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5
새사람을 입으라(골3:9-10)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이 성경구절이 조금 말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 번 번역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9절과 10절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원문성경에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너희는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는 옛 자아, 너희의 옛 생활과 함께 옛말을 벗어버렸고 또 새로운 자아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새 자아는 자신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형상 안에서 지식 속에서 새롭게 되어져가고 있는 새 자아입니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제 그 번역을 좀 유의하시고 오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옛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은 다음에는 새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옛 사람에게는 옛 생활이 있고 새 사람에게는 새 생활이 있습니다. 여러분, 옛 생활은 어떤 생활이었습니까? 옛 생활에 대해서 성경이 주고 있는 그림은 옛 생활에 속한 사람들은 욕심과 육체의 정욕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옛 생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골로새서 3장에서는 사도가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니까 너희는 위에 것을 생각하라.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런 성도의 신령한 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 지금 3장을 기록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의 신령한 생활과 함께 그 성도들이 신령한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철저히 죽여야 할 생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옛 생활입니다. 옛 사고, 옛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럼 왜 옛 생활이 이렇게 옛 생활, 또 옛 사고, 옛 습관 이런 것이 있는가. 그것은 쫓아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의해서 애굽에서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을 떠나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애굽을 떠나오고 난 다음에 결코 바로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요히 가도록 만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옛 생활이 생활을 추적해오는 그 그림을 이미 그때 보여주었는데 애굽의 병사들이 쫓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두 가지의 커다란 반대에 부딪힌 것입니다. 무언가 하면 미래를 향해 신앙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현재의 난관,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뒤에서 추적하는 옛 생활의 습관, 옛 사람의 모습 이것이 우리들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에게는 옛 습관이 있고 그리고 그 옛 사람은 감각과 자기의 혈기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의 모습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인데 결국 이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은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욕심을 죽이는 삶을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예수를 믿기 전에도 여러분들 가운데 비교적 착한 삶을 살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형편없이 사는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도덕적인 생활을 해온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생활도 결국 뒤집어보면 그 속에서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과 감각이지 결국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주관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각각 이 세상의 선한 뜻을 바라보면서 살고 또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추구하면서 사는 옛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도 뒤집어보면 그 모든 삶이 우리의 삶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그리고 그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데서 비롯된 도덕적인 생활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그 생각과 감각과 혈기와 육체의 원하는 바를 따라 살아온 것이 바로 옛 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옛 생활을 그리스도인들이 자꾸 쫓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 생활이 끊임없이 추격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옛 생활의 멍에를 씌워서 옛 생활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옛 생활의 습관이 우리를 추격해올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거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들이 맛보고 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알고 지식에 새로움을 입고 오늘 우리로 하여금 옛 사람을 버리고 새로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어진 피조물이 되어서 주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오늘 우리가 갖지 않으면 우리는 옛 사람의 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오늘 우리에게 언제나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제가 아니라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항상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하는 하늘의 은혜룰 공급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들으신 분들은 몇 번 들으셨는데 제가 담배를 많이 핀 사람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갑, 반씩 담배를 피었습니다. 지금은 그러신 분은 여기에 없겠습니다만 그런데 하여튼 인간의 열심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몇 번씩 결심해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도하니까 은혜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담배를 끊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안 되어서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까 담배 연기만 맡으면 그 속에서 똥내가 나더랍니다. 그러니 그 전날까지 맛있게 핀 담배를 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신비한 방법으로 끊어 주실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닙니다. 담배를 끊었는데 그 다음부터 모든 사람 앞에 라이터도 주고 담배도 주고 그렇게 담배를 끊었다고 공언을 일부러 했습니다. 왜 그러면 창피해서라도 끝까지 안 필까봐. 그렇게 끊었는데 팔일 동안 금단현상이 나타났는데 밥만 먹고 나면 사람이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담배를 핍니다. 예비군 훈련을 가면 사람들이 담배 한 대를 나누어서 먹으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결국 끊었습니다. 사탕을 두 봉지씩 먹으면서 악착같이 끊었는데 3년 가까이 꿈에 보입니다. 담배 한 대씩 피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는 좌석버스를 타고 가는데 앞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혀 의식이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서 흠! 하고 들이마시는데 그게 담배를 끊은지 3년 반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옛 사람의 습관이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추적해오는지 말도 못합니다.
누가 이 세상에서의 죄에서 이제 나는 자유로워졌다.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옛 생활의 습관은 본성적으로 타고났고 수 십 년의 세월을 지속해왔습니다. 경건한 신앙으로 결심을 하고 새롭게 살고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워하며 살기로 결심한 모든 신앙의 결심 신앙의 생활은 이제 겨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습관을 따라 기도하신 예수님, 여러분, 기도의 습관이 거목처럼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까? 뭐가 뿌리를 내렸습니까. 며칠만 쉬어보십시오. 기도를 안 하는 게 왜 그렇게 편한지, 새벽기도 며칠만 안 나가보십시오. 맛들입니다. 이거 할 만하구나. 왜 우리의 본성 자체가 타락했습니다. 거기에다 우리의 신앙이 깨어있으면 그것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옛 생활에 습관을 벗어버리고 살아가는데 그 신앙조차 없으면 오늘 그런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따라 살아가게 만드는 그 오늘 현재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신앙생활조차 없으면 우리는 옛 사람의 습관이 우리에게 달려오게 우리는 쫓아가서 오래간만이라고 하면서 끌어안고 사랑할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게 옛 생활입니다.
그래서 어느 염장을 하는 장로님이 아주 인상 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닷물을 퍼다가 밭에 올려놓고 28일쯤 지나면 햇빛이 비추면 소금이 되는데 물이 약간 섞인 소금이 됩니다. 그래서 긁어놓으면 바짝 마른 소금이 됩니다. 그것을 소금 가마니에 담아서 묶어놓고 배에다 실습니다. 그런데 겨울에 김장할 때 그 소금을 풀어서 소금물을 만들어서 하려면 이 소금이 그렇게 안 녹습니다. 더군다나 날도 춥고 그러면 정말 안 녹습니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나는 게 김장을 담글 때 빨래방망이 같은 것을 집어넣고 막 흔듭니다. 그래도 잘 녹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소금을 배에 실다가 떨어트려서 바닷물 속에 풍덩! 들어가고 나니까 잠깐 사이에 집게로 다시 꺼냈는데 한 2분밖에 안 흘렀는데 가마니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 장로님 하는 말씀이 성도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서 취해 온 존재가 아니라 죄 많은 세상에서 더럽게 살아가는 인간들을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불러내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소금이 바다에서 취해진 것처럼 성도들도 세상에서 취했기 때문에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성도의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순간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죄에 물들어서 옛 사람의 생활을 즐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옛 생활과 행위를 벗어버리고 살아가지 못하게 되면 새사람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새사람을 입고 생활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말만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우리의 삶으로는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고 진실에 있어서는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우상에 숭배하는 탐심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옛 생활의 생활은 이렇게 감각과 혈기를 따라가는 삶이고 새사람의 생활은 이성과 양심을 따라서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니 이 삶이 계속 승리해가고 이 삶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부단히 옛 사람과, 옛 생활과, 옛 행위를 벗어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이 옛 사람과 옛 행위가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이 말하기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려라. 옛 사람과 그 행위는 하나입니다. 변화되지 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변화되지 못한 옛 사람의 습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한 번에 은혜 받은 것 번쩍 들어서 다 깨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 습관에 지면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쩜 주위에서 보면 헌신도 그렇게 잘하고 지체들을 위해서 아까운 것도 없이 그저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그렇게 아까운 것도 없이 마음도 넓습니다. 아무 것이나 막 줍니다. 그렇게 열심히 섬기다가 어느 한순간에 팩! 하고 토라지면서 입으로 여태껏 쌓아놓았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들을 다 깨트려버립니다. 말로 다 깨트려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옛 사람의 행위와 습관이 우리로 한번 사로잡고 우리의 신앙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은 우리의 자아가 그것과 딱 만나게 되면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옛날에 하던 가락이 나옵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옛 사람과 옛 행위는 우리들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매일매일 벗어버려야 할 죄악, 매일매일 벗어버려야 할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숙제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너희가 은혜를 받으면 된다고 말하면 된다고 하지 아니하고 옛 생활의 습관과 행위를 벗어버린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 옛 생활과 옛 행위의 습관을 매일매일 벗어버릴 때 비로소 성숙된 모습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 사랑이 많은 사도가 뭐라고 말합니까?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 사람이 죽을 때 어떤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월남전에서 전쟁을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을 죽인 경험을 해서 고통하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첫 번 살인이 가장 무섭고 그리고 첫 번 살인 후에 두 번, 세 번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죽이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첫 번 살인할 때 표적에다 대고 그렇게 총을 많이 쏘고 별의별 이야기를 많이 듣고 영화에서는 그렇게 살인한 내용을 많이 보고 전쟁에서 폭탄이 떨어져서 수백 명이 한꺼번에 죽는 것을 수없이 많이 봤지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직장에 있던 동료 한사람이 밤 근무를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화해무드가 되었습니다만 그때는 정말 무섭던 시절입니다. 순찰을 하는데 물론 다 실탄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부석! 하고 탁! 만났는데 북괴군하고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 순간 어떻게 했는가? 했더니 그쪽도 이쪽도 모두 동태처럼 얼었다고 합니다. 방아쇠에 손을 꼈는데 손끝하나 못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북 애들이 씩! 하고 한번 웃으니까 그 웃음이 이제 계기가 되어서 서로 고개를 돌리고 흩어졌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없이 총을 쏘고 그랬는데도 적군을 만날 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살인의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살인을 하고 와서 며칠씩 악몽에 눌리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습관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오늘 옛 지체에 대해서 오늘 사도는 말하기를 죽여 버려라. 그것이 옛 습관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죽여 버려라. 한번 죽이는 것은 어렵지만 그러나 두 번, 세 번 죽이면 그 다음에는 우리의 옛 지체를 죽이는 일에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거룩해지고 경건해지고 그렇습니다.
여러분, 참게를 아십니까? 그 게가 장조림을 해먹으면 아주 맛있습니다. 그 참게가 원래 밀물에서 내려갑니다. 바다로 내려가서 새끼를 까고 그 새끼가 다시 민물로 올라옵니다. 그러다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다시 바다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참게는 어디서 많이 사는가 하면 바다하고 민물하고 겹쳐서 만나는 그런 곳에 아주 많이 삽니다. 그런데 이게 참 재미있습니다. 게가 털이 북실북실하게 났습니다. 그리고 게가 많이 있는데 그 게가 일생동안 한 24번 정도 허물을 벗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허물을 벗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어느 날 물속을 들여다보면 한 마리의 게가 두 마리의 게로 변합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다리에 있는 껍질까지 확 벗어서 그 껍질을 내버려두고 거기서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털, 그 다음에 게 껍질모양, 그것이 껍데기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거기서 나옵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거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바닷가에서 살면서 그 게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무엇인가 하면 집에서 어항에다 기르면 그렇게 빨리 벗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한번만 벗으면 벗는 즉시 쑥 큽니다. 또 한 번 벗을 때 쑥 자라고 그런데 게가 영양상태가 좋고 잘 먹으면 이것을 빨리 벗어버립니다. 잘 먹지 못하고 환경이 별로 좋지 않으면 잘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지체의 욕심을 죽이고 그리고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 버리면 한번 우리들의 옛 생활의 신앙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나면 우리의 신앙은 무척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이제 이 정도면 넘어섰구나. 또 옛 생활과 그 행위를 한번 벗어버리게 되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를 벗어버리게 된 것을 기뻐하시는구나. 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또 부쩍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깨닫는 것이 많고 영적으로 기도를 하고 많은 것을 공급받으면 옛 생활의 습관을 자꾸 벗어버리게 됩니다. 왜 새로운 자아가 우리 속에서 계속 생명을 갖고 역사하니까 옛 생활과 자꾸 충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옛 생활과 옛 자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꾸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벗어버릴 수 있는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을 때 우리는 이 옛 생활의 습관을 벗어버리게 되면 우리의 신앙이 부쩍부쩍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교회에 다니면 주일날 돈을 벌까, 나올까? 갈등을 많이 하는데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신앙적으로 새로워지게 되면 이제 그런 것을 가지고는 갈등하지 않습니다. 세끼 먹지 누구는 네끼를 먹나. 주일은 주님의 날이야. 주일을 지킬 수 있는 담대함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전에는 내가 믿음을 따라서만 살면 주위에 있는 내 사람들이 나를 멀리할 줄도 모르고 내 신앙을 따라서 살면 내가 사람들로부터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사는 일들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고 나니까 그러니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결심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옛 생활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성숙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옛 생활을 벗어버릴 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고 그리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만큼 깨달아 알고 결심하고 그것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더 깊은 뜻과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옛 생활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자기의 옛 생활 속에서는 육체의 감각과 그리고 혈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지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를 누리고 사람들을 지배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인간의 지혜와 사람의 지식은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신령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령한 지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 것인가 하는 것이 내 인생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의 관심이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신령한 삶을 살아가는 것, 은혜로운 신앙생활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이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자기를 창조하신 형상 안에서, 지식 안에서 새롭게 되어지는 자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고 은혜를 부어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 닮게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낳으면 자녀를 이 세상에 생명체로 만드는 것이 여러분들의 결혼의 목적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커가지 않으면 인간이, 인간이 아닙니다. 1850년에 (?)남부지방에 생세레라고(?) 하는 지방이 있는데 거기에서 13세 된 아이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 산속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정글북에서 나오는 소년처럼 짐승들과 그렇게 큰 것입니다. 그러다 포획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어 다니면서 짐승소리를 내면서 어두운 곳을 찾아서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려다가 사회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회인으로 만들려고 무려 십 몇 년 동안 아주 열심히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서 아이를 가르쳤습니다. 결국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결국 하나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낳게 하시고 구원해주셨는데 만약에 우리가 구원을 받고도 계속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새사람이 되어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태어났으나 짐승처럼 밀림을 울부짖고 돌아다니는 짐승과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안 됩니다. 그것 말고도 몇 가지의 사례가 있는데 학자들의 마지막 결론은 어린 시절의 인간 속에서 교육받지 않은 인간을 새롭게 교육해서 사회인으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계속해서 새롭게 예수를 믿고 우리의 신앙이 어려서부터 계속 새사람으로 변화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형상을 좇아내야 합니다. 이 형상은 하나님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본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간다는 것은 성품에 있어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 거룩하심과 그 사랑과 그리고 그의 지식과 그의 도덕적인 성품을 우리들이 매일매일 닮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원해내신 목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내신 것이 단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게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또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해내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결국은 날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당신의 형상을 좇아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열심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말씀과 신앙의 칼을 들고 여러분 속에 솟아나는 육체의 옛 욕심과 옛 자아의 성품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호하고 모진 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옛 자아는 찌르거나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습관이 공갈치고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것 가지고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생활과 옛 자아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옛 사람의 생활과 그 습관과 죄악 아래로 집요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옛 생활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옛 행위를 버리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고 또 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따라서 옛 사람을 죽이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은혜로 구원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을 감사하며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은총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죄 많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싸우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말씀을 듣고 깨달은 다음에 그 깨달음을 즉각적으로 실천하고 이것을 실천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옛 생활, 옛 자아를 죽이려고 할 때 그때 우리의 신앙생활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가 죄와 더불어 싸우되 피 흘리기 까지 싸우지를 아니하였도다.” 말했습니다. 살인을 하는 독한 마음으로 옛 생활에 칼을 꽂는 그런 비장한 각오가 있을 때 그때 그것을 실천할 때 그때 우리는 옛 사람이 벗어지고 그리고 새사람은 우리 안에 빠른 속도로 분리되어가는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우리들의 의무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말씀과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주었을 때 즉각적으로 그 말씀을 실천하고 결심하고자 하는 그런 강인한 노력이 우리를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힘을 다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역사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일하시는 것이 보여 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죄와 그리고 이 세상에서 땅에 속한 지체를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새사람을 살아나게 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보여주십니다. 눈물 흘리는 곳에 기쁨이 있듯이 죽이는 곳에 살리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그런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그 본질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감각과 혈기를 따라 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이 별로 필요 없지만 그러나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매일매일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새로운 지식을 섭취하는 일에 우리는 마음을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미리 알게 하신 우리의 신앙생활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활을 주관할 수 있도록 그렇게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지식에 마음을 쏟고 그것을 얻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그런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작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는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의 인격의 향기를 보고 죄인의 마음을 감동시킨 그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이 새로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옛 생활과 옛 자아를 벗어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듣기만 하고 흘려버리는 자들이 아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끌려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얼마든지 거기에서 벗어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방법이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자기의 속건 제물로 드리셨다고 말합니다. “내 생명을 누가 뉘게서 취하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옛 생활과 그 행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본받아서 우리의 옛 자아와 옛 지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것처럼 옛 사람과 옛 행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은 기뻐하셔서 그들을 새롭게 살리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제 일 년 동안 새롭게 신앙생활을 해야지 되겠다고 마음을 가졌는지 6개월이 이제 지나가고 있습니다. 반 토막이 다 흘러갔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목표가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도 목표가 있었을 것입니다. 진리를 새롭게 깨달아 아는 데서도 목표가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 지금 6개월 동안에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인격에 어떤 진도가 있었는지 보게 해주시옵소서. 말씀을 듣고 깨닫고 흘려버리는 생활들을 반복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있었지만 우리의 못된 자아와 못된 지체를 한 번씩 건드리고는 지나갔지만 한 번도 죽여보지 못한 신앙생활을 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못하고 있었다면 하나님 오늘이 바로 우리의 땅에 있는 그 육체를 죽이는 날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질적으로 새로운 자아를 입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살게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열매 맺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생활이 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