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위하여Ⅱ
(1997년 설교모음)
설교기간|1997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남북왕조의 역사 요약 1997.6.1 교사대학 1
2. 1907년 평양 대부흥과 기도 1997.6.8 교사대학 14
3. 건전한 영성과 참된 부흥 1997.6.15 교사대학 30
1. 남북왕조의 역사 요약
처음에는 이렇게 되죠. 제일 먼저 하나의 이스라엘이죠. 초대 임금은 사울이었고, 그 다음에 솔로몬, 그리고 솔로몬 때에 서서히 타락하면서 하나님께서 왕국이 분열될 것을 보이시죠. 분열의 조짐은 이미 다윗의 타락부터 보여 주시죠.. 그래서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으로 나뉘는데 이스라엘이라고 할 때도 성경에서 두가지 의미로 쓰여요. 선택된 백성 전체를 가리킬 때도 이스라엘이라 쓰이는 데 이때는 통칭이죠. 그리고 좁은 의미로 쓰일 떄는 남왕국 유다 북왕국 이스라엘 이렇게 나뉘어요. 그런데 성경에서 이스라엘이라고 나오면 넓은 의미의 통칭으로 쓰인 건지 좁은 의미의 북왕국 이스라엘을 말하는 지 잘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역사가 나뉘게 되었죠. 그러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이 먼저 망합니다. 이게 722년 주전이고 그 다음 남왕국 유다가 더 오래 지속됩니다. 그래서 586년까지 가고 그렇게 되죠. 그래서 여기는 단독시대죠. 여기는 남북왕조 시대, 또 여기는 다시 단독 시대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양쪽의 두 시대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토막에는 대립 투쟁의 시기, 그럴 거 아니에요? 다시 나라가 갈라졌으니까 으르렁 거리며 싸우고. 우리 남북하고 똑 같죠. 그러다 이제 화평하고 우애하는 시기가 오고, 다시 서로 상관없이 살아가는 평화 시기가 오고, 그 다음은 북왕국이 사라지고 남왕국만 남는 단독 시대가 옵니다. 그래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시대에 첫 번째 단독 시대, 둘째 대립 투쟁시대 그 다음 화평 우호시대, 그 다음 평행시대, 그리고 다시 제 2의 단독 시대 이렇게 됩니다.
18페이지를 다시 보세요. 이걸 이런 식으로 차트를 놓고 공부하는 게 제일 효과적입니다. 북 이스라엘을 죽 공부했는데, 그때 남왕국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요. 북이스라엘만 공부하고 다시 남왕국을 공부하면 그때 연대가 헷갈리는 거에요. 그래서 북 이스라엘과 같은 시기의 남쪽 유다 좀 공부하고 그렇게 좌우로 왔다 갔다 하다보면 좌우로 일련표가 좍 그려 집니다. 그래서 이 도표의 내용을 완벽하게 외우기 힘들지만, 대충 골격을 넣어두면 역사서를 읽을 때 굉장히 재미있을 겁니다.
이거 어디서 베낀 것이 아니고, 책 전체를 가지고 며칠 동안 만든 거예요. 제가 신학대학원 다닐 때, 역사 책 한 권을 가지고 성경과 비교하면서 만든 거예요. 간단해 보여도 며칠 밤 샌 작업입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있는데, 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근본적으로 나라가 달라요. 왜냐면, 잘 보시면 북 이스라엘은 아홉 가문 19왕 8번 혁명이 일어납니다. 가문이 있었다는 얘기는 왕조가 있었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신라 시대에는 신라왕조, 고려시대에는 고려왕조, 그 다음 조선 시대에는 조선 왕조가 있게 마련이잖아요. 그런 왕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왕조는 왕가 거든요. 근본적으로 서양도 그렇지만, 옛날 시대에 나라의 개념은 소위 역사적으로 말하는 가산제 국가에요. 가산제 국가란 내가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딱 세웠으면, 세우는 순간 그 땅의 모든 만물이 다 자기거예요. 그 초근목피 그 모든 것들 날라다니는 새, 땅 속에 묻힌 금광까지 다 내것이에요. 나머지 모든 백성은 왕의 나라에서 세들어 사는 개념이 되죠. 그러면서 왕가가 형성됩니다. 그러니까 나라 전체가 가산, 즉 왕가의 재산이에요. 그런데 그런 왕가의 개념은 비 성경적입니다. 성경적인 개념으로는 하나님 만이 주인이에요. 왕도 신하도 모두 거기 세들어 사는 사람입니다. 세들어 사는 데, 하나님꼐서 어떤 사람에게는 큰 땅을,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땅을 주시는 차이입니다.
왕가가 형성되니까 이쪽 북 이스라엘은 왕조의 개념 자체가 굉장히 세속적인 개념이에요. 그 다음에 잘 보면 남왕국 유다에는 왕가가 없어요. 북왕국에는 여로보암 왕가와 바사 왕가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아무 관계가 없어요. 여로보암 왕가를 바아사 왕가가 뚜드려 엎은 거예요. 그리고 왕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8번의 혁명이 있었으니까 9 가문이 되는 것이고 한번 혁명이 있을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있었어요. 그런데 남왕국 유다에는 다 충성스런 사람들만 산 건 아닌데, 다 하나의 왕가예요. 그건 왜 그래요? 그건 신앙이에요. 어떤 신앙이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위를 누구에게 주셨어요? 다윗의 집에 주신 거예요. 그런니까 다윗의 후손만, 그러니까 처음에는 사울에게 원래 주었는데, 사울은 폐하시고 다윗을 세우시면서, 네 위가 영영 하리라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다윗의 몸에서 태어난 다윗의 후손에 의해서 직접 왕이 승계되어야 한다는 것이 타락한 사람이건, 정상적 사람이건, 남왕국의 누구건 간에 공통적인 신앙적 컨센서스였어요. 그러니까 일치를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다윗 계열이 아닌 사람이 정권을 탈취할라치면, 그때는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일치단결하여 그놈을 때려잡는 거에요. 그러니 왕가가 형성될 수도 없었거니와 강제적으로 혹시 형성된다 하더라도 즉시 여야할 것없이 모두 뭉쳐 일단은 축출을 하는 거예요. 나중에야 당쟁을 한다손 치더라도. 그러니 신앙적 컨센서스가 딱 형성된 것, 이것이 북왕국과 남왕국의 차이에요.
자 여기 일람표를 먼저 그려놓고 19페이지 부터는 사건을 기록한 거예요. 보세요. 자 여로보암 왕가, 성경에 여로보암이 두 사람이 나와요. 일세 이세 그렇게는 안 나오는데, 밑으로 쭉 내려가보면 예후 왕가의 여로보암이 또 나옵니다. 그렇죠? 그런데 이 예후 왕가의 여로보암이 여로보암 2세라고 불러요. 우리가 학술적으로 그렇게 부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안 나오지만. 그런데 이 사람이 바로 호세아 시대의 왕이었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이름을 기억해야 할 만한 두 사람의 왕 중 한 사람이에요. 그 둘은 4번에 나와있는 오므리라는 사람과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에요. 아합이라는 사람도 유명한데 아합보다는 오므리와 여로보암이 훨씬 유능했어요. 한마디로 이 여로보암은 몇 백년 한번 나올까 말까한 매우 영명한 군주였어요. 물론 세속적 의미에서입니다. 여로보암이 있고 두 금송아지가 만들어 지고, 그리고 나답이 있고 바아사가 일어나 뚜드려 엎습니다. 25년 이대에 걸쳐 왕가를 형성하는 데, 몇 년 못가요. 제일 오래 간 게 예후 왕가와 오므리 왕가인데 한 네다섯 사람 왕 하고 끝나는 거예요. 그러다가 시므리가 일어나서, 그가 7일 동안 7일천하를 하고 오므리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므리로 나가요. 시므리 오므리.....오므리 왕가가 4대 44년 이니까 한 사람이 평균 11년씩 한 것이죠. 오므리 때에 나라가 안정되지만, 영적인 암흑기인데 이 오므리는 성경에는 별로 기사가 안 나오는데, 한 여섯 자리정도 밖에 안 나오는데, 엑스트라 비블리칼 자료 즉, 성경 밖의 세속 역사 자료에는 오므리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이 오므리 왕이 그 근처의 많은 나라들을 복속해요. (지도를 보며) 이스라엘이 이렇게 있잖아요. 지중해가 이렇게 되고,....여기가 애굽 여기가 홍해고, 강이 흐르고 이렇게 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리면 되요. 여긴 갈릴리 여긴 사해 호수거든요. 요쪽 지방을 트랜스 요르단 이라고 그래요. 요단 건너편이라고 그러고. 요쪽이 이제 팔레스타인 지역이 있죠. 여기가 블레셋, 여기가 갈릴리죠. 그리고 이쪽이 트랜스 요르단이에요. 모압 암몬, 에돔 이런 족속이 있던 곳 이곳을 다 복속하는 겁니다. 그러니 굉장히 강력한 통치를 이루고 세속 자료에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아예 오므리의 집 이렇게 대명사로 나올 정도로 국세를 떨친 왕이에요.
그리고 이제 아합, 이 사람은 아주 성경에서 단골로 많이 등장한 사람인데 이 사람의 부인은 더 유명하죠. 누구죠? 이세벨. 그리고 아하시야, 여호람 이렇게 들어가고 그리고 이제 예후 왕가가 들어서는데 이 예후 왕은 아주 과격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다 때려죽이고 쿠테타를 일으키는데, 그 다음이 여호아하스 그리고 요아스 왕이 등장하고, 요아스가 남왕국 7번째 왕도 요아스거든요. 그 사람하고 이 요아스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2세가 들어서고 그러면서 황금 시대가 도래하고, 스가랴가 들어서고 살룸의 반역이 있고 살룸이 한 달 간 통치한 다음 므나헴 왕가가 들어서고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왕과 호세아가 마지막 임금인데, 한편 남쪽에서는 여로보암과 함꼐 등장한 임금이 르호보암인데, 이 사람은 아주 미련해요. 그래서 솔로몬 말기에 극도의 타락으로 백성들이 수많은 부역과 세금으로 지칠 대로 지쳐요. 그러다 새 왕이 들어섰으니까 백성들이 얼마나 기대가 크겠어요. 그러면 부왕의 실정으로 상처난 민심을 사랑으로 품으며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 가야 하는데, 아주 미련하게 우리 아버지 부왕보다 훨씬 세금을 많이 걷을 것이고 노역도 많이 해야 할 것이다라면서 강압 정치를 펴요. 그러니 당연히 여로보암이 민심을 얻게 될 것 아니에요. 그러니 이때에 열 두 지파 중 두 지파만 남고 10지파가 모두 북으로 도망을 가요. 그러니 여로보암은 아주 세속적으로 지혜로운 왕이었어요. 그래서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 하는 거죠. 우리는 세금도 적고 부역도 적고.....그렇게 백성을 싸매니 추종자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신앙도 있어야지만 좀 지혜로와야 해요. 그래서 아비야가 나오는데 아주 타락한 임금이었어요. 참 이상하죠. 르호보암이 있고 아비야가 있고, 아사가 있거든요. 여호사밧이 있는데,,....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았는데, 이건 타락한 아버지가 타락한 아들을 낳았어요. 그런데 아비야는 타락한 임금이었는데, 그 뱃속에서 거룩한 임금 아사가 나와요. 그런데 거룩한 아버지 아사 밑에서 역시 경건한 임금 여호사밧이 나와요. 그런데 4번에서 5번 넘어갈 때는 경건한 아버지 밑에서 아주 철저한 이단자가 하나 나와요.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하죠?
언젠가 교회에서 어버이날인데, 마태복음에 족보가 나오잖아요. 어버이날 설교를 했는데, 르호보암이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가 아사를 낳고 아사가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이 여호람을 낳으니라, 그리고 성경 본문을 읽으니까 회중들이 불안해 하는 거예요. 어버이 날인데 대체 무슨 설교를 하려고 왕 이름 다섯 개를 읽고 설교를 하려나? 그런데 핵심은 뭔가하면 당신이 불경건하면 당신이 믿음이 없으면, 당신 자식은 반드시 믿음이 없는 자식이 나온다. 그런데 당신 아버지가 경건하지 못할 지라도 당신이 아사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아사 같이만 산다면, 당신 자식이 여호사밧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여호사밧 같을 지라도 당신 뱃속에서 여호람이 나올 수 있다.......그러니 결국 결론은 뭐죠? 너나 잘 해라. 자기 부모 신앙 좋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별로 없더라구요. 그날 아주 성도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여러분은 어느 위치에 들어가고 싶은 가요? 몇 번 되고 싶어요? 그래도 3번이 좀 낫죠?
그 다음에 아하시야, 이 여호람이 누구냐면 바로 아합의 사위에요. 그러니 장모님이 누구죠? 이세벨이죠. 그리고 자기 부인이 아달랴에요. 그리고 아하시야가 들어서게 되는데, 어머니가 섭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제사장 여호야다가 반정을 일으킵니다. 이게 바로 그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실권을 아달랴가 잡게 되니까 반정을 일으킵니다. 역사에서 반정이 뭐죠? 쿠테타는 쿠테탄데, 그것을 통해 원래 왕정을 바르게 하는 것, 그걸 반정이라고 하죠. 그 다음, 요아스, 성전을 수리하고 그러면서 이때가 바로 호세야가 아니라 호세아, 아모스 시대입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이도록 허락을 하고......나중에 타락을 하게되죠. 참 이상해요. 아사도 말이죠. 믿음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 타락해요. 육체로 끝나죠. 그리고 요아스도 그렇게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결국 타락해요. 그래서 아마샤 웃시야가 들어서는데 강성했는데 또 타락해요. 요담은 뭐 원래 신통치 않은 사람이었고, 아하스도 별로 신통치 않았고, 히스기야가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죠. 꼭 기억할 사람 몇몇 있는데, 아사, 히스기야, 요시야, 요아스....히스기야도 아주 샛별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런데 나중에 타락해요. 정말 묘해요. 므낫세도 그랬고, 아몬, 요시야도 그렇게 개혁을 하고 그랬는데 결국 타락해요. 아하스, 여호야김 다 신통치 않은 사람들이죠. 시드기야까지 시들시들해집니다.
자 <여로보암 왕의 정책과 범죄상> 주전 931년에 나라가 둘로 갈리게 됩니다. 이게 여로보암 1세죠. 그래서 백성들의 인심을 사려고 세제와 노무와 동원을 가볍고 하고, 그러니까 부왕때 너무 시달린 것이죠. 솔로몬 말기때 사치와 방탕으로 말이죠. 그래서 세겜을 건축하고 브누엘을 건축합니다. 그래서 디르사를 거처로 삼습니다. 그래서 백성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 함. 다윗이 있지는 않지만 다윗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해요. 문제는 왜 그래요. 성전이 여기 이쪽에 있는데, 못 내려 가잖아요. 그러니 이제 굉장히 종교적 콤플렉스가 생기는 거에요. 하나님은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경배해야 한다는 율법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 사람인지 토착화 신학을 하나 만드는 거에요. 그러면서 뭐 경배를 꼭 예루살렘에서만 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러면서 벧엘과 단에다가 두 개의 금 송아지를 만들어요. 이 금송아지는 이방 종교의 신이라기 보다는 엄밀히 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것이 이제 잘못되었죠. 그 두 금송아지를 놓고 벧엘과 단에서 제사를 지내게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리고 비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아요. 왜? 레위인이 없어요. 아래로 내려 갔으니까. 유다의 법궤와 대응하게 하기 위해 금송아지를 만든 거예요. 유다의 법궤 위에 천사의 형상을 한 시은소가 있잖아요. 그 다음에 유다 절기와 비슷한 시기에 제사를 하게 해서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유다의 초막절 한 달 뒤에. 결국 예배의 대상을 눈에 보이게 형상화 했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여서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남왕국 유다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큰 전쟁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안 기뻐하시니까 계속 징벌이 있는 것이죠. 북방 여로보암과 국경 분쟁으로 국력을 소모합니다. 그러다 르호보암 재위 한 지 5년에 애굽 왕의 큰 침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 침략했던 사람이 성경에는 시삭이라고 나오는데, 이 사람이 역사에서는 셰숑끄예요. 애굽의 이 왕이 침공하게 됩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교만에 대한 징벌로 받아들입니다. 삼 년 동안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걸어갔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다윗의 타락한 시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타락, 이때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어요. 누구냐하면, 오늘 강의한 것과는 정반대로 모친이 암몬사람 나아마 였어요. 나아마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왜 들어오게 되었어요? 솔로몬이 말기에 정치적인 안정을 위해 주변에 있는 국들과 연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 인척으로 삼는 것이죠. 그것을 나라의 안정을 지켜보려고 한 것이 하나님에게는 매우 불신앙으로 여겨지는 것이죠. 그게 나중에 쓴뿌리가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나중에 왼쪽으로 넘어오면, 여로보암 왕가를 결국 하나님이 징벌하게 됩니다. 금송아지를 만드는데, 여호와와 동시에 바알도 섬기는 혼합적인 제사 방식이 들어와요. 이게 나중에 아합과 이세벨이 바알신을 끌고 들어오게 된 한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이 징벌을 하게 되는데 그가 단 옆에서 분향하고 있을 때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해서 다윗의 집에서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이 나와서 여로보암 제사장들의 뼈를 단위에서 불사를 것이라, 예언합니다. 여로보암이 진노하여 손을 펴서 선지자를 잡으려 하자 손이 말라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전혀 믿음이 없었냐하면 그건 아니에요. 선지자를 간청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 회복을 해요. 약간의 호의를 베풀지만, 그러나 결국 마음이 강퍅해지고 아들 아비야가 병들고 또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해 준 아히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회개하는 마음을 표합니다. 아히야가 여로보암 왕가의 멸망을 예언 하고 아비야의 아내가 문지방에 들어설 때 죽어요. 그래서 아들 나답의 집이 2년 되던 해에 바아사에 의해 진멸되고 바아사 왕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바아사 왕가가 들어설 그때 쯤에 남 유다에서는 정말 샛별 같이 영명한 군주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가 이름하여 아사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철저한 신앙의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에게 신앙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하면 선지자 아사랴에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불신앙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는데, 그 뱃속에서 경건한 사람이 나온 것이 아니라, 무엇에 의해서? 신앙 교육에 의해서.....그러니까 영적 스승에 의해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진 거예요. 그러니까 제일 좋은 것은 부모가 영적인 스승까지 되면 더 말할 나위없이 좋겠죠. 그런데 그게 불가능해지면 좋은 스승이라도 만나야 되요. 그러면 인생이 바뀌에 되요. 그런 선생을 만나야 되요. 만나봤어요?
그런데 이제 개혁 운동을 하게 되잖아요. 대부분의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위서부터 시작되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통치자가 자기부터 개혁해요. 아니면 바닥부터 들볶기 시작해요? 대부분 바닥에서 오다 중간쯤에서 임기가 끝나버리잖아요. 옛날 박 대통령때 서정쇄신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서가 무릇 서자 거든요. 그래서 많은 생각있는 사람들은 그 논의의 초기부터 이건 궁극적인 대안이 아니다.......자기개혁부터, 위서부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해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게 개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어요. 어머니가 이방신을 자꾸 섬기니까 어머니가 마아가 가 계속 우상을 섬기니까 경고해요. 끝까지 안들으니까 태후의 위를 폐하는 거예요. 그건 굉장한 거예요. 우리 나라에서도 폐서인 한다고 하잖아요. 아니면 뭐 왕비나 이런 사람이면 몰라도 자기 어머니를 폐서인 한 거예요. 그러면서 신앙적인 결의를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아세라 열조의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데, 남색하는 자를 제거하려 하는데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일평생 여호와앞에 그 마음이 온전하였다 그랬어요. 다윗의 길로 행한 사람이었어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보고는 어떻게 표현했냐하면 그가 일평생 다윗의 길로 행하였더라,,,....제일 싫어하는 사람을 향해서는 뭐라 표현했어요? 그가 일평생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더라.......이 두 사람이 아예 대조되어서 나타나는 거예요. 여러분은 누가 되고 싶어요? 일평생 박헌준의 길로 행하였더라.....그러면 죽일 놈이라는 거예요? 살릴 놈이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이제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남쪽에서 이렇게 신앙부흥이 일어나니까 북쪽 사람들에게도 놀랍게 은혜 받은 이야기가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쪽으로 갔던 므낫세와 시므온 지파 중에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신앙의 은혜를 찾아 남쪽으로 귀화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에요. 이게 바로 오늘 날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일 아니에요. 애굽과 구스와의 전쟁이 일어났는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신앙으로 세라의 군대를 이겼습니다. 애굽과 구스와의 전쟁에서 일백만 대군이 처들어왔는데 믿음으로 이기잖아요. 이스라엘 바아사 왕은 바로 여로보암 다음에 들어선 왕가에요. 전쟁을 하게 되고, 믿음이 식어지죠. 그래서 다메섹 왕 벤하닷에게 원정을 구하게 됩니다. 다메섹은 이 위에 있는 나라에요. 성경에 다메섹이라고도 하고, 혹은 북방군대, 혹은 아람군대라고도 나오는 민족이에요. 이 민족은 강력한 기마 민족인 동시에 강력한 국권을 가진 나라였어요. 그래서 이쪽의 남진 정책과 애굽이 어떻게든 여기 기반을 잡아 북진해 보려고 하는 정책이 만나 이 사이 샌드위치로 끼어 늘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처럼.....믿음이 식어져서 주를 의지하지 않고 다메섹 왕 벤하닷에게 원정을 청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쪽 왕국을 빌어서 이 북왕국을 치려 했던 것이죠. 믿음이 식어짐. 라마성 건축 자재를 가지고 게바와 미스바 성 두 성을 건축합니다. 선지자 하난이 잘못을 지적하는 그것에 분노를 일으켜 감옥에 가두는데 나중에 병들어 죽게 됩니다. 나중에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원에게 구하였더라, 라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잖아요. 한편 그즈음에 왼쪽 19페이지 하단에 이 왕가는 여로보암의 죄를 답습하였고 유다왕 아사와 일평생 전쟁관계에 있었습니다. 대립 투쟁 시대죠. 라마성 건축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유다왕 아사의 개혁 영향을 받아서 유다로 자꾸 넘어가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제 라마성 건축을 중단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유다왕 아사는 다메섹의 도움으로 물리치고 게바와 미스바에 파수대를 건축하고 두 성을 건축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를 계속 답습하고, 아들 엘라가 기브온 점령을 위해 군다장관 오므리를 파송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즈음, 드디어 여호사밧이라고 하는 임금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 사람은 아주 경건한 임금이었고,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철저한 개혁을 했기 때문에 산당 목상 구석에 숨어버린 남색하는 자 등을 추방했어요. 그리고 그 제사장이 스물 네 개의 반이 되어, 이 사람들이 예수님 시대에만 만 팔 천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제사장의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뭐 제사장으로 뒤범벅이 되니까 비번과 당번을 정해 일했어요. 그러니 비번인 사람들은 쉬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 집에 돌아가 농사도 짓고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거죠. 그러다 다시 당번이 되면 일을 하는데, 이 사람은 아주 머리를 잘 썼어요. 그때 율법의 순회 공개강좌를 실시합니다. 우리로 치면 교사학교 같은 걸 만들어서 말이죠. 비번인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합니다. 사경회를 연 것이죠. 그러니 얼마나 은혜로웠겠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 제사장들이 평범한 직업에 속하지 않고, 전부 불러모아서 율법을 강론하고 지도하는 거예요. 그러니 나라가 얼마나 은혜로운 분위기였겠어요.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다스리면 나라가 화평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잖아요. 그런데 그렇지가 못했어요. 왜냐하면 이 사람은 신앙적인 영향은 아버지 아사로부터 많이 물려 받았는데, 즉 개인적으로 보면 전혀 흠이 없어요. 경건하고 거룩하고 정직하고 사랑도 많고 잘 참고.....그런데 지도자가 되는 거는 그런 거 가지고 안 된다 말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아마 하자가 없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면 한없이 피곤한 사람 있죠. 결단력도 부족하고, 판단력도 미숙하고 기도는 많이 하는데 용단하는 것이 없고.......그럴때는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많은 사람을 다스리는 지도자 위치에 그가 오면 정말 피곤한 거예요.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러므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경건한 성품과 인품 그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합니다.
신앙으로 전쟁을 합니다. 모압 암몬, 에돔 모두 트랜스 요르단의 연합군이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침공을 합니다. 그때 기도와 찬송으로 이어지고 브라가 골짜기에서 승리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일생에 지울 수 없는 잘못을 합니다. 그게 두고 두고 남왕국 유다에 가시가 됩니다. 그건 이 같은 동족인 북왕국과 치열하게 싸우니 얼마나 힘들어요. 그러니 화해를 해요. 그런데 이 화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화해가 아니었어요. 화해의 징표로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이세벨은 누군가 하면 페니키아 계통의 해양민족에서 일루 건너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한 신앙에 불타고 있는 사람인데, 그 신앙은 바로 바알 신앙의 붙타는 전도자였어요. 자기 한 몸 불살라 이스라엘만 이교화 할 수 있다면 정말 땅 끝까지 가겠다는 그런 순교의 열정을 지닌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가 거기 들어와서 남편을 만나는데, 그게 아합이죠. 그는 똑똑하긴 한데 부인에게 쥐어사는 아주 우유부단한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굉장히 신앙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예를 들면 나봇의 포도원 사건같은 것을 보세요. 나봇이라는 사람이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왕도 주책이 없지, 그 포도가 너무 탐스럽게 자라니까 병이 났어요. 그 포도를 가지고 싶어서. 그게 뭐 그렇게 가지고 싶었을까? 그렇게 갖고 싶은데 그걸 못 뺏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해준 신앙의 원칙은 지계표신앙이라는 것이 있어요. 땅지 경계선 해서 경계선 신앙이라는 거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지파별로 땅을 정해 주시죠. 지파는 다시 족속별로, 다시 족속은 가족별로 땅을 나누어 할당해준 거예요. 이것은 빼앗겨도 안되고 빼앗아도 안되요. 노예로 팔려 가거나 땅을 빼앗기게 되는 때도 있는데, 안식년에 돈 가지고 오면 물러줘야 되요. 그리고 희년에는 무상으로 모두 돌려주어야 되거든요. 그러니 땅의 주권이 하나님께만 있고, 하나님이 정해준 사람만이 지킬 수 있는 것이었죠. 그게 신앙이예요. 그러니 그 남의 것 빼앗는 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 지 기억하면서 고민하는 거예요. 그게 신앙과 불신앙의 갈등이죠. 그런데 부인 이세벨이 그런 걸 뭐 고민하냐, 때려죽이고 가져오면 되지, 그러면서 그를 때려죽이고 뺏어버리죠. 그러니 그가 열린교회 자매들하고만 결혼했어도 역사에 이렇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잖아요. 신앙적으로 잘 인도해서 테이프도 들려주고 책도 읽어주고 했으면 훨씬 나은 사람이 되었을 텐데.....결혼을 잘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잊지는 않았지만, 신앙과 정치가 일치되지 않았죠.
드디어 이제 오므리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안정 세력을 얻습니다. 그 다음 이제 세속적 의미에서 강력 번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세벨산에 성을 건축하고 사마리아로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수도를 정합니다.
다음 모압 왕국을 속국으로 삼아 트랜스 요르단을 차지하고 다윗 솔로몬 이후 크게 잃어버렸던 국권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십년 동안 모압을 통치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크게 타락하게 됩니다.
한편 그 때에 아합 왕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남북 화해를 위해서 딸 아달랴를 유다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에게 줍니다. 모압과 암몬을 저지하고 트랜스 요르단 아람을 막습니다. 또 다메섹을 막습니다. 유능한 왕이었어요. 트랜스 요르단을 확보하고 이 땅이 굉장히 비옥한 땅인데 여길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엡발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게 됩니다. 베니게. 이게 페니키아예요. 그러면서 종교적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일어나고 사치와 우상숭배가 극에 달합니다.
아람왕 벤하닷이 이끄는 32 연합군의 침공을 격퇴합니다. 이차 침입을 아벡에서 굴복시키고 앗수르 일차 침입을 벤하닷과 연합하여 물리칩니다. 정치적으로 매우 유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려는 아람 군대를 유다왕 여호사밧, 경건했는데 좀 멍청했어요. 이 사람과 연합하여 전쟁을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간교한지, 둘이 연합군을 이루었는데, 왕이 친히 마차를 이끌고 나와 전쟁하는 것을 ‘친정’이라고 하잖아요. 그때 자기도 왕이고 여호사밧도 왕이잖아요. 그런데 자기는 평복을 입고 여호사밧은 멋있는 가마에 태워 전쟁에 보내요. 그러니 적군이 딱 보기에 저놈이 왕이다, 저놈만 죽이면 된다 하고 막 퍼붓는 거죠.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이 멍청한 왕은 살고 똑똑한 왕이 죽임을 당하죠. 하여간 그렇게 여호사밧이 멍청했어요.
혼합주의를 추구하고 베니게와 친선을 했습니다. 이때 활동하던 선지자가 누구예요. 엘리야와 엘리사. 그러니까 어때요? 시대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선지자를 보내는 거예요. 이적과 강력한 말씀, 그리고 불굴의 선지자를 보내서 그 시대를 말씀으로 도전하다 죽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어두운 시대일수록 몰라서 그렇지 어디선가는 똑똑하게 들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후일 심판하셔도 정당성을 획득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시는 겁니다.
계속봅니다. 그러다가 교훈이 뭔가하면, 엘리야가 이적을 7년, 엘리사가 14해 이렇게 점점 암흑기로 다가갈수록 더 큰 기적이 일어납니다. 교훈이 뭐냐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해야 할 백성들이 세속 나라의 번영과 영화만을 추구하다 마침내 몰락합니다.
오므리 왕가가 유다에 끼친 영향
1. 세속적 부강, 국방 강화, 여호사밧과 아합의 영합으로 두 나라 간 긴장은 해소되었지만, 그러나 여호사밧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평안은 유지되고 국권은 확장되었지만, 종교적 부패와 타락을 부채질해 결국 국권이 쇠퇴하고 아합의 딸 아달랴가 유다 왕국의 씨를 학살해서 결국 유다왕국의 계대가 일시 중단되고 6년 간 아달랴가 비정상적 수렴청정시대를 열게되는 것입니다. 한편 그때 여호람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여호람은 경건한 아버지 밑에서 아주 신앙이 없는 아들이 태어난 것이죠. 부왕의 섭정시 경건을 배우지 않고 세속적 정치와 술수들을 배웁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길을 따르는데 결국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을 받은 것이죠. 형제와 방백들을 학살하고 그의 약한 종교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에 북왕국 이스라엘 선지자가 무서운 형벌을 예고하고 결국 병으로 죽게 됩니다. 그리고 국세가 미약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호람이 들어서고 나서 얼마 안 있다 죽어버리게 되요. 그리고 이제 아들 아하시야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아달랴가 학정을 하게 되는데 그 여자가 피의 숙청을 하게 되요. 그 반야훼 종교 정책을 쓰는 겁니다. 반대세력 형제 귀족 이런 것들을 모두 없애버리는 거예요. 그때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마침 그때 아합 왕가가 몰락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 이세벨이 죽음을 당하고 아합 가문이 초토화 되고 남편도 죽고 아들 아하시야도 죽음을 당하니까 피의 숙청을 부르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이 결국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기의 모든 골육지친들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무서운 여자죠. 그렇게 싹 죽여버릴 때, 죽임을 당하지 않고 도망간 유일한 후손이 하나 있는데, 그게 누구냐하면 요아스예요. 요아스가 일곱 살 되던 해에 다윗의 후손 요아스를 왕위를 잇게 해야 한다면서 반정을 일으키는 거예요. 이때 제사장 이스라엘 족장 군대 지휘관 레위인 모두 호응을 합니다. 백성 스스로 바울의 단을 훼파하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처죽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요아스가 즉위하고 성전을 수리하고 번제가 회복되고 영적인 부흥이 풍만하게 됩니다. 그동안 누가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냐하면, 여호야다가 스승으로서 그의 뒤를 봐 준 것이죠. 그러다가 여호야다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정책이 수정되고 유다 방백들의 청원을 허용해서 아세라 목상과 우상들을 섬기게 됩니다. 타협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끊임없이 경고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여호야다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만 그를 돌로 쳐 죽이도록 허용합니다. 불신앙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다메섹 왕 하사엘이 침략하고 많은 방백이 사망하고 자기는 부상하고 결국 금과 은을 바쳐서 예루살렘을 떠나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부하에게 피살당하게 되죠.
바로 그때 다시 북왕국에서는 예후 왕가가 들어서는데, 이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표면적으로는 바알을 섬기는 사람을 다 때려죽여야 한다고 했어요. 이 사람이 등장을 해서 처참하고 피의 살육을 저지릅니다. 예후 왕가가 약화되게 됩니다. 혁멍을 일으켰는데, 약화 되게 된 원인이, 이 사람이 종교적으로는 하나님 율법을 전심으로 섬기지 않고 여로보암을 그렇게 미워하고 여로보암의 죄, 우상 숭배의 죄를 지은 오므리 왕가를 멸하고 그 나라를 빼앗는데, 자기는 오히려 여로보암의 죄를 답습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지나친 숙청을 가합니다. 그래서 아합 왕가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거기 관여한 모든 사람들을 죽여요. 그러니 고급 인력들이 다 잃어버려지고 유능하게 나라를 다스릴 사람들도 초야에 붇혀버리는 거죠. 혁명이 감정적으로 번지니 유능한 사람들이 협조를 꺼리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아하시야와 그의 형제들도 죽임을 당합니다. 유다와 동맹 관계가 끊어지고 긴장 상태가 고조 됩니다. 붂쪽 베니게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국경 수비에 힘을 소진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21쪽에 보면 궁극적인 원인은 여로보암의 금 송아지를 미워하지 않고 벧엘과 단에서 이것을 계속 섬기는 죄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은 앗수르로부터 침략가지 받으면서 왕가가 끝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바로 그때에 웃시야 왕이 들어섭니다. 이 왕은 아주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렇죠? 영토가 확장되고 애굽의 변방 에돔 이 끝에까지 다 주관하게 됩니다. 북부 연안 엘롯 항구를 건설하고 남방 항구를 제압합니다. 그리고 동쪽 암몬에게서 조공을 받고, 서쪽으로는 만만하지 않던 블레셋까지 정복을 하고 예루살렘 성을 견고히 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강력한 판도를 유지한 거예요. 산업정책은 홍해를 통해서 아라비아와 무역을 하고, 복축을 위해 물웅덩이를 파서 물 문제를 해결합니다. 국방 군사 정책에서는 정예부대를 훈련하고 풍부한 무기를 보유합니다. 이렇게 웃시야 왕이 충분히 국방, 산업 등에 힘쓸 수 있던 이유는 블레셋이 신흥 앗수르에 꺽여 약해지게 됩니다. 앗수르는 아라랏의 공격을 받고 이제 자신들의 문제로 말미암아 남방정책을 중단하게 되는 것이죠. 그때 강성해지니까 사치하고 교만하고 제사장 직분까지 취하려 하다가 문둥병으로 징계를 받고 죽습니다. 결국 육체로 마치죠.
그때 한편 11페이지 두 번째 칼럼입니다. 요아스 왕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국세를 회복하게 되는데 여로보암의 죄, 우상을 떠나지 않았으나, 엘리사가 병들었을 때 아버지여, 아버지여 하며 울기도 합니다. 엘리사는 아벡에서 아람왕을 이길 것을 예언합니다. 유다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사의 공격을 벳세메스에서 격퇴하고 이때 이후 유다 왕국은 완전히 북쪽 이스라엘에게 복속하는 상태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스라엘을 부강케 한 여로보암 2세라는 왕이 나타나는데, 이 사람은 이름을 기억해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유래없는 최장 기간 40년간을 통치하면서 황금기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하맛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최대 판도를 획득했고, 다메섹을 속국으로 삼았어요. 늘 공격 받던 여기를 점령해 버린 거죠. 그리고 트랜스 요르단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이쪽 아래를 다시 북왕국이 장악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국제 정세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다메섹이 앗수르의 공격으로 약화되었고 앗수르는 새로운 국방 세력인 우라라트 ·를 막기에 골몰했습니다. 국외에 눈돌릴 여유가 없었고 약한 지도자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어서 여러보암 2세의 통치능력은 찬란하게 빛나게 됩니다. 얼마나 ·부자였나하면 호세아와 아모스에 나오잖아요. 여름이면 여름 별장으로 놀러가고, 겨울이면 겨울 별장으로 놀러가고 아침에 일어나 지기개를 켜는데 침대는 수입한 상아를 깍아만든 것이었어요. 비단과 아주 호화로움 속에서 사람들이 아주 떵떵거리고 산 거에요. 요즘으로 하자면 연소득이 한 삼만불쯤 되는 모양이에요. 다 그렇게 잘 사는 거죠. 그런데 종교적으로 극히 부패하는 거죠. 그때 호세아같은 눈물의 선지자가 나타나서 아모스와 같은 정의의 선지자가 나타나서, 태평한 시대의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데 그것이 다음 시대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죠.
한편 히스기야가 등장하게 됩니다. 남왕국 유다에서는 722년부터 682년 이니까 약 36년 제위하는 동안에 그는 개혁 운동을 철저히 단행합니다. 그래서 성전 숙정을 하게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유월절을 지킬 것을 명령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게도 초청장을 보내요. 야, 우리가 이제 유월절을 성대히 지킬 것이니 이때 만큼은 국경 개방할 테니 너희들도 와라, 그런 거죠. 그래서 신앙의 큰 은혜로운 분위기가 북왕국까지 전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일들이 있게 되는데 그때 놀라운 신앙이 뭐냐하면, 말씀 신앙이에요. 그때 까지 뭐가 남아 있었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사건 가운데 잊을 수없는 사건 하나가 있었어요. 불뱀을 물린 사건이에요. 불뱀이 왜 불뱀이냐?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불꽃같이 빨개서 불뱀이라는 학설이 있고, 또 하나는 물면 불 붙는 것 같이 열이 난다고 해서 불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물려보지 않아서 어느 쪽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후자쪼깅 아니겠는가 싶어요. 그 불뱀에 물려서 고생할 때, 모세가 하나님의 명렁을 따라서 놋뱀을 매달아서 높이 들면서 이거를 바라보라 하잖아요. 그걸 바라보고 사람들이 나음을 얻은거예요. 그게 요한 복음 3장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건으로 증언되잖아요. 그 사람들이 그 사건이 얼마나 고귀하니까 그걸 가지고 거두어다가 대대로 신성하게 보관을 한거예요. 그런데 시드기야가 나타나서 뚜드려 부신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큰 충격이었죠. 뭐라고 하냐면, 이것은 느후스단에 불과하다 그런거예요. 이거는 놋조각에 불과하다 그것이죠. 그러면서 말씀을 통해 거룩한 하나님을 직접 바라보도록 한 거예요. 정말 종교개혁자들이 머리숙여야 될 사람 아니에요? 얼마나 멋있어요. 다 부셔버리는 거죠. 지금도 캐톨릭에선 몇 겹의 금고에다 싸고 싸고 또 싸서 보관을 하는데, 그게 뭔가 하니까 톱밥 찌끄러기가 막 나와요. 이게 뭐냐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부스러기라고 말이죠.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그런 걸 다 때려부수면서 놋조각에 불과하다 하면서 선조들이 숭배해 왔던 것들을 퇴치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씀을 바라보도록 진리 운동을 펼치는 거예요. 얼마나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이 있었으면 그런 일을 하겠어요? 그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반 앗수르 정책을 씁니다. 이때 산헤립이 침략을 합니다. 도읍이 포위됩니다. 금은을 거두어 화해를 요청했지만, 거절 당합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의 충고를 듣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산헤립을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병이 들게 되죠. 앗수르와의 전쟁중 질병에 걸리는데 그 때 이제 네가 죽고 다시 살지 못하리라 선고하고 가는 선지자를 보내고 나서 벽을 향해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지요. 제가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며 살아온 것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했더니 하나님께서 15년을 연장시켜 주셨죠. 그런데 그냥 그때 죽었으면 좋았을 뻔 했어요. 이 사람은. 괜히 15년 더 살아가지고 좋은 꼴도 못 보고 마지막에는 바벨론 사신들이 문병온 거 거든요. 그때 가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요. 데리고 가서 무기고를 보여주고 보물창고를 보여주면서 우리나라는 이렇게 부강하다......이게 정치적으로는 문제가 될 게 없는데 신앙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큰 문제가 된 거예요. 결국은 심판을 하는데 너는 이제 망한다. 그랬더니 그때 즉시 회개 해야 하는데, 그 대신 너 때는 안 망하고 후에 가서 망한다 그런 거예요. 그냥 뭐 그런가보다 하고 말아버려요. 그래서 결국은 육체로 마쳤죠. 이때 활동한 사람들이 이사야, 미가 선지자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신앙의 부흥이 없었지만, 남 유다는 간헐적으로 신앙 부흥이 있었기 때문에 신앙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거예요. 그 후에 이제 왕이 하나 들어서게 되는데, 그때 북왕국 이스라엘 최후의 왕 호세아가 들어서게 됩니다. 영토를 축소하고 앗수르에 굴복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괴뢰, 꼭두각시가 되죠. 비글랏글레셀이 죽자 앗수를 벗어나고자 했지만 아들 살만헤셀이 침략했고 약해진 애굽을 믿었지만 그러나 호세아 9년 사마리아 성이 함락당합니다. 여러보암에서 호세아까지 209년 동안 9번 왕가 19왕 8번의 혁명이 있었고 끝날 때마다 온 가문이 진멸되는 심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때도 선지자들을 보내어 엘리야 엘리사 예후 여로보암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잡족 사마리아와 동거하게 되고 예후 여로보암 선지자는 아니고 그 시대에 하나님이 보냈다는 거죠. 종교적으로 혼란하고 혼합종교가 발생하고 이때 사마리아 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들은 잡종이에요. 국제화 정책에 의해 피가 섞인 민족들이에요. 그리고 나서 최후의 개혁왕 요시야가 등장하게 됩니다. 개혁은 전무후무한 개혁이었으어요. 유대와 이스라엘의 온 성을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하고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이때 발견한 율법책이 신명기일 것이다, 그렇게 추정합니다. 옷을 찢으며 회개하고 개혁의 절정을 이루고 사사 시대 이후로 가장 성대한 유월절을 치르게 됩니다. 반 앗수르 정책을 취해서 앗수르를 도우려는 애굽을 막기위해 므깃도로 진출했다가 결국은 전사를 하게 됩니다. 갈그미스 전쟁입니다. 애굽의 바로느고가 므깃도에서 결국 요시야를 이기고 하란을 점령 못했으나 수리아 팔레스타인 지방을 점령하게 됩니다. 여호아하스를 폐위하고 여호야김을 세웠습니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에서 애굽의 바로를 격퇴시킵니다. 여기에서의 패권으 놓고 신흥국이던 바벨론과 오랫동안 여기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치적 종주국인 애굽이 한판 벌리는 거죠. 여기서 결국 애굽이 패하고 바벨론이 승자로 등장하면서 이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이 바벨론에 의해서 남왕국 유다도 멸망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멸망한 나라가 1940년대에 시오니즘으로 선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 사는 중동 지방 사람들 입장에서는 황당한 거예요. 2500년 만에 나타나가지고 여기가 옛날에 우리 땅이었다고 하면서 나라를 세운거예요. 그러니 황당하죠. 우리가 중국에 가서 어디 성하나 가지고 여기가 우리 조상들이 있던 땅이었는데 하면서 깃발 세우고 나라를 세운다고 해 봐요. 그렇지만 우리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이스라엘 편이죠?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 편 아니에요.
그리고 이제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완전 섬멸하기 위해 애굽을 칩니다. 그런데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죠.
유다 멸망의 교훈.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다.....이게 무슨 얘기예요. 전에는 애굽에서 나와서 나라를 다스렸는데, 결국은 망해서 다시 배벨론의 포로가 되고ㅡ 다시 원위치가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구약 종교는 여기서 끝이 나면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데 영적인 종교가 탄생하게 되요. 세상 나라가 멸망하면서 그 껍질을 깨고 여호와의 나라가 준공되고 새로운 창조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대하는 영적인 나라가 이루어진단 말이죠. 그러면서 22페이지에 유다 단독 시대에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고 귀환하게 되요. 고레스 왕은 이제 바벨론이 통치하게 되잖아요. 바벨론 통치 이후 그 다음 나라가 메대와 바사에요. 이건 역사적을 메디아고 , 바사는 페르시아에요. 그 다음 나라는 헬라로 넘어가죠. 그리고 그 다음이 로마로 넘어가서 신약시대에 들어오게 되잖아요. 알렉산더 같은 사람이 여기에 나오게 되는 것이죠.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가면서.
그러면서 바사와 고레스가 관용의 정치를 합니다. 피 지배국의 종교를 장려하고 피 지배민족에 만족을 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 민중이 그를 크게 환영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유혈 전쟁없이 바벨론을 점령하게 되요. 이건 종교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그래서 바벨론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피지배족의 종교에 대해 아주 강압적인 정책을 취해요. 그리고 이 바벨론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지배 계층으로 들어오게 되어서 이 지배계급의 상층부에 있는 종교를 하층부에 강요하게 되요. 이 사람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종교는 말두킴이었는데, 월이 달월자예요. 월신 낮날( 태양?)을 더 섬깁니다. 그러다 결국 바벨론 왕 나보니도스의 이런 종교정책이 강한 반발에 부딪히는 중에 고레스 왕이 나타나서 말하자면 말두구를 섬기면서 각 피지배국의 종교를 존중하는 정책을 쓰는 거예요. 그러면서 많은 피지배국의 동의, 호응을 받는 거죠. 그렇게 전쟁없이 무혈혁명으로 새로운 지배국이 탄생하는데 그게 바사에요. 그러면서 유다의 포로에게도 선언을 내리는데, 본토로 돌아갈 사람은 가라, 성전도 재건하라, 한 거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죠. 그러면서 이스라엘도 재건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세 번을 귀환하게 되는데, 이때 돌아온 사람들이 성전도 다시 짓고 성도 다시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결국 고레스 왕이 죽게 되고, 유목민의 반란을 진압하는 중에 전사하게 되고 정복자로서 존경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이 나고 이런 구도를 그리는 거예요. 이렇게 북왕국과 남왕국이 계속되어 오다가 북왕국이 먼저 망하고 남왕국이 맡게 되죠. 포로시대에 접어들어간 다음에도 선지자들이 계속해서 보냄을 받게 됩니다. 에스겔 같은 사람이 포로시대 선지자였죠. 예레미야 같은 사람들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본 사람들이었죠.
그리고 후에 학개 같은 사람들도 후대의 선지자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나와서 예언을 하게 되지만, 결국은 끊쳐지게 되죠. 이제 이때가 중간사 시대라고 불러요.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등장하시기 전까지 중간사 시대라고 하는데, 이때 커다란 변화들이 많이 일어나는 거예요. 성전이 사라지잖아요. 성전이 사라지고 또 제사가 사라져요. 그러니 이스라엘의 종교는 제사 중심의 종교에서 다분히 책 중심의 종교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왜 그러냐하면 여기서 포로로 끌려가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종교를 교육을 통해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이때 만들어 진 것이 뭐냐면 율법에 대한 해석들에 대한 책들과 회당이 성립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회당은 열가정에 평균 하나의 회당을 세워 가지고, 당시 예루살렘에만 해도 약480개의 회당이 있었다 하니, 엄청난 회당들이 생겨나서, 그것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율법을 쓰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요. 그래서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파, 셀롯 당원, 죽 신약시대에 나타나는 종교적인 계층들이 이 중간사 시대에 생겨납니다.
또 하나는 이렇게 제사 중심에서 책 중심의 종교가 되면서 이것이 후일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자연스럽게 바이블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이루어지는데 매우 큰 배경을 이룬 것이에요. 그리고 여기서 구약적 의미의 우상숭배가 완전히 사라진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의 사고속에 종교적인 전환이 크게 이루어지게 되요. 그러면서 제사, 우상숭배 이런 것 보다는 책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고 사람들에게 지적으로 가르치고 삶에 호소해서 하나님 율법을 지키는 삶으로 몰입하게 하는 신앙운동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여기서 이제 하나님의 율법을 해석하는 일들에 있어 여러 가지 운동들이 있는데 이때 형성된 흔히 말해 유다이즘, 유대주의가 생겨납니다. 유대주의는 제사가 끝나고 책 중심의 종교가 되고 가르치는 중심의 종교가 되었을 때에 그것들을 구성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해석과 거기에 기초한 유대인들의 생활방식, 태도를 가리켜요. 그런데 기억할 것은 이 유다이즘은 구약의 종교를 그대로 이은 것이 아니라 뒤틀린 거죠. 그리고 이제 예수그리스도께서 등장하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면서 등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이의 시기들을 통해 신약성경으로 넘어오고 구약 성경에는 명백히 나와있지 않은 신앙적인 개념들이 형성되어요. 예를 들어 세례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분명히 안 나오죠. 그리고 천국과 지옥에 관한 개념들이라든가 여러 가지 개념들이 여기서 형성이 되는 거예요. 그중 어떤 것들은 신약 성경으로 넘어오게 되요. 그래서 유다주의는 역사적으로는 구약의 역사를 잇고 신약의 그리스도 신앙을 대표하는 모체가 되지만, 신학적으로는 이렇게 구분되는 거예요.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이렇게 새로운 신약 종교가 선포가 되면서 구약 종교에서 맥을 다시 이어주는 사건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서는 비록 이렇게 계시가 끊겼지만,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서, 신약시기를 준비하는 시기로 사용하신 거예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 중심의 종교 등을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이때 태동된 기독교 신앙이 크게 세가지로 영향을 받게 되는데,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영향을 받게 되고, 문화적으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게 되는 거예요. 종교적으로는 유다이즘, 유대주의를 배경으로 하게 되는 거예요. 이 세가지를 모태로 해서 기독교 신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면서도 이 로마니즘과 헬레니즘과 유다이즘과는 전혀 다른, 단지 도구로 사용하고 옷은 입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구약의 종교와 전혀 다른 것이었어요.
맨 처음에기독교가 탄생되었을 때 로마의 핍박을 심하게 받지 않았던 이유도, 이 기독교가 주다이즘의 한 종파라고만 믿었던 거예요. 로마인들에게는 이 유대인들이 아주 골치아픈 거예요. 그러니 유대인들이 있는 땅에 총독으로 간다 그러면 아주 최고로 골치 아픈 발령이었어요. 축하가 아니라 위로를 받을 정도로. 그런 속에서 자기네끼리 이건 구약의 종교가 아니다, 툭탁거리고 싸우는데 로마는 개입하고 싶지가 않았던 거예요. 너무 골치가 아프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거기서 기독교 신앙이 배태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과는 뭔가 틀리구나 하고 손을 대기 시작한 때에는 이미 너무나 커버린 후에요. 복음의 능려으로.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 껍질을 깨고 나온 거예요. 그래서 이 왕국이 새롭게 이루어진 그 왕국이, 다윗에게 약속한 그 위가 영영 하리라고 한 그 예언의 영적인 성취를 통해 종말론적인 왕국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됐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셔서 이처럼 부르심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시오니, 하나님이여, 저희에게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 속에서 이 귀한 부르심을 감당해 나가도록 더욱 준비된 마음과 정신과 지성을, 신앙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지식을 더하시고, 우리 자신을 가르침에 합당한 자로 연마하기 위해 수고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 1907년 평양 대 부흥과 기도
오늘도 이 시간에 우리 역사에 나타났던 위대한 부흥의 기록들을 살펴볼때, 우리에게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아울러 우리가 조상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들이 오늘 우리 시대에도 재현되어서 하나님께로 이 민족이 돌아오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1907년 평양 대부흥과 기도
당시 우리 나라는 을사보호조약 이후 독립국가로서의 실질적인 지위를 거의 박탈당했다. 온 국민이 국권을 상실한 절망과 좌절 속에서 고통하는 위기 상황 가운데 조국 교회는 말씀 사경회, 성경 연구회 등을 통해 기독교인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었고, 자립의 정신으로 교회의 설립과 운영을 책임지는 신앙심 그리고 자력 전도의 실천으로 형성된 강한 고백적 공동체 정신 등은 당시 국민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보루처럼 보였다.
당시 특별 상황은 조국 교회로 하여금 정치에 대해 민감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일제의 강점과 폭압 치하에서 해방을 꿈꾸는 소망은 당연히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일제가 망하고 나라를 되찾는 것은 국민적으로 합의된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국교회는 정치에 민감한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선교사들의 반발은 컸다. 복음은 구원과 개인의 내적 확신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들은 교회가 정치를 위한 기구가 아니며 복음적이고 영적인 실체임을 강조하며 교회가 정치 관여 하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순수한 신앙적 의도 말고도 한국을 둘러싼 미일 간의 밀월관계나 선교사들의 정치 활동에 대한 일본의 경계, 그들의 정치 활동으로 인한 양국간의 긴장을 원치 않는 미국 정부의 입장등도 적지 않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각주 2번에 가면 말이죠, 당시 미국의 극동 정책은 조선인에게 매우 불리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입장이었고 조선에 대해서는 경멸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이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와 북방에 진출하게 함으로써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는 군사적 계산이 깔려있었습니다. 1905년 7월 19일에 미일 간 가스라테프트 밀약이 성사 되는데, 가스라는 일본, 테프트는 일본 사람이에요. 이 밀약에서 양국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고, 미국은 일본의 한국의 일본 지배를 인정하고 양해 한다는 각서를 체결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가서, 어쨌든 선교사들의 정치적 입장은 한국민들에게 즉각적 분노를 샀고, 이로 말미암마, 선교사들과 조국교회 교인들 사이에는 심각한 갈등과 대립이 야기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선교사들은 선교 초기부터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깊은 죄절에 빠지게 되었고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1907년에 부흥을 논함에 있어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선 첫째, 거기 줄 치세요. 조국 교회가 경험한 1907년의 대부흥은 우리만의 독특한 경험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생기를 잃은 교회를 소생시켜오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의 전형적 유형에 속하는 부흥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역사에서 일어난 부흥과 성경 역사에서 일어난 부흥의 일반적 원리 속에서 이것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것에 줄 치세요. 1907년의 부흥의 뿌리는 선교사들의 선교 정책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07년 대부흥의 뿌리가 두 개 인데 하나는 선교사들 자신이 먼저 회개해요. 그래서 선교사들의 영적 각성과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 열렬한 기도 모임이 첫 번째 뿌리이고, 또 하나는 이미 1907년 부흥 이전에 조국 교회가 가지고 있던 복음적인 경건이 그것이에요. 그러니까 한국 교회는 1907 대부흥이 일어나고서 복음적이고 열렬하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는 심각하고 진지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벌써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이유는 1880년대, 1884년인가에 처음 선교사들이 들어오잖아요. 그 처음 들어온 선교사들의 신앙의 특성이 한국교회를 그렇게 자리 매김 했어요. 그런데 축복되게도 그때 들어왔던 사람들이 아주 철저한 청교도 신앙을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1900년 초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서 성수주일하고, 성경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합니다. 그럴 정도로 이미 기본적 토양이 되어 있었다는 말이죠. 부흥에 있어 이런 토대는 굉장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그런 보수적인 신앙이나 성경을 중시하는 신앙의 태도가 저절로 부흥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지만, 부흥이 일어나면 신앙이나 혹은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이 성경으로 돌아가요. 그런데 만약 성경에 대해 느슨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던지, 아니면 신앙 생활에 대해 엄격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진짜 부흥이 일어날 때 사람들이 그렇게 신앙적으로 엄격한 삶을 실천하고 싶어하고, 성경적인 어떤 회개나 이런 것들이 일어날 때, 성경에 대해 기본적인 합의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부흥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현상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단 말이죠.
그러므로 아이디 토마스 같은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부흥의 교회 역사를 볼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라 믿는 것, 그런 기본적이고 보수적인 신앙들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들이 저절로 부흥을 불러온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흥이 일어나면, 가장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로 눈이 돌아가게 되는 거에요. 관심이....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이 합의가 되어있는 한국교회의 성경적인 풍토는 그 자체가 부흥을 불러온 것은 아니지만, 부흥이 왔을 때, 그것을 아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확고한 성경적 토대를 놓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한 신앙이 들어가서 굽어지면, 자기가 그릇 확신하는 대로 확신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부흥이 일어나던 아니던, 올바로 가르침을 받는 것은 중요한 것이에요.
특히 당시 조국교회 신자들이 누리고 있었던 복음적이고, 성경을 중요시하는 경건과 삶 이런 것들이 부흥의 토양이 된 것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라는 겁니다. 물론 부흥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토양이 된 것이에요.
영적인 각성과 부흥에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기독교 신앙 본질에 대한 왜곡된 이해이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된 이해는 반드시 신학적인 편견과 심리적인 편견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을 갖게 되면, 그러한 시각이 성경을 보는 시각을 통제해요. 그래서 성경을 읽고 연구해도 복음의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 이런 예는 회심하기전 사울의 예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도 바울이 유대교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리스도이심을 잘 알아보지 못한 것도 이러한 신학적인 편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편견은 성경을 보아도 복음을 보지 못하게 하였고, 이방인들을 멸시하는 심리적인 편견의 토대도 되었다.
그 다음 우리의 성경신학.
대부흥 이전에 조국 교회가 이렇게 복음적이고 철저한 성경적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초기 우리 나라 선교사들의 신앙에 기여받은 바 크다. 당시 1883년에서1901년 사이 선교사들이 약 40명 정도 들어왔는데 이들 중 16명은 올드 프린스턴 출신이었고 11명은 맥코맥 신학교 출신이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프린스턴 신학교가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그 유명한 프린스턴 신학교예요. 거기는 아주 좋은 신학굡니다. 거기는 웬만큼 해서는 잘 안 받아 줍니다. 최소한도 토플 600개 이상은 해야 아마 받아줄 것입니다. 아주 네이티브 스피커같이 해야 받아 줍니다. 지금은 신학부 보다는 일반 학부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 학교가 1929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 신학교를 올드 프린스턴이라고, 그 이후를 뉴프린스턴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올드와 뉴가 무슨 차이가 있냐면, 이 학교가 누구에 의해 세워졌냐하면, 이 학교의 초대 학장이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는 조나단 에드워즈에요. 그 때로부터 아주 쟁쟁한 신학자들을 많이 배출했어요. BB워필드 또 그래셤 메이췐. 에드워드 제이 영, 이런 사람들이 모두 복음주의 신학교를 좌우한 굉장한 사람들인데 이들이 모두 올드 프린스턴 출신입니다.
그러면 왜 같은 프린스턴을 올드하고 뉴로 나누냐하면 이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자유주의적 신학으로 기울어지니까 반기를 들고 뛰쳐나와 생겨난 학교가 지금의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예요. 그런데 29년 어간에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당시 이미 18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륙에서는 아주 사상적 변화가 일어나요. 그건 합리주의예요. 과학적 실증을 중시하고 초자연적인 것들을 믿지 않는 사고방식들이 유행하게 되죠. 그러면서 이제 기독교 하나님에 대한 것도 대폭적 수정을 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철학화하는 작업들이 나타나게 되요. 그러면서 성경을 이제 하나님 말씀이라고 보는 것에 대폭적 변화가 일어나고, 기독교를 독특한 유일한 종교라고 보지 않고, 여러 종교를 연구하는 방식대로 기독교를 연구해보니, 기독교도 역시 평범한 인간들의 신앙적 경험을 통해 진화해 온 하나의 종교 일반에 불과하더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정통적으로 중시되어오던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에 대해 폭격을 퍼붓습니다. 그러니까 뭐 동정녀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구속했다는 것 그런 것들......그러니 당시 그런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1900년대 들어오면서 우후죽순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런 신학의 진원지가 된 곳이 바로 독일이었어요. 그러니 어떤 식으로 연구를 하냐면 그게 이제 종교사학파나 양식사학파들의 연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구속했다, 라는 말이 나오면, 그들은 전제가 뭐냐 하면, 이건 분명히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빌려온 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어디서 배워왔나? 그러면서 중동지방의 문헌을 곳곳에서 막 뒤지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겠어요. 허무한 사람들이죠. 다 뒤지기 위해서는 수십개국의 중동 언어를 공부해야 되요. 그때 구약학 교수로 구약학을 변증했던 에드워즈 제이 영 같은 분이 36개 국어를 했다고 하니까 굉장한 거죠. 그런 걸 샅샅이 뒤져 찾아내는 거예요. 아하 있다. 이란 지방 어느 고장에 가보니까 누군가가 피를 흘려서 다른 사람의 죄값을 갚는다는 사상이 있다. 이게 여기 있고 이스라엘에도 있으니까 이건 틀림없이 빌려온 것일 것이다, 이렇게 연결을 하죠. 그 결론은 기독교의 교리책은 전부 여러 족속들에게서 잡다한 신화들을 주워 모은 게 되죠. 그러면서 어떤 운동을 벌리냐 하면 이 성경을 통해서는 이런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라, 자기가 소망하는 기독교를 여기다 첨가해 버렸기 때문에 이런 주관적인 기록을 가지고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참된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지금 얘기하는 것은 다 잘못된 것들에 대한 거예요. 괜히 어디가서 또 엉뚱한 소리 하지 말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 떼어내야지만 기독교의 참 실체가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게 바로 비신화 운동이에요. 그러면서 뜯어 내는 거죠. 예를 하나만 들자면, 오병이어 기적에서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 고기를 축복했더니 남자만 오천명이 먹고 남았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지금 실험해보라, 지금 일어나지 않은 것은 과거에도 안 일어났고 앞으로도 안 일어 난다. 그게 바로 과학이거든요.
이거는 이렇게 예수님이 기도 한번 해서 수많은 사람을 먹였으면 하는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배고픈 상태가 만들어 낸 거라는 겁니다. 그렇게 보니까 여기 담겨있는 진정한 의미는 뭐냐? 꼬마가, 예수님이 우리 점심은 어떡하니? 하니까 이 꼬마가 주님꼐 은혜를 받았으니까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이거 제가 먹으려고 싸온 건데 이거 주님 드시고 가난한 사람 나눠주세요 하고 내 놓았더니 그 아이의 모범적인 행동에 감화받은 수많은 사람이 내 도시락도 남 줘, 내 도시락도....해서 다 내 놓는데, 내 놓고 먹고 보니 그렇게 먹고도 남았더라......그럼 우리는 뭘 배우냐. 우리 함꼐 나눠먹자......이런 식으로 성경을 다 해석하는 거죠. 이런 풍조가 이미 19세기 말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 가운데 선두를 달린 것이 독일이었어요. 우리 나라에서는 미국으로 유학하는 것이 꿈이지만, 미국에서는 항상 신학쪽에서는 신학과 사상 철학 이런 쪽에서는 항상 원산지예요. 독일에서 철학이 한번 파도를 타고 나면 이게 정치 사회 경제 이 모든 방면에 영향을 주어 파장을 받는 거예요. 심지어 요리, 이런 것까지 영향을 줘요. 그러니 이제 미국인들이 미국은 너무 좁다고 생각하고 새 세계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미 거기는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들이 신학을 가르치는데 이건 다 뻥이다 이거예요. 구라파에서 이미 다 폐기처분되어 가는 학설들을 이제 막 신앙이 어쩌고 하면서 경건이니 가르친다는 거죠. 그런데 거기서 안 된다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학교 중직들을 다 기라성 같은 어른들이 가지고 있으니 정체를 드러냈다가는 한번에 날라가니까 발톱을 딱 감추고 있다가 세월을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연세된 분들이 다 은퇴해서 나가고 실권을 잡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이제 반란을 일으킨 거죠. 그래서 학교가 자유주의로 넘어가는 기점이 1929년인가 39년인가 그래요. 39년인 것 같애. 그때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 공부한 사람들은 상당히 보수적인 신학을 공부했고 그 이후 사람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것이에요. 이제는 다 저쪽으로 넘어갔죠. 그런 학교에서는 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 식으로 써서는 논문이 통과가 안 되요.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러니 아주 청교도적인 전통을 가진 아주 보수적인 신학교였고, 매코멕 신학교도 마찬가지 였어요. 당시 미국 북장로 교회의 해외선교부 총무를 지냈던 브라운은 그때 조국교회의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문호가 개방된 후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원래 청교도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었다. 이들은 우리 조상들이 한 세기 전에 뉴 잉글랜드 시절에 했던 바와” 한 세기 전이면 1700년대 잖아요. 그러면 이게 막바로 조나단 에드워즈 시절로 넘어가는 거죠. “꼭같이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 그들은 춤추는 것이나 흡연, 화투는 그리스도 인으로서 행할 수 없는 죄악된 행동으로 단정한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 다니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목사 만나면 손 대느라 정신 없어요. 감추느라고 막 이러다...우리 교회는 없지만 닫힌 교회에는 있어요. 우리 위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인데도 목사님 계시다니까 담뱃불 끄느라고,...천천히 꺼도 되는데. 그런 확실한 사고 방식들이 언제 생겼냐하면 바로 그 당시에 생긴 것들이에요. 술먹고 뭐 이러는 거 이런 걸 있을 수 없는 일로 본 거죠.
“신학과 성경 연구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이며, 성경에 대한 문학비평” 문학비평은 곧 고등비평인데 그건 성경을 일반 문헌이라고 보고 연구하는 거죠. “자유주의적인 신학은 이단시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신앙 특징 중 중요한 것은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근본적으로 성경적인 것임을 깨달았고, 성경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 곧 헌신에 대한 부족인 것을 알았습니다. 1907년의 대부흥 이전에 이미 교회 적으로 이런 구령에 대한 부담이 있었기 떄문에 대부흥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국 교회의 오순절이라고 불리는 1907년의 부흥은 이런 일련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모든 교회사의 부흥의 역사가 그러하듯, 이 부흥도 이전에 오랫동안 작은 부흥을 경험하고 기도하는 사람들 속에서 여명이 밝았습니다. 조국 교회에서 대부흥을 탐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1903년을 예비적인 단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1907년 부흥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그 이전 이미 있었던 성령의 은혜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 파송된 감리교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던 남 감리교 선교사인 화이트 양의 인도로 일주일 모임을 가졌습니다. 1903년 겨울, 원산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성경 강해와 기도회를 겸한 이 모임에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 분 안에서의 생활, 그리고 오순절에 있었던 초대 교인들의 성령체험 같은 것을 설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분이 어떻게 보면 1907년의 부흥의 불씨가 된 거예요. 중국에서 있던 한 여자가.....중국에 있던 한 여자가 목사를 제끼고 이 한 사람이 말이죠. 그러니 자매들 긍지를 가지세요. 한국교회를 뒤엎는 부흥의 한 불씨가 된 거예요. 아멘도 안하고 말이죠....
얼마나 놀라워요. 이 사람이 직장이나 다니고 밥이나 하다가 죽었으면 기억도 못할 상황에, 이 큰 역사에......열린교회 교사학교 강의에 등장하고 그러잖아요.
바로 이 의미있는 모임에 하디 라고 하는 목사이자 선교사인 사람이 참석하고 있었어요. 그는 원래 캐나다 YMCA의료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처음엔 독자적으로 파송되었는데 후일 남 감리교 선교회로 옮깁니다. 강원도 지역이 원래 네비우스 선교 정책에 의해서 많은 선교사들이 지역을 분할했어요. 여기는 장로교, 여기는 감리교, 성결교 이런 식으로 나누었는데 그때 감리교 담당 지역으로 떨어진 곳이 강원도예요. 지금도 강원도 가면 감리교가 강합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선교활동을 대단히 열심히 수행하며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거의 없고 연속되는 설교 사역의 실패로 큰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원래 선교의사로 왔으나 캐나다 대학 선교회와 인연을 끊고 남 감리교 선교회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이게 1898년의 일입니다. 원산 지역에서 원래 전도 사역을 하다가 사역지 조정에 따라서 강원도 지역을 맡았는데 지지부진하고 기진하였습니다. 당시 자신의 처지에 대해 그는 이렇게 술회함으로써 선교 활동의 좌절과 실패를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3년 동안 강원도의 처음 교회가 세워진 지역에서 힘써 일했으나, 그곳에서의 사역은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전도 사역에 있어 이렇게 실패하였다는 패배감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주었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섬김을 다하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하였습니다. 기대를 걸었던 선교사역의 철저한 실패는 그를 더욱 불안으로 몰고 갔고 그는 더욱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 가운데 자신의 죄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성령의 감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화이트양이 인도하는 원산에서의 사경회 기도모임에서 선교사들 앞에서 자기의 죄와 선교 사역의 실패의 원인을 나름대로 깨닫게 된대로 소상히 고백하였습니다. 아울러 자기 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그들의 죄를 깨닫고 더욱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를 취하여 견고한 신앙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피력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사람이 열심히 선교 사역을 하긴 했는데 어느 날 성령이 하시는 거죠, 성령이 깨닫게 하신 게 있는데, 자기가 와서 처음에는, 선교란 것이 원래 도성인신의 자세로 와서 선교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셨지만,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시잖아요. 죄인과 함께 사시면서 선교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나는 선교사들에게 그렇게 말해요. 선교사들이 아르헨티나에 만일 선교를 간다, 그러면 나는 이제 한국인이다 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재완 선교사라고 잠비아라는 나라에서 선교하시는 분인데 총신에 오셔서 특강하실 떄, 자기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잠비아 사람이다, 그런 정신으로 선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정신으로 선교를 안 하고, 그때 한국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얼마나 비참했겠어요. 말할 것도 없죠. 외양간에서 같이 잠을 잘 정도로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할 정도였으니 문명사회에 있다가 그 고통은 참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점점 자기는 문화적이고 호사스런 생활을 하고, 그러다보니 문화적 격차는 더 심하게 느껴진 거예요. 이러다보니 하나님 앞에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는 고백하기를 이러한 오나전한 실패의 상황에서 극도의 패배감이 자기를 불안 속에 몰아 넣었으나 기도하는 중에 깨닫게 하신 말씀을 통해 새로운 영적 체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것은 바로 성령 주심, 하나님이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성령 주심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깨달음과 체험을 동료들 앞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성령께서 내 심령 안에 충만하게 오시는 확증을 가지고 부끄럽고 당혹스러운 얼굴로 나의 교만과 완악함과 믿음 부족, 그리고 이런 불신앙이 빚어낸 악한 결과들에 대해서 자복하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회중들에게 강한 죄의식과 회개가 임하였다. 그리고 나의 그러한 죄인됨에 대한 확신이 믿음 생활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단순한 신앙으로 내가 성령의 은혜를 받았음을 알려 주었다.” 이처럼 하디 선교사가 깊은 은혜를 체험한 뒤 한국인들도 죄를 깨닫고 생생한 영적 체험을 통해 생명력있는 신앙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대 부흥의 전조가 될 만한 사건이 몇가지 있었는데, 이것은 화이트양이 인도한 모임, 이듬해인 1904년1월에 다시 개최된 교파별 연합 기도회였습니다. 이때는 장로교와 감리교 뿐만 아니라 침례교 까지도 연합하여 참여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모임에서 캐나다 장로회 소속 선교사 롭 선교사가 성령을 체험하고 여러 날 금식하며 자기의 죄와 한국 교회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통회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두 번째 불씨죠. 거기서 그는 너무나 커다란 은혜를 받아서 길을 걸어가면서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때 전계은이라는 사람이 역시 크게 은혜를 받아 철야기도하며 거리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는 노방전도 활동을 계속하였고 정춘수라는 이 역시 커다란 영적 변화를 경험하고 성령의 은사를 선포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혜를 받은 이들은 이미 1907년 이전 원산 거리를 누비며 기도하고, 성령의 임하심과 은사를 설포하며 당시로서는 매우 괄목할 만한 전도활동과 회개운동을 벌였습니다. 또한 이듬해 하디 목사가 인도하던 재직 사경회가 있었는데, 이때 여기서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이 집회에 참석했던, 카나다 선교회 총무인 마가이와 중국 양자강 연안에서 전도하던 선교사 고요한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 설교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임재를 특별하게 경험하며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선교사들이 주축이 된 성경 강론 모임과 기도회를 중심으로 하여 원산 지방에서 시작된 은혜로운 성령의 역사는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원산 기도회에서 강력한 성령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08년 평양에서는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이 연합하여 이제 회개하고 새 사람된 하디 선교사를 강사로 초청해서 요한1서 강론을 들으며 새 사경회를 시작했습니다. 이 사경회에서는 참석했던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한국교회의 서영의 은혜 주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하게 되었고, 이러한 자각은 선교사들 뿐 아니라 이런 현상을 본 조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함께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이 하디 박사를 초청해 요한 일서의 강론을 듣고자 했던 이유는 몇가지 였습니다. 말씀을 통해 성령충만을 받고자 했던 개인적인 이유와, 그리고 그 유명한 1907년 평양 대사경회를 앞두고 기도생활을 심화해야 겠다고 하는 목표였습니다. 이 기도회에서 하디 박사는 열렬히 기도하였고 열렬히 선교했고 모인 사람드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라는 사실과 사랑안에서 사는 자만이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은 그 안에 거하신다는 복음적인 가르침을 강조했다.
이 1907년 부흥이 일어날 때까지 일관된 메시지는 화해 용서 사랑이었어요. 이것은 당시 한국교회 교인들과 선교사들간에 있었던, 그런 깊은 갈등이 성령을 얼마나 슬프게 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에요. 한 시대에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은 한가지예요. 그 한가지가 계속 일관되게 선포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제 변화의 역사로 갑니다. 그래서 1907년 대부흥이 일어날 때도 메시지가 뭐냐면 고린도전서 12장이에요. 성령 안에서 하나됨. 그거를 설교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계속 보겠습니다. 그러한 그의 메시지가 커다란 감화와 회개를 불러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일본의 조선 강점과 선교사들의 탈정치적인 입지 사이에 빚어진 선교사와 우리 국민사이에 점증하는 분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주8번을 보면 말이죠. 기도에 대해 나옵니다. 그는 이미 개인적으로 1907년에 부흥과 같은 영적 축복과 같은 갈망을 가지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 같다.
교회사 속에 나타난, 거기 줄치세요, 대부분의 부흥은 먼저 하나님이 부흥의 불씨로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시고, 하나님 만을 전심으로 의뢰하심으로써 나타난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 만을 바라는 마음이 기도로 이어지게 하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가 중보하는 교회와 하나님의 마음을 전수받게 하신다. 계속 줄 치시고.....그리고 바로 이 과정이 개인적인 부흥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결국은 부흥을 위한 진정한 기도는 이미 개인적인 각성과 부흥을 경험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드려진다는 평범한 공식을 여기서도 발견하게 된다. 교회적이고 국가적이고 보편적인 우주적 부흥이 있기 전에 성경의 진리를 먼저 깨닫게 하시는 성령에 의한 개인적인 영적 각성과 개인적인 부흥이 필수적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블레어 박사는 하디가 인도한 이 집회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우리가 그 집회를 마치기전, 성령께서는 거기 모인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회개와 간절한 심령을 가진 생활, 고통의 눈물을 흘려야할 것을 명백하게 말씀하여 주셨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1906년의 사경회는 한국교회가 선교사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고 분열의 죄를 통탄히 여기며 절망적인 국가 운명에 대해 상처받은 영혼에 치유를 경험하며 하나님과의 고고한 인격적인 교제에 주력하여야 한다는 마음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소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에게 성령의 특별한 은혜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고, 이러한 소원이 그해 겨울 사경회 이게 바로 그 유명한 1907년 사경회에요, 그것을 계획하게 되었다.
웨일즈와 카아시의 부흥
이제 이 웨일즈와 카아시가 뜬금없이 나오냐 하면, 이 카아시는 인도에 있는 한 지방이고 웨일즈는 바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태어난 곳이에요. 그런데 이 웨일즈의 부흥이 사실은 한국 교회의 부흥의 불씨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로이드 존스 목사가 술회하고 있는 그 부흥, 그러니까 그분이 1899년 생이거든요. 1904년 경에 웨일즈에 부흥이 일어나니까 4,5,6,7년 이렇게 될 때에 그 목사님이 7,8,9살 이렇게 됐거든요. 그러니 어렸을 적 교회다닐 때 또렷한 기억이 있죠. 그래서 그 부흥을 자기 부흥에서 자주 이야기 하고 1954년에는 웨일즈의 부흥 50주년을 기념하는 설교를 합니다. 그런 정도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그 부흥이 한국 교회의 부흥의 아주 중요한 불씨가 되요. 그래서 이 양쪽에서 일어난 부흥의 스타일이 아주 똑같아요.
1970년대에 일어났던 우리의 나름대로의 부흥운동같은 것과는 비교 안 되는 순수한 부흥이죠. 한번 보겠습니다.
성경 연구 모임의 성격을 가진 선교사들이 1906년평양 사경회가 끝나고, 선교사들을 연례 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하워드 에그니오 존슨 박사를 만나게 됩니다. 아마 중국 선교사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요. 그런데 이 분이 그러한 부흥에 대한 소망을 품고 그 당시 강력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영국의 웨일즈와 인도의 카아시 지방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직접 접하게 되었는데, 이 웨일즈의 부흥은 1904년이고 카아시 지방의 부흥은 1904-6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카아시 지방의 부흥이 어떻게 일어나냐 하면, 웨일즈 지방에 부흥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웨일즈와 같은 부흥을 우리에게도 달라고 기도해서 일어난 부흥이 인도의 카아시 지방의 부흥이에요. 그랬으니 당시로는 두 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 부흥의 장소를 직접 목격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웨일즈로 가서 부흥의 도구로 쓰여졌던 아주 유명한 이반 로버츠 목사를 만납니다. 직접 만나고 그 곳에서 일어난 부흥에 대한 상세한 경과와 교훈을 통해 큰 감명을 받습니다. 웨일즈의 부흥을 통해 당시 집회를 인도하였던 이반 로버츠 목사의 권면은 4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줄 치세요.
부흥을 사모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이웃을 해롭게 한 것을 회복하여야 한다. 그리고 생활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불신앙을 버려야 한다. 셋째 성령께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넷째 자기의 신앙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증거해야 한다. 15번 각주로 내려갑니다. 한국에 있었던 1907년의 대부흥이 영국 웨일즈 지방에 있었던 부흥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영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웨일즈 지방은 영국 서남 지역에 있는 산악 지역입니다. 그곳의 산업은 주로 채탄과 금광이었습니다. 척박한 신앙의 풍토를 개탄하는 목회자들이 웨일즈의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고, 여기서도 결국 기도회를 통해 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의 결실은 1903년 8월 경 수련회가 열리는 데 그때 젊은 사역자들이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1094년에 역사적인 부흥의 전초를 놓게 됩니다. 그 이듬해 여러 교회가 연합해 특별집회를 갖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부흥이 일어날 때는 연합집회를 통해 일어났어요. 여기서 은혜를 받은 회중들이 자신들의 죄를 깊이 자백하고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며, 이웃에게 입힌 손해를 정직하게 배상하였습니다.
참 된 부흥의 현상이 일어나는 곳에서 모두 그러하지만, 영적이고 도덕적 행위를 동반한 회개는 1907년의 평양 대부흥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이 집회에서는 죄에 대한 위험과 순종하는 믿음 생활,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는 길에 대해 집중적으로 선포되었는데, 이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한 사람 씩 회개하고 기도에 집중하게 된다. 목회자들이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고 청년들의 뜨거운 개인 전도가 실시된 것도 바로 이 때의 일이었다.
다시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웨일즈의 부흥의 특징은 기도였다. 거기 줄 치세요. 강력한 설교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18세기의 부흥과는 달리 찬송과 기도가 집회의 중요한 순서였다. 그러니 18세기 부흥하고는 좀 달라요. 강력한 설교자들이 없었어요.
이때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여러 광경들이 목겨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교회에 가입하는 회중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되었습니다. 웨일즈의 부흥과 함께 냉당하던 지방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것과 함께 믿음을 갖게 되었고, 다섯 주간 동안 약 5만 여명의 회원들이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뿐 아니라 강력한 영적 운동이 일어났으니 웨일즈의 부흥을 대표하는 기도회의 열기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7번으로 내려갑니다. 그렇지만 웨일즈의 부흥이 기도 때문에 일어났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참된 부흥이 말씀 없이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설교가 풍성했던 18세기의 부흥과 달리 웨일즈의 부흥은 찬양과 기도가 중심이 되었지만, 참된 부흥이 일어나는 모든 곳에서 그러하듯이 거기에는 분명한 복음, 그리고 죄에 대한 회개, 신앙의 회복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반 로버츠의 당시 설교는 복음의 중심적인 설교 내용과 장차 임할 심판, 형벌에 대한 예고 이런 것들이 그 주제를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대규모의 기도회가 연일 열리게 되었고 매 기도회마다 성령의 은혜를 받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서원자들이 수백명씩 속출하였습니다. 도덕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세속적인 오락에 빠졌던 젊은이들이 영적 삶에 골몰하게 되므로 유흥장과 극장이 폐업하는 사태가 속출하였습니다. 존슨 박사가 바로 이런 소식과 광경을 직접 접하고 또 이런 영적인 광경을 사모하는 인도 카아시 지방에 임했던 유사한 부흥의 현장도 둘러보고 온 그에게 이러한 부흥이 당시 선교적인 한계 상황에 부딪쳐있던 한국에도 당연히 임하기를 소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한국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부분적으로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딱 충격을 받은 거예요.
카이시 지방의 부흥은 웨일즈에서 일어난 부흥의 소식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 임하게 되었습니다. 웨일즈의 부흥이 1094년에 있게 되었는데, 바로 이듬해 카아시 지방에서 인도 장로회 총회가 모집되었습니다. 그 기간 중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때 모인 대표 12명의 사람들에게 기도 해주도록 부탁했는데, 이들이 한결같이 웨일즈 지방에 임한 부흥을 인도에도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고 이때 사람들이 크게 회개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카아시 지방의 부흥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되는데, 줄 치세요. 첫째는 은헤 받은 사람들의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방의 부흥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매우 큰 성령의 은혜가 임하였는데, 어른들과 동일하게 깊은 회개를 경험하고 영적 회개를 받게 되어서 어린 아이들이 모여서, 여기 19번 보세요. 아주 재밌어요. 어른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지옥불을 보고 두려워하던 중 에수께로 피하자며 기도에 힘썼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감화를 받고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자, 어른들이 그 아이에게 우는 이유를 물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많이 사랑하셨는데, 자기 마음에는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마음이 아프다고 기도하며 밤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뭐 게임이나 하고 뽑기나 할려구 그러지 뭐 알겠어요? 어른들 책임이 커요.
계속 본문으로 들어가서 줄 칩니다. 그리고 둘째로 십자가에 대한 각성이었습니다. 그 후 1906년 다시 봄무회(?)로 모였을 때, 회중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특별한 각성을 갖게 되었고 교회와 그리스도 인들이 십자가로 부흥하여야 한다는 사실에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셋째로는, 계속 줄 칩니다. 알콜 중독자들이 술을 끊게 되었고, 기독교 신자들에게 박해를 일삼았던 사람들이 변화되어 부도덕한 마을이 도덕적이고 기독교적인 마을로 변화되는 은혜로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살펴보게될 평양의 대부흥과 웨일즈 카아시 지방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간절하고 강력한 기도를 통로로 부흥이 왔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당시 부흥들과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줄 치세요. 신약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 때에 활발한 역사를 일으키신 성령께서는 지금도 기도에 힘쓰는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이시며, 주도 하나이신 것 같이 성령도 하나이시니 그러므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도에 힘쓰는 자들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그들 가운데서 오순절과 같은 큰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영국의 웨일즈 인도 조선에서의 부흥의 연결은 20세기 초에도 성령께서 기도에 힘쓰는 신자들 가운데 큰 역사를 일으키시고 대 부흥을 주시고 죄를 통회하게 하시며, 교회를 크게 흔든 것들을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연례 회의가 끝난 후 존슨 박사를 평양으로 초청했습니다. 거기서 특별 집회를 갖게 되었는데, 뭐 불덩어리가 왔는데 내버려 두겠어요. 그 불덩어리를 가지고 자기들도 불 붙이려 했겠죠. 당시 모인 교회가 평양 중앙 교회였습니다. 그가 거기서 웨일즈와 카아시 지방에서 목격한 놀라운 부흥의 소식을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선교사와 국내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부흥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흥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많은 회중은 그날, 두 지방에서와 같은 성령의 나타남이 한국 교회위에도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선교사들은 평양에서 이듬해 1097년 1월에 있을 대 규모의 사경회를 앞두고 그 해 9월부터 이런 부흥을 한국에 주시도록 기도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부흥의 은혜를 사모하며 매일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을 개인적으로는 물론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쎴으며 사경회 준비로 선교부가 더욱 바빠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오히려 기도 모임 시간을 갑절로 늘리기로 하였습니다.
이같은 그들의 결정은 부흥에 대한 열정과 갈망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존슨 박사로부터 받은 도전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더욱이 그러한 도전 이전에 이미 국내에서도 1903년, 1904,년 그리고 1906년에 있었던 이런 모임들에게 이미 이런 부흥의 조짐들이 보였기 때문에 그들이 한국 교회에 부어질 부흥에 대해 현실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존슨 박사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주일 예배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는 주일 설교에서 평양 지역의 교회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부흥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도전하였습니다. 그는 예배 도중 설교하다 말고, 이 땅에서 누가 부흥을 주시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교회를 새롭게 할 도구가 되겠느냐는 질문을 하자, 당시 신학생이면서 장로로 섬기고 있던 길선주씨가 벌떡 일어났다고 전해 집니다. 존슨 목사는 장차 한국에서도 웨일즈나 카아시 같은 지역에 일어났던 성령의 놀라운 임하심이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예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예고는 들어 맞았죠.
이같은 상황에서 부흥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간절한 기도회로 나타났습니다. 선교사들은 매일 밤마다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사경회를 준비하는 동안 늘어나는 선교부 일로 매일 밤 모이던 기도회의 숫자를 줄이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기도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의 열망은 점점 커갔습니다. 1907년 1월 장로반이 거행되는 동안에도 정오 기도회를 매일 갖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은 해 1월 첫주 간 평양에서는 네 교회가 모여 연합집회로 사경회를 시작하였으나 집회 장소가 비좁아서 남자들만 거기 모이게 하고 여자들은 따로 모였으며 학생들은 학생 예배실에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모인 회중들의 수가 약 1500명 이상이었다고 하니 당시로는 굉장한 수의 인원이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또 자료를 찾다보니 어는 곳에서는 오륙천 명 모였다고 그래요. 또 어디서는 1500명이라고 하고. 그래서 제 생각에 아마 이것이 열흘 동안 계속된 집회라 집회가 계속 되면서 인원이 계속 불어난 것 같아요. 거짓말일 리는 없고 계속 불어나다가 수천명까지 간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시 기독교 인구가 2만에서 3만명 사이였거든요. 그런데 6000명이 모였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면, 굉장한 것이죠. 지금으로 치자면 한 5-6백만명 적어도 3백만명 이상 모인 것이었죠. 굉장하죠.
실로 오랫동안 준비해온 집회이고 기도 가운데 갈망해왔던 집회였으므로 사람들은 집회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과는 상관없이 매우 답답하고 건조한 가운데 집회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레이엄 리 목사는 당시의 집회 분위기를, 당시 집회는 전혀 영적 생기가 없었으며 하나님의 성령이 회중에게서 떠난 듯이 느껴졌으며 사람들은 매우 답답해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집회 분위기에 대해 의아해 했습니다. 그레이엄 리 목사가 무엇 때문에 이 집회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한 사람이 일어나서 자기의 죄를 눈물로 뉘우치며 자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집회에 은혜를 내리지 않는 것은 바로 저 때문입니다. 저는 바로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제 친구 중에 한 사람이 몇 년 전 임종하면서 제게 부탁하였습니다. 길장로, 내가 세상을 뜨게 되면 내 후손을 돌봐 주오. 내 아내가 세상을 너무나 모르니 당신만 믿겠소. 나는 잘 돌보아 줄테니 염려 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세상르 떠난 뒤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해 주면서 미화 일백불, 당시 일백불이면 어마어마한 돈이었죠. 일백불을 사취하였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설교가 끝난 후 있었던 기도회 중 갑자기 일어나 자기의 죄악을 큰 소리로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죄악을 고백하는 그의 눈에서는 회개의 눈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신뢰한 친구와 미망인을 속인 죄를 자복하고 날이 밝는 대로 사취한 돈을 미망인에게 돌려주겠노라고 약속하면서 쉬지 않고 자기를 죄를 공중 앞에 자복했습니다. 길선주의 고백을 들으며 사람들은 회개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 순간 여러 날 동안 무겁게 짖누르던 장벽과 같은 담은 별안간 무너져 내리기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예배당에 충만하게 느께졌습니다. 죄에 대한 애끓는 회개가 예배당을 휩쓸었고 저녁에 시작한 예배가 이튿날 새벽 두시가 되었는데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울부짖는 통곡소리와 함께 엄청난 통성기도의 소리가 회중가운데 가득하였습니다. 그러자 솥뚜껑을 덮었던 것처럼 막혔던 하늘이 열리고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교인들은 한사람씩 일어나 자기의 죄를 형제들에게 고백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드린 기도 가운데 열린 집회였지만, 숨겨진 죄가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쳤고 죄가 자백되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집회에 은혜 주시기를 거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자기가 죄인이라고 말하였을 때 죄에 대한 심각성과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성품을 온 회중이 느끼고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복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하였습니다. 회중은 이때 마룻바닥을 치며 회개하였습니다. 월요일 밤 집회에서 그들은 각기 성령이 자기 안에 충만히 임재한 것을 느꼈습니다. 윌리엄 블레어선교사는 이때 상황에 대해 이렇게 진술 하였습니다.
내가 위스콘신 주에 있었던 집회에 참석했을 때처럼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자, 산판하던 사람들과(*산판이 뭔지 알아요? 나무벼 파는 거 말이죠) 거기 모인 불신자들이 엄청나게 회개 하였는데, 그와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여기 나타났으며 하나님의 임재의 효과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당시 집회의 설교와 그후 회중들의 반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고린도전서 12장 27절을 가지고 설교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입니다. 교회안에서 하나되지 못하는 불일치는 몸이 병든 것과 같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당합니다. 한 형제의 마음 속에 미움이 자리할 때 교회 전체가 상할 뿐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도 고통이 됩니다. 내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어 사냥을 하다가 실수를 해 내 손가락 하나를 쏘았습니다. (*선교사가 또 무슨 산양이에요? 그쵸? 하여간 손가락이 총에 맞았어요) 주위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상처받은 손가락과 함께 내 머리도 내 몸도 전체가 아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의 말이 그들의 마음 속을 파헤치고 이입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의 설교가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 알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웃에 대하여 사랑이 없는 자신의 악함을 고백하였습니다. 설교를 들은 한국 성도들과 선교사들은 서로 손을 붙잡고 울며 통회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겠어요? 선교사와 한국인들 사이의 화목이 이루어졌고 성령의 불이 타올랐습니다.
다음 토요일에 그레험 리 목사는 설교 후 기도할 것을 선언하자 온 회중이 통성기도를 했는데, 이런 통성 기도가 1907년 부흥의 아주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그 소리는 마치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 같았으며 기도 소리는 혼한 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대한 하모니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저항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해 움직여진 영혼의 합창이었으며 기도의 큰 물결이 보좌로 밀려 올라가는 듯한 광경이었다고 한다. 기도는 폭포수처럼 들려왔고 하나님의 보좌를 뒤흔드는 거대한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한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올려졌습니다. 이날이 바로 한국 교회에서 오순절 날과 같았으니 그들은 한곳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했고 갑자기 거세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하늘로부터 왔으며 이것이 그들이 앉아있는 그들의 집을 채웠습니다. 하나님이 폭포수같은 회개의 눈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죄에 대한 무거운 마음과 슬픔으로 흘러 내리는 눈물의 소리였습니다. 집회에는 사람들이 들어설 때부터 확실히 체감으로 신의 임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대부흥의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으며 조국 교회의 불길이 절정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길함, 그레이엄 리 선교사가 짤막하게 설교한 후 두 세사람에게 기도를 청했을 때 이십 여명 이상이 함께 소리를 질러 기도하였습니다. 이길함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습니다.
사람에 이어 사람이 일어서서는 죄를 자복하고 넘어졌고, 죄의식에 고민하며 땅을 쳤습니다. 어떤 때는 죄의 자복이 있은 후 온 회중이 통성기도 하였는데, 그 통성기도의 결과는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다시 죄를 자복하고 나서는 온 청중이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회는 새벽 두 시 까지 자백과 울음과 기도로 계속되었습니다. 내가 이제껏 보지 못했고, 하나님 앞에서 꼭 필요하지 않는 한 다시 볼 수 없는 집회가 시작되었는데 인간으로 범할 수 있는 모든 죄가 그날 밤 고백 되었습니다. 분명히 이 평양사경회는 사람들의 심령을 크게 변화 시켰고 강력한 회개와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뜨거운 신앙을 체험하였습니다. 각처에서 모인 사람들이 커다란 감격과 은헤가운데 각자의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신 소식은 전국에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조국교회 강단에는 성령에 대한 선포가 풍부하게 설교되었습니다. 그 한예로 탁사 최병헌 목사는 감리교가 낳은 최고의 신학자요 설교가였습니다. 로마서 8장 5절과 6절을 본문으로 설교제목이 <생사 한 판> 얼마나 멋있어요?죽느냐 사느냐 한 판이다......야 이런 제목은 아마 그 이후론 없을 거예요. 생사 일판이라는 설교 속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신이 그 마음에 있고 또 그리스도 속에 있어 죄를 정함이 없는 사람이니, 성신의 일을 생각하며 성신으로 거듭난 자들이라, 암만 믿는다 하여 회개하였다 할 지라도 신으로 다시 나지 못한 사람은 늘 예전 사람의 성질과 육신의 생각이 그저 남아서 위급한 때는 거짓말도 잘하며 혈기도 바랄 것이올시다. 각처에 들려진 이 소식은 이처럼 성령충만 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소망의 대상이 되었고 또한 숭실대학과 중학교학생들, 그리고 여자 고등학생들에게까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후에 장로교회들과 감리교회들이 평양시 복음화 운동을 위해 합력한 결과 선교에 큰 진전을 보았습니다. 이런 성령의 불길을 동반한 불길은 전국에 확대되었습니다. 이 일 후에 여러 선교사들도 여러 지방을 다니며 지역적인 사경회를 인도하며 더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같은 부흥의 기사를 접하면서 1907년에 있었던 성령의 역사 배후에는 선교사와 성도들이 사경회를 앞두고 오래전부터, 혹은 사경회 기간 동안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헌신한 간절한 기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교회사속에 대부분 부흥이 그러하듯 평양 대부흥도 이처럼 하나님이 먼저 꺠우신 소수의 사람들이 교회의 영적인 분위기와 도덕의 상태에 대해 아파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헌신에 의하여 여명이 밝아왔습니다. 개인적인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하여 교회적이고 국가적인 부흥의 중보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해주는 사건이었습니다.그 아래로 내려 갑니다.
그 한 예로 1906년에 이미 개인적으로 영적인 각성을 체험한 하디가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의 말씀을 듣던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는 중 이상을 보기도 하였고 교인들이 통성기도하는 소리는 밖에서 들을 때 마치 상가집 곡성과 같아서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시 본문으로, 더욱이 당시 처했던 국가의 비운과 개인의 앞날은 모인 이들의 마음을 더욱 겸비하게 하고 가난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당시의 부흥을 오늘 날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 이해되는, 세속적이고 인위적인 의미에서의 부흥이 아니라 교회사에 나타났던 순수한 부흥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이유 하나가 죄애 대한 심오한 이해와 각성입니다. 그리고 그 부흥은 교회사의 모든 부흥이 그러하듯이 보편적인 성령의 역사를 동반하였습니다.
어린 아이와 어른 학생과 농부 그리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복음을 접한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중생과 회개가 일어났고 나아가서 일본인 유학생들 사이에도 이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1907년 평양 집회는 원래 전국적으로 모인 신자들로 이루어진 집회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은혜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들이 보았던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되니 평양 집회에서와 같은 신령한 은혜를 받고자 하는 열망이 지방 신자들 사이에도 일어났습니다. 부흥의 불길은 전국적으로 번져갔습니다. 먼저 지역 선교국이 소재한 도시로 파급 되었고 도시에서 인근 농촌지역으로 화산되었습니다. 이길함 선교사는 선천으로, 스왈론 선교사는 광주로 헌트 선교사는 대구로 길선주 선교사는 의주와 서울에서, 그리고 그 전해인 1906년의 남감리 교회의 거딘 선교사가 목포에서 큰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는 집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거딘 선교사가 본문을 읽고 설교하였을 때 일어난 성령의 역사에 대해 이영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떼 받은 성령의 역사가 후일 전라도 지방 선교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의와 심판 절제 그리고 죄의 무서운 뉘우침의 필요에 대해 강론하기 시작하자, 그러니까 부흥이 일어날 때는 벌써 설교가 달라요. 복음의 핵심을 설교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부흥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주 중 하나는 기도도 기도지만 또 하나는 부흥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죄에 대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자극을 받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 설교 되어져야 한다는 말이죠. 계속 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칼날처럼 사람의 속마음을 깊이 짤라 쪼개어 감추어진 죄와 영혼의 암덩어리들을 잘라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교인들 모두가 다투며 죄를 통회 자복 하였으며 힘센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처럼 방곡하는 참회의 물결이 세차게 일었습니다. 그드르이 얼굴은 생동감으로 빛나게 되었고 교회는 승리의 찬송을 드높이며 영광의 종을 울렸다고 합니다.
같은 해 8월에는 의주에서 또한 길장로가 인도하는 사경회가 열렸고 연동교회에선 후일 목사가 된 이명혁이 회개하였고 유성준 장로도 큰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후일 한국교회 큰 자취를 남긴 이영하 최재영 김광덕 정춘수 등이 이때 얻어진 결실들입니다. 이러한 성령과 부흥의 불길은 학교로도 번져갔습니다. 당시 평양에는 숭실대학교를 비롯하여 숭실학교 숭덕학교광성학교 등 개신교 계통의 각급 학교에 2천 명 정도의 학생이 다니고 있었는데 학생들은 때떄로 수업을 중단하면서까지 말씀 사경회와 부흥회에 참석하곤 하였습니다. 이때 뛰어난 신앙 부흥에 대한 신앙적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한 쪽에선 한국 교회 부흥과 성장의 기초를 놓고 틀을 잡아간 결정적 계기 였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또 한편으론 한국교회가 몰역사적 비역사적 신앙으로 가는 계기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1907년의 부흥은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 도입된 70년대의 인위적 부흥 운동과는 다른 성격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70년대 부흥은 부흥도 아니에요.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냈죠)
이 부흥은 성경을 강론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말씀 사경회를 통한 영적이고 도덕적인 각성이었습니다. 교회 역사의 부흥이 그러하듯 평양의 부흥도 이미 믿고 있는 기존 신자들의 변혁을 위한 도덕적이고 영적인 정화운동이었습니다. 교회 신자들의 메마르고 부도덕하고 무감각한 삶에 대하여 통회하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체험을 통해 영적 생명을 회복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조국 교회는 대부흥에 의하여 교회안에서의 형식적인 신앙 생활에 대한 내적 참회와 성경 공부를 통한 영적이고 도덕적인 각성을 보편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남녀노소 유무식을 막론하고 모든 신자들의 교활를 위한 교육은 성경을 교재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된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통해 이웃에 입힌 손해를 배상하는 행위가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는 실천적인 행동도 부흥의 특징입니다. 실제로 부흥이 있고 나서 얼마 후 동안 채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채권자를찾아다닌 사람들과 됫박을 속여 부당이득을 취한 쌀가게 사람들이 자기의 부정한 상거래를 고백하고 배상하는 광경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러한 이웃 중에는 신자 뿐 아니라 불신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1907년의 대부흥은 조국교회 초기에 나타나고 있었던 교회와 교인들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연약함을 쇄신하는데 기여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영적 부흥을 통해 경건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게 되었고 조국교회의 경건을 확립하는데 이바지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고유의 신앙적 틀을 구축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가 시작된 것이나 성경공부에 대한 열기 사명감에 넘치는 구령운동과 선교 사업, 순교를 불사하는 일사 각오의 정신, 생사 일판 그런 사고 방식들이 생겨 났습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경건과 도덕적인 생활에 대한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습니다. 이러한 부흥을 통해 나타난 교회 생활에서의 새로운 변화는 기독교인들과 외국인 선교사들 간의 화해와 이해의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과 미국 일본 간의 미묘한 정치적 이해 관계가 이런 오해를 더욱 부채질 하였습니다. 뿐 아니라 선교사들이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던 우리 나라에 대한 문화적인 우월감 같은 것들도 골깊게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태도는 신앙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갈등과 마찰을 빚어 내었습니다. 그들은 민족 운동을 하고 당시 교회적으로 느끼고 있던 민족적 고통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내부적으로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선교사들 자신에 대한 태도가 한국 교회를 향하여 낮아지게 하였고 한국 교인들은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로 느껴진 정교분리의 정책들로 말미암아 비롯된 선교사들의 원망과 미움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부흥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양 측 사이에 커다란 사랑과 화해와 이해가 증진되었으며 선교사들은 그들 나름대로 조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새로운 시야로 바라보게 되었고 한국민들의 갈등과 아픔을 다소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선교사의 술회는 다시의 상태에 대해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당시 있었던 평양 대부흥은 나에게 잊지 못할 두 가지 사실을 가르쳐 주었는데 하나는 한국인의 신앙 생활과 깊은 정서의 순도는 서양사람들의 그것에 못지 않다는 것과 또 하나는 한국인의 소박한 신뢰와 경건, 깊고 뜨거운 기도 생활 등은 오히려 서양 기독교가 배워야 할 중요한 유산 이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옛날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우게 되는 가가 중요한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한국에 1907년에 일어났던 부흥은 간략하게 말해서 특별하게 한국에만 있었던 부흥이 아니라, 교회사 속에서 하나님이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부어주신 부흥의 일반적인 원칙을 따라온 부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먼저, 작은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이 있고, 그리고 그 작은 부흥이 불씨가 되어서 1907년의 위대한 부흥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부흥의 역사를 언제든 일으키시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일어난 소수의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요.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아파하고 간구하면서 부흥의 여명이 밝아오는 거예요. 그러니 보세요. 뭐 일본의 앞잡이나 하고 그렇게 살았으면 역사에서 살아졌을 사람들이 부흥의 불씨가 되니까 두고두고 백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 우리가 그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요. 잘 준비된 사람.......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런 부흥 주심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낙망하지 않고 아버지 앞에 내가 바로 불씨가 되어서 이 땅에 부흥의 불길이 올 것이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기도하는 사람들, 먼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부흥의 불씨로 사용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불씨로 사용하여 주소서. 낙심하지 않고 우리도 이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렇게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3. 건전한 영성과 참된 부흥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머리를 정돈하는 그런 강의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지식의 빛 은혜의 열이라고 할까 그런 것은 모두 둘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살펴보면서 도움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 오늘날의 20세기에서 가장 커다란 논쟁이 일어났던 그런 신학의 분과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론이고 또 하나는 성령론이었습니다. 이제 그 교회론은 왜 그렇게 뜨거운 논쟁이 일어났는가 하면,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었기 때문입니다. 후진국에서 민주화 투쟁이나 경제적 부흥등을 통해 교회가 무슨 역할을 해야하는가의 논쟁은 결국 교회가 어떤 곳이냐하는 이론적인 것이 토대가 되잖아요. 그래서 그 두 가지 가운데서 현실과 텍스트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죠.
그리고 성령론은 아주 매우 핫이슈가 되었습니다. 성령론에 대한 것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뜨거운 부분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이렇게 보면 말이죠. 항상 우리들이 슬기로우면 과거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스마르크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얘길 했죠. 지혜로운 자는 역사를 통해 배우고 미련한 자는 경험을 통해 배운다. 사실 경험을 통해서라도 배우면 미련한 중에서도 그래도 좀 낫습니다. 그런데 경험을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니 문제죠. 사실 이런 것은 교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통해 뭘 배우느냐, 역사를 통해 보면 교회는 늘 이 흐름 때문에 고통을 받아온 겁니다. 신앙의 본질이 지식, 지성 그리고 이지에 있다고 보는 기둥이 하나 있고, 또 한 쪽에서는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생생한 교제 내적 광명, 그리고 내적 체험 이런 것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두가지 사이를 계속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한 쪽에서 차가운 지성 주의로 흐르는 때가 되면 반드시 거기는 어떤 갈증이 일어나냐 하면 체험과 뜨거운 은혜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요. 그러면 이제 반대쪽으로 가는 거죠. 반대쪽에서는 내적인 광명과 뜨거운 은혜를 사모하다 보면 지식의 결핍을 느끼는 거죠. 갈때도 반대로 가는데 그때는 대부분이 건너가면서 그 전의 이 쪽을 전면 부인하면서 건너가는 것이죠. 그러면서 교회사속에서 이런 진자운동을 계속해온 것입니다. 시간이 없고 전문가 아닌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이것을 통해 우리가 놓여있는 교회적인 시점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죠. 제일 먼저 중심 축에서 시작된 사건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예요. 여기에는 분명한 복음에 대한 지식과 성경을 기록할 수 있을 정도의 복음에 대한 지성을 가진 사람들고, 성령 강림 사건으로 말미암아 강한 체험을 함께 가신 사람들, 적어도 초창기에는 아는 것과 감화, 그리고 지식과 감동 내적 광명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통찰 같은 것이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런 은혜가 식기 시직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점차 점차 지성주의 족으로 흐르게 되요. 그러면서 이제 기독교가 식어지기 시작하면서 한쪽에선 정반대의 이단이 나오게 되는데 그게 몬타노스라는 사람이 자기가 바로 이 차가운 교회시대에 보혜사라 그렇게 외칩니다. 그리고 자기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이제는 문자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지성은 다 타도하고 극단적으로 이 쪽으로 튀어와서 여기서는 말하자면 아주 강력한 하나의 주정주의 라고 할까요 체험주의 감정주의의 이단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런 상황이 흐르게 되죠. 이러다가 다시 반때쪽으로 넘어가게 되죠. 이렇게 몬타노스 주의로 넘어가게 된 것이 2세기인데 이렇게 넘어가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가 초창기에는 정치적인 탄압을 가하다가 나중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사상가에 의해 박해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교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공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기독교에서는 기독교가 참된 진리라고 하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방어적인 입장에 서게 되요. 이때 역사적으로 유명한 아폴로지스트들이 나와요. 이들이 변증가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죠. 이들이 복음을 변증해요. 그러면 이런 과정들이 전혀 의미가 없는가, 아니에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교회 역사를 보면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하는 신앙이 확고하게 확립된 데에는 이단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어요. 그러니 이단들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죠. 그러니 무엇을 믿는지 애매모호하던 사람들이, 이단들이 나와서 믿는 바를 냉철하게 공격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성경을 따져서 신앙의 고백을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하는 장엄한 진리의 체계들이 세워지는 거예요. 그러니 이 기독교의 진리 체계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과 박해 그리고 사상적 공격속에서 생겨난 것이니, 이것은 문화적으로도 굉장한 유산인 것예요.
제가 남의 얘기를 해서 안 됐습니다만, 제가 안 읽으려해도 그 사람 책만 손에 쥐면 미친듯이 빠져 들더라구요. 김용옥이라는 사람 말이죠. 약간 짱구같이 생긴 그 사람 말이죠. 그 사람 말이 그거예요. 자기가 한국에 있는 불교를 정화하려는 사명을 가지고 말이죠. 그 사람 거의 천재에 가까운 사람이거든요. 일주일만에 일본어를 모두 마스터했대요. 그리고 대만으로 가서 몇 달 만에 중국어를 모두 마스터해서 대만의 교수가 수제자를 삼을 정도였고, 또 하버드로 건너 갔잖아요. 거기서 박사를 하고 끝나고 나니교수 자리 줄테니 가지 말라고........거기서 두루마리 입고 돌아다녔거든요. 하버드는 내가 놀기에는 너무 물이 좁다 그리고 이제 한국으로 온 것이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히브리어 헬라어까지 했어요. 그 사람이 신학교 일학년 다니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자기 말로, 대학교 3학년 때 우주를 봤대요. 우리 기독교적 용어로 하면 하나님을 만난 거죠. 하여간 글을 신들린 듯 썼어요. 챕터도 없고 절도 없고 제목도 없고, 그냥 통짜로 써서 한 5백 페이지를 써내려 간 거예요. 거기서 무슨 얘기를 하냐하면 당신들은 내가 여러개의 언어를 알고 있는데, 이 중 한가지만 제대로 하려면 20년을 소모해야 할 것이라고 했더라구요. 뭘 얘기하는가 하면 불교계를 정화하겠다고 파송되어 오니까 자기를 아끼는 사람들이, 기독교는 비판을 하면 그걸 고민하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다, 그런 역사를 걸어왔다는 것이에요. 그런 면세서 기독교는 상당히 성숙해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불교는 비판을 하면 밤중에 칼들고 온 다는 겁니다. 맞아죽지 않으려면 몸 조심하라는 것이죠.
하여간 기독교의 이단은 기독교가 무엇ㅇ르 믿는가를 스스로 확장하는데 아주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이단이 한번 휩쓸고 가면 교회가 휘청거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든든한 진리가운데 서요. 이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죠. 이 자체가 문제가는 아니고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엇에 골몰하냐하면 지적인 활동에 골몰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영적 활동이 소홀하게 되는 것이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변증을 하는 그 사람들이 주의 진리가 능욕되는 것을 인해서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이 업수이 받는 현실에 대해서 큰 감동과 감화를 느끼면서 변증을 써내려가면 괜찮은데, 사실은 한 인격 안에 그렇게 지성과 열정이 공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만져주심이 없이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폴로지스트들이 나옵니다. 그러니 자연히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교회가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때 이제 몬타누스주의들이 나오는 것이죠. 그러니 몬타누스 주의가 나오니 이건 세상이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주 정반대의 지성주의가 나오는데 그것이 그노시즘이라는 것인데 그노시스주의 즉 영지주의예요. 그러면서 이제 구원의 조건을 아주 고상한 지식에 두는 사람들이죠. 그러면서 정 반대로 가게 되는데 그게 수도원주의에요. 수도원주의가 3세기에서 10세기까지 가게 됩니다. 아주 장수하죠. 수도원 시대에 쓰여지는 교부들의 저작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많이 있거든요. 수도사들에 의해 쓰여진 것, 거의 한 푼 어치의 가치도 없어요. 거의 한 푼어치도.......굉장히 신비주의죠. 신비한 종교적 체험을 성경에 의해 검증해보려고 하는 노력을 거의 안 해요. 그런 시대에 신학밗들이 중세에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는 성경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신비한 것들을 추구하면서 교회가 정화되었냐 하면 정화된 것이 아니라 깊은 타락으로 가는 것이죠. 그런 것들 보며 배우는 것은, 기독교가 부패하느냐 순수함을 유지하느냐 하는 것은 세상속에 있느냐 아니면 떨어져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산 속으로 들어갔는데 더 부패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런 타락들이 다시 반동을 일으키는데, 이번에는 아주 극단으로 튀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말하면 스콜라 주의죠. 이것이 11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계속되는 이 스콜라주의의 주장점은 무엇이냐 하면 인간과 하나님 구원 세계 이런 것들을 설명하는데 어떤 틀을 사용했는가 하면 희랍철학을 사용한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되다 보니 신학에서 철학의 위치가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스콜라주의에서는 또 어떤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났냐하면 성경은 보교재고 희랍철학교과서가 으뜸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희랍철학을 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나 뭐 그런 사람들이 거두의 위치가 되는 거죠. 그러니 단순한 복음은 사라지고 그런 식으로 희랍철학의 체계에서 기독교 진리를 설명하려 들었던 것이죠.
거기서 반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14세기부터 뭐가 일어나냐 하면 그 유명한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신비주의 운동은 수도원 신비주의보다 훨씬 도가 지나친 신비주의운동입니다. 그런 신비주의 운동의 초기에 나왔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시시에 프란시스라든가 하는 사람들이에요. 여러분 영화 보셨어요? 그런 건 좀 보세요. 아시시에 프란시스 영화 마지막에, 아주 자기가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고 감탄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오! 주님이 나에게 오상을 주셨도다. 오상이 뭔지 알아요? 다섯 개의 상처를 주셨다는 겁니다. 어느 날 열심히 기도하고나니까 여기 못자국이 생기고 저기 못자국이 생기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오늘 날 카톨릭에서 믿는 화체설. 그러니까 성찬은 축사하는 그 순간에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한다는 그런 황당무계한 파스까시울라드 베르토스(?)의 교리같은 것들이 세워지는 것이 바로 그 초기의 일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신비주의가 14세기 에크하르트, 요한 타울로, 하인리히 수소 이런 사람들에 의해 죽 전해져 갑니다. 에크하르트는 독일의 신비주의자죠. 그런데 타울로나 수소보다도 훨씬 정도가 심한 사람이었죠. 극도의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신령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들을 펼치는 것이죠. 마르틴 루터가 16세기의 사람이긴 하지만, 이런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루터가 수도원에 있을 때 한 일이 고행을 통해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교리를 배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무릎으로 계단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기어 오르고 담요 한 장을 뒤집어 쓰고 며칠 씩 굴속에서 금식하는 거예요. 굉장히 건강하던 사람인데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빼짝 말라요. 오죽했으면, 수도원장이 마르틴 루터는 더 이상 금식할 수 없다 그렇게 선포를 해요. 그리고 내버려두면 이 사람이 수도생활 중에 상해 질 것 같으니 아예 비텐베르그 대학에 교수로 보냅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신비주의 속에서 고통하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그런 신비주의가 지나가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고 하는 신선한 운동이 일어났는데, 종교개혁이 일어나죠. 종교개혁때 다시 한번 중심을 잡는 것이에요. 껏을 주도하던 마르틴 루터나 칼빈, 파렐, 프로만 이런 유수한 종교 개혁자들이 동일하게 단지 도서관에서 학문을 연구하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 사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학문을 하면서 그들이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변화 받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받은 영적인 변화를 통해서 성경을 다시 보게 되는데, 그들이 깨달은 바가, 사도시대 이래로 성경이 본뜻을 드러나게 하는 해석의 작용이 거의 멈췄다는 것을 발견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최고의 기대는 무엇인가 하면, 참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그 참된 기독교 신앙이 대체 무엇이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신앙, 말하자면 사도적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였어요. 그러고 보면서 왜 캐톨릭이 이렇게 이상한 것을 믿고 그것 때문에 성경을 보아도 복음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뭔가 깨달았더니 거기 무슨 문제가 있냐하면 외경의 문제가 나오는 것이에요. 외경이 뭐냐하면, 성경과 비슷하거나 혹은 후 시대에 쓰여진 내용으로서 그 저작의 내용 자체가 성경과 일치성 (consistency) 없거나 교리적 내용이 불충분하거나혹은 저자가 확실치 않거나 혹은 역사적으로 교회에서 그 문서들을 권위있게 받아들인 적이 없기 때문에 성경 66권에서 빠진 성경 비슷한 문헌들이에요. 거기에는 묵시문학적인 내용들이 굉장히 많이 담겨 있어요. 그런 내용들을 성경과 함꼐 놓고 믿는데서 문제가 된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이상한 교리가 나왔다고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런 것이죠. 성경을 읽으면 되지 않나 그러는데, 이 성경에는 해석이 필요해요. 그런데 이걸 해석할 때 아무렇게나 해석을 하는 것, 그건 성경에 대한 모독이고 하나님이 금하신 거예요. 성경을 풀때, 해석할 때는 도구가 필요해요. 그 도구는 성셩 해석의 원리예요. 그 원리들을 성경 속에서 찾아내어서 그 성경 속에서 찾아낸 그 원리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해야지만, 성경 해석의 원리와 해석 받는 성경 자체가 일치를 이루기 때문에 해석 받는 그 성경의 결과들이 성경적인 해석이 될 수 있단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 그 해석의 원리를 만들때 벌써 성경자체에서만 원리를 뽑아낸 것이 아니라, 외경이라든지 경험이라든지 전승이라든지 그런 성경이외의 경험이나 책에서 통털어 원리들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원리들을 가지고 성경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 속에서 해석의 결과들을 끄집어 내는데 이중에는 성경을 제대로 해석되서 나온 것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수사 소위 익시즈시스가 아니라 아이즈시스가 되는 거예요. 익시즈시스는 ‘석의’ 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그러니까 성경의 내용을 익스 즉 바깥으로 의미를 끌어내는 거예요. 아이즈시스는 내가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 사상을 성경의 본문을 찾아서 거기다 우겨 넣는 거예요. 그러니 성경으로 하여금 자기들이 가진 전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이런 작업들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개혁을 시작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이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는 거예요. 거기서 외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을 선언하죠. 그때 캐톨릭에서는 부랴부랴 공회를 소집해서 신앙고백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우리의 신앙과 삶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인데, 그 성경은 66권 성경인 제 일 경전과 외경인 제 2의 경전들로 이루어진다, 라고 했죠. 그러면서 수많은 외경들을 받아들인 거죠.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시도를 분명하게 거절하면서 이런 것들을 집어 넣으면 기독교 신앙이 결코 사도적인 신앙으로 회복될 수 없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철저하게 성경의 충족성을 주장하는 것이죠. 그때 그들은 모두 깊은 신앙의 체험을 진리 안에서 누린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나 존 캘빈 모두 똑같이 하나님께 큰 영적 채험을 하는 동시에, 그것을 진리 안에서 체험하는 거예요. 조금 있다 말할 텐데 말하자면 성경속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어떤 일치들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신의 신학들을 세원가는 것이죠. 그때에 오래간만에 지성주의적인 신앙의 요소와 열정주의적인 신앙의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가게 되는 것이에요. 마르틴 루터나 칼빈이나 똑같이 굉장히 뜨거운 사람이라고 하는 인상을 저버릴 수 없어요. 그래서 <제가 자네 그 길을 가려나>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주엘 미셀레 라고 하는 불신자인 역사가가 칼빈의 생애를 보면서 칼빈은 전 유럽에서 순교가 필요하다면 달려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말할 정도로 불같은 열정을 소유한 사람이었어요. 마르틴 루터도 또한 말할 필요없죠. 그래서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종교개혁 후반부에 오면서 교파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다 다시 불행하게도 자기네 교파의 교리를 논증함에 있어서 스콜라주의를 받아들에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번제철학적인 요소를 갖게 되면서 이제 교회가 식어가기 시작하니까 여기서 뛰쳐나온 것이 경험주의 운동입니다. 초기에는 굉장히 건전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면서 경건주의 운동을 펼치게 되요. 다시 세월이 흘러 200년 후에는 극단적 합리주의가 나오는 거예요. 성경의 모든 신적 기원들을 부인하고 계시들을 부인하고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죽음 등 모든 것을 부인하고 극단적인 쪽으로 가는 거죠. 그게 1900년..... 국부적인 부흥이 1900년대 초19세기 20세기 다 일어났지만, 그건 국부적이었고, 전체적인 기독교 신앙의 흐름은 그런 합리주의 족으로 가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20세기로 넘어오게 됩니다.
몇 번의 부흥이 20세기에도 있었지만 전체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어요. 그러면서 합리주의 쪽으로 굳어져서 이제는 유명하다 라고 하는 학문적인 흐름이 있는 대학에서는, 이미 성경이 신적 기원을 가진 전제를 가지고 학위 논문을 쓰면 받아들여질 수 없는 학교가 95%이상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20세기 중반 쯤에는 그런 주지주의 방향으로 쭉 가다보니 사람들이 이제 해갈하기 시작하는거죠.
그 다음 이제 카리스마틱 무브먼트가 일어납니다. 19050년 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는 장로교였고 칼빈주의자들이었어요. 칼빈주의자들이라고 하면 비록 숫자는 적어도 가장 영향력있는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체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순절 계통이 싹 쓸었어요. 그러면서 말하자면 카리스마틱 무브먼트가 일어나는 거예요. 은사운동, 부흥운동 즉 리바이벌리즘 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사람들이 막 회개하고 성령체험하는 일들이 벌어지죠.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점점 더 이 강도가 심해지는 거예요. 그게 지금 현재 상황이고, 그렇다고 이게 모든 방향이냐 하면 그게 아니라 또 어느 한쪽에서는 모든 죄악시 하면서 극단적 합리주의를 받아들이죠. 그러다가 80년대 후반에서 90년으로 들어오면서 이제 모든 종교가 모두 같다라고 하는 다원주의 논쟁이 일어나요. 이런 것들이 벌써 1988년, 제가 대학에 처음 가던 핸데, 그때 아시아 신학자 협의회에서 현상 논문을 냈어요. 그때 당첨된 에듀케이션 포 스피리튜얼리즘 인가 해가지고 영성을 위한 교육, 그런 것들이 아시아 신학 협의회의 주제가 되었어요. 그 후에 나온 모든 논문들은 대부분 종교 다원주의 체제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씌여진 것 들이에요. 그때는 그것이 가장 up to date 한 사고방식이었어요. 그러니까 논지는 그거죠. 모든 종교의 영성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논문에서 주장하는 바는 진정한 영성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목사들은 절에 가서 참선을 하고 중들은 내려와서 철야기도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종교간 화합이 이루어지며 모든 영성들을 공유하는 활동 속에 진정한 종교간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논리들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지금 이 시대는 여태껏 나타났던 모든 시대 가운데 신앙적 사상에서 매우 혼탁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변천하는 사조 속에서 불변하는 복음을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의 신앙이 성경적인가를 분별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대의 희생물들이 되는 거예요. 더군다나 오늘 날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교회의 극단적인 침체에 대한 반발로서 강한 성령 운동의 욕구 같은 것들이 나타나요. 그러면서 이것들이 매우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죠.
지금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혼탁한, 그래서 교회들이 정신을 못차리는 매우 혼탁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이에요. 여기에서 결국은 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 하면, 사상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말이죠,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고 살아요. 수백만이 아니죠. 역사를 이렇게 단면적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마르크스나 엥겔스 같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하나 만들어서 그 사상에 희생된 사람들이 수천만명이에요. 이차대전을 겪었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상이 허구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 했던 것이에요. 그래서 사단은 어찌하든지 이 사상 속에 침투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20세기에 나름대로 외롭게 이 사상계를 파수하려고 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프란시스 쉐퍼 같은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전 사상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믿는 사람들은 사상에 의해 동요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나름대로의 사상을 가지고 우리들을 혼돈케하는 것이죠. 그래서 빠져들게 하는 것이죠. 더군다나 메마르고 건조한 세계를 사는 사람들은 표적에 목말라 있어요. 벌써 우리의 영혼은 성령의 은혜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그 성령의 은혜들을 사모하는 지각이 발동하기 시작해요. 그런데 성경적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정결케하여 하나님을 체험하고 인격적인 성령에 의해 변화받는 과정들은 너무나 길고 복잡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아주 단순하고 쉬운 방법으로 성령을 체험하는 비결을 배우고싶어하는 것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사단은 아주 어두움 속에서 가둬두고 놀기에 좋은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 판명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파고 드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한번 보죠. 25쪽입니다.
얼마전 신학교에서 가르친 어느 제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호소하는 고민은, 자신은 신학교를 졸업한 후 어떤 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는데 몇 달 전 담임 목사님께서 외국에 다녀오신 후, 예배시간 마다 교인들에게 설교는 안하고 기도만 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두달째 계속 기도회를 하는데 교인들을 눈 감긴 채 자신 앞에 세우고 손을 위아래로 쓸어내리며 무엇인가를 기도해 주는데 교인들이 쓰러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교인 중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하도 오랫동안 기도해 주시는데 어떤 때무안해서 쓰러지는 척 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사는 생각다 못해 이런 집회 방식을 의존하는 것이 옳은가 반문했더니, 결국 믿음이 없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한다고 책망만 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이런 파행적 교회의 상황을 막을 길이 없어 사임하고자 하는데 자기 결정이 옳으냐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세상 소겡 쉽게 잠들어왔습니다. 교회가 잠들때의 공통적 상황은 생명이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생명과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영혼이 변화되는 일들이 매우 희박해 집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의 다른 도덕적 집단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교회 안에서 본질적으로 사람을 고쳐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변화의 능력이 교회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집단과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모임과는 달리 인간의 불행과 세상의 고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해 부름받은 기관입니다. 그리고 이런 근본적인 치료는 사람의 영혼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는데 기초한다. 따라서 교회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는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 은혜의 방편을 따라 영혼을 변화시키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기여하는 일이 중심이 되는 대신, 사람들을 사회적이고 인본적인 요구를 만족시킬 방향으로 교회를 운영하게 된다.
왜 이유는 무엇때문인가요? 본질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으니까 그때는 새롭게 회복하려 하기 보다는 그 없는 것을 다른 쪽으로 대치하는 식으로 교회를 이끌고 가는 것이 훨씬 더 쉽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교회가 세속에 흐르거나 그릇된 성령 체험에 유혹을 받는 상황은 이렇게 복음의 능력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상황을 밑그림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화석화될 때 그리스도 인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각에서 생명의 능력되시는 성령의 역사와 충만함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가 생명의 능력으로 가득차고 영혼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은 역시 성령이 교회와 함께 하심으로만 가능하다. 타락하고 무감각한 인간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도 성령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80년대 후반 이후로 조국교회에서 성령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영성운동, 성령 운동이라는 방식으로 나타난 새로운 목회 패턴은 급기야 영성신학이라는 용어들을 만들어 내며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이러한 분야의 관심을 기울잉]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일찍이 성경의 신적 기원을 부정하면서 합리주의적인 신앙을 받아들이는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줄치세요, 이러한 영적을 회복을 갈구하는 방법 자체가 매우 즉흥적이고 위험할 정도로 비성경적이라는데 있다. 실제로 80년대 초반 카톨릭에서 일어난 성령 운동이나, 같은 시대 중반 이후 합리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신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영성신학중 상당수가 종교다원주의적 신학과 맞물려 이론을 형성하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 다음 두 번째, 26페이지 그 위에 줄치십시오.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중들을 깨닫게 하는 사역을 통해 성령의 능력을 체험케 해주는 성경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회복을 지향해야지 그런 식으로 교회가 생기만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사람들이 그런 교회의 사역을 통해 무엇인가 느낄 수만 있다면, 그 모든 느껴지는 것들을 모두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신비한 영적세계는 다른 영적인 세계에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결국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그 교훈에 줄 치세요.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생명이 사라지고, 생명이 사라지게 되면 또다시 생명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런 생명 회복에 대한 운동들이 말씀과 동떨어진 성령 자체의 추구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약속된 생명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영적 회복을 위한 접근이 성경에 입각하고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총체적인 회복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모습과 그리스도의 신앙 자체를 복음에 조명하여 보고 모든 성경 말씀으로 살펴보는 말씀의 회복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리고 구원과 영혼의 변화를 위한 생명을 잃어버린 것은 먼저 그리스도인들의 변질된 신앙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복음으로 돌아가고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이 진리안에서 채워질 때 그릇된 성령 추구로 말미암는 오류는 방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그릇된 영성 운동과 성령운동은 교회의 답답한 영적 상황을 타개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왜곡된 신앙관과 탈복음적인 모습을 만드는 원인이 되리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분리된 성령의 추구, 은사운동 같은 것이 생겨나게 되었는가? 무엇 때문에 신약성경에 낯설어하고 있는 (?) 은사집회나 심지어 함께 나열될 수 없는 두 단어가 합쳐져 성령 운동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게 되었는가? 이것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은사집회라는 용어는 성립할 수 없는 용어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모이는 목적은 은사를 받기 위한 것도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성령 대망 집회 이런 것들도 저는 좋은 명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모이는 목적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해설을 듣는 것도 예배라고 하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심으로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깨닫는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안에서......
그 다음 보겠습니다. 이런 운동이 있기 전에는, 거기 줄치세요. 교회 안에 이미 오래도록 말씀의 능력을 경험치 못한 메마름과 침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화석화 현상 가운데서 교회는 하나님 말씀의 진리들, 복음의 핵심들에 대해서 체험하는 일들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먼저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말씀이 선표되거나 증거되는 현장에서 성령의 능력이 사라진다는것이 궁극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급기야, 이렇게 말씀이 증거되는 자리에서 말씀의 영향력을 경험하는 것 자체에 대한 긷를 잃어버리고 설교나 말씀 중심의 목회 그런교회 생활 자체가 생명의 능력이 교회 안에 역사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복음 진리에 대한 패배주의적 사고 방식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라고 할 지라도 회중의 편에서는ㄴ 체험하지 못하는 진리를 붙잡고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드디어 사람들은 머리로 다가와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진리를 알게 된 것이 실제로 그것을 체험한 것과 분리될 수도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빈다. 그리하여 말씀으로부터 동떨어진 성령 체험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운동은 거기 줄치세요, 종종 생명을 회복하는 것 같고 이전에 침체되었던 교회 상태로부터 새로운 은혜의 양상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생명의 나타남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교회가 생명의 회복하기 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배속에서 느끼는 답답함이나 목회의 쇄신을 위한 패러다임의 요청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있어서 생명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는 한에 있어 그것입니다. 잘못 살아있는 것은 죽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쁜 것입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며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와 하나님과의 관께입니다.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있어도 그드링 전하고 믿는 복음이 다른 복음이면,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졸지에 사회 집단이 되고 맙니다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게 만들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찾아 헤매고 교회가 이러한 생명을 되찾기 원하지만, 생명의 근원은 인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니께 있다. 성령을 보내시는 이도 역시 하나님이시기 떄문입니다. 이런 문제에 있어 조국교회에 혼돈을 가중시키는 데 이바지한 한 예를 빈야드 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때 풀러 신학교의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 조차도 20세기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까지 찬사를 주던 빈야드 운동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꽃을 피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운동을 토론토의 축복이라고 까지 불렀습니다. 1994년 한해 동안만 20여만명의 사람들이 빈야드 에어포트 교회를 다녀갔습니다. 저는 여기 다녀왔습니다. 커다란 의문점 중 하나는 집회 가운데 설교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흥의 특이함은 반드시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 복음 자체에 대한 뛰어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세우십니다. 부흥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도 복음에 대한 체험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본 토론토 기적의 현장에서는 진리를 선포함으로 사람들을 깨우치는...... (잠시 끊김) 잘못된 신앙생활이 목회 현장이 변화되었음을 말하고 있지만, 어떤 말씀을 깨달아서 어떻게 진리에 대해 인식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오해가 어떻게 바로 잡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그리고 부흥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진리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선포하기 위해 부름 받은 대언의 영을 받은 설교자는 없다. 그들은 온통 기이한 경험에 심취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기도 하고 웃기도 했지만, 내가 경험하고 성경을 통해 이해한 부흥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토론토의 혼돈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부흥의 또 하나님의 큰 특징은 죄에 대한 심오한 각성과 슬픔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죄에 대한 심오하고 보편적인 각성은 오직 부흥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흥의 시기에 볼 수 있는, 환희와 즐거움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나 환희와 즐거움은 언제나 슬픔과 탄식 뒤에 온 것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인들의 죄에 대한 깊은 자각이 있고 그로 말미암아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애통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들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고 따라서 말씀을 통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하게 되고 태만했던 자신의 신앙과 의무에 마음을 쏟게 되고 그리하여 성령이 오셔서 기쁨이 그들에게 밀고 들어가게 되는 일들이 바로 부흥의 시기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 1773년 말에 있었던, 에드워드를 도구로 하신 뉴 잉글랜드 노스 햄튼에 대한 한 편의 보도는 우리에게 이러한 부흥에 대한 특징을 잘 나타내 줍니다.
교인들은 설교를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슬픔과 탄식으로 울었고, 어떤 사람들은 기쁨과 사랑 때문에 그리하였습니다. 우리의 회중들은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어떤 회중들보다 자신들의 신앙의 의무를 행함에 있어 훌륭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나는 날 모든 교제 가운데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만날 때마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에 대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 영광에 대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죄 가운데 있는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런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 하시는 일의 진실하심과 완전함,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품을 묵상하는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 결혼식에서조차 오직 하나님에 대해 나누기를 즐거워했으며 오직 영적인 환희 외에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이게 참된 부흥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도덕적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고 체험에 미친 현상들은 참된 부흥이라고 할 수 없죠.
필자는 토론토 교회를 향한 사람들의 비난과 부정적인 견해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갈 떄 개인적으로 엄청 마음이 가난해져 있었어요. 비행기 탈 때부터 제가 그때 거기 갈 상황이 아니었는데 정말 가난한 마음으로 갔어요. 한국 교회가 다 욕해도 내가 거기 거서 그것이 참된 부흥이라고 느껴진다면, 거기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일 것이다. 탐구자의 정신으로 간 게 아니에요. 정말 받아들일 마음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간 거예요. 결국은, 아니었다 그거죠.
그때 어떤 신학자들은 성경적인 증거들을 들면서 쓰러지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본인은 그런 것들이 참된 부흥이 아니라는 유일한 근거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얼마든지쓰러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17세기 초 아일랜드의 올드스톤 지방에서 부흥이 일어날 때 제임스 그렌들링의 설교를 듣돈 12명의 무뢰한이 졸도를 해서 들것에 실려나간 일도 있지 않은가? 막상 거기 가서 보니 그런 쓰러짐과 소위 홀리 래터(holy laughter)를 그런 부흥의 시대의 역사와 비교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제가 간 이후 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사람드링 일어나서 성령을 체험했다고 그러면서 짐승의 울음 소리를 내는 거예요. 사자 우는 소리, 소 우는 소리.....그걸 성령의 역사라고 보는 거죠. 난 아주 황당무계했어요. 그리고 거기 온 사람들이 그렇게 성령의 체험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예배자의 마음이 아니었어요. 반바지 입고 다리 꼬고 무대의 어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같았아요. 그런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도저히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나중에 청교도들의 저작들을 읽으며 확신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건 악령의 역사다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보세요. 쓰러진 많은 사람들을 한 두시간 가까이 봤어요. 가서 막 쳐다보고 그리고 일어나는 사람들......그런데 체험만 있을 뿐, 두시간 가까이 쓰러졌다 일어나는데, 표정이 뭐냐면 잠자다 일어난 사람같아 보여요. 사실 저는 쓰러지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열려있어요. 제가 1989년도에 설교하고 90년도 에도 그런 현상들을 봤어요. 설교를 하는데 사람들이 쓰러져요. 설교를 듣다가. 그러니까 그런 일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가 가득한 그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강력히 임하셔서 그 임재가 충만하시면 주니밍 임하신 그 영적인 상황과 자신의 냐면 속 영적 상황이 너무 현저히 차이가 날때 때로 그런 영적 능력에 압도되어 사람들이 얼마든지 쓰러질 수 있어요. 그러나 쓰러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요. 결과로 나타나는 것과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죠. 예를 들면 내가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뭔가를 보여주셨다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뭔가를 봐야겠다 그렇게 목표를 삼으면 벌써 잘못된 길로 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보세요.
얼마전 빈야드 운동본부에서는, 여기서 결정이 났어요. 제가 오고 나서 1년 정도 후의 일인데, 카나다의 토론토 교회와 남가주의 파사리나 교회와 미주리의 한 교회 등 빈야드 운동 본부에 등록되어 있던 세 개의 교회를 전격적으로 제명합니다. 윔버 목사에 의해 주도된 이 운동은 오순절 교회의 한 전형입니다. 성령의 가시적 역사와 체험, 은사와 능력의 추구 및 목회적 활용, 성령에 의하여 갱신된 예배 스타일의 강조, 구제 등을 주장하는 교회들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성령 운동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비 성경적인 신비주의 분파라고 하는 상반된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특별히 존 아노트 목사가 시무하는 토론토 교회는 토론토 축복이라는 명칭을 달고 오순절 성령운동의 바로미터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교단의 이런 조치는 가히 충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토론토 축복이라는 말은 강력한 역사들로 말미암는 현상들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자들이 치유함을 받고 성도들 사이에 사랑과 화해의 역사가 일어나면 예배 도중, 웃는 것도 그냥 낄낄 웃는 것이 아니라 온 홀이 다 울릴 정도로 사람은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사람 웃으면 이게 아프잖아요. 그런데 몇 시간씩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 웃는 거에요. 이해가 안 가요. 그러나 그러한 운동의 근원이 된 교단의 눈에도 이 오순절 계통의 한계에서도 벗어났다는 것이니다.
오늘 우리는 이처럼 교회가 능력을 회복하고 생명을 소유하기 원하는 목적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 운동과 부흥이 같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목표다. 거기 줄 치세요. 성령 운동이 교회의 양적 성장과 잃어버린 생명력에 대한 단순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면 부흐잉 바라보는 전망은 그보다 훨씬 광대합니다. 진정한 부흥은 교회가 잃어버린 생명과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잠자던 다수의 교회들이 끼쳤던 기독교 신앙의 잘못된 영향력 보다는 다른 교회에 없는 생명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교회들이 왜곡된 복음을 전하고 주관적인 감정과 체험에 흐르는 선입견들을 성경 말씀 위에 놓고 그 안에서 성경을 재조명하여결국 하나님 말씀의 순전한 전파를 방해한 사실들이 더 큰 해악을 끼쳤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교회가 생명을 엃어버린 능력이나 사모함이 단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목회적 타개책으로 여기거나 능력에 대한 탐함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교회가 무엇떄문에 부흥을 사모하는 가에 대하여 답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선택하신 이유애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자기를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전파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 줄치세요, 다른 백성들과는 전혀 다른 원리와 영행력 아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불러내신 이유도 교회를 통해 당신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유혹이 강력하냐하면 그 박순영 목사님 영국에서 오셔서 말씀 들으니까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81년도인가 돌아가셨는데, 그 교회에서 거의 40년 가까이 목회하셨어요. 그 전 목사님이 누군가 하면 캠벨 몰간 목사님이에요. 그 분은 무디가 부흥운동할 때 잠시 웨스트 민스터 교회를 쉬고 성경 교사로 촉탁 받으신 분이죠. 공식 학위가 하나도 없으면서도 탁월하게 성경을 푸셨던 분인데 물론 그 분이 가진 생각은 로이드 존스 목사님 하고는 좀 달랐어요. 그런데 하여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거기에 부목으로 들어오고 캠벨 몰간 목사님이 은퇴하면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등단하셨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사역하셨는가가 <로이드 존스의 초기 생애40년> 에 나와있어요. 후기 생애 40년은 아직 번여깅 안 되었는데, 두 책 합쳐서 1200페이지 가량 됩니다. 너무 방대하죠. 이번에 토니 사젼트라고 하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 설교를 많이 듣고 그 아래서 신앙 생활 하던 분이 박사 논문을 하나 썼는데 <위대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예요. 그런데 그게 훨씬 더 깔끔하게 정리를 잘 해 놓았더라구요.
거기서 보면 그 목사님이 열정적으로 설교 합니다. 회중들이 놀랍게 변해요. 3000석이 거의 찹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이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정말 내면과 외면이 일치한 삶을 사신 분이었어요. 그 분이 설교하는 장면을 토니 사전트가 이렇게 술회하는데, 그분이 설교한 내용이 테이프 박물관이 있을 정도래요. 몇 개인지는 모르지만, 번호가 한 5000몇번까지 나가는 걸 보니 어마어마하죠. 그 설교들을 아주 공들여 보관했는데, 초기에 설교할 떄는 녹음기가 없었는데, 설교하는 도중 녹음기가 생겨났어요. 그 시점부터 녹음 한 거죠. 그런데 그 분을 회상하며 무슨 얘길 하냐하면 한참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설교할 떄는, 기도에 있어 이미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대요. 그리고 설교가 시작되면 뿜어내기 시작하는데, 정말 폭포수같이 뿜어내다가 설교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끝나야 하는데 끝나지 않고 빙빙 도셨대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 짐승처럼 말이죠. 그러다 어느 한 순간 그 기다림이 지나가면 성령의 강력한 임하심이 말씀 마지막 부분에 임하는 것이에요. 그가 뭐라 표현하냐하면, “그떄가 되면 우리 모두는 단숨에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그런 설교를 듣고 3000명이 놀라운 변화를 받았는데 그게 불과 한 20여년 전 이야기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그 후에 캔달 이라는 목사님이 왔는데, 부목으로 있다가 맡았는데 그 분이 제임스 페커 밑에서 연구를 했다구요. 청교도 연구가. 그리고 청교도에 대해 논문을 썼어요. 지금 어떤지 아세요? 다 가고 300명 남았는데 토론토 빈야드 불러놓고 집회했대요. 전 거기서 하나 배운 것이 쉽게 말하면 쇄뇌된 복음 주의자와 체험한 복음 주의자는 똑같은 게 아니에요. 로이드 목사님 교회에서 운영위원들이라고 하나? 회중 교회였으니까. 운영위원들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모르는 사이에 세웠을 리는 없는데, 그 사람의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그 분을 세웠는데 아니었어요. 그분 설교를 제가 듣지는 못했는데 읽어 봤거든요. 전혀 동의 하기가 어려운 설교예요. 그거 보면 얼마나 참 된 복음의 진리를 통해 형성되는 견고함이 후에 생겨나는 혼미한 복음주의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양상에 의해 얼마나 쉽게 부정되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영국에 가서 그 분 밑에서 있던 사람들과 대화하며 대화해 보고 싶어요. 그렇게 영향력있는 설교 사역을 했는데 그렇게 교회를 맡을 만한 후임자가 없었겠는가? 지금도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교수나 이런 사람들로 굉장히 많이 활동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역시 하나님의 그 선하심을 맛보아서 부흥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만들어진 사람과, 단지 지적 감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설교자가 결코 같지 않다는 깊은 교훈을 거기서 받고 있는 것이죠.
다음, 신적 셩험 거기는 지나가고. 30페이지로 넘어 갑니다. 중간 부분, 부흥은,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 답게 하는 내적인 원동력을 회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따라서 교회가 이러한 원동력을 받을 필요가 있을 떄, 즉 부흥을 필요로 하는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관계를 붙들며 살지 못할 떄 그건 단지 능력을 잃어버린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믿고 무엇을 살고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할 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자체가 뒤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은 언제나 깨닫지 못하던 자신들의 상태를 새롭게 보고 문제를 삼지 못하며 살아오던 교회의 영적 상태에 대한 자각과 함꼐 시작되는 것입니다. 부흥과 죄에 대한 심오한 각성이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부흥인가 하는 질문은 두 방면에서 계속 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무엇에 의한 부흥인가 하는 문제이고 또 하나는 부흥에 의해 사람들은 어떤 소망의변화를 경험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과 경험한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관심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가에 대한 말입니다. 부흥의 시기에는 성령의 역사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섹력들도 천사로 위장합니다. 마음 먹기만 하면 무지한 사람에게 참 된 부흥과 거짓된 부흥을 경험케 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부흥을 미끼로 장난 치는 사단의 궤계를 벗어버리고 그의 못 된 발동들을 재갈 먹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진리를 아는 지식입니다.
여기서 교회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게 됩니다. 그것은 조나단 에드워드가 외할아버지 교회에서 사역을 함꼐 하잖아요? 부목사로. 외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나서 자기가 그 교회를 담임하게 되는데, 그게 노스 햄튼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사역을 했는데, 거기서도 쫓겨나게 되었는덴, 그 이유가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죽어도 성찬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세례는 물론이구요. 그 앞에는 에버네저 목사님이거든요. 그가 목회하고 이어 스토다드 목사님이 목회할 떄 그 초기에 이미 다섯 번의 놀라운 부흥들이 있었지만, 굉장히 많은 수가 회심하지 않은 상태로 교회에 남아있게 되는 거예요. 참고로 청교도들에게 있어 이 회심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요. 그래서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회심했다고 하는 것은 청교도들에게 있어 굉장히 낯선 교리에요. 깊이 연구해서 오늘 날의 세컨드 브레싱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 지는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는데, 청교도들에 있어서는 그러한 것을 생각안해요. 그들은 아주 단호합니다. 구원에 이르기 전에 성령의 예비적인 역사가 있고 진짜 회심을 통해 변화받는 역사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프레터리, 예비적 사역을 통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 든다는 거죠. 그 문제에 관해 아주 깊이 빠져들어가요. 어쨌든 간에 구원문제에 대한 청교도들의 견해가 어떤 지 알려면 회개의 참 된 의미, 조셉 얼라인이 쓴 글들을 여러분들이 읽어보길 바래요. 나는 여러분들에게 권하는데, 때로는 여러분들이 우리 같이 좁은 머리로 성경을 뚫어보겠다고........그래서 성경만 공부해서 뭘 뚫어보겠다고 하는 생각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이제껏까지 그 성경을 읽으며 고뇌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를 읽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경을 보다가 그릇된 오류에 빠졌는가 하는 것들을 총체적으로 보면서 오늘 날 내가 이렇게 성경을 보고 파악하는 이것이 참된 것인가 하는 것을 해석의 역사를통해 거울로 비춰보는 과정 없이는, 또하나 자기가 만들어내는 도그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건전한 이단 불건전한 이단 이렇게 말할 수 없지만. 성서주의를 가장한 이단과 탈 성서주의를 가장한 이단이 있어요. 아예 이것은 시작부터가 성경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단이라기 보다 이교죠. 그런데 문제는, 비블리즘을 가장한 이단들이에요. 교묘하게 비블리즘적 이단이 어디냐하면 문선명교 같은 거예요. 성경도 안 읽는데 읽었을 리가 없죠. 원리 강론을 읽어보면 깜짝 놀라는 것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수많은 성경 구절들이 인용되고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 놀라운 것은 그 성경 구절들을 모두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고, 세 번째 놀라운 것은 그 해석 가운데 하나도 맞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부분적으로는 조작을 해 낸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성경을 읽으며 자신이 그런데 심취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독특한 도그마들을 만들어 내는 거에요.
이런 것드링 굉장히 위험해요. 그러니 균형을 갖춰야 해요. 그래서 성경을 읽으며 씨름하는 가운데 책들을 함께 읽어야 해요. 그래서 제가 작년에 큰 맘 먹고 살점 같은 시간을 떼어내 뭔가를 해주리라 마음 먹고 청교도 저작들을 읽는 모임을 만들테니 와라, 그랬더니 세 명 나왔어요. 그래서 결국 무산됐죠. 여러분. 정신 바짝 차려야 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신앙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질 않아요. 나는 여러분들이 특별히 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는 것만큼 하나님의 기름부음의 감화가 있는 책들에 여러분들의 인격을 깊이 젖게 하기를 강력히 권고합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신학교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은, 성경을 하나도 안 읽고 온 사람들은 덜 문제가 되요, 그 사람들은 이제 신학교와서도 안 읽으면 문제가 되는데 읽으면 해결되요. 그런데 문제는 신학교 오기 전에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고 온 사람들 중에서 굉장히 위험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죠. 성경 본문만 꾸준히 읽고 온 사람들은 괜찮은데 사람이라는 것이 안 그렇잖아요. 성경을 읽다보면 의문에 생겨서 자꾸 탐구를 하는데, 이걸 이상한 인도자의 안내를 받아서 들어갔다 나온거예요. 자기는 객관적으로 성경을 공부한다고 하는데 성경은 객관적으로 공부가 안 되는 거거든요.
자기가 이상한 전제들을 가지고 들어오는데 신학공부 속에서도 이 전제가 안 바뀌어요. 결국은 성경을 잘못배운 것은 신학을 통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충돌되는 것은 모두 버리고 맞는 것만 골라서 자기가 믿고 있는 성경의 오류있는 심령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거예요. 제가 신대원 1학년때 헬라어 히브리어를 배우러 다녔는데, 거기 같이 공부하는 자매 한 분이 있었는데, 정말 전도사라고 하기에는 정말 미인이에요. 제가 미인이라고 잘 말 안하는데, 우리교회 자매들은 좀 있지만(웃음), 정말 눈부실 정도의 미인이에요. 탤런트 같아요. 저런 사람이 전도사 하면 사람 많이 실족하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 그렇게 같이 헬라어를 배웠어요. 어느 날 저녁을 사주겠대요. 많이 사주드라구요. 탕수육도 먹고 뭐 잔뜩 먹었는데, 알고보니 이단에 속한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먹은 거 도로 뱉을 수도 없고.....그랬는데 마지막 한마디가 충격적이었어요. 자기는 히브리어 헬라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자기네 목사님, 자기네 교주 이야기가 진리라는 거예요. 원어를 배우는 것도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전제예요. 그렇게 떄문에 제가 권고해요. 성경을 기본으로 하되, 반드시 기름 부음의 감화가 있는 책들을 읽으라는 것이예요. 그러면 무엇이 기름부음의 감화가 있는 책인가? 이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간단하게 100년 이전에 나온 설교집입니다. 그랬어요. 난 그렇게 까지 말하진 않겠지만, 기준은 다 읽었을 때에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박수치고 싶은 게 아니라 기도하고 싶고 성경을 다시 살펴보고 싶게 하는 그런 책, 그런 대화나 그런 모임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책을 읽고는 함께 디스커션을 하는 것이 매우 유익한데 어떤 때는 그 책을 세 번 읽은 것보다 더 커다란 성과를 가져다 주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할 때 저 사람은 그 이야기를 방어하는 가운데 자기가 생각한 바를 정돈하게 되는 거죠. 그런 작업들을 함께 해 나가야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독단에 빠지게 되는 거예요. 그걸 기억을 해야 하는 거예요.
역대의 오류 중 첫 번 째는 성경을 떠남으로 나왔고 두 번째 오류는 성경과 홀로 대면을 했을 때 그런 문제들이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렇게 성경 갈피 하나 하나 사이에는 피가 묻어 있어요. 몸부림 치며 성경을 이해하고 진리를 탐구하려고 몸부림 친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건너뛰려 하지 말고 그 사람들과 합의 하려는 겸손한 태도를 배워야 한단 말이죠. 그렇다고 이상한 사람, 엉뚱한 사람 만나서 합의하면 곤란해요. 망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조나단 에드워드가 노스햄턴 교회로 가잖아요. 하나가 이제 비 회심자들을 세례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죠. 할아버지가 상당히 능력있게 목회를 하셨는데도, 막판에는 세상의 풍조 자체가 그렇게 방탕하게 흐른 거예요. 젊은 이들이 모여 요즘으로 치면 맨 고스돕 치고 닭싸움 붙이고 술 내기 하고 세월을 다 보내는 것이에요. 교회에는 점점 회심한 사람 보다는 회심 안 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러니 천상 할 수 없이 교회 멀쩡히 나오는데, 제가 만일 어느 날 여러분보고, 너 너 너 너 당신 당신, 내가 목회자의 양심으로 도저히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는데 주일하교 교사직도 반납하고 성찬에 참여하지도 말고, 그러면서도 교회 나오려면 나와라하면 나오겠냐구요. 나오겠죠. 나오는데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도전하고 나오겠죠. 딱 품고. 그러니 도전하는 거예요.
문제가 된 것은 지옥에 대한 설교예요. 6년간 지옥에 관해 설교하잖아요. 끔찍해요. 그 설교 모아놓은 것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그 설교를 듣다가 한 청년이 너무 무서우니까 뛰어나가서 목 매달아 죽잖아요. 회개를 해야지 왜 죽어. 마귀의 역사죠. 그거 때문에 결국 노스헴튼 교회를 떠나게 되죠. 그런데 그 이 전 34-35년 사이에 커다란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노스햄튼이. 경험하게 되도 그런 일이 일어 나요. 부흥을 경험했는데, 1940년도에 엔필드에서 부흥을 경험하게 되고 그 부흥의 불길이 다시 노스 햄튼 주위를 휩쓰는데 문제는 노스 햄튼에서는 이상하게 마귀가 장난을 못치는 거예요. 그 유가 뭔자 아세요? 그 이전에 부흥을 경험하면서 혼란스러운 문제가 정리가 되어 있었던 거예요. 조나단 에드워즈를 비롯한 신자들 사이에요. 그런데 이제 첫 번째 부흥의 불길이 번지면서 사람들이 생전 처음 경험하는 거거든요. 이런 얘기는 뭐 몇 대 할아버지때 들었던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놀라운 역사가 지금 일어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막 사람들이 혼돈에 빠지는 거예요. 오늘날 오순절 성령운동에서 보여지는 이상한 상황 같은 것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밤 새도록 스크럼 짜고 고래고래 찬송가 부르고, 내게 하나님이 말씀 하셨는데, 내게 설교하라그러더라 그러면서 어느 날 젊은이들이 뛰쳐나가서 내가 하늘로부터 왔다 그러면서 소리치는 황당 무계한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사단들이 한없이 현상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거예요. 언제든지 마귀에게는 현상에 혹하는 사람이 아주 좋은 도구가 되는 거예요. 성경에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현상이 무엇인가에 미혹되는 것이죠.
그러다가 이제 조나단 에드워즈는 스스로 평가하는 가운데 문제점을 여섯 가지 정도로 지적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지적된 것이 위대한 부흥을 다룰 만한 무지한 목회자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순수한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거기에는 말씀을 새롭게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언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체험을 통해 자신의 뒤틀린 신앙을 보고 총제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여 성경으로 돌아가는 회복과 함꼐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 줄치세요.참다운 부흥의 역사에서는 단지 생명을 탐하고 능력을 원하여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거나 삶의 점검하여 드러나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추함을 바라보고 참회의 영으로 뉘우치는 일이 없이 단지 하나님께서 생명과 능력만을 주신다고 생각하던 역사는 기록할 가치가 없는 역사였다. 뒷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하나 남습니다. 문제는 부흥이 이땅에 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 설교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말씀을 제쳐놓고 생명과 은사를 추구하여 성령 행동(?)에 뛰어드는가 하면 주지적인 도그마티즘에 빠져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에 만족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이야말로 신앙 부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부흥의 시대는 이러한 점에서 놀라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를 힘썼고 동시에 그 말씀 위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자신과 회중들이 진리의 말씀과 은혜를 경험하기를 힘썼습니다. 이전에 있어 18세기의 위대한 부흥의 도구였던 설교자들에 대한 평가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들의 설교에는 장엄함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과 생각에는 타오르는 불과 힘이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우리는 그 설교자들이 힘의 사람들이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설교는 나팔이 되었고, 그 나팔 소리로 성자에게나 죄인에게나 교인에 대해서나 세상에 대해서나 결코 희미하게 혹은 애매하게 소리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말씀을 증거함에 있어서 주춤거리거나 입발린 소리를 허거나 겉치레의 말로 예언을 대신하는 것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멸하시고 죄의 종지부를 십자가 위에서 찍으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역사하게 된 주님의 큰 기쁨의 소식을 선언하게 된 것보다도 하나님의 율법과 형벌을 증거하는데 더 탁월하였습니다. 그들은 구도자들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그 구속의 성취로 곧장 이끌어 내어 복음을 즐거워 하게 만들어 주는 일보다도 먼저 그들에게 자신의 행위가 무엇이고 무엇을 느껴야 하고 믿어야 하는 지를 심어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시간에는 또한 구주가 누구이신지를 완전히 드러냈으며 주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대해 자유롭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의 설교는 엄청난 능력으로 청중들에게 던져진 용맹스럽고 담대한 종류의 선포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은 격렬하지 않았고 사납지 않았으며 시끄럽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경건하여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것은 경박하지도 않았으며 무게가 있었고 날카로웠으며 사람의 심령을 깨뜨리는 힘이 있었으며 좌우의 날선 검보다 예리하였습니다. 그들이 휘둘렀던 말씀의 무기들은 잘 담금질되어 있어 반작반짝 했고 예리하고 날카로웠습니다. 그들은 결코 빈약하거나 훈련되지를 않은 무기를 단지 휘두르기만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32쪽으로 넘어가세오.
성경을 열어주는 영적인 체험.
참된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성경 말씀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열려 복음 진리를 드러내주는 일에 있어 커다란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마련입니다. 부흥에 있어 특이한 점은 성령 역사를 통해 다수의 회중들이 동시에 하나님 인격에 대한 영적 체험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격의 체험은 성경의 이해와 깊은 관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아래 32쪽에 가서, 이에 대해서 하나님을 크게 체험했던 청교도 신학자의 동일한 지적을 발견한다. 우리는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영적 체험을 이누어데 일루미네이션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성령의 내적 조명으로 말미암는 이해의 표징은 이것이 이제, 개인적 부흥을 통해 성경의 진리들을 조목조목 깨닫게 되는 그런 변화예요. 성령이 오셔서 진리에 대해 말씀해 주실 때 성경에 대한 이해가어떻게 바뀌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에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표징이라는 것이죠. 이해의 표징은 이제 성경이 일목요연하게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 의해 조명 받은 사람에게 성경은 이제 더 이상 단절된 항목들의 정신없이 혼란스러운 뒤범벅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보였을 지 모르나 성경의 모든 부분은 성경이 주는 내적인 유익 아래서 조화와 일치를 이루고 성경의 모든 진리는 능력과 필연성으로 함꼐 전체적으로써 증거하며 다가옵니다. 부분과 부분이 조화하며 성경의 각책들은 서로 맞물리며 성경 전체의 종합적인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영적 실재들을 경험케 되는 내적 경험들은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분은 깊이 하나님 체험 하셨던 분이에요. 이 사람 책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지금 남아있는 저작 전집이 25권이거든요. 그런데 한 권이 500내지 600페이지예요. 그런데 돋보기로 봐야할 정도로 깨알 같은 글씨들이 섞여 있어요. 번역을 하면 제 생각에는 아마, 130권 정도가 될 방대한 분량이에요. 그런 것들을 놀랍게 퍼낸거죠.
마지막 맺는 말입니다. 따라서 오늘 날 말씀과 은혜 체험이 상반된 두 개의 전제들로서 교회안에 대두되고 있는 것은 비복음적인 사고방식이다.
맺는말입니다. 두 번째 단락입니다. 본질적으로 부흥은 성경에 약속된 교회로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 분의 주권 아래서 생명과 신령한 능력과 하늘의 기쁨을 회복할 때 교회는 성령의 권능이 뚜렷이 함께 합니다. 그러나 참된 부흥과 각서으이 시대를 살았던 신앙의 선진들은 성령의 은사와 별스러운 체험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사역과 삶에는 성령의 놀라운 이적과역사가 함꼐 했고 자신들의 전하거나 듣는 말씀을 충족히 여기는 풍부한 부흥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부흥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들이 소유한 능력이나 체험 자체가 아니라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었습니다. 사람은 방법을 찾아내지만, 이 일을 이루시는 것은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어두운 세상의 불꽃처럼 살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세상을 불꽃처럼 살아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마직막 결론은 이겁니다. 순순한 복음진리를 능력있게 선포하는 강력한 강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적 체험의추구는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데 거의기여하지 못합니다. 제가 부흥의 역사를 살피면서 느끼는 특이한 점 하나가 18세기의 부흥 보다는 사실 19세기에 더 풍성하고 세계적인 부흥이 일어난 시대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19세기의 부흥은 이상하게 설교 중심의 부흥이라기 보다는 기도 중심의 부흥이었어요. 그런데 1850년도에 있었던 미국의 부흥도 기도회를 통한 부흥이었거든요.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이 그런 기도 부흥이었는데 결국은 모든 것들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18세기에는 강력한 말씀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청교도들을 통해서 15,17,18세기 스쳐간 부흥들은 수많은 진리에 대한 해석들을 남겼어요. 그런데 그것들이 어느 정도 탁월하냐 하면 오웬이나 에드워드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냐하면 어느 청교도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후대의 한 사람이 뭐라 했냐하면, 누군지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 그 사람이 뭐라했냐면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한다. 존 오웬과 에드워즈의 전집을 다 읽기 전에는 기독교에 관한 아무 책도 읽지말라” 할 정도로 방대한 피스들을 남겼어요. 그 양은 지금봐도 그저 집필을 했다면 쓸 수 없을 정도의 분량이에요. 어마어마한 분량인데, 성경에 대한 엄청난 이해를 던져줍니다. 지금 원서라서 묻혀있어서 그렇죠. 그런데 19세기만 넘어와도 안 그래요. 19세기 마지막 부흥의 물을 먹은 사람들의 글도 이런 건 있어요. 정신을 드러내요. 그런데 그 정신 속에 박식한 성경에 대한 지식들로 무장되어서 성경의 의미를 찬란하게 드러내놓는 해석에 있어서는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요. 더구나 20세기에도 마찬가지예요. 더 그렇단 말이죠.
정말 복스러운 부분은 이러한 산물들이 후대를 깨우는 역할들을 한다는 말이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깨달음들을 해놓음으로써 후세에 진리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참다운 밝은 빛을 던져주는 그런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죠. 로이드 존스 같은 분들이 존오웬이나 에드워드나 그런 청교도적인 뿌리를 박고 있는 거예요. 로이드 존스의 어떤 페이지를 펴도, 깊다, 라는 인상을 받는 이유가 바로, 신학교도 제대로 안 하신 분인데, 바로 탄탄하게 그런 청교도적인 신학서들을 읽어가며 빛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결국 영적운동의 모든 역사를 통괄하고 나면 하나의 교훈을 배우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강력한 깨우침이 역사하지 않는 곳에서의 모든 영성 운동은 항상 막판에 가서 오류로 흘러버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도 이 시점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를 받고 은혜 받기를 사모하고 더 깊은 진리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성경 자체에 대한 깊은 애착에 다시 한번 불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도 이런 것들을 소망해야 하지, 현상을 쫓아서 무지개를 쫓아다는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예 이제 마쳤습니다.
교사를 위하여Ⅱ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