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중직자 교육
녹취자: 김지혜
A. 잘 지내셨습니까. 어느덧 5주 마지막입니다. 지난주에는 교인들이 아주 많이 왔습니다. 지금 보니까 적으면 한 150명 많으면 200명 정도가 신년에 이동한 것 같습니다. 등록을 안 한 상태에서 교회를 다녀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3384명이 출석했습니다. 평소보다 한 150명 이상 출석을 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몇 명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냐면 여러분들이 기도를 좀 많이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사경회 때 사람들이 주님 만나서 변화되고 주일날 계속 은혜를 받아서 방황하지 않고 교회에 정착해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지난주의 마지막 스터디 재료가 ‘사랑은 영원히’인데, OOO 집사님 발표해주시기 바랍니다.
Q. 말씀 너무 귀중하고 중요해서 요약하기가 애매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말씀에 비해 조금 어려웠습니다. 제가 정리한 것을 가지고 말하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 본문을 설명하시기를 ‘믿음은 지성에, 소망은 감정에, 사랑은 의지에 우선적으로 관여한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는 은혜의 작용인데 세 가지 단어로 나뉘었지만 나뉜 것이 아니고, 믿음을 소유한 자가 소망을 갖게 되고 소망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견디며, 사랑은 의지에 관여하지만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존재하게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 소망을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연관성을 설명하셨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의 작용이 삼위 하나님이 서로 작용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믿음도 소망도 은혜의 작용이지만 이 중 가장 본질 되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는 신자 안의 세 가지의 은혜의 작용이 대화와 같아서 넘치는 강물 위에 흐르게 되어있듯이 항상 머물러 남겨져 있어야 한다며 신자들의 평소 신앙생활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영화의 때에 영광의 나라에서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때는 사랑만 남기 때문에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고 더욱더 사랑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리시기 위해서는 은사를 사용하셨는데 이 모든 은사가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특별한 은사는 예언, 방언, 믿음, 지식이라고 하였으며 이것들은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은사는 직접적이고 신비스러워 이해하기는 쉽지만 하나님 뜻을 위해 온전히 전하기에는 한계를 드러낸다고 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의 계시가 완성된 이후 이런 은사는 종료되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 대해 탐구를 필요로 하고 부지런함을 요구한다고 강조하셨고요. 우리가 매순간 성경을 통해 비추시는 성령의 조명을 인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한 뜻을 분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언급한 더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는 말씀의 길은 이러한 은사와 지식들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교회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향해 갖고 계신 객관적인 은혜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한없이 자비를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는 주관적인 은혜로 나타나는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객관적인 입증인 하나님의 말씀이 각 사람의 마음속에 은혜의 작용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사랑하도록 하셨는데 중요한 것은 이 은혜의 작용 없이는 어떠한 은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은혜를 “카리스”라는 단어로 세 가지 용례를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중 세 번째 용례를 강조하셨습니다. 신자의 마음 안에서 작용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인데, 성령님의 작용으로 신자의 마음에 불러일으키시는 거룩한 감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불행의 씨앗은 사랑해야 할 것은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함으로 불행과 고통이 따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의 고행과 고통은 불행과 욕망 등에서 넘치는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탐욕, 분노, 어리석음 이 세 가지는 인간을 불행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놀라운 것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셨는데, 만약 마지막 한 가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단지 제 3자의 입장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존재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 그것을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A. 앞에서 내용을 전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니까 이제 어떤 신앙의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OOO 집사님.
Q.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이 땅을 구원하시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이 행복하게 하기위해서 사랑으로 그렇게 하셨는데 그것 때문에 도리어 불행해졌다는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제 행복을 좇고 이 땅에서의 명예나 물질적인 풍족함이나 또 자녀들이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잘 사는가에 대한 것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 동안 5주간의 설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랑을 이 땅에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땅의 것을 바라며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했고 주님께서 처음 주셨던 사랑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A. 우리 OOO 집사님
Q. 제가 설교를 듣고 깨닫게 된 것은 십자가 앞에 나가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내려놓자.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십자가였고, 그 앞에 무릎 끓는 것이다. 내가 죽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주 전체까지 확대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인데 사실 인류는 고사하고 가까운 가족도 심지어는 부부관계에서도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부끄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감화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왔다 갔다 합니다. 저는 2007년에 열린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처음에 만났던 사람들하고 가장 많이 친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구가 계속 바뀌면서 교제의 끈이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맞을지 모르지만, 사랑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책으로 읽지 않아도 교회 안에서 교구 안에서 이런 것이 사랑이라고 느끼고 그렇게 가르쳐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좀 부족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사랑을 실행해야 하는 주체가 저이기도 하기 때문에 늘 고민이 많습니다.
A. OOO 집사님
Q. 최근 교회에서 맡은 일이 많아지니까 과연 이게 내가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열정으로 해야 하는데, 기능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내가 일이 많아지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눠서 해야 되지 않나라는 마음들이 생겼었는데 이번 중직자 교육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설교 테이프를 들은 것 같습니다. 정말 필요한 말씀 다섯 개를 연구해서 저에게 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부족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그 사랑, 정말 잊고 일에 치우쳐서 사역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생활을 하며 살고 있지 않았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제가 올해는 직장선교팀에서 새로운 일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에 일하는 직장인들을 평일에 불러서 예배나 성경공부를 한 번 해보려고 하는데 기능적으로 일만 하려고 하지 않았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이번 교육을 통해서 채워진 것 같습니다.
A. OOO 권사님
Q. 하나님이 당신의 충만한 사랑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인간과 세상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금 우리를 구원하시고 교회로 모아주셔서 우리를 통해 선교하길 원하신다는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 중에 제일은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세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리에서 내가 마땅히 섬겨야 할 것들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A. (살아있는 동안) 인생의 문제가 그치는 날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주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따뜻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보다는 거칠고 힘든 일들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악악거리면서 자기 이익을 위해서 미친 듯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광기 비슷한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 (세상) 속에서 인간이 편안한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게 사실 이번 사경회 때 다루려고 하는 주제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함께 나눴지만 더러우면 환경의 문제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환경의 문제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2월호 열린신문 제7면 보셨습니까. 열린신문 7면의 간증을 읽어 보십시오. 한 자매가 30대 중반에 병에 걸려서 큰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 보십시오. 이게 우리들은 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얼마든지 우리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커다란 불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인생)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자신에게 펼쳐진 이 인생을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은 사랑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되든지 간에 (그대로) 하나님 앞에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외에는 우리의 인생에 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서로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사랑이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사랑의 문제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 자신의 문제로부터 시작됩니다. 어차피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우리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저 사람이 있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라는 완전한 기쁨을 주는 사람이 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교인들에게 그 정도의 기쁨을 줬을까 그렇지도 않고, 아내가 나를 물론 사랑하고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언제나 나 때문에 기뻤을까, 자녀들은 그랬을까, 우리 아버지는 항상 날 기쁘게 했나, 심지어 어머니, 자녀들, 아내, 남편을 생각해볼 때 (결론은) 인간은 그럴 수 없는 그렇게 하기 힘든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활에 너무 만족하고 감사하게 사는 사람은 사랑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사랑을 하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사랑을 할까요. 사랑은 흔히 누가 누구에게 쥐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랑은 없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그 사랑을 쥐어줄까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나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누가 우리에게 그 사랑을 쥐어주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일평생 자신의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것이 상처가 되었다고 혹은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것도 상처가 되었다며 (과거를) 끊임없이 붙들고 삽니다. 세상은 그런 곳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인격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에서도 제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한 20년, 짧게 보면 십 몇 년 사이의 제 목회 인생이 그 책 안에 묻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이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의례히 하게 됩니다. (답은)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이미 그런 삶을 살아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경험의 기간이)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고 지금 (경험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은혜 충만해서 (자신에게) 전개된 모든 현실이 감사하고 아무것도 힘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살았던 그런 시간들 말입니다. (그 사랑을) 내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이제 우리의 신앙의 중요한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사랑)을 충만하게 채워주시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합니다. 자, 권사님 말씀해주시겠습니다.
Q.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 구절을 읽을 때) 믿음, 소망, 사랑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은혜의 작용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나중에 하나님의 영광의 때에도 사랑만 남는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의) 존재 자체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라고 그냥 생각되었던 부분들이 이 사랑이 이 땅에 와서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그 사랑인 것을 알았을 때 정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절망하지 않는다, 많은 사랑에게 사랑을 받아도 외롭다고 하셨는데 살아오면서 사랑을 받았던 것은 잊는데 내가 가슴 설레고 좋아했던 것은 안 잊혀졌습니다. (주는) 사랑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받은 사랑은 기억도 못합니다. 오히려 섭섭함이 생깁니다. 구역공과 할 때 사람을 사랑할 때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비슷한 면이 있는지에 대해 나누게 되었습니다. 제가 구역장이니까 마음을 오픈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까맣게 잊었던 경험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젊은 시절 마음 설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설렘을 가지고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직장생활 할 때 군부대에 김치를 가져다 줬습니다. 그때 보급장을 하는 이소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가슴이 설렜습니다.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니까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주고 싶은 것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 뒤 이소위가 전출되어 갈 때 이 땅에 허황한 거리라는 유행가가 있었는데, 그 유행가가 딱 제 마음 같았습니다. 이때를 너무 잊고 살았는데, 목사님 말씀에 공감을 하면서 이때가 기억났습니다. 한 달 동안 예배도 굉장히 은혜롭고 안 들리던 설교도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때도 제가 그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도 우리에게 이렇게 주고 싶으셨구나, 이런 사랑이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설교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6번 들어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목사님이 총 정리를 해서 말씀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A. (결론은) 역시 이소위다. 사실 권사님 이야기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국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랑이 결국은 하나의 사랑을 본뜨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지극한 사랑도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뜨는 건데, 사실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이외에 다른 곳에서 기쁨을 얻고 만족을 얻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자꾸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끊임없이 떠나니까 내 삶이 공허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아도 얼마든지 사람은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김(으로써)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OOO 권사님
Q. 설교에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은 이걸로 끝이 났지만 그 이후에 우리가 계속 이것을 써 내려가야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사랑을 이어갈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저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온전한 회복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주간의 시간이 저에게는 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솔직히 기쁨으로 한 게 아니고 해야 하기 때문에 시작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 주 한 주 시간을 보내면서 저의 무뎌지고 둔해진 영적인 모습들을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현주소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감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목사님께서 세 가지 기도제목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제목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셔서 잃어버렸던 것을 회복하고 또 돌이키고자 하는 의지와 소망을 주심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또 김성구 목사님께서 나 자신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교역자들이 함께 기도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힘이 얼마나 큰가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A. 혹시 고린도전서 13장이 설교가 몇 개인지 아십니까? 31개 다 설교 들으신 분 손들어보십시오. 예배 시간에 들었던 것 말고 다시 테이프를 통해 완독하신 분.
Q. 목사님, 책으로 안 나왔잖아요.
A. (만약) 책으로 나오면 800페이지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쓰는 것도 저의 중대한 작업인데 설교준비에 그 당시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설교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쏟으니까 다른 일 할 시간이 없기도 합니다. 우리 집사람이 ‘당신이 누구인지 그대로 알 수 있는 단 하나의 시리즈를 지적하라고 하면 그 시리즈를 하겠다’고 합니다. (이 시리즈를) 제가 두 번 했습니다. 지하실에서 한 번 하고 그 다음에 2012년에 하다가 (청중들의) 예배자세가 하도 나빠서 (청중들에게 이 설교를) 들을 자격도 없다고 (이 시리즈 설교를 중단하고) 배교적 예배에서 돌이키라 (시리즈)를 설교했습니다. 1년 반 후에 (중단한 시리즈를) 다시 시작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엄청난 역작이었습니다. 31번을 설교한다는 것은 같은 본문을 31번을 한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완독한 분들이 계십니다. 학생들도 있고, 교역자분들도 있는데 (이분들은) 진짜 마음에 많은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94년도 지하실 교회에 있을 때 설교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찾아봐야 알 것 같은데 그 때 설교는 비교적 간단했었습니다. 12년도 (설교) 때는 공부도 많이 깊어졌고 인생도 훨씬 더 많이 살고 쓰디쓴 맛들도 보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설교가) 훨씬 더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사랑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누구를 지적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살지 않은 나를 회개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이 사랑이 결국 신자 안에 가득하면 모든 현실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없으면 어마어마한 부귀영화 속에 파묻혀 있어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까지 재벌 3세 4세 (중) 마약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의) 다 연루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단순히 영화나 소설이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결국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만 얻으려고 하는 것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약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제가 가끔 링거를 맞으러 가면 잠을 잘 못자니까 (병원에서) ‘목사님, 주무십시오’ 하고 약을 넣어줍니다. 마약성분은 아니고 신경을 좀 무디게 해서 잠에 들게 하는 약이 사르르 들어오면서 보통 3-4초면 곯아떨어집니다. (제가) 이를 악 물고 버티니까 9-10초 어떤 때는 40초까지 세고 자는데, (약이) 사르르 빨려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잠을 자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약을 먹어야 하고 약을 먹어도 40분씩 씨름해야 하는데 사르르 들어가면 어떨 때는 5시간까지 잘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링거는 들어갑니다. (우리 중 마약을) 경험해 본 사람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마약 때문에) 엄청난 환각효과가 느껴진다고 하니까 현실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기쁨을 마약으로) 얻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실의 기쁨이라는 것이 사람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맛있는 것을 먹고 그 다음에 좋은 곳을 여행하고 즐거웠더라도 언제나 공허합니다. 결국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속에서 내가 삶의 의미를 찾고 (그 궁극적 결론은) 하나님이셔야 됩니다.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때 사랑의 감정은 순수하고 좋아하는 동안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좋아한 사람이) 가버리면 행복했던 것만큼 우울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사실이) 우리들이 사랑하되 잠시 있을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영원히 있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OOO 권사님
Q. 저는 99년도에 열린교회에 와서 회심하게 하셨습니다. 깊게 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그 사랑하심이 무엇인지 그 은혜가 무엇인지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데 하나님은 제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를 원하심을 말씀 가운데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깨달아도 은혜를 받았어도 하나님 앞에 제 마음의 중심을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제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생명 속에 거할 때는 저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역사하심을 경험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희미해지고 희미해진 채로 살게 됩니다. 이 공부를 하면서 99년도 1월 제가 하나님 만났던 그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역시 말씀을 들어도 정말 마음을 다해서 듣지 않으면 제 것이 되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위하지 않으면 내 중심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우선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교육을 받으면서 다시 다짐하고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께 제 마음을 드리는 것, 이것들이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 (신자의) 성화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A. OOO 집사님
Q. 마지막 설교가 힘들었습니다. 정리가 안 된다기보다 마음에 새겨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기록할 양이 많아서 벅찼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막연히 삼위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본질적인 하나님이 세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열린교회 오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도 있었지만 사실상 명확하진 않았습니다. 열린교회 와서 목사님 말씀에 은혜받고 교육도 받으면서 1-2년 정도 지났을 때 출근 중 회심의 경험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묵상하는 가운데 한 분 하나님 또 다른 세 분의 하나님이 나를 둘러싸서 사랑하시는 구나. 한 분 하나님의 사랑도 큰데 삼위하나님 세 분이 나를 둘러싸서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구나. 그 사랑을 태초부터 준비하셔서 (나에게) 은혜를 주셨구나라는 벅찬 감격을 느꼈습니다. 눈이 붉어질 정도로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그러고 한 달 동안 회심의 삼격이 제 마음에 가득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직장에서 전도라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직장 전도보다는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하나님을 잘 만날 수 있게 맞이하는 것에 대한 은사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사람을) 끌어오거나 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은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심한 후 한 달 동안 누구를 만나서 복음을 전할까 복음이 무엇일까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기도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번 설교를 들으면서) 사실상 잊혀졌던 그 회심의 사랑,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삼위하나님의 사랑이 생각났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하나라는 것, 본질적인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셔서 저로서는 이번 말씀으로 인해 감격이 넘쳐났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지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어떻게 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남은 인생, 영원에 이르기까지 믿음 소망 가지고 더 깊이 하나님을 맞이하고 낮은 자세로 살아가겠습니다.
A. 마지막으로 OOO 권사님
Q. 저는 말씀 들으면서 써봤습니다. 쓰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손이 아파서 글씨가 써지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영원 전부터 삼위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 우리가 사랑하게끔 창조를 하셨는데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 사랑을 자기 사랑으로 바꿨습니다. 저도 너무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항상 하나님 앞에 저에게 사랑을 달라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 안에 사랑이 없음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다른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아서 불편하고 아픕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를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나는 내가 받을 사랑(만) 계산하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랑하길 원하지만 사랑하지 못하고, 또 사랑받기는 원하는 (제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A. 세상 모든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해주시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 많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권하고 싶은 것은 어느 목록에 보니까 (설교가) 서른 한 개라고 되어있거나 서른 개라고 되어있는데, 아마 31개가 맞을 것입니다. 31개를 완독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보통 노력은 아니겠죠? 그러나 사람은 하고 싶으면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다 합니다. 1번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들으십시오.) 옛날 1994년도 그때 설교 듣지 마시고 2012년도 설교를 들으십시오. 쉽게 빨리 듣고 싶으면 1994년도 설교 들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2012년 설교를 들으시길 바랍니다. 천천히 한 편씩 일주일에 한 두 개정도만 듣는다고 마음먹고 들으십시오. 무엇인가 하면서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성분들은 빨래를 개키거나 바느질 하거나 바느질 하는 사람도 별로 없죠? 뜨개실을 짜면서 들으시길 권합니다.
Q. 안 됩니다, 목사님. 집중해서 들어도 안 들어옵니다.
A. 홈피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사랑을 찍으면 됩니다. 한 번에 나옵니다. 영원한 사랑을 찍으면 이렇게 나옵니다. 책은 아직 못 썼습니다. 이것이 위로 올라갈수록 최근 것입니다. 밑에 ‘더 보기’를 계속 누르고, 더 이상 안 나올 때까지 누릅니다. 거기가 1번입니다. 이제 더 이상 안 나옵니다. ‘영원한 사랑이심,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고린도전서 12장 31절 이렇게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누르면 시리즈 설명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1번에서부터 차례대로 들으시면 됩니다.
Q. 녹취된 것을 주시면 안 될까요.
A. 책으로 내야합니다. 30개를 듣는 것과 하나 듣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하나는 설악산을 보는 것이고 서른 개를 듣는 것은 태백산맥 전체를 여행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서른 개면 거의 몇 달을 쉬지 않고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5주 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 같이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지금까지 예수 믿게 하셨습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인생인데 우리가 진짜 하나님 잘 믿고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원망하고 불평하는 그런 삶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은혜생활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우리에게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 앞에 처음 은혜대로 살게 해달라고 한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