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안수 받는 그대에게
녹취자:권윤진
원래 목회는 목사에게 위임된거고 그리고 목사 혼자 도저히 사역할수 없기 때문에 부목사제도를 비롯해서 다양한 제도들이 생겨났고 그리고 성경적으로 보더라도 그렇게 많은 다른 직임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합쳐서 목회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목사가 된다라고 하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결코 이세상의 지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한 복종의 길이고 철저한 자기부인의 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은 그렇게 슬퍼하지않을 줄 모르지만은 나는 목사 안수 받는 사람들을 노회에서 보면 참 슬퍼요. 그리고 오늘날 있는 이임직의 문화나 이런 것들도 너무나 복음의 본질적인 정신을 벗어났다고 생각을해요.
오래전에 인상깊게 본 드라마였는데 가시나무새라는 드라마가 있었어요 기억하실런지는 모르겠어요. 사제가 되길 꿈꾸던 젊은이가 있었는데 나중에 추기경까지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젊은 날에 물론 사제가 되기 전에 젊은 날의 로맨스로 한 여자를 잠깐 사랑하고 그 아이가 자라서 아버지가 아버지인줄도 모르면서 추기경의 자리에까지 올라가는 모든것을 지켜본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여자 품으로 돌아와서 죽는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그 까짓거 러브스토리는 하나도 감동적이 아니고 거기서 서품을 받는장 면이있었어요 나는 이 개신교의 이 경박스러움에 대해서 참 많이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심하게 얘기하면 예식 때 가슴에 꽃을 꽂고 하는 그런 것도 전정 맘에 안듭니다. 다만 순서를 맡은 사람이 누구인지 표시를 한다는 의미에서 한다면 하지만은 정말 적응이 잘 되지않습니다. 그 서품식의 장면을 보면 그 젊은이가 신학의 과정을 다 마치고 사제로 서품을 받아요 우리로 말하자면 안수죠. 이제 그 십자가를 우리로 말하자면 통로 중간에 놓고 거기에 엎드리죠. 그리고 인제 주교쯤 되겠죠. “그대가 왜 이 고난과 형극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 지금도 마지막으로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 만약에 지금도 이 길이 두렵고 그리고 세상에 미련이 남아있으면 피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그만둬라.” 그래도 서품을 받겠다고 하죠. 거기에 그 십자가 앞에 십자가 위에 엎드려서 고난의 길을 가겠다는 서약을 마음으로 하는거죠. 미사에 나오는 모든 교인들이 미사보자기를 쓴 여인들이 한없이 눈물을 닦아요. 이게 봉투하고 선물 들고 꽃다발 들고 난리치는 개신교의 경박함하고는 정말 비교가 안된다나는 정말 성직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해가 안가요. 그 지점에서는 저는 정말 천주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 성직의 의미를 사실 그 사람들이 사느냐는 별개의 문제고 이 예전을 통해서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거죠. 제위임식때에도 나 자신을 낮추고 그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위임식에든지 기본적으로 축하를 받는 순서가 다 있기 마련임에도 다 빼버렸습니다. 사실은 축하합니다라는 그 이야기도 사실은 하나도 즐겁지않아요. 인사의 방법자체가 얼마나 신학적으로 정리가 안됐는가를 보여주는거죠.
근데 오늘날 누가 위임목사가 될 때 목사직을 지는 사람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고 안수를 받을 때 본인들도 안울어요. 목사 안수 받는것이 마치 구차한 전도사생활로부터의 해방쯤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돼요. 성직의 의미를 가슴에 깊이 새우고 내가 지난주쯤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줬으면은 좋았을텐데.. 허나 그런거를 너무 시간이 없는 가운데 전달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안수받기전에 하나님이 만져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기도해야합니다. 저는 참 잊을 수가 없어요. 95년도 10월에 떠밀리듯 안수를 받는데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지금이 그런 심정입니다. 아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물론 얘기치못한 일은 아니였지만은..그런 이걸어떻게 해야하나..그리고 깊이 고민하면서 이제 하나님 앞에 새벽마다 기도를 하는데 정말안수를 일주일 남겨 놓아는데도 죽어도 안수를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매일새벽에 가서 울었어요
이런 모습으로 내가 성직으로 들어서고 그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는 다는것은 성직에 대한 중대한 모독입니다. 한 일주일 넘었던 것 같아요 간절히 기도하는데 안수받기 바로전날이었는가 며칠절이었는가 잘 생각이 안나요 새벽에 교인들이 다 돌아갔는데 기도가 쏟아지게 하시는거예요 그러더니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예수의 형상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정말 그때에 떠올랐던것이 뭐냐하면 그리스도의 현재적인 고난이었어요 지금도 그분은 우리가운데서 지금 고난을 받고 계시다 하는것이었어요 이것이 깊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 십자가 아래서 라는 그 시를 따로 시간을 내서 쓴게 아니라 그날 기도였어요 그리고 기도가 다 끝나고 아침이 되었을 때 그 예배당에서 그런 확신을 주셨어요 빈손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도저히 이 안수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성직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 나는 할수 없다...근데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이 나를 받으신다는 확신이 가슴에 쭉 물려왔어요 그리고 안수받은 이후에 목사의 삶 그리고 목사의 길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전혀 알수없지만은 한가지 가슴에 깊이 새겨진 것이 있었어요 내가 스스로 결심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새기신 것이 있었어요. 그것이 새기신 것이 뭐냐하면 목사가 된 후에 가야할 길을 해야 할 직무 또 그렇게 할수 있을지 이런 모든 것들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단하나 내가 일평생 목사로서 결국은 죽겠지만 일평생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자 그리고 항상 가슴속에 내 머리털을 잘라서 신발을 삼아서 그분의 발에 신겨드리고 살가죽을 내어서 곱게 말려서 그분의 옷을 입혀드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기념하는 삶이 되자 지금 안수를 통해서 성직을 더럽히는 내가 할수있는 그 마지막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고백이 그때 나왔어요
지금도 10월이 되면 그때 그 일이 떠올라요. 그래서 목사가 되는 길은 영광을 받는길이 아니예요. 그리고 형극의 길이고 그리고 가시밭길이예요. 그래서 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필요해요. 그런 그리스도예수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과 헌신이 없으면 이 목사 안수는 타락한 종교인으로 들어서는 전환점이 되는거요. 그래서 철저한 복종 속에서 섬기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하고 그리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대속제물을 주려함이라 많은 후배들을 만나보면 그 사람들이 목사로서 아름다운 인생을 마칠지 그렇치 아닐지 보입니다. 이제 방금 목사가 된 사람이 오랫동안 목회하고 선배가 된분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대우같은 것에나 눈을 돌리고 그것들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자신들도 그것을 흉내내고자하는 그런길 을 걸어서는 안되요. 끊임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겸손하고 복종하고 그리고 예수 죽인 것을 자신의 몸에 짊어져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야해요. 더 두려운건 뭐냐하면 이 목사라고 하는 사는 전도사라하는 사는 선비사자라 참 옛날사람들이 놀랍죠. 배움의 도상이 있다 목사할 때 사는 스승을 의미하는 사자예요. 목사가 된 뒤 에 가장 어려운것이 뭐냐하면 목을 목사할 때 목을 사하는것이예요 영혼들을 목양하면서 스승이 되는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한 마리의 어린양으로서 잘 목양받는것이 무언지를 사하는거예요 그니까 정말 어려운거죠, 그래서 나는 목사를 이렇게 정의해요 마치 박사가 박사의 의미가 이제는 혼자도 공부 할 수 있다는 의미이듯이 목사는 이제 홀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정도의 뜻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맘을 가지고 목사가 된 후에 더 진실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참된 신자가 되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것을 삶의 온 방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두 사람의 부목사 섬김과 안수를 축하하는바입니다.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