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2019 새해말씀사경회 새벽)
설교기간|2019년 1월 21일-23일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20년 2월 18일
목 차
1. 제사보다 나은 순종(삼상 15:22) 2019.1.21. 새해말씀사경회 새벽 1
2. 말씀에 의지하여(눅 5:5-6) 2019.1.22. 새해말씀사경회 새벽 5
3. 순종하는 자를 복주심(창 26:4-5) 2019.1.23. 새해말씀사경회 새벽 8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2019.01.21 새해말씀사경회 새벽1)
제사보다 나은 순종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녹취자 : 김세나
배경은 사울이 왕이 된 후 아말렉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말렉은 가나안의 원주민이었는데 완전히 진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산지에 도망하여 살다가 세월이 많이 흐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계심이 느슨해지니까 세력을 키웠고 이 사람들과의 전쟁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지자를 통하여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것들을 다 진멸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사울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벌써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었을 때의 그 낮은 겸손하였던 마음에 변화가 있었던 것을 보여줍니다. 사울이 자기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고, 길갈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접한 사무엘은 부지런히 사울을 만나기 위해 따라갔습니다. 그때 그는 슬프게도 아말렉에서 사로잡은 양과 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울은 변명했습니다. 모든 것들은 진멸하였으나, 이 짐승들은 가장 기름지고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 남겨두었다고 하였을 때, 사무엘이 들려준 준엄한 목소리가 바로 2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말합니다.
사울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생각을 대변해 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불순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했고 아말렉을 물리쳤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것을 진멸했습니다. 그러나 기름진 양과 소를 보면서 모종의 욕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양이 그까짓 욕심을 가질까 하지만, 사람인지라 사람이 그렇게 없애버리기는 아깝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불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울을 다시 평가하시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맨 처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때에는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한없이 자기 자신을 낮게 여기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승리를 거두면서 그는 교만해졌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제사와 번제로 섬기는 그것이 하나님께 대리는 순종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일 저 일 하나님을 위해 섬기고 우리의 삶이 모양, 그림 그 자체가 항상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불순종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바쳐졌다고 생각합니다. 보십시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양과 소들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하나님앞에 죽기 싫어하는 자신의 일부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매우 슬퍼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주일학교 다닐 때부터 이 성경구절은 정말 많이 설교를 들은 성경구절입니다. 누가 여기에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는 사울과 같지 않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언제나 제사가 아니라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번제도 제사도 속제도 하나님의 용서도 모두 그 자체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 당신을 멀리 떠난 인간을 돌이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반응은 믿음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드시 순종하게 됩니다. 사랑은 그 사랑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꿔 버리겠다고 집착하면서 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모자라는 것이 있어도 그를 받아들이고 기다려주고 그가 자신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 깨달으며 진정한 자기를 만들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자신이 사랑이 무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속죄도 주시고 구원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고 또 값진 제물로 제사를 드리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당신께 순종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질서대로 돌아가셔서는 하나님이 행복하실 수 없지만 인간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질서로 돌아갈 때 인간이 가장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많이 당신을 섬기느라 분주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순종한 사람보다는 하나님 앞에 늘 자신의 부족을 깨달으면서 당신 앞에 어린아이처럼 순종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이 순종은 어떠한 것입니까? 오늘 읽은 본문에서 크게 두 가지 나옵니다. 첫째로 듣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듣다’라고 하는 것은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이해된 대로 행동하기 위해 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복종의 마음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귀를 기울인다고 하는 것은 소리가 내 귀에 와 닿아야 하는데 그 소리를 더 잘 듣고 싶어서 내 귀를 소리나는 곳으로 가까이 데리고 가는 것을 귀를 기울인다고 말합니다. 거기에는 더 잘 깨닫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내게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알 때 진리는 우리의 마음에 빛나게 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어느 부분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고 어느 부분이 불순종하고 있는가 깨닫게 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모든 힘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순종하고 난 후에는 우리는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우리가 순종한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본성상 순종할 수 없는 사람인데 나를 감싼 하나님의 은혜가 나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순종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듣는 것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복종의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며 살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듣는 하나님의 말씀과 불순종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탁월한 순종의 삶을 살았던 경건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마음이 산란할 때 그는 말씀을 폅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을 때 그는 조용히 설교를 듣습니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때 그는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해설한 책들을 읽습니다. 그 속에서 예전에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사울처럼 양의 소리와 소의 소리들을 들으면서 마음의 욕심이 커져갔던 사람이 사무엘의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깨어났던 것처럼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의 마음에 많은 혼란과 욕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청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에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과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하였습니다. 다윗은 범죄하고 난 후 하나님이 번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생애에 커다란 영적인 각성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번제가 아니요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제사라는 복음적인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다윗에게 있어서 새로운 깨달음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는 범죄 하기 전 긴 세월을 어릴 적부터 이런 상한 마음과 깨어진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은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다윗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은 야망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주님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쓰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새의 집안에서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미물과 같은 다윗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그에게 전개된 삶은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광야를 도망 다니면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들에게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낼 날이 없습니다. 그때 집중적으로 많은 시편을 썼습니다. 거기에서 자신의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며 하나님께 상한 심령과 깨어진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셔서 그를 위로하고 붙드신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광야와 같은 고난의 길을 홀로 걸으며 때로는 자기를 추종하는 무리들과 같이 목자의 마음으로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시인이 범죄하고 난 후에 그 용서를 빌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으나 세월이 많이 지나며 교만해지며 안일해지며 하나님과의 생생한 교제를 사라지고 마음에 자기를 높이는 교만과 정욕이 불붙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윗과 같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돌이키실 때 그는 깊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왜 그가 번제가 아니라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제사, 통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깨달았습니까. 바로 그렇게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 앞에 순종할 사람들임을 다윗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에서도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이 무엇일까 반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 여기에서 청종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 말씀을 깊이 깊이 받아들이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종을 의미합니다. 복종은 강요된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가져온 순종이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주님을 청종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드리는 제사나 번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바쳐진 사람은 이미 자신을 주님께 모두 드린 사람이고 그 사람이 드리는 제사는 그 제물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제물 속에 자기 전부의 죽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물의 크기가 아니라 그 드리는 제사의 품질, 헌제자의 마음을 보면서 그 제사를 받으시기도 하고 거절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잠시 머물다 갈 세상에서 여러분들은 열심히 섬겼는데 마지막에 주님은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는 음성을 듣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마지막 날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마음이 항상 나에게 바쳐졌구나.”하는 음성을 듣고 싶으십니까. 주님은 오늘도 이렇게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당신의 음성에 청종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순종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시고 막힌 기도의 문을 여시고 바친 말씀의 세계를 열어 주셔서 다시 하늘의 생명과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불순종하게 살아왔던 길을 버리고 마음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2019.01.22 새해말씀사경회 새벽2)
말씀에 의지하여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 5:5-6)
녹취자 : 김세나
예수님이 아끼시던 세 제자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원래 고기 잡은 어부들이었는데 예수님이 오늘 읽어드린 이 본문 속에서 이 세 사람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는 내용이 이 안에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한 시간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약간 이른 오전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미 많은 무리들이 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게네사렛 호수 혹은 갈릴리 바다라 불리는 그 물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보니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 그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밤에 고기를 잡고 아침을 먹고 그 날 다시 밤에 고기를 잡기 위해 어망을 손질하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리에게 말씀을 다 가르치시더니 불쑥 고기 잡는 어부들을 향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평생 갈릴리 호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보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라 말할 수 없지만, 길이가 매우 깁니다. 70km정도 되는 길이이고, 폭은 강폭 정도 될까, 어딘가에 따라 다르지만 바다가 꽤 깊고 꽤 큰 물고기가 잡힙니다. 이 사람들은 평생 고기잡이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업이 어부도 아닌 목수의 일을 하셨다고 알려진 분이 고기가 잡히는 시간이 아닌데, 지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시몬이 이 모든 사람의 우두머리였을 것 같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들이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해서 우리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어서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이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어서 주위 동료들을 불러서 같이 협력하여 고기를 낚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신앙의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예수님이 시몬을 불러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이 베드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 나아가서 야고보와 요한과의 만남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명령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 분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그 말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자신들의 오래 살아온 어부로서의 경험에는 맞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간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세월을 내려오면서 그 바다에서 사람들은 어느 시간에 고기가 잡히고 고기의 물길이 어디인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해서 그러한 방식으로 고기를 잡을 때 많은 고기들이 잡혀서 사람들이 그 업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잡아야 할텐데 거의 고기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에 대해 고백하기를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라는 고백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이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주 의외의 실패였습니다. 그런데 이 실패가 없었더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같은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순종했습니다. 특이한 말이 나옵니다.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은 자신의 경험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기 때문에 자신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겼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실패의 의미를 새기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더욱 보람 있게 사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랜 삶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어부로서의 베드로만큼 우리가 깊고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었으나 실패한날 새벽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어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만, 그는 순종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말씀에 의지하여…” 무슨 뜻입니까? 나의 경험을 내려놓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지식을, 인간적으로 깨달은 세상의 법칙들을 내려놓겠습니다. 나의 상식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만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한 번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아보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에게서 무엇인가 남다른 인상을 받으며 그가 자신에게 하시는 그 말씀에 복종하고 싶었던 마음이 생겼습니다.
보십시오. 순종은 그냥 물 흘러가듯 저절로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인생에 대한 확신과 판단이 확고할수록 순종하도록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은 이치에 맞지 않고, 자신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 같고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많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아마도 처음에는 랍비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하며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랍비 정도로 생각하였을 텐데, 그래도 그분의 말씀이 왠지 권위 있고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자신의 상식과 경험을 꺾고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이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순종은 저절로 되지 않고 자기가 말씀보다 더 굳게 붙들고 있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에서 말합니다. “그렇게 하니 고기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가는 길은 다 될 것 같지만, 그러나 끝까지 걸어가 보면 많은 난관이 찾아옵니다. 결국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길은 안 될 것 같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순종하고 걸어가 보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힘을 주시고 환경을 열어 주시고 마음으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우리 모두 온갖 약점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특별한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결국 예상하지 못하였던 큰 축복을 받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전에도 아침에 고기를 잡은 적이 없고 더욱이 아침에 누군가가 고기를 이렇게 만선을 이루도록 잡았다고 하였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부의 상식을 깨고 아침에 이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거기에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고백하며 예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이 축복은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만선을 이룰 정도로 고기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하루 파라서 며칠 먹으면 없어지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하게 베드로가 자신의 인생, 아니 어떻게 보면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놀라운 사건을 이 어장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가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신은 하나님 앞에 한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잡힌 배안에 가득한 고기를 본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능력을 행하실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순종의 원리입니다. 보십시오. 베드로는 고기를 잡을 요령으로 예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그 사건을 통하여 결국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놀라운 영혼의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후로는 자기뿐만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까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험한 어부의 삶이 아니라 잠시 있다 사라지는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영원하도록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부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축복,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어떻게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받은바 물질을 넘어서는 영혼의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새벽에 기도하시면서 이렇게 이제까지 인간의 상식에 매여 불가능하였던 순종을 이제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큰 복이 이 순종을 통해서 주어지도록, 예수를 만나는 기쁨이 있도록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순종하는 자를 복 주심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창 26:4-5)
녹취자: 김세나
아브라함 때 첫 번째 흉년이 들었는데 얼마간 세월이 흐르고 나서 또 한 번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삭은 아마 이러한 흉년이 있는 살기 어려운 가나안에서 내려가 곡식이 풍요롭던 애굽으로 이주를 잠시 하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들이 오늘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당신이 이삭에게 지시하신 땅에서 거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가나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때에 이미 이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땅을 후손들이 상속하게 되는데, 완전한 상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난 다음, 출애굽 후에 가나안 정복을 하고난 다음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그 약속의 땅을 현재 자신의 땅인 것처럼 개척하면서 그 땅에 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 땅에 거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고, 이 땅이 자신의 후손들에게 주신 땅이라는 약속신앙 속에서 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미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들을 이삭에게 다시 한 번 되풀이 하십니다. 이 땅에 거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복을 주고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겠다고 하시면서,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말하기를,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와 같이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미 하신 말씀이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하셨다는 사실을 이삭에게 상기시키면서 이삭도 아버지처럼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주신 약속이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나라가 되기 전에 아브라함의 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문은 아주 미약한 가문이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부름을 받고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때는 이미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후였습니다. 온 가족을 이끌고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가족들이 75명이었습니다. 그 때 종족들이 모여 사는 가나안 땅에서 먼 타지에서 굴러온 몇 십 명의 사람들이 이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인구가 적은 것에 대해서, 사람의 수가 적은 것에 대해서 늘 아픈 기억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리라 땅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게 하리라”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동안 이루어지게 됩니다. 약 200만 내지 300만 굉장히 큰 민족을 이루어 애굽을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나그네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이 낯선 땅을 아비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약속을 잘 교육 받았겠지만, 하나님이 직접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아버지에게 한 이 약속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확신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땅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리라” 이것은 결국 나라를 이루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나라의 세 조건은 제일 먼저 국민이 있어야 하고, 영토가 있어야 하며,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세 가지를 모두 약속하십니다.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것은 단순한 영토에 대한 사법적 주권만이 아니라 그 자손과 관계 맺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자손 때문에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주권을 가지고 있지 않고는 나라가 세워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한 가문이었던 이들을 한 나라를 만드실 것을 미리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커다란 복을 이삭에게 수여하셨습니까. 물론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지만, 이삭에게 이것을 반복하면서 네 자손, 네 자손, 네 자손이라고 4절에서만 세 번이나 반복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이 그 아들인 너에게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 답이 5절입니다. “니는 아브라함이 내 말에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하였을 때 아브라함 자신 뿐 아니라 그 자손인 이삭까지도 하나님이 이 복을 주게 하십니다. 불순종은 우리의 삶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삶까지도 망가뜨립니다. 순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신령한 에너지로 가득 찬 사람들이 그 자녀들을 그 넘치는 진리의 힘과 은혜의 힘으로 사랑해서 양육할 때 그 자녀들은 좋은 성품과 신앙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그들에게 무엇인가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라도 그들은 부모처럼 훌륭한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러한 사람과 접촉하고 만나는 사람들은 커다란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무지했던 사람들은 그들을 만나 진리에 눈을 뜰 것이고, 사랑받지 못하던 사람들은 그들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간사는 이치를 몰랐던 사람들은 그들과 만나면서 참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이삭에게로 전승되고 그 후손들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복 받게 하심으로써 마치 이 땅에서 그들이 복의 근원인 것처럼 느끼게 하셨습니다. 사실은 그들이 복의 근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신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 땅에 있는 그들이 마치 복의 근원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의 복을 쏟아 부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와 만나고 교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영적인 복과 물질의 복을 주셔서, 이 모든 복이 오직 그 사람과 관계 맺고 있는 하나님 한분을 통해 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순종에 깊은 감동을 받으시고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 후손을 대대까지 지킬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야곱에게도, 요셉에게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나라 이스라엘 안에서 이 언약이 성취됩니다. “내 말을 순종하고”라고 하는 것은 총체적인 이야기 이고, 말이 어떤 것이었는가 그 다음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내 말을 순종하고” 어떻게 입니까? “내 명령, 내 계명, 내 율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오늘날 네 개의 단어들이 각각 무엇을 의미 하는가 정확히 아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에서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개인적으로 하셨던 말씀 같습니다. 이에 비해서 계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계명을 주셨습니다. 계명이 없었다면 죄가 있었을 리 없는데,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기 전에도 이미 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맨 처음 선악과를 세우시면서 이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것도 계명이었습니다. 이 계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인간들은 이미 하나님께로 받은 계명들이 죄가 들어옴으로써 더 분명히 되었습니다. 이 내용들이 십계명과 일치합니다. 그러한 계명이 나중에 모세시대에 와서 돌판에 새겨진 성문법적인 계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율례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규칙일 것이라 추정되고, 법도는 도덕적 생활과 관련된 하나님의 원칙이라 추측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주시는 명령, 양심의 법인 십계명, 제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구체적인 규칙, 그리고 도덕적인 삶,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계시해 주셨고, 그러한 법도를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자녀인 이삭에게까지 이 복을 다시 한 번 재확인 하면서 주시겠다고 언약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분의 명령을 지킬 수 있었고, 계명을 지킬 수 있었고, 율례대로 제사를 드릴 수 있었고, 법도를 따라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순종은 마음속에만 있는 순종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 속에 나타나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순종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본분을 따라 살았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4절에 나오는 큰 복을 하나님 앞에 받을 생각만 하지, 그 복을 받게 되었던 순종하는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온전함에 이르는 것은 크고 작은 것들에 전적으로 순종하면서 우리는 신앙과 삶이 주님 앞에 점점 온전해져 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과 맺은 사랑의 관계가 가장 소중하고 하나님은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하신 분이고, 지금도 지탱하게 하는 분이시고, 지금도 나에게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한 충만한 기억 속에서 하나님 앞에 순종할 마음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순종하면서 살 때 자기 자신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손까지도 복을 주셔서 하나님이 그 복을 천대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들이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순종할 때,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개인의 삶, 가족적인 삶, 교회 공동체의 삶,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사역적인 삶, 모든 삶에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하나님이 주신 복의 증거가 넘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신다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생각을 하시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큰 복으로 이 모든 현실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사는 세상이 되도록 티끌만큼이라도 이바지하면서 살겠다는 깊은 결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성경 모두를 통틀어 보아도 하나님께 전심으로 순종했던 사람을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땅과 저 하늘나라에서까지 당신의 충분한 보상을 받게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전심으로 순종함으로 이러한 복의 통로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