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그리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창 32:30-31)
녹취자: 허혜숙
Ⅰ.본문해설
야곱이 지팡이 하나 가지고 집을 떠났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외삼촌의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큰 부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신앙이 거의 없던 사람이 고생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장자인 형이 받을 복을 아버지를 속여서 가로챘습니다. 이렇게 장자가 받아야할 복을 동생에게 빼앗겨 버린 형은 절치부심하며 복수심에 불탄 가운데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고 외삼촌과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실제로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부자는 되었고 많은 가축들을 거느리게 되었으나 형의 복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그대로 형이 와서 자신과 자기의 처자식들을 모두 해칠까봐 큰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떼로 나누어 형에게 보낼 예물을 먼저 보내고 또 떼를 나눠 보내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두 아내와 두 여종 그리고 열 한 아들까지 강을 건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그 깊은 두려움 가운데서 홀로 얍복강가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II. 주님 만나고 새로 시작함
A. 물러 설 곳도 없는 위기
오늘 여기에서는 주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한 사람을 그리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물러설 곳이 없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형의 분노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당시에 장자의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모든 유업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족장의 지위에서 왕처럼, 제사장처럼, 혹은 선지자처럼 그렇게 언약백성의 가족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큰 권세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동생에게 속임수로 빼앗겨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 형은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고 야곱은 형의 이 분노를 생각하며 죽음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2장 11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창 32:11). 그래서 그는 많은 뇌물 같은 예물을 앞서 보내며 형 에서를 주인이라 칭하고 자신을 종이라고까지 칭하면서 형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모두 강 건너로 보내고 깊은 밤 강가에 홀로 남아 어둠 속에 두려운 밤을 보내고 있는 야곱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거기에서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며 매달렸습니다. 자기를 떠나려는 천사를 붙들고 축복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자, 그 축복이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가축들과 재물이 있었으니 돈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미 그 큰 가솔들을 거느리는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더 높은 지위를 달라고 간구하는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복을 달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형언할 수는 없으나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뛰어넘을 수 없는 이 삶의 엄중한 현실 앞에서 천사에게 축복해 달라고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야곱은 인생의 벼랑 끝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주님께 살려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야곱의 몸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끝을 헤아릴 수 없는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살고 싶었습니다. 그는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것만큼 살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을 지탱해야 할 신앙이 혹시 이런 위기를 맞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처에 있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 때문에 여러분들은 인간적으로 살 방법을 다 해봤지만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도망갈래야 도망 갈 길이 없고 물러설래야 물러 설 곳도 없는 벼랑 끝에 서있는 야곱과 같이 홀로 남아 강가의 외로운 밤을 지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이런 밤 같은 날들이 내년에도 계속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힘든 한 해를 보내야 할까요? 우리는 금년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큰 은혜들은 내년에도 계속 되기를 바라고 금년에 우리를 힘겹게 하였던 많은 시련과 역경 고통들은 물러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B. 회개로 하나님을 만남
그러면 이런 인생의 위기가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회개로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야곱은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인지를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미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주 자연스럽게 그가 자기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야곱은 천사와 열렬히 씨름하였습니다. 아마도 추측컨대 자신은 이 천사에게 축복을 기대했으나 자기를 축복하지 않은 채 떠나려는 그를 붙잡기 위한 몸싸움이었을 것입니다. 깊은 밤 얍복 강가에서는 야곱의 생사를 갈릴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형 에서가 분노한 마음으로 자기의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자기의 식솔들을 진멸하고 자기의 사랑하는 두 아내와 두 여종 그리고 열 한 아들까지 죽이고 자신을 죽인다면 가나안을 떠나서 밧단아람까지 가서 살았던 그 긴 세월동안의 인고의 세월은 헛수고가 될 판이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적인 위기 속에서 야곱은 여전히 천사를 놓지 않고 매달리며 축복을 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야곱이 이렇게 천사에게 매달린 것을 믿음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이 창세기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호세아서에서 발견됩니다. 호세아서 12장 3절과 4절에서 성경은 야곱의 그 때의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주며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부르십니다. 12장 3절과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듯이 하나님은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야곱의 그 날 밤 얍복 강가에서 있었던 천사와의 씨름의 사건을 이용하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호세아 12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얍복 강가에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며 자기에게 축복해 달라고 매달린 것은 야곱이 이제껏 살아온 사기꾼과 같은 삶의 방식을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잔꾀로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고 그러한 처세술은 밧단아람에 가서 외삼촌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데 자기가 형을 속이며 살아온 것처럼 그는 외삼촌에게 속고 또 속으며 그는 많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를 주권적으로 복 주시고자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비록 매우 적은 야곱이었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일체의 신실함으로 야곱을 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으로 그의 생명을 건져주시고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늘 문을 열고 그를 부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많은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사람 야곱의 깊은 속사람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 때 인생의 위기를 잔꾀로 넘기고 자신은 그 꾀로 살았다고 많이 생각했으나 회고해 보니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잔꾀를 사용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형의 복수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었고 사랑하는 많은 부족들의 목숨은 바람 앞에 촛불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복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복 주지 않은 채 떠나려고 하는 천사를 열렬히 붙들고 씨름을 하였습니다. 육체의 노동으로 단련된 그는 천사와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혈기였습니다. 천사는 드디어 야곱의 허벅지 뼈 옛날 성경에는 환도 뼈라고 하는 골반과 허리를 이어주는 그 부분을 때렸습니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그 뼈가 위골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남자의 힘이 척추와 관절 이어지는 골반 사이로 그 힘이 중심을 잡는 것인데 한 방에 쳐서 그것을 어긋나게 해 버렸으니 그는 이제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도 없이 한쪽 다리로 질질 끌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처지에서는 씨름으로 천사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야곱은 깊이 자기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눈물로 간구했으나 이것은 이제 단순히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씨름을 해서라도 받아내겠습니다 라는 혈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눈물로 간구한 이것은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는 회개의 눈물이 담긴 기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이 깊이 깨어진 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 야곱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창 32장 29절은 말합니다.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라고 했습니다. 야곱에게 꺾였기 때문에 축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껏 자신의 힘으로 살아오고 육으로 살아오던 삶의 방식대로 영의 축복을 구했던 어리석음을 깨닫고 깊이 회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 천사에게 축복해 주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야곱은 형이 두려웠기 때문에 천사와 씨름했고 죽음의 위기를 만났기 때문에 살고 싶어서 천사에게 축복을 요구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절망적인 삶의 상황을 바꿔놓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바뀌고 싶어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자신의 환도 뼈를 내리쳤습니다. 이제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이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여 축복을 받아내는 것인데 환도를 얻어맞고 뼈가 틀어져버리자 이제는 손으로도 천사를 붙들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깊이 깨트려지는 은혜의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잘 나가는 인생의 때에 자기 힘으로 사는 줄 압니다. 그래서 까부는 아이들처럼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려움이 좀 온다고 해서 모두 주님께 무릎을 꿇고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야곱에게 이보다 더 어려운 인생의 위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태까지 이 정도로 추호도 피할 길이 없는 인생의 벼랑 끝에 서있는 죽음의 벼랑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도움도 예측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습니다.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을 그 때에 그는 오직 눈물밖에는 흘릴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 사건을 해석해 주신 것은 그렇게 해서 자기 꾀로 살아가고 세상의 번영과 자랑만 믿으며 살던 그 인간이 그렇게 못 됐었지만 얍복 강가에서 울며 회개하였더니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 주셨던 것처럼 너희들도 이 세상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어리석은 태도를 버리고 회개하고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이 야곱을 용서하시고 복을 주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너희에게도 그리하실 것이라고 해석해 주셨던 것입니다.
잘 나가는 때에는 자기 힘으로 사는 줄 알고 까부는 아이들처럼 교만합니다. 잘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 때문에 잘 안 되는 것처럼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인생의 위기를 통해서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한 번에 모두 드러내어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십니다. ‘보아라 이것이 네 모습이니라.’ 하고 보여주십니다. 그 때에 신앙을 택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내 인생을 힘들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손잡고 걸어갈 수 있는 좋은 길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의 방법으로 살아보려는 교만한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승승장구하는 성공을 통해서 그렇게 되는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이 앞에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설교자로부터 시작해서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주님을 깊이 만난 곳에는 내 방식대로 살아오던 교만한 삶에 대한 회개가 있었고 그런 뼈저린 회개가 있었던 곳에는 항상 인생의 위기가 있었고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이런 인생의 위기와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큰 능력으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소원은 그 절망의 날 밤에 얍복 강가에서 야곱이 마음에 품었던 소원과 동일합니다. 정말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시는 유일한 여호와이십니다. 오늘도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은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변에 믿음의 동지들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생명의 힘으로 그 모든 역경들을 이기며 하나님 앞에 살아갑니다. 감사와 찬송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한 해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어떤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기쁘고 재미있는 날들 뿐 아니라 아프고 힘든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한 해에 특별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인생이 원래 그런 것입니다.
쓴 맛과 단 맛이 함께 섞여있어서 우리 인생은 그것들을 맛보면서 사는 것처럼 시간을 여행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사람은 이 세상이 결코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령과 재주, 자신의 꾀 그리고 혈기로 살아왔던 야곱이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인생의 위기를 넘겨보고자 했습니다. 사람에게 썼던 방법을 천사에게 써 본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것으로 이길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약한 지를 깨닫고 울며 회개하였을 때 그 믿음이 천사를 이겼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겼다’라는 뜻입니다. 힘으로, 정욕으로, 혈기로 그리고 자기 인간적인 꾀로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치기 위해 자신의 참 모습을 보며 눈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지신 것으로 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이 하늘을 열고 복을 주셨습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이튿날 아침에 펼쳐집니다.
이렇게 천사의 축복을 받고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먼 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고 야곱의 인생에서 잊혀 지지 않은 순간이었는지 그는 자기가 주님을 만난 장소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히브리어로 ‘프니엘’인데 ‘하나님의 얼굴’ 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손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 손으로 자기에게 돈도 주고 가축들도 주고 재산을 불려주시니까 그랬는데 이 얍복 강가에서 만난 하나님의 체험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체험이었습니다. 유산을 탐하는 자식은 부모의 손을 보고 싶지만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는 자녀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합니다. 예배드리러 오기 전에는 휴대폰을 켜고 보니까 손녀 얼굴이 나왔습니다.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주님은 야곱과 그렇게 만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시면 그까짓 가축, 그까짓 재산, 그까짓 물질을 못 주시겠습니까? 인생에 어떤 위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을 창조하고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어려움이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이 준 물질 때문에 즐거워하는 우리를 보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
(찬송)
주님을 송축하리 내 입술 주를 찬양
나의 눈 보기 원하네 주님 얼굴
주님의 음성 듣기를 주님을 만져보기를
전심으로 원합니다 주여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만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식들이 당신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는데도 당신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데려가십니다. 그래서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인생의 벼랑 끝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거기에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여태껏 붙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교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인생을 사는데 익숙해져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벼랑 끝에서 주님은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십니다. 거기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고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길을 여십니다.
아마도 에서는 원한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원래 에서는 충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단칼에 이 족속들을 쓸어버리고 아버지를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동생의 씨를 말려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기 군사들을 이끌고 저쪽에서 오고 있었습니다. 앞에 뇌물이 오고 짐승들이 왔으나 에서가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겠습니까? ‘야곱 네 놈의 얼굴 좀 보자.’ 그런데 자기를 그렇게 속이고 동생이 어마어마한 사람이 되어서 올 줄 알았더니 저기에서 환도 뼈가 위골이 되어서 걷지도 못하면서 절름거리며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한 순간에 돌 같은 에서의 마음을 녹여버리셨습니다. 그리고는 달려가서 동생을 끌어안고 서로 어긋맞으며 울었습니다.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얍복 강의 화해 사건입니다. 누가 이 사건의 이런 결말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야곱은 형의 마음이 바뀔 수 있으리라고 하는 것은 원하는 바였지 사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이 위기를 모면하고 싶었으나 아마도 형이 바뀌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이 바뀌기를 원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울며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야곱으로 살아왔던 사기꾼 같은 방식의 삶을 회개하고 주님의 은총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고 그 축복이 이튿날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수 맺어야 할 형제는 뜨거운 사랑으로 화해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아니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렇게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제가 연말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아주 긴급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내년에 교회가 성도들로 가득 차는 것, 그것도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또 교회가 재정적으로 넉넉해지는 것도 너무 좋을 것입니다. 여기저기 선교사역에 큰 은혜의 역사가 있기도 바랍니다. 그러나 연말을 지나면서 제 마음속에 불같이 일어나는 소원은 내년에 제발 하나님이 야곱처럼 주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얍복 강가에 어두운 밤을 지나는 것처럼 살았던 성도들이 브니엘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래서 죄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진리의 빛으로 돌아오고 경제적으로 고통 받던 사람들이 부유하게 되고 관계가 깨져서 힘겨워하며 살아갔던 가족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어서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천국에 온 것같이 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한 해를 맞으며 전심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새롭게 하고 주님의 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