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주권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행 1:24-26).
I. 본문해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이 강림하시기 직전 교회에서 행했던 한 가지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열 두 사도 중 한 사람, 곧 예수님을 버리고 배반하여 자결했던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를 뽑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속사 속에서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뽑으신 열 두 사도들의 수가 채워지는 것이 신약 교회가 이룩되는 것에 있어서 매우 요긴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열 두 지파, 그리고 신약의 열 두 사도, 그들 이러한 짝을 이룸으로써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구속의 역사를 이어갈 것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를 뽑는 이 일에 있어서 이들의 마음은 교회에 무슨 어른을 뽑아서 공경하기 위한 목적으로 명목상의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바로 앞에 보면 우리와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강림하고 나면 이들 모두 불타는 전도자들이 될 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사도는 이렇게 우리와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했으니 여기에서 우리는 넓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지만, 좁게는 자기 사도들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래서 보다 더 권위 있는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권위 있게 증거 할 그러한 사도의 반열의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하신 일이 하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하여야 할 사람이라고 했겠습니까. 그것은 십자가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유대인들의 이해에 의하면 저주를 받아 나무에 매달려 죽으셨는데 그분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셨다고 하는 것이요, 그렇게 부활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이 당신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하면 유대인의 거짓된 사상은 물론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대속적 의미까지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격을 제한하기를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중 하나를 세워,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과 함께 다니며 예수님의 생애를 직접 목격했던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을 뽑아 부활을 증거 하는 사도적 증인이 되게 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원래 사도는 예수님이 직접 선택하셔서 부르셨고, 이때 누구와도 의논하거나 대화하지 않으시고 직접 그들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께 예루살렘 교회를 목양하도록 위임을 받은 베드로 한 사람에 의해도 아니고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을 세우시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II. 일꾼을 세우시는 방법
그 방법의 첫째는 사람을 통하여 일꾼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A. 사람을 통해
(예화)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그 교회 후임으로 연세 드린 목사님이 부임을 하고나서 그리고 나서 기도를 많이 하신 후에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여러분들 중에 장로 하고 싶으신 분 있으면 오늘 밤 우리 사택으로 오십시오. 그랬더니 세 사람이 왔더래요. 무릎을 꿇고 나 이교회의 꼭 한번 장로가 되고 싶습니다. 목사님이 그럼 하시오, 그리고 각각 기도를 해주고 그리고 그 다음날 온 교회 앞에서 이 세분이 우리 교회 장로가 되었으니 여러분들 앞으로 장로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몇 달 있다가 임직식을 했다는 거예요. 나중에 우리 목사들이 모두 모여서 그 장로 모두 무효다. 그것은 예수님이나 그렇게 하셨던 것이지, 이제 우리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시고 이 교회의 시대를 이끌어 가심에 있어서는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인용하는 말이, 예수님이 사도를 세울 때 누구하고 의논하는 것 봤냐, 그것은 맞는 이야기이죠. 내가 예수님처럼 간절히 기도하고 세웠으니 군소리를 말아라. 그것은 자기가 예수님이라고 착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시비를 걸어도 소용없는 게, 그분들이 늙어서 다 은퇴를 한 후에 그게 잘못된 장로직분을 수여받은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대요. 교인들이 굉장히 순진하죠. 너무 착하고 순진하죠. 무효에요. 지금은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거예요. 권위로 말하자면, 베드로가 오늘날의 교회의 목회자만한 권위가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찍어서 임명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무리들 앞에 모두 고한 후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간절히 기도한 후에 사람들을 통해 제비를 뽑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소명은 주관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사람이 내가 선교사로 가도록 소명을 받았습니다. 혹은 내가 목회자가 되도록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누군가가 주관적으로 소명을 느꼈다면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왜냐 하면 결국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당신의 특별할 일꾼으로 부르실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직접 움직이셔서 부르시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자기가 하나님 앞에 선교사로, 혹은 목회자로 소명을 받았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죠.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자기 자신이 소명만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소명 확인의 방식이 아니에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소명의 객관성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목회자로 소명을 받았으면 그런데 그 소명이 자기만 인식할 수 있고, 누구도 인식해 줄 수 없는 소명이라면 그것은 입증되지 않은 소명이에요. 우리의 주관적인 감정과 확신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내가 이것이라고 굳게 믿고 정확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면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어요. 소명은 개인이 강력하게 내가 하나님의 이러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꼈다면 그리고 그것이 참되다면, 그 소명 자체가 영혼과 정신의 작용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변화가 내면의 세계 속에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변화가 있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사람 바깥으로 인격으로 그리고 실재의 실천적인 삶 속으로 흘러나왔을 것이라는 거죠. 그리고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 특별히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라는 지평 속에서 확인이 되어야지만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것이에요.
(예화) 목회의 소명을 놓고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목회자로 부르셨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 합니까 물으니까 하는 일 마다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신학교로 인도하셨습니다. 소명 아닙니다. 제가 처음에 대학에 있을 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신학교는 전부다 신학대학은 다 2차에요. 대부분. 왜냐 하면, 1차에는 거의 다 지망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우수수수 떨어져요. 그러고 보면 갑자기 신학교 소명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너가 신학교를 가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지를 아냐 그랬더니 자기가 간절히 기도했다는 거예요. 뭘, 1차에 붙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떨어지면 신학교 가는 것이 뜻인 줄 알겠습니다 라고 기도했다는 거예요. 되게 편리한 기도죠. 그래서 우리 교수들이 그랬어요. 왜 주님은 찌끄러기들만 좋아하실까. 그런 것은 소명 아닙니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자신의 책속에서 소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어요. 소명은 무의식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처음 소명은 소명을 가지고 고민하다가 소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소명은 주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크고 놀라운 비밀을 깨닫고 나니까 자기가 그 사랑에 만족하는 것을 넘어서서 요한복음 3장 16절이 새롭게 떠오르고 이제는 자기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불쌍한데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들을 무엇인가 돕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어서 그들도 이 사랑을 알게 하지 아니하면 그리고 그것을 누르고 살면 자기가 무슨 화를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일기까지 그래서 도저히 그 영혼들을 도와야 되겠다 라고 하는 영혼의 부담 때문에 일상적인 직업에 종사해서 살 수 없을 정도의 이 엄중한 신적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이게 의식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소명의 주관적 증거라는 거예요. 그러한 정도가 되면 사람들에게 입증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비가 와서 말을 안하나. 다른 사람들에게 입증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집에 장롱 하나만 바꿔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 한데, 하물며 하물며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이 가슴에 출렁거리는데 이게 더 넘쳐서 이제 이 사랑 모르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산다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어찌하든지 도와야 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너무 중한 나머지 일상적인 직업에 종사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데 어떻게 그게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겠느냐 에요.
(예화) 돌아가신 김준곤 목사님이 당신의 강연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요즘 선교사 나가는 것 보면 당신 동의가 안 된다는 거죠. 왜냐 하면 그들은 지구 같은 거라는 거예요. 수없이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지만 지구하고는 한번 도 만난 적 없는 것처럼, 맨날 예수를 입에 달고 살지만 한번도 예수와 맞닥뜨려본적 없는 사람. 영혼이 불쌍해서 눈물 한번 흘려 본적 없는 사람들, 전도의 열정에 불타본적도 없는 사람. 핏덩어리같은 영혼들 끓어 안고 그들을 참 그리스도인으로 길러보는 일에 헌신해 본적 없는 사람들이 코스를 밟아서 선교사로 파송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정말 동의할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거예요. 바로 그거죠.
그래서 성령이 강림하시기 직전에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애를 직접 보고 함께 다닌 사람이 한둘이었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모두 사도가 된 것은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사도를 부름받은 소명이 흘러나와서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사람, 그 사람들을 택하는 것이 이 사람들의 원하는 바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해요? 그 사람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두 사람 유스도라 하는 요셉과 맛디아라고 하는 사람을 함께 세우고 그 사람 중 한 사람을 뽑게 하였던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들을 세울 때에 그렇게 그렇게 정말 분명하게 그 직분에 맞는 소명을 받은 사람들, 그 소명에 합당한 변화와 삶이 흘러 나와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람들을 세우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선택이 인간의 제도가 예수님이 오셔서 직접 사도들을 선택하셨던 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아도, 주님 이러한 방법으로 자기의 일꾼들을 세우셨던 것이에요.
B.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서 일꾼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먼저 제비를 뽑기 전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사도 혼자 기도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기도하면서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 두 사람, 유스도라 하는 요셉과 맛디아라고 하는 이 두 사람 중 누구 마음이 더 좋은 마음인지 하나님 선택해 달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두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또한 그 사람들을 지도자로 뽑으려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예루살렘 교회를 형성하게 될 성도들의 마음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선택과 마음을 주님께 맡기고 그리고 주님이 인도해주시기를 간구하였던 것이에요. 일은 사람이 행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신 적이 우리에게 참 많습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 같았는데 알고 보니까 자로 재듯이 정확하게 그 시기에 나로 하여금 그 일을 당하도록 만드셔서 그 일이 발생하기 전에는 차마 예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것이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죠.
C. 섭리 속에서
계시가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섭리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이에요. 만약에 계시가 한 장의 사진이라면 이 섭리는 동영상 파일이에요. 그래서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지만, 동작이 나오고 움직이면서 마지막 결론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섭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이시는 당신의 감추어진 계시의 나타남은 이미 드러난 계시 못지않게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는 거죠.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니 예수 인도 하셨네
(예화) 언젠가 교회 마당에서 어느 집사님이 날 보고 그래요. 목사님, 개척을 하고 15년 이어오면서 가만히 목사님이 설교하신 옛날 것들을 차곡차곡 들어보니까, 처음에는 부흥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의 성화, 그러다가 이제 하나님의 아름다움, 그러다가 그리스도의 교회의 아름다움. 이렇게 이어지는데 처음 개척하실 때부터 그러한 원대한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죠? 내가 막 웃었어요. 계획은 무슨 계획이에요. 그런 것 없었어요. 물론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펼쳐지면서 그렇게 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저는 그러한 생각이 들어요. 뭐냐 하면, 아 정말 하나님의 섭리는 정말 놀랍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이 무지랭이 같은 인간의 눈을 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모든 과정이 여러분들과 씨름하는 과정하고 똑같아요. 처음 주님의 은혜를 받고 병들고 쇠퇴한 교회를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파하고 그렇게 탄식하고 고통하면서 부흥의 눈을 뜨게 되고, 그리고 청교도의 눈을 뜨게 되고, 변절을 밥먹듯 하는 시대를 보면서 순교자들의 역사에 대해서 눈뜨게 되고,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목회를 해보니까 막 놀랍게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제에도 누구하고 그러한 이야기를 했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정말 놀라운 축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내 옆에 주신 것이다. 돈 많은 사람은 이상하게 안 보내주시더라고요. 왔다가 설교 길다고 다 갔어요. 그리고 돈 별로 없는 사람들만 많이 보내 주셨는데, 그런데 정말 충성스러운 일꾼들을 주셔서 내 옆에서 나 같이 부족한 인간을 도와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 그래서 참 목사님 좋으시겠어요. 그런데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지. 그게 뭔데요? 정상적인 사람은 별로 없고, 옛날에 상처 받은 사람, 그리고 깊이 마음이 병들었던 사람, 죄 가운데 헤매던 사람, 무지하기 짝이 없던 사람,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고쳐 주셔서 그래서 내 옆에 두셔서 충성스럽게 일하게 하신다. 그런데 바탕이 원래 그러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끔 은혜가 떨어지면 고닳픈 목회의 시련이 시작이 되는 거예요. 그거예요. 그래서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그렇게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지키는 거예요. 아멘.
그런데 그러한 속에서 막 처음 개척교회 할 때 우느라고 설교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개척교회 시절 때 자기는 가보지도 못하고 향수하는데 별로 안 좋았어요. 그렇게 은혜를 받고 그러는데 지나고 나면 자기들끼리 대판거리 싸우고 뭐 아주 누구든지 한번 걸렸다 하면 물어 뜯을 것 같은 기세로 말이지.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나에게 성화의 눈을 뜨게 만들어 준 거야.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안변할까. 난 나를 보면서는 그렇게 안변한다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런데 나도 남이 보기에는 그랬겠지. 인정해. 나도 인정해. 겸손해서가 아니라 나도 인정해. 어짜피 자기는 자기 편이니까. 그런데 어쩜 그렇게 안 변하냐. 그리고 초창기에는 우리 집사람하고 나하고 순진한 애기 같았죠. 심방을 가가지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변화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벅차서 돌아왔죠. 몇 년 뒤서 부터는 돌아오면서 우리 둘이 그래요. 아이고, 저게 얼마나 갈까. 별로 믿질 않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뭐냐 하면 도대체 인간 밑바닥 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심오하고 유장한 말하자면 성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거죠. 그 중에서 티끌만큼 발견한 조금이 <죄와 은혜의 지배>야. 420페이지짜리 로마서 6장 14절 그것을 설교를 할 때에, 어떠한 사람이 예배를 참석하고 나서 오늘 예배 소감이 어떠셨습니까. 지체가 물어보니까, 어쩜 14절 한절을 가지고 그렇게 100분 가까이 설교 하실 수 있어요. 은혜도 받았지만, 저 원고 한 장 안 읽으면서 설교 하시는 저 모습 보면서 정말 충격 받았어요. 그랬더니 지체가 하는 말이 오늘이 열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거예요. 그리고 지나가면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아름다움,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교회에서 개념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그러한 것들을 보게 되는 거죠. 그게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뜻이 시간이 지나면서 전개되고 쭉 드러나는 거죠. 그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섭리 속에서 그렇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짜피 맛디아를 사도로 오래 전에 예정 하셨죠.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의 우연한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교회를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III. 하나님의 주권과 교회
때로는 정말 아닌 것 같았는데, 사실은 어떠한 때는 그것이 최선이 아니었는데도 하나님은 그것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들을 이루어 가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열두 사도중 하나인 유다를, 가룟 유다를 택하셨을 때 예수님은 이미 그가 당신을 팔자임도 아셨어요. 그러면서도 비록 악하게 쓰여 졌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도 하나님이 당신의 구속대업을 이루시기 위해서 쓰이도록 섭리 속에서 부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으셨기에 3년 동안이나 데리고 다니셨던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을 당신의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행사하시는 거예요.
이러한 것을 보면서 우리는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그리고 우리는 우연적인 것 같아 보이는 모든 결정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 속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그 주권에 전적으로 순복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선택과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기를 우리는 기다릴 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는 뜻에 따라서 우리들이 투표를 하고자 하는 것이에요.
IV. 결론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교회를 이끄시되 사람들을 통해서 이끄십니다. 크고 작은 사람들을 크고 작은 일들의 소명을 느끼게 하셔서 당신의 교회의 한 모퉁이를 섬기게 하시고, 질그릇 은그릇 금그릇과 같은 다양한 당신의 일꾼의 그릇을 두셔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담을 수 있게끔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할 수 있는 이 일은 오늘 여기에 나오는 사도들과 그리고 사도들의 지도를 받았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처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기도하고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인도를 받으며 섭리 속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를 사용하시지만,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드러나는 교회가 되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의지하고 기도하며 책임이 있는 선택을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고 그 후에는 모든 것을 주님의 주권으로 믿고 그리고 하나님이 교회를 향하여 가지고 계신 사랑과 역사하심이 인간의 염려와 사람의 배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분께 붙잡혀 당신의 일들을 이루어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의 뜻을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이루시도록 여러분 자신이 기도하고 순종하며 그분의 인도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