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1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눅20:9-12)
“이 비유로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예수님께서 하루는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그랬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또 예수님의 들리는 그 음성을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르친 것은 매우 힘 있게 가르쳐 백성들이 그 가르침에 대해서 깊이 경의를 표하니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가르칠 수 있는가? 그렇게 물었더니 그 권세를 당신에게 준 사람이 누구요, 우리에게 말하십시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 내가 대답을 할 텐데 내가 한 가지 묻겠으니 그것에 대해서 답을 해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누가 권세를 주어서 내가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는지 너희에게 밝히 말하겠다. 그러면서 물으신 질문이 무엇인가하면 세례 요한이 준 세례가 하늘로서 온 것인가, 사람에게서 온 것인가? 사람들이 가만히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하니까 만약에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러면 예수님이 분명히 그러면 너희들이 왜 세례 요한의 선포를 믿지 않는가. 더욱 전진되면 어떤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너희가 세례 요한의 선포를 믿으면 반드시 세례 요한이 오시리라고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인 나를 믿지 않겠는가. 이렇게 오히려 논리가 전개되니까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만약에 사람에게서라, 이렇게 말하면 수많은 백성들이 요한을 수백 년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참된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많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이 요한을 참된 선지자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다 사람의 일이라고 말한다면 선지자를 모욕하는 자들이라고 해서 백성들이 돌로 칠 것이다. 결국은 이렇게도 대답할 수 없고 저렇게도 대답할 수 없어서 우리는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나도 너희에게 가르쳐주지 않겠다. 그리고 지나가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오늘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제가 이사야 5장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했는데 많은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누가복음 20장에서 말씀하신 포도원의 비유가 바로 이사야 5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머리 속에 있는 그림은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서 선포된 그 포도원의 비유, 이것을 염두에 두시고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구약의 역사 모두를 관통하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를 드신 것이 바로 어제의 그 이야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농부들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포도원은 단지 포도만 심어놓은 밭이 아니라 포도나무도 있고 울타리도 두르고 망대도 있고 즙 짜는 틀도 있고 모든 도구를 거기에 버려두고 몸만 들어오면 거기서 포도를 딸 수 있고 또 즙 틀을 사용해서 그 수확한 포도를 포도주로 저장할 수도 있고 그리고 망대에 올라서 쉬기도 하고 또 포도원을 해치는 도적들과 여우들을 쫓아낼 수도 있는 그야말로 아무 노력 없이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서 한 사람의 농부에게 세를 주었다. 이것은 결국은 역사적으로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하면 이사야서에서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사건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셨던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너희가 만약에 내 말에 순종하면 너희가 심지 않은 포도나무 열매를 먹고 그리고 실과를 먹으며 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내가 너희를 인도하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가나안을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 것을 포도원을 만들어준 것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짓지 않은 집에 살았습니다. 저희들이 심지 않은 그 실과를 먹었고 자기들이 뿌리지 않은 씨앗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은 수많은 곡식들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유리하고 방황하던 백성들이 들어가기만 하면 생활할 수 있도록 완벽한 준비를 그 가나안에다가 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시간의 축복들, 우리가 이 일들을 위해서 우리가 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이 은혜의 자리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던 때 어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여셔서 우리에게 그 복음이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여 교회로 데려오게 하시고 그곳에서 우리는 공로 없지만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섬김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끌어주고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마음속에 영혼들을 향한 사랑과 연민을 갖게 하시고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서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주셔서 우리의 영혼을 돌보고 우리의 삶을 위해 기도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짓지 않은 집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었고 우리가 심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먹으며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지적하시고자 하신 말씀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놀라운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도 거저 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거저 준 것처럼 우리들에게 구원의 은총도 거저 주시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대가 없이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지만 하나님의 그 은혜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습니다.
오늘 이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그 포도원을 거저 준 것이 아니라 세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놓고 하나님이 받으시기를 원하셨던 그 세는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세를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까? 정말 포도열매를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까? 물론 하나님 앞에 곡식의 처음 난 것을 드리기도 하였고 또 짐승 중 가장 좋은 첫 새끼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그 과실이나 짐승의 첫 새끼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상징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의와 신의 열매입니다. 인애와 공평과 정의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기를 원하셨던 그 세는 눈에 보이는 그런 물건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삶 속에 맺히는 진정한 의의 열매, 그리고 믿음의 열매, 공평의 열매, 인애의 열매, 아가페의 열매 이런 열매를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거저 구원하셨지만 그러나 그 구원에는 분명한 계획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어제 기도원에 갔습니다. 그 기도원에는 수도간 옆에 나무가 하나 있는데 거치적거리는 나무인데 나를 기다리듯이 그 나무가 온통 노란 살구로 매달려있습니다. 그 살구를 따서 지하수 물에 깨끗이 씻어서 주셨는데 농약도 안 주고 기도원에서 신선한 공기를 먹고 자랐으니까 군데군데 벌레가 먹었는데도 깨끗이 씻어서 먹으니까 얼마나 맛있는지, 그리고 그 나무가 귀해서가 아니라 살구나무가 그렇게 멋있고 폼이 나는 나무는 아니지 않습니까. 모양으로 심거나 그런 나무는 아닌데 나무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나무에 매달린 노란 살구가 가득 있어서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다음 주에 우리 중고등부 수련회를 여기에 올 텐데 그때까지 저게 남아있어야 되는데 그러면 내가 하나씩 따서 선생님들과 애들을 하나씩 주면서 맛을 보게 할 텐데 그때까지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살구를 먹는 순간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슈퍼에서 파는 그런 살구하고 다릅니다. 정말 달고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열매를 먹으니까 그 나무에 대한 평가가 틀려집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을 우리는 영적인 눈을 가지지 못하고 살 때가 많으니까 우리가 무슨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지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을 내려다보시면서 여러분들이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어떤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는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살아가면 거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을 보면서 여러분들의 인생을 위해서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넓은 땅을 가지고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신령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여러분들에게 원하시는 참된 열매는 신앙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정말 아름다운 그 삶과 인격과 신앙의 열매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은 귀할 게 없습니다. 얼굴이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또 우리 중에 유명한 학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는 정말 내놓을만한 게 없습니다. 아, 정말 가만히 보면 주위에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한때 그랬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왜 저렇게 공부를 잘못할까. 주위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침을 질질 흘리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아, 저 사람은 어떻게 노래를 잘할까? 또 다른 모든 방면에서 다른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재주도 없고 그렇게 뛰어난 것도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뭘 보고 우리를 건지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우리의 삶 속에서 맺어 가면 그것이 하나님께 평범한 삶이 아니라 비범한 삶입니다. 믿습니까? 참 하나님 앞에서는 이것이 비범하고 뛰어난 삶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높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사람을 높이 보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열매는 그 나무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만듭니다. 정말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있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우리들이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또한 동시에 우리들이 그렇게 열매 맺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두 번째로는 종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포도원을 다 지어놓고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두 번이나 반복해서 오래 있다가 때가 되매, 즉 무슨 뜻인가 하면 이 포도원을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를 준 이 주인은 언제 포도가 열매를 맺는지 그리고 어느 수확기에 비로소 소작료를 낼만한지 그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서 이 포도원을 직접 지은 사람이니까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 때나 가서 내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옛날에 농촌에서는 언제가 가난한지 아십니까? 봄이 되면 제일 가난합니다. 왜 가을에 추수를 했는데 그 추수한 곡식이 다음 추수할 때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종자를 떼어놓고 난 나머지를 먹다먹다 못 견디면 종자까지 밥을 해서 먹습니다. 그런 춘곤기에 사람을 보내어서 소작료를 더 내어라. 그러면 농부들이 농토를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 그러신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매, 무슨 때 이제는 비로소 이 포도원 농부들이 소작료를 낼 수 있을만한 충분한 때가 되었다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신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작료를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작료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믿음대로 살아라. 나를 공경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라. 그 열매를 달라고 종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종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났던 수많은 선지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며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이 자기들에게 나아올 때 그 선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그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터전을 거저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구원받은 은혜대로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고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셨던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오늘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인지를 하나님은 오늘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크고 놀라운 계획을 따라 살아서 우리가 하나님과 늘 평화를 누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충만한 열매를 맺으면서 살도록 보내시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 하나님의 그 참다운 사랑을 보답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구나. 주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나는 이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로부터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기에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적인 삶에 곁가지를 쳐주는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더 깨끗하게 하셔서 그래서 아름답고 실한 열매가 맺도록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도우시고 붙드시는 것을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경험하게 됩니다.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면 반드시 열매가 맺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은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마음과 심령이 본질적으로 변화되면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들이 맺히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종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바쳐야 할 마땅한 열매가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고 그리고 열매 맺는 삶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할지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일러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종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종들의 음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어떤 열매로 슬퍼하시는지를 깨달을 때 거기서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열매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알고 그런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결단할 때 그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맺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그런 사람들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낸 종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음성을 백성들에게 들려주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열매가 어떤 열매인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의 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리시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열매를 맺는 것들을 기뻐하시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리하여 우리를 고치고 변화되고 새롭게 만들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종들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려고 합니다. 열매를 맺었으니까 이제 소작료를 달라고 포도원 농부들에게 당신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심히 때렸습니다. 그리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다시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했습니다. 모욕까지 주었습니다. 세 번째 종을 보내니까 이도 상하게 하고 내쫓았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오늘 성경에 10절에 보니까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이것은 적은 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도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비하면 그 열매는 많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사업에 어려움이 있어도 주일을 지켜야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쁜 세상에서 돈 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부담입니다. 남은 일주일을 일해도 사니 못사니 하는데 엿 세를 일하고 하루를 쉬라고 말하니까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요구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정말 신령과 진정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라. 주일날 나오는 것만 해도 그것도 대단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예배를 드리지 말고 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령과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하면서 살아야 된다. 새벽기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물질적인 헌신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몸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면서 충성스러운 삶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진리를 깨닫게 하셔서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게 하시고 수고하게 하시도록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움직이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언제나 나올 때마다 그 정도 가지고 안 된다. 좀 더 나에게 충성할 수 없겠니. 그것보다 좀 더 진심으로 영혼을 사랑하면서 살수 없겠니. 애야, 그것보다 좀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없겠니.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게 우리에게는 커다란 부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무리 무거운 부담일지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주님 앞에 그 인간들은 아무리 지고 가도 상 받을 것이 없는 무겁고 그리고 너무나 커다란 죄의 짐을 지고 허덕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어제 기도원에 갔다가 오다가 뉴스를 들으니까 여자가 아반테 승용차를 고속으로 앞에서 몰고 가는데 문을 열고 길거리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래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사는 게 괴로우면 고속으로 달려가는 차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것을 뻔히 아는데 뒤에서 차들이 쏜살같이 달려오는데 그 길을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을 하는지 이게 바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얼마나 괴로우면 그랬겠는지 뛰어내려서 죽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그 인생들, 그런데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일생을 살아가면 마지막에 이 세상에서 얻는 것은 수고와 슬픔밖에 없고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받는 것은 그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살아온 죄가에 대한 심판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들에게 오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쓸데없는 일을 위해서 수고하고 이 세상에서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게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너희는 내가 주는 멍에를 매고 내게서 배우라. 짐을 벗겨주고 예수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멍에를 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방법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매지 아니하고는 신앙의 멍에를 매지 아니하고는 우리가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멍에와 그 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멍에와 짐을 지고 나아가고 승리하고 이기는 사람들에게는 상급이 있고 그 짐을 지고 이기고 나아가면서 우리는 쉼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슬픔이 많은 이 땅에서 누구도 맛보지 못했던 놀라운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나라의 평화와 하나님의 나라의 진정한 안식을 가불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안식과 참된 평화를 미리 맛볼 수가 있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멍에를 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안식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을 때는 우리에게는 진정한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물러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사람들은 이미 물러가면서부터 마음에 심한 막연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보십시오. 타락했습니다. 범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 잃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에덴동산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범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셔서 아직 너희들이 잘못했다.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낙원에 살고 있었으나 지옥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고통이 벌써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농부들에게 얼마를 바치라고 하는 이 소작료는 절대 무리하고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온전한 삶, 더 충성스러운 삶의 열매, 보다 더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의 열매, 보다 더 아름다운 전도의 열매, 보다 더 아름다운 헌신의 열매를 맺으라고 우리에게 많이 말씀하신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에 비하면 그것은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나 주 위해 바친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그리고 오늘도 여러분들을 위해 베푸시는 그 놀라은 사랑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아픔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도 그 당신의 품에 나와서 마음을 토해놓는 당신의 백성들의 그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받으시고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값없이 빈부나 귀천이나 상관없이 은도 없이 금도 없이 당신 앞에 나와서 모두 먹고 마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변함없이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계셔서 자존심도 없으신지 범죄한 자들이 다시 돌아가 회개하면 받으시고 또 다시 범죄해서 돌아와 회개하면 또 다시 받으시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어긋난 길로 다시 돌이켜서 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으시고 다시 받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들이 받으면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조차도 불순종하려고 합니다. 왜 이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이 종들을 때렸습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종들은 그냥 순종했을 뿐인데 왜 때렸습니까? 그것은 소작료를 바치기 싫어서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우리에게 비해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가 거저 구원하였고 그리고 너희를 교회에 인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었고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였고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였으니 애들아 이제 너희는 내가 기뻐하는 열매를 맺어라. 그 열매가 어떻게 맺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주머니에서 몇 푼 꺼내서 갖다가 던지면 돈 가지는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이 깊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생명적인 연대를 가질 때만 수많은 열매입니다. 이런 꽃이나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지 됩니까? 그게 땅에 뿌리를 박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땅과 생명적인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거기로부터 올라오는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여야지만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각자 열매를 사다가 매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열매는 그렇게 맺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열매를 맺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우리의 삶의 진정한 근원을 하나님께 물으면서 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지만 열매를 맺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뚝 잘라서 꽃을 거꾸로 매달아놓습니다. 천장에, 난 그것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는데 살만큼 살다가 죽게 만들어야지 거꾸로 매달면 거기에 열매 맺는 것을 보셨습니까? 안 맺습니다. 이미 그 꽃은 아름답게 피어있어도 나무에서 딱 절단된 그 순간에 이미 열매하고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꽃이 아까워서 뽑아서 땅에 박아놓고 한참 지나니까 잎이 나옵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그럴 때 우리가 그 열매를 맺는 일에 약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거기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열매 맺혀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고 싶어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열매를 맺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그럼 맺어야지.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나무에다가 열매를 사다가 실로 매달아놓은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절기를 지키는 것이었고 이게 바로 대회와 성회로 모이고 십일조와 헌물을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열매를 맺었는가 하고 가까이 가보셨지만 하나님께서 가서 봤는데 그런 것을 가장 혐오하셨습니다. 왜 없으면 차라리 열매가 없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그것을 원하시지 여기에 가짜 열매를 쭉 매달아놓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정직한 것을 원하십니다.
(예화: 한 나라의 왕이 사랑하는 외동딸을 결혼시키고 사위에게 나라를 맡기려 는 생각을 하지만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해 공개 적으로 지원자들에게 꽃씨를 나누어주면서 제일 멋있고 아름답게 꽃을 키운 사람에게 공주를 주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육 개월이 지나 꽃 을 키운 화분들을 가져오자 모두가 아름다움에 감탄했으나 마지막에 어 떤 사람이 흙밖에 안담은 화분을 가져와 온갖 정성을 들여도 꽃이 피지 않았다고 울며 고백하자 왕이 미리 계획한 생명 없는 꽃씨였기에 당연히 피어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것은 거짓이었다는 내용)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거짓 열매를 맺으면서 살려고 하는 것, 척 하는 신앙생활,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뭐라고 하셨습니까? 위선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화 있을지언정 이 서기관들이여 바리새인들이여 위선자들이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마음 깊은 곳(?)경건한 척이나 하고 기도하고 이런 가짜 열매를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싫어하십니다.
어느 교회에 가면 꽃이 비싸니까 조화를 해났습니다. 전 반대입니다. 좀 가증한 것 같습니다. 없으면 없지 가짜를 그렇게 놓으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 백성들이 왜 그렇게 종들이 소작료를 달라고 그럴 때 종들을 핍박하고 모욕하고 그런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 맺지 않는 삶 그 자체는 결국 자기 뜻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않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으려고 하니까 안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질문해봅시다. 얼마나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이 신앙생활의 열매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인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 관심이 많고 그리고 일 년 동안 이룬 우리의 성공과 업적에는 관심이 많지만 그러나 정말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열매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원인은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열매가 맺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열매를 언급하고 있는데 육체의 열매가 성령의 열매보다 훨씬 더 가지 수가 많습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육체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저 좋은 대로 살아가면 막 맺힙니다. 수박만한 열매가 맺힙니다. 바가지만한 열매가 막 맺힙니다.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막 맺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고 자기의 육체의 욕심대로 하나님의 뜻에 상관없이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이런 육체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 무거운 열매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열매 맺는 백성이 되라고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그 앞길을 예비하며 등장하였던 세례 요한이 와서 제일 먼저 외치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까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면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다. 사람들이 막 울부짖으며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 하고 그렇게 부르짖으니까 세례 요한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는 열매를 맺으라. 무슨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너희들이 가까이 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두려워서 회개를 하였다면 내가 진정으로 회개를 통해서 수립된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서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로부터 영양분을 먹고 물을 먹어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라.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가슴을 치면서 그 하나님의 심판을 메시지 앞에 깊이 회개하는 것, 그러나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니까 회개하고도 잘못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회개를 하고 난 다음에는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왔으면 이제는 거기에 뿌리를 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람이 흔들어서 뿌리를 흔들려고 할 때 바람과 싸우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붙들고 믿음을 붙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응답의 모양들을 붙들고 (?)내용들을 움켜쥐고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주 옮겨 심는 나무에 뿌리 맺는 법이 없습니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 아닙니까.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을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돌이켜서는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회개도 합니다. 깨닫기도 합니다. 마음에 결심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응답을 받았다고도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나아가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회개했는데 변화된 것이 무엇인가. 아닙니다.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는 별개입니다. 회개는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잘못된 길로부터 돌이켜서 올바른 관계가 무엇인지 알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은 여기서 그 하나님과의 수립된 관계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 진정한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부산에 교회에 갔더니 그 교회에 안내지를 만들었는데 제가 야, 어떻게 이런 문장이 사람들에게 떠올랐을까. 교회에 크게 써 붙여났는데 “인생의 방황은 신앙 안에서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교회에 정착함으로 끝난다.” 그게 우리 교회에만 나오십시오. 그 말보다 정말 멋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해보겠으니 음미해보십시오. 인생의 방황은 신앙에서 끝나고,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선택함으로 끝나고 두 번째 신앙의 방황은 한 교회에 뿌리를 내림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대다수는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곳에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때로는 오늘 아침에 이 마음을 찔렀는데도 그 찌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거기에 뿌리가 내리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바로 그것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 심판의 진노를 파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려고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 외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임박한 진노를 피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서 맺어가는 것입니다. 아멘! 할 대목인데 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매를 맺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옛날에 우리 학교에 귤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밀감이 크니까 끈으로 매달아놓습니다. 추운 겨울에 누구 집에 들어갔을 때 거실이 따뜻하고 노랗게 익은 밀감이 파란 잎사귀 밑에 서너 개 매달려있는 것을 보면 그까짓 것 몇 푼이나 하나. 기껏 하나에 천원밖에 더하겠습니까. 다 합해도 5천원밖에 안 되는데 5천원이 아닙니다. 그 거실에 분위기가 너무 신기합니다. 그러다 애들이 툭 쳐서 귤이 떨어지면 갖다 버립니다. 우리도 여기에 하나 있었습니다. 요만한 거 맺히는 나무, 다 떨어지고 나니까 볼품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다른 것이 훨씬 나니까 갖다 버립니다. 열매를 맺으니까 나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들이 정말 이런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주일 학교를 맡기니까 주일학교에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 하나만이라도 맺어야지,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면서 하나님, 내가 이 영혼들을 잘 돌보아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하고 거기에 마음을 모으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을 기뻐하시니까 이 사람에게 막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애들이 와도 자기의 반에만 오는 것입니다. 부흥이 되고 변화가 되고 다른 애들은 몇 달을 교회에 다녀도 그 모양이 그 모양인데 이 반에 와서 몇 주만 오면 예수가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시작하고 진리의 말씀이 싹이 트고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열매가 막 맺어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격이 모나고 그래서 많이 부딪히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던 사람이 어떻게 인격에 열매를 맺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인격만큼은 내가 끝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런다고 해서 그게 되는 것입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서 ‘이 결심 연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의 이름으로 빚으사 날 받아주소서’ 늘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기 시작하면 자기는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가지지 않았어도 그 속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믿지 않던 남편이 보면서 당신, 역시 교회에 나가더니 사람이 변했어. 믿지 않는 남편이보면서 당신이 믿는 하나님 정도라면 내가 한번 믿어보겠어. 그러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인격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열매가 없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기도원에 가면서 비가 많이 오니까 말랐던 골짜기마다 물이 흘러가는 경쾌한 소리가 들립니다. 너무너무 감사해 찬양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개울가에 심은 나무들이 비까지 맞아서 목욕까지 하니까 파란 잎사귀들이 청청하게 피는 것입니다. 그것을 열매 맺지 못하도록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 길가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이 열매 맺는 것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는 생명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이처럼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