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사명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2)
녹취자 : 조원정, 김명진
오늘 저녁에 여러분을 『교사 리바이벌』을 가지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저희들이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성경 한절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2절입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는 도입부입니다. 저는 이 짧은 한 구절을 가지고 교사의 사명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자격과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집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 성경 전체를 보는 하나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 위대한 산상수훈의 시작이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 사람들이 바로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일부였습니다. 마태복음 4장 끝에서는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광경이 나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절망적인 질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팔복 산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병 고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중 일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팔복 산 까지 따라 올라온 것입니다. 산이라고 하지만 실제 가보면 언덕과 같은 동산입니다. 예수님이 위에 올라가셔서 앉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또한 앉았습니다.
신약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렇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설교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은 예수님이 한 설교의 중요한 골자만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예수님의 설교는 훨씬 길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침부터 시작해서 오후까지 계속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천둥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기적보다 더 위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외향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에 호소해서 그의 심령이 변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심령은 바로 모든 삶을 움직이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저는 아직 샨사이 댐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댐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장강, 삼협의 어마어마한 물이 모였습니다. 세계 최대입니다. 어마어마한 물이 고였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지구의 자전축이 이동했다고 합니다. 무지막지한 댐입니다. 그 댐의 수문을 연다고 칩시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마어마한 물이 즉시 뛰쳐나올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이 많은 분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묵하신 분이십니다. 지금은 말이 많으셨습니다. 입을 여셨습니다. 댐에서 물이 쏟아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었습니까? 성경책이 이렇게 들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때는 이런 책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양피지에 두루마리로 성경을 쓰던 때였습니다. 그것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당에 보관하고 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침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거야 예수님이 하나님이니까 그렇습니다.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열심히 배우셨습니다. 성경 박사들과 논쟁을 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지식을 소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공부하셨던 것입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하는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이들을 상담도 해줍니다. 한국에서는 심방도 갑니다. 아프면 병원에도 갑니다. 심지어 친절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교사의 본질적인 사명은 아닙니다. 그 본질적인 사명은 무엇입니까? 이것입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교사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우무란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좋은 목자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직분에 가장 중심적인 일이 되고 있습니까?
(예화) 실제로 제가 청소년들을 위해 전도사 시절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거기에 처음 부임을 했습니다. 예배를 드린 다음 공과공부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과공부 시간이 거의 한 시간 반 이상 할애가 되었습니다. 처음 간 저는 아 이 교회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반을 발견했습니다. 선생님이 좀 늦게 오셨습니다. 학생들이 일곱 명 정도 모였습니다.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너희 아침 못 먹었지?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아침에 샌드위치를 만드느라고 늦었단다. 실제로 가방을 여니까 샌드위치가 나왔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유를 사오겠습니다. 한 아이가 우유를 사러가자 두 아이가 따라 갔습니다. 전 교인의 절반이 우유를 사러 간 것입니다. 한참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공부를 시작하려나보다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공부하기 전에 지난주에 어떻게 생활한지 함께 나누어 볼까? 시간이 좀 늦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아이씩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30분쯤 되어서 마지막 아이까지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선생님이 이제 내가 이야기할 차례이지? 하고 말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했는데 수요일까지 밖에 이야기 못했습니다. 드디어 모든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다른 반에서는 벌써 공과공부를 끝내고 주기도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려나 하고 봤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오늘 정말 은혜로운 시간이었지? 우리 모두 손잡고 기도하고 마치자. 그 중에 한 남학생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공과공부 안합니까? 성경 안 가르쳐 주세요? 옆에 있는 친구가 그 친구 옆구리를 툭 쳤습니다. 가만있어, 끝내준다 하잖아. 저쪽 반에서는 공과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서 만세하고 소리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너희들 왜 그러냐? 아 우리 선생님이 오늘 공과공부는 맥도날드 가서 한답니다. 그래서 한번 가봤습니다. 옆에 사람하고 소리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이 들렸습니다. 거기서 무슨 성경공부를 했겠습니까? 그냥 닭다리 하나 먹고 집에 간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학생들은 계속 교회에 나오는데 아무 성경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회개하고 믿어야 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영혼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구원 받지 못한 아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 받은 아이들이 성화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예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담임목사님이 주일학교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성경을 잘 가르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목사님이 주일학교에 내려가셨습니다. 한 아이가 목사님께 공손히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너 정말 착하구나. 너 지금 몇 학년이니? 저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그럼 우리 교회 얼마나 다녔지? 제가 여섯 살 때 왔으니까 6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이야 목사님이 뭐 하나 물어볼까? 여리고성은 누가 무너뜨렸니? 이 아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안 그랬습니다. 목사님이 너무 황당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이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누구입니까? 목사님 제가 2년째 가르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냐고 했더니 얘가 울면서 자기가 안 그랬다고 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생님이 정색을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님 아이 말을 믿으십시오. 우리 반에서 제일 정직한 아이입니다. 목사님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 어린이 부서를 담당하고 있는 장로님을 불렀습니다. 장로님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냐고 했더니 얘는 안 그랬다고 하고 선생님은 이 아이 말이 맞는다고 하는데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교육을 이렇게 시킵니까? 장로님의 대답은 더 멋있었습니다. 목사님 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기왕 무너진 것을 어떡하겠습니까? 교회에서 물어줍시다. 제가 절반의 돈을 내겠습니다. 물론 누가 웃자고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런데 상당 부분 사실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인들이 얼마나 성경을 읽는지 궁금해서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구약성경입니다. 히스기야서 3장 20절입니다. 히스기야서를 한참 찾습니다. 여기에도 안 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각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런 집회를 하면 수백 명씩 혹은 천명이 모입니다. 그때마다 제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두 번째 줄에 있는 모든 교사들을 일어나게 합니다. 이십 명 정도 일어섭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지난주에 공과공부 시간에 성경을 가르친 사람만 서있고 나머지는 빨리 앉으십시오. 그러면 열세 명에서 열네 명은 자리에 앉아 버립니다. 성경을 안 가르칩니다. 그럼 무엇을 했느냐고 묻습니다. 그럼 야유회 갔습니다. 연극했습니다. 행사가 있었습니다. 나머지 여섯 명쯤 서 있습니다. 그들에게 묻습니다. 지난주에 공과시간에 성경을 가르치셨습니까? 모두 힘차게 대답합니다. 예. 오늘 화요일이니까 이틀 전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친 성경이 무슨 성경 몇 장 몇 절이었습니까? 아시는 분만 자리에 서있고 나머지는 자리에 빨리 앉으십시오. 항상 두 명만 남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이틀 만에 기억도 못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한국에서 허당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모양은 있지만 내용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거칠어져 갑니다. 그리고 마음이 완전히 굳어져서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 아이를 복음화 하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어려움은 누구였습니까? 교사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교사를 못 만나면 그의 영혼이 더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교사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교사는 누구입니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원 선생님처럼 진리를 따다닥 쏟아 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설득하고 따뜻하게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마음이 열렸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일에 가장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방을 하거나 교제를 하거나 편지를 쓰는 일도 이 일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위대한 천국의 복음을 산상수훈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이 사람들 정말 무식한 사람들이군! 이런 생각했겠습니까?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이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주입시키게 하는 위대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선생님들은 가방 속에 기본적으로 편지를 쓸 수 있는 도구들을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있지 않습니까? 전화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편지는 아주 놀라운 교통의 수단입니다. 저의 경험입니다. 저는 지금도 많은 편지를 씁니다. 특히 청소년 사역을 할 때입니다. 작은 엽서를 가지고 다닙니다.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씁니다. 한 페이지를 쓰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학생이 그것을 받아봅니다. 누구한테도 받아 본적이 없는 엽서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읽어야 할 정도로 작은 글씨입니다. 진심이 없이는 그 긴 사연을 쓸 수 없습니다. 한번쯤은 그런 편지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편지를 세 번 받고도 무시할 정도의 마음이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찬양)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지 않네
온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이런 마음으로 영혼들을 돌봐야 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주일학교 부흥의 비결을 두 가지 이야기 했습니다. 교사들이 하루에 두 번씩 눈물 흘릴 수 있다면 한번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또 한 번은 주님을 모른 채 방황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렇게 영혼을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산상수훈을 주셨습니다. 이 사랑과 함께 강조되어야 할 것은 진리입니다. 왜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사역이 진리를 가르치는 사역이 중심이 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제가 북한에 두 번을 갔습니다. 며칠 시간이 지나면서 거기에 있는 관리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기네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한에서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습니다. 북한에서 응답을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통지를 했습니다. 너희도 같이 와서 응원단을 보내면 어떠냐고 말입니다. 북한에서 고민을 하더니 삼백 명을 보내겠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대학생들 중에 아주 예쁘고 성분이 좋은 삼백 명의 집안의 아이들을 뽑았습니다. 그들을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여자들은 피부가 곱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산속에다 집어넣고 3개월간 마사지를 했습니다. 아주 부잣집 아이들처럼 만들었습니다. 한복을 입혀서 남자 여자 해서 보냈습니다. 이게 북한의 큰 실수였습니다. 여기에 와서 한국의 발전된 모습, 자유로운 모습, 이런 것들을 다 봤습니다. 오래 교육을 받고 각서까지 썼습니다. 돌아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약속을 지켰겠습니까? 특히 그 여자 아이들이 약속을 지켰겠습니까?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간질거려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얘가 듣고 제한테 막 전합니다. 입으로 하는 이것이 삽시간에 퍼집니다. 그들이 후회했습니다. 잘못하면 잡혀갑니다. 왜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여기에서 감동이 출렁거렸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 안에서 감동이 일어나면 그것을 말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감동이 큰데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레미야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에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성경이 없어서 안 가르칩니까? 교제가 없어서 안 가르칩니까? 아닙니다. 선생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소년 사역을 할 때 일입니다. 선생님이 결석을 하십니다. 애들이 궁금합니다. 선생님이 왜 교회를 못 오셨을까? 그러실 분이 아닌데, 어디 아프신가? 생각안합니다. 우와 선생님 안 오셨다. 너 왜 그렇게 좋아하니? 공과공부 안하고 집에 일찍 가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이들이 예배를 드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닙니다. 이 사람은 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토요일 날 술 너무 많이 먹고 주일 날 못 나옵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 늦잠을 자느라고 못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변했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아이들이 선생님이 안 왔다고 와 할 텐데 말입니다.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서 기도회를 합니다. 아이들이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습니다. 변화된 모습입니다. 우연히 지나면서 한 아이의 기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열두 명 정도 모여서 공과공부대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표기도 하는 아이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선생님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변화 받고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전해지는 곳에만 영혼의 진실한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40년 전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가르치는 일을 쉰 적이 없습니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5학년 아이가 등록을 했습니다. 얘는 숨소리 빼고 모두 욕입니다.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아이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때 신학교 들어가기 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과를 가르칩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입술을 깨물며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선생님의 고상한 인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원동력이 있습니다. 절망적인 인간을 희망의 인간을 바꾸어 놓습니다.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만들어 줍니다.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무례한 자를 예의 바르게 합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변화의 축복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목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이 가장 중차대한 소명은 부모가 제일 먼저 물려받은 것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가운데 17세기의 유명한 목회자가 있습니다. 키더민스터라는 곳에서 목회를 하던 리차드 백스터라는 인물입니다. 그 목사님이 그 교구에 부임했을 때 가정 수가 약 200가정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이 두 세 가정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약 17년의 목회가 끝나고 그 교회를 물러나게 되었을 때 두 세 가정 외에는 예배를 드리지 않는 가정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엄청나게 많은 책을 쓰셨습니다. 그것이 지금 영어 책으로 Christian Directory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어머니의 교리문답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전통적인 요리문답입니다. 물음과 질문과 대답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서 그것을 외우게 하는 것입니다.
문답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엄마가 말합니다. “애야, 이리 와서 우리 교리문답 배우자.”,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그것이 뭐예요?”, 엄마가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할지 교훈이란다.” 그러면 그 아이가 말해야 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엄마, 다른 사람은 이것 안하는데 우리만 이런 것 해야 해요?”, 엄마가 말합니다. “애야, 그 사람들은 짐승이란다. 너는 사람이니까 이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문답이 나옵니다. 그것이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유익입니다.
가정과 함께 이 교육의 사명을 맡은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습니다. 20명의 자녀를 낳는 것이 목표인 엄마는 없습니다. 낳는 것도 어렵지만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 더 큰 관심사입니다. 낳는 것은 10달을 고생하면 됩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가 눈을 감을 때까지 신경을 쓰게 만듭니다. 그 마음이 교회의 마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없는 엄마는 엄마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쁜 엄마입니다. 키프리아누스라는 교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교회를 어머니처럼 여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길 수 없다.” 그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사명입니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작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만큼, 그 진리가 그의 마음에 들어가게끔 목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아이를 위해서 진실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영혼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교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한참 은혜를 많이 받을 때의 교사 생활의 경험입니다. 하나님은 그 선생님의 기도를 얼마나 놀랍게 들으시는지 모릅니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혼은 아직은 안전합니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영혼은 위험한 영혼입니다. 그래서 리차드 백스터가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회심하지 못한 영혼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가 대신 울어 주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다.”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교사들이 되십시오. 비록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양들의 이름을 부르며 슬퍼하다가 죽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고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이 길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그 많은 제자들 중 베드로를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해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예수님이 예루살렘 교회를 맡기며 말씀하셨습니다. 물어보셨습니다. 무엇을 물어보셨습니까? “대학은 어디 나왔느냐?, 교회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느냐?, 다시는 배반하지 않을 것이지? 핍박도 받을래?”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똑같은 질문을 세 번 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좋은 교사의 최고의 자격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릴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그 주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이 가엾어 보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때때로 수많은 언어를 대신합니다. 사랑은 업적보다 낫습니다. 좋은 물은 웅변보다 위대합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회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 엄마가 울었습니다. “엄마가 너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많이 기도했지만 어떻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니?”, “엄마, 목사님이 전도사님이 십자가에 대해서 설교할 때에는 내 마음이 찔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나를 붙들고 기도해 주셨어요. 선생님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기도 속에서 말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 모든 것이 믿어졌어요. 하나님이 없다면 저 선생님이 저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 다면 저 선생님이 저렇게 나를 위해서 슬프게 울 수 있을까? 그리고 모든 것이 믿어졌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최고의 교육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존재 자체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선교입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은 신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세하고 사업에 성공했기 때문에 신나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모르는 이유 때문에 행복해하는 것입니다.
(찬양)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그것이 최고의 선교입니다. 교사는 그렇게 선교하러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영혼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가슴이 터질 듯이 기뻐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그들이 의지하고 그들이 어려움 속에 있는 것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아픔보다 큰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그 교사에게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런 교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강의에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 할 것 있으면 질문하십시오. 질문이 없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강의를 너무 못 했거나 두 번째는 너무 명료해서 질문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우선 기본적으로 회심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여부가 불분명한 사람을 교사로 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아무리 그가 세상적인 학문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물론 사랑할 때도 있고 덜 사랑할 때도 있지만 그러한 은혜 안에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가 쓴 『교사 리바이벌』이라는 책 속에서 그 문제를 다룹니다. 그러면서 교사라고 하면서 혼자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이 같이 하는데 공동체가 함께 사랑으로 화합하면서 할 수 있는 조화로운 인격을 갖추도록 교사들을 잘 지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교사들을 위한 훈련의 문제가 나옵니다. 교사의 훈련은 교회로부터 하는 훈련과 자기 훈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일 필요한 것은 교회의 훈련입니다. 교회가 교사가 자질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지를 잘 결정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교사들에게 교육을 해야 합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방학 때 계속 연수를 받으십니다. 그런 교육을 받지 않으면 선생님이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합니까? 그러나 지속적인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가 너무 작으면 이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연합이 필요 한 것입니다.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서 연합을 하고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하는 지를 토의 합니다. 그것에 탁월한 사람을 불러 가르쳐서 공동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희 교회는 물론 교회가 규모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교사의 자격을 아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입니다. 한 선생님에게 여러 학생이 있다고 할지라도 교사가 쉽게 되기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훈련입니다. 그런 훈련이 필요한데 교회에서 당장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교재를 읽고 지금은 인터넷에서도 내용이 좋은 강의를 여러분이 아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교육적인 지도를 받아가면서 함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경을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10년씩 했다는 사람의 집에 가봤는데 책이 없다면 상식으로 가르친 것일 것입니다. 10년이 넘게 가르쳤다면 이런 책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개론, 아동 심리학, 교리 교과서, 어린이 교육법 등의 책이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 자신이 손에서 계속 책을 놓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이번에 도성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제가 20년 전에 쓴 책입니다. 정확하게 16년 전에 쓴 책입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 줄도 바꿀 생각이 없을 정도로 나의 생각은 16년 동안 변하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서너 명이, 혹은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한 주에 한 챕터씩 읽어간다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참된 교사의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여러분이 스스로 한 챕터씩 읽어가는 것입니다.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핑계가 많고 의욕이 있는 사람에게는 해야 할 이유가 많은 것입니다. 중국의 고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잘하는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좋아서 하는 사람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 한다.” 자기가 그것을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결론적으로는 둘 다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아직 깊은 사색의 능력이 없습니다. 행실이 나쁜 그리스도인들을 봅니다. 나쁜 인간을 봅니다. “선생님이라더니 뭐 저렇게 살아. 기도도 필요 없는 것이구나.” 두 번째는 지성적인 것입니다. 학교에서 뉴턴의 과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배웁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를 파괴할 정도로 정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라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중학교에 다닐 때에 배운 기억이 날 것입니다. 커다란 도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동물들의 발생초기의 태아의 모습이 똑같은 사진이 나옵니다. 포유류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분화됩니다. 학계에서는 이미 그 도표가 폐기 처분되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이런 그릇된 자료가 바로 사람의 생각을 확 바꾸어 놓습니다. 여러분이 스탈린이라는 러시아 지도자를 알 것입니다. 이 사람이 신학교까지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진화론에 심취하면서 결국 유물론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끔찍한 살육을 한 주인공입니다. 과학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에게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과학책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기독교의 변증의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성경 말씀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을 훨씬 줄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잘 해도 축구에 있어서 수비와 같은 것입니다. 비기려면 수비만 잘 해도 되지만 이기려면 수비만 잘 하면 안 됩니다. 슛을 제대로 쏘아서 골을 넣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왜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가르치지 말고 살아있는 능력을 직접 경험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대답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