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교육 1
녹취자: 김경애
교회를 구체적인 것은 한희동 집사가 그렸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이렇게 그렸습니다. 사이드에 많은 사람이 앉아서 이것을 하게 했는데 여기서 왜 그랬느냐하면 삼층 사람들이 내려와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담배연기가 6층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 되겠다고 그랬는데 그런데 하여튼 일이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비도 오고 어쨌든 여러 가지로 그랬습니다. 안에는 공사를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토요일이 여기의 입당예배였습니다. 화요일까지 안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좀 상했습니다. 도대체 이것을 하라고 그러는데 왜 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때 박광한 집사가 ‘목사님! 여러 가지로 사실은 좀 어렵습니다. 비도 오고 여기에 방수공사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안되면 되게 하는 것이 그게 일이지!’ ‘그럼 목사님 입당예배가 끝나고 다 하면 다시 날짜를 잡아서 장마가 다 지난 다음에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꼭 해야 되겠습니까?’ ‘꼭 해야 한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날 공사를 시작하는데 비가 주룩주룩 왔습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비닐을 치고 여기를 말려서 방수공사를 해라.’ ‘네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맨땅이 화요일이었는데 토요일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형제가 자기네 어렸을 때 교회로 갔는데 시험이 들어가 간 것은 아니고 그 교회에 대한 애착 때문에 갔기 때문에 내가 기꺼이 보내주었는데 여기에 앉을 때마다 항상 그 박광한 집사를 생각합니다. 이 정원을 아는 사람을 불러서 이것이 얼마쯤 견적이 나가겠느냐고 물었더니 다 4,500만원이 든다고 그랬는데 1,700만원에 완공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완공을 했느냐하면 동네에 가서 자기 일꾼들을 불러서 교육관에서 자면서 3일 동안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공사비가 1,700만원이 나와서 교회에서 1,700만원을 지불했더니 그 다음주에 1,700만원을 헌금하고 끝냈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기억에는 그렇게 하고 간 게 한 4, 5년 전입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나무가 처음에 갖다놓았을 때 비리비리하고 저것 중에서 그래서 몇 그루는 죽을 것 같았는데 아주 풍성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설적마다 솔직히 여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봉사했습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박광한 형제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도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고 결국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가십니다. 그 이루어 가시는 것을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매주 토요일마다 교리반을 합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교육합니다. 손님이 오면 제가 식당으로 데려가지 않고 여기에서 어떤 때는 도시락을 시켜서 먹어도 손님이 더 행복해합니다. 김 목사에게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한사람이 그렇게 며칠 동안 애를 쓰고 희생을 하고 나니까 아니 한사람만이 아니라 한희동 집사도 고생하고 그랬는데 저 돌멩이도 새벽에 가서 그것을 포클레인으로 들어서 트럭에 싣고 와서 기중기로 여기에서 새벽에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한사람이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헌신하면 하는 것이고, 난 지금도 그때 하지 않았으면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데 결국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면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이 바뀌어가는 것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가는데 그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의 마음도 그런 마음이 아니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루어 가시는데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가십니다. 그런데 한번 오늘날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남의 이야기를 할 필요 없이 우리 각자가 여태까지 예수를 믿고 살아오는 동안 다 교회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면 일원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나는 정말 부끄러운 것이 30년, 40년 예수를 믿었다고 그래도 진짜 잘 믿은 시간은 몇 달 안 되고 잘 믿을 때 항상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서 섬겼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다 주님을 위해 땀을 흘리는 줄 아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주신 은혜가 처음에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해버리고 그리고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30년을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고 하더라도 믿으면서 살아온 많은 날들은 사실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했다기보다는 교회에 얹혀살면서 우리들이 배운 교회론을 가지고 돌아보면 추루한 우리를 하나 보태어서 예뻐질 수 있는 교회에 점 하나를 더 찍고 그리고 하늘로 나를 수 있는 교회에 내 몸뚱이 하나를 더 매달아서 무겁게 만든 적이 훨씬 더 많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저는 명색이 신학교를 가고 목사가 돼서 회심한 이후로 3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까 한 이야기가 남이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고 느껴지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사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갑니다. 그래서 머리가 허옇게 되었는데도 아직도 교회를 정하지 못해서 이리저리 방황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너무 찢기는 것처럼 아픕니다. 언젠가도 교인 하나가 교회를 떠난다고 하기에 ‘그러지 마라. 머리가 허옇게 되어서 어디를 그렇게 다니느냐? 나는 당신과 얼마든지 같이 있을 수 있다고 그러는데 왜 당신이 나하고 같이 있지 못하겠다고 그러느냐? 그러지 말고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날들이 정말 티끌같이 작은 날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럴 시간이 없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면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무엇입니까? 자 이제 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날들이 정말 얼마 안 됩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우리 교회는 65세 정년제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두 분이 시무은퇴를 하고 내년에는 세분이 시무은퇴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섬김이라는 것은 장로가 되면 딱 7년 그것도 7년을 하려면 58세에 장로가 되어야합니다. 63세에 장로가 되면 2년을 하고 그만두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그 법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번 보십시오. 그렇게 짧은 기간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시무장로로서 시무가 끝나고 안수집사로서의 시무가 끝나도 우리가 교회의 한 지체로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섬길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기도를 못하겠습니까? 전도를 못하겠습니까? 또 헌금을 못하겠습니까? 해외 선교에 못나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교회라는 질서 속에 들어와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뜻을 맞춰서 주님의 교회를 그렇게 수종들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있고 권사님들도 이제 65세가 되면 명예권사로 은퇴하고 나면 젊은 권사님들이 나서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점잖게 있어야합니다. 김윤향 권사님이 늘 하시는 명언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채우고 그래야지만 젊은 사람에게 대접을 받는다고 그럽니다. 저는 백번 옳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입니다. 나이가 들면 나부터도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은 열고 또 나이가 들면 더 인색해져서 지갑은 닫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점점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들은 지극히 짧은 시간입니다. 나는 우리교회 장로님들보고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뭐냐 하면 우리가 한번 솔직히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혼자 주님을 섬긴다고 그러는데 사실 우리가 교회 말고 혼자서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온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결국은 교회라는 질서 속에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만이 우리의 역사 속에 기억에 남는 것인데 그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나는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등하고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마음이 찢어지고 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자식양육도 안되고 부부의 관계도 안 되고 사업을 해도 마음이 찢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개인의 마음을 교회 전체라고 보면 그게 하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찢어지지 말고 한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교회를 섬기면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늘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교회가 성숙한 교회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은 성경과 신앙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나와 있으면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써 그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현실이 어려워도 거기에 맞춰서 살려고 노력하고 못했을 때는 회개를 하고 살아야지 거기에다 자꾸 토를 달기 시작하면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현실과 성경이 맞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든지 현실을 끌어안고 성경과 맞춰보려고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그래도 도저히 현실과 성경이 맞출 수 없다면 성경을 버리면 되겠습니까? 현실을 버리고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까지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획 집어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꼭꼭 붙드느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닙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과 신앙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뭐가 중요하느냐하면 합리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좀 올바르게 하기만 하면 안 일어나도 될 일들이 자꾸 일어나서 그래서 사회에 욕을 먹고 그럽니다.
(예화) 나는 남의 교회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안됐지만 교훈이 되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자교회 정 목사님은 나도 좀 아는 분입니다. 굉장히 순수하시고 제자훈련에 애를 많이 쓰신 분이고 목회도 사실은 우리와 거의 같은 때에 교회를 개척을 해서 크게 일군 교회입니다. 무슨 사연이 그 안에 또 있겠지만 들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교회에서 30억의 재정사고가 나고 목사님은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는데 다행히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고 교회는 목사님 편을 드는 사람하고 반대파들하고 매일 싸운다고 합니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그것은 신앙의 문제를 떠나서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일들을 처리하면 그렇지 않게 됩니다. 제가 아는 한 교회는 은혜가 얼마나 풍성했는지 교회 임직자들을 이런 사람을 세우자고 그랬더니 투료를 하다가 말고 목사님 말씀하시면 순종을 해야지 무슨 투표냐고 투표지를 다 찢어버리고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그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몇 년 후에는 또 그 목사님을 쫒아내려고 교인들이 난리를 치고 나한테까지 호소문을 보내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은혜로운 것은 은혜로운 것이고 투표는 투표입니다. 그것을 찢어버린다고 해서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 믿는 사람들끼리 믿음으로 하지 뭐 그런 것을 하느냐고 그러는데 신학교에 다니면서도 보면 만날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학교에서 재정사고가 나고 무슨 사고가 나서 검찰에 불려 다니고 수사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고 그럽니다. 그런 것 들은 정말 잘못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탁구를 쳐도 스핀을 먹이는 사람하고는 탁구를 안치는 사람입니다. 스트레이트 이외에는 안하고 교인들이 자꾸 나한테 넥타이를 사다주는데 단색이 아니면 거의 매지 않습니다. 양복에 줄이 있는 것을 어떤 때는 입고 오는데 그것은 집사람이 하도 졸라서 입는 것이지 싫어합니다. 그래서 늘 입고 다니는 것이 검은색을 입는데 물론 홀쭉해 보이려고 입고 다니는 면도 있지만 그냥 내 성격이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행정팀장이 ‘목사님!’ ‘왜?’ ‘총회에 보내는 세례교인 의무금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교인을 그냥 700명이라고 써서 보내시죠!’ ‘왜?’ ‘다른 교회는 다 그렇게 한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우리교회는 그 다른 교회가 아니거든! 내가 그렇게 하자고 그래도 너는 “목사님 열린 교회까지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목사님께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해야지 이 교회가 바르게 가지 네가 담임목사한테 은혜 받은 사람이 정직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 여기에 와서 그렇게 거짓으로 써서 보내자고 그러면 되겠느냐?’ 나한테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정직하게 보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보면 교회 재산이 얼마인지를 조사하자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들어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안수집사들만 들어오셨는데 감사위원회에서 지적을 받았습니다. 교회 재산이 얼마라고 그러는데 무슨 근거가 있느냐? 대충 주먹구구로 친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감정평가원에 의뢰를 해서 감정을 하겠다고 그랬더니 대충하면 사백만원이고 꼼꼼히 하면 천만 원을 달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대충하는 것은 나도 하는데 대충했더니 틀렸다고 감사를 받았는데 또 대충하자고 그러면 그 다음에 감사할 때 이것을 왜 대충했느냐고 그러면 뭐라고 그러겠느냐? 물론 내가 나서서 ‘대충하면 어때?’ 그러면 한 번에 끝나겠지만 그렇게 하면 교회가 합리적으로 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무서워서 누가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천만 원을 들여서 다 법적으로 정확하게 감정을 했더니 교회에 있는 시설품이 책상, 의자, 방송기계 이런 것 말고 189억이 나왔습니다. 그것이 감정원에서 평가한 정확한 가액입니다. 우리는 이백 몇 억 정도라고 보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야기해도 빚이 얼마 있고 얼마 있다고 그러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정확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제 3년에 한번이고 4년에 한 번씩 토지가 올라가면 그것으로 감정평가를 하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쪽을 110억으로 보고 여기를 90억 정도로 봤습니다. 그렇게 합리적으로 모든 것들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회에서 내가 너무 마음이 상했던 것이 어쩌면 그렇게 담임목사 마음을 모릅니까? 사실은 감사위원회에서 감사를 했는데 사실은 나는 그래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원래 감사하는 사람은 널널한 사람을 감사시키면 못합니다. 그냥 차 한 잔 마시고 허허 웃고 묻어버립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임두순 장로가 얼마나 깐깐합니까? 왜냐하면 다 해서 찾아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에 교회 행사를 하고 교회의 스텝들이 뒤풀이를 했는데 700,000원을 썼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 행사를 거든 사람들이 50명씩 되니까 15,000원씩만 먹어도 70만원이 넘으니까 이해가 됩니다. 그것을 간이영수증에 써온 것입니다. 어느 위원회는 아예 돈을 달라고 청구한 사람의 글씨하고 영수증의 글씨와 똑같은 것입니다. 문방구에서 영수증을 갖다가 그것을 속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교회 교인 중 누가 속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세금 낸 것까지 예를 들면서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를 하고나서 세금폭탄이 떨어져서 얼마나 고통을 받습니까? 저기 어머님 아버님이 삭월세집을 왔다 갔다 하니까 우리 집사람이 이명희 전도사가 살다가 팔다가, 팔다가 안 팔리는 연립주택이 있었는데 삼천만원을 주고 샀습니다. 사가지고 부모님을 거기에 살게 했습니다. 계양산 아래에 있으니까 좋다고 몇 년을 사셨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님이 가끔 와서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우시는 것입니다. 너희들 근처로 와야겠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집값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기도를 했다는데 9,500만원에 팔리게 해주시면 주님의 뜻인 줄 알고 십 원도 깎아주지 않겠다고 그랬는데 일주일 만에 누가 9500만원을 주고 사겠다고 사람이 나타났는데 거기의 시세가 한 7,500에서 8,000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깎아달라고 그래서 안 깎아준다고 딱 잘라서 이야기했는데 100만원도 안 깎아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러니까 안 깎아 준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팔기 전에 아니 가만히 있는 집을 우리 집사람이 어느 날 ‘여보’ ‘왜?’ ‘인천에 있는 삼천만원짜리 집 있지?’ ‘있지!’ ‘그것을 내 이름으로 해주면 안 돼?’ ‘해!’ 나도 교회에서 내 이름을 빌려 쓰는 것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잘되었다. ‘그냥 해!’ 생각 없이 그랬는데 집을 팔았는데 1,500만원의 세금이 나왔습니다. 1,500만원의 세금이 나온 것도 우리가 낸 것이 아니라 세무서에다 냈습니다. 그랬더니 일주일 후에 세무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1,500만원을 더 내라는 것입니다. 아니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세금을 받아갈 때는 언제고 또 내라고 하느냐고 그랬더니 옛날에 이름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그러면서 그 세금이 1,500만원이라고 더 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진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원망하겠느냐고 그러면서 생각 없이 ‘그래!’ 그런 사람이나 그것을 덜컥 이름을 바꾼 사람이나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랬습니다. 아니 부부사이에 이름을 바꾼 것을 누구에게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것을 세금을 내야한답니다. 증여세를 내야합니다. 세상에 우리들이 이렇게 삽니다.
담임목사가 그렇게 외치면 자기들도 올바르게 해야 하는데 그래야지만 코드가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하자’ 그래서 어느 날은 그랬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교직원들은 세법상에 근로자가 아니랍니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답니다. 나는 이렇습니다. 법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지는 모르지만 정의의 원칙에 볼 때 세금을 안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외국에는 에누리 없습니다. 다 세금을 냅니다. 일절 없습니다. 칼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 그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언제 발견했느냐하면 내가 여기서 부목사들의 연봉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우리 깐에는 최선을 다해서 주려고 줍니다. 특히 오래된 부목사님들은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영세민 가족으로 등록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왜? 아빠가 무직자이기 때문에 얘네 들은 불쌍하다고 혜택을 많이 준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랬습니다. ‘그래도 내 설교를 듣고 신앙이 컸는데 그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지금 좋아할 때냐?’ 그래서 그랬습니다. ‘교회에서 연봉을 이만큼 주는데 네가 어떻게 영세민이냐? 그렇게 하면 진짜 영세민이 받을 한사람이 못 받지 않겠느냐! 그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라도 모본을 보여야겠다고 나부터 하겠다고 했더니 세금이 옛날에 내 이름으로 등록된 차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열 몇 대 까지 갔습니다. 교회에 얽히고설키고 해서 1,200만원을 내야한답니다. 그래서 그래도 내야 되는 것이 맞으면 1,200만원이라도 내야지 1,000만원은 낼 수 있고 1200만원은 못 낸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연봉이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사람에게 가서 무릎을 꿇더라도 나는 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교역자들이 걷어서 세무서를 갖다 주는 세금이 6,000만원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보면 미쳤다고 그럽니다.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돌아가신 한 경직 목사님은 그때는 더더욱 그런 것이 무관심할 때가 아닙니까? 그분은 영락교회에 오시자마자 자원해서 자기혼자 가서 사인하고 세금 다 냈습니다. 그래서 순복음교회가 세금을 냈다고 그러고 안냈다고 그러면서 싸우는데 말이 됩니까? 순복음교회는 16만 명이 출석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천 몇 백 명 출석하는 교회인데 교역자수가 거기는 200명이 넘습니다. 직원들까지 합치면 400명 가까이 될 것입니다. 4,400만원 낸 것으로 나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6,000만원을 내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든 것들을 보면서 하나하나 쌓이면서 이 세상은 교회를 윤리적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뭐냐 하면 오히려 다른 교회 같으면 담임목사나 장로들은 엄격히 하지 않으려고 그러고 밑에 있는 평신도들이 그것을 올바르게 하자고 정화운동을 벌이자고 그러는데 이것은 위에서 올바르게 하자고 그래도 자꾸 원칙대로 안 됩니까? 그래서 여러분 들으시면 깜짝 놀라시겠지만 우리교회에 오셔서 화종부 목사님들 강의하고 가시면 에누리 없이 세금을 딱 뗍니다. 원천징수해서 세무서 갖다 줍니다. 400,000원 받으면 그중에서 아마 26,000원쯤 뗍니다. 그런 교회가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많지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세어야할 정도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학교법인이나 이런데 가서 강의하면 에누리 없이 영수증으로 원천징수하고 원천징수를 받으며 세무서 갖다 주면 세무사가 다 모아서 내는데 저쪽에서 다 압니다. 이쪽에서 빠져나간 돈하고 저쪽에서 들어오는 것을 다 압니다. 우리나라 세무시스템이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어느 날 나에게 세무서장이 쪽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은 조심해라. 매우 불성실한 납부신고자다.’ 나는 그때까지 몰랐습니다. 나야 돈을 받는 것은 교회에서 면세이고 강사료 받는 것은 학교에서 떼고 그리고 출판사에서 나오는 것은 출판사에서 자기네들이 다 보내고 나머지 돈 받으면 쓸데 내가 알아서 쓰고 선한 사업에도 쓰고 그러는데 개인적으로도 쓰고 내가 보내는데 내가 무엇을 떼어먹었느냐고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이 쭉 배어야합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절대 내 자신이 프라이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평양 대부흥을 가지고 강의한 교수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박용기 교수님이라고 그분하고 나하고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고 그냥 알고 지냈는데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나보고 이야기를 합니다. ‘김 목사님!’ ‘네!’ ‘최근에 놀랐습니다.’ ‘무엇에 놀라셨습니까?’ ‘제가 이번에 신학대학원 입학생 면접을 했는데요.’ ‘그런데요?’ ‘제가 한 20명을 면접했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질문 중에 너희들이 모델로 삼는 교회가 어디냐는 질문이 있었답니다. 11명이 열린 교회라고 그러더랍니다. 열린 교회는 오늘 통계를 보니까 2704명이 나왔다는데 애들 1200명하고 약 4000명이 안 되는 교회입니다. 규모가 그보다 큰 교회가 한국에 참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큰 교회들의 입장에서 보면 열린 교회는 조족지혈입니다. 그런데 의미는 덩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교회가 할 수만 있으면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할 수는 없지만 신약성경이 그려내고 있는 그 아름다운 교회 이상의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니면 교회 경영에 있어서나 모든 것에 있어서 가장 가까이 다가가 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들이 잘 생각해보십시오. 원래 기대를 안 하던 사람은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사람들한테는 뭐가 잘 안될 때에 깊이 실망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남을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남을 보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우리를 보고 아무리 박수를 쳐도 옳은 일이 아니면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싫어해도 옳은 일이면 우리는 합니다. 다른 사람이 다 좋아해도 옳은 일이 아니면 우리는 할 수 있으면 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쳐야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담임목사는 가서 외치는데 사람들이 ‘아! 진리의 말씀이 저기 있구나! 은혜가 있구나!’ 그러는데 밑에서 가짜 영수증이나 왔다 갔다하고 직원들이 물건을 팔고 뒤로 뇌물이나 받고 지금 한국교회의 공공연한 관행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도 우리 교회에 방송시설을 하려는 사람이 와서 정확하게 10%를 봉투에 넣고 가더랍니다. 그래서 직원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그냥 받아서 쓰십시오. 리베이트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면 안 됩니다. 가져가십시오.’ ‘무슨 소리입니까? N교회도 하고 K교회도 하고 무슨 교회도 하고 다 우리들의 거래처인데 무슨 소리입니까?’ 공공연한 관행입니다. 심지어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어느 신학교를 갔더니 아예 다방으로 불러서 돈을 요구하더랍니다. ‘내가 너에게 공사를 줄 텐데 몇% 줄래?’ 어떻게 신학교가 그럴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고 늘 말씀드리지만 진리를 배우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그대로 살려고 하는 것에는 굉장히 많은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현실감을 못 느끼실 것입니다. 물건을 하나 사는데 얼마입니까? 그랬더니 이천만원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간이영수증을 끊어주는 것입니다. 이천만원짜리 간이영수증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명세표만 끊어주는 것입니다. 명세표로 안 됩니다. ‘현금영수증이라도 주셔야하는데요.’ 그러면 ‘아 그러십니까? 이천이백만 원을 내셔야합니다.’ 딱 잘라서 말합니다. 그것도 마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천만원이면 과세가 부가세도 안냅니다. 부가세를 내려면 이백만 원을 내는데 소득세가 또 나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13%가 된답니다. 그러면 정확하게 이천만원짜리를 그냥 명세표로 하면 이천만원인데 그것을 해달라고 그러면 이천이백육십만원을 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에누리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갈등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냥 회사를 다녀서 회사의 법이 그렇게 되어있어서 그렇게 안하면 징계를 당한다고 그러면 그 돈이 내 돈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안한들 누가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탈세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만약에 그렇게 해서 물건을 산다면 그렇게 가짜 영수증을 해온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어떻게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부가가치세를 안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벌써 범죄행위입니다. 그래서 하도 처음에 고통을 받아서 사랑의 교회를 비롯해서 온누리 교회에 다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윤리적으로 앞장선 교회에 물어보았습니다. 솔직히 고백을 합니다. 하려고 애는 쓰는데 다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어두운 시대에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고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궐기대회처럼 주먹을 불끈 쥐는 것은 돈이 안 들어가는 것이고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살려고 그러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이 오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그렇게 살아야지만 우리 후손들에게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니냐?
그래서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요 옆에 보면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몇 달 동안 난리가 났었습니다. 이 앞에 있는 이 도로가 무허가입니다. 저사람 땅입니다. 저 앞에 있는 건물을 짓는 사람의 땅입니다. 도로가 그렇습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사도입니다. 그래서 떼어보니까 원래 역사가 복잡합니다. 그런데 이 골목을 안내주면 저 속에 집을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사람이서 공동명의로 나누어서 이 길을 만들고 저 뒤의 건물들의 건축허가를 받은 것입니다. 그때 이 사람도 조금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두 번인가 바뀌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임태수 사장 전에 말입니다. 그래서 전체가 공매처분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는 임태수 사장은 거기 길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요기만 사고 길로 저쪽으로 들어간 것은 저 옆에 있는 사람이 사버린 것입니다. 이 지분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이 건물을 여기다 바짝 붙여서 짓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 도로인데 그래도 되느냐고 그러니까 법적으로 자기가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차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니까 저쪽 뒤를 뚫어 줄 테니까 뒤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사실 논리상으로야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이 공장건물인데 차가 세 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과 여기서 지금 차가 들어가는 뒤뜰로 들어가는데 그것과 못 들어와서 이렇게 해서 가게 되면 어디로 가야하느냐 하면 여기서 꺾어져서 그래서 교회 앞에 있는데 벤처다임까지 가서 거기서 유턴을 해서 꺾어져야합니다. 건물의 가치가 십억 이상 떨어집니다. 그래서 내가 안 된다고 딱 잘라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난 것입니다. 내용증명이 오고 여기 공사 감독의 협박장이 날아오고 교회 앞에서 데모를 하겠다는 등 그랬습니다. 참 개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도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닌데 이게 19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게 도로라는 것은 사용권이 있는 것인데 자기네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꿈을 꾸고 토지를 매입했을지 모르지만 어림없습니다. 내가 이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있는 한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인줄 아는데 말도 안 된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감정이 최고도로 상한 것입니다. 소망교회의 교인입니다. 어느 날 나를 만나자는 것입니다. ‘목사님 만나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밑에서 계속 잘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그랬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내가 왜 안 만나느냐고 그랬습니다. 오라고 그러라고 그랬습니다. 내가 단칼에 정리를 해 줄 테니까 오라고 그래라. 그래서 왔는데 그 사람은 안수집사인데 그 교회의 장로와 같이 왔습니다. 어떻게 왔느냐고 그러니까 박기준 변호사 같은 위치의 법률구조위원장입니다. 그래서 그러시냐고 그러면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랬더니 자기네가 이 건에 대해서 자기 교회에 있는 판사, 검사, 변호사, 고검장도 모여서 다 토론한 결과 이 땅은 이 집사님 말이 맞는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시느냐고 그러면서 물었습니다. 교회가 은혜로운 곳인데 소송을 하고 그래서 되겠느냐고 그러면서 교회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래요. 내가 그랬습니다.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왜 그러느냐고 그래요. ‘이것은 그렇게 줄 수 없다고 본다. 법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소송을 해라!’ 교회가 교회를 상대로 어떻게 소송을 할 수 있겠느냐고 그래요. ‘내가 괜찮다고 그러지 않느냐 마음 상하지 않을 테니 소송을 해라.’ ‘그럼 제 땅을 지금 사시겠다는 것입니까?’ ‘내가 그것을 왜 삽니까? 나는 필요 없습니다.’ ‘보상을 원합니까?’ ‘아닙니다. 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법이 해주게 되어 있다면 우리가 해드려야지 왜 보상을 받고 해줍니까?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법원에서 네 말이 맞는다는 그것만 가지고 오십시오. 그러면 그다음 주일에 당회를 해서 넘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라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우리는 법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역사를 다 이야기한 것입니다. 36억 달라는 것을 39억 준 것을 시작해서 교회의 재정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입니다. 그렇게 윤리적인 힘을 가지고 살아온 교회인데 그 집사님 땅이 탐이 나서 그러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마음 상하지 않을 테니까 소송하시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소송해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즉시 그 다음 주일에 해드리겠습니다.’ 소송도 안하고 깨끗이 포기하고 지금 집을 짓는 것입니다. 소송이 안 됩니다. 그것이 되겠습니까! 나는 벌써 다 알고 박기준 변호사한테도 물어보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할 때에 그렇게 좀 사람들의 보편타당한 기준에 맞게끔 그렇게 올바르게 처리하면서 살아서 우리들이 신앙만 구김이 없으면 무엇 합니까? 실제의 삶에 있어서도 구김이 없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100% 옳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누가 그렇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나 자신 안에 죄성이 있거나 믿음이 연약해서 못 지키는 것은 몰라도 뻔히 아는 것은 그래도 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살고 그것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담임목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생각들을 좀 잘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지금 오래되신 분들 집사님 같은 경우는 조금 아시려나 모르겠는데 한 오 년 전에도 제직회에서 나는 열린 공간에서 저렇게 물건을 팔면서 세금을 안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직회에서 부결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때 물론 내가 ‘무슨 소리냐? 담임목사가 하자고 그러면 해야지 말이지! 전부 다 죄짓는 거야!’ 그 한마디만 하면 누가 그것을 안 하겠다고 그러겠습니까? 제가 기다렸습니다. 뭐냐 하면 자신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는 대로 내버려둬 보고 그것이 결국 옳지 않다는 것을 보고 그러더니 벌써 주위에 Coffee Shop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벤처다임에 장사를 하더라도 열린 교회 안의 Coffee Shop이 여러분이 장사하는 그 구역 앞에서 먼저 세워지긴 했지만 그곳이 있어서 자기는 2천원에 파는 것을 천원을 받고 팔면서 사람이 바글바글 하는데 여러분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것도 먹고살려고 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내가 열린 공간에 이야기한 것이 성도들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또 그렇게 값을 말도 안 되게 후려쳐서 받으면 안 된다. 그러면 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안됩니다. 그래서 비싸서는 안 되지만 엇비슷하게 따라가고 그래서 이중 가격제를 합니다. 주일에는 싸게 팔고 평일에는 비싸게 팔아라. 그리고 기본적인 것은 성도들이 부담 없이 먹게 하되 아니 커피 마시면 될 사람이 마끼야또를 먹겠다면 돈을 내고 먹어야합니다. 성도들의 헌금을 거기에 넣어서 먹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경영을 하려는데 그것을 설득하는데 3년이 넘게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이제 겨우 설득이 되어서 이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모든 것을 해나가는 합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 나온 그 교회 이야기는 마음이 너무 아픈 것입니다. 그곳도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것도 우리들이 영적으로 보편교회이고 우리와 한 몸인데 왜 그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재정을 비서실로 옮겨갔답니다. 그것도 말이 됩니까? 비서실에서 비서나 하면 되지 그것을 왜 재정을 그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아마 교회 돈을 가지고 어디다가 투자를 한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금방 안 끝납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주님의 교회인데 얼마나 마음이 아픕니까? 그래도 그쪽 지역에서는 칭찬을 받던 교회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에 교회들이 자꾸 시험에 들고 미국에 가보니까 너무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교회마다 큰 교회는 전부 다 싸우는 중입니다. 소송중이고 목사가 두 사람이 나타나서 서로 올라가서 설교를 하겠다고 하고 심지어는 주차장에 모여서 공동의회를 해가지고 통과를 시키고 말입니다. 실제로 영국서 목회를 하는 부부를 만났는데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인입니다. 교회에서 본당에서 장로들에게 각목으로 두들겨 맞았답니다. 맞은 사람이 직접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처음부터 그렇게 일어나겠습니까? 말씀이 사람들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이 올바르게 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아버지가 돈을 못 벌어도 대쪽 같고 경우가 올바른 집안에는 기강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돈을 좀 벌어도 이 사람이 개념이 없으면 하극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집안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라고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이 100% 맞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도 자신의 마음이 하나가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것은 어떻게 보면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저렇게 북한이나 공산국가들이 새빨간 깃발을 걸고 일치를 이루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요새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지금 정부가 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쐈지?’ 그랬더니 ‘야 이 자식들아 웃기지마라 증거를 대봐라. 야, 너희 백성들 중에서도 안 믿는 사람이 20%가 넘는다더라.’ 그럽니다. 그러면 한쪽에서는 천안함이 북한이 일으킨 것이라고 그러고 수많은 나라들이 사인을 했는데 여기서 또 어떤 사람은 들고 가서 그 사인은 안했다고 하고 정상을 참작해달라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는 정말 기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하면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 수 있는 나라입니다. 북한이 처음에 정상회담을 반대할 때 조건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특히 조선일보에서 우리 북조선 인민공화국을 비방하는 것을 계속하는 한 우리는 회담을 안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황당한 것입니다. 걔네들은 대통령이 전화해서 ‘하지 마!’ 그러면 자기네들은 안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지만 이 나라가 민주국가인데 그것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본은 정부는 자기네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우깁니다. 너희들이 나쁜 놈이고 진짜 못된 짓을 했다고 하는 사람이 수없이 일본에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편을 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보고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일제 강점기가 우리나라에 참 도움을 주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교수 한 사람이 이야기했다가 거의 테러를 당할 수준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면서 ‘아! 참 선진국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천안함 사태가 일어나서 의정 성명으로 내려가고 그래도 나는 너무 좋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아 저게 대한민국이 민주국가가 된 것이구나!’ 그러니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서 깊이 우러나와서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일치를 이루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조작에 의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생각해야합니다. 대부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임직할 때마다 담임목사 손을 꽉 잡으면서 ‘목사님 순종하겠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더 격렬하게 손을 흔들면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여기가 북한입니까? 시키는 대로 하게 그래서 화종부 목사 그분도 대단한 분입니다. 장로를 앞에 있는 목사님이 8년인가 있었는데 장로를 안 시켜 주었답니다. 협동장로라고 시켜주었답니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서 장로를 시켰답니다. ‘목사님 열심히 목사님께 순종하고 목사님을 돕겠습니다.’ ‘나를 도울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나 잘 섬기십시오.’ 그랬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뭐냐 하면 대개 그렇게 손을 흔들면서 개인에게 충성맹세한 사람들이 삐딱선을 탑니다. 제 17년의 경험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진짜 변함없는 사람들은 조용히 있으면서 교회가 어려울 때 정확하게 말씀대로 딱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제일 먼저가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교회의 질서가 주가 되어야합니다. 또 뭐가 되어야 하느냐하면 항상 마음속에 모토가 있어야합니다. 나는 손해를 보더라도 말입니다. 나는 그래서 비서한테 냉수한잔씩 가져오라고 합니다. ‘얘야,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교회가 유익을 얻어야 된다.’ 나는 비난을 받더라도 교회가 상처를 입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교회를 섬겨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정말 우리들이 이런 것 아닙니까? 산이 있습니다. 산이 있는데 우리 모두의 목표가 봉우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올라가는 사람이 산 저쪽에서 올라가는 사람, 이쪽에서 올라가는 사람이 안보입니다. 그런데 올라가면 다 만납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목표가 산이 아니면 옆에 있는 사람하고 만나는데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하고는 절대 못 만납니다. 중턱이 목표이고 저 사람도 중턱이 목표이면 일생동안 산을 올라가도 못 만나는 것입니다. 매달 올라가도 매달 못 만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뜻,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산꼭대기입니다. 그리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시작하는 곳은 출발점이 달라도 거기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이나 이런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분들이 거의 없는데 초창기에 교회할 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힘든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말씀대로 하는 것도 힘이 드는데 말도 안 되는 자기의 편견과 그 다음에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혼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던 어느 날 교회를 떠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현수막을 너무 자주 걸어서 교회를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그것이 얼마나 비싸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집은 네 식구가 오줌을 누기 전에는 물을 내리지 않는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세수한물을 다시 발을 씻고 발을 씻은 물로 걸레를 빨고 걸레 빤 물을 가지고 변기에 붓는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교회에 와보니까 교회는 너무 낭비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복도에서 열린 신문을 보고 이 양반이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가까이 가면 민망해 할까봐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누가 신문을 이렇게 많이 찍으라고 그랬느냐고 소리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시무장로도 아니고 협동장로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보면서 야 정말 어쩌면 이렇게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았어도 말씀이 사상화 되어서 자신의 마음속에 심겨지지 않는가?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지시하시는 것이 아니면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쉽게 정죄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일은 아닌데 어느 교인이 평생 이 사람은 프라이드만 타고 다니기로 작심한 사람입니다.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에게 욕을 바가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같은 교인들 중에도 그렇습니다. 외제 승용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옛날에 국민소득 1,000불 이하로 헤맬 때야 외국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욕이 되었겠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다 살만큼 살고 어떤 것은 외제차가 국산차보다 훨씬 더 싼 차도 있는데 그러면 중국제 버스가 들어오면 그것은 안살 것입니까? 그것도 외제인데 말입니다. 사당동 가구에 가니까 그럽니다. 의자가 좀 허름해서 싸보여서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목사님 그것은 수입품입니다.’ ‘어디 수입품입니까?’ ‘외국 수입품입니다.’ ‘아니 이 사람아 외국에서 만든 것이 수입품인데 어디 수입품입니까?’ ‘중국제입니다.’ 누구를 놀리느냐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려고 합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솔직히 이야기해서 자기가 BMW를 타고 왔는데 사는 것이 사업하다가 너무 고달파서 그리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있습니다. 은행에 구식차를 타고가면 옛날에 대출을 안 해주었습니다. 심지어 학교총장도 그랬습니다. 잘못된 관행이기는 하지만 뭐냐 하면 학교경영이 얼마나 어려우면 저러고 다닐까? 문교부에 기체동의안을 하려면 학교에서 돈을 빌리는데 허가를 받아야합니다. 2층에서 내려다보고 저거 기체동의안을 써주었다가는 학교 총장, 이사장이 저차를 타고 다니니까 저 기체동의를 해주었다가는 학교가 빚을 못 갚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는 것입니다. 별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그렇게 해서 교회에서 그러면 되겠습니까?
오종호 목사님이 하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당회를 하는데 목사님이 컴퓨터를 하나 사달라고 그랬답니다. 그랬더니 당회에서 워드프로세서를 사주었답니다. 옛날에 워드프로세서가 있었을 때인데 목사가 설교준비를 하려면 문서출력만 하면 되지 그래픽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면서 말입니다. 내가 아는 목사 한사람은 서대문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를 했는데 그랬더랍니다. 교회에서 심방을 하라고 차를 안 사주니까 ‘장로님 제가 차를 사면 교회에서 기름 값을 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의논해보겠다고 그러더니 그러라고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 집도 애들이 딸 넷이나 되는데 만날 자기는 집에서 다섯 여자가 기다린다고 그러는데 애들을 데리고 가려니까 뒤에 트렁크가 있어야하는데 그런데 당회에서 결정을 했는데 담임목사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꽁지 있는 차를 타려고 그러느냐 꽁지 있는 차를 타면 기름 값을 안주고 기름 값을 받으려면 꽁지가 없는 차를 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밋밋하게 내려오는 마티즈나 프라이드의 뒤에 트렁크가 없는 것을 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우다 결국은 할 수 없이 꽁지 없는 차를 타면서 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말 불합리한 것들이 교회 속에서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좀 이렇게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어느 교회 목사님이 그랬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 해도 괜찮으려니 모르겠습니다. 뭐냐 하면 목사님이 교회를 은퇴하면서 유언을 남겼는데 ‘공장하는 사람을 장로로 쓰지 마라.’ 왜냐하면 장로님 한분을 뽑았는데 방직공장 사장님이셨는데 교역자들과 직원들을 전부 다 방직공장 직원 공원들 월급 주는 수준으로 책정했답니다.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신앙이 아무리 주님을 뜨겁게 만나도 그 만난 주님이 주님을 만난 신앙의 경험이 담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인성 속에 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졸렬하고 치사한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그런 그릇에 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았으면 좀 신성을 너르게 하고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도록 그렇게 살아야지만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우리들이 부부 둘이서만 이 세상에서 산다면 둘만 마음에 맞으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싫다고 그래도 우리 집사람만 나를 데리고 살만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잘리고 평생 사는 것입니다. 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되면 다릅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좀처럼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를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고 할 말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안합니다. 왜냐하면 4대강을 찬성하는 사람으로부터 횃불 들고 반대하는 사람까지 교인들이 다 있습니다. 다 내 양떼입니다. 아니 복음이 무엇인가를 가지고도 갈라져도 사람들이 자꾸 나뉘는데 왜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가르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4대강에 대해서는 내 의견이 없겠습니까? 나는 무골인간입니까? 왜 없겠습니까? 그러면 지방자치에 대해서 생각이 없겠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무상급식에 대해서 왜 생각이 없겠습니까? 내가 바보입니까? 무골인간입니까? 다 있습니다. 나는 표명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 간사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나 혼자 마음속에 묻어두는 것입니다. 왜? 간사들 중에도 운동권에서 자란 애들은 빨리 전면 급식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보수적인 애들은 이것은 포플리즘이다. 우리가 잘못하다가는 아르헨티나 짝이 난다. 아르헨티나가 1910년에 지하철이 다녔습니다. 여러분이 옛날에 읽은 소설책 엄마 찾아 삼만 리에 나오는 돈 벌러 간 부자 나라가 아르헨티나였습니다. 아십니까? 그때에 이태리는 거지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허접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생각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이야기를 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복음이야기를 해도 다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일체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도자는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품고 가야합니다. 그래서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끌고 교회를 나오는 애들을 보면서 여러분이 지도자가 되면 ‘너는 왜 그러고 교회에 나오나?’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애가 정말 독실하고 성화된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어느 날 겉멋이 들어서 그랬다면 야단을 치지만 그러나 그 애가 회심하지 않은 애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토투스 크리스투스(Totus christus)의 원칙에 의해서 그것도 불쌍히 여겨주어서 예수를 믿게 만들어 주어야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노란머리로 물들이고 핫팬츠 차림으로 교회를 나와도 좋으니까 회심만 해라. 들어야 회심을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서 좀 폭 넓게 품고 그렇게 하면서 갈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그렇게 교회가 지도자들이 처신할 때 강단에서 선명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정말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런 이야기들은 설교시간에 다 못합니다. 그래도 우리 장로님들하고는 많이 합니다. 참 답답한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교회 속에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생각해야합니다. 다른 것이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 사람하고 내가 다른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지 말라는 것 이외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이해해주고 그래서 그 사람도 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에 배척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그렇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이 교회를 섬기다 보면 결국은 양떼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래서 보면 교구도 이렇게 맡겨보면 1년, 2년 지나가면 교구 교역자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교구 교역자가 꼼꼼하고 주도면밀하면 목양 발표하는 것도 틀립니다. 널널하고 그러면 거기도 널널합니다. 그러니까 찬양을 좋아하면 교구 식구들도 찬양을 좋아하고 교역자가 말씀중심이면 누구나 다 그렇지만 말씀을 탐구하는 열심을 내면 가는 곳마다 테이프를 나누어주며 설교를 들으라고 그러고 말씀을 연구하라고 그러고 책을 읽으라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변화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이제 이 중에 장로가 되실 분들도 있지만 한마디씩만 하고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장로가 되실 분들은 정말 잘하셔야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퀴즈를 낼 테니까 들어보십시오. 한 교회에서 장로로 세워놓았는데 사역을 죽을 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회는 장로가 나쁜 사람이고 장로 편에서 보면 못된 교회 때문에 그렇게 죽을 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늘 이야기하지만 부부가 살다가 못살겠다고 헤어질 때에는 둘 다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는 이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나쁜 놈이 없습니다. 저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상에 그런 여자하고는 나도 못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장로직분을 받는데 요즘들은 장로를 서로 하겠다고 그러는데 미국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노골적으로 ‘목사님 저를 장로 시켜주시면 제가 한번 하겠습니다.’ 왜 그렇게 장로가 되려느냐고 그랬더니 에이 촌 교회에 갔는데 골프장이 있더랍니다. 촌 교회에 갔는데 전부 다 김 장로, 이 장로, 자기에게만 박 집사라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너무 쪽팔리지 않느냐고 하면서 목사님이 체면 좀 살려주시면 자기가 진짜 대가는 지불하겠다고 그럽니다. 정말 황당한 사람입니다. 엊그제 미국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을 만났는데 세상에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을 교회에서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이 목사가 가서 성찬에 참석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부인이 와서 삿대질을 하면서 목사님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고 잘났느냐고 우리 남편이 그래도 사회에서 한가닥하는 사람인데 어디가 빠진다고 성찬을 안주느냐고 그까짓 거 떡 하나하고 포도주인데 사실 이야기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장로를 하다가 사연이야 있을 것입니다. 사연이 없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유 없이 죽은 무덤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연이 있겠지만 어쨌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역에 죽을 쑤고 결국은 갈등을 해서 교회를 떠나거나 말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고 칩시다. 그렇게 된 사람들 중에서 정말 놀라운 은혜를 누리면서 그 교회에 머물러있는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까? 뭐 부분적으로는 여러분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이 장로의 직책은 너무 무서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너무 두렵고 떨리는 자리입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을 보면서 나는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절대 아부하는 것이 아니고 장로님들을 들으라고 귀에 들어가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도 참 훌륭합니다. 물론 쉬운 점도 있습니다. 옛날에 그냥 일제 강점기나 이런 때 장로의 일화를 들어보면 밤을 새워서 기도했다고 하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무릎에 피가 맺혔다고 하고, 아니면 끌려가서 모진 고문 끝에도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순교를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좀 아쉽습니다. 엊그제도 당회를 하는데 나는 좀 장로님들이 장로가 되면 멀리 살지 말고 교회 가까이서 살아야합니다. 아니 교인들도 은혜를 받겠다고 교회 가까이 이사 오는데 이사 오셔서 새벽기도를 지키는 사람들이 되셔야지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돈이 많아서 어떤 간사가 자기네 장로님께 전화를 해서 목사님 연구 쪽 예산을 짜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도끼질을 당해서 우리 일이 지장을 받게 되고 아버지 장로가 물어보더랍니다. 그것이 전부 다해서 얼마냐? 7,500만원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사람이 하는 헌금이다. 그런 장로님이 있다면 그러면서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기분 나쁘겠습니까? ‘이번 수련회비는 제가 다 냅니다.’ 그렇게 내놓고 교인들은 경제도 어려운데 그냥 따라오라고 그러면 누가 기분 나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 것을 못해도 괜찮습니다. 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보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말 편합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직무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시면서 하시고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감사한 것이 딱 한번이라고 처음부터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딱 한번이다. 그래서 명예롭게 7년을 딱 한 번에 쉬지 않고 달음질해서 완주를 딱 한 다음에 아름답게 뒷마무리를 하는 모습을 모든 교인들이 존경하고 교인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겠습니까? 후배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말입니다. 그런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되는 것이지 만약에 일평생 하는 것이라고 그랬으면 아마 양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두 분도 장로님이 되시면 좀 진지하게 깊이 고민하고 하셔야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결국은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고 하지만 그러면 결국은 그런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 뜻을 이루어간다고 하는데 우리가 미국교회를 위해서 미국교회가 할 일을 대신해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맡겨주신 열린 교회 안에 보편교회를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열린 교회를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내 마음을 움직여서 결국은 일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질서입니다. 그러면 보십시오. 우리가 중국 신학교가 내가 중국에 10년을 다니지 않았다면 꿈을 꾸었겠습니까? 지금 요번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3년 전에 세워질 때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이 ‘저 신학교가 몇 년이나 갈까?’ 왜냐하면 한사람을 1년 동안 교육을 시키는데 천만 원이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누가 하겠습니까?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에 뭐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자타가 공인해서 CRTS는 중국 최고의 신학교이다.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실제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합니다. 작년에 공부하지 않는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잘라버렸습니다. 아무나 받지 않습니다. 내가 이야기했습니다. 네 명을 뽑아도 나는 절대로 아무나 받지 않는다. 금년에 좋은 사람이 없으면 학년 모집을 하지 마라. 이번에 와서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철학 강의하는 그 교수를 불러다가 학생들에게 철학을 들려주었습니다. 철학을 공부해야하는데 중국도 그것이 약합니다. 3일 동안 강의하고 갔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이 너무너무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사람이 강의하고 가는데 530만원이 들었습니다. 비행기, 호텔비, 아이들도 데리고 나오겠다고 그래서 그렇게 들었습니다. 아주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급강의를 중국에서 누가 들려줍니까?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생각해보시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든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릅니까? 그런데 결국은 내가 가서 봤기 때문에 그 학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두고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속에 나는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중에 좀 더 하겠지만 내 마음속에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 저렇게 엘리트들을 교육을 시키는데 지금 현재 목회하고 있는 이미 저학력자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나는 어떻게 하느냐하면 얘네들이 올해로 3년이 됩니다. 3년에 졸업을 못합니다. 그래서 4년에 공부합니다. 그러면 MD부를 마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2년을 더 공부시키는 것입니다. Th. D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각 과목을 전공하는 똑똑한 학생들을 뽑아서 걔네들로 하여금 교수로 삼아서 중국의 하급 신학교를 하려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가정교회의 이미 있는 지도자들,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지도자들, 중학교밖에 안 나온 아줌마들, 이런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온갖 잡탕을 가르칩니다. 모아놓고 올바른 신학을 가르치라고 하면 우리들이 길러낸 사람 때문에 거기에서 수십 명의 지도자들을 또 올바르게 교육시킬 수 있는 것이고 그 수십 명에 딸린 교인은 수천 명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중국에서 한번 만났는데 회심한지 2년 6개월이 되었는데 전도사로서 목회를 한다고 하는데 교인이 6천명이 된답니다. 우리 같으면 새가족반을 겨우 마쳤을 수준입니다. 그가 얼마나 많이 알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올바로 가르쳐주면 양떼가 올바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맨 처음에는 열 명을 모아놓고 1억을 투자할 때는 미친 짓처럼 보이지만 이게 2년 후면 열매를 맺기 시작해서 그런 사역들을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 다음부터는 해마다 사람들이 고급지도자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입니다. 결국 여러분이 하나님께 칭찬 듣도록 사역을 하려면 담임목사의 마음에 무슨 그림이 있는지를 읽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순종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읽고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사명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생각하고 하나님 사랑 때문에 충성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요번에도 어떤 분이 나에게 그래요. ‘목사님 왜 읽지도 못할 책을 그렇게 많이 마련하셔서 무엇 하시게요?’ 물론 나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참 마음이 너무 안쓰럽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그렇게 가까이 나하고 있으면서 그렇게 내 생각을 모르느냐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담임목사가 그 책을 국을 끊여먹겠느냐 아니면 거기서 누워서 자겠느냐? 그러니까 아직도 먼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서 실제로 담임목사의 마음속에 무슨 그림이 있는지 보십시오. 돌아가셔서 선교학교에서 강의한 것 있습니까? 지난번에 선교학교에서 특강한 것 있나보십시오. 거기에 들어가서 보시고 다음 주에 올 때까지 다 듣고 오십시오. 이것은 정말 숙제입니다. 선교학교 마지막 강의로 ‘열린 교회 선교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4개를 하려고 올라갔는데 시간이 없어서 2개밖에 못했습니다. 그날 여러 명의 성도들이 감격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임목사의 마음속에 어떤 비전이 있는가를 보십시오. 그것이 내 공상 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렇게 해서 당신의 일들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김진우 장로님이 애쓰셔서 오늘도 청년부 어느 자매가 나와서 신학도서관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인데 궁극적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꿈을 시간이 없으니까 하나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뭐냐 하면 궁극적으로는 신학대학 대학원을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왜 그러느냐하면 중국에 CRTS의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그런데 이제 학위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딱 잘라서 ‘학위는 해서 무엇 하냐 다 세상 자랑이지!’ 그러면 되는데 현대사회가 그렇지 않습니다. 학위를 원합니다. 지금 법적으로는 학위를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겠다는 학교가 미국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뢰하기 어려운 학교였고 한국에서도 잘하면 줄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 그 학생 한사람이 한국에서 대학원 다니는 학생의 등록금을 내야하는 것입니다. 그 학교에 말입니다. 우리가 돌았다고 이천만원을 내고 그 학위를 거기서 주겠습니까? 안됩니다. 어느 학교에는 분교를 하자고 그랬더니 교수를 80% 이상 그 학교 교수가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교회의 대충 빚을 갚고 여유가 생기면 재단을 설립해서 학교를 세우고 여기서 대학원, 대학교를 하는 것입니다. MD부의 목사 되는 과정 말고 그것을 마친 Th. M과 그리고 PH 정도를 해서 아주 젊은 교수들 중에서 개혁주의와 청교도, 우리 열린 교회 사상을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을 규합해서 최고의 교수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CRTS를 여기의 중국분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쪽에 투자할 돈으로 이쪽 등록금을 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학위가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한국에서는 지금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미 개혁신학이 굉장히 많이 물 건너갔습니다. 그런 의지들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래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금 현재로 40대 미만인 사람들을 규합해서 그래서 제가 학자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갖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거기서 훌륭한 사람을 만들고 그 다음에 입도선매를 해서 어떻게 하느냐하면 지금 탁월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박사과정을 밟을 때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투자해서 그래서 생활을 해결해주고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기약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야심차게 여기에서 정말 아름다운 목회와 그 다음에 철저한 개혁신학, 그리고 이 시대를 배척하지 않고 끌어안으면서 요즘에 공과공부 배우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정신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을 수 있는 그런 신학교를 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러면 왜 내가 그렇게 도서관에 집착하는지 여러분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도서관이 없으면 건물이 있어도 인가가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도서관은 하루아침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저는 화란어 못합니다. 불어, 독일어는 그냥 제목은 읽고 그저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지 유창하게 못합니다. 불어, 독일어, 화란어의 자료까지 들어옵니다. 그것은 왜 그럽니까? 나만 쓰다가 죽을 것이면 필요 없습니다. 후학들을 위해서 준비해놓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것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학교인가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겨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연구장학분과에 있는 분들은 이제 부담을 많이 느끼겠지만 스페이커르의 장서 Library Hunting 이라고 그러는데 잘되어서 이번에 1/3일 들어오고 3년에 걸쳐서 1/3씩 들어오는데 또 하려고합니다. 그러면 아마 어떤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에이 빚도 갚고 그래야하는데 또 해야 하나 다른 목사님 일을 저지르고 하면 몇 억이 들어갈 텐데…….’ 괜찮습니다. 스페이커르 박사의 책이 2억 넘게 인수했는데 지금 환율이 떨어져서 2억 1천에 인수했는데 그 책들은 내가 보기에는 6억을 주어도 못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저명한 학자들의 Library를 다시 Hunting해서 이것들을 확충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학교를 설립할 때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건물은 1년이면 짓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은 그렇게 짓지를 못합니다. 책을 그렇게 모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속의 내 생각은 수없이 많은데 그것을 여러분에게 다 전달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성의를 가지고 간간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아까 세미나에 올라간 그런 것들을 수집하면서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국목회자문제, 미국신학교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러분이 안목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지금 현재 한국에는 개혁주의를 가지고 서로 공감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런 것들을 넓히면서 세계의 보편교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들을 열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내년에도 좋은 학회도 모이고 하는데 그것이 우리교회의 지식수준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 맺힌 교회가 변화되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이 이 일들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보십시오. 담임목사가 그런 일을 해나가는데 나도 목회만 하면 너무 좋습니다. 제가 심방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도 너무 좋아합니다. 이번에 고난주간에도 형제들을 심방하면서 제일 기쁜 것이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구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해보십시오. 말씀의 은혜가 꺼져보십시오. 그러면 기름 떨어진 자동차처럼 모든 것이 다 안돌아갑니다. 그런데 내가 무슨 화수분입니까? 우리 집사람은 내가 공부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있는 것만 가지고 해도 죽을 때까지 할 텐데 무엇을 더하느냐고 그러는데 그것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니까 과대평가를 해서 그런 것이지 내가 무엇이 있냐? 만날 지하로 내려가서 꺼내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런 몸부림 속에서 이 어두운 시대에서 선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학생이 저에게 글을 보냈는데 ‘목사님! 주위에 많은 목사님들이 열린 교회가 특수목회교회라고 그럽니다.’ ‘우리가 다 장애인이냐? 특수목회라고 그러느냐?’ 어떻게 보면 우리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꿈을 꿉니다. 이런 것들이 많은 교회를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내가 목포로 이사 갑니다.’ 그럴 때 ‘그러면 아무개의 그 교회를 가라. 여기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고 여기에서 내가 가르친 사람이다. 거기에 가면 참 진리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교회들이 도처에 서기를 나는 너무나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마지막 비전 같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위해서 내가 마지막까지 한 15년 헌신하고 그 다음에 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세우고 그 다음에 신학전문 도서관을 만들고 그리고 월요일마다 내가 가르치는 이 일들을 신학대학원이 생길 때까지 열심히 해서 그 학생들을 경건과 학문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그런 학생들로 세워서 그래서 당신네 나라를 위해서 정말 신학적인 목회를 할 수 있는 그런 교회로 세워가는 것, 그런 아름다운 교회를 세운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변하겠습니까? 그게 우리가 마지막에 남겨야할 유산입니다. 저는 무슨 교회의 성장에 야망을 품은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것 없습니다. 지금 교회도 내가 감당하기 너무 큰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아까 식사하면서도 이야기했지만 금년에 하나님이 많은 영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변화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개혁신학은 절대 우리나라에서 그것 가지고 목회를 하다가는 목회에 죽을 쑨다고 그러던 사람들이 비난을 받을 때마다 그럼 열린 교회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니까 그랬더니 나오는 이야기가 그것은 특수한 예라고 하면서 아무도 따라서 하려고 하지 마라.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열린 교회를 세워놓으시고 사실 여러 가지 많은 시련 속에서 이제까지 우리 교회를 섬기게 하신 그것은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지만 진리가 살아있는 목회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기위해서 우리 교회를 세우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런 진리를 사모하고 올바르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베풀면서 섬기면서 가려고할 때 하나님의 빛들이 더 드러나게 될 것이고 여러분은 이제 임직을 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러한 사역에 말하자면 핵심부로 깊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안수집사 되시는 분들은 아마 이제 임직을 하면서 아마 중요한 핵심부 속으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 속에서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그러면서 사역을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권사님들은 하다못해 식당에서 밥그릇을 씻어도 마음속에서 나의 이 주방에서의 섬김이 이러한 원대한 계획을 돌리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다면 우리가 잠시 주님을 섬기고 갔을 때 정말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의 1/5밖에 못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12시까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렇게 전체적으로 들을 기회가 여러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한 번 더 시간이 있다고 하니까 그때는 좀 더 시간을 넉넉히 갖고 여기서 똑같이 같이 식사하면서 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