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섬기는 자의 역설
“무명한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녹취자: 김명진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영혼을 섬기는 자들로서 자신들이 어떻게 영혼들을 섬기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섬기고 복음을 위해 일하는 직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방거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무에게든지 거리낌이 없이 처신하였고,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매맞고, 환란을 당하고, 궁핍을 당하고, 투옥되고 하는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도 깨끗함과 지식, 오래 참음과 자비,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 특별히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기를 삼아 영혼들을 섬겼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도바울과 일행은 늘 짓밟히고, 눌리고 핍박받고, 무기력하게 투옥되는 연약한 자들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영혼을 섬기며 일하는 자신들에게는 세상이 전혀 알 수 없는 또 다른 은혜의 세계, 또 다른 실체가 있다는 것을 고백을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말하기를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다.” 그래서 세상의 지식의 빛에 놓고 보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참착하고, 그 복음으로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홀리려하고 속이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러나 사실은 속이는 것도 아니요, 홀리는 것도 아니요, 그것은 참된 것이라. 세상의 이 지식이 거짓되기 때문에 이 참된 것을 모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 사람이 보기에는 아주 하찮은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이 보기에는 방황하는 영혼들을 주님 앞에 세우고 쓰러질 영혼들을 붙들어주는 일이니 하나님 앞에서는 그 이름이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같으나 살아있고 사람들이 볼 때 환란을 많이 만나고, 곤고를 당한 자 같으나 그들은 영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이고 이는 생명이신 하나님께 그들이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징계를 받는 것처럼 시련을 당하고 고난을 당해서 하나님께도 싫어버린바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사실은 ‘결코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근심한 자 같지만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그러나 모든 사랑을 부여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니라’라고 자신들의 정체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의미가 풍부한 구절을 모두 해석하는 오늘 이 시간에 저에게 주어진 과업이 아닙니다.
제가 이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영혼을 섬기는 자의 역설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들이 보기에 영혼을 섬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자신의 모든 삶의 시간과 물질, 마음을 영혼을 돌보는 일에 쏟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번영과 영광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의 안목에서 보면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추스르고 자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번영을 위해서 진력하여도 다 살 수 없는 인생살이인데 언제 남을 위해서, 그것도 이 세상의 어떤 번영이 아니라 노력을 하고 노력을 많이 해도 표도 나지 않는 그 일을 위해서, 사람들이 우리가 그렇게 헌신을 해도 헌신 때문에 자신의 신앙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이 세상에서 어떻게 보면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을 그 일을 위해서 진력하고 헌신하고 그리고 이 일이 끝이 있습니까? 언제까지 하면 훌륭하게 완수가 되어 성취 된다는 보증이 있습니까? 그것도 없는 그 일을 위해서 끝없이 진력하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어리석은 것이요 그리고 죽은 자와 같고 혹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자와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우리의 모습일 뿐이고 거기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그 역설이 무엇이냐면 그렇게 겉으로 볼 때에는 짓밟히고 버림을 받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않는 것 같은 그런 환란을 당하는 모습인데도 그러한 충성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아니하고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의 비밀스런 은혜의 세계, 비밀스런 사랑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렇게 구역장으로서, 순장으로서 영혼을 돌보다 보면 어느 한 순간에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혹시 나 같은 인간이 영혼들만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돌보기는 커녕 내 영혼도 스스로 간수도 못하는 비참한 인간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하는 무력감 같은 것들이 확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종종 교역자를 찾아옵니다. “전도사님 아무래도 이렇게 영혼을 돌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잘 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고 저는 물러나야겠습니다.” 교역자들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구역장이, 순장이 뭐라고 그런 마음이 안들 때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성령의 음성인 적은 거의 없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자신에게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충실하게 헌신하면서 살아갈 때, 그 때 자기 자신의 삶의 무게가 가장 가벼운 것입니다. 힘든 것 같아도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면 그 소명을 따라 살려고 분투할 때 그 삶의 무게가 가장 가벼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인생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습니까?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한 순간에 ‘인생이 돈이 있고 없고, 나에게 무슨 재능이 있고 없고 그게 아니라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하는 것을 어느 순간에 논리를 초월해서 절절하게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논둑에 엎드려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음에 돈을 주거나 부잣집 아들이 되거나, 이 세상에 무엇을 주어도 그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생 자체의 무게, 그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느낍니다. 순간순간 생각이 분산되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영혼을 섬기는 이 무거운 직분을 벗어 두면 짐이 벗겨지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벗는 즉시 또 다른 짐이 지워집니다. 똑같은 짐을 지고 살아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당신과 하나되는 멍에를 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쉼이 있지만 죄의 멍에, 하나님 없는 인생의 멍에를 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상이 없습니다. 어차피 고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보십시오. 여기에 젊은이들이 많은데 세상의 젊은이들이 보면 여러분처럼 답답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메뚜기도 한 철인데 이 좋은 토요일에 세상에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허접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서울 변두리의 예배당에 와서 회비까지 내며 토요일을 반납하고 어른들 앞에서 무엇을 듣겠다고 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한참을 울다가 보따리 싸서 내려가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답답하고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왜 그렇게 사는가’ 할 것입니다.
(찬양)
나는 없어도 주님이 내게 있으면 나는 언제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항 상 기억해야할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찬양)
주여 꽃처럼 향기 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인간으로서 사는 삶의 무게,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을 돌볼 소명을 가진 삶의 무게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납니다. 고통의 양의 차이가 아니라 고통의 뒤에 어떤 역설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자체의 무게를 우리들이 쾌락에 빠지고 어떤 즐거움을 찾을 때는 순간순간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대면하면 항상 풀지 않은 숙제처럼 우리에게 그대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영혼을 섬기는 자들의 삶에도 무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게는 은혜와 반비례합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그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게 무엇이 있는가? 주님이 은혜를 주시는 대로 나는 흘러갈 뿐이지’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짐을 지고 영혼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쓸 때에 항상 거기에는 고통과 죽음이 있는데, 그 대신 그 안에는 고통을 능가하는 행복과 기쁨, 은혜, 사랑, 소망, 이런 것들이 항상 그 안에서 역사합니다. 그것이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도 오늘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근심하는 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항상 기뻐하고,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수고하고, 그들이 잘 될 때에 기뻐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움직인 위대한 위인,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위대한 설교자나 사상가들에게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 사람들도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어서 우리의 인생을 바꾸게 만들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주님을 만난 영혼들을 누군가가 일체의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가까이에서 그들을 어머니처럼 붙들어 주고 형제처럼 돌보아 주는 그 헌신과 수고 안에서 그들이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방을 하다가 구역장을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한 영혼을 어마나 참되게, 얼마나 오래 참으며, 얼마나 희생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섬겼으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구역장님을, 나의 순장님을 깊이 존경할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가 그렇게 우리의 돌봄이 아니면 죄악 가운데 방황할 영혼들을 그렇게 세우는 일보다 더 훌륭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장로님들께 가끔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결국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많은 은혜와 시간, 물질, 생명을 가지고 당신은 어떻게 섬겼는지 물어 보실 텐데 대부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 방황하며 인생을 산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 앞에 “내가 이렇게 특별히 주님을 섬겼습니다”라고 내놓을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수시로 교회를 옮겨 다니고, 한 번도 그 교회를 사랑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무엇을 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들에게는 할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 교회를 최선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여러분 종종 기도 속에서 우리가 이런 이치를 배우지 않습니까? 정말 고민되는 일도 많고 해야 할 기도의 제목도 많은데 이상하게 기도를 하려고 하면 정신 집중이 안 되고 막 흩어집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순서도 없이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에 제가 터득한 기도의 요령 중 하나는 그것을 다 치워버리고 내 기도의 제목을 찾으려고 집착하지 않고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면 그 사람을 위해서 진심으로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놀라운 것은 내 기도를 하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데, 나도 죽겠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 눈물이 나오고 그 영혼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이 당신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오게 해주십니다. 참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영혼을 섬기는 이 일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주님께 인정받게 하는 그것이, 내가 섬기는 영혼을 위해서 유익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혼도 가장 행복하고 안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공동체를 기뻐하고 거기에서 만나는 많은 영혼들을 위해서 섬기고 그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가장 행복해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창렴하고 영혼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가장 안전해지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요즘 여러분들이 침체에 빠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굳게 붙들고 다시 사명의 자리로 돌아와서 마음이 방황할 때는 방황하는 사람을 심방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기도가 되지 않을 때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정말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누가 이렇게 소중한 직분을 여러분들에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주님이 여러분들을 여기에 세워 주셨으니 기도하고, 영혼들을 위해서 사랑하고 섬기는 그 안에서 나의 영혼이, 나의 심령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고 좌우를 보지 말고 헌신하기 바랍니다.
말이 경주할 때 눈에 무엇을 끼웁니다. 그것은 뭘 못 보게 하고 자기 가는 곳만 보게 하기 위해서 씌워 놓습니다. 시골에 가면 꿩을 사육을 하는데 꿩에도 옆에 썬글라스 같은 것을 끼웠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말은 옆을 보면 주위가 산만해져서 속도가 나지 않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가게 하는데 옆에다 무엇을 씌운답니다. 그런데 꿩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꿩은 욕심이 많아서 사료를 주면 옆에 있는 꿩을 자꾸 쪼아서 죽인답니다. 그래서 딴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기 먹을 것이나 잘 먹으라고 씌워준다고 합니다. 그것을 쓰십시오. 앞을 향해 달려가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든지 자신이 그 말씀을 굳게 붙들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원을 올라오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인 일기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제가 총신대학교에 들어갔던 1학년 때에 곡을 붙였습니다. 제 마음의 고백으로 이 찬송을 여러분에게 들려주면서 여러분에 힘을 내라고 (중국 말로 짜이오!)말해 주고 싶습니다.
(찬양)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떻게 살든지
또 무엇을 견디게 되든지
나는 관계치를 않노라
잠을 자면 저들을 꿈꾸고
잠을 깨면 저들 생각이
잃어버린 영혼들이라
잃어버린 영혼들이라
아무리 박식하고 능란하며
또 심오한 설교와
청중을 감동시키는
웅변이 있을 지라도
그것이 결코 인간의 심령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결핍을 대신 할 수는 없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