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집에 깃들게 하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시 84:3)
녹취자 : 김미현
어느 시대인지는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다윗시대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장막이라는 히브리말로 ‘오헬’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한동안 성막이 성전의 역할을 계속하게 되는데 그런 속에서 이 시인이 하나님의 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집을 아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그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성막 시대부터 하나님이 주신 그 성소가, 성전이 후에는 성전이 그리고 성막이 모든 자신의 종교생활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모든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위기가 있을 때만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던 것이 아니라 한나와 같이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있을 때에도 성소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원통한 마음을 털어놓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이었습니다.
이 고라의 자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간절히 호소하고 또 그러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은 하나님의 집의 너그러움입니다. ‘참새도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성막에 참새가 집을 짓고, 제비가 거기에 깃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의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참새는 아주 가장 가치가 없는 피조물 중의 하나로 묘사가 됩니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에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할 때에 이것은 하나의 문학적인 묘사로서 ‘아주 가치 없는 피조물이라도 주님의 집에서는 존귀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대상이 된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이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지만 그 자비와 사랑은 아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공동체가 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은 아니지만 건물이 없이는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의 모임이 어렵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성도의 교통에 대한 우리의 많은 기억에 남는 추억들은 보이는 장소와 건물과 떼어놓을 수 없도록 연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중에서도 가보신 분이 있지만 몇 년 전까지 저는 1~2년에 한 번씩 옛날 방배동 지하 예배당에 갔었습니다. 직원들하고도 가고 때로는 교역자들하고도 가고 이렇게 가서 우리가 쓰던 예배당이 다른 교회도 들어와 있고 구조도 많이 바뀌어 있지만 가서 이 장소를 이렇게 돌아보면서 많은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여기는 누가 회심을 했던 자리인데, 강대가 여기 있었지, 이 교회 개척할 때 나도 30대였는데 그리고 그 때 이 예배당을 고치고 수리할 때 누가 참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러던 기억들이 항상 장소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결국은 건물복구위원회에서 별관을 허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말할 수 없이 감회가 새롭고 할 수 있으면 안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열린 공간 들어갈 때마다 거기에 서렸던 추억, 서점에 들어갈 때마다 벌써 여러 명의 간사들이 바뀌었지만 그런 기억들, 만들 때부터 오고 간 많은 추억들, 이런 것들이 스치듯 지나가고 그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까 마음 한 편이 그렇게 아릴 수가 없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떠다가 어디 다른 곳에다 보관하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왜 드리느냐 하면 결국은 눈에 보이는 교회의 건물이나 장소는 본질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성도의 교통과 보이는 교제는 보이는 건물, 보이는 장소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간절한 소원은 이렇게 비록 성막이었던 시대에도 이 사람 시인이 이렇게 하나님의 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은 건물의 크기나 건물의 영광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나누는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성도들과의 교통,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교회 건물을 복구하면서도 이 건물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그러나 또 안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정말 함께해주시도록 그래서 새로 복구되는 그 건물 속에서는 지금은 우리들이 이름도 알 수 없는 미래의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주님을 만나고 이 예배당에 쌓였던 그 많은 추억들을 다시 한 번 재연하게 되는 그런 하나님과의 뜨거움, 기도한다면 분명 지어져가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깊어지고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