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의 영적생활
녹취자 : 이재호
열린교회를 생활하셨기 때문에 제직의 대상이 되셨을텐데 제가 열린교회를 개척하고 나서부터 첫해서부터 마음의 결심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직을 하기 싫다는 사람은 생전 시키지 말자’ 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본인이 하겠다고 신청 않하면 교회에서 강제로 임명하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제직을 안 하는 분들도 있는데 결국은 제직생활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결국 교회생활이라는 것은 그렇게 신앙의 연조가 깊어가면서 교회의 제직이 되고 교회에 좀 더 깊이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직의 영적생활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영적생활이라는 것은 신령한 생활입니다. 즉, 밥먹고 교회오고 예배드리고 교제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사랑이 동기이게 하는 그런 종류의 그런 내적인 신령한 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마음에 새겨야 될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공교롭게 오늘 설교가 사실 제직에서 첫 번째 시간에 가장 강조해서 해야되는 이야기를 낮 예배시간에 거기다 설교를 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는 교회를 온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초창기에는 거의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 열린교회에서 예배를 경험하고 열린교회의 교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열린교회에 와서 예배의 감격을 경험하고 ‘이 교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열린교회를 등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 그것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참된 예배자가 되겠다는 것인데 여러분도 벌써 열린교회를 몇 년 있으면 그런 것을 경험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예배의 감격에 푹 빠지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다른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신앙의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참된 예배자로서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좀 지나면서 예배에 미끄러져도 또 다른 사람은 그 예배에서 참된 예배자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와서 예배의 감격에 빠졌을 때도 예전에 온 사람들은 예배의 감격에 못 빠지고 미끄러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 교회 20년이상 교회생활을 했던 권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나 이런 분들을 보시면 변함없이 좋은 예배자로 수십년 동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예배에서 은혜를 받고 그 예배로 교회를 섬기고 그리고 예전보다 훨씬 더 우아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증거입니다.
구체적으로 참된 예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배를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심자리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가 주일에 중심이 되도록 주일에 드리는 이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배를 중심에 놓은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예배에 대한 준비는 토요일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길게 말하면 6일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고 짧게 말하면 토요일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말씀을 가까이하고 예배당에는 일찍 나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본받지 마시고 최소한 15분전에는 예배당에 도착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와서 조용히 기도하면서 예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일주일동안 살면서 항상 예배를 위해서 모든 기도에 빼놓지 않고 ‘주일예배에서 제가 주님을 만나게 해주십쇼. 그리고 이 예배가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게 해 주십쇼’ 그리고 설교자를 위해 기도하고 예배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자리가 다 지정되어 있으니까 강요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앞자리에 앉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기 바랍니다. 기도와 찬송 이 모든 것들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양과 예배의 행위과 되도록 모든 정성을 기울여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열린교회의 예배는 자유롭고 단순한 것이 특징입니다. 여러분이 다녀 보시면서 우리 교회처럼 예배순서가 이렇게 간단한 교회를 만나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성가대 찬양도 없습니다. 성가대가 나쁘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의 예배정신을 볼 때 이 성가대는 신약시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저 후대에 공연문화가 생겨나오면서 근대에 와서 17~18세기 이 쪽에 와서 생긴 것입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악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가대를 하는 교회를 우리는 절대 비난하지는 않지만 ‘성가대가 없이 모든 교인이 찬양을 드리는 이 예배의 형식이 성경적이고 역사적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 교회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에 항상 있는데 예배시간에 없는 것, 주보입니다. 주보는 우리는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모든 예배 순서는 예배자의 인도를 따라서 차례대로 진행하면 되는 것이고 주보를 가져 놓으면 피해가 무엇이냐 하면 설교시간에 자꾸 주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주보에 볼 것이 없습니다. 감사헌금이 얼마 들어왔는지, 총액은 얼마이고 낸 사람이 몇명인지 곱하기 나누기 해보고 한 사람 앞에 얼마씩 냈나 그 다음에 누구의 돌인가 결혼하나 이런 소식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에 다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예배에서는 일체 없습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가장 중요한 시간은 설교를 듣는 시간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보니까, 어느정도 훈련이 되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설교시간의 자세는 기본적으로 부동자세입니다. 부동자세인데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는 상태에서 부동자세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부동자세를 강조하냐 하면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동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기계적인 것은 아니고 어깨를 펼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지만 시선은 항상 설교자를 주목하고 시종일관 설교를 듣는 자세가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자세로 설교를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서스펜스 드라마가 있습니다. 잠깐만 눈을 딴 데로 돌리면 스토리를 잘 모르는 서스펜스 드라마를 볼 때는 주위에 누가 있는 것도 시끄럽고 집중을 해서 그 대사 하나하나가 어떻게 극을 전개해 가는지를 주목하면서 듣게 되기 때문에 열린교회에서 기본적인 설교를 듣는 태도는 그런 태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자가 다양한 스타일이 있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논리적인 설교를 하려고 하는 설교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다시 이해가 되고 언제 외출했다가 돌아와도 다 이해가 되는 그런 설교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정신을 바짝차리고 앉아서 집중해서 설교를 들어도 그 논리적인 줄거리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쉽게 하면 되지 않느냐 그러는데, 이렇게 비유를 생각하면 됩니다. 건물을 단층으로 지으려면 크기가 다르고 각도가 잘 맞지 않는 그런 벽돌을 쌓아도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10층, 20층 집을 짓는다고 하면 그 벽돌이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출하는 배를 보면 컨테이너가 실립니다. 사람들은 ‘컨테이너가 그냥 툭툭툭 두들겨서 네모난 박스 만드는데 그까짓게 뭐 대단한 것이냐’ 이러는데 그것이 정밀공업에 들어갑니다. 컨테이너 하나만 배에 올려놓고 가면 상관이 없는데 수십층을 쌓습니다. 큰 배에는 수 천개 혹은 만개 이상이 들어갑니다. 그 일을 하던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컨테이너를 만들어서 측정을 해서 2mm 차이가 나면 파기한다고 합니다. 파기하든지 다른 용도로 쓰지 배에는 싫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에 2mm 차이가 나면 이것이 10층을 쌓아 올리면 2cm 차이가 나고 그러면 풍랑에 흔들리면서 이것이 쓰러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단층짜리 초가집을 지으려고 온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분들은 제가 생각하는 목회는 높게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웅장한 건축을 하듯이 신앙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열린교회 교인 중 교리반을 통과한 사람은 여러분들은 없겠지만 ‘스튜데오 에르고 숨’ ‘나는 공부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열린교회 표어입니다. 그래서 오면 제일 먼저 설교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정신을 집중해서 듣고 그 설교를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은 작은 노트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작은 노트나 스프링식으로 끼어 쓸 수 있는 메모지 같은 것을 준비합니다. 핸드폰을 별로 좋지 않습니다. 펴면 다른 것들이 나오기 때문에 설교자나 다른 사람들이 예배시간에 핸드폰을 검색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고, 메모지 같은 것이나 아주 성경책 갈피에 들어갈 수 있는 얇은 노트 같은 것을 준비해서 날짜를 쓰고 설교 제목을 쓰고 설교를 처음부터 와서 계속 필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강의실이나 하는 것이지 예배시간에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저 말씀은 잊어버리면 안되겠다. 꼭 기억해야 되겠다.’ 라는 것을 간단간단하게 메모하는 일은 권장할만 합니다. 그것도 너무 많으면 안됩니다. 한 번 설교 듣는 동안에 한 서너번 정도 메모하는 정도, ‘저것은 꼭 잊어버릴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오늘 영광의 세가지가 있는데 본체적인 영광, 발산적인 영광, 효과적인 영광’ 잊어버리기 쉬운데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메모를 해 놓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대신 주위를 흩트리지 않고 집중해서 설교를 들으면서 설교를 끊임없이 이해하려고 하는 이 정신작용이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은혜는 이해를 통해서 온다. 그것이 이성의 이해는 논리를 가지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심정의 이해는 마음을 열고 공감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논리의 이해든 심정의 이해든 이해가 마음에 와서 닿을 때에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태도를 아주 주목해 주셔야 합니다. 주위에 예배를 드리면서 산만하고 설교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종류인데 하나는 주님을 깊이 못 만났기 때문에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아주 산만한 사람은 신천지입니다. 그 사람들은 교육받기를 의도적으로 설교 시간에 절대 집중하지 말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예배의 태도를 보면서 신천지를 가려내는 것도 굉장히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예배시간에 산만하고 심지어 자고 그러면 신천지로 오해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라고 제직이 됐는데 예배위원이 와서 ‘혹시 신천지세요?’라고 물어보면 가문의 수치이지 않습니까? 아주 어려운 훈련이 아닙니다. 똑바로 앉아서 눈길을 설교자에게서 떼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교에 집중하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여기에 다 뜨고 예배 끝나고 들어가보면 요약집까지 다 뜹니다. 이렇게 서비스해주는 교회가 없습니다. 요약집까지 다 뜨고 조금 있으면 공과교재로 나오고 조금 더 있으면 책이 나오고 방송이 나옵니다. 손만 뻗치면 들어올 수 있는 것들이 수없이 있고 6800편이 넘는 설교가 가지런히 홈페이지에 다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디도스 공격을 이틀 전에 받았는데 그래서 다 부서졌는데 이틀만에 다 복구했습니다. 우리만의 다 대책이 있습니다. 그렇게 열린교회에서는 말씀생활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배, 설교,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예배자가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프라인으로 와서 교육도 받고 있는데 올해에서부터는 모든 중직자 교육까지 절대로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투표한 것 소용없이 이번은 물 건너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직정도 될 정도 되었으면 예배자로서는 나무랄데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사가 전화해서는 ‘집사님, 왜 요새 교회를 안 나오세요?’ 이게 말이 됩니까? 교회에 안 나올 사람이면 제직을 받지 말아야 되고, 제직을 받았으면 의무감이라도 예배생활을 잘 해야지 교역자가 전화 걸어서 “집사님, 왜 교회 안 다니세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여러분들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진짜 내가 이 교회에 제직이 될 의욕이 있는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예배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생활입니다. 내가 예배 다음에 기도생활을 꼽는 이유는 설교의 은혜를 많이 받고 나면 공부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 중에는 이혼을 하는 사람이 있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돌아가시는 하용조 목사님이 나에게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둘이 부부가 손잡고 성경공부 나온 사람들 중에는 이혼한 사람들이 있는데 둘이 손잡고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이혼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예배시간에 이만큼 은혜를 받고 가자마자 땅에 묻어두고 일주일을 지내는 사람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겠습니까? 깨달은 것은 반밖에 안 되는 데 그 반을 모두 활용해서 일주일동안 열심히 장사하는 사람들이 장사하듯이 달란트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에서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아무리 그 목사님이 공부를 못하고 모든 것이 부족해 보여도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을 보여주고 기도합시다할 때 모든 교인들이 뜨겁게 기도할 수 있는 교회의 목사님을 나는 무릎을 꿇고 존경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무겁고 현실이 힘겹다 기도 안 하는 사람들 물어보면 기도 안 하는 사람들 물어보면 기도 못하는 이유가 수천 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유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에 능히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린교회 제직이 되면서 ‘내가 집사가 됐다. 이때가지 성도, 성도 그랬는데 그래도 집사 소리’ 그것 하지 마시고 성도라고 부른 듯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러니까 제직이 되는 것과 함께 기도의 결심문을 쓰기 바랍니다. ‘나는 열린교회 제직이 되면서 기도의 삶을 살아야 되겠다.’ 그 각오를 아주 분명하게 하고 기도할 시간과 장소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 시간과 그 약속한 장소를 지켜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으며 간절히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셔야 됩니다.
여러분은 많이 달라진 시대에 온 것입니다. 오늘 설교하면 두시간 후면 인터넷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안됐습니다. 그러면 설교 테이프를 가지고 다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몇 년 전에 조사한 결과 응답한 사람들의 3분의 1일 매주 한 편이상의 또다른 설교를 듣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 당시에는 돈을 주고 테이프를 사야 됐습니다. 열린교회 교인이 80명 밖에 안 모일 때 지하실에서 1년에 1억원어치 테이프를 팔았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말씀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너무너무 말씀을 사모해서 천 개, 이천 개, 삼천 개 들은 사람들도 교회를 떠나고 신앙이 미끄러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분들의 공통점은 설교의 은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불씨를 꺼드리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존경받으면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기도가 있지 않으면 인간의 영혼은 말씀에 금방 싫증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렬한 기도생활을 하기로 다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열린교회 제직이다. 나는 열심히 기도한다.’ 그 각오를 세우고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10분도 못하면서 ‘기념이다. 두 시간’ 이렇게 약속하지 말고 10분밖에 못하면 조금 힘을 내어서 ‘내가 하루에 최소한 20분 이상 기도를 하겠다. 연말까지 해보고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내가 30분으로 늘리겠다. 기도하는 사람도 내 가족, 내 자녀, 여기에서 범위를 넓혀서 교외와 일꾼들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도의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에게 21년 들어야할 기도에 대한 시리즈가 있는데 그런 것을 들으면서 도전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 열렬히 매달리면서 기도생활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발 교회를 떠돌아다니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한 곳에 있어야 거목이 되지 2년마다 한 번씩 옮겨 심는데 결국 죽어버리거나 아니면 분재가 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성경과 신학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이해를 하는데 신학공부는 목사될 사람이나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 여기서 이야기하는 신학이라는 의미는 목사가 되기 위해 학교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으로써의 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신학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사는 모든 것이 신학인 것입니다. 그 신학을 믿음으로 표현했을 때 우리가 신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은 태어난 모든 인간이 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학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수영을 해 보셨잖습니까? 나는 수영을 썩 잘하지 못하는 데, 수영을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발이 땅에 안 닿았을 때 그 때에는 그 공포는 수영 못하는 사람만 압니다. 어마어마하게 무섭습니다. 더군다나 물이 퍼런데 갑자기 발이 땅에 안 닿았을 때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학은 그 발을 땅에 딛는 행위가 신학입니다. 왜 내가 여기 사는가? 왜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고 마지막에 나의 종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죽음이 다가와도 웃으면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한 모든 답을 내려주는 것이 신학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만 읽어서는 이 대답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지만 각기 저마다 다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에 성경을 부인하는 이단은 별로 없습니다. 그것도 이단도 아니고 이교입니다. 다들 성경을 인정하면서도 그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혼선을 일으키면서 결국은 믿음생활을 하긴 하는데 발은 땅에 닿지 않아서 예수를 믿어도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고 세상 사랑하고 세상에 애착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깊이가 없는 신앙생활은 이제 열린교회 제직이 되면서 끝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간증을 썼습니다. 열린신문 읽어보면 ‘내가 만난 하나님, 열린교회에서 만난 하나님’ 간증 시리즈가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보면 여러분들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중에 한 지체가 간증을 했습니다. ‘내가 예전의 교회에서도 신앙생활을 했고, 열린교회에서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비교를 해보면 그 때에도 신앙이 있었고 지금도 신앙이 있었는데 그 때는 트로트 신앙이었고 열린교회에서는 클래식 신앙이 됐습니다.’ 그 사람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예전 신앙생활을 열심도 있고 하나님 사랑했지만 체계가 없는 신앙생활이었다가 여기와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비유를 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해야 될 일은 책을 읽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중구난방 책을 읽으면 책을 안 읽은 것만큼 만도 못하게 위험한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독서를 잘못하다가 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도 나는 만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 빌려가는 것입니다. 저기에 있는 책들은 제가 다 신학적으로 검토를 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신앙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책들로 갖춰져 있고 교인 3300명 밖에 장년이 안모이는 교회가 저렇게 도서관을 만들어 놓고 사서까지 거기에 앉혀서 풀타임으로 그 자리에 앉아서 성도들에게 책을 대출해주고 성도들과 책에 대한 상담을 해주는 교회는 우리 교회밖에 없습니다. 몇 만 명 되는 교회에는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저것을 우리들이 이사올 때서부터 교인 천명밖에 안될 때부터 하던 지적인 전통입니다. 저 공간을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고, 교회의 중직자들을 투표할 때에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기록까지 검토를 합니다. 지식과 담쌓은 사람들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책들이 있는데 중구난방으로 읽지 말고 담임목사님인 제 책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잘 모르겠는데 80권~110권 사이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 교재같은 것들을 뺀다고 해도 80권 정도는 될텐데 일년에 6권씩 읽어도 그것 다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주제별로도 잘 분류되어 있으니까 기도, 교회, 신학, 성경, 역사 등등 해서 차근차근히 책을 읽어가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 세가지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주기도문, 기모마스터 이렇게 세권의 책입니다. 주기도문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은 여러분들이 모두 다 이해할 수 있는 책이면 안 읽어도 되는 책입니다. 조금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어야지만 배우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의 지평을 넓혀가기 위해서 책을 부지런히 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열린교회 제직이 되는 것과 함께 세 가지는 언제 물어봐도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 읽고 있으시죠?’하고 물어볼 때 ‘출애굽기 2장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되고,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볼 때 ‘우리 구역식구 아무개가 병들었는데 낫기를 원합니다.’ ‘책을 무엇을 읽고 있죠?’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34쪽을 읽는 중입니다.’ 이 세 가지의 대답, 항상 성경, 기도, 책 이 세 가지가 자기 몸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됩니다. 이게 열린교회 교인입니다. 물론 열린교회 교인도 세 가지 다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항상 신앙생활 같지가 않습니다. 낙엽처럼 굴러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활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신학공부를 하게 되면 너무너무 재밌습니다. 하기 싫어도 일년에 적으면 3권, 많으면 4권을 공부를 해야 되고, 10년을 하면 40권을 공부한 것이 되고, 20년 열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80권을 공부를 한 것입니다. 그 중에는 신학대학원생들도 꽤 어려워하는 책까지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 분들은 상당한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불과 몇 해 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교수 한 분이 오셨는데 성도들에게 강의를 하시면서 너무너무 미안해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미안하다고 이해를 못 하실텐데 이렇게 이야기해서 미안하다고 그랬는데 강의가 끝나고 저기 노인 권사님 두 분이 저를 만나고서는 ‘목사님, 저 교수님은 정말 이상해요. 뭐가 우리한테 미안하다는 거죠. 모를 이야기 하나 없던데 무엇을 그렇게 미안해하시면서 강의를 하냐고’ 철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살아가면서 인간과 하나님과 세계를 보는 안목들이 점점 넓어져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제 책을 모두 완독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제 책을 모두 완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첫 번째 사람에게 큰 상을 주겠습니다. ‘모두 읽었습니다.’라고 할 때 제가 상을 주겠습니다. 설교를 잘 듣고 은혜를 받으면 책이 굉장히 쉽게 읽힙니다. 책을 읽고 이해를 하면 설교가 속속 들어옵니다. 아주 발전하면 설교 한 편을 듣고 설교를 반복해보라고 하면 설교를 정확하게 반복해서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죄와 은혜의 지배라는 책 보셨습니까? 그것 우리 교회에 목차만 놓고 그 내용을 자유롭게 강의할 수 있는 분이 400명 정도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꿈을 가지고 공부를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느낌이 드나 하면 맨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는 고기잡이 배를 타 보셨습니까? 한 4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그런 배 있습니다. 바다에 나가면 미친듯이 난리를 치잖습니까? 멀미나잖습니까? 갑자기 군함을 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큰 여객선을 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요번에 울릉도를 한 번도 못 가봐서 가는 것이 제 버킷리스트입니다. 그런데 배를 그렇게 탈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3시간 반에서 4시간을 갔는데 멀미 때문에 못할 것 같았는데 이번에 2만톤짜리 배가 뗬다고 합니다. 그것은 진짜 편합니다. 풍랑이 왠만큼 불어도 그냥 갑니다. 파도가 조금 쳐서는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신앙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견고한 지식이 있을 때 열렬한 기도와 그것이 살아있는 그런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전도생활입니다. 우리 전도는 사실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열린교회에서 한 12년 전에 앙케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열린교회 처음 전도되어서 예수를 믿는데 여러분 생각에는 우리 교회가 설교가 좀 쉽지 않고 다른 교회에서 열린교회를 간다고 하니까 가지 말라고 하더랍니다. 공부를 너무 시켜서 너처럼 늙은 사람이 가면 못 따라 간다고 그러고 더 재밌는 이야기는 이과출신은 그 교회를 가면 안 된다 문과출신이 가야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사실은 그 해에 조사를 해보니까 전도된 사람의 35%가 불신자 상태에서 열린교회에 전도된 사람들입니다. 너무 놀라운 것입니다. 이 교회가 90% 수평이동하는 교회라고 생각하시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도된 사람을 조사했는데 ‘누가 전도를 했느냐’ 그랬더니 놀랍게도 70%가 열린교회 등록한지 1년 미만된 사람들이 전도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무엇을 함의하는지 아십니까? 예배의 감격을 누리고 은혜를 충만히 받으니까 그 때에 비로소 주위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은혜 안 받으면 자기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나만 힘든데’ ‘나는 너무 좋아, 나는 행복해, 따른 어떻게 하던지 무슨 상관이 있어. 내 이속만 챙기면 되는거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은혜를 받으면 불행한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랑하는 사람은 있을 것 아닙니까?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 몇 사람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여러분들이 인연을 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내가 말하는 이 순간 눈을 돌려서 이렇게 스캔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힘들게 사지만 여러분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위로와 환대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놀라운 영적인 법칙이 있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환대해주면 내 외로움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나의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캔을 해보는 것입니다. 고통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따뜻하게 편지를 써 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나도 괴로운 일이 많지만 쟤도 진짜 힘들겠다.’ 이러고 와서 밥 한끼 사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어느 자매가 기도를 막 하는데 옛날에 같은 교회에 있던 언니 생각이 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도 혹시 성령의 감동인가 하고 전화를 따르릉 걸었더니 몇 년만에 통화한 선배가 막 울더랍니다. 그러니까 놀랄 것 아닙니까? ‘왜 그래, 왜 그래?’ 그러니까 ‘얘야, 나 지금 전화받기 직전에 화장실에서 내 동맥의 칼을 얹고 있었어.’ 전화벨이 가지 않았으면 그 날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이 죽어야 되겠다고 동맥에 칼을 될 정도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수많은 시간들을 겪은 것입니다. 한 번에 ‘에이씨’ 하고 자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수없이 반복해서 생각하고 반복해서 생각하고 그러다가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징후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을 스캔해 보는 것입니다.
‘교인을 늘려야 되겠다.’ 열린교회는 한번도 올해의 성장목표, 금년의 표어 같은 것을 28년동안 정해본 적이 없습니다. 금년의 표어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다 자기네들이 지어낸 것입니다. 교회에는 그런 것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올해는 선교하는 교회, 내년에는 구제하는 교회, 그런 표어 한 번도 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몇 명이 목표, 그런 것 건 적도 없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교인을 많이 못 모았기 때문에 교역자를 내보낸 적도 없습니다. 물론 많이 부흥시키는 교역자는 사랑을 받겠지만 그렇다고해서 교역자를 멸시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예수없이 사는 것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여러분들이 누군가가 그렇게 해줘야 되는 가엾은 사람인 것입니다. 스캔을 해보면 한꺼번에 여러 명을 찾아서 하면 좋겠지만 찾아서 스캔에 걸리는 한 사람을 딱 놓고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따뜻하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게 지내냐? 한 번 만나서 밥 한 번 먹자.’ 그러고는 열린교회에서 은혜받은 이야기를 막 퍼 붇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신음소리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대신 여러분들이 얼마나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해주는데 죽을 때까지 예수를 안 믿어도 나는 기쁨으로 봉사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제가 요새 이름붙인 ‘환대전도’입니다. 환대만 하다 끝나도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제직이 된 기념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제직교육 받으면서 전도대상자를 적어 냈습니다. 요새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내서 그 사람을 놓고 계속 기도하면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인지 생각해 봅시다. 전도생활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평소에 남을 환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인데 봉사생활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지금 아주 편안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 것입니다. 와서 깨끗이 아침에 청소했고, 온도가 지금 최적인데 이것을 조절하고, 여러분들이 코로나로써 교회를 안 나오는 동안에 수많은 일꾼들이 매일매일 교회를 색칠하고 닦고, 언제 교인들이 나올지 모르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열린교회 나왔을 때 ‘왜 저렇게 지저분해, 저렇게 더러워, 정돈도 안되어 있고 교회에 발 들여 놓기가 싫어’ 그런 때가 있었습니까? 어느 교인 한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자마다 바로 이 교회에 등록하겠다고 하더랍니다. ‘아니 어떻게 뭔가 결심하고 오셨냐?’ 그러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교회를 다녀볼까 하고 칼빈파크 쪽으로 들어왔는데 마당을 보는 순간 등록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왜 그랬냐고 하니까 ‘너무 교회가 정결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적어도 이런 교회라면 내 영혼을 내팽개치지않고 돌보아 줄 것이다’라는 확신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든지 여러분들이 불편한 것들을 하소연할 수 있는 통로가 다 열려 있고, 즉각즉각 답을 해줍니다. 불편한 것들을 못하는 것도 있지만, 최대한 하려고 애를 씁니다. 교회학교 같은 경우에는 6개월에 한 번씩, 짧으면 4개월에 한 번씩, 전체 시찰을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고치라는 이야기까지 상세하게 다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를 관리하는데 결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봉사로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데 와서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무위도식입니까? 제가 예배시간에 은혜받고 열심히 기도하고 책도 열심히 읽는데 왜 무위도식입니까?’ 거기에서 끝나면 무위도식입니다. 무엇을 위한 예배입니까? 하나님 섬기기 위한 예배입니다. 무엇을 위한 기도입니까? 사람을 섬기기 위한 기도입니다. 무엇을 위한 신학공부입니까? 세상 사람들과 함께 섬기면서 살아가기 위한 공부이지 그것이 신선처럼 자기가 혼자 조용히 깨끗한 장소에서 혼자 먹고 즐기고 입기 위해서 그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름모를 성도들의 수많은 헌신 속에서 이 교회가 지어지고 어떤 사람은 집도 팔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모아 놓은 모든 퇴직금을 교회의 건축헌금으로 다 해버리고, 여러분들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헌신 속에서 지금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미래에 올 어떤 사람들에게 그렇게 희생한 돌멩이 하나를 놓음으로써 여러분들이 진정한 이 교회의 제직이 되는 것 아닙니까? 오셔서 2년 3년 4년 다니신 적 있는 사람들이지만 제가 헌금 설교하는 것 보신 적 있습니까? 헌금설교 못해서가 아니라 하는 적도 있습니다. 예배시리즈 할 때 합니다. 이번에도 할지도 모릅니다.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아예 코로나 사태에 십일조가 코로나하기 전 해보다 코로나난 후에 십일조가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재정을 제직들이 자기가 벌면 정직하게 십일조를 하는 것이 누가 시키지도 않고 감독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강요하겠습니까? 이렇게 하면서 누군가가 봉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12월이 되면 봉사리스트가 쫙 올라옵니다. 교회 청소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녹취 프로그램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문학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고 다듬는 것까지 수많은 섬김의 자리가 나옵니다. 그래서 네가 지입니다. ‘성경 무엇을 읽고 있냐?’ ‘출애굽기 2장입니다.’ ‘기도제목이 무엇이냐?’ ‘우리 지체 아무개가 아픕니다.’ ‘책은 무엇을 읽냐?’ ‘교회와 사랑 34페이지입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직무가 무엇이냐?’ ‘저는 열린공간 칼빈파크를 매주일 아침마다 청소하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를 확고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무위도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위도식하면 결국 그 교회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무위도식하지 않고 여러분들이 일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에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덕을 쌓는 생활입니다. 덕을 쌓는다는 것은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 덕의 생활의 가장 기초입니다. 쉬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몸에 베인 일이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다음에 손을 씻는데 그러면 아무리 시설을 잘 해 놓아도 물이 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휴지를 가지고 제 손을 닦고 세면대를 깨끗이 닦고 오는 것이 몸에 벤 습관입니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에 오는 사람은 깨끗하게 건조된 그 세면대에서 기분 좋게 손을 닦는 것입니다. 갈 때 자신도 그렇게 해 놓고 가면 그 세면대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손을 씻고 그 씻은 휴지를 가지고 세면대를 한 번 닦는 것을 가지고 불행한 일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개념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가정교육이 덜 됐기 때문이고, 교인들이 밖에 나가서 그렇게 사는 것은 교회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를 예수 믿게 만든 이유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예수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달라야 하지 않습니까?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줬다더라, 그래서 자기는 노숙한다더라. 그런 극단적인 것 말고 자기의 이익을 자기가 편한대로 살지 않고 남을 배려하면서 사는 삶, 그것이 훌륭한 것입니다.
내년에는 여러분들이 힘들 것 같습니다. 위드 코로나 때문에. 후년에는 여러분도 아마 여름수련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를 저는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역대 수련회를 장년부, 청년부가 같이 하다가 너무 많아서 할 수 없어서 반으로 나눠서 청년부는 청년부대로, 장년부는 장년부대로 합니다. 그런데 20년 넘게 쓰는 우리의 거의 전용 수양관같이 쓰는 곳이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 수양관입니다. 사랑의 교회에서는 최고로 많이 모일 때 2000명도 모여서 우리가 거기서 수련회를 했습니다. 거기가 원래 850명밖에 못 들어가는 시설입니다. 그런데 모이고 코로나 나기 직전에도 장년만 1200명만 들어가는 예배당에 꽉 차서 그렇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너무 재밌는게 그런 시설이 흔치 않으니까 그 경쟁이 굉장히 치열할텐데 항상 우리에게 빌려줍니다. 자기네 교회가 아닌 한, 혹은 자기네 교회라도 어떻게하든지 날짜를 맞춰서 우리한테 빌려줍니다. 그것이 20여년 넘게 왔습니다. 우리가 이미 당신네 교회에 빌려줄 수 없습니다라고 해서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편의를 봐줘서 고맙습니다.’ 그랬더니 수양관 관계자가 ‘저희가 열린교회에 항상 이 수양관을 빌려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거기는 직원들이 많이 수고를 해서 올 때 좀 팁도 좀 드리고 했지만 일절 받지를 않았습니다. ‘왜 그래요?’ 하니까 수백팀을 받는데 열린교회만큼 이 수양관을 성숙하게 사용하는 팀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열린교회팀을 빌려주면 청소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깨끗합니다. 수도가랑에 교인들이 머리 감다가 남은 머리카락도 없다고 합니다. 그것을 깨끗이 다 정리해서 수양관에 누를 안 끼치고 오는 것입니다. 의자같은 것 막 나르다가 벽을 긁어 놓고 그럽니다. 그것이 보통 건물주로서는 스트레스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품격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에서 내가 여기에 이런 자세로 앉아 있으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배려하는 것입니다. 내가 책을 읽고 가면 누군가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나의 이런 행동 때문에 남이 방해받지 않을까? 그것을 배려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공동체로써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불행에 처하고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해주고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전부입니다.
이제 마지막 한가지, 여러분 중에서 전에 있던 교회를 금년에 옮겼는데 금년에 제직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최소한 일년, 최소한 이년은 다녀야 하고, 교회생활과 모든 것이 입증이 되어야지만 여러분들에게 ‘제직이 되시겠습니까?’ 하고 요청이 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최소한 이년전쯤은 교회를 떠난 분들일 것입니다. 부산에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올라와서 ‘목사님, 저희가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왔거나 아니면 올라오면서 ‘목사님, 저희가 이만저만해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가까운 열린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고 교회를 옮긴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분들은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자유로우셔도 됩니다. 그런데 말없이 교회를 떠난 사람, 그 교회에서 최소한 집사까지 되었는데 그리고 교회도 크지도 않은 교회인데 어느 날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별로 안 좋은 사연이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교회에서 너무 기쁘게 생활을 하다가 남편이 갑자기 서울로 발령이 나서 청주에서 이사를 오게 되면 담임목사님에게 이야기를 안 드리겠습니까? 그런데 인사를 안하고 왔을 때에는 무엇인가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마음에 안 들었거나 교회가 여러분들에게 섭섭하게 했거나 목회자에나 실망을 했거나 목회자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하는 무언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교회를 옮긴 것 아닙니까? 그런 경우에 우리 교회에서 항존직이라고 아십니까? 투표해서 된 사람들입니다. 권사, 안수집사. 이런 분들은 옮길 때 이명증서를 해 가지고 와야 합니다. 목사님이 ‘이 사람은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명했습니다.’ 해야 합니다. 이제는 확인까지 합니다. ‘이명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권사님이 안수집사님이 왜 우리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까? 치리 받았습니까? 교회에서 무엇인가 부도덕한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다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그 자격이 안되면 교육받으라고 연락이 안 갑니다. 여러분들은 집사니까, 혹은 집사가 아닌 평신도 때이니까 그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생활에 있어서 기본적인 에티켓이 있습니다.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잘못이 없는데 교회가 여러분들에게 부당하게 상처를 주어서 여러분들이 그 교회를 도저히 다닐 수가 없어서 떠나 왔습니다. 이제는 지난 간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찾아가서 ‘목사님, 제가 몇 년 전에는 목사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리고 떠났습니다.’ 아니면 솔직히 말해서 ‘솔직히 그 때에는 시험이 들어서 제가 떠났는데 이제 제 영혼을 의탁할 수 있는 교회가 생겼습니다. 이번에 열린교회에 제직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목사님 가르침에 감사드리면 제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에 있던 교회하고 일단락을 짓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적인 양심적으로도 하나님 앞에 깨끗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서 새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도 자신이 없으면 편지를 쓰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편지에 약합니다. 그리고 선물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선물은 더 약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푼 후에 만나서 ‘장로님, 제가 불시에 교회를 떠나서 죄송합니다. 제가 열린교회를 배우고 보니까 성도의 참된 도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미리 이야기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제직을 받는 것과 함께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티끌만큼이라도 ‘나 이 교회 마음에 안 들면 내년이라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잠수타고 그러고 난 사라질 수 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제직이 되시면 안 됩니다. 그것은 육적행동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교회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평생 살면서 그런 식으로 손님으로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틀렸기 때문에 제가 떠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반성을 하면서 그때서 참고 이해했더라면 좋은 교회 생활을 할 수도 있잖습니까? ‘이런 점에서 제가 부족했습니다. 저를 좀 널리 이해 좀 해 주십시오. 그런데 나중에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로님, 목사님, 사모님, 마음 아프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제 교회를 위해서 기도도 하고 열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겠습니다.’ 그렇게 써서 보냅니다.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버리고 새 교회에서 새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목회를 해보면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 옛날에 그렇게 교회를 떠난 사람이 이 교회에서 똑같이 그렇게 하고 떠납니다. 그리고 다음 교회가서 똑같이 똑같은 일을 합니다. 이것은 신앙을 떠나서 인간 사는 도의로 볼 때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헤어질 수도 있는데 헤어지면 아주 쿨하고 젠틀하게 헤어져야지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잘못한 것이 없으면 이런 이런 사정 때문에 목회자에게 교인들에게 마음을 쓰게 했습니다. 깨끗하게 하고 마음의 자유를 가지고 ‘아 이제는 내가 이런 식으로 육적인 교회 생활을 이전의 교회로 끝내는 것이고, 이제부터는 내가 이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때 갑자기 이 교회가 내 교회가 되고 쉽게 떠날 수 없는 교회라는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