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라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 1;80)
녹취자: 이솔
전 성경을 읽었지만 특히 본받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위대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을 잡아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서 저는 어떤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난 세례요한이 빈들에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신약과 구약사이를 잇는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여자가 낳은 자중에 이보다 더 큰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짧은 기간 동안 하나님 말씀 사역을 하고 순교했습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예수 오시는 앞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준비되었을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아이가 자라며’, 그리스 성경에는 ‘파이디온’이라고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어린이를 이야기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갓난아이를 이야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주 어린 아기적부터 성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냐면 하나님은 태어나자마자 세례요한을 쓰신 것이 아니라 성장하게 하신 후에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광야에서 자신을 준비하며 하나님 앞에 갖추어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되어야 할까요?
육체적인 준비
첫 번째는 육체적인 준비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젊음이 넘치는 시기이니 육체가 준비할 것이 무엇이 있나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강인한 체력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아픈 곳이 없었고 12년 전까지만 해도 제 소원은 병원에 한번 입원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링거를 맞고 교인들이 꽃을 사들고 와서 나를 위문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그리고 그 건강이 계속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낭비했습니다.
초창기에 쓴 저의 책들은 대게 밤 12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 쓰여 졌습니다. 하루 종일 설교하고 주일날 밤에 와서 깨끗이 샤워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잠들게 한 다음 내 방에 들어 와서 새벽까지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는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들어와서 두 시간 자고 다시 학교 가서 강의 하면서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당연히 운동은 안했습니다. 학교에서 제가 제일 무시하던 학생들이 아침에 일찍 와서 족구를 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가서 열렬하게 기도를 하든지 히브리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지 왜 저러고 공놀이를 하고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50대 후반부터 왔습니다. 12년 동안 14번 입원하고 12번 수술을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충고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쯤이면 반드시 운동을 하세요. 그리고 남성들은 평범한 사람과 한 3대 1로 겨루어서 한 번에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격투력을 지니기 바랍니다. 평생 안 쓴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여학생들도 운동을 하세요. 긴 안목을 가지고 운동을 하면서 일생 동안 하나님 앞에 섬기며 살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 육체적인 준비는 건강만이 아닙니다. 순결입니다. 아무리 건장한 육체라도 순결을 잃어버리고 성적으로 타락하면 그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 앞에 순전한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인격적인 준비
두 번째는 인격적인 준비입니다. 세례요한의 인격에 대해서는 여러 번 성경에 언급됩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바른 이야기를 하여서 정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었지만 헤롯조차도 세례요한의 말을 달게 들었으며 번민하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의로운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격입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아시겠지만 여러분들은 기독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앞으로 목회자가 되겠다는 학생들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해야 합니다. 제가 34살에 안양대 교수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싫어했던 것이 컨닝하는 cheating 행위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답을 보고 쓰는 것, 다른 사람들의 과제를 그대로 베끼는 것 등 집요하게 싸웠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어떻게 그것을 보고 베낄 생각을 할까요? 두 학생을 끝까지 졸업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3일을 와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한번만 봐달라고 교수실을 안 떠났습니다. 안된다고 했더니 마지막에 하는 말이 ‘그러면 교수님은 학교 다닐 때 여태까지 컨닝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신학교 다닐 때는. 고등학교 다닐 때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회심하고 신학교 다니면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야단쳤습니다.
그리고 말도 되지 않은 것이 신학교 채플 시간에 카메라를 놓고 갔는데 20분 후에 다시 찾으러 왔더니 누군가가 훔쳐가고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여기 다니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상근 박사님의 조교를 했습니다. 교수님이 학생들을 위해서 강의안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교수님이 돈을 주고 만들었으니까 학생들에게 돈을 받아야지 인쇄소에 비용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하나씩 팔고 있는데 교수님이 화를 내시면서 ‘김 전도사 지금 수업을 해야 되는데 그냥 나누어주고 나중에 돈을 받아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돈이 걷혔을까요? 하나도 안 걷혔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믿고 다 나누어 주었는데 자기는 받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수님이 돈을 모두 다 물어주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목사가 되어서 어떻게 하겠냐는 것입니다.
고신의 총장을 지내시던 학장을 지내시던 한상돈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투옥되셨습니다. 그리고 합동 측과 고신 측에서 동등하게 존경을 받으시면서 학장을 하신 분인데 그분이 신학교를 다닐 때 일화입니다. 그분과 6개월을 한 집에서 사셨던 제자 목사님 -그분이 지금은 90세가 넘으셨지만-의 증언입니다. 한상돈 목사님이 전도사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연구원에 들어오자마자 교회를 개척했고 열심히 섬기고 있었는데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냥 시험이라면 뭐라도 쓸 수 있는데, 하다못해 설교라고 한편 쓰고 나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영어시험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많이 섬기고 있다 해도 I am a boy가 입력이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답을 적고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한상돈 전도사가 눈을 감고 ‘오, 주님 주여’ 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학생이 답안지를 이쪽으로 밀어서 보여 주더랍니다. 순진한 한 전도사는 ‘이 얘가 왜 삐뚤게 앉아서 시험을 보고 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까 자기 시험지를 보고 쓰라고 그렇게 앉았던 것입니다. 한 전도사는 그 자리에서 시험지를 덮고 퇴장했습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회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내가 평소에 어떻게 살았으면 같은 반 친구가 나를 보고 시험지를 보여주면 받아 쓸 정도의 인격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내가 잘못 살았습니다. 주님.’ 영어 실력이 좋아서 시험지를 보여준 학생이 누구였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시험지를 덮어놓고 0점을 받은 그 학생은 후에 그 학교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찬양)
내 생에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내 생에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주님을 닮기를 간절히 원하네 내 생에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친구처럼 지내지만 형제처럼 지내는 우리 친구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름대면 여러분이 다 압니다. 그분이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출석을 확인하는데 3시간을 결석을 했는데 누군가가 다 대리출석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교수실에 가서 말하기를, ‘여기는 출석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저는 결석을 했는데 누군가가 대신 대답을 한 것 같습니다. 저를 결석처리 해주십시오.’라고 해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대학생의 양심입니다. 그리고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험공부하기 싫으면 관두십시오. 그 대신 자기 행동에 대해서 정직하게 책임을 져야합니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아주 비겁한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는 무엇인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천근만근 무거운 무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삶으로써 그런 삶을 살아내야 됩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그런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과 쓰시지 않는 사람은 현저히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많은 결점이 보이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써주실 만한 아주 좋은 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격적으로 자신이 예수를 위해서 살 사람이니까 예수를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
나다니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을 기억합니까? 한번 보세요. 거기에는 마을의 전설이 있었습니다. 앞에 큰 바위가 있는데 아주 인자한 사람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이 동네에서 언젠가는 저렇게 인자한 최고의 인품을 가진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렸습니다. 그 동네 출신 중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모은 거부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아, 저 사람이 아마 큰 바위 얼굴일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아니었습니다. 훌륭한 정치가라는 사람도 왔는데 아니었습니다. 군인도 왔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큰 바위 얼굴의 전설을 들으면서 그 사람이 나타나길 꿈꾸고 기다리던 소년은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석양 노을이 지던 어느 날 동네사람들이 “아니, 여기 봐. 큰 바위 얼굴이 바로 이분이시잖아. 똑같아. 하나도 안 틀려.” 그리고 보니까 그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고 자란 어린소년은 큰 바위 얼굴 같은 훌륭한 인물을 그리워하고 기대하면서 살았더니 자신이 그 큰 바위 전설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에서 명성에서, 그리고 명예에서 그런 사람을 찾았지만 그러나 그 큰 바위얼굴은 인격이 큰 바위를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음식은 놔두면 저절로 부패합니다. 부패하기 위해서는 노력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나쁜 사람이 되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그냥 맘에 내키는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면 나쁜 남자, 나쁜 여자가 될 것입니다. 아주 몹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사람이 되려면 지금부터 하고 싶어도 절제할 수 있는 것을 배우고, 하기 싫어도 그것을 행하여야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합니다. 그것이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하나님 앞에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은 뜻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죄 때문에 나라가 망했으니 다시는 죄를 지음으로 나를 더럽히지 말자.” 그렇게 자기가 스스로 다짐하면서 뜻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뜻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전문가로써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우러러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방면에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강수진이라는 국제적인 최고 발레리나가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마흔이 넘어서 발을 보여주는데 발가락 10개가 모두 기형이었습니다. 얼마나 나무 바닥에서 몸부림치면서 무용을 했는지 완전히 기형이었습니다. 한 시대 피겨스케이팅으로 휩쓸었던 김연아는 뼈의 나이가 40살이 넘었습니다. 25살에 은퇴를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미친 듯이 그 빙판에 자신을 쏟아 부으면서 무언가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만을 보면서 감탄을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인격이라는 것은 어느 날 검은 가운을 입혀놓거나 넥타이를 매어 놓으면 훌륭한 인격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만할 때 진실하고 눈물이 있었던 사람들이 20년 후에도 대게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을 깊이 만나지 않고 나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훌륭한 인격을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와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땅히 되어야 할 나와 그리고 지금 현재 있는 나 사이에 있는 격차를 인식하면서 마음 아파하는데서 거기서부터 우리의 인격은 변화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 젊은 나이에 소비에나 마음이 끌리고,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한 즐거움에 마음을 쏟는다면 정신이 죽은 것입니다. 지금은 치열하게 살면서 아주 고매한 인격을 갖기 위해서 교양을 연마하고 신앙을 돈독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경견한 몸부림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신학을 늦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1985년도였습니다. 제때 들어왔으면 78년도였을 것입니다. 당시 대학원 시절에 이미 그런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한 10년 전 선배들의 증언에 의하면 밤중에 이 산속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학생들의 기도 소리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총신이 살아있을 때였습니다. 학생 수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제가 85년도 M.div 출신인데 그때 M.div 경쟁률이 20대 1이었습니다. 1200명이 시험을 보고 60명을 뽑았습니다. 거기엔 연구원 학생도 있었고 연수원 학생도 있었습니다. 밤이면 다 산속으로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불도 안 켜고 말입니다.
인격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는 과정을 통해서 생겨나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뷔페에 가면 무순이 나옵니다. 무순은 무싹입니다. 그게 점점 자라서 밑둥에는 무가 자라고 위로는 무청이 나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이 작은 무순을 이 사이에 자근자근 씹어서 맛을 보면 무맛이 납니다. 왜입니까? 본질이 무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은 일개 학생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신학과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여러분들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자기 학문의 세계이든지 비즈니스의 세계이든지 하는 것입니다. 여기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여러분들이 지도자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규모의 지도자가 될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잘 준비되어도 이 세상에서 기회를 못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준비되어도 기회를 못 얻는 사람이 있지만 준비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그 사람에게는 진정한 기회가 될 수 없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에게 5천명을 모아 놓을 테니 한번 오셔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그 사람에게 기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꿈꾸면서 기다리면서 자기 자신을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사람들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인격이 되어야지만 사람들이 그 리더십에 순복하고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보스가 되어야 합니다. 힘과 권력을 움켜쥐고 사람들을 파괴적으로 대해서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마지막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깨트러지고 은혜를 받으며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갈 때 지도자의 자질도 그 안에서 함께 자라갑니다.
학문적인 준비
세 번째는 학문적 준비입니다. 오늘 설교를 듣는 여러분 대부분은 앞으로 목사가 되거나 선교사가 될 사람이고, 선교사나 목사가 될 사람이 아니어도 여러분은 각자가 전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학을 전공하면서도 그저 졸업을 하고 나면 학교 앞에서 소박하게 분식집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여기 있는 동안에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방탄소년단의 리더가 김남준인 것 아시지요? BTS가 뜨기 전에는 제가 더 유명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저의 기사가 먼저 잔 나오고 그 김남준은 저 구석 한 켠에 나왔는데 요즘은 방탄소년단의 김남준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어느 날 인터넷을 들어갔는데 ‘김남준, 사랑해. 너무 이뻐’라고 되어 있어서 봤더니 BTS였습니다. 그들의 신곡을 쭉 들어 보면 놀랍게 인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책들을 소화하고 있다고 보여줍니다. 비록 내가 오늘 역사교육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한 다음에는 떡볶이 집을 한다고 해도 오늘 배우는 공부가 언젠가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도 ‘나는 공부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여기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합니다. 비싼 등록금내고 왜 국가적인 낭비를 합니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안양대학교 교수로 있을 때 한 분이 교수 연수회에 강사로 오셨습니다. 한 학기 끝나고 교수들에게 특강을 하고 같이 점심을 먹는 순서인데 그 중에 한사람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누구냐면 헨리 키신저 밑에 있던 사람입니다. 헨리 키신저는 미국 국무부장관을 지내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평화와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같은 일에 기여를 한 95세쯤 된 전설적인 정치학계의 인물이고 정치가였습니다. 이런 분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이 강사분의 이력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러분은 한국 전쟁 이야기를 역사교과서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6.25 동란의 참상 속에서 한 아이가 밥그릇을 들고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우는 사진을 보셨을 것입니다. 아주 유명한 사진입니다. 이 강사분이 바로 그 아이였습니다. 엄마와 아빠를 전쟁 속 폭격으로 잃어버리고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미군이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입양을 했는데 아버지가 미국 육군 대령까지 지내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엄하게 애들을 키웠는지 아침 식사할 때 넥타이를 매지 않고 식탁에 앉으면 따귀가 올라올 정도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엄마 젖을 못 먹어서 키가 아주 작았습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공부를 해서 하버드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들어갔는데 박사 논문 지도 교수가 헨리 키신저였다고 합니다. 헨리 키신저가 이 친구를 대리고 백악관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활동을 하면서 지켜본 모습을 강연하였는데 키신저 장관이 이란, 이라크 전쟁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협상 팀으로 가서 최선을 다해서 설득을 했는데 결국은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올 때는 방탄차를 갖고 와서 타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그분이 자신이 하버드에서 공부할 때에 얼마나 지독하게 공부를 시켰는지 하루에 리딩해야 할 독서량이 600페이지였다고 합니다. 영어, 불어, 독일어 등 최소한 3개 국어로 되어 있는 책 600페이지를 읽고 수업을 했으며, 2시 30분 혹은 3시쯤 수업이 끝나면 전부 다 도서관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읽고 숙소로 내려와서 창문을 열고 타자를 치면 소낙비 오는 소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일찍 끝나는 학생은 1시 30분쯤 불이 꺼지고, 더 오래 시간이 걸리는 학생들은 2시나 3시까지 그렇게 불이 켜져 있고, 상당히 많은 학생은 한 번도 불을 못 꺼고 새벽 5시에 하고 조깅을 하러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4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를 시키는데 거의 돌 정도로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있었던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한 학기에 두 명 정도는 병실에 실려 간다고 합니다. 그 병실이 내과와 같은 곳이 아니라 정신 병동입니다. 공부하다가 돌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강대국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은 엄청나게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하버드 후배들은 너무 공부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자신은 600페이지 넘게 책을 읽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후배들은 480페이지 정도밖에 읽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치열하게 4년 동안 하고 나면 놀면서 4년을 보낸 사람하고 마주 앉아서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의 학문의 격차가 납니다.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신학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들에 대한 공부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와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점에서 모든 세계와 관계를 맺고 계십니다. 이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모든 창조될 것들에 대해 관념이 하나님 안에 이미 있었습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관념이 표현된 것입니다. 당연히 올바르게 그 학문을 하면 그 학문이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이 점에 관해서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이 세계에 있는 것들은 결코 하나님을 보여줄 수 없으며, 성경 이외에는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피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만물은 성경의 도움 없이 하나님을 충분히 보여 준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이 사이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먼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또 주님이 누구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위로 상승한 지성은 다시 하강하면서 자연의 모든 세계를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만드셨는지를 배우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17세기의 과학자 요한 케플러라는 사람이 책을 썼습니다. <우주와의 조화>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행성들의 주기를 다 주기표로 계산을 했습니다. 그것을 수학으로 바꾼 다음에 음악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연주를 해보니까 그 주기의 비율이 기가 막힌 화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과학책을 쓰다말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높고 위대함을 찬양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공부를 하는 재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학문을 하는 재미에 눈을 뜨면 좋겠습니다. 비록 여러분들이 나중에 분식집을 하든지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사원이 되든, 사장이 되든지 할지라도 사람이 학문을 하고 그 학문을 통해서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과 그 역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될 때에 그가 사업을 해도 큰 사업을 할 수 있고 사업을 해도 창의성을 가진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건희씨가 자기 아들을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서 역사를 공부하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기업을 이끌어 갈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학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성경이 정 가운데 있고 그 다음에 신학이 있고 신학 밖을 일반 학문이 둘러쌓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대학생들과 대화하고 느끼는 낙심스러운 마음은 너무 교양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양이 없다는 것은 예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몰라도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많이 압니다. 잡학입니다. 핸드폰만 열면 접속할 수 있는 그런 지식들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는 것이 힘들어서 선배에게 찾아가서 ‘형, 도대체 인생이 뭐야?’ 그랬더니 선배가 하는 말이 ‘네이버 한번 찍어봐.’ 했답니다.
지식의 유용성은 자신이 그것을 소화해서 그것을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지식과 체계를 이루는 원동력으로 삼는 것입니다. 가장 중심에 신앙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면 알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성경의 언어들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신학과에 있는 여러분들은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를 공부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히브리어 교수였을 때 여러분 같은 학생들이 ‘알레패트’도 몰랐습니다. 너무 공부를 하지 않아서 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모두 데리고 6박7일 수련회를 같습니다. 주일 밤에 떠나서 토요일 밤에 돌아왔습니다. 거기 있었던 6일 동안 열심히 가르쳐서 내려올 때에는 창세기 1장을 읽게 만들었습니다. 짐을 풀자마자 학생들에게 알파벳부터 가르치기 시작해서 그 다음날 아침에 알파벳 시험을 봤습니다. 두 시간 가르치고 한 시간 문제 풀고, 그 다음에 또 시험 보고 하는 식으로 했더니 토요일 날 드디어 창세기 1장을 읽었습니다. 일주일만 집중해서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안 합니다. 물론 더 깊이 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넉넉잡고 하루에 3시간씩 이년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안 합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해서 언어의 도구를 획득하면 그 다음에는 성경을 원전으로 읽습니다. 열심히 설교 하는데 그것이 성경에 없습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이 안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책임합니까? 전문가의 길을 걷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됩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언어를 해야 합니다. 영어도 해독을 못해서 쩔쩔 맵니다. 까막눈입니다. 우리나라 자체 안에서 생산되는 지식의 양은 한계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신학이나 인문학은 어림없습니다. 그것을 뛰어넘으려면 언어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언어의 벽을 넘으면 헤아릴 수 없는 지식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거기에다 라틴어를 하나 넘으면 더 헤아릴 수 없는 지식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독일어, 불어 하나한 공부하면 상상할 수 없는 지평들이 열리면서 지식의 세계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립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학생의 진실함은 얼마나 집요하게 공부 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을 갖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선생으로써 교실에 들어갔을 때 유감스러운 것은 아예 지식의 욕구가 없는 학생들이 거기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학교 다니는 것이 지겨우면 그만두는 것입니다. 솔직히 4년제 졸업장이 취업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실업자의 많은 비율이 대학 졸업자입니다. 왜 그렇게 삽니까? 더구나 목사가 될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진리로 인도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 진리는 어떻게 왜곡되고 있고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거부하고 있는가를 지독하게 탐구해야 합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묻겠지요. “목사님은 그렇게 공부했습니까?” 열심히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여기 신대원 다닐 때 민주화 투쟁으로 학교가 휴교를 했습니다. 그때 꼬박 꼬박 나와서 15시간씩 공부했습니다. 아무도 학교에 나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나 자신과 싸우면 기도하며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여기에 보내주셨을 때 하나님이 기대하신 바입니다. 주위에 공부 안하는 학생들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그러나 총신대 학생들하고 비교하면 안 됩니다.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진짜 세계적인 신학교 학생들과 비교할 수 없다면 서울대만이라도 비교 대상으로 삼고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미친 듯이 자기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가를 배우면서 씨름해야 합니다.
지금 와서 푸념해봐야 소용없지만 제가 20대로 돌아가면 너무너무 해보고 싶은 것이 5개 국어를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신학의 세계에도 엄청난 정보들이 넘칩니다. 그런데 언어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교부들에 대한 공부를 해 보면 알겠지만 사해사본에 관한 공부들은 프랑스학자들이 꽉 잡고 있습니다. 그런 언어의 벽을 뛰어 넘으면 상상할 수 없는 자료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멀리 잡지 말고 우선 영어 하나라도 미친 듯이 공부해서 독파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처럼 좋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 신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2학년 되었을 때 결심을 했습니다. 아 신학에서 영어는 넘지 않으면 안 되는 벽이구나 여기고 야간 2학년, 3학년, 4학년 졸업 할 때까지 만 오천 페이지를 읽고 졸업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다는 못 이뤘습니다. 약 칠천 오백 페이지 정도는 읽은 것 같습니다. 300페이지 짜리 책 25권정도 읽었습니다. 그러나 총신에 와서 공부하는 동안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왜 치열하게 공부 안합니까?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7시간씩 1년만 쏟아 부어도 훨씬 나은 실력이 될 것인데 그 정도 노력을 하지 않고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부터 끊임없이 성경을 중심으로 하되 성경 이외의 책들 문학, 철학, 역사, 경제학, 과학, 법학, 수학, 천문학, 심리학 이런 것들을 두루두루 읽으면서 교양을 넓혀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진리가 세상의 좌표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스스로 자각하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사상으로 자기 자신에게 용해되어서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손에서 책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멀리해야 합니다. 최근 한 사람이 ‘다시 책으로’라는 책을 썼는데 자기의 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것은 아주 탁월한 정신의 분산이라는 것입니다. 집중이 아니라 놀라운 분산이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스마트폰에 집중하면 사상을 다루는 책들을 읽는 능력이 퇴화가 됩니다. 화면을 펼쳐놓고 쑥 읽으면서 볼 수 있는 자료들만을 읽으니까 한 문장, 두 문장 사이에서 치열한 논리로 싸우는 이론서들을 읽는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게 말랑말랑한 것들과 살아가니까 마치 죽 같은 것만 먹고 사니까 지식의 뼈대가 자라지 않습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열렬하게 말입니다.
젊음은 30년 후에 갚기로 되어 있는 지불 만기 어음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막 사인하고 남발하면 30년 후에 여러분들은 파산합니다. 그리고 아마 나이가 많이 들면 휴지나 주우며 살아야 될지도 모를 정도로 비참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사실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진실해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진실해지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합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모두 진실한 것은 아니지만 지식이 없이 진실한 목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발 눈을 들어서 세계의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도전을 받고 여기에 있는 학생들을 목표로 삼지 말고 국제적인 학생들을 기준으로 삼고 어느 정도 내가 그들과 함께 경쟁해서 뒤지지 않을 수 있는가 생각하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맨날 1학년에서 4학년까지 개론 타령이나 하다가 졸업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졸음을 이기기 위해서 눈을 비비면서 공부해본 적 있습니까? 또 묻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목사님은 해봤습니까? 노력은 해봤습니다. 신론 에세이를 쓰는데 22시간동안 앉은 자리에서 안 일어나고 리포트를 썼습니다. 의자 밑에 요강을 놓고, 책상 위에는 물 한통과 빵 한 덩어리를 놓고 자리에서 뜨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다 쓰지 않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22시간 만에 책상에서 일어났습니다. 17시간동안 히브리어 성경을 읽었습니다. 똑같이 의자 아래에 요강을 놓고, 책상에 물과 빵 한 덩이를 놓고 읽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엉덩이가 무겁습니다. 책상에 가끔 앉는데 한번 앉으면 안 일어납니다. 집요하게 책을 읽고 안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살살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젊음을 만끽한다고 그렇게 방황하고 나중에 후회합니다. 지금은 공부에 몰입하고 신앙에 몰입할 때입니다. 열렬하게 공부하기 바랍니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공부하세요. 공부하세요. 치열하게 공부하는 여러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영적인 준비
마지막 네 번째는 영적인 준비입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 ‘아이가 빈들에서 자라고 심령이 강하여지며’ 라고 했습니다. 심령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말하자면 핵심부입니다. 마음은 영혼의 기능인데 그 심장부를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심령이 강하여 진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준비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그의 영광에 압도되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들은 거룩함의 경험이라고 합니다. 신학적으로 거룩함은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존재적 초월성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를 만드셨으나 세계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 속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위에 뛰어나시다는 뜻입니다.
(찬양)
온 땅과 하늘 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를 만드셨지만 이 세계와 하나님은 전적인 타자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세계와 만물들을 초월해서 계신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에 비하여 모든 이 세상에 위대한 것들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미천한 인간입니다. 우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길이가 백오십 억년이라고 합니다. 별들의 나이는 수 십 억년에서 백억 년입니다. 태양도 아마 수명이 백억 년쯤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거대한 폭발을 해서 적색외성이 될 것이고 흔적도 없는 연기로 태양은 사라질 것입니다. 사라진 먼지들이 또 다른 별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잠깐 태어났다 사라지는 존재들입니다. 얼마나 그런 존재들일까 제가 여기에 입학해서 여기 운동장을 걸어 다니면서 뒷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여기에서 은혜를 받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4년 내지 3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어제 일 같은데 말입니다. 그것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돌이 되어서 돌잔치를 하던 아들이 목사가 되었고 이제는 30대 중반이 되었으니까 잠깐 동안에 세월이 지나는 것입니다. 인생을 특별히 살아보겠다고 말할 것이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잠깐 있다 사라지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그 어마어마한 별들의 나이 앞에서도 인간은 하찮고 어쩌면 입안에 있는 세균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걸 알고 하나님 앞에 자기는 정말 티끌 같은 인간이라 사실을 깨달으면서 하나님 앞에 의존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거룩함의 경험입니다.
두 번째는 도덕적 완전성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도덕에 있어서 완전하신 분이시고 나에게는 종종 그와 닮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너무 불완전하기 때문에 부끄러울 정도다 라는 인식을 가지면서 그 앞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더러움을 보고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어떻게 살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거룩함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은 다릅니다. 여러분들이 진짜 하나님 앞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에 방학을 시작하면 무조건 친구들과 기도원을 올라가서 금식을 했습니다. 왜입니까? 한 학기 동안 묵은 영혼의 때를 싹 씻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여름에는 여름 성경학교 때문에 금식하고, 겨울방학 때에는 한 해 동안 목회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도록, 또 공부 잘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 안하고 경건생활을 안하는 친구들과 섞여 살면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저위에 있는 산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침에 방석하나 가지고 올라가서 간절히 엎드려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 선배들이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하나님 앞에 살려고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봐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기도하는 그 사람은 미래에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특별하게 준비된 사람들이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이렇게 지도자가 없습니까? 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실제 지도자는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준비된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정주 시인이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썼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사람들은 국화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너무 즐거워하고 그 국화꽃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국화꽃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던 그 가슴 아프고 피를 토한 사연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왜? 화려한 꽃은 아름답고 영예롭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피 흘리는 과정은 자기가 겪고 싶지 않습니다. 무통의 면류관을 원합니다. 그러나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왜 하나님 앞에 열렬하게 살지 않습니까? 열렬하게 살지 않으니까 열렬한 기도가 없고 그렇게 열렬하게 살 표준이 없으니까 회개할 일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죄와 나태, 태만 이런 것들이 뒤섞여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눈물이 있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정말 밤 되면 학생들이 올라와서 채플실에서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그렇게 합니까? 너무 기도하러 나오지 않으니까 기도하고 온 것을 증명하는 도장을 찍어오라고 하고 그것이 없으면 기숙사에서 퇴출시키겠다고 한다지요. 그것은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기숙사에서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새벽기도 나옵니까? 하나님을 만나려고 나와야 합니다.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치열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왜 열정이 없습니까? 간절히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열심히 읽어야 할 것들이 전기입니다. 위대한 영적인 인물들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고 어떻게 치열한 내면의 세계 속에서 자기를 준비했는가 하는 것들을 읽으면서 높은 표준을 갖고 하나님 앞에 꿈꾸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열렬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살 때 열렬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는 간절히 기도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체력이 있습니다. 건강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인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가면 가는 것이고, 교회 앞에 엎드려서 밤을 세우면 세우는 것입니다.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일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신학생들이 많이 출석하는 것을 싫어할까요 아니면 좋아할까요? 싫어합니다. 우리 열린교회가 이수역 사거리 입구에 있었습니다. 한때 총신대 학생들이 80명이 출석했습니다. 목사들 사이에서는 신학생들이 교회에 몰려오면 매우 안 좋은 조짐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신학생들은 열렬하게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청년들에게 본이 되지도 않습니다. 순수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치열하게 교회를 위해 봉사하지도 않습니다. 어디 유급으로 자기를 부르는 곳이 없나, 학적부에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전도사 자리만을 찾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제대로 된 목회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열렬하게 치열하게 주님을 간절하게 만나려고 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속에서 영적으로 심령이 점점 더 강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변해갈수 있습니다.
마지막 눈물을 흘려가면서 기도하던 적이 언제입니까? 눈물이 항상 있습니까? 교회를 생각하면, 학교를 생각하면, 나라를 생각하면, 개인의 삶을 생각하면,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이 있습니까? 기도 속에 눈물을 담아냅니까? 정말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부모님이 어떻게 나를 여기를 보내시고 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나를 위해 기도하고 목사님이 어떻게 나를 여기에 추천해주셨는지, 그 엄청난 무게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바닷가에 가서 보면 쫘악 하고 파도가 밀려옵니다. 그리고 벽에 꽝 부딪칩니다. 수많은 거품들이 생겨납니다. 그중에 대부분은 두 번째 파도가 오기 전에 없어집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라고 말합니다. ‘빈 들’은 ‘에레무스’라는 희랍어인데 ‘벌판’입니다. 기분 좋은 곳이 아닙니다. 해가 지면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낮에는 뜨거운 땡볕이 내려쬐고, 물 한 모금도 구할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렇게 광야에서 신학을 한 것입니다. 요즘은 누가 누가 공부를 더 잘하느냐 다투지만 모두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그래서 유학을 갈까 고민하며 유학을 하고 와도 교회는 그를 별로 알아주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가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유학하고 돌아오면 껌벅 죽던 때는 지났습니다. 지금은 별로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유학하러 외국에 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광야신학교를 졸업해야 합니다. 광야의 그림은 외로움과 고독입니다. 연단입니다. 두려움입니다. 거기서 하나님 한분 밖에 바라볼 수 없는 신학교입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광야의 신학교를 나왔습니다. 하버드나 예일이 아니라 광야의 신학교를 나왔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이사야, 엘리야, 호세아, 세례요한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광야에서 연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아라비아 광야에 가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고, 사도 요한은 밧모라는 외딴 섬에서 가족들이 이별하고 성도들을 그리워하며 거기서 연단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주님의 마지막 날의 위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진짜 외로워 본 적이 있습니까? ‘정말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내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구나. 하나님 한분 외에는 아무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보십시오. 오늘 이렇게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전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그런 깊은 몸부림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었습니다.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자기를 치열하게 연단하고 자기 자신을 준비하고 언제든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준비한 후에 주님이 자기를 나타내 보여 주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때가 되자 이스라엘에 나타나게 하셨고, 그가 맨 처음 말씀을 전한 곳은 광야였는데 도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걸어왔습니다. 이게 바로 진리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육체적으로 인격적으로 학문적으로 영적으로 잘 준비된 사람이 되어서 이 메마른 광야와 같은 이 나라와 이 세상에 가서 우물을 파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샘이 터지고 성령의 은혜가 터져 나오는 그 샘을 파십시오. 그러면서 그들에게 그것을 먹여 주고 거기에서 기력을 얻고 눈이 떠져서 하나님을 알고 인생의 의미를 알고 하나님을 향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라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여기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상품과 작품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상품은 새것이 나오면 옛것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286컴퓨터가 386나오니까 쓰레기가 되고, 이제는 286, 486, 팬티엄과 같은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컴퓨터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마 조만간 우리 모두가 오늘날 슈퍼컴퓨터라고 부르는 정도의 성능을 가진 컴퓨터를 핸드폰 하나에 다 갖고 다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건 상품입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은 가짜가 많이 나올수록 그 진품은 더욱 빛납니다. 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상품과 같은 삶을 살지 말고 작품과 같은 삶을 살기 바랍니다. 그래서 인생을 써가는 한줄, 한 줄이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만의 독특한 작품이 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유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한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그가 살고 있는 것이 그가 거기에 없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그렇게 살다가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아주 잠깐 동안에 사라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주님 앞에 여러분들이 이런 삶을 살게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