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4. 외부강의
제직의 영적생활
녹취자: 박은희
여러분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마는, 대개 열린교회에 와서 집사가 되겠다 혹은 임용을 해가지고 와서 그래서 협동안수집사나 아니면 협동장로나 협동권사나 되겠습니다이러는 분들은, 대개 그렇게 뜻을 세우기까지 은혜를 받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교회가 이렇게 17년 어간 지나오는 동안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세워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그리고 특별히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시는 감격을 경험하고, 거기에서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배우겠다고 성장반을 공부하고, 교리반을 공부하고,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책을 읽고, 이러면서 사실 여러분들이 제직이 되기까지 아마 일 년 내지 최소한 이년정도 세월이 흘렀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렇게 될 때 까지는 여러분들이 대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이 제직이 되겠다고 신청을 한 것은, 여러분들이 할 수만 있으면 이 교회에서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신앙생활을 해야되겠다라는 결심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우리의 신앙이 100미터 달리기 같으면 한번 확 달리고 도착했다 그리고 끝나보겠는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을 42.195 키로 미터인 이 마라톤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물론 개중에는 처음 와서 은혜를 받고 거의 미끄러지지 않고 뜨겁게 뜨겁게 위로 상승하는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도 받지만, 좌절도 하고 낙심도 하고 하는 그런 과정을 다 겪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우리들이 이제 그런 것들을 잘 극복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을 오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시중에 무슨 말아 도냐 하면, 오래 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를 못 떠난답니다. 한 10년 20년 다닌 교회를 못 떠난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에 맨 처음에 야, 은혜를 많이 받아서, 아니면 은혜를 못 받았다고 하더라도 성도들과 하도 정이 들어서 못 떠나나보다 그랬더니, 그게 아니라 그 동안 부조한 것이 아까워서 못 떠난답니다. 그게 한 이천만원 정도 된답니다. 그래서 자기도 큰일을 치루어서 그것을 수금을 해야 되겠는데, 큰일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 무슨 애가 장가를 간다든지, 회갑을 맞이한다든지, 뭐가 있어야 될 것 아니잖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런 것들로 말미암는 신앙생활이라면, 나는 굉장히 비참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은 정말 비참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막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를 오늘날과 같은 상황 속에서 절대로 옮길 수 없다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전근을 간다든지, 아니면 이사를 갔는데 교회가 너무 멀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교회를 옮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마치 전깃줄에 앉은 참새처럼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무슨 헬스클럽 옮기는 거와같이, 무슨 미용실을 단골 바꾸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쉽게 쉽게 교회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깊이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다 이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진리의 그 맛을 알아서 그 안에서 성숙해가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자,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교회생활을 하게 되면,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만나고 이제까지 살아온 우리의 인생의 경험이 그러하듯이, 여러 가지 많은 우여곡절들을 겪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될 턴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미끄러지지 않는 견실한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아갈 수 있겠느냐 이것입니다. 몇 가지를 오늘 여러분들에게 너무 많이 말씀을 드리면 잊어버릴 테니까 몇 가지만 기억에 꼭 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예배에 목숨을 건다. 예배에 목숨을 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들이 예배생활은 오늘 설교한 것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경배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에 거룩하심 앞에서 예배드리는 이 헌신을 통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큼 알고 있는지, 얼마큼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지, 이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사람의 신앙의 수준은, 그가 드리는 예배의 수준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제가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성경을 열심히 배워본 적이 없는 구역장, 진실한 예배자였던 적이 없는 예배 인도자, 간절한 기도자였던 적이 없는 기도인도자, 교회의 치리에 복종해본 적이 없는 교회의 장로나 목사,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앙이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생활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 그것은 이것입니다. 예배 속에서, 예배 그 자체가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진리를 배우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깨닫고,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랑해야 되겠다고 하는 그 모든 것을 배우는 중심적인 기둥이 되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한번 예배를 생각을 해보면 이런 그림이 나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잘못된 예배에 대한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여기는 예배고 그다음에 여기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생활과 예배사이에 담장이 쳐져 있습니다. 이렇게. 그래서 이 두개가 서로 유통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사람들 많이 봅니다. 그렇죠? 예배시간에는 은혜를 받겠다고, 혹은 일 년 52주 동안 한 번도 예배에 빠지지 않았다고 자랑을 하는데, 삶과 예배가 단절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또 어떤 사람이 있냐 하면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예배가 곧 생활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잘 아는 어느 교회 중에 하나에서 있었던 일인데 주일날 11시에 예배드리러 와야 되잖습니까? 그런데 청년들이 빈민 봉사활동을 떠납니다. 예배는? 거기서 봉사 활동하는 게 예배라 이 이야기입니다. 그럼 집에서 집안일 하는 것도 예배겠네요? 이런 생각은 또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좁은 의미의 예배와 넓은 의미가 있는데 넓은 의미의 예배가 생활이고, 가장 바람직한 예배의 개념은 어떤 것이냐? 이런 것입니다. 이것 뭐죠? 원뿔입니다. 그렇죠? 여기가 예배, 여기가 생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요? 예배와 생활 사이에 이런 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없기 때문에 흐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것이. 생활이 예배로, 예배가 생활로 흐르는 것입니다. 예배드린 것만큼만 살고 산 것만큼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주일동안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전도를 한다든지, 선교를 위해서 봉사 한다든지 그러고 나와 보십시오. 그러면 이 땅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눈물이 확 쏟아지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계속 불화해서 싸우고 고통을 받는데, 그 가정을 화목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서 가족을 위해서 봉사하고 기도하다가 나오면, 그때에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때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일주일 동안에 생활과 예배가 담장이 없이 유통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보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그렇죠? 여기는 예배이고, 여기는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분명히 높낮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이런 식으로 일원론 한답시고 무시해서도 안 되고, 이런 이원론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예배는 위에서 보면 이렇게 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여기 예배가 있고, 그 다음에 여기 생활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예배에서 받은 은혜와 진리의 빛을 삶속에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게 좋은 예배생활이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예배입니다. 예배. 예배에서 한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지만, 그 목적을 이루는 목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서 내가 일주일동안 살았던 삶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보고,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해서 참된 성도의 삶을 살게 하는, 그런 예배의 감격이 있는 삶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배의 감격이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단지 예배를 잘 드려야 되겠다라는 그런 생각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러 나아 갈 때는, 이 생활 전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살러 갈 때에는 이 예배에서 받은 은혜를 가지고 전부 삶으로 흘려보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에 삶이, 예배의 초점을 맞춘 삶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를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같은 경우에는 수요예배를 자기가 드려야하는 예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런 비율이 적었는데 이제는 예배를 드려야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훨씬 적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깊이 생각을 해야 됩니다.
주알 예배가 있는데 한국교회에서 수요예배가 생겨나게 된 중요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수많은 사람이 실험을 해보았는데 이번주일과 다음 주일 사이가 너무 멉니다. 그래서 어떻게? 수요일 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것도 너무 멉니다. 그래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5일 예배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그게 금요예배입니다. 나중에 그게 금요기도회로 바뀌었지만, 원래는 수요예배하고 똑 같이 금요일 날 모여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들이 살던 때는 지금보다 이렇게 더 형편없이 타락하고 그렇지 않은 농경사회가 주를 이루는 사회였는데도 이게 일주일을 견디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목마르다 그래서 수요예배가 생기고 금요예배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뭐냐 하면, 우선 주일예배에 목숨을 걸고 은혜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린교회에서 제직이 된 기념으로 수요예배도 나오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웃고 계시는데, 내가 왜 그러는지를 설명해 드릴께 들어 보십시오. 제가 17년 전에 교회를 개척을 했는데, 어떻게 되나? 이번이 18년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이. 12월 12일이. 그런데 나도 안 세어 보았는데 주위의 사람들이 얘기 하는 게 새벽기도 빼고 4천 번 정도 설교를 했답니다. 참 많이 했지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도 서점에 가면 말씀 안내가이드가 나오잖습니까? 그게 초창기부터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꼭 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시리즈들 중 절반 이상이 수요일 날 쏟아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수요예배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론 너무 먼데 계신 분들을 좀 힘들겠지요? 그렇죠? 그러나 교회 가까이 계시거나, 길이 멀어도 교통이 좋아가지고 한 번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은 수요예배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삶고 살면, 그 시간에 우리들이 뭔가 크게 보람 있는 일을 하느냐하면 그럴 때도 있지만, 사실 드라마 편수나 늘리고 있는 적이 많습니다. 그게 무슨 우리에게 그렇게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겠습니까? 그래서 수요예배 오면, 한 400명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예배의 사람이 되라 그것입니다. 예배 중에서 특별히 생각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설교를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설교를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예화) 김남근 장로님 가셨습니까? 가신 모양입니다. 아까 김남근 장로님 와서 특강했다면서요? 아닙니까? 1교시에. 했지요?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그 양반이 제 동생입니다. 뭐 남 자 돌림이니까 그렇잖습니까? 근데 바로 밑에 동생입니다. 우리가 4형제인데 바로 밑에 동생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역사가 참 깁니다. 그런데 중간에 다 생략하고, 효자입니다. 효자. 그런데 나는 지하실에다 교회를 개척을 했습니다. 근데 그 때 교인이 그저 한 80명, 100명, 100명쯤 모일 때였나? 어느 날 그러는 것입니다. “형님!” “왜?” “저 교회를 아무래도 형님교회로 옮겨야 되겠습니다.” 그래요. 나는 뭔가 이렇게 중대한 신앙의 결단을 한줄 알았습니다. 나는 가족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을 별로 싫어하거든요.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부모님을 제가 큰아들인데, 제가 모시고 있었습니다. 목회하면서. 그런데 김장로는 목동에 삽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께 인사를 해야 하는데 그 때는 가족들도 다 같이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교회 갔다가 부모님을 찾아뵈러 오려니까 이게 너무 시간 낭비도 많고 멉니다. 그러니까 형님네 교회 와서 예배드리면 거의 부모님이 매일 오잖습니까? 같이 사니까. 그러면 인사하고 뭐 한 달에 한번 봉투라도 쥐어드리고 가면 그러면 이제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 되잖습니까? 그래서 등록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알았지. 나중에. 그런데 이 양반이 이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내가 책을 얼마나 많이 썼겠습니까? 지금 나도 안 세어 보았는데 50몇 권 썼다고 그러는데, 관심도 없습니다. 나오면 항상 줬습니다. 그런데 책꽂이에 나란히 꽂혀있습니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보아도 오늘 처음에 햇빛을 보는 페이지입니다. 그러더니 예배당에 들어왔는데, 그러니까 이제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그리고 교회는 주일날 낮 예배만 나가서 졸다오고 아무런 교회에 소속에 얽매이지 않는 그런 종류의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책에서 날마다 비판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형네교회에 등록을 했는데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그 교회에서 예배를 오전예배, 오후예배 합친 것보다도 우리 오전예배가 더 긴 것입니다. 그런 줄을 모르고 등록을 한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 내가 지난주 같은 경우 내가 딱 한 시간 설교를 했습니다. 멀러교수님이 어! 정말 설교가 미국 같았으면 다 장난치고 졸고 그랬을 턴데 참 회중도 대단하다 그러셨는데 그런데 그것은 요, 그 때는 60분 설교하고 내려오면 성도들이 어디 아프시냐고 물어보던 때였습니다. 그러면 얼마냐? 100분이 기본입니다 100분. 설교시간이 100분이 기본이니까 예배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11시에 시작해서 1시15분에 예배가 끝나는 것입니다. 항상. 그런데 다른 교회는 주보라도 있잖습니까? 설교듣기 싫으면 주보 보면 됩니다. 그러면 시간 죽이는 데는 최고입니다. 그것이. 교정도 보고, 다음에 헌금 나오면 가로세로 사람이름 세어보고, 곱하기도 해보고, 나누기도 해보고, 일 년에 이 교회가 얼마버나? 그다음에 감사헌금을 이쪽 줄에 다섯 명, 이쪽 줄에 다섯 명, 25명 했는데 총액이 100만원이다. 아이, 이거 4만원씩 했구나. 이렇게 계산도 해보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갑니다. 우리는 주보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러고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앞자리에 딱 앉았는데 나갈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많습니다. 요렇게 앉은 다음에 그다음에 나중에 오는 사람들이 의자를 들고 와서 이 사이에 다 메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화장실 가고 싶어도 예배 중에는 못가는 것입니다. 꽉 차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앉을 때는 항상 세 번째 줄 딱 내 앞에 앉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예배 견디기입니다. 예배의 자세가 항상 이랬습니다. 그러니 무슨 은혜를 받겠습니까? 그런데 애들 장난도 아니고 도로 간다고 그럴 수가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예배를 사람들은 어떻게 드릴까?’ 그리고 이렇게 뒤를 돌아보고 사방을 보기 시작했는데 온 예배당에 100명쯤 예배를 드리는데, 자기같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주위에 하나도 없고 자기가 유일한 사람이더랍니다. 옆에를 보니까 그 사람이 손수건이 흠뻑 젖도록 눈물을 닦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다보니까 이 사람은 석고상 깎아놓은 것같이 90분 동안 딱 앉아서, 설교 듣는 자세는 부동자세입니다. 이러고 앉아서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 신앙은 무엇인가 잘못되었구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뭐냐 하면 할 일 이 없는 것입니다. 주보도 안주니까. 그러니까 마지막에 결정된 것이 듣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똑바로 앉아서 듣기 시작했는데 4주안에 회심했습니다. 한 달이 안 되서 회심했습니다. 그리고 회심을 하니까 제일 바뀐 게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것입니다. 술 안 먹고 일찍 들어가고, 가서 그렇게 오랫동안 형이 줬지만,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책들을 꺼내보니까 그 때야 비로소 그 책의 의미가 가슴에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래서 결국은 가족들을 다 인도해서 교회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외에 여러 가지 스토리도 있지만. 그것은 뭐를 보여 주냐 하면, 집중하지 않고 듣는 천 번의 설교보다는 한 번 설교를 들을 때 집중하는 것이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극적인 얘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예화) 그냥 예수 안 믿고 떠돌던 형제가 있었는데 형이 교회 데리고 나왔는데 온지 얼마 안 되가지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애중입니다. 최대의 피해자는 애인입니다. 이놈의 형제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평일 날은 일한다고 바쁘고, 항상 일요일 날 데이트를 했는데, 일요일 날에는 예수 믿고 교회에 가서 아침서부터 밤까지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보고 싶으면 교회로 와라 그래서 교회로 왔는데 그것도 한 두주일이지 지겨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형제는 너무나 안타까우니까 결혼을 해야 되겠는데 이 자매 옆에 앉혀놓고 예배를 드리는데 이게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주님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지금 형제 만나러 왔는데 거기 앉아서 예배를 드리니까 계속 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 때마다 툭 툭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여자로서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면담을 했는데 날 보고 그럽니다. “목사님, 이제 다 그만두고 결혼하기로 다했는데 이 형제하고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제 “시골에 내려가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야,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고 죽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너는 그래도 만났지 않냐?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포기하고 내려 가냐? 결혼까지 생각한 사람이.” “그러면, 저 형제는 자기한테 마음도 없고 이런데 어떡하면 좋습니까?” 눈물을 쭉쭉 흘립니다. 그래서 내가 둘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 너는 이제 이 자매보고 교회오자는 이야기도 하지 말고 예배시간에 졸든, 자든, 간식을 먹든, 일체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두고 너는 예배도 딴 데 가서 예배를 드려라.” 그리고 자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달만 실험을 해보고, 그러고도 네가 하나님이 안 믿어지면” 하나님이 안 믿어진답니다. “그래도 안 믿어지면 너 네 마음대로 내려가라.” 그 대신 이 형제가 꽉 붙들고 주일예배, 주일 오후예배, 수요예배 다 데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지긋지긋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 그만 둬라. 주일 예배만 나와라. 네 마음이 동할 때까지는, 그 대신 토요일 날 일찍 자고,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와서 한번만 예배를 드려라. 그 대신 요기 두 번째 세 번째 자리 정 가운데 딱 앉아서 내 설교 끝날 때 까지 눈을 떼지 말아라.” 2주 만에 회심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집중입니다. 집중.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이해를 통해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배시간에 정신을 놓고 존다든지, 잔다든지, 심지어는 딴 생각을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해서는, 오래 교회 다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던 지체들이 있었는데, 요새는 제가 모두 심방을 못하니까 옛날엔 다 심방을 했습니다. 가서 그랬습니다. “너는 이교회가 아무래도 체질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너는 너 원하는 교회에 찾아서 가라.” 그럴 정도로 까지 내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배시간에 가장 쇄락한 정신과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작은 오래 쓸 수 있는 탄탄한 작은 노트, 성경크기보다 작든지, 성경 속에 들어가든지, 성경크기와 똑 같든지 해서 휴대하기 좋은 수첩을 하나 마련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들을 때, 설교를 막 강의 듣듯이 필기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설교를 듣다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단어, 요지, 이런 것들을 적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설교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힘써야 됩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하나님이 놀랍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생활이 계속 유지가 되면, 그러면 예배 속에서 은혜를 받으면 기도할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기도할 마음이 생겨나면 순종할 용기가 생겨납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권하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면, 지금 예배에만 따라오지 말고 열린교회처럼 잘되어 있는 데가 없습니다. 서점에 가시면 말씀가이드, 말씀안내라는 책자가 있습니다. 무료로 줍니다. 딱 펴보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17동안 들어야 될 교인들 설교목록, 도서관에도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14년 동안 들어야 될 설교목록이 나오고, 펼쳐보면 안에 보면 뭐가 나오나 하면 상황별로 나옵니다. 고부간에 갈등이 있을 때 들어야 될 설교, 자식들이 속 썩일 때 듣는 설교, 부부간에 다툼이 있을 때 듣는 설교, 기도하는 게 힘들 때 듣는 설교, 시험에 빠졌을 때 듣는 설교, 금전적인 손해를 당했을 때 듣는 설교, 그렇게 골라서 주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사천 개 한통에 담아놓고 찾으라그러면 어떻게 찾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컴퓨터로 다 분류를 해 놓았습니다. 그래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확하게 나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다 들었지만 교회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듣는 것, 목자와 양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을 때, 그 구원,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중생과 회심. 이런 식으로 그것을 과거의 한 것 중에서 정말 자기의 상황의 맞게 필요한 것, 신학적으로 들어야 될 시리즈들을 계속 들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주에 한 개 정도씩만 들으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듣느냐 하면요, 출퇴근 하시는 분은 mp3를 사가지고 mp3에다 꽂아놓고 갑니다. 그러면 막혀도 짜증이 안 납니다.
(예화) 우리교회 이동수 장로님이 계십니다. 언제 요번에 강의 나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양반이 요번에 7년 임기 끝나서 이제 운영 장로직을 내려놓으시고 목양 장로가 되셨는데, 이 분도 그렇게 만만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이 와서 은혜를 많이 받고, 이 남편을 말로 설득해서 안 되겠으니까 자동차에다 카세트를 탁 넣어준 것입니다. 목자와 양. 그런데 갈려고 부르륵 회사에 가는데 교통은 막히고 툭 틀었습니다. 그런데 목소리도 별로 좋지 않은 이상한 사람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나오니까 이게 뭐야? 누가 이런 것을 해 놓았어? 가요나 좀 나오고 그래야 되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들으니까 들으면서 계속 빨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차 속에 넣어둔 그 테이프를 들으면서 회심을 경험하고 교회에 왔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들이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마음이 있으면 다 합니다. 옛날에 우리교회에 있던 교역자 한분이 있었는데 회의 시간에 그럽니다. 목사였는데 “목사님, 제가 요새 얼마나 바쁜지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습니다.” “사역이 그렇게 바빠?” “눈 코 뜰 새가 없습니다.” 그날 저녁에 우리부부 넷이서 극장에서 만났습니다. 그것도 며칠 있다가 만나지 하필이면 그날 만나. 이게 뭡니까? 바쁜 건 사실인데 그 영화는 너무 보고 싶은 것입니다. 하고 싶은 건 하게 마련이란 말입니다. 인간이. 하기 싫어서 그런 것이죠. 주부들은 설거지를 하거나, 아니면 고구마줄기를 다듬거나, 빨래를 개키거나, 청소를 할 때, 항상 설교를 들으면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한 번 두 번 할 때는 차이가 안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3년 4년 5년이 되게 되면,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은혜를 받으면서 신학지식이 쌓이게 되면, 예전엔 나의 신앙생활이 가랑잎 배와 같았다가 군함을 탄 것 같은 신앙생활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쭉 요동하지 않는 그런 견고함, 그런 간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책입니다. 그렇죠? 책을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책을 읽는 것은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여가생활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가. 그런데 그것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냐 하면 공부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따라 해보십시오. 우리는 공부하기 위해 왜 대답을 안 해? 공부하기 위해 태어났다. 여러분 학교 다닐 때 꼬기또에루구숨이라는 말 들어봤죠?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있잖습니까? 라틴어입니다. ‘수투데오 나는 공부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처음에 막 웃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여러분들이 지은 죄 중에 제일 큰 죄는 사기, 폭력, 이런 게 아니라 하나님을 공부하지 않은 게 하나님 앞에 가장 뼈저린 큰 죄였습니다. 아십니까?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합니까? 여지까지는 무지 속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새롭게 결심해야 됩니다. 공부해야 됩니다. 공부해야 됩니다. 공부하기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언제까지? 마지막 눈을 감고 죽는 순간까지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는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 가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주의 인자는’ 이 찬송을 아십니까? 같이 불러 볼까요?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하나님을 뵈옵는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아주 기뻐하는 것입니다. 연애 해 보셨습니까? 해 보셨습니까? 야! 좋았겠다. 그런데 이제 연애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누구하고? 남편하고? 그렇겠죠? 남편하고 했겠지. 연애를 할 때에 제일 기쁜 것이 뭡니까? 아! 그랬구나. 그 사람에게 이러한 옛날이 있었구나. 하나를 아는 게 매일 매일 기쁜 것입니다. 아! 나 그 사람이 뭘 맛있게 먹는지 이제 알았어. 이럴 때 하나하나 정보자체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무슨 얘기냐 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별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너무너무 공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책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책을. 아무 책이나 시중에서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읽으면, 여러분들의 신앙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신앙서적들 가운데 태반 이상이 읽어서는 안 되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특히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인데, 한국을 휩쓸고 간 책 중의 하나가 ‘긍정의 힘’ 조엘 오스틴. 미국엘 갔는데 이야기 나오다가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의 신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그래서 내가 미국인 교수들하고 이야기 하면서 그랬습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그런 책이 200만부 이상이 팔려서, 교계에서 내노라는 사람들이 그것을 들고 나가서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멘토라 그럽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책을 쭉 읽어 나갑니다. 그런데 너무나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해결 해주었잖습니까? ‘퓨리탄 라이브러리’ 거기는 한권 한권이 전부다 나의 허락을 맡고 들어온 책입니다. 한권도 교인들이 도네이션한 책이 없습니다. 우리 안 받습니다. 그런 책은.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들어가서 지난번에 우리 당회모일 때 그런 얘기 나왔습니다. 교역자 모일 때, 다음해는 교회의 일꾼들을 뽑을 때 도서관의 대출부도 조사를 해보자. 그래서 한 번도 안 왔던 사람들은 좀 공부를 안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책을 사기위해서 돈을 지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책을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래야지만 출판사들이 계속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안 읽더라도 사는 것입니다. 안 읽더라도. 그래서 다 모이면 고물상에 주고, 그러면 또 사더라도. 그래도 그게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아까우면 읽어야지. 계속해서 읽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해 동안에 그래도 한 20권 정도씩은 책을 읽어나가야 됩니다. 최소한.
그런데 우리교회 공과만 따라 해도 한 4권 정도는 읽습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는 안 되고, 4권이니까 지금 한 15년 된 사람은 60권 읽은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읽은 것이 아니라 줄치면서 공부해가지고 토론하고, 그것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읽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가는 것입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제가 쓴 책부터 차례대로 읽으십시오. 쉬운 책, 아주 어려운 책, 더 어려운 책, 이렇게 세 갈래 있습니다. 책도 안 읽어 본 사람이 제일 어려운 책을 툭 집고 ‘도덕적 통치’ 같은 것을 읽고 한 서너 절 읽은 다음에 아, 이것은 나하고 아닌 것 같아. 그러고 책을 안 읽습니다. 그러지 말고 쉬운 것 ‘게으름’ ‘개념없음’ 이런 것이라도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높은 단계로 올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과 함께 병행되어야 할 또 하나의 생활이 있는데, 열렬하고 간절한 기도 생활입니다. 기도 생활은 하나님을 공부하는 이 엔진이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연료탱크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자동차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 놓았어도 람보로기니도 차 한 대에 5억 7천만 원 이랍니다. 그런데 기름을 안 넣으면 안갑니다. 그러니까 많이 하나님에 대해 공부해도 그것이 기도 속에 담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기도를 해야 됩니다. 간절히. 제일 좋은 것은 새벽기도를 평생 나오는 것입니다. 그냥. 이건 운명이다이렇게 생각하고. 그런데 그것이 어려우면, 그러면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을 해서 집이든지 직장이든지, 저 같은 경우 새벽기도도 했지만 다른 사람보다 직장에 한 시간 먼저 출근 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 회의실에 가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그리고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도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입니다. 그것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성경을 꾸준히 읽는 것입니다. ‘성경읽기’에서 아마 그 중요성을 여러분들이 구역예배 시간에 배웠지요? 성경을 계속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루에 수 십장 읽을려고 그러지 말고, 단 석장이라도 마음을 드려서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리고 두 가지만 더한다면, 하나는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헌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헌신. 여러분들의 처지와 모든 여건에 알맞은 교회의 섬김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서 이바지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아침에 딱 와서 조용한 예배당에서 깨끗하게 정돈되고, 잘 준비된 말씀으로서 설교되고, 잘 준비된 음식을 먹고, 잘 준비된 공과공부를 하고, 구역장 모임을 하고, 마지막에 끝나고 가는 날까지 내가 여기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을 해보십시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계속되는 섬김 속에서 그것들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내가 거짓말 같은 얘기 해 볼까요? 4천 번 편을 설교를 했습니다. 길 때는 A4용지가 20매 까지 나갑니다. 그러니 그 양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거의 98% 텍스트로 풀려있습니다. 저 원고 안보고 설교하는 것 아시죠? 그러면 설교 끝나면 다음 주면 그것이 깨끗이 텍스트로 풀려서 나옵니다. 얼마가? 원고지 40만매 분량이. 어떻게 했을까요? 은혜 받은 사람이 발가락에다 이렇게 지금은 이제 기계들이 많지만 옛날엔 발가락으로 이것을 누르면서 푼 것입니다. 지금은 숙달되어서 90분 설교하면 120분 만에 딱 풉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헌신 속에서 여러분들 공과 공부교재가 나온 거고 이렇게 다 나온 것입니다. 그러게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집사가 되고난 다음에는, 무엇이든지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 집사가 된다는 의미가 뭐냐 하면 무엇이든지 시켜주시면 순종하겠습니다. 그 서약이 같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그래서 무엇이든지 아주 작은 일이라도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하나, 전도하십시오. 전도. 은혜를 많이 받고 전도를 하십시오. 여러해 전에 한번 통계를 냈는데, 정말 놀라운 게 일 년에 전도된 사람 중에 66%가 교회등록한지 일 년 안 되는 사람에 의해 전도된 사람들입니다. 결국은 뭘 보여 주냐 하면, 오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음속에서 주님을 만난 신앙의 기쁨이 있는 사람들이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나와 같이 어두움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보다 하나님 앞에 소중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군인, 별들이 모여 있는 곳에 설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어느 집사님이 간증을 하는데 별 둘입니다. 사단장입니다. 우리나라 사단장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 교회에 새로운 신임목사가 있는데 중위입니다. 자기 아들뻘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차가 없습니다. 그래가지고 자전거를 타고 이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아주 옛날이야기입니다. 예배인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목사는 한사람이고 예배당은 일곱 개가 되니까. 그러니깐 사단장이 차를 보내준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별 둘 단 사단장 차가 와서 시커먼 차가, 목사님 타시면 다음 예배당으로 가겠다그러는데 탈 수 있을 정도로 간이 배 밖에 나온 중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 안 간다고 돌려보냈더니 사단장이 그 운전수에게 “너 가서 목사님 태워서 그 교회까지 안 가면 너는 영창이다.” 그런 것입니다. 또 왔는데 목사님이 안 타. 그래 나중에 이제 왜 그랬냐? 그랬더니 이러는 것입니다. “자기가 여태까지 오랫동안 교회 다니고 집사생활을 했는데, 언젠가는 죽을 턴데 이러다가 어느 날 주님 앞에 가면 너 뭐하다 왔냐? 주님이 물어 보실 턴데 제가 별 둘 달았습니다.” 그러면 하늘에는 별이 더 많은데. 그런 것 주님이 별로 쳐 주실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주님 앞에 갔을 때, 내가 그래도 사단장할 때 차를 빌려주어서 목사님을 편하게 심방을 하게 도와주었습니다. 이 말이라도 좀 하고 싶어서 빌려주었는데 그 놈의 목사가 그것을 끝까지 안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영광과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은 다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들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