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해 허비하는 교사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고후 12:15).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지 김연아 얘기에요. 라디오를 들어보니까 좀 너무하더라구.. 9시 뉴스20분 동안 김연아 얘기만 해.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래서 낮에 시간이 없어서 김연아와 그 뒤에 두 사람 하는 것을 봤는데 정말 잘 하대요. 똑같은 동작을 해도 김연아가 하면 그렇게 우아하고 예뻐요. 그래서 왜 그런가 했더니 팔 다리가 길어요. 하체가 상체길이의 두 배랍니다. 그리고 손이 과장이지만 침팬지 같아요. 손이 무릎 있는데 까지 내려와요. 운동을 했으니 멋있지.. 옛날에 저희 할머니가 다리길고 팔긴 사람 되게 싫어했어요. 그것은 귀족이 되든지 게으름뱅이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야. 팔다리 늘어뜨리고 엄마가 10시까지 일어나라고 그래도 안 일어나고 집에서 백조가 되어서 뒹굴고 하면 딱 좋은 인상을 주는 몸이거든.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하더라도 상체가 하체길이의 두 배가 되는 사람 즉, 다리가 짜리몽땅하고 손이 짧은 사람이 연기를 한다면 얼마나 웃길까?
예배시간에 설교 듣고 안 울던 사람이 TV 보고 울더라고. 돈 안들이고 대한민국을 홍보하는 최고의 수단이 그것인 것 같아요. 나는 직업이 목사니까 하루 종일 연아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 눈물이 잔뜩 고여요. 그 애 하나가 빙판위에서 그렇게 재주를 부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잘 하니까 온 세계가 감탄을 하고 박수를 보내는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비록 하체는 연아처럼 길지 않고 얼굴은 이쁘지 않아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라는 빙판위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창조의 목적이라는 곡에 맞추어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 없고 보는 사람 없어도 하늘나라에서는 수많은 백성들과 천군과 천사들이 우리가 기가 막히게 연기를 해서 끝날 때 그 하늘에서 그렇게 우뢰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진다고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그러니까 그렇게 아름답게 연기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다 잘하는 것 같아.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의 가슴이 벅찬데 하나님이 당신이 작곡하신 창조의 목적이라는 곡을 따라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와 시간이라는 빙판위에서 성도의 옷을 입고 그렇게 피겨를 하듯이 하나님을 섬기고 자기인생의 몫을 따라서 살아갈 때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일생 전체가 하나의 곡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수많은 작은 악장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악장들은 다시 매우 작은 마디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래서 여러분들이 5년, 4년, 3년 이렇게 여러분의 생애에서 교사라는 섬김으로 악장들을 연주해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보실 때 여러분들이 만약에 너무 아름답게 연기를 해서 여러분을 교사로 세우신 그 곡조에 딱 맞는 연기로 그렇게 아름답게 연기해 나갈 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연아가 얼음을 지치고 빙상을 지나간 후에는 스케이트 날자국과 사람의 영광만 남지만, 저와 여러분들의 이 연기는 수많은 영혼들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런 일에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생각해 보세요.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 봉사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섬길 수는 없어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모든 사람이 영혼을 위해 섬기지 않아요. 그 일 말고도 많은 일을 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은혜를 많이 주신 사람들은 영혼을 섬기지 아니하면 견딜 수 없는 불이 그 사람 마음 안에 있어요. 무엇을 시켜도 그것으로 영혼을 섬기는 것으로 연결이 돼요.
제가 아는 교인 가운데 집이 어려워서 파출부를 하는 자매가 있었어요.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셔서 그 일에 소명을 느껴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파출부를 하면서 소명을 느낀다.. 누가 그러한 생각을 하겠어요? 파출소에서 일을 한다면 소명을 느낄 수 있어요.파출부가.. 처음엔 그 사람이 소명을 받아서 그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죠. 돈이 없고 살기가 힘드니까 그것이라도 하려고 그랬는데 파출부를 불러서 일을 시킬 정도가 되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살만한 사람들인 거잖아요. 자주 불러서 정기적으로 그 일을 시키는 사람이라면, 예를 들자면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은 항상 우리 집에 와라.” 이 정도면 여유가 있든지 집안이 바쁘든지 그런 거 아니예요. 그 사람이 볼 때에는 마룻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일을 하는 자기가 가련해 보일지 모르지만은 들어가서 며칠 일 하다보면 곤고하기가 이를 때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잘 섬겨줘요. 그러면 사람이 맨 처음에는 무시하고 그러다가 한 달, 두 달 변함없이 섬겨주고 돈도 바라지 않고 일하니까 마음을 열지 않겠어요? 그리고나서 한참 일을 하고나서 정리를 하면 “우리 차나 한 잔씩 마십시다.” 그리고 앉아서 자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 하나님이 자기를 사용하셔서 곤고한 집에만 보내셔서 그 사람들을 변화시켜 주시는 거예요. 나중에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게 곤고하던 사람이 복음을 듣고 그 다음에 기도를 받고 이제 성경의 가르침을 받는 거예요. 그 다음에 어떻게 선생님을 일을 시켜요? 그래서 이제 같이 하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놀라워요. 그러다 어떤 집에 가면 성질이 아주 더러운 주인에게 걸리는 거예요. 그러면 오히려 기대가 된다는 거예요. 항상 그 성질 거지같은 사람은 항상 인생 살면서 만난 사람이 늘 자기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생각해 보십시오. 심성이 곱고 사람이 좋은데 상식에 어긋난 사람을 만나면 한번은 다가가지만 계속해서 다가가겠어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사람이 이렇게 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문제예요. 그래서 어떤 때는 신앙이 없으면 “아이구, 더럽다.” 하며 걸레를 얼굴에 확 던지고 나오고 싶은 마음인데 처음부터 자기는 45000원, 50000원 벌려고 나온 게 아니에요. 어려워서 그 일을 시작했지만 그것은 나에게 주시는 결과이고 자기가 파출부 일을 해주는 그 사람을 위해서 새벽마다 나와서 눈물로 기도를 해 주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제대로 소명을 안 받은 사람도 많이 있지만 정말 제대로 영혼을 목양하는 일에 소명을 받은 사람이면 그 사람을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그 사랑이 우리를 감동 시키지 아니하면 우리는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면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영혼을 돌보는 교사로 세워주셨는데 어떻든지 간에 그 일을 집어치우지 않고 거기 있기만 하면 그게 교사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 서 있기만 하면 다 잘 하는 겁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제 얘기를 들어보십시오. 제 아무리 천재가 있어도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꾸준히 노력해도 즐기는 사람을 능가 할 수 없어요. 연아는 열아홉 아이인데 학급에서 노래를 하라 해도 떨릴 텐데 전 세계 수십억인구가 그것을 보고 있는데 자신은 떨리지 않고 마음껏 올림픽을 즐겼대요. 즐거워서 하는 사람은 노력해서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어요. 그 일이 즐거워야 해요. 그 일의 즐거움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취미로 하는 즐거움의 종류하고는 틀린 거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커피를 처음 마셨는데 사람들이 이걸 왜 먹나? 그 비싼 돈을 내고.. 그 쓰고 텁텁한 것을 그 다방에서 왜 먹나.. 세월이 많이 흘러 하루에 의사가 많이 먹지 말라고 하는 데도 하루에 한 잔이나 두 잔을 먹어야 기분이 좋아요. 그러니까 맛있다라고 하는 개념이 초등학생이하의 아이들은 무조건 달아야 하고, 그러나 어른이 되면 쌉쌀한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도 맛을 음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사를 즐긴다고 하는 것은 무슨 오락이나 취미를 즐기는 것 같은 그런 종류의 즐김이 아니라 영혼을 돌보는데서 오는 그 신비한 하나님의 손길 그것을 느끼면서 즐거워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영혼을 돌보면서 즐기며 살아가는 거예요.
오늘 사도바울에게 고린도 교회는 그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마음에 못을 박았죠. 헌금에도 인색한 교회였고 또 사도 바울을 돕는 일에도 그랬고 심지어는 사도바울을 보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게 싫으니까 살아서 못 만난 사람이 부활한 예수님을 자기 혼자 만났다는데 그 사람이 사도가 맞냐 하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여 사도 바울의 마음에 못을 박았어요. 그런데 뭐라고 했냐하면 어린 아이가 그 부모를 위해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해 그리 하느니라. 그러면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어미의 마음으로 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한 끊을 수 없는 자기의 사랑을 고백을 한 거예요. 그것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 있는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이 시대에 맞는 첨단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첨단시대니까 오히려 첨단시대일수록 우리에게는 아날로그가 필요해요. 그래서 첨단시대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혼을 쏙 빼 놓는 첨단기기나 게임이나 이런 문화의 내용에다가 예수님이라고 바꿔서 만들었다고 칩시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여서..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있는 더 좋은 것을 발견하게 될 때 지워져 버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엊그제 신문을 보니까 한 몇 년쯤 더 흐르면 15년 후쯤은 3D영화를 안경을 안 쓰고 볼 수 있는 텔레비전 세트가 나온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이 발달되면 제 생각에는 화면 자체가 없어질 거라고 보거든요. 화면자체가 없어지고 홀로그램같은 영상이 완전히 입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서 연극무대에서 연극배우들이 연기하듯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실감나게 그것을 만들어서 우리의 정신과 집중력을 완전히 빼앗아 간다고 하더라도 그 시대의 발달한 기계들이 줄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뭐냐면 사랑이예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영화가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미래에 로봇이 인간관계를 다 대신해 줘요. 그래서 이 남자가 이 로봇을 몇 개를 샀어요. 가사를 돕는 로봇, 사무를 돕는 로봇, 주방담당 요리하는 로봇, 자기하고 항상 같이 자는 로봇 이렇게.. 로봇은 반항을 안 하잖아요. 가족관계 깨진 사람들 중에서 개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개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들 얘기는 개에 빠진 사람들은 개에 푹 빠져요. 왜 그렇게 좋으냐 그러면 배반을 안한대요. 얼마나 배신을 많이 당했으면..그런데 자기와 늘 잠자리를 함께 하는 로봇이 망가졌어요. 칩이 망가져서 천신만고 끝에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서 그것을 훔쳐오는데 그것을 용역 회사한테 부탁하여 어떤 여자한테 자기와 함께 비행기를 운전하고 가서 가지고 오면 상당한 돈을 준다고 하였어요. 그 여자는 진짜 못 생긴 여자예요. 그런데 결국은 마지막에 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에요. 아무리 발달해도 절대로 줄 수 없는 게 있어요. 그것이 우리에게는 놀라운 기회에요.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하는 이것이 우리에게는 정말 놀라운 기회에요. 가정에서조차도 이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진실한 사랑을 선생님으로부터 받게 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는 말을 이해하게 돼요. 그래서 제일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하나의 영혼이라고 보고 깊고 진실하게 사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사도 바울이 재물도 너희를 위해, 나 자신까지도 너희를 위해 허비하고 싶다. 그것이 결국은 사랑이에요.
사랑이라고 하는 이 마음의 감정은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그와는 상관없는 내 목표를 갖지 않는 것이에요. 그것이 사랑이에요. 부모의 사랑이 그렇잖아요. 자기가 밀알처럼 썩어서 다 죽어서 너 하나가 나 때문에 네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면 엄마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 있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 대개 그런 마음일 거예요. 그게 바로 사랑이에요. 그런 사랑으로 영혼들을 대하는 거예요. 그러면 교육을 하는 방법 그것은 두 번째 문제에요.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그것은 수많은 창조적인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 없도록 그렇게 우리에게 창조적인 정신과 모든 사람이 포기하는 그 길에서도 희망을 찾게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이 우리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에요. 그게 사랑이에요.
그래서 영혼을 사랑하는 이것, 이것은 이 세상에 기계와 모든 것이 발달해도 도저히 전해줄 수 없는 것이에요. 그것이 우리의 최고의 선교의 수단이요, 그리고 무기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면 책망을 해도 그것이 아이에게 은혜가 돼요. 야단을 쳐도 은혜가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러지 마세요.
저는 주일학교 할 때는 안 그랬는데 중고등부 할 때는 엎어놓고 대걸레로 개 패듯이 팼어요. 거기서 죽도록 맞은 놈 하나가 담임 목사님 아들이었어요. 제가 찾아가서 이실직고 했어요. 목사님이 그 아들을 눈동자처럼 사랑하셨거든요. 45살 먹고 나은 아들을 제가 개 패듯 팼거든요. “몽둥이 가져 와.” 그랬는데 남자 선생님이 대까지를 이만한 것을 들고 왔어요. 여선생 하나가 있었는데 탁 뺐더니 “이까짓 것을 몽둥이라고 가져와요?” 하며 탁 집어 던졌어요. 그 때 뿔나게 만든 일이 있었거든요. 막 여선생이 가더니 주방에 들어가 대걸레를 뽑더니 자루를 확 뽑아서 걸레를 던져버리고 그것을 들고 와서 “ 전도사님 여기 가져 왔어요.” 하는 거예요. 그리고 혈기 방자한 제가 기도하고 때렸어요. 히브리서12장 읽고 다 같이 기도한 다음에 때렸는데 ‘웅,웅,웅..’ 하는 소리가 나도록 때렸습니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그러는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사실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얘기네요. 제가 목사님께 “그 놈이 못된 짓을 같이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걸레로 팼습니다.” 아이의 종아리를 걷어보시고 마음이 너무 아파하시는 거예요. 그 다음 날 새벽에 전화가 왔어요. 저는 그만 두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목사님이 “밤새도록 생각했습니다. 소신껏 하십시오. 사랑이 모든 것을 믿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힘이에요. 그 사랑이 어디서 올까요? 사도바울이 그렇게 못되고 목회자인 자기의 마음에 못을 박은 그 녀석들 아니에요? 그런대도 너희를 위하여 내 재물을 허비하고 나 자신도 기꺼이 허비하고 싶다. 그런 사랑이 어디서 왔겠어요? 그렇죠! 자기가 받은 사랑 그것을 아는 동안에는 그것을 사랑 할 수 있고 그것을 잠시라도 잃으면 못하는 거죠.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여러분이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었더라면 여러분의 삶은 어땠을까요?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동안에 힘들 때도 있어요. 특히 영혼을 돌보며 길을 걸어가다가 정말 힘들 때 있습니다. 저녁에 눈을 감으면 아침에 눈 뜨고 싶지 않은 그런 시간들 있어요. 언젠가 굉장히 힘들 때인데 병원에 갔어요. 수면 내시경을 하제요. 그러면 머리가 나빠진다는데 더 나빠지면 어떡하나 하면서 도저히 내시경을 할 자신이 없어요. 그래도 수면 내시경을 했는데 하나, 둘, ...스물도 못 샜는데 조용히 잠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도 주님 앞에 죽는 날 이렇겠구나. 저녁에 눈을 감으면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은 그런 날도 있어요. 그때마다 우리를 이기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주님 앞에 그런 고백을 하게 합니다. 주님 안에서 가장 힘든 날이 주님 밖에서 가장 편안한 날보다 더 쉬웠습니다. 그런 우리를 이제 주님이 너희를 용서해 주셨잖아요. 그냥 말로 너희를 용서해 주마 용서해 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 까지 다 흘리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 피로 씻으시고 살려주신 거지요. 그러나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동안에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내가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었기 때문이에요. 그 십자가의 사랑에 의해 용서를 받았을 때 남은 모든 인생이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고백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서 역사할 때, 그때 우리는 그 영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목회를 하다보면 교리에 대한 깊은 경험적 확신이 생깁니다. 전적 타락의 교리, 진짜 나쁜 사람들 있어요. 그런데 많이 나쁜 사람이라서 많이 미워하고 덜 나쁜 사람이라서 덜 타락한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경험해 보니까 진짜 나쁜 놈이거든 그런데 그 때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살아 있으면 다 용서하게 되더라구요. 나중에 생각해 보면 별로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은혜가 떨어지면 마음에 나쁜 사람으로 남아요.
그래서 제일 좋은 교사 생활의 뿌리는 뭐냐 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이에요. 제가 교사 수련회 와서 수 없이 이야기 했지만 새벽설교는 언제나 요한복음 21장이었어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주님이 내가 네게 양떼를 맡길텐데 그 양떼를 사랑하냐? 묻지 않으시고 그 뿌리가 영혼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냐고 하셨을까요? 그것이 영혼 사랑의 뿌리에요. 비록 교회가 작아도 설교하러 갔을 때 영혼들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를 만나면 그 목회자가 비록 나만큼 학식이 미치지 못하고 나이가 나보다 어려도 마음속으로 무릎이 꿇어져요. 저 목회자가 밀알이 되었구나.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한참 그렇게 행동할 나이에 단정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어린 영혼들이 눈에 뜨일 때 거기에는 자기의 진액을 쏟아서 그들을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 자기 죽음의 길을 걸어갔던 거예요. 교사들이, 목회자들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그런 혜택을 받는 당사자들이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를 영혼 섬기는 일로 불러 주신 것은 불쌍한 영혼들이 우리를 직접 부른 게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를 거기에 세워주셨기 때문이에요.
이번에 제가 바쁜데 홍콩에 다녀왔습니다. 선교사들이 100명 가까이 모였어요. 갔을 때 분위기가 냉랭했어요. 기대감이 안 생기더라구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뭘 줘서 맛이 아니라..
열린 교회마당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말랑말랑 하잖아요. 거기서 인사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래서 그랬어요. 하나님 이분들이 4년에 한 번씩 모인다는데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주시더라구요. 은혜를 주시니까 그렇게 거칠게 선교사역을 해오던 분들이 사실은 얼마나 마음 하나님 앞에 갈급하겠어요.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영혼을 사랑하게 하고 주님을 섬기게 하는 무한 에너지는 바로 그거구나.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 그겁니다. 나머지는 배우면 됩니다. 그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으로 영혼을 깊이 끌어안을 때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교회에서도 한 두 번 이 예화를 들었는데 제가 전도사 때 섬기던 교회의 목사님이 50이 넘어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셨어요. 교회는 그렇게 크게 못하셨지만 설교도 그렇게 잘 하시지 못했어요. 10명,15명 모이는 교회에 부흥강사로 가셔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좋게 보셨는지 많은 은혜를 주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집회를 갔는데 어떤 애 엄마가 청년 하나를 데리고 와서 목사님 얘 좀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왜 그러냐 하니까 귀신 들린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보니까 아이가 정상이 아니에요. 평소 기도원 다니며 은사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 목사님이 기도를 했는데 아이가 안 고쳐지는 거예요. 그리고 여럿이서 얘를 두들겨 패서 여기저기 멍이 든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이 야단을 친 거예요. 새벽마다 얘를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당신이 기도해도 얘가 안 낫는 거예요. 얘를 끌어안고 기도를 하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시더래요. “하나님 이 아이는 이렇게 망가졌는데 하나님 이 아이를 고쳐주어야 하는데 저는 능력이 없어서 못 고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이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 아이를 끌어안고 우는데 그 아이가 그렇게 불쌍해서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가 생난리를 치던 앤데 기도를 해 주려고 끌어안기만 하면 그림같이 가만히 있더래요. 대개 병이 나으려면 개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든지 벌떡 뛰었다든지 그리돼야 되잖아요? 그냥 3일 동안 끌어안고 울었는데 이 아이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사랑은 모든 은사를 이기는 힘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은사 주시는 사람에게는 외면하시는 적이 있어도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고개를 돌리시는 적은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거예요. 게임에 미치고 세상에 정신이 팔려 있는 아이들도 그 속에 빠져서 어디에서도 그 사랑을 받지를 못해요. 그것은 오로지 교회에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전매특허예요.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사랑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섬겨 주셨는지 우리르 위해 버리신 그리스도의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을 가슴에 매일 매일 새기면서 우리는 죽고 주님은 우리 안에 충만히 사셔서 이 사랑을 드러내시도록 그렇게 사역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영혼에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언지 아세요? 다른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탁월한 비결은 여러분의 눈에서 여러분이 돌보는 영혼 때문에 눈물이 흐를 때 여러분의 영혼은 안전합니다. 그 눈물이 흐르고 있는 동안에는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습니다. 약해도 괜찮습니다. 그 약함 때문에 주님의 강함이 드러나죠. 그래서 주님 더 많이 의지하게 되죠.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기도 할 때“ 주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게 부족합니다.” 교사 리바이벌에서 얘기했잖아요. 하루에 두 번씩만 울 수 있으면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고 나에게 맡겨주신 영혼 때문에 눈물을 펑펑 흘릴 수 있다면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를 붙잡으신 주님 때문에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사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모두 모여서 뜨겁게 영혼을 위한 눈물을 쏟아놓을 수 있을 때 그 때 하나님이 정말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저는 수많은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역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