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의 영적생활
녹취자: 원수연
열린교회를 개척한 것이 1993년 12월이었습니다. 12월에 어떻게 교회를 개척하게 됐냐하면, 오늘 설교했지만 저는 외국에서 유학한 적이 없습니다. 국내 토종입니다. 토종으로 공부를 했고, 유학은 한번은 너무 가고 싶었는데 상황이 막았고, 한번은 완벽하게 길이 열렸고 후원해주겠다는 학교도 있었는데 제가 필요를 못 느껴서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거부한 그 바로 전 해에 저는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했을 때는 제가 교수생활을 한지 한 학교에서 4년, 그 다음 학교에서 2년이 지났을 때에, 사실은 그런 걸 안 하기로 학교하고 약속을 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개척하게 된 동기는 1993년 10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만 37살밖에 안 되고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아홉 살이었으니까 왕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이미 저는 사람들에게 꽤 인지도가 있는 저자였고 책을 한 세 권정도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 집사람하고 저하고 자고, 지금 대학졸업하고 직장 다니는 딸은 그 때 한 살인가 두 살인가 그랬고, 우리 아들은 건넌방에서 자는데 잠이 안 오는 겁니다. 그래서 밤중에 내려와서 침대 맡에서 우리 집사람은 자는데 발밑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기도를 하는데 너무 뜨거운 기도가 나오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 교회를 개척하게 도와주세요.” ‘내가 미쳤나?’ 그 당시에 교수생활을 하고 있었고 학교도 나를 필요로 하고 학생들도 나를 필요로 하고, 쓸데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대우도 정말 잘 받고 있었습니다. 정말로요. 그래서 사실은 모든 동기들이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너무 예민해져서 신경과민인가보다.’ 그러고 기도를 했는데 그 다음 날 또 잠이 안 오는 겁니다. 그래서 또 기도를 했는데 똑같은 기도가 또 나오는 겁니다. ‘이거 왜 그러나?’ 그래서 ‘삼세번이다.’ 그러고 그 다음 세 번째 날 다시 또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확신이 왔습니다.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마음이 불붙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설교의 은혜를 주셔서 그 때 이미 대중적인 강사로 많이 불려 다니고 있었지만 사실은 저는 개척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웬만한 교회에서 오라고 그러면 갈 생각은 있었습니다. 우선 학교를 좀 한 다음에, 그 다음에 한 50살 쯤 돼서 가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불붙는 겁니다. 그 일이 있기 두 달 전쯤 우리 집사람이 “여보, 내가 기도하다가 생각이 났는데 우리가 이 다음에 교회를 하게 된다면 ‘열린교회’로 하고 싶어.” “해봐 그러면. 나는 개척할 생각 없으니까.” 그러니까 교회 이름부터 먼저 지어놓은 겁니다. 그리고 이제 제 마음속에 소원이 돼서 우리 집사람한테 “여보, 아무래도 하나님이 개척하라고 그러시는 것 같아.” 우리 집사람은 뛸 듯이 좋아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교회하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나한테 압력을 넣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압력에 의해 흔들릴 사람도 아니고.
그게 10월이었는데 12월 12일 교회를 다 인테리어, 인테리어가 뭡니까. 밀대가지고 내가 직접 칠해가지고 지하 교회에서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교회 얻고 막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때에 나와 함께 하겠다는 사람이 우리 집사람 포함해서 일곱 명. 제가 그 때 시내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청년부를 지도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한 쌍이 왔고, 청년들 두 명이 왔고, 그리고 제가 신앙 강좌를 강남에서 했는데 그 때 거기 왔던 분들 한 명인가 두 명이 오고, 그리고 학교에서 강의 듣다가 은혜를 많이 받은 제자가 한 사람 왔는데 그 사람이 김경해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곱 명이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게 열린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당을 막 칠을 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평상복 차림으로 왔습니다. 자기 혼자 우리가 일하는데 뒤에 서서 그러는 겁니다. “쯧쯧쯧, 장소를 잘못 골랐어…….” ‘저 사람이 누군가? 저렇게 무례할까?’ 그랬더니 그 동네에 있는 어느 목사님입니다. 그러고 하는 이야기가 “아이고, 개척을 하게 돼서 축하합니다.” 뭐 이것도 아니고.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장소를 잘못 골랐어. 여기는 교회가 안 되는 데야.” 알고 보니까 두 교회가 개척을 했다가 문을 닫고 나가서 폐허가 된 자리였습니다. 흉가같이 생긴 자리였습니다. ‘뭔 상관이 있냐, 나는 한다.’ 이러고 시작을 했습니다.
주일날 많은 사람이 와서 교회 설립을 축하해주고 갔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었는데, 그 때 제가 학교에서 대우는 잘 받았지만 살인적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그렇게 예배를 다 드리고 나니까 월요일에 녹초가 되어서 새벽기도를 못 나가겠는 거예요. ‘나갈까말까. 어차피 사람도 안 올 텐데. 그래도 교회를 개척해놓고 목회자가 그러면 안 되지.’ 그러고 토할 것 같이 힘이 드는데 새벽기도를 나왔더니 일곱 명이 개척한 교회에 새벽기도를 여덟 명이 나온 겁니다. 안 나왔으면 그게 무슨 망신입니까? 그래서 힘이 나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는데 12월 12일 일곱 명이 개척했는데 1월 첫 주에 35명이 모였습니다. “우와”라고 하시는 분들은 조그만 교회에 다니셨던 분들입니다. 큰 교회 다니셨던 분들을 그렇게 “우와” 안 합니다. 한 명 나오는 게 엄청 힘든 거 알죠? 열렬히 전도했습니다. 다들.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게 지금 이수초등학교 앞 골목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거기서 한 달 만에 35명이 모였으니까 잘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12월까지 이렇게 하면 300명이야 안 모이랴.’ 그랬더니 웬 걸. 하나님이 “네 이놈 맛 좀 봐라.” 진짜 대단했습니다. 예배시간마다 펑펑 웁니다. 심지어는 제발 좀 울지 말라고. 여기저기서 우니까 설교가 안 들리잖아요. 그러고 “울기만 하면 뭐하냐, 사람이 바뀌어야지.” 찬 물 한바가지 끼얹고 조용히 좀 하라고, 다 듣고 마지막에 저축했다가 한꺼번에 울어라. 그렇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설교가 보통 100분, 주일 낮 예배 설교가 100분, 오후 예배 설교도 그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힘든 사람들이. 두 가지는 안 합니다. 십일조하고 교회 등록은 안 합니다. 와서 맛만 보고 가는 겁니다. 펑펑 울고 자기네 교회 가서 헌금하고. 그리고 자기네 교회 욕하면서도 자기네 교회 다니는 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말이 딱 되 보니까 한 50명 겨우 모인 겁니다. 그리고 그 땐 또 제가 한 해에 오만키로를 탈 정도로 집회를 많이 다녔습니다. 그 때는 건강도 있고 하니까 운전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차를 몰고 경상도에서 밤 집회하고 밤새도록 올라와서 양평에서 새벽집회하고.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 때는.
그러다가 1997년, 교회가 이루어지고 한 4년쯤 되었을 때 반성을 했습니다. ‘이게 과연 정말 내가 목회를 잘 하고 있는 건가?’ 반성을 하고 아무데도 안 갔습니다. 세상없는 데서 날 오라고 그래도 안 갔습니다. 교회에 딱 붙어있었습니다. 1996년도에 그렇게 대우를 잘 해주던 학교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학교에서 생활비 받는 동안에는 교회에서 사례금을 안 받았습니다. 교회로 돌아오니까 수입이 삼분의 일로 줄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목회를 하련다.’ 그러고 교회에 붙어 앉아서 했더니 그 때부터 성도들이 안으로 안으로 응집되기 시작하면서 1997년도 3월에 170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쭉 성장을 해서 1998년에 270명이 모였습니다.
예배당 자체가 한 80명 들어가면 딱 맞는 예배당이었습니다. 조그만 예배당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산소가 모자라서 예배드리다가 사람들이 기절을 했습니다. 젊은 여자들이. 산소가 모자라서. 그래서 막 구멍을 뚫고 바람을 꺼내오고 그랬습니다. 270명이니까 사람들이 동네에 주산학원, 무슨 학원, 그런 학원 전부다 주일날 빌려가지고 일곱 군데에서 구역예배를 드리며 그렇게 예배를 드리다가 그 다음에 간 게 이수역 있는 데 교회 하나가 있었는데 그 때가 IMF때였습니다. 교회 건물 하나를 교회가 넘겨주고 다른 데로 이사를 갔는데 건축회사가 그것을 부수고 오피스텔을 지으려고 그러다가 IMF가 터진 겁니다. 누가 오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팔든지 세로 둔다는데 우리가 살 수 있는 능력은 말도 안 되고 세로 들어간 겁니다. 그게 두 번째 교회당입니다. 그게 1998년도 10월 10일이었습니다. 거기에 갔을 때, 가장 많이 모일 때 270명쯤 교인이 모였고 보통 240명 정도 모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사를 간다고 그러니까 헌금하는 게 너무 부담스러운지 40명이 어디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180명인가 200명이 거기로 가서 보증금 5억에 월세 1100만원에 이사를 갔는데 한 달 나오는 모든 헌금이 1100만원밖에 안됐습니다. 그래도 가서 ‘2년 안에 부흥을 하자.’ 그러고 가서 가난한데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당이 한 900명쯤 들어가는데 150명, 200명 모였으니까 완전히 썰렁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1998년 10월 10일 이사를 갔는데 2002년도 4월에는, 그러니까 4년이 안됐을 때입니다. 3년 6개월쯤 되었을 때 장년만 딱 1000명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겁니다. 특히 주차장이 없어가지고 전도만 해오면 이상하게 경찰이 그 날 처음 온 사람 차만 골라서 잠실로 끌고 가는 겁니다. 그러면 전도한 사람이 빌면서 가가지고 돈 대신 내주고 차 찾아주고 그렇게 역경을 겪다가 여기로 오게 된 겁니다.
여기로 와서 예배당을 어떻게 하냐, 교인이 300명일 때는 이사 갈 빌딩에 많이 있었는데 1000명씩 들어갈 수 있는 데는 없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막 눈물로 기도를 하는데 지금 있는 본당 예배당 거기에 공장이 하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팔려고 내놨다가 주인이 도로 집어넣은 땅이랍니다. 그래서 그거라도 좋으니까 한번 보여 달라고 그러니까 그 사람은 안 판답니다. 그래도 보여 달라고 찾아갔더니 그 할아버지가 안 판답니다. 그래서 좀 파시라고. 안 판답니다. 안 판다는데 왜 자꾸 와서 귀찮게 하냐 그럽니다. 그리고 물어보는 겁니다. “그거를 사서 뭐하려고 그러우?” “교회를 하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가 갑자기 “그래요? 일주일만 생각해봅시다.” 그러더니 일주일 후에 “가져가라.” 이러는 겁니다. 자기 평생소원이, 평생 여기서 70년대부터 방직공장을 했는데 마지막에 소원이, 자기 은퇴하면서 이 땅에 교회가 서는 게 소원이었답니다.
우리가 이거 사기로 결심했을 때 40억을 주고 샀는데 통장에 1500만원 있었습니다. 그게 모든 재산이었습니다. 그럼 무슨 믿는 데가 있었냐. 뭐가 있습니까. 집 가진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어떡합니까. 그래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가 돈은 있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돈이 어딨습니까. 계약금 3억 원을 어떻게 그냥 교인이 빌려줘서 그걸로 계약금을 하고 중도금부터는 없는 겁니다. 할아버지가 “돈 있냐?” 그러니까 “있습니다.” “어디 있냐?” “우리 아버지 집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 고마운 분입니다. 그 자리에서 인감도장, 주민등록 다 내주면서 “땅을 너희 명의로 가져가라. 그리고 그걸로 대출을 해서 나를 돈을 다오.”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땅 주인이라도 절대 안 합니다. 먹고 도망가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다 해서 자리를 잡은 게 2002년도 4월 30일이었어요. 옛날 건물은 지금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게 다 망가져가는 공장을 저쪽에선 빨리 안 나가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게 되어있는 겁니다. 자기네들 빌딩을 져야 되니까. 내가 군화를 신고 하이바를 쓰고 지휘봉을 들고 진두지휘해가지고, 내가 벽에다 설계도를 그리면서 두 달 만에 그렇게 예쁜 예배당으로 바꿔놓은 겁니다. 그러고 이제 이번에 화재가 나면서 다 부셔버리고, 부셔버린 건 아니죠. 껍데기만 다 없애버리고 뼈다귀에다가 다시 입혀서 완전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가 된 겁니다.
그러고 와서 지금 현재 장년이 3200명 정도 모이는 교회가 되었고, 1200명 정도 모였을 때 이번엔 아이들이 300명에서 600명으로 불어나니까 도저히 어디 갈 데가 없는 겁니다. 건너편에 건물을 얻어 보려고 그러니까 주는 데도 별로 없지만 아이들 수백 명이 건널목을 건너야 됩니다. 언젠가는 사고 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절대 안 된다고 그랬습니다. 그 때 이 빌딩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이 빌딩을 교회 그렇게 해놓고 2년 만에 80억을 주고 이 빌딩을 산 것입니다. 지금 안 샀으면 큰일났죠. 여기다가 아이들을 집어넣은 겁니다.
그랬으니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80억, 80억, 160억짜리를 2년 동안에 쓰니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목사가 되면 돈 하고 상관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매일 울었습니다. 사택에서. 교회 속에서 살았거든요. 10년을 살았습니다. 저쪽에서 4년, 여기에서 한 7년 이렇게 해서 10년 살았는데 이 건물을 내다보면서 매일 울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하여튼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래서 이 빌딩을 사게 된 겁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드리냐 하면 교회는 결국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인데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를 보호하고 지키시지만, 그러나 반드시 당신의 충성스런 종들을 통해서 당신의 교회를 일구어 가시는 겁니다.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때에 헌신했던 사람들은 거의 신들린 것처럼 헌신했습니다. 정말. 그리고 저는 죽을 때까지 그 사람들을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분들은 이미 하늘나라를 갔고, 어떤 분들은 교회를 떠났고, 어떤 분들은 야리야리한 청년이었는데 지금은 권사님이 될 정도로 늙은 나이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권사님 같았던 분들은 지금은 파파할머니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짜 멋지게 살아왔습니다. 그분들이.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건 뭐냐면, ‘에이, 뭐 힘들면 또 한 번 옮기면 되지.’ 그렇게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이 교회가 내 일생에 마지막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영적인 본거지가 있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깊이 사랑하고,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저 책을 여러분에게 하나씩 읽게 했는데 뒤에 있는 CD를 잘 들으면서 교회에 관한 생각을 깊이 가지고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그런 삶을 꿈꾸지만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초가 탄탄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다섯 가지 기초인데 첫 번째가 예배입니다. 예배에서 은혜를 많이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보면 교회에 오래 정착하는 사람들 특징이 있습니다. 예배에 늘 은혜를 받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쳐도 거의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꿋꿋하게 믿음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예배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예배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다고 하는 간절한 소원을 품어야 합니다. 그런 소원을 품으면 토요일부터 주일을 준비하게 되고 결코 마치 마지못해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교회에 끌려나오는 것처럼 예배드리러 나오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지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지각하는 때가 있지만 그것이 자주 반복이 되면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 예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간절히 예배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제일 중요한 요소가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예배는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의식이 아니라 지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그 하나님께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은혜와 믿음의 관계입니다. 믿음은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시간에 가장 명료한 정신으로 나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지성과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이해를 통해서 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배당에 와서 가장 나쁜 자세는 졸거나, 자거나, 어쨌든 설교를 들으면서 자지도 않고 졸지도 않는데 딴 생각을 하거나, 이 지성이, 생각의 기능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않고 있는 태도가 가장 나쁜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배당에 나왔지만 마음은 집에다가 놓고 온 사람입니다. 그런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에서 배운 것처럼 그렇게 예배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똑바른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필기하는 건 좋은데 설교 전체를 베끼는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예배를 드리는 곳이지 강의를 듣는 교습소가 아닙니다. 잊어버려서는 안 될 중요한 교리나 내용들을 가끔 한줄 씩 적어놓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말씀을 듣고 깨달은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인격적인 기도를 올릴 수 있어야지만 그것이 좋은 예배생활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어느 정도 있어도 그 말씀이 자기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여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깨달음이 있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아이들이 엄마한테 뭐를 달라고 떼를 쓴다고 다 주는 것 아닙니다. 제가 우리 형제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절대 이런 여자하고 결혼하지 마라. 집에서 엄마한테 두 다리 뻗고 버둥거리면 뭐든지 쩔쩔매고 엄마가 해준 집안의 여자, 그런 자매하고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 그것은 스스로 걸어가서 무덤을 파는 거다. 차라리 혼자 살아라.” 내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떼를 쓰고 기도한다고 모든 걸 들어주시는 건 아닙니다. 지혜로운 자녀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헤아리면서 자기가 무엇을 구할 때 부모가 기쁘게 들어주는 지를 생각하면서 구하는 자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의 성숙도는 단지 뜨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지성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길러본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나이 좀 들고 보면 만날 와서 살살 거리고 그러는데 꼭 저것이 와서 저렇게 꼬리를 치고 살살거릴 때는 뭐 좀 가져가고 싶은 게 있는 겁니다. 그런 자식이 있는가하면 그렇게 살살거리지는 않는데 속이 깊은 자식이 있습니다. 그 자식한테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자꾸 기울어지고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러면 진짜 성숙한 자녀는 누구냐면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게 뭘까?’ 그걸 생각하는 자녀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있습니다. 허공을 헤맨다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게 아닙니다. 꿈을 꾼다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지성적으로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깨닫지 못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만 마디의 기도보다는 깨달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한 마디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훨씬 기쁜 기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내일 모레 대학을 가야될 놈인데 탱탱 거리고 공부를 안 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빠, 소원이 있어. 엄마, 나 뭐 좀 사줘.” “뭘 사줘?” “정말 소원이 있어. 내가 청소하라면 하고 뭐든지 잘할게.” “무슨 소원인데?” “게임기 하나만 사줘.” 그럼 엄마의 마음에 다가오겠습니까? 아빠를 찾아가서 “아빠, 내가 한 주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이제는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 생각을 하고 아무래도 대학을 일단 들어가야겠다고 생각이 되서 제가 결심을 새로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일 년간 너무 놀아서 실력이 없어요. 아빠, 너무 힘들겠지만 나 단과반 하나만 끊어줘요.” 그러면 아빠가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우리 기도도 마찬가지로 성숙한 기도를 해야 됩니다. 무얼 기도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도의 방향을 올바로 잡았다고 할지라도 오늘 설교한 것처럼 몸소 기도해야합니다. 생각 속에만 있으면 안 되고 실제로 마음을 쏟아서 여러분이 기도해야 합니다. 집이 가까우면 새벽에 교회 나와서 기도하면 너무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든지 간에 정해진 장소와 시간이 있고, 여러분은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다 굴이 있습니다. 예배 끝나면 돌아갈 집이 있습니다. 어디서든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깨달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고 할 때에 신앙이 성장하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열린교회에 등록한 것과 함께 이제 기독교학교에 입학했다고 생각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벌써 그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아, 이 교회는 무슨 학원도 아니고 하라는 공부가 왜 이렇게 많은가? 공과공부도 계속 하고 있는데.’ 그런데 지금은 많이 약해진 겁니다. 옛날에는 1999년도에 새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본인이 4만 6천원어치의 교재를 사야했습니다. 여러분, 1999년도의 물가수준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때 4만 6천원이었으면 지금 아마 8만 원정도 되는 인플레가 될 겁니다. 교회성장연구소에서 인터뷰를 나와서 이렇게 한보따리 되는 교재를 보면서 이걸 정말 돈 주고 사냐고 그럽니다. 한 개도 교회에서 공짜로 준 적이 없습니다. 본인이 삽니다. 그것이 우리는 학습의지라고 봤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2만 3천 원씩 두 번에 나눠서 사고 한 개가 끝날 때마다, 돈 있는 사람은 한꺼번에 사라고 했습니다. 매주 등록하는 사람이 적게 등록하면 15명, 많이 등록하면 45명이 계속 몰려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것을 다 사서 공부한 겁니다. 지금은 다 만들어서 그냥 주죠? 옛날 오신 분들은 사셨을 거고 올해부터는 그냥 준다고 합니다. 공과책도 그냥 줍니다.
어떤 사람은 참 정신이 올바릅니다. ‘그걸 왜 그냥 주냐고. 우리는 공짜 싫다고.’ 그거 담임 목사를 닮았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라 그랬어요? 공짜입니다. 공짜는 싫습니다. 구원 이외에 공짜는 사절입니다. 그리고 너무 불편합니다. 기대하지 않고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지금은 제가 많이 타락했습니다. 예전에는 주유소에서 주는 사은품도 안 받았습니다. 왜 주냐고? 이런 걸로 줄 바에야 차라리 기름을 조금 더 주라. 왜 쓸데없이 이런 걸 붙이냐고. 생수도 안 받아 본 사람입니다. 휴지도 안 받았습니다. 주유소에서 주는 휴지는 아주 나쁩니다. 요새는 가끔 받습니다. 특히 생수는 아주 유용합니다. 그런데 미워해야합니다. 공짜는.
엊그제도 음식점에 오래간만에 갔습니다. 자주 갔던 곳인데 한참 동안 안 갔습니다. 손님이 와서 갔더니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목사님, 오래간만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디저트는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는데 주지 마라. 싫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말하는데 나 공짜 싫다. 정 주고 싶으면 돈을 받아라. 안 그러면 나는 싫다.” 그랬더니 이 지배인이 다시 한 번 고개를 90도로 숙이더니 “목사님 저도 마음을 다하여 말씀드립니다.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냥 주니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열린교회 등록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열렬하게 공과공부에 참여하는 거 아닌 거 아시죠? 많이 좋아져서 60%정도는 열렬히 참석하고 한 70%까지는 억지로라도 참석하고 30%는 계속 바깥으로 돕니다. 그 사람들이 절대 그거 안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공짜로 주니까 그것 때문에 심방도 가고 그거 읽다가 은혜를 받고 정신 차리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래서 공짜가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구김 없이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뭐, 여러분이 낸 헌금 가지고 만든 거지만.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공부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걸 라틴어로 ‘스튜데오 에르고 숨(Stúdĕo, ergo sum)’ 그럽니다. 스튜데오-나는 공부한다, 에르고-그러므로, 숨-존재한다. 따라해 보십시오. 스튜데오. 스터디가 거기서 온 겁니다. 스튜데오 에르고 숨. 붙이겠습니다. 스튜데오 에르고 숨. 어디서 많이 들어봤죠? ‘꼬기또 에르고 숨(Cógito, ergo sum)’, 그러잖아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튜데오로 바꾸면 됩니다. 다시 한 번. 스튜데오 에르고 숨. 무슨 뜻이냐면, 이게 괜히 뻥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을 모든 동물과 구별 짓는 중요한 요소가 지성입니다.
부모는 가끔 자식을 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엄마가 아기를 버리는 것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동물은, 그런 예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물은 안 그럽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동물은 자기 새끼를 안 버리고 그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게 의미가 뭔지 모릅니다. 본능에 의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의미를 압니다. 그게 인간의 위대함입니다.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인간이 짐승 같은 마음이 들면 자식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는 아무리 못 되도 개만 못된 개새끼가 없지만 인간은 개만도 못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자기가 선택해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간이 개만도 못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거기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계처럼 다루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자기의 갈 길을 선택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인격적으로 다루시는 겁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의 부흥을 경험한 적도 있고 미끄러진 적도 있을 것입니다. 미끄러질 때에 하나님이 미끄러트리신 게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선택해서 미끄러진 겁니다. 가보니까 어떻습니까? 안 좋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괴롭다고 호소하고 눈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겁니다. 그런 것이 결국은 결정적인 계기는 지성 속에서 예전에 몰랐던 것을 새롭게 깨달으면서 올바른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배운다고 하는 것은 책을 놓고 글자를 배우는 것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배우는 것이라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그 배우는 것의 중심은, 책 한 권 안 읽으면서도 배울 수 있겠죠. 온몸으로 부딪혀서. 그러니 얼마나 희생이 크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여기서 신학이라니까 여러분이 우리를 모두 목사를 만들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신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학문. 하나님에 관한 지식, 학문을 여러분이 예전에 있던 교회에서도 배웠을 겁니다. 배웠는데 산발적이고 체계적이지 않거나 수준이 낮은 지식들이었다면 여기에 와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지금 마치고 여러분이 바로 해야 할 것이 가장 시급한 것이 교리반, 교리반 와서 나하고 같이 교리를 공부해야지만 비로소 여러분이 진짜 집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집사가 아니냐? 집사이긴 한데 여러분이 집사 가지고는 구역장을 안 시켜줍니다. 교사도 못합니다. 교리반을 해야지만 교사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가르칠 자격이. 교리반, 그 다음에 구약개관학교, 신약개관학교, 그 다음에 선교학교, 양육학교, 그 다음에 새생명전도학교 등등의 일고여덟 개의 학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차근차근히 한 해에 한 개씩이라도 두 개씩이라도 해가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고 구역예배에 가게 되면 이미 벌써 성장반 교재가 끝났으니까 이미 지금 『그리스도인의 아우라』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을 겁니다. 이번에 나가는 책은 『청교도의 주일성수, 그 평가와 계승』입니다. 그것은 신학책입니다. 그런 신학적인 지식을 통해서 신앙의 체계가 쌓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한 10년 정도 성실하게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고 구역예배에 꾸준히 참석한 사람들은 그런 설교집과 신학책들을 최소한 30권 내지 40권을 완독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 500편 정도의 설교를 완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당한 신학적인 지식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면 그게 뭐가 좋냐? 그런 지식이 있기 때문에 삶을 든든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열린교회에 와서는 절대로 교회가 양보를 안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좋은 시대에 온 겁니다. 옛날에는 교리반 같은 거 15명이 내 방에 모여서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를 안 해가지고 올 수가 없는 겁니다. 물어보는 겁니다. 한 사람씩. 뭘 느꼈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하나씩 대답을 하는 겁니다. 아주 달달달 떨고. 중간고사 때는 요즘 이렇게 놓고 시험보지만 옛날에는 여기 한 사람, 여기 한 사람, 여기 한 사람, 꼭 공무원 시험 보는 것처럼 봤습니다. 청심원 먹고 옵니다. 그러고 이제 머리 하얀 할아버지들이 밤늦게까지 테이블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러고 답안지를 쓰는 겁니다. 85점 이하 나오면 과락입니다.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직장으로 통보가 갑니다. “아무개 있어요?” “없는데요.” “그러면 전해주세요. 교리반 떨어지셨으니까 다음 주에 재시험 보러 오라고 그러십시오.” 그럼 다시 와서 재시험 보고. 붙을 때까지. 끝까지 안 하면. 그러면 미수료입니다. 탈락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하구요.
지금 교회의 장로님 되시는 분들은 고급 교리반까지 마치신 분들입니다. 고급 교리반에서는 기독교강요 초판 라틴어 대조본을 16주 동안 공부를 했는데 16주 동안 읽을 책의 양이 3500페이지 정도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시험을 봐서 90점 이상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 번도 신학적인 견해차이 때문에 분쟁이 생긴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교리적으로 배운 사람들이 그렇게 16주 동안 테이프 듣잖아요. 테이프을 또 얼마나 많이 듣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기독교강요만 200페이지 책 6권, 1200페이지짜리를 공부하고 리딩하는 숙제가 약 2500페이지 정도 됐습니다. 16주 동안에. 그렇게 해가지고 전부다 3500페이지 정도를 전부 읽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뿐만 아니라 매주 시험을 보는 겁니다. 매주. 그렇게 해가지고 16주를 피를 말리는 시험을 보는 겁니다. 딱 졸업을 하고 나면 촤악 바다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겁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그 다음에 기독교강요를 펴놓고 매일 읽는 겁니다. 그러면서 든든한 신앙에 탁 서가는 겁니다. 장로님들 웬만한 사람 붙들고 한 번 교리나 신학적인 거 물어보십시오. 유창하게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여러분이 한 달에 최소한 한 권 정도씩은 책을 산다는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이 죽을 때에는 한쪽 벽면이 기독교 책으로 꽉 차서 손때 묻은 책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 “너희들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 속에서 살거라.” 그렇게 마지막에 유언을 하고 죽는 겁니다. 괴테가 마지막에 죽을 때 그랬습니다. “창문을 열어라, 더 많은 빛을 내게 비추게 하라, 악.” 하고 죽었습니다. 김삿갓은 반대로 얘기했죠. “창문을 닫아라, 촛불이 흔들린다. 컥.” 여러분은 뭐라고 그러고 죽을 겁니까? “아이씨, 더 살고 싶은데 으억.” 그러면 되겠습니까? “꿔준 돈 꼭 받아라, 으악.”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멋있는 유언을 남기고 자녀에게 “이 지식의 빛 안에서 살아라.” 그러고 탁 죽는 겁니다.
네 번째, 봉사를 하셔야 합니다. 영어 속담에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영어공부하면서 배운 건데 제 기억으로는 이끼가 끼는 걸 긍정적인 의미로 본겁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을 합니다. 맞는지 모르겠는데. 무슨 얘기냐면 계속 뭔가를 굴리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안정감이 없다고 얘기를 하는데 이끼를 만약 부정적이라고 본다면 하나님을 계속 섬기는 사람들은 신앙에 이끼가 끼지를 않습니다. 부패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봉사를 한다고 모두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봉사에 자기의 마음을 실어서 영적인 쇄신의 작용이 봉사 속에 일어날 때, 그 때에 마음이 계속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도하고 은혜를 구하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제가 75년도에 회심을 했고, 76년도서부터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했는데 그것이 사실은 신앙을 많이 붙들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야 되기 때문에 교회에 빠질 수가 없었고 항상 살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이러면 안 되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봉사를 하십시오. 너무 자기 역량에 안 맞는 그런 거 하지 마시구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길 데를 알아보시면서 봉사하십시오. 우리 교회는 성가대가 없잖아요. 성가대가 없어서 봉사할 기회가 아주 많습니다. 다른 교회 전부다 성가대로 모이거든요. 그게 제일 폼 나잖아요. 가운입고. 우린 가운도 없잖아요. 그래서 여러분이 봉사를 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정말 필요로 하는 섬김이 무언가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다해서 섬기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의 힌트를 드리자면 “설교를 들어도 뭔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분들은 제일 좋은 건 빨리 교리반에 들어오셔서 공부를 하고 지금 이제 끝나고 내년에 또 생길 겁니다. 들어오셔서 공부하고 그 전에라도 어떻게 하고 싶다는 분들은 녹취 헌신자를 지원을 하면 녹취를 하면서 여러분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많은 섬기는 일자리들이 있으니까 거기서 잘 섬기면서 은혜를 받기 바라고 연말에 아마 섬김 박람회 같은 걸 할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 가서 신청을 해서 어디선가 열심히 봉사하시라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전도하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보면 정말 목자이신 예수님의 심정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해에 우리 교회에서 전도를 많이 했는데, 여러분, 생각하면 우리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대개 설교도 어렵고 예배도 그러니까 아마 전부다 수평이동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느 해에 조사해보니까 40%가 교회 처음 나와 예수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최근에 조사를 했더니 30%정도로 나왔습니다. 열 명 중에 세 명은 전혀 다른 교회 안 다니던 사람들이 오는 겁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에서 꽤 비율이 높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뭐냐면 그 사람들의 말씀에 대한 이해력이 빠른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오래 10년, 20년 다닌 사람들이 말씀을 더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왜냐하면 처음 들어왔기 때문에 원래 그런 거려니 하고 듣는 겁니다. 어렵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면 이해력이 쭉쭉쭉쭉 생기면서 웬만한 사람들, 한글을 못 읽는 사람은 없잖아요. 똑똑한 형제자매들도 아주 많습니다. 설교시간에 이야기하다가 노장사상 이야기하면 노장사상 책 촥 읽고, 칼세이건 얘기하면 코스모스에 관한 책 촥 읽고, 아들러 이야기하면 아들러 촥 읽고 그러니까 직장도 안 다니겠다 여유가 있으니까 책 읽으면서 따라오니까, 은혜도 받고 하니까, 쭉쭉쭉쭉 신앙이 크는 겁니다. 그런 책들을 읽는다고 신앙이 크는 것이 아니라 비평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공부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고 나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정말 어두움 속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럴 때 피켓을 들고 나가서 전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만나서 교제하고 하면서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될지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더 잘 믿도록 지도하고 꼭 우리 교회에 오지 않더라도 교회 잘 다니면서 예수 믿게 붙들어주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방황하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 데리고 나오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돌보면서 자기가 배운 성경지식과 받은 은혜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배움은 가르치는 데서 나옵니다. 여러분이 은혜 받은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가르치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설교도 한번 듣고 휘 흘려보내지 말고, 여러해 전에 한번 조사를 했는데 온 교인이 거의 65% 정도가 평소에 한 개 이상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조사가 됐습니다. 굉장한 것입니다. 옛날에 설교들을 시리즈로 차근차근 들으면서 자신의 신앙에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하나님 앞에서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시련과 고난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잘 살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교회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여러분이 좀 더 세월이 흐른 뒤에 이 교회에서 더 훌륭한 일꾼들로 자라서 여러분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