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2._공동의회
피택임직자교육
녹취자: 백지영
제일 좋은 것은 전도를 해서 자기 교회 데리고 오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래야지만 눈에 보이니까 돌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게 제일 좋은 데, 안 되면 이제 주변 교회에 보내는데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하나는, 아무리 멀어도 은혜를 받은 게 크면 사람들이 옵니다. 우리 교회는 평택부터 시작을 해서 유성, 대전, 창원에서 권사님 5년 동안 계속 출석하시고, 지금 코로나라서 좀 뜸하신데 가끔 나오시는데, 심지어 한때는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매주. 그러니까 은혜가 거리를 이긴다 이렇게 봅니다.
두 번째 뭐냐 하면, 비록 내가 거기에 없어도 그 교회가 워낙 구령의 열정이 있고 그러면 그것을 받아서라도 잘 관리해서 자기 교회출석하게 하는데, 그런데 그것을 갖다가 교인을 줘도 못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될 것 같으면 남이 전도해서 교회가 되지요. 그런데 그게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웃리치 가보면 알지만, 아웃리치 갈 때 교회당 가득 채워놓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유지하는 교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지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경우마다 다르니까, 구령의 열정이 있고 그런 교회에 붙여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중요한 것은 결국 어느 교회에 가도 사람이 인정에 끌려서 교회 나가는 것은 한정이 있습니다. 그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만나야지요. 그러기에 가장 적합한 교회를 소개시켜 주고, 또 그에게 신앙이 심겨주기를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제가 보기에는 집사님이 뭘 잘못했다기보다는 광릉에 오신 분은 아주 은혜롭게 잘 된 케이스이고, 자기네 교회에서 그렇게 섬기시니까,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도구역을 이 근처로 옮기시던지. 그 다음 우리 집사님.(10.02~12.40)
사실은 목회를 하다보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이 굉장히 건강하신 분이었는데 갑자기 두 분 다 돌아가셨는데 알고 보니까 커다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아이가 수련회가서 물에 빠져 죽어버렸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까? 그러면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지지요. 그런데 사실은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위로할 필요가 없이 본인이 이미 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해석하고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목양을 하면서도 항상 겸손해져야 되는 게 뭐냐면, 우리가 말로 설명하면 사람들이 모두 다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그렇게 과신하지 말아야 하고, 또 사람들이 그런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말이 없어도 함께 손을 잡고 울어주는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위로를 받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설득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이겨내는 것이다 그래요.(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표현을 잘 씁니다. 뭐냐 하면, 모든 죽음 중에 애달프지 않은 죽음이 없고 뜻밖의 죽음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삶 이편에서 죽음 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필요한 교통수단이 많이 있는데, 그게 사고든지 질병이든지 대부분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마지막에는 병명이 떨어지지 않는 죽음은 없습니다. 추락했던지 아니면 노환으로 돌아가셨던지, 또 기도가 막히든지 뭐든지 있는 것입니다. 제일 어리석은 게 너무 사랑하는 부부가 같은 날 같은 때에 죽게 해달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고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기도도 드릴만한 기도가 아닙니다. 사고가 아니면 그렇게 죽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위로를 합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생애 이편에서 저 세상으로 우리를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다, 그런데 이게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어떤 사람은 배를 타고가고 어떤 사람은 다리를 건너가고 하는 차이이지 모두 건너가야 된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고로 나타나고 질병으로 나타나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필이면 그 시간에 왜 아버지가 떨어졌고 딸은 또 그 전날 왜 코로나를 받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수학공식 같은 답을 원한다면 우리가 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모든 것들이 이론적으로 해석이 된다면 우리가 사실만 알면 되지 믿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들이 봐야 될 것은,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해답을 못 찾을지라도, 죽을 때까지 그 해답을 못 찾을지라도 그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 가장 좋은 방법으로 결국은 나의 이 불행과 고통을 하나님이 가장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셔서 결국은 내 인생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신뢰, 그것을 갖는 기회로 삼아주셔야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목회하다 보면 사람이 목회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게 느껴지는 게 뭐냐 하면, 불행을 당했는데 위로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오히려 위로할 말을 못 찾았는데 자기가 어떻게 위로 받았는지를 다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성령께서 함께 해주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도 종종 겪지만, 어려운 일을 만나면 설명할 수 없는데 그 설명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을 확 다스리셔서, 그래서 그 슬픔이 고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살 수 있는 믿음의 기회로 바뀌게 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일을 만나면 제일 먼저 저는 그에게 평강을 주시도록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스스로에게 일깨워주셔서 결국 믿음으로 일어나게 하신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네. 어쨌든 여러분들은 임직하기 전까지 전도를 해야 될 테니까 한번은 돌파를 하시겠네요. 그렇지요? 그 어려운 감정들을. 또 우리 이성욱 집사님. (27.57~3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