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을 위해 죽다 1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요 10:17)
녹취자: 정은숙B
I. 본문해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너무나 잘 아는 양의 우리의 비유에 나오는 선한 목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 우리를 목양하기 위해서 내려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이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신 전도도 사실 알고 보면 목양을 하기 위해서 전도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전도와 목양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목양의 열매와 목양의 열매를 맺게 하는 그 뿌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 번 오늘 저녁에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II. 목회 열매와 뿌리
한 번 나무를 생각해보십시오. 큰 나무가 이제 뿌리를 박고 그 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서 거기에서 아주 아름다운 결실들을 많이 맺습니다. 열매들을 많이 맺게 되면 그 열매들은 그 나무를 가꾸고 돌본 주인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이 됩니다. 여러분도 아마 동네에 서있는 감나무에 잎도 다 떨어졌는데 빨간 감이 하나 가득 열린 나무를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만약에 한 교회를 잘 섬겨서 열매를 많이 맺었다면 도대체 그 많은 열매는 무슨 열매일까요?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많은 열매를 맺었다면 그 열매는 무슨 열매일까요? 우리들이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서 이 목양의 열매를 생각해본다면 아마 이 목양의 열매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여기 와서 이렇게 앉아서 잠깐 있으면서 예배당을 보면서 ‘우리 예배당도 이렇게 지붕이 높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본당만 좀 부수고 다시 한 번 이렇게 지어볼까? 돈이 그렇게 많이 들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2층, 3층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되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사실 복음의 본질에 비추어보면 열매는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들이 오늘 영상에 보니까 열렬히 전도하고 치열하게 전도하고 사명을 가지고 구역장, 구역식구들을 온 마음으로 돌보고 하는 그런 광경들을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우리들이 모든 구역장들이 저분들을 본받아서 그렇게 무위도식하지 않고 열렬히 섬기면 어떤 결과가 올까, 어떤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우리들은 저렇게 애쓰는 것일까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목회의 열매입니다.
A. 목회의 열매: 생명+풍성한 삶
목양의 열매는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는 이 두 가지가 목회의 열매, 목양의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온전히 설교자가 치열하게 설교하고 성도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열렬히 죄와 싸워 분투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뜨겁게 전도하고 성경의 진리를 아주 열심히 공부해서 이 신학의 체계를 갖추어가고 교리를 알아가고 이렇게 할 때에 마지막에 맺히는 두 가지 열매가 생명, 그 다음 풍성한 삶입니다. 이 생명은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보니까 전도를 하면 전도한 사람들이 와서 예수 믿고 놀랍게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처럼 이것이 중생과 회심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처럼 그렇게 목회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구역에서 매주 회심자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1년 동안을 구역을 섬겼는데 새로 예수 믿은 사람들이 없다, 그리고 1월 첫째 주에 시작한 사람들이 계속 오거나 아니면 이사 가고 결석하고 나중에 몇 사람이 더 들어오고 이러면 이런 것이 살아있는 구역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섬김을 통해서 새로 예수를 믿게 되고 혹은 전혀 회심하지 못한 상태에서 겨우겨우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깊이 변화되어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런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우리가 목양을 잘 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들이 전도 열심히 하면, 물론 전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열매를 주시지요. 그렇지만 정말 목양을 잘 할 때 하나님이 전도의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교회에서 통계를 내봤습니다. 어느 한 해에 교회에 오게 된 사람들 중에 60%가 우리 교회 와서 은혜 받은 지 1년이 안 되는 사람들에 의해서 전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신기한 발견이었습니다. 교회 오래 다닌 사람들이 전도한 것이 아니라 열린교회 온지 1년 미만 된 사람들이 60%나 되는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그러면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교육을 시켜서 그럴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예수님 만나고 너무 감사하고 그 사랑에 빚진 것이 너무 기쁘니까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아주 간절한 마음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명의 역사가 하나님이 우리의 목양에 주시는 열매입니다.
그러면 묻고 싶겠지요. 목사님, 그러면 새로 예수 믿는 사람이 거의 없고 예수 믿고 새로 예수를 믿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에는 그 목양은 하나님이 별로 안 기뻐하시는 것인가요? 물론입니다. 별로 기뻐하시지 않는 현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목회의 열매 하나는 새 생명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 믿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 복음의 빛이 들어와서 회심하고 처음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놀랍게 하나님의 말씀에 깨트려지면서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열매가 무엇인가 하면 그 은혜가 보존되는 역사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회심의 은혜가 그것이 사위어 버리지 않고 그 사람 마음속에서 계속 불길이 되어서 타오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의 두 번째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모르던 사람이 그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새사람 되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목양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역장을 해봤으니까 알지만 한 번 은혜를 받고 깊이 감격한 사람이 3년 이상 그 은혜의 불길을 유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3년이면 한 없이 길게 잡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그게 해결이 안 되면 계속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도 1년만 지나면 구역 식구들 얼굴이 다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떠나서 어디론가 없어져버린 사람들, 2년 전, 3년 전에는 은혜를 받고 반짝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내가 여러분에게 한 번 시험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제적된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한 3년 전에, 4년 전에 구역장할 때에 있었는데 지금 어디 갔는지 모르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마음만 먹으면 다 조회가 가능합니다. 왜 못 찾겠습니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러니까 한 번 그 사람들을 두 다리 세 다리 네 다리 걸쳐서 물어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를 해보십시오. 그 중에 대부분은, 소리 없이 여러분 구역장 시하에서 사라진 사람들 중에 6,70%이상은 아직도 방황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훨씬 더 심각한 어려움에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 그건 우리의 목양 사역에 궁극적인 그림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한 사람이 교회에 와서 회심했을 때 뛸 듯이 기뻐하는 이유는 그 회심을 토대로 이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지 그렇게 한번 와르르 은혜를 받아서 회심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눈물을 흘리고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나서는 서너 달도 못돼서 미끄러져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면 그것은 목양의 제대로 된 열매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두 번째 열매가 무엇인가 하면 회심의 은혜가 보존되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님 만났을 때 그 기쁨과 그 은혜를 간직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보십시오. 불을 피우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미 붙을 불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회심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고 회심의 은혜가 보존되는 것도 우리의 목회지에 계속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성령의 역사가 부어져야지만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회심이 없다면 보존해야할 은혜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심의 역사만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구역의 식구들이 순의 지체들이 마음속에 받은 그 은혜를 계속 유지하면서 사는 것도 성령의 끊임없는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결코 우리의 목양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바보 같은 목회자, 혹은 영혼을 돌보는 이들이 누구냐 하면 자기의 성취에 뿌듯해하는 사람들, 그것은 뿌리 자체를 더듬어 가보면 그게 바로 교만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떼를 맡겨주셨을 때에 결국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가 아니면 절대로 이 목양의 두 열매, 회심과 회심의 은혜가 보존되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목회자, 혹은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이 누가 그런 사람이 되냐 하면 은혜를 많이 받아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이 결국은 목회자가 되고 영혼을 돌보는 목양의 일꾼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운명입니다.
요즘 애들을 죽이는 엄마들이 자꾸 나옵니다. 어제도 신문에 보니까 부모가 같이 죽였습니다. 세 살짜리를 때려서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어린아이들을 부모들이 엄청나게 학대를 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것들을 법적으로 전부다 쉽게 얘기하면 아이들을 부모에게 국가가 믿고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만 남겨두고 부모가 같이 외출했는데 이웃이 그것을 알고 신고하면 현행범입니다. 절대 아이들만 버려두고 부모가 외출할 수 없습니다. 유치원에 가면 제일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 엄마 아빠가 때릴 때 어떻게 911에 전화하는지부터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우리 생각에는 그렇지 않습니까? 어미가 되었으면 저절로 자식들을 사랑하게 되나보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짐승의 어미만도 못한 인간들이 이 세상에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가하면 매순간 ‘나는 엄마다, 나는 어미다.’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그 자각이 있으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그렇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렇게 때려죽이고 심지어는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내 인생은 내 인생 하면서 날아가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직분을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을 안 할 수 있는 길이 있고 피할 수 있는 길이 있고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도 희생하지 않고도 쉽게 목양을 하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더러운 마음입니다.
B. 목회의 뿌리: 이중의 죽음
그래서 이 목회의 열매가 회심의 열매가 계속 맺혀야 교회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계속 전도되어 와서 매주 마다 회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숫자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회심을 했는데 계속 은혜를 받으면서 회개해서 다시 새롭게 은혜를 회복하고 말씀에 깨뜨려져서 뉘우치면서 새 은혜를 받고 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서 이것이 두 바퀴처럼 이렇게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을 그렇게 아름다운 열매가 잘 맺으려면 뿌리가 있어야할 것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뿌리에서 생명의 진액을 머금으면서 양분을 올려 보내서 열매들이 맺게 하는 것처럼 목회에 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중의 죽음입니다. 이중의 죽음이 두 개의 아름다운 열매를 가능하게 해주는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1. 두 죽음: 예수 죽음+목회자 죽음
첫 번째 뿌리가 무엇인가 하면 예수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이 목양의 원리를 당신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의 첫 번째 뿌리입니다. 예수 죽음이 있으셨기 때문에 그 뿌리에서 하나님이 생명의 진액을 머금어 우리의 섬김이 회심과 회심한 은혜의 보존이라고 하는 두 가지 열매를 맺히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이중적인 죽음 중에서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우리의 목회와 관련이 되는가, 그것이 뭐냐 하면 보십시오. 우리가 영혼들에게 복음 전하고 잘 섬기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주고 사랑해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서 끝나면 그냥 좋은 사교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이웃과 함께 같이 모인 그런 사적인 집단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해주고 돌보아주고 무엇이라도 필요하고 한 것을 섬기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도구가 되어서 그 사람들을 그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줄 때에 이 때 진정한 목양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보면 가끔 그렇게 복음이 많지 않은 것 같고 그렇게 말씀으로 뜨겁게 주님을 만나는 것 같지 않은데도 좀처럼 교회에 흐트러지지 않고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것을 봅니다.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구역장들이 그냥 좀 심하게 얘기하면 처음 자신 구역에 온 집에 가서 거의 가정부 비슷하게 도와줍디다. 그러니 애들 데리고 고생하는 자모가 수시로 와서 구역장이 구역식구들이 돌봐주고 김치도 해주고 청소도 같이 해주고 큰일 있으면 시장도 봐다주고 심지어 어디 친정에 무슨 일이 있어서 간다고 하면 애들 자기네 집에서 맡아 봐주고 그러는데 쉽게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제 친구도 한 번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딸내미가 사고가 나서 다쳐서 너무 실의에 빠져있는데 어느 교회 교인 한 사람이 와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자기의 아내를 위로하고 아이를 간호하고 집안 청소도 해주고 하는데 예수 믿을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인간이라면 너무 미안해서라도 교회를 안 갈수가 없어서 1년인가를 다녔노라고 얘기했습니다.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해주었으면 그랬겠습니까? 교회를 떠나도 그 사람과 관계를 끊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런 희생들이 그 사람들에겐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도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거기에서 끝나면 좋은 인간 집단이 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도구로 해서 예수님 을 만나게 해줄 때 진정한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 예수의 죽으심을 그들이 알아야지만 변화된 새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런 일들을 그렇게 많이 애쓰고 섬기면서도 그것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하면 우리 자신이 예수의 죽음에 뿌리박은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목회라는 것을 하다보면 어찌 힘들지 않은 일이 있겠습니까? 그 자체가 예수님의 뒤를 잇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처음부터 그 일을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왜?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인데, 당신을 가장 잘 생각하게 만들어 놓은 길인데 그 길이 날마다 룰루랄라 하고 걸어가는 길이라면 거기서 예수님 만나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안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의 죽으심에 깊이 뿌리를 박아야합니다. 그것이 첫 번째 죽음입니다.
2. 예수 죽음의 재연: 목회자 죽음
두 번째는 무엇인가 하면 목회의 뿌리는 이러한 예수 죽음에 뿌리를 내린 데서 비롯되는 목회자의 죽음입니다.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뿌리에 양분을 끌어올려 목회에 이 두 가지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아까도 보니까 영상에서 간증을 할 때 얼굴도 잘 모르던 사람인데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아픈 마음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의 자기 죽음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칼로 자기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 천년 전에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이 오늘 자신 속에 스며들어와서 그 예수 때문에 자기가 죽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초로 그 죽음이 적용되어서 이루어지는 목회자의 죽음입니다. 이것이 많을 때 거기에서 목회의 아름다운 뿌리가 되고 거기서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달고 예배 시간에 마음이 녹으며 감격을 경험하게 됩니까? 그 때가 언제입니까? 영혼을 돌보는 우리들이 예수 십자가 안에서 죽음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달콤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들과 구역장들 순장들이 기도가 너무 부족합니다. 이것을 금년에 정말 느꼈습니다. 왜 기도가 부족한 지 한 번 얘기해볼까요? 여러분, 지금부터 한 7년 전 평촌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까지만 해도 성장반 공부를 교역자가 지도해보면 예습을 안 하고 나타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성장반에서 은혜를 받지 않고도 구역장 되신 분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실 겁니다. 성경 준비 안 해가지고 온 사람 거의 없습니다. 문제를 풀어올 뿐만 아니라 설교 테이프를 듣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경건 실천 카드를 매주 냈습니다. 거기에 기도 생활, 성경 읽은 것 다 했다 였습니다. 그것이 한 30명 데리고 공부시키면 아예 아무 준비 안하고 나타나는 사람들은 한, 두 명밖에 없었습니다. 두, 세 명 정도. 그래서 분위기 자체가 예습을 안 해가지고 온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목회자들에 의해서 계속 고민된다고 들어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아무 준비 안하고 나타나는 사람들의 비율이 계속 늘어납니다. 늘어날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아예 안 들어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예 성장반 공부를 안 한 채 2년씩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하면 얼마나 우리가 기도 생활이 부족한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자기가 열린교회에 와서 진짜 회심했던지 아니면 이미 회심한 사람이면 은혜를 받아서 회심의 은혜가 새로워졌든지 하면 그런 식으로 성장반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구역식구들을 한 번 보십시오. 특히 주일 구역이 그런 경우가 확률적으로 심합니다. 공부 안 하고 나타나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비율을 한 번 여러분이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왜 예습을 안 해가지고 올까요? 아까 스킷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왜 사람들은 거의 기도하지 않을까요?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성장반 성경공부도 거의 예습을 안 해오고 듣고 오라는 설교도 안 듣고 오고 주일 구역 예배에 나오는 사람들이 예습도 안 해자기고 덜렁덜렁 나와서 앉아있는 것, 그것도 낫습니다. 아예 구역 예배에 1년 365일, 구역장으로 하여금 포기하게 하고 절대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구역예배를 그런 식으로 드리는 사람들이 주일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당에 달려오겠습니까?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은 모든 방면에서 다 그 정도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불성실하게 참석하는 구역원들은 한 번 일부러 예배당에 가서 그 사람 옆에 가서 한 번 앉아보십시오. 진실하게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하는 것일까요? 쫓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잘하고 돌보고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 가지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방, 우리의 목양, 우리의 가르침 이 모든 것들을 사람들에게 권위 있게 느껴지게 만들고 무엇인가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심령 속에 다가가게 만드는 그 무언가 그 분을 알 수 없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예배당에 왔던 사람들 중에는 종종 설교를 듣고 예배를 드리기도 전에 교회당에 들어서면서 뭔가 성령의 강한 역사를 느끼면서 마치 물주머니처럼 되어져 예배당에 들어왔다는 고백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하시는 것입니까? 교회의 예쁜 디자인이나 안내 위원의 미모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목양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의무를 다 한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역사가 그 안에 깃들지 않으면 잔재주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목회자의 죽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3. 뿌리됨과 견고함
그 목회,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에게는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잘 들으십시오. 목양적 정절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구역장의 정절, 순장으로서의 정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정절이 무엇이냐, 정절이 무엇입니까? 한 남성과 여성이 만나서 부부가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부부가 되었으면 같이 살면서 여자가 딴 남자하고 살아봤으면 이 남자도 한 번 살고 싶고 저 남자도 살고 싶고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정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양의 정절이 무엇인가 하면 이 구역장을 그만둘까, 그리고 안 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외도입니다. 이런 외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목양에는 하나님의 복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제일 먼저 내년에 여러분의 목양 사역에 복이 있으려면 그것부터 먼저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할까, 말까, 혹은 그만둘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그만두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목양에는 하나님의 복이 없습니다. 그것이 목양적 정절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미의 마음입니다. 이 새끼들 내버려두고 어디 딴 데 시집가서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내 인생 다시 한 번 펼쳐볼 수 있는 기회가 아마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마음을 품게 되면 언젠가 애들을 고아원에 보냅니다. 얼마나 신나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미의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 후회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4. 목양, 우리의 운명
그래서 이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야지만 그게 하나님이 그 두 가지 열매가 맺는 기름진 뿌리가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목회자가 되고 구역장이 되고 순장이 되고 교사가 되고 누가 우리한테 강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맨 첨에 우리가 무언가의 힘에 의하여 이끌리듯이 이 영혼 섬기는 일에 잡아 묶인 것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의 줄이 우리를 거기에 묶은 것입니다. 한 번도 예수님은 우리 구원해주셨지 구원 받은 우리가 목양 안 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신 적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묶어서 주님이 강요한 길이 아닌데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이 목회자의 길을 가겠습니다. 내가 구역장의 길을, 순장의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간단합니다. 왜 목회를 그만두고 싶을까요? 왜 구역장을 그만두고 싶을까요? 그 사랑의 줄이 느슨해져서 그런 것입니다. 아무 이유 없습니다. 어려움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고 더 어려운 때도 견뎠는데 무슨 소립니까? 그것이 아니고 주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서 뜨겁게 타오르면 어미의 마음을 갖게 되고 이것이 내 운명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식으면 희생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죽기 싫은 것입니다. 새끼들 하나보고 바라볼 그 어미의 마음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싫은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재주 많고 공부 많이 했어도 주님 사랑하지 않는 구역장이 그 일을 잘 끝까지 감당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또 조금 부족한 것이 있어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순장이 어느 날 목양적 정절을 짓밟고 영혼들 팽개치고 사라져 버리는 법 없습니다. 결국은 그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계속 뜨겁게 유지되지 않는 것은 첫 번째도 경건생활, 두 번째도 경건생활, 세 번째도 경건생활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년에 화두가 목양인데 결국 이 목양을 위해서는 구역장들이 순장들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잘 깨뜨려져 죽어서 그래서 이 속에서 그들이 죽고 기도가 살고 그들이 죽고 말씀이 살고 그들이 죽고 사랑이 살아서 우리의 목회에 하나님의 큰 복이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목회자들이 모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