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집에 심기라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시 92:12-13)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시편 92편은 전형적인 찬송시입니다. 표제에 보면 안식일에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안식일마다 성전에서 아침 제사를 올리며 불렀던 노래로 여겨집니다. 92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성도의 행복과 악인들의 비참한 처지를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풀처럼 자라고 흥한 것 같아도 결국은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 관계 속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이며 억눌리는 것 같으나 번영할 것이고, 핍박받는 것 같으나 승리할 것을 여기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II. 여호와의 집에 심겼는가
그러면서 시인은 의인은 종려나무와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여호와의 집에 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뜰에서 언제까지나 번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성도가 성도가 아니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 뜰만 밟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력하게 탄핵하며 그들의 불신앙적인 삶을 규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뜰만 밟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 심겼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의 아름다운 영적 성장의 모습은 여호와의 집에 심겨진 언약 백성을 가리키는 묘사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여호와의 집에 심겼습니까?
A. ‘심겼다’는 의미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심겼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생명이 없는 나무를 깎아서 콘크리트로 버무려 땅에 깊이 박아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견고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인이 이 노래를 지을 때에 마음속에 있었던 그림은 울창한 숲속입니다. 거기에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찌르듯이 자라고 그 나무 높이만큼 자신의 뿌리를 깊이 박아 양분을 빨아들이는 생명의 역사 속에서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묘목으로 심겨질 때에는 발로 한번 걷어차면 쓰러질 아무것도 아닌 작은 나무에 불과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는 점점 튼튼한 나무가 되고 견고한 나무가 되어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이 있는 나무에만 심겼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고, 심긴 정도가 굳건하고 튼튼할 때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게 심겼다고 말합니다. 뿌리는 드러나지 않게 땅에 감추어져 있고, 줄기와 가지는 땅 위에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뿌리와 보이는 나무 사이에는 생명의 교통이 이루어져 있고, 뿌리 없이는 줄기와 가지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 나무가 하늘 높이 뻗어 광합성 작용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감당해 나갈 때에만 뿌리도 생명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무는 독특한 생명체가 되어서 구분될 수 없는 하나의 몸으로써 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교회를 산에 비유한다면 이 산에는 크고 작은 많은 나무들이 심겨져 있습니다. 큰 나무들과 작은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숲을 이루며 동산 전체를 뿌리로 휘감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연합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거목도 한 때는 묘목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묘목들은 큰 많은 나무들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울창한 숲을 이루어 갑니다. 그래서 나무 전체가 숲으로 뒤덮이게 되고, 그 속에서 나무들은 더욱더 아름다운 산을 만들어 갑니다. 나무가 어렸을 때에는 산의 신세를 지지만 산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난 후에는 오히려 나무로 인해 산이 혜택을 받게 됩니다.
B. 걸친 교회생활과 심긴 교회생활
여러분의 교회 생활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 생활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심겨 졌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걸친 교회생활과 심긴 교회생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있다고 해서 모두 그리스도의 교회에 심긴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없이 걸치고 있는 것을 심겨진 교회 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교회의 출석을 얼마나 오래 했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애 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은혜로운 회심을 경험한 사람도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잠시 흔들리며 교회를 떠나는가 하면, 오래도록 교회에 다녔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깊이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남의 교회처럼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겨진 사람들이 아니라 걸쳐진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해 마음을 바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자신의 몸처럼 여기며 봉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걸친 교회 생활을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나무의 겉모습이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뿌리가 흙에 깊이 박히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작은 나무라 할지라도 뿌리가 땅에 깊이 박혀있으면 끊임없이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만, 아무리 큰 아름드리나무라 할지라도 뿌리가 뽑히고 쓰러져 버리면 처음에는 우람한 나무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썩어가고 잎과 많은 가지들도 시들어 검불이 되어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에서 보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마당을 밟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심긴 것이 아니라 걸쳐진 교회 생활로 매주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헬스클럽에 가입하고 동호회의 회원이 되듯이 자기의 종교적인 유익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한도 안에서만 그 교회에 다닙니다.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필요가 생기면 교회를 그만 둘 수도 있고, 심지어는 신앙생활도 더욱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마음이 준비된 사람들은 결코 교회에 심겼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열린 교회가 세워진지 19년이 지났고, 하나님께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 보내주셨습니다. 요즘도 1년이면 약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교회에 등록을 합니다. 그 중 절반만 교회에 정착하고. 절반은 이사를 가고, 이민을 가기도 하지만 그 중의 어떤 사람들은 생각 없이 교회 생활하다가 생각 없이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다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는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교회 출석하는 것이 신앙의 연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걸쳐 있는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교회에 심겨진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신앙의 연조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보이는 교회 속에서 실현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보이는 교회의 지평 속에서 사랑하는 지체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게 하심으로써 입증하도록 경륜하셨습니다. 그러나 걸친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많이 흘러도 신앙의 성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뿌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에 박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뿌리가 교회에 심긴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입니까? 지금은 비록 그들의 신앙이 어려도 그리스도께 뿌리를 박고 하나님의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처럼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며 날마다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면 주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갑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지만 여러분의 공로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한 이유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관계를 맺으며 그 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신 거룩한 희생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를 여러분의 신앙의 성장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여러분은 헤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되었고, 교회의 성장은 여러분의 성장이며 교회가 영적으로 주님 앞에 온전하여 가는 만큼 여러분도 성례전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생활은 바로 이런 교회 생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교회의 일원이 되기 전에 진리와 성령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이 되었고, 그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시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주신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몸인 교회에 부어주신 사랑에 참여하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의 한 몸이 됨으로써 여러분이 그 사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구원받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여러분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주님이 교회를 향해 베푸시는 크신 은혜와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어느 한 지체의 기쁨을 보시며 함께 기뻐하시고 한 지체의 아픔과 고통을 보시며 함께 아파하시는 것처럼, 여러분도 지체가 기쁨을 누릴 때에 함께 기뻐하고 고통을 받을 때에 함께 고통을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몸에서 한 지체로서 심겨감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III. 심긴 교회생활에 복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생활을 걸쳐서 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기회주의적으로 이 교회, 저 교회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참된 신앙의 고향이 있을 수 없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고백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심긴 교회 생활에 복을 주십니다.
A. 두가지 방식의 늙음
하나님의 자녀들이 늙어가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동물의 늙음입니다. 동물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늙어갑니다. 그 늙음의 모습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모두 비참하고 가엾습니다. 한창 때에 인간은 젊음을 구가하게 되고, 육체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그들은 꾸미지 않아도 예쁘고, 육체는 힘과 활기에 넘칩니다. 그러나 올라온 정점이 있으면 그 정점은 다시 내려가는 길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늙어가기 시작하고 늙어가면서 젊은 날의 아름다운 생명의 완전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아름답던 자매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검은 머리를 자랑하던 청년들의 머리는 하얀 색깔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너무 많이 늙게 되면 이제 눈도 어두워 볼 수 없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부자유함을 경험하게 되고 이어서 노환에라도 걸리게 되면 추한 모습은 이루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아프리카 밀림의 사자들을 다룬 특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치열한 싸움을 통해서 왕으로 등극하는 사자는 오직 단 하나 뿐입니다. 하나의 사자만이 암사자들을 거느리고 자식들을 번식시키고 자신의 무리들을 통솔합니다. 법과 원칙을 세워서 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게 만드는 왕과 같은 통치력을 그가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한창 젊음을 구가하던 나이에는 왕권을 누리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 젊음의 기력이 쇠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때 수많은 젊은 사자들이 그 왕권에 도전합니다. 그러나 만약 도전하는 젊은 사자들을 보기 좋게 제압하고 그 중 몇 놈의 목을 물어뜯어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고 그들을 제압할 수 있으면 한동안 그의 왕권은 유지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런 일에 실패하고 젊은 사자에게 물려 피를 흘리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면 그는 당장 왕위에서 쫓겨나게 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 영원히 추방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동물의 세계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동물들은 정말 추해지고 생명이 넘치던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추해집니다.
그래서 할리우드 스타들 가운데 많은 젊은 여자들이 젊을 적에 영화에 출연했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일체의 매스컴에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스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돈도 벌 만큼 벌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젊은 날의 아름다운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의 가슴에 영원히 그 이미지만을 남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늙은 날의 추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젊은 날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도 늙음에 종속됩니다. 세월은 흐를 것이고, 우리는 점점 늙어갑니다. 우리의 머리는 점점 하얗게 변해갈 것이고, 눈은 점점 침침하여 볼 수 없게 되고, 얼굴에는 수많은 주름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급기야 우리는 행동도 부자연스럽게 되고,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걸어 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이고, 나이가 더 많이 들어서는 어쩌면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정신이 혼미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의 늙음입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나무의 늙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10년, 20년 된 나무들은 울창한 밀림 속에서 명함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00년, 200년, 300년, 400년, 500년, 600년, 심지어 1000년, 2000년, 3000년이나 된 나무들이 밀림을 가득 채우고,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며 산을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해 전 메타세콰이어 숲을 이루고 있는 미국의 공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천년, 이천년, 심지어는 삼천 이백년까지 된 나무들이 산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자이언트 메타세콰이어 숲이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나 자신이 아주 왜소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숲속에서 받지 못했던 그런 느낌을 그 어마어마한 나무들을 보면서 배우게 됩니다. 세월은 그들에게 늙음을 재촉한 것이 아니라 장엄함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위대함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동물의 늙음이 아니라 식물의 늙음이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성도의 나이 듦이 바로 이렇게 백향목과 종려나무와 같이 우람한 나무가 되어서 세월이 흐를수록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사모해야 할 아름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나이 드신 어떤 분들은 아마 한번쯤은 거울을 보면서 늙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우리의 육체의 젊음이 덧없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심하면 거울에 있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이것이 어디 불신자들만의 경험이겠습니까?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육체로 늙어가는 것이 정말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렇게 늙어가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육체를 보는 대신 우리의 속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도록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는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라고 말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입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육체는 여전히 세월의 흐름에 종속되기 때문에 완전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생명으로부터 멀어져 늙어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동물과 같은 늙음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식물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답고 견고하고 장엄하게 하나님 앞에 세워져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늙어가기를 원하고 계실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동물처럼 늙어가기를 원하실까요? 여러분이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추한 사람들이 되어서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아주 불결하고 더러운 사람이 되어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고 계실까요? 육체의 늙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것이고, 한번 우리의 육체가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성령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강건한 사람으로 자라가도록 만들고 계십니다. 겉사람은 날마다 후패하나 우리는 겉사람에 마음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체는 잠시 있다가 벗어버릴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완성의 날에 우리는 새로운 우리의 몸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죽음과 늙음과 노쇠함에 종속되지 않는 성성한 몸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Powerful한 몸이 될 것이고, 우리의 생명으로 충만한 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꿈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꿈꿉니다. 우리의 육체는 날마다 쇠약해져가고, 종종 우리는 질병에 걸려 눕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죽음 저편으로 떠나가서 우리의 성도들과 이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사망이나 깊음이나 높음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단코 끊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환란과 시련, 고난과 위기, 죄와 고통이 수시로 우리를 엄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매일 아침마다 깨닫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은총이 깃드는 것을 경험합니다.
(찬양)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무엇 때문입니까? 왜 하나님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죄와 유혹 속에서도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에게 어떤 자랑할 만 것이 있기 때문에 그 분이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없으면 그 분에게 무슨 커다란 손해라도 나기 때문에 우리를 아끼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은 당신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 부어지고 우리는 교회에 심겨져 있기 때문에 당신의 아름다운 교회에 내리시는 은혜와 축복의 단비를 우리도 빨아들이며 은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함과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 당신의 몸인 교회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의 혜택을 입으며 아버지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주간 동안 신앙에서 물러나고 기도에서 멀어져 어디에도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다가, 주일에 이곳에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 속에서, 성도들과 함께 하는 교제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나 같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세상 사랑에 어두워졌던 눈의 비늘이 벗겨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돌덩이처럼 굳었던 나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피 묻은 손으로 어루만지시는 것을 경험하고 얼음 같은 내 마음이 녹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됩니다. “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내가 비록 주님을 멀리 떠났고 은혜에서 멀어졌으나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한 마리의 어린양에 불과합니다. 오, 주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노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심겨진 성도의 신앙생활입니다. 내가 넘어졌을 때 사랑하는 성도들이 나를 붙잡아 일으켜 세워 주님 앞에 살게 하였던 것처럼 나도 오늘 넘어지는 사랑하는 지체들을 흉보지 않고 자비의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켜줄 마음을 갖게 됩니다.
종종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회상하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찬송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교회의 한 지체로서 하나님께 받았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여러분에게 교회는 무엇입니까? 정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당신의 교회를 통해 보여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종종 인간의 부도덕과 죄와 여러 가지 나쁜 것들이 악취를 풍기기는 하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고 교회에 묻어두신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교회의 아름다움, 교회에 위탁한 진리, 교회에서 그리스도와 맺은 아름다운 성도들의 연합은 그러한 불결하고 추한 것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아직 교회에 깊이 묻혀있고,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고, 삶으로써 그것을 보여주면 더욱 풍성하게 드러나 많은 사람들을 눈부시게 하여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자원들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교회에 걸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누려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에 심겨진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수받아 교회의 아름다운 유산들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교회는 나의 신앙생활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한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종종 가정으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는 나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습니다. 도대체 가족들이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가족은 무엇을 해주기 위해서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자체가 사랑의 연합이고 하나님이 주신 운명입니다.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 가족이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가족인 그 자체가 운명이고, 그 자체가 명령이고, 그 자체가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용서할 수 없는 가족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그렇게 자기의 가족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세우는 뼈아픈 과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도 하나님의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운명이고, 그렇게 교회의 한 몸으로 심겨진 가운데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의 한 지체로서 온전해져 가고 주님의 교회를 온전케 되어 가는 도구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B. 교회생활을 오래 할 때
교회 생활을 오래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몸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심겨져 있을 때에만 오랜 교회 생활은 연륜이 되고, 신앙의 전통이 되어서 그를 커다란 거목과 같은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물론 교회는 눈에 보이는 하나하나의 지역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인 보편 교회이고, 온 세계에 흩어진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의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한 교회의 몸에 접붙여져 있기 때문에 피부색이 다르고, 나라가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그들과 모두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주에 농어촌 지역으로 가서 아웃리치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그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여러분은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질 우리의 한 가족이 될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접붙여진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회심과 거듭남 없이는 누구도 교회에 심겨진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결코 거듭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몸이 있고 몸에 붙어 있는 부속적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손에는 손톱이 있는데 계속 자랍니다. 그럼 우리는 손톱을 자릅니다. 잘라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은 손톱일 뿐이지 우리의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오래도록 걸어서 우리의 발뒤꿈치에 굳은살이 생깁니다. 그러면 우리는 돌멩이로 문질러 벗겨내기도 하고 때로는 칼로 닦아내기도 합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 굳은살은 우리의 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이 되기 위해서는 손톱이나 발톱, 굳은살처럼 신경과 핏줄이 없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신경과 핏줄이 흘러 몸 전체의 대사 작용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진실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교회의 몸은 몸인데 아마 손톱이나 발톱, 굳은살 정도가 될 것이지 진정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아직 회심하지 않았다면 교회에 나오는 유익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실한 신앙으로 거듭나 예수의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졌다면 여러분은 날마다 죄와 싸우고 특별히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예배와 기도를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으며 아침마다 새로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로 자라가야 합니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여러분은 낙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련과 고난의 바람이 불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을 굳게 붙들고 계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이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굳게 붙들려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환란을 만납니다. 혹은 사랑하는 내 가족이 나를 신앙의 이유 때문에 핍박합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을 지키며 살려고 할 때에 세상 속에서 때로는 외톨이가 되고 내가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낙담하고 좌절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련과 고난을 당하고 아플 적마다 우리는 사람을 찾는 대신 그리스도 예수의 보좌 앞에 나아옵니다. 거기에서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내가 닥친 시련과 고난 속에서 예수가 당하셨던 끔찍한 고난과 시련을 생각하면서 나의 고통과 아픔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에 투사하고 예수 죽인 것을 우리의 몸에 짊어지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픈 고난과 핍박,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열렬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찾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 분을 갈망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초점이 하나님 한 분께 모아지게 되어서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우리 주만 바라보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혔던 수많은 상념들과 복잡한 정신들이 정돈이 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나,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세상에 이루고자 하시는 거룩한 소명에 우리의 마음이 불타게 하십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다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오르게 되고, 우리의 정신은 또렷하게 하나의 초점을 향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교회를 통해 주시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사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명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주님을 위해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이런 많은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꿋꿋해지는 법을 터득하게 되고,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경건을 함양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신앙생활은 우리가 교회에 오래 몸담고 주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웬만한 사상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이 되고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주님의 생명이 넘쳐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정말 그리스도의 교회에 심겨진 사람들입니까? 여러분은 교회를 돌아보면서 지체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계십니까? 형제의 고통을 나의 고통이라고 느끼며, 형제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인 것처럼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고 노래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믿지만 견고한 신앙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주님께로부터 멀리 떠났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동안을 경주해야 하는 장거리 달리기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치밀어 오르는 한 순간의 열정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 깊이 뿌리를 박아 고난과 슬픔, 시련과 아픔을 모두 이기는 견고한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몇 달 전 인천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차 한 대가 잘못 정차해 있는 바람에 차들이 그 차를 피하기 위해 운전하다가 다른 차들과 부딪치면서 아홉 명이 즉석에서 목숨을 잃은 끔찍한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 미국에 있는 어느 신학교의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이번에 그 학교를 방문했고, 거기에 있는 학생으로부터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교수님은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서 미국으로 후송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의 경건한 부인이 보인 태도가 저에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남편이 절명에 가까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마 과격한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해주었던 학교 직원의 말을 듣고 부인은 조용히 오히려 자기에게 소식을 전해준 사람을 위로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슬프지만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큰 섭리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놀라운 평정이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지금 그 교수님은 가만히 누워 계시고 의식만 약간 돌아온 상태라고 합니다. 저는 그 놀라운 평화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기도 많이 하는 것처럼 폴짝 폴짝하는 그리스도인들, 자기 혼자 교회를 섬기는 것같이 자기를 내세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뿌리 없음과 너무나 비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하였습니다. ‘나의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내가 과연 저런 평정을 유지하며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 라고 말입니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결코 없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에 깊이 심겨져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의 기운을 빨아먹고, 흔들리지 않는 거목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 간다면 이 세상의 무엇도 여러분을 흔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신앙의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같이 믿음이 적은 사람들도 시련과 환란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고난과 박해 속에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굳게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요즘 신학생들을 위한 책을 한권 쓰고 있습니다. 쓰면서 예전에 주님을 섬기며 신앙생활 했던 개인적인 간증들을 쓰게 돼서 자주 옛날을 회상하게 됩니다. 쓸 때마다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고생인줄 몰랐는데 정말 고생이었고, 그런 속에서도 하나님 의지하며 살게끔 만들어 주셨습니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 혹은 외롭게 버려진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붙들며 신앙생활을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눈에 보이는 어떤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시련과 박해는 나에게 오히려 생명을 불러 일으켜 주었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도망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에 익숙해지고 나니까 어떤 때에는 시련과 고난이 오면 은근히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시련과 고난이 많으면 하나님이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실 것을 미리 알려주시는 하나의 조짐이었기 때문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저는 19년 동안 여러분과 함께 이 교회에서 믿음생활 해 왔습니다. 남 보기에는 평안하고 행복한 것 같았지만 항상 즐겁기만은 않았습니다. 살을 에는 것 같은 고통의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한동안 하나님께 나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힘과 은혜를 주셔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런 힘을 주셨을까요? 돈, 명예, 물질, 나에 대한 좋은 평판, 인기,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즐겁고 좋은 날에는 친구들도 많이 있는 것 같지만, 정말 고난과 시련이 겹치는 날에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홀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약하나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강하시기 때문에, 약할 때 힘을 주시고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신실하게 저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목자인 동시에 여러분과 똑같은 그리스도 예수 안의 한 형제로서,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약할 때마다 예수의 생명의 진액을 먹고 새 힘을 얻게 된 것처럼 저도 똑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이 힘과 은혜를 주셔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하셨고,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면서 예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워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픈데도 즐겁습니다. 쾌락적인 일종의 고통입니다.
그래서 시련과 고난은 우리들이 당하나 이길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리스도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시련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말합니다. 예수를 찾으십시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에 심겨졌고, 아직 알지 못하는 크고 넓은 예수의 생명에 접붙여져 있습니다. 그 진액을 빨아 당기십시오. 마음을 비우고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여러분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은혜를 달라고,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선택받은 언약의 백성들이니 주님이 여러분을 버리실 리가 없다는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버리지 않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 없는 많은 성도들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저도 여러분을 위해 빕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울창한 숲에 아름드리나무로 굳게 서서 숲속에 함께 있는 어린 나무들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거목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무 아저씨, 당신 이렇게 거목이 된 것은 틀림없이 좋은 날씨와 풍부한 비료와 당신을 변함없이 돌보는 산 아저씨 도움이죠?”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그 나무는 대답할 것입니다. “아니란다. 나도 묘목이었던 적이 있었고, 작은 나무였던 적이 있었고, 큰 나무였던 적이 있단다. 폭풍과 비바람, 그리고 번개와 낙뢰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종종 나의 가지를 부러뜨리기도 하고 저항할 수 없는 큰 힘으로 폭풍이 몰아칠 때면 나도 흔들리기도 했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큰 생명의 힘을 뿌리가 나에게 공급해 주었고, 뿌리가 흔들리지 않고 굳게 있는 동안 간혹 시련과 폭풍에 바람을 만나고 벼락도 맞았지만 드디어 나는 이렇게 거목이 되었단다.” 라고 말입니다.
IV. 결론
우리 주님이 바로 그런 삶을 사시지 않았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신 분이었고 모든 능력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 때문에 시련이 없는 삶을 사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죄와 유혹만을 제외하고 우리들이 겪는 모든 고난과 괴로움을 경험하시고, 모든 약한 것과 모든 결핍을 함께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승리하셨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 때문에 그 분은 이기셨던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과일이 있습니다. 블루베리입니다. 블루베리는 두 종류가 있는데, 큰 농장을 만들어서 기르는 블루베리가 있고 야생에서 그냥 자라는 블루베리가 있습니다. 농장에서 기르는 블루베리는 크고 정말 큰 것은 작은 포도 알갱이만 합니다. 그런데 야생에서 기르는 블루베리는 작고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야생 블루베리는 시력을 강화하는데도 좋고 항암식품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먹을 식품을 열 개만 남겨 놓으라고 하면 그 안에 들어가는 식품입니다. 야생 블루베리는 농장에서 기르는 블루베리보다 항암성분이 다섯배나 높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습니다. 형통하고 모든 것이 잘 되가는 것만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농장에서 기른 블루베리입니다. 시련과 고난, 괴로움 속에서도 예수를 굳게 붙들고 주님이 생사 간에 아버지 한 분을 바라보고 사셨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굳게 붙들고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야생 블루베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속에 예수의 생명이 가득차서 여러분이 어디에 가든지, 어디서 섬기든지 그곳에서 예수의 생명이 충만하게 나타나도록 만든 도구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그리스도의 교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