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로 지으시다
녹취자 : 오희열
논어에 보면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니 불역락호(不亦樂乎)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벗이 멀리서 오니 어찌 반갑지 아니하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벗’, ‘친구’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이 ‘벗’은 단순한 ‘친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뜻을 함께 하는 동지로서의 친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위해 동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온 것을 기뻐해주고 저는 여러분을 만나는 것을 기뻐합니다. 우리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날은 가족들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회의 영향을 그리스도인들도 받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을 외치고 참으라고 요청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 성경이 가르치는 관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정의 모습을 보십시오. 두 그림이 나옵니다. 이쪽의 그림을 보십시오. 남자가 여자를 꽉 누르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쪽 그림은 여자가 남자를 꽉 누르고 있습니다. 누군가 힘센 사람이 남편이나 아내를 지배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사람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임마누엘 칸트입니다. 데카르트와 함께 근대사상의 문을 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중요한 책을 한 권 썼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평화에 관한 글입니다. 『영원한 평화에 관하여』라는 책입니다. 거기서 진정한 평화란 어떤 평화인지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누가 누구를 짓밟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가운데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원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개의 세계를 창조하십니다. 하나는 천상의 세계이고 하나는 지상의 세계입니다. 천상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지상의 세계는 사람을 통해서 다스리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함께 사랑하며 살고 그래서 함께 하나님은 경배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자연의 세계를 잘 돌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찬양)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주 하나님
지금 부른 짧은 찬송에 인간 창조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흙으로 육체를 만드십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이 ‘흙’이 ‘아파르’라고 나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흙’이 아니라 ‘먼지’입니다. 왜 하나님이 먼지로 인간을 만드셨겠습니까? 구약 성경에서 먼지는 가치 없는 것의 대명사입니다. “너는 다만 먼지인줄 알라.”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흙으로 육체를 빚으십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후~’하고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행동입니다. 육체는 흙으로 빚으시고 영혼은 직접 창조하셨습니다. 둘이 만나서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창조된 영혼 때문에 인간은 지성과 의지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오직 한 사람만 흙으로 육체를 빚으십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그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선 제일 먼저 보여주는 진리는 두 사람이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한 몸이 되었으니 자기가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 사람의 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여성이 남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서로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위타’라고 되어 있는 이 번역은 한글 번역처럼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케 네게도’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단어는 ‘위타’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와 맞먹는’, ‘그에게 상응하는’ 이런 뜻입니다. ‘correspond to him’, ‘서로 상응하는’, ‘그 남자에 상응하는 여자를 지으리니’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를 돕는 베필’, ‘그를 돕는 배우’ 라고 했습니다. 원래 히브리 단어는 한 단어인데 길게 풀었습니다. 이상하게 이 단어 속에서는 남녀평등이 잘 느껴지지 않고 여자가 남자를 보좌해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히브리에 나오는 ‘에제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 가장 많이 쓰인 곳이 시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요” 할 때의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군사학에서 ‘응원군’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군이 전쟁에서 지고 있을 때 달려와서 전세를 승리로 이끌어주는 부대가 ‘에제르’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남녀가 평등한 질서 속에서 창조된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결혼이 이루어질 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성경에서 ‘무엇 중의 무엇’ 이라는 것은 최상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만나서 기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남녀가 서로 결합을 합니다. 그 사랑이 자신들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생명과 사랑을 공급해주시면 그것 때문에 지성과 의지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안 사람이 교회에 모입니다. 이것은 결국 마지막으로 인류의 구원이 완성된 사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여기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가지 중요한 명령을 주십니다. 그 하나를 ‘종교명령’이라고 하고 또 하나를 ‘문화명령’이라고 합니다. 또 이것은 ‘창조명령’이라고도 하고 ‘노동명령’이라고도 합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이 두 가지 명령을 하나님께 받고 언약 관계 속에 들어갑니다. 시간적으로 이것이 먼저 주어지고 이것이 주어집니다.
종교명령은 이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아라. 먹으면 죽는다.” 우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선악과를 창조해서 우리를 타락하게 했을까?” 또, “그것을 먹으려고 할 때 못 먹게 하시지 왜 내버려 두셨을까?” 동산에 있는 많은 실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그것 하나만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이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자신의 존재의 차이를 인식하기 위함입니다. 만약에 이런 것을 두시지 않았다면 아담은 하나님과 자신에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쉬웠을 것입니다. 이 나무 앞에 설 때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담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것은 아주 훌륭한 은혜의 도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종교명령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담 한 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류의 대표자이고 가정의 대표자로서 이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이 명령을 지키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계에 노동과 봉사를 더 하면 이 세계는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스린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라다’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왕이 나라를 통치할 때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함부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백성들을 행복하도록 돌보면 지혜롭게 나라를 통치합니다. 인간이 이 세계를 그렇게 다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남자는 아담이었고 여자는 하와였습니다. 이 아담이라는 뜻은 ‘아다마’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는데 ‘땅’, ‘흙’, ‘붉다’ 이런 뜻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육체의 근원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하와라는 단어는 ‘생명’입니다. 여성들은 매우 오묘한 존재입니다. 아무것 없는 곳에서 사람을 태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생육하며 번성하여 지면에 충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남녀가 둘이 만나 많은 자손을 퍼뜨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 모두가 세계에 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게 창조되었습니다. 남자는 일반적으로 개척하고 정복하고 힘으로 통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남성성에는 용기와 투지, 결단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여자는 좀 다릅니다. 여자는 그것을 돌보는 것입니다. 돌보고 관계를 갖는 것인데 관계를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예를 들자면 남자는 돈을 많이 벌어서 큰 집을 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여자의 관심사는 큰집보다는 그 집에서 화단을 어떻게 가꾸고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까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성에는 지혜와 자비, 그리고 공감,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수레가 굴러갈 때 두 바퀴로 굴러가듯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인간이 통치해 나갈 때 이런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협력해 나가야 합니다.
정리를 하면 이런 것입니다. 남녀는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그냥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한 인간을 태어나신 하나님의 경륜이 이것이라면 이 경륜을 확장할 때 남편과 아내를 통해 가정을 주신 경륜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경륜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서 좋은 배우자를 만납니다. 그래서 좋은 가정을 이룹니다. 이것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와서 이런 것들이 다 깨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가정을 만드십니다. 예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사람을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따라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을 주신 경륜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 배운 내용들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도록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명령과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한 몸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것은 서로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통해서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부디 여러분이 좋은 가정을 이루어 창조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