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울림 4장
녹취자 : 김세나
제 4장 하나님의 보물
국내의 한 대기업이 유명 여배우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33캐럿짜리의 다이아몬드를 100억 원에 구입하였습니다. 다이아몬드는 크기, 투명도, 색깔, 커팅, 이른바 4C에 의해서 등급이 매겨집니다. 그것을 소유한 주인의 유명세까지 더하여지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그 다이아몬드를 사다가 호두를 깨뜨리는데 사용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내어주신 이”(로마서 8장 32절)라고 말합니다.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 자녀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절의 의미
신자의 네 번째 정체성은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란 구절은 헬라어 성경에서 “laoV eiV peripoihsin”(라오스 에이스 페리포이에신)이라고 나옵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신명기 7장 6절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기에서 “자기 기업의 백성”은 히브리어 성경에 “סְגֻלָּ֔ה(세굴라) לְעַ֣ם(레암)”(레암 세굴라)라고 나오는데 ‘레’는 ‘어디서’, ‘어디로’ ‘무엇을 위하여’ ‘무엇이 되다’ 할 때 쓰이는 전치사이고, ‘암’은 ‘백성’을 가리킵니다. 흥미로운 점은 “סְגֻלָּ֔ה”(세굴라)라는 분사가 ‘감추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사갈’에서 옵니다. 여기에서 온 여성 피동 명사 단수 분사입니다. 이것의 원래의 뜻은 ‘감추어 진 것’ 혹은 ‘숨겨진 것’이란 뜻입니다. 사람들은 아끼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을 숨겨둡니다. 킹 제임스 버전은 말라기 3장 17절에서 이 단어를 ‘나의 보석’, ‘my jewels’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너무나 소중해서 자랑하고 싶을 때 잠깐 보였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간직하는 것이 보물입니다. 이것이 누군가의 소유나 재산을 의미하는 “peripoihsin”(페리포이에신)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peripoihsin”(페리포이에신)이 ‘백성’이라는 의미의 “laoV”(라오스)와 ‘속으로’의 의미인 “eiV”(에이스)가 결합하여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소유 속으로 들어가는 백성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모든 표현들을 통해서 사도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종말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더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될 보물 같은 백성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주께 보물 같은 백성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보물 같은 백성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져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가 소중한 것처럼 우리가 그 분께 접붙여져서 하나님 앞에 소중한 보물같은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신앙생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합니다. 또 진리와 성령으로 아름다운 영혼으로 살아가면서 성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 앞에 사랑스런 존재가 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크게 패배하였지만 여전히 사단의 세력들이 존재하고 이 세상에도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종말에는 이 모든 것이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세력들을 파멸하실 것이고 끝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 받을 것입니다. 그때가 오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더욱이 이 자연의 세계 속에 맺힌 하나님의 저주가 완전히 풀릴 때 이 자연의 세계도 일찍이 인류가 본적이 없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존재입니다. 모든 불결하지 않은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들이 사라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인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만드실 때에 창조하셨던 그러한 순결한 인간일 뿐 아니라 그들은 미처 경험하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놀라운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실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성도는 바로 그 완성의 나라를 바라보며 인내하며 믿음으로 인생을 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를 선포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 안에서 자신들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도록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자꾸 끊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시련이 엄습하고 고난이 겹칠 때 시편의 저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자신도 때로는 낙심합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다 하였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는가.”라고 묻습니다. 비록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시련의 연속입니다. 믿음으로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기쁨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종종 그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서 멀어질 때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과 은혜에 대한 감각도 함께 희미해집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적인 침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영적인 침체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종종 끊어집니다. 이어지지 못한 멜로디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노래는 종종 마디마디 끊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될 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노래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분으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의 질서에 항거하는 모든 세력들은 파멸될 것이고 그리고 우리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사랑의 질서 속에 살아가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며 서로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부르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운명을 가진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소중하시기 때문에 몰래 감추어둔 보물처럼 여기십니다. 주인의 마음은 보물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복음 6장 21절)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소중한 보물과 같지만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그 보물의 원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신자가 이 세상에서 만나는 시련과 고통, 핍박과 환란,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사입니다. 하나님은 이것들을 사용하셔서 원석과 같은 여러분들을 깎고 다듬으셔서 마지막에는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신자의 삶은 이렇게 우리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보물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그 분의 섭리를 믿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 놓여있든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며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결국에는 그 분의 뜻을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그 선하심 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교회의 아름다움
이처럼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실 때 거룩한 나라로 불러 이방을 위한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신약의 교회를 불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존재로 삼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교회’라는 공동체에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듯이 또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들을 향하여 그러한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교회라고 하는 영적인 공동체와 공동체의 거룩함은 결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거룩한 사람인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를 이미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게 된 자들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첫 번째 거룩함은 주님 홀로 주신 거룩함이지만 두 번째 거룩함은 당신의 자녀들이 공동체적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감으로서 그 거룩함을 이루어 가도록 부르셨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자기의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을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너희”라고 하는 한 개인이 아니라 흩어진 모든 교회의 영적인 연합을 이루는 보편교회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쓴 서신 뒤편에서 신자 개인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경건한 삶이 교회 전체를 거룩하게 하는데 얼마나 유용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교회는 진리와 성령으로서 아름다워집니다. 이 교회의 아름다움은 또한 거기에 접붙여져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기어 사랑해 주심으로써 그 아름다움은 증진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그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관계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단독이나 독립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피조 만물 위에 홀로 뛰어나 독립하심으로 아름다우실 뿐이시지만 그러한 독립의 아름다움은 하나님 한분의 아름다움입니다. 나머지 모든 만물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많은 사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아름답게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가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완전한 하나님의 위격이시지만 서로를 사랑하심으로 삼위하나님은 곧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은 모든 만물위에 충만한 생명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으로 종말까지 하나님의 교회를 보존하시고 사랑하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복음적인 교회가 영원한 것이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교회를 버릴 수 없으십니까. 왜 이 세상의 수많은 박해와 핍박, 시련과 환란이 와도 교회는 파괴될 수 없습니까.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교회는 파괴될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연합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삼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마치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아끼시고 그 아들 안에서 당신의 형상을 보십니다. 그리고 아들을 사랑하시고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한 성령 안에서 삼위 하나님의 사랑은 날마다 무한하게 솟아나는 사랑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때문에 이 세계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그 놀라운 사랑을 부어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그 사랑을 그리스도의 교회에 부으십니다. 하나님에게 당신의 아들이 사랑스러우신 것처럼 또한 그 아들의 신부인 교회는 하나님에게 소중한 보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한 없이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교회의 신랑으로서 또한 이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결국 한 사람의 신자가 된다는 것은 영적으로 교회에 접붙여져 이 사랑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영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교회의 한 지체로서 이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함으로써 아무 가치 없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보물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추어두고 싶은 보물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이유 하나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보물과 같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교리적인 명제가 아닙니다. 은혜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랑을 매일 매일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신자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원리적으로만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질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연합되어 있을 때입니다. 이 연합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입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몸의 한 아름다운 지체로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받는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합니다. 이 사랑은 우리 개인의 삶을 놀랍게 바꾸어 줍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한 때에는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자원 없이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사랑은 충만한 생명이 되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불신자이던 시절에는 이러한 사랑이 무엇인지 이 생명이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던 채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자원이 우리가 갖은 전부였고 때로는 정신적인 것들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희미한 흔적을 학문이나 문학이나 예술 속에서 발견한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생명도 아니지만 그러한 생명의 기억을 희미하게 느낄 때 우리는 그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 아니지만 그러나 희미한 사랑을 느꼈을 때 이 세상이 어느 근원으로부터 오는지도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지고 나서 우리는 이러한 사랑과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에 참여하여 주님을 믿음으로 의존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이러한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생명을 충만하게 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교회는 얼마나 소중합니까. 아들이 그 분에게 소중한 것처럼 교회도 역시 소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것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을 우리를 위한 피 값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를 그 모든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노의 자식이었던 우리를 사랑받는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가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모두 당하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였듯이 사단은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자기의 세계가 처절하게 부수어진 후에야 하나님의 자녀들을 놓아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부분적으로 역사하여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사단의 세력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서 허리가 부러져 설설 기어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 사단의 세력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석과 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한번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 보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온 모든 좋은 것들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신자들에게 부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놀라운 사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만 그것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일이 이루어져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지체된 연합 안에서 일치하는 사랑과 교제를 누리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매순간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우리의 모든 삶의 섭리를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더욱이 시시때때로 우리의 영혼에 은혜를 내리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마음을 보여 주십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순전하지 못하고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기 때문에 종종 우리의 마음에 이러한 하나님의 탁월한 사랑에 대한 감각이 약해져서 침체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우리의 침체되었던 우리의 삶을 돌이키며 우리의 불순종과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교만해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종종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에게 매우 특별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주님이 그렇게 사랑하신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그 사랑에 감사해하지 못합니다. 마치 부모로부터 무엇인가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부모에 대한 감사함이 없이 사는 그릇된 자녀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그 모든 영광을 우리의 신부인 교회, 남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사실 이러한 교회론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아름다운 교회론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무지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의 아름다움은 짓밟히고 있습니다. 신자의 소명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지체들과 함께 하나님의 보물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고난과 시련, 박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입니다. 신자는 높은 신앙의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 자신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부이고 그 교회의 신랑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교회의 지체들을 보십시오. 그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인생의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연을 다 들어보고 그들이 누리는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소중한 보석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교회 속에서 이 모든 지체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유나 지위, 학식이나 외모, 남다른 재능 때문에 주눅이 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잠시 지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 감당할 수 없이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으며 그 분 앞에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가슴 벅찬 즐거움이 우리의 마음에 요동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보물과 같은 존재라는 자존심이야말로 이 어두운 세상을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비결입니다. 이 세상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신앙의 당당함, 그리고 존재의 울림을 들려주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러한 확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안 사람들은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는 바입니다. 우리들만 하나님 앞에 보물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복음을 전하여 아직까지 그 사랑 앞에 돌아오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자신이 그렇게 소중한 사람임을 기억하며 살기를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
우리는 모두 한 때 불신자였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불신자로 이 세상에 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아무렇게 굴리며 살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석과 같은 존재로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시시때때로 생각하는 주변의 사람들과의 비교의식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비굴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육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전혀 보석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나보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 나와는 비교될 수 없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 그리고 나와 비교될 수 없는 많은 물질을 소유한 사람, 사회적인 지위가 우리와 달랐고 그리고 그들 앞에서 우리가 보석과 같은 존재라고 느끼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보석과 같이 여겨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우리가 받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지자 우리는 예전에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의 충만함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충만한 사랑과 생명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러한 좋은 것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뼈 속 깊이 배인 우리의 모든 열등감과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보물과 같이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구원의 은택을 날마다 누리며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구원받은 이후에 이러한 구원의 은택을 얼마나 누리고 계십니까. 지금도 그리스도 예수와의 연합 속에서 그 충만한 은혜와 생명을 누리고 계십니까. 그 은혜와 생명으로서 시련과 고난을 이기고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마음이 듭니까. 불행히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생각은 땅에 꽂혀 있는 것 같습니다. 위를 바라보고 거룩한 하나님을 향하여 살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사랑을 이 세상에 있는 것들 속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구원해주신 놀라운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삶에 불만을 쏟아 놓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인하여 거룩한 나라가 되었듯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상처와 시련 속에 살았던 시인은 말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버릴지라도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보상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 드셔서 우리를 당신 앞에 보석과 같은 존재로 여겨 주셨을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어떻게 인도해 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시련을 당하거나 고난을 겪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여러분들을 보호하셨습니까. 그 폭풍의 시련 속에서 여러분들을 바위에 섬기시고 그 손으로 덮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주셔야 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과 사물들을 움직여 우리에게 주시는 섭리와 복을 영원을 직접 어루만져 우리에게 주시는 그 영적인 은혜와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어리석은 생각들은 신자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보물과 같은 존재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될 때 그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신앙도 흐릿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갖은 고귀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회적인 지휘나 가지고 있는 재산 유무에 의하여 그 사람들을 차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에 역행하는 행동임에는 분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누린들 완전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가 결코 행복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를 시련과 고난 속에 처하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만 마음을 고정하도록 만들어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짐승과 같은 나에게 말씀하심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였던 은혜의 세계에 대해 깨닫게 하십니다. 시련과 고통 속에서는 간절히 기도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생사 간에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이 하나님 한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간절한 기도 속에서 응답을 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말로만 듣던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 모든 시련과 고난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석과 같은 존재로 그 분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비로소 자신과 함께하는 하나님, 그 분께로부터 받는 놀라운 하늘나라의 사랑이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싫어서 버리고 싶은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그때 우리가 우리를 버리고 싶을 때조차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소중한 존재로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온전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이렇게 보석과 같은 존재들이니 이 사랑을 힘입어 이 어두운 세상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대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서 우렁찬 선포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즉, 우리 자신이 좋은 방식대로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올바른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이 버거워 우리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몰랐을 때였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시며 당신의 마음에 품은 보물처럼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품은 놀라운 사랑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셨는데 그때가 바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듣고 회심하였을 때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 전부터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우리의 인생을 움직이는 역동적인 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응답한 때부터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보석과 같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의 인생의 변화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서 못 박아 구원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대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보통의 사랑 가지고 하실 수 있는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였으면 그렇게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못 박으면서 까지도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셨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소중한 보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