 2년 6개월 동안 다시 풀어 보면서 희열에 찬 생애의 순간을 보냈습니다.” 천재가 풀고 지나가니까 세계적인 수학자들이 그것을 푼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2년 6개월을 보낸 거예요. 프랭카라의 추측이 뭐냐 하면 여러 가지 우주의 이론들이 나오잖아요. 심지어 다중이론도 나오고 하는데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그런 것이에요. 선을 내보내서 온 우주를 선이라고 치고 가장자리를 그 선을 쫙 잡아당겨서 그 줄이 모두 만나면 우주는 하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그것을 수학적으로 증명을 한 거예요. 풀었어요. 세계수학자 협회에서 그 사람을 올해의 수학자로 뽑았어요. 백만 불, 약 13억 정도의 상금을 주겠다고 불렀어요. 그 사람은 아무하고 인터뷰를 하지 않는 사람이고, 스승을 통해서도 인터뷰에 접근을 했는데도 만날 수 없었는데 다 찌그러져가는 시영 아파트 같은데서 엄마하고 둘이 사는 사람이었어요. 수상을 거부했어요. 결론이 뭔지 아세요? “너희 심사 위원 중에는 내 수학 실력을 평가할 사람이 없다.”
그렇게 사역을 하든지, 그러면 유년부 사역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었을 때, “그게 나하고 뭔 상관이 있습니까? 나는 새 장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죠. “그런데 너는 그것도 아니지 않니?” 할 말이 없어요.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잘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게끔 자신의 삶과 모든 것을 재편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자기 발전을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요. 교회를 지을 때, 일꾼들이 많이 올 때는 70명이 여기 와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사는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오죽 했으면 군화를 신고 화이바를 쓰고 그리고 지휘봉을 들고 저기 앞에 서서 그러면서 사람들을 휘두르면서 정신교육까지 시키면서 교회를 지었어요. 당신들의 정신상태가 그렇게 되어서는 밥은 먹고 살지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로 한번 공사하면 여러분 공사 안 준다. 그게 뭐냐. 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죠. 공사를 해가지고 이만큼을 목공공사를 했는데 엉망으로 한 거예요. 빠루를 들고 가서 내가 다 때려 부수었어요. 그것을 부수면 전부다 우리 돈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시범을 보인 거예요. 얼마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거예요. 그래서 확 뜯어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이걸 일이라고 했느냐? 밥을 먹고 사는 게 신기하다. 다시 해라.” 그리고 친절하게 어떻게 공사해야 되는지 가르쳐주었어요. 그 다음부터 기강이 확 잡힌 거예요. 저기 목사라는 사람이 돈이나 주면 되지 뭘 알까? 그런데 가서 기강을 잡은 거예요. 잘 해야 된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는 사람은 목회자가 성경을 가르칠 때에 눈에 총기가 돌고 일을 잘 하려는 사람은 자기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을 볼 때에 질투심을 느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부동산에 투자를 했다고 칩시다. 땅값이 오르고 내렸다는 소식이 신문에 날 때에 심장박동이 틀리지 않겠어요? 주식에 투자했다고 칩시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 다니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컴퓨터 키고 주식 그것 보는 것 아니에요? 그것도 전부 잘못하는 거죠. 제일 먼저 와서 스마트폰 켜서 주가 동향보지 않겠어요?
그러면 결국 주님 말씀하신대로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나는 왜 일을 일 년이나 지났는데도 이것밖에 못할까? 왜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혹은 하나님 앞에 내가 왜 이렇게 죄송스러울까? 더 잘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러면서 몸부림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 인정을 받는 잘 하는 사람이에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마음에 날을 세우고 잘하고 싶어 하고 주님을 위해서는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은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 사는 사람들이에요. 잘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여러분들이 맡은 일을 1년, 2년, 3년 정도 해 가고 나면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볼 때에 부럽고 ‘야, 어떻게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야죠. 철저하게 반성을 하면서 그렇게 하면서 일을 해 나가는 거죠.
(예화)여러 해 전에 박지성 선수가 한참 뜰 때에 초등학교 때 일기를 여러분들이 보셨을 거예요. 하루가 지나고 나면 저녁에 들어와서 학교에서 축구부 연습 할 때에 공을 어떻게 주고받았는지 반성문을 일기로 쓴 거예요.
그 까짓것 공 차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도 그렇게 치열하게 자기를 반성을 하는데 자기 사역을 하고나서 어떻게 반성이 없어요? 잘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말할 수 없는 거죠.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자신을 거기에 맞춰요.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항상 바보 같은 사람은 ‘못하는 사람도 용납해주셔야죠.’ 누가 용납을 안 하겠어요? 주님의 교회인데,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을 발길로 차고 짓밟아도 왜 사랑하지 않겠어요? 누가 용납을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신앙은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라는 인물을 여러분들은 기억할 거예요. 기도의 사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 뒤편에 보면 브레이너드가 막 번민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폐결핵이 깊어져서 피를 토하고 한번 설교하고 한 사발씩의 피를 토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그렇게 번민하고 괴로워한 이유가 뭔지 아세요? 성도들이 나에게 선교비를 거둬주었는데 성과도 없이 선교비를 낭비하고 있다는 가책 때문에 죽도록 괴로워했던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생각을 해야 되요. 무얼 하든지 간에 하다못해 교회에서 화장실을 청소해도 왜 나는 이것밖에 못할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야 해요. 그런 사람들하고 하나님께서 일하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두 번째는 ‘잘하였도다.’ 그러고 난 다음에 ‘착하고’ 그랬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회사에서든, 교회에서든 보면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사람들은 보면 좀 까칠해요. 그리고 일에 있어서 자기를 훼방하거나 거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일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망가뜨리고 그렇게 해서 결국은 한쪽은 세우고 한쪽은 허무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착하지 않아서 그래요. 착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그의 마음과 삶과 생각과 행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의도와 일치한다는 뜻이에요. 그것을 착하다고 말하는 거죠. 어른인 우리들이 자녀들을 보면서 ‘참 착하다.’ 라고 말할 때 무엇입니까? 말하는 나의 의도를 잘 따라올 때 그런 거죠. 주일 학교에서도 교역자 회의에서 말하려고 하는데 아이들 신앙교육도 좋지만 공중도덕교육을 좀 시키어라. 늘 이야기하지만 영적인 것은 육적인 것의 바탕 위에 특별 은총에 속한 것은 일반 은총의 토대위에 서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그렇게 하는 것들을 그대로 방치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주일 학교를 맨 처음에 세울 때에 성경가르치려고 주일 학교 세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부모들에 의해서 방치되니까 그 놈들 데려다가 발 씻겨주고 세수 씻겨주고 코 닦아주고 인사하는 법, 예절 가르쳐주다가 주일학교가 세워지게 된 거예요. 엊그제도 열린 공간 앞에 마당에 뛰면 쿵쾅쿵쾅 소리가 나잖아요. 신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있든지 말든지 의자를 발로 차고, 왜 그래요? 회심했다는 아이들이. ‘그러지 말아라.’ 그럴 때에 ‘예, 목사님’ 그렇게 반응을 보이면 우리는 ‘너는 참 착하구나.’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착하다는 것은 뭐냐 하면 주인의 의도와 뜻에 잘 합치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사랑이에요.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면서 일을 잘하는 싸움꾼 같은 일꾼들은 경쟁업체와 싸울 때에 세우는 거고, 그런 사람들이 항상 있어서는 안 돼요. 그래서 삼성 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이 사람을 쓰는데 탁월했다고 해요. 이미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새로운 사업을 할 때는 싸움꾼 같은 사람을 보내요. 사정없이 장군같이 덤벼들어서 한번 물면 안 놓는 사람을 들여보내서 기초를 딱 잡아요. 기초를 잡은 다음에는 그 사람을 발령 내서 다른 곳에 보내고 그 다음에는 인화하는 사람을 보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장악을 하게하고 경쟁업체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면서 자신의 사업을 이뤄가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잘 이뤄지게 되면 아주 탁월한 기획력을 가진 사람을 가지고 이제는 내놓고 물어뜯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가운데 치밀한 기획력으로 경쟁을 하는 사람을 세 번째로 보내는 거예요. 그렇게 그룹을 운영해 나가는 거예요. 조직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어느 정도의 불합리와 부족한 부분들을 고치기 위해서 늘 애쓰지만 그러나 불합리하고 약간의 부족한 것들을 끌어안고 가는 조직이 건강한 조직이에요. 왜냐하면 그런 것들을 안고 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싸워야할 모순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이 약간 남아있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용납한다는 것, 착한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일을 하면서 우리들이 점점 더, 점점 더 인격적으로 주님 앞에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음식점도 사람이 많이 모이고 돈을 많이 벌면 교만해져서 오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고 너까지 것 안 먹고 가봐야 돈이 몇 푼이나 되겠냐고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런 것들은 모두 다 잘못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하면서도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 여러분, 지혜가 많으면 지혜가 모자란 사람들을 무시하기 마련이이구요, 일을 잘해서 성과를 인정받으면 처지는 사람을 무시하기 마련이이에요. 누가 그렇지 않겠어요? 얼굴이 예쁜 사람은 못생긴 사람 무시하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가지고 있으면 못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당연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착한 마음이 아니에요. 정말 착한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비결이 뭐냐 하면 항상 자신이 하고 있는 그 일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이루려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주님을 의존하게 되고 주님을 의존하는 가운데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착하다고 하는 것이 사람을 향한 반응이요, 그 마음의 질이라면 이 충성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일꾼으로 부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관계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거예요. 하나님을 향해 충성스럽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중심이 되시고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최고의 가치가 되는 상태를 우리들이 충성이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가야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당신에게 충성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은 충성하는 사람의 편이에요.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것 때문에 미리암과 아론의 반대를 받고 백성들을 선동하면서 난리를 쳤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장로들이 선동을 해가지고 반기를 들고 교회에 대적을 한 거죠. 그때 주님께서는 누구 편이었습니까? 모세 편이었습니다. 모세가 담임 목사라서 모세 편을 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모세를 향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온 집에 충성하였슴이라.” 그가 충성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편이 되어 주셨던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어느 위치에 있든지 간에 주인공이 되고 싶을 거예요. 세상에서 감투를 쓰고 승진을 한다고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그렇게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요셉을 생각해보십시오. 주인공이라면 바로가 주인공이고 또 작게 말하면 보디발이 주인공이였는데 하나님은 마당을 쓸고 있던 그 요셉을 주인공을 삼아서 보디발의 집과 애굽의 역사를 움직여 가셨던 것이죠. 그 사람이 주이공입니다. 충성된 사람이 주인공인 거예요.
(예화)제가 내수동 교회에 있을 때에 일입니다. 목사님이 제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제가 떠났을 때인데 항상 교회에 어려움이 있으시면 저 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김 전도사님,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판단이 안서서 전도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목사님.” “ 저희 교회 유치부가 있잖습니까?” “네, 있죠.” “아무개 전도사님 리더십 하에 정말 보기 드물 정도로 사역을 잘 했어요.” 그래서 하여튼 그 전도사를 목사님이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12월 달에 불러서 그 전도사만 월급을 한 번 더 줬어요. 재임하는 동안에 매년 다른 전도사들보다 월급을 100% 더 받은 거예요. 목사님 눈에 넣어도 안 아팠죠. 그런데 시집을 가게 되었어요. 멀리 가게 되었으니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걸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제가 아무개 자매를 추천해드렸어요. “목사님, 거기에 아무 아무개 자매가 있는데 그 자매가 정말 잘할 겁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그래요.” 그러고 나서 세월이 흘렀는데 다른 사람을 임명하셨어요. 정확하게 일 년 반 만에 120명 모이던 유치부가 20명으로 떨어지고 전도사는 사표를 냈어요. 그러고 나서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전도사님, 전도사님 말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왜요?” “전도사님이 그렇게 조언을 해주셨는데 아무리 그 자매를 생각해봐도 재능이 없을 것 같아서 총신대 출신의 유아교육을 전공한 무용도 아주 잘 하고 노래도 잘 하고 재능 충만한 자매를 세웠는데 제가 목회하면서 최대의 쓴 맛을 봤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120명, 100명, 80명하다가 28명으로 떨어지면서 결국은 사표를 냈어요. 그러면서 목사님이 그러셨어요. “충성된 사람은 없는 재능도 하나님이 주시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이 충성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그 재능을 아무 쓸모없게 만드실 수도 있다.” 그게 하나의 커다란 교훈이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정말 충성스럽게 살아야 해요. 그래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충성스럽게 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목사들이 모였어요. 모였는데 우리끼리 모여서 밥을 먹다가 “김 목사, 안식년 갔다 왔어?” “나는 못 갔어. 나는 원래 안식년 자체를 비 신학적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안 갔다 왔어.” “아 근데 아무개 목사 알지?” “그 친구가 이야기 하는데 그거 다 소용이 없대.” “뭐가?” “아무 놈도 알아주는 놈 없으니까 그 목사 말하기를 찾아 먹을 것을 다 찾아먹으면서 목회 하라고 하더라.” 내가 그랬어요. “나는 그 친구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개척하지 않았지?” “맞아.” “청빙받아갔지?” “맞아.” “당회하고 가끔 싸우지?” “맞아.” 그래서 제가 이야기 했어요. “우리가 사람을 보고 섬기는 거냐? 하나님을 보고 섬기는 것이지.” 그래서 이영목사님이라고 제가 서너 살 때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었는데 학력도 없으시면서 목사님이 수천 명 성도의 교회를 훌륭하게 목회하신 분이에요. 그분이 그래요. 교역자들에게 항상 말한대요. “자, 다음 주에 금년 생활비 발표가 납니다. 그런데 그 발표가 났을 때에 마음속으로 서운한 감정이 생기면 그 해 목회 농사는 망치는 줄 아십시오.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품삯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불러서 일을 시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으로 마음이 상하면 우리가 사람의 사람이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겠습니까?” 그분이 7년 동안 죽만 먹으면서 교회를 개척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충성되게 누가 보든 보지 않던 그렇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목숨을 버리는 목양의 자세를 가져야 된다는 이야기죠.
여러분들도 충성스럽게 일해야 해요. 이게 목사들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다못해 교회에서 걸레질을 해도 충성스럽게 그렇게 일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 세계의 역사에서 연장들이 발달되어 온 역사를 보면 유명한 발명가가 만든 것도 있지만 대부분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냐면 대부분 그 일에 많이 헌신했던 사람들로부터 나와요.
(예화)제가 가끔 TV에서 보는 것이 생활의 달인이에요. 정말 대단한 게 자기 키보다 더 큰 12명이 앉을 수 있는 탁자를 두 손으로 두 개를 굴리는 거예요. 막 굴리면서 제자리에 세팅을 하는데 그 사람 이야기가 5명 내지, 7명이 해야 할 일을 그 사람 혼자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테이블 세팅의 달인이에요. 테이블을 놓고 테이블보를 펼칠 때에는 양쪽에서 세 사람이 잡아당기잖아요. 이 사람이 투망 던지듯이 던지면 테이블보가 똑바로 펴지면서 공중에 올라갔다가 탁 떨어지면서 자로 재보니까 이 사각의 길이가 거의 똑같이 떨어지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달인이 될 수 있겠어요? 많이 하면서 그냥 오늘 끝났다가 아니라 더 짧은 시간에 더 잘할 수 있는 비결을 무얼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마한 끝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 도전이 되고, 충성스럽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 마음에 짐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탁월한 사람들을 만날 때에 싫은 거예요. 신앙이 은혜가 깊어 질 때에는 신앙이 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쁨이 되지만 침체에 빠질 때에는 기도 너무 하는 사람하고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과 똑같은 거죠.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과로서는 주님이 그에게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그랬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준 이 일은 아무리 커 보이고 많아 보여도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작은 일이고 주님이 더 큰 일을 맡겨 주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절대로 주님께서는 한 번에 맡기시는 법이 없이 작은 일에서 그를 충분히 시험하여 그래서 큰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합니다. 이게 최후의 심판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마음에 구김 없이 최선을 다해서 하고 그 성과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마음 가득히 차오르는 유열이 있어요. 기쁨이 있어요. 여러분 학교에서 숙제 검사해본 경험이 있죠? 열심히 숙제를 잘 해 가지고 간 날은 당당하죠. 담대해요. 숙제 검사하면 참 좋겠다. 못해간 날은 어때요? 마음이 조마조마 하면서 숙제 이야기만 나오지 말기를 바라는 거죠. 똑같은 거죠. 그래서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항상 마음속에 주님 때문에 주님과 함께 누리는 즐거움이 있어요. 기쁨이 있어요. 그리고 당당해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한 해가 지나가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봐요. 정말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일까? 그리고 주님께 정말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일까? 정말 내가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이 주님의 마음에 즐거움이 될 수 있을까? 나 때문에 내가 없었더라면 이루어 질 수 없었던 일들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중일까?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적어도 내가 여기 있음으로 주님과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주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나를 부르실 때는 접혔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들이 계속 펼쳐져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나의 인생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살아야 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새로운 길로 인도해주시는 거죠.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아무도 몰라요. 세월이 많이 흘러가도 변하지 않는 원리가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은 잘하고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들을 좋아하시고 그들을 높이시고 그들을 통해서 섬김을 받을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이에요. 그거 하나는 우리들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