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7.7 주일오전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1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눅20:9-12)
“이 비유로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예수님께서 하루는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그랬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또 예수님의 들리는 그 음성을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르친 것은 매우 힘 있게 가르쳐 백성들이 그 가르침에 대해서 깊이 경의를 표하니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가르칠 수 있는가? 그렇게 물었더니 그 권세를 당신에게 준 사람이 누구요, 우리에게 말하십시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 내가 대답을 할 텐데 내가 한 가지 묻겠으니 그것에 대해서 답을 해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누가 권세를 주어서 내가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는지 너희에게 밝히 말하겠다. 그러면서 물으신 질문이 무엇인가하면 세례 요한이 준 세례가 하늘로서 온 것인가, 사람에게서 온 것인가? 사람들이 가만히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하니까 만약에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러면 예수님이 분명히 그러면 너희들이 왜 세례 요한의 선포를 믿지 않는가. 더욱 전진되면 어떤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너희가 세례 요한의 선포를 믿으면 반드시 세례 요한이 오시리라고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인 나를 믿지 않겠는가. 이렇게 오히려 논리가 전개되니까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만약에 사람에게서라, 이렇게 말하면 수많은 백성들이 요한을 수백 년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참된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많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이 요한을 참된 선지자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다 사람의 일이라고 말한다면 선지자를 모욕하는 자들이라고 해서 백성들이 돌로 칠 것이다. 결국은 이렇게도 대답할 수 없고 저렇게도 대답할 수 없어서 우리는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나도 너희에게 가르쳐주지 않겠다. 그리고 지나가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오늘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제가 이사야 5장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했는데 많은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누가복음 20장에서 말씀하신 포도원의 비유가 바로 이사야 5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머리 속에 있는 그림은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서 선포된 그 포도원의 비유, 이것을 염두에 두시고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구약의 역사 모두를 관통하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를 드신 것이 바로 어제의 그 이야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농부들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포도원은 단지 포도만 심어놓은 밭이 아니라 포도나무도 있고 울타리도 두르고 망대도 있고 즙 짜는 틀도 있고 모든 도구를 거기에 버려두고 몸만 들어오면 거기서 포도를 딸 수 있고 또 즙 틀을 사용해서 그 수확한 포도를 포도주로 저장할 수도 있고 그리고 망대에 올라서 쉬기도 하고 또 포도원을 해치는 도적들과 여우들을 쫓아낼 수도 있는 그야말로 아무 노력 없이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서 한 사람의 농부에게 세를 주었다. 이것은 결국은 역사적으로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하면 이사야서에서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사건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셨던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너희가 만약에 내 말에 순종하면 너희가 심지 않은 포도나무 열매를 먹고 그리고 실과를 먹으며 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내가 너희를 인도하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가나안을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 것을 포도원을 만들어준 것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짓지 않은 집에 살았습니다. 저희들이 심지 않은 그 실과를 먹었고 자기들이 뿌리지 않은 씨앗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은 수많은 곡식들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유리하고 방황하던 백성들이 들어가기만 하면 생활할 수 있도록 완벽한 준비를 그 가나안에다가 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시간의 축복들, 우리가 이 일들을 위해서 우리가 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이 은혜의 자리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던 때 어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여셔서 우리에게 그 복음이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여 교회로 데려오게 하시고 그곳에서 우리는 공로 없지만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섬김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끌어주고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마음속에 영혼들을 향한 사랑과 연민을 갖게 하시고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서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주셔서 우리의 영혼을 돌보고 우리의 삶을 위해 기도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짓지 않은 집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었고 우리가 심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먹으며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지적하시고자 하신 말씀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놀라운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도 거저 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거저 준 것처럼 우리들에게 구원의 은총도 거저 주시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대가 없이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지만 하나님의 그 은혜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습니다.
오늘 이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그 포도원을 거저 준 것이 아니라 세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놓고 하나님이 받으시기를 원하셨던 그 세는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세를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까? 정말 포도열매를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까? 물론 하나님 앞에 곡식의 처음 난 것을 드리기도 하였고 또 짐승 중 가장 좋은 첫 새끼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그 과실이나 짐승의 첫 새끼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상징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의와 신의 열매입니다. 인애와 공평과 정의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기를 원하셨던 그 세는 눈에 보이는 그런 물건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삶 속에 맺히는 진정한 의의 열매, 그리고 믿음의 열매, 공평의 열매, 인애의 열매, 아가페의 열매 이런 열매를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거저 구원하셨지만 그러나 그 구원에는 분명한 계획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어제 기도원에 갔습니다. 그 기도원에는 수도간 옆에 나무가 하나 있는데 거치적거리는 나무인데 나를 기다리듯이 그 나무가 온통 노란 살구로 매달려있습니다. 그 살구를 따서 지하수 물에 깨끗이 씻어서 주셨는데 농약도 안 주고 기도원에서 신선한 공기를 먹고 자랐으니까 군데군데 벌레가 먹었는데도 깨끗이 씻어서 먹으니까 얼마나 맛있는지, 그리고 그 나무가 귀해서가 아니라 살구나무가 그렇게 멋있고 폼이 나는 나무는 아니지 않습니까. 모양으로 심거나 그런 나무는 아닌데 나무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나무에 매달린 노란 살구가 가득 있어서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다음 주에 우리 중고등부 수련회를 여기에 올 텐데 그때까지 저게 남아있어야 되는데 그러면 내가 하나씩 따서 선생님들과 애들을 하나씩 주면서 맛을 보게 할 텐데 그때까지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살구를 먹는 순간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슈퍼에서 파는 그런 살구하고 다릅니다. 정말 달고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열매를 먹으니까 그 나무에 대한 평가가 틀려집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을 우리는 영적인 눈을 가지지 못하고 살 때가 많으니까 우리가 무슨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지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을 내려다보시면서 여러분들이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어떤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는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살아가면 거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을 보면서 여러분들의 인생을 위해서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넓은 땅을 가지고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신령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여러분들에게 원하시는 참된 열매는 신앙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정말 아름다운 그 삶과 인격과 신앙의 열매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은 귀할 게 없습니다. 얼굴이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또 우리 중에 유명한 학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는 정말 내놓을만한 게 없습니다. 아, 정말 가만히 보면 주위에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한때 그랬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왜 저렇게 공부를 잘못할까. 주위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침을 질질 흘리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아, 저 사람은 어떻게 노래를 잘할까? 또 다른 모든 방면에서 다른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재주도 없고 그렇게 뛰어난 것도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뭘 보고 우리를 건지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우리의 삶 속에서 맺어 가면 그것이 하나님께 평범한 삶이 아니라 비범한 삶입니다. 믿습니까? 참 하나님 앞에서는 이것이 비범하고 뛰어난 삶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높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사람을 높이 보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열매는 그 나무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만듭니다. 정말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있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우리들이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또한 동시에 우리들이 그렇게 열매 맺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두 번째로는 종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포도원을 다 지어놓고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두 번이나 반복해서 오래 있다가 때가 되매, 즉 무슨 뜻인가 하면 이 포도원을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를 준 이 주인은 언제 포도가 열매를 맺는지 그리고 어느 수확기에 비로소 소작료를 낼만한지 그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서 이 포도원을 직접 지은 사람이니까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 때나 가서 내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옛날에 농촌에서는 언제가 가난한지 아십니까? 봄이 되면 제일 가난합니다. 왜 가을에 추수를 했는데 그 추수한 곡식이 다음 추수할 때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종자를 떼어놓고 난 나머지를 먹다먹다 못 견디면 종자까지 밥을 해서 먹습니다. 그런 춘곤기에 사람을 보내어서 소작료를 더 내어라. 그러면 농부들이 농토를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 그러신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매, 무슨 때 이제는 비로소 이 포도원 농부들이 소작료를 낼 수 있을만한 충분한 때가 되었다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신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작료를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작료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믿음대로 살아라. 나를 공경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라. 그 열매를 달라고 종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종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났던 수많은 선지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며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이 자기들에게 나아올 때 그 선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그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터전을 거저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구원받은 은혜대로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고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셨던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오늘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인지를 하나님은 오늘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크고 놀라운 계획을 따라 살아서 우리가 하나님과 늘 평화를 누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충만한 열매를 맺으면서 살도록 보내시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 하나님의 그 참다운 사랑을 보답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구나. 주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나는 이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로부터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기에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적인 삶에 곁가지를 쳐주는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더 깨끗하게 하셔서 그래서 아름답고 실한 열매가 맺도록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도우시고 붙드시는 것을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경험하게 됩니다.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면 반드시 열매가 맺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은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마음과 심령이 본질적으로 변화되면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들이 맺히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종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바쳐야 할 마땅한 열매가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고 그리고 열매 맺는 삶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할지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일러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종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종들의 음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어떤 열매로 슬퍼하시는지를 깨달을 때 거기서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열매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알고 그런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결단할 때 그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열매를 맺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그런 사람들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낸 종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음성을 백성들에게 들려주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열매가 어떤 열매인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의 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리시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열매를 맺는 것들을 기뻐하시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리하여 우리를 고치고 변화되고 새롭게 만들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종들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려고 합니다. 열매를 맺었으니까 이제 소작료를 달라고 포도원 농부들에게 당신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심히 때렸습니다. 그리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다시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했습니다. 모욕까지 주었습니다. 세 번째 종을 보내니까 이도 상하게 하고 내쫓았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오늘 성경에 10절에 보니까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이것은 적은 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도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비하면 그 열매는 많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사업에 어려움이 있어도 주일을 지켜야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쁜 세상에서 돈 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부담입니다. 남은 일주일을 일해도 사니 못사니 하는데 엿 세를 일하고 하루를 쉬라고 말하니까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요구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정말 신령과 진정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라. 주일날 나오는 것만 해도 그것도 대단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예배를 드리지 말고 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령과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하면서 살아야 된다. 새벽기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물질적인 헌신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몸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면서 충성스러운 삶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진리를 깨닫게 하셔서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게 하시고 수고하게 하시도록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움직이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언제나 나올 때마다 그 정도 가지고 안 된다. 좀 더 나에게 충성할 수 없겠니. 그것보다 좀 더 진심으로 영혼을 사랑하면서 살수 없겠니. 애야, 그것보다 좀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없겠니.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게 우리에게는 커다란 부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무리 무거운 부담일지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주님 앞에 그 인간들은 아무리 지고 가도 상 받을 것이 없는 무겁고 그리고 너무나 커다란 죄의 짐을 지고 허덕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어제 기도원에 갔다가 오다가 뉴스를 들으니까 여자가 아반테 승용차를 고속으로 앞에서 몰고 가는데 문을 열고 길거리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래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사는 게 괴로우면 고속으로 달려가는 차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것을 뻔히 아는데 뒤에서 차들이 쏜살같이 달려오는데 그 길을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을 하는지 이게 바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얼마나 괴로우면 그랬겠는지 뛰어내려서 죽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그 인생들, 그런데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일생을 살아가면 마지막에 이 세상에서 얻는 것은 수고와 슬픔밖에 없고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받는 것은 그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살아온 죄가에 대한 심판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들에게 오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쓸데없는 일을 위해서 수고하고 이 세상에서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게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너희는 내가 주는 멍에를 매고 내게서 배우라. 짐을 벗겨주고 예수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멍에를 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방법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매지 아니하고는 신앙의 멍에를 매지 아니하고는 우리가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멍에와 그 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멍에와 짐을 지고 나아가고 승리하고 이기는 사람들에게는 상급이 있고 그 짐을 지고 이기고 나아가면서 우리는 쉼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슬픔이 많은 이 땅에서 누구도 맛보지 못했던 놀라운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나라의 평화와 하나님의 나라의 진정한 안식을 가불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안식과 참된 평화를 미리 맛볼 수가 있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멍에를 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안식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을 때는 우리에게는 진정한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물러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사람들은 이미 물러가면서부터 마음에 심한 막연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보십시오. 타락했습니다. 범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 잃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에덴동산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범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셔서 아직 너희들이 잘못했다.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낙원에 살고 있었으나 지옥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고통이 벌써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농부들에게 얼마를 바치라고 하는 이 소작료는 절대 무리하고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온전한 삶, 더 충성스러운 삶의 열매, 보다 더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의 열매, 보다 더 아름다운 전도의 열매, 보다 더 아름다운 헌신의 열매를 맺으라고 우리에게 많이 말씀하신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에 비하면 그것은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나 주 위해 바친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그리고 오늘도 여러분들을 위해 베푸시는 그 놀라은 사랑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아픔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도 그 당신의 품에 나와서 마음을 토해놓는 당신의 백성들의 그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받으시고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값없이 빈부나 귀천이나 상관없이 은도 없이 금도 없이 당신 앞에 나와서 모두 먹고 마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변함없이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계셔서 자존심도 없으신지 범죄한 자들이 다시 돌아가 회개하면 받으시고 또 다시 범죄해서 돌아와 회개하면 또 다시 받으시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어긋난 길로 다시 돌이켜서 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으시고 다시 받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들이 받으면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조차도 불순종하려고 합니다. 왜 이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이 종들을 때렸습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종들은 그냥 순종했을 뿐인데 왜 때렸습니까? 그것은 소작료를 바치기 싫어서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우리에게 비해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가 거저 구원하였고 그리고 너희를 교회에 인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었고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였고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였으니 애들아 이제 너희는 내가 기뻐하는 열매를 맺어라. 그 열매가 어떻게 맺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주머니에서 몇 푼 꺼내서 갖다가 던지면 돈 가지는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이 깊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생명적인 연대를 가질 때만 수많은 열매입니다. 이런 꽃이나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지 됩니까? 그게 땅에 뿌리를 박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땅과 생명적인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거기로부터 올라오는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여야지만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각자 열매를 사다가 매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열매는 그렇게 맺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열매를 맺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우리의 삶의 진정한 근원을 하나님께 물으면서 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지만 열매를 맺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뚝 잘라서 꽃을 거꾸로 매달아놓습니다. 천장에, 난 그것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는데 살만큼 살다가 죽게 만들어야지 거꾸로 매달면 거기에 열매 맺는 것을 보셨습니까? 안 맺습니다. 이미 그 꽃은 아름답게 피어있어도 나무에서 딱 절단된 그 순간에 이미 열매하고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꽃이 아까워서 뽑아서 땅에 박아놓고 한참 지나니까 잎이 나옵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그럴 때 우리가 그 열매를 맺는 일에 약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거기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열매 맺혀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고 싶어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열매를 맺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그럼 맺어야지.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나무에다가 열매를 사다가 실로 매달아놓은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절기를 지키는 것이었고 이게 바로 대회와 성회로 모이고 십일조와 헌물을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열매를 맺었는가 하고 가까이 가보셨지만 하나님께서 가서 봤는데 그런 것을 가장 혐오하셨습니다. 왜 없으면 차라리 열매가 없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그것을 원하시지 여기에 가짜 열매를 쭉 매달아놓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정직한 것을 원하십니다.
(예화: 한 나라의 왕이 사랑하는 외동딸을 결혼시키고 사위에게 나라를 맡기려 는 생각을 하지만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해 공개 적으로 지원자들에게 꽃씨를 나누어주면서 제일 멋있고 아름답게 꽃을 키운 사람에게 공주를 주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육 개월이 지나 꽃 을 키운 화분들을 가져오자 모두가 아름다움에 감탄했으나 마지막에 어 떤 사람이 흙밖에 안담은 화분을 가져와 온갖 정성을 들여도 꽃이 피지 않았다고 울며 고백하자 왕이 미리 계획한 생명 없는 꽃씨였기에 당연히 피어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것은 거짓이었다는 내용)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거짓 열매를 맺으면서 살려고 하는 것, 척 하는 신앙생활,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뭐라고 하셨습니까? 위선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화 있을지언정 이 서기관들이여 바리새인들이여 위선자들이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마음 깊은 곳(?)경건한 척이나 하고 기도하고 이런 가짜 열매를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싫어하십니다.
어느 교회에 가면 꽃이 비싸니까 조화를 해났습니다. 전 반대입니다. 좀 가증한 것 같습니다. 없으면 없지 가짜를 그렇게 놓으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 백성들이 왜 그렇게 종들이 소작료를 달라고 그럴 때 종들을 핍박하고 모욕하고 그런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 맺지 않는 삶 그 자체는 결국 자기 뜻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않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으려고 하니까 안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질문해봅시다. 얼마나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이 신앙생활의 열매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인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 관심이 많고 그리고 일 년 동안 이룬 우리의 성공과 업적에는 관심이 많지만 그러나 정말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열매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원인은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열매가 맺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열매를 언급하고 있는데 육체의 열매가 성령의 열매보다 훨씬 더 가지 수가 많습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육체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저 좋은 대로 살아가면 막 맺힙니다. 수박만한 열매가 맺힙니다. 바가지만한 열매가 막 맺힙니다.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막 맺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고 자기의 육체의 욕심대로 하나님의 뜻에 상관없이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이런 육체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 무거운 열매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열매 맺는 백성이 되라고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그 앞길을 예비하며 등장하였던 세례 요한이 와서 제일 먼저 외치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까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면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다. 사람들이 막 울부짖으며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 하고 그렇게 부르짖으니까 세례 요한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는 열매를 맺으라. 무슨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너희들이 가까이 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두려워서 회개를 하였다면 내가 진정으로 회개를 통해서 수립된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서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로부터 영양분을 먹고 물을 먹어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라.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가슴을 치면서 그 하나님의 심판을 메시지 앞에 깊이 회개하는 것, 그러나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니까 회개하고도 잘못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회개를 하고 난 다음에는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왔으면 이제는 거기에 뿌리를 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람이 흔들어서 뿌리를 흔들려고 할 때 바람과 싸우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붙들고 믿음을 붙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응답의 모양들을 붙들고 (?)내용들을 움켜쥐고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주 옮겨 심는 나무에 뿌리 맺는 법이 없습니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 아닙니까.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을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돌이켜서는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회개도 합니다. 깨닫기도 합니다. 마음에 결심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응답을 받았다고도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나아가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회개했는데 변화된 것이 무엇인가. 아닙니다.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는 별개입니다. 회개는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잘못된 길로부터 돌이켜서 올바른 관계가 무엇인지 알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은 여기서 그 하나님과의 수립된 관계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 진정한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부산에 교회에 갔더니 그 교회에 안내지를 만들었는데 제가 야, 어떻게 이런 문장이 사람들에게 떠올랐을까. 교회에 크게 써 붙여났는데 “인생의 방황은 신앙 안에서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교회에 정착함으로 끝난다.” 그게 우리 교회에만 나오십시오. 그 말보다 정말 멋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해보겠으니 음미해보십시오. 인생의 방황은 신앙에서 끝나고,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선택함으로 끝나고 두 번째 신앙의 방황은 한 교회에 뿌리를 내림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대다수는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곳에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때로는 오늘 아침에 이 마음을 찔렀는데도 그 찌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거기에 뿌리가 내리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바로 그것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 심판의 진노를 파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려고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 외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임박한 진노를 피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서 맺어가는 것입니다. 아멘! 할 대목인데 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매를 맺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옛날에 우리 학교에 귤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밀감이 크니까 끈으로 매달아놓습니다. 추운 겨울에 누구 집에 들어갔을 때 거실이 따뜻하고 노랗게 익은 밀감이 파란 잎사귀 밑에 서너 개 매달려있는 것을 보면 그까짓 것 몇 푼이나 하나. 기껏 하나에 천원밖에 더하겠습니까. 다 합해도 5천원밖에 안 되는데 5천원이 아닙니다. 그 거실에 분위기가 너무 신기합니다. 그러다 애들이 툭 쳐서 귤이 떨어지면 갖다 버립니다. 우리도 여기에 하나 있었습니다. 요만한 거 맺히는 나무, 다 떨어지고 나니까 볼품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다른 것이 훨씬 나니까 갖다 버립니다. 열매를 맺으니까 나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들이 정말 이런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주일 학교를 맡기니까 주일학교에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 하나만이라도 맺어야지,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면서 하나님, 내가 이 영혼들을 잘 돌보아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하고 거기에 마음을 모으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을 기뻐하시니까 이 사람에게 막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애들이 와도 자기의 반에만 오는 것입니다. 부흥이 되고 변화가 되고 다른 애들은 몇 달을 교회에 다녀도 그 모양이 그 모양인데 이 반에 와서 몇 주만 오면 예수가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시작하고 진리의 말씀이 싹이 트고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열매가 막 맺어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격이 모나고 그래서 많이 부딪히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던 사람이 어떻게 인격에 열매를 맺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인격만큼은 내가 끝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런다고 해서 그게 되는 것입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서 ‘이 결심 연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의 이름으로 빚으사 날 받아주소서’ 늘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기 시작하면 자기는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가지지 않았어도 그 속에서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믿지 않던 남편이 보면서 당신, 역시 교회에 나가더니 사람이 변했어. 믿지 않는 남편이보면서 당신이 믿는 하나님 정도라면 내가 한번 믿어보겠어. 그러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인격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열매가 없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기도원에 가면서 비가 많이 오니까 말랐던 골짜기마다 물이 흘러가는 경쾌한 소리가 들립니다. 너무너무 감사해 찬양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개울가에 심은 나무들이 비까지 맞아서 목욕까지 하니까 파란 잎사귀들이 청청하게 피는 것입니다. 그것을 열매 맺지 못하도록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 길가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이 열매 맺는 것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는 생명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이처럼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96.7.14 주일오전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2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눅20:13-15)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간절히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가를 그것을 9절부터 12절을 가지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종들을 보낸 것은 바로 그 주인이 소작료를 달라고 보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많은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어서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진정한 열매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불순종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열매를 맺는 대신에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은데 그 이유는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라는 그런 말씀을 지난 시간에 장시간 드렸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많이 보내었지만 이들이 계속해서 맞고 오고 혹은 능욕을 당해서 오고 심지어는 시체가 되어서 죽어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주인은 당연한 것을 그들에게 요구했는데 포도즙 틀도 주고, 포도원도 주고, 망대도 주고, 집도 주고 모든 것을 주었으니까 이제 농사를 지었으니까 당연히 땅 주인에게 소작료를 내어야 하는데 그래서 그것을 받게 하려고 종들을 보내었는데 그 종들이 소작료를 받아오기는커녕 계속해서 얻어맞고 능욕당하고 고난 받고 마지막에는 죽어서 시체가 되어서 실려 오는 이런 광경들을 보면서 보통 주인 같으면 당장 군대를 끌고 와서 요절을 내버리고 포도원을 다 뺏어버려도 정당한 것이지만 그러나 이 포도원 주인은 이번에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여태껏 보내온 사람들이 내 종이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직접 한번 보내보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아들은 공경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아들을 직접 보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은 결국무엇을 보여주시는가 하면 의심할 여지없이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말씀의 종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이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니까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백성들이 있지만 우리처럼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가까이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민족이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다. 그리고 많은 민족들이 있지만 우리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되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시는 민족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지 않은가.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무조건 어느 날 오셔서 연고권도 없이 너희는 무조건 이렇게 행하라. 이렇게 살아라. 이런 열매를 맺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제일먼저 호의로 다가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처음 부르시던 아브라함을 불러내는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원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는 하나님이다. 그리고 가르쳐주십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법이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조심해야지 됩니다. 어른이 계시고 어린 사람이 있으면 어른에게 아저씨, 혹은 목사님, 혹은 집사님, 애가 내 친구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애야, 이 분이 바로 우리 교회의 목사님이시다. 우리 아버님이시다. 우리 교회의 집사님이시다. 이렇게 인사를 시켜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이다. 천지를 만든 여호와 하나님이다.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아무 조건도 없이 내가 너에게 땅을 주고 많은 민족이 되게 하고 그리고 천하 만민이 너 때문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나도 축복하고 너를 미워하는 자를 나도 미워하리라. 하나님이 그렇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차례로 쭉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애굽을 출발했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제일먼저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백성들이 뭐라고 말하든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간절히 기도하기만 하면 어디서든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이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혜를 그들에게 충만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당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실 수 있는 근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땅을 주셔서 거기서 많은 이방민족들 가운데서 도저히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한미한 민족이 살아남을 수 없는 그곳에 기라성과 같은 발달된 문명을 가진 백성들을 모두 쓸어버리시고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을 갖다 심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렇게 당연히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기를 요구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올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짐승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의 법도와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올바로 하나님 앞에 살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날까지 우리를 인도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 포도원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낸 것처럼 계속해서 불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아들을 보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하나 발견할 수 있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폐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열매를 맺도록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많은 종들을 순교하게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오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래도 내 포도원을 차지하고 있는 이 농부들이 올바르게만 잘 가르쳐주고 나 주인의 마음이 올바르게 전해지기만 하면 이들이 소작료를 내고 내가 원하는 열매를 결실하리라. 하는 그 소망 때문에 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가르쳐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 열매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른 어떤 선지자와 주의 종들이 가르쳐주셨던 것보다 더 확실하게 분명하게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까지 하신 가장 뛰어난 일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서 주님이 눈물을 흘리셔야 할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시고 하나님ㄷ이 분노하셔야 할 그 자리에서 분노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백성들을 감싸 안아야 할 자리에 눈물로 백성들의 그 아픈 것들을 끌어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신 모든 일들과 가르침은 바로 그 시대를 향해 주시고 싶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얼마나 그 백성들이 열매 맺기를 원하셨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씨를 뿌리는 비유, 그 다음에 무화과나무의 비유, 그 다음에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장면 등등의 많은 농사와 관련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사실 그보다 본업은 목수였는데 집짓는 이야기도 물론 나오지만 그러나 씨를 뿌리고 농사짓는 비유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뭘 말해주는 것입니까?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간절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서 이처럼 특별한 열매를 원해서 택한 당신의 백성들인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라보시니까 이들에게는 열매가 맺혀지고 있었는데 이것들은 매우 흉악하고 더러운 육체의 열매들이었습니다. 술수와 분노하는 것과 당 짓는 것과 음행하는 것과 주님이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 그 15가지의 육체에 속한 수많은 열매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무에서 맺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찌하든지 그 백성들이 회개를 통해서 본질적으로 새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3년 동안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놔둔 것을 비난하시는 그 주인 앞에서 이 농부로서 한해만 더 여유를 주시면 두루 파서 거름을 주어 열매를 맺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비유로 말씀하시기 전에 뭐가 나오는가 하면 예루살렘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죽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그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회개에 관해서 말씀하시다가 열매를 맺지 않고 땅만 버리는 삼년 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드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이 제일 먼저 예수님에게 하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너희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제일먼저 백성들에게 외친 것이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자마자 제일먼저 그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게 말씀하셨던 이유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열매를 맺는 비결,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하늘나라의 열매들이, 신앙의 열매들이 맺어야 할 나무가 육체의 더러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 바뀌어져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 이것들은 모두 회개를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 회개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의 잔못들이 박힌 그 (?)동강나고 그리고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고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있는 우리의 본성이 변화되고 새로워져야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편에 흐르는 일관된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너는 회개하고 돌아가라. 왜 오늘 너희들의 삶속에 맺히고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어두운 육체의 열매들과 그리고 탐심과 그리고 여러 가지 이 세상에 많은 잘못된 불신앙의 열매들은 바로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우리의 모든 신앙의 뿌리를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 아버지 앞에 뿌리내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을 주님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육체의 열매를 맺는 데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씀을 지난시간에 드렸습니다. 어떻게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면 그러다 어느 날 영적으로 각성하고 눈을 딱 뜨고 자기의 인생을 보면 이름만 들어보던 육체의 온갖 더러운 열매들이 남김없이 자기의 삶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서 우리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노력을 하기 때문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잇대어서 살아갈 때 그때에 성령의 열매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고 그리고 하나님의 참 사랑에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그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말씀을 듣고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그 큰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가 하는 것을 깊이 회개할 때 우리의 이 삶의 본성이 바뀌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열매를 맺는 일들은 뿌리를 잘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아들이 가서 나는 바로 아버지가 직접 보낸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그렇게 이 아들이 농부들에게 말할 때 농부들이 이전에는 종들이니까 무시했지만 이번에는 아들을 보고 아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아들을 공경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그리고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농부들에게 아버지인 자기의 마음을 잘 전해주고 그리고 왜 그 소작료를 내는 것이 마땅한가 하는 것을 다 알려줄텐데 그러면 이 포도원 농부들이 감화를 받고 자신들이 바쳐야 할 모든 소작료를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처럼 이 주님에게 바칠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은 영광을 받고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하고 자기의 몸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자기의 몸을 대속물로 줌으로 말미암아 이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당신이 못박혀죽음으로서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그리고 그 백성들의 모든 죄를 자기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신 것을 보면서 백성들이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끊임없이 열매 맺는 삶을 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신 것이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것이 바로 열매였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당신을 통해 모든 백성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열매 맺기를 사모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농부들은 오히려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면서 이 사람이 바로 그 주인의 포도원을 상속받을 자가 아니냐. 그러니까 상속받을 이 자를 죽여 버리면 포도원 주인의 포도밭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이 아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이미 자기가 앞으로 그렇게 이 백성들의 반역을 받으면서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실 것을 보여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오늘은 우리들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 이제 마지막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그리고 이 땅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바쳐야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시고 싶으셔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노와 심판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노를 받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열매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소원은 정말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간절히 원하고 또 바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셨습니다. 그 아들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십자가에 못박혀죽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제는 좀 더 예전과는 달리 분명한 방법으로 이전에는 희미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는 길이고 그리고 열매를 맺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기뻐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지 않는 백성들을 얼마나 슬퍼하시는가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는 날 동안 주님은 열렬한 그런 정서를 가지고 사셨습니다. 왜 예수님의 눈앞에는 이 모든 세상이 하나님의 포도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밭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열매를 맺어서 이 세상의 믿지 않는 백성들과는 다른 백성들인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오늘도 찾아오셔서 동일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말씀을 통해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일깨워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백성들이 열매를 통해서 이 세상에 있는 백성들과는 구별된 백성들이 될 것을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이 포도원 농부들이 아들을 보내어주신 그 주인의 호의 앞에서는 이 농부들이 오히려 오해하고 이 아들을 죽여 버리고 그것이 마치 이 땅에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열매 맺는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오늘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을 불러 모으셔서 일깨워주시고 깨달아도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불러모아주셔서 영혼들 하나하나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 맺기를 원하는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하시는 것처럼 오늘도 또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렇게 다가오셔서 열매 맺는 삶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믿고 온 이후로 우리에게 베푸셨던 그 놀라운 사랑을 보십시오.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필요로 하지 않고 심지어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혹은 내가 하는 일들이 잘되기 때문에, 혹은 안 되기 때문에, 혹은 세상에서 너무나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혹은 세상에서 너무나 축복을 받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님 없이 넉넉히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이라고 해온 적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가 없이 사실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은 우리와 당신과의 관계가 그리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죄인 하나가 당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아갈 때는 너무나 쓸모없는 사람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그가 예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변화가 될 때 그가 맺게 될 열매와 그가 맺게 될 곡식은 누구도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다녀온 어떤 분이 겨자씨를 조금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 씨앗을 보니까 세계에서 존재하는 씨앗 가운데 가장 작다고 하는데 정말 작습니다. 먼지 같습니다. 그런데 그거 하나하나를 전도지에 붙여서 쓰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숟가락만 가지면 몇 달을 쓰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워낙 작아서 한 숟가락이면 수천 개입니다. 그렇게 돋보기로 봐야할 정도로 그렇게 작은, 깨알은 거기에 비하면 바윗덩어리입니다. 그렇게 작은 씨앗 그 자체가 바람에 날아다닐 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세상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며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거품과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그렇게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인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육체에 많은 열매들을 맺으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 진노를 쌓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번성한 것 같고, 세상에서는 잘나가는 것 같고, 성공하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하나님 앞에는 맺히는 열매가 더러운 육체의 열매밖에는 없습니다. 신앙 없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형통하면 죄밖에 짓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물질의 축복을 받고 건강하면 짓게 되는 것이 죄 밖에 더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세상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입니다. 심판받을 이 세상에서 쓸려 지나가는 티끌 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영혼이 본질적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때, 본질적으로 그 영혼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날 때 아무도 그 작은 씨에서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을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에 맺히는 아름다운 열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아름다운 열매룰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말을 타고 달려갈 때 그의 인생은 지푸라기와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가 거기서 빛으로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거꾸러지며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를 오갈 때도 그는 이제 흉악한 죄인으로서 처음 하나님을 만난 인생에 불과했습니다. 누가 그 인생을 통해서 그렇게 수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을 것을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제껏 불순종하며 살았다고 할지라도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고 변화되고 그리고 새로워지기를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껏 까지 불순종하면서 하나님 앞에 열매 맺지 못하고 살았다고 할지라도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변화되면 이전에 맺지 못했던 열매를 하나님 앞에 충만하게 맺어서 하나님께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믿으시기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죄인들을 찾아 나서시고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렇게 찾아다니셔서 그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화되기를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이 농부들이 아들을 죽이고 그 소유를 뺏으려고 했던 것처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인데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려드리려고 하는 대신 우리 마음대로 우리 인생을 살고 불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살아가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포도원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유로 이 말씀을 주실 때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결실치 않는 이 세상 나라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 앞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왔고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정녕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믿음인지를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통해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열매들을 통해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특별히 사랑하셔서 불러내신 주님의 제자된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삶과 생각과 그리고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주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오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열매를 맺는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주신 구속의 은혜를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잎만 무성한 교회들을, 우리의 신앙생활을 살피시면서 그 잎사귀 속에 무슨 열매가 있을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볼 적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신앙생활을 몇 년을 했고, 또 그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우리가 변화를 받고, 또 알지 못하던 많은 신앙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전심으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열매를 보고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그렇게 보여주고 또 깨달아 알 수 있는 그런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결국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알려지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래서 이제 6개월이 지나고 다시 한 번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인격에, 우리의 전도생활에, 우리의 기도생활에, 그리고 우리의 교회생활에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얼마나 많이 맺고 있는지 생각하고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더 풍성한 열매를 주셔서 열매 맺는 삶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도록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1996. 7. 21. 주일오전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3
내 집을 채우라(눅14:15-24)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룰 용서하도록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 위대한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한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구제를 베푸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행이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는 그렇게 행한 자들마다 모두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고 마시게 되는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이 한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이 있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고 먹는 것을 빌미로 위대한 비유의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게 되고 또 하나님의 교회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지 우리들도 또 어떻게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이 영광스러운 비유의 말씀을 하나씩 풀어가서 우리가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도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그 주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그런 시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잔치는 대게 저녁때 벌어집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든 일과를 끝낸 후에 그 저녁 시간이야말로 가장 잔치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큰 잔치가 베풀어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잔치에 참여할 사람을 두 번에 걸쳐서 초청을 합니다. 한번은 미리 앞두고 몇 년 몇 월 며칠에 잔치를 하니 그때 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초청을 하고 그 다음에 다 잔치를 준비해놓고 임박해서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니 빨리 오십시오. 이렇게 두 번을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어놓은 것과 같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잔치를 베풀어놓은 것, 잔치에는 풍성한 것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먹어보지도 못하고 마셔보지도 못한 음식과 음료들이 많이 펼쳐져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기 위해서 펼쳐진 잔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이북사람들이 너무나 먹고 살기가 고달프니까 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갑니다. 중국으로 가보니까 북한 사람들에게는 이 중국이 천국입니다. 왜 천국이냐고 하니까 먹을 게 너무너무 많다고 합니다. 중국은 인구가 엄청나게 많지만 땅이 워낙 기름지고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리고 소련과 같이 한 대 지방에 있지 않으니까 어디에 곡식을 심어도 기름지게 곡식이 많이 나옵니다. 그 12억의 인구가 곡식이 모자라서 굶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진짜 전 세계의 문제꺼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먹을 것이 없어서 외교관조차도 리셉션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파티가 끝날 때쯤이면 봉지를 가지고 먹을 것을 주워 담아가는 그렇게 어려운 나라에서 중국 땅에 들어가 보니까 이것은 완전히 천국이라고 합니다. 왜 문제가 그 사람들에게는 먹고 사는 게 문제이기 때문에 천국으로 여겨집니다.
한국 사람이 중국에 가보니까 길거리에서 고기를 파는데 소를 거꾸로 매달아놓고 잘라서 파는데 팔다가 남으면 버립니다. 그게 북한 사람의 눈에는 천국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또 환경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캐나다 같은 나라를 천국이라고 그럴 것입니다. 이번에 보니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나왔습니다. 공해에 찌들게 살던 사람들은 오다가다가 숲속에 집 하나씩 있는 그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 속에 사는 캐나다를 보면서 천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고민거리가 많은 사람들은 고민거리가 없는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이 하나님이 다스려주시는 곳이 천국이라고 간단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주님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바로 우리의 생과 사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과 삶의 주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다스리고 나의 자아와 나의 삶을 모두 통치해주시도록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여기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 이렇게 마음속에서 천국이 이루어진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들이 모이면 그 나라는 마치 천국과 방불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있고 또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그리고 복종하면서 살지 않을 때 의와 희락과 평강이 사라지고 불안과 두려움과 갈등이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또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안 이루어진 것입니다. 미래에 있습니다. 어째든 미래에 있든 현재에 있든 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은 큰 잔치를 베풀어놓고 잔치할 시간에 종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준비해놓으시고 이렇게 천국에 들어와서 천국에 복락을 누릴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주님이 먼저 가셔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잔치할 시간에 종들을 보낸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오늘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도가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방법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리고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속에 건설하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은 바로 이 모든 일들을 사람들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천사를 통해서도 하지 않으시고 누구를 통해서도 하지 않는 이 일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도를 통해서 이 일들을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가 하고 물을 때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나 여러분이나 똑같이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때까지 거기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초청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종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이미 초청받은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기를 모든 것은 준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와 예수를 믿는 것은 관계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급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문제이고 갈등의 문제이고 결핍의 문제이고 인간관계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 모든 것의 답이 다 예비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은 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한 주인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 모두 우리가 근심하고 질문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이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모든 평강과 희락과 의와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들을 신앙의 세계 속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당신이 만들어놓으신 하나님의 나라에 와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들을 누리고 맛보고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비유를 보십시오. 종들을 통해서 이렇게 거저 잔치에 와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도록 불렀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일치하게 사양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일치하게 사양하여” 그랬습니다. 사양했지만 사실은 엄격한 의미에서는 사양했다기보다는 거절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세 사람이 나옵니다. 한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가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땅을 많이 사놨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나 즐거워서 잔치 같은 것에 참여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한 대로 이 사람은 집에 집을 연하고 밭에 밭을 연하여 그렇게 부동산을 늘리는 재미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왜 밭을 보러 지금 갑니까? 그러면 땅을 살 때 땅을 보지도 않고 문서만 보고 땅을 샀다는 말입니까? 핑계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즐거워하기 때문에 잔치에 갈 수 없다면 한 사람은 또 소를 시험해봐야 하기 때문에 잔치에 갈수 없다고 말합니다. 소를 샀는데 이제 시험해보면 뭘 합니까. 무를 것도 아닌데 소를 시험해본다는 이야기는 아마 힘을 시험해보거나 혹은 소가 얼마나 튼튼하게 번식을 잘할 것인지 그런 것들을 시험해보는 것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즐거움 때문이었다면 이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잔치에 참여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습니다. 또 한사람의 변명은 그럴 듯, 합니다. 나는 장가들었기 때문에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그래도 말이 될법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보면 장가를 들면 일 년 동안 군대도 안 보내고 집에서 자기 아내를 즐겁게 하도록 정해져있습니다. 한사람이 걱정 때문에, 또 한사람이 즐거움 때문에 잔치에 못 갔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사람 때문에 매어서 잔치에 갈수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변명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의 변명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교회에 출석하면서 아직까지도 거듭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고 마시는 진정한 즐거움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야 되겠습니까? 예수를 3년, 4년, 5년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변명을 해야지 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변명은 너무나 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 알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예수를 믿는 것은 복잡한 게 아닙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옵니다. 나는 한 번도 어떻게 해서 팔당에 있는 물이 우리 수도꼭지까지 나오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틀면 나옵니다. 리모컨이 있습니다. 이것을 누르면 어떻게 전선도 연결되지 않았는데 누르면 이렇게 에어컨이 들어오는지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는 사실은 더워서 누르면 켜지고 또 추워서 누르면 꺼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못된 사람이 많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어디든지 가짜가 있다는 것은 진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 위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 중에 예수 안 믿는 사람들보다 못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못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안 믿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 중에는 택시를 타고 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신문을 보셨을 것입니다. 거의 매일 빠짐없이 신문에 나는 기사가 무엇입니까? 택시를 훔친 강도가 택시를 탄 사람을 협박해서 돈을 빼앗았느니, 성폭행했느니, 아니면 인신매매를 했느니, 산에 데리고 가서 밧줄로 묶어놓고 죽였다느니 그런 소식을 매일 들으면서도 여러분들도 타고 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시내버스가 늘 돌아다니다가 잘 부딪히고 사고를 냅니다. 지하철에 가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서서 몇 시간 동안 캄캄한 굴속에 갇혀서 아수라장을 이루는 일을 우리는 매일 신문지상을 통해서 TV를 통해서 보도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지하철을 타고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은 죄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아직은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병원에 갈 때 병이 너무나 중하기 때문에 의사에게 미안해서 갈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바빠서 예수를 믿을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바쁩니까? 바빠도 여러분, 인간들이 자기 할 일은 다합니다. 바쁘기 때문에 잠을 줄이는 사람은 있어도 잠을 자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한두 끼 건너뛰는 사람은 있어도 안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자기의 할 일은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하게 변명을 늘어놓고 여러 가지 변명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천국잔치를 베풀어놓으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쓸데없는 변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모든 사람들이 믿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천국을 예비해놓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어 새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답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많은 문제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다고 핑계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는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쉼을 얻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주인이 베풀어놓은 잔치를 사양하는 이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날 복음을 거절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저희를 구원하러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믿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또한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셔서 우리를 값없이 불러주시고 초청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들을 게을리 하고 또 핑계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게 하는 많은 요인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이 비유에 등장하는 초대받은 사람들처럼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즐거움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갈 필요를 못 느낍니다. 밭을 샀습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밭을 많이 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곡식을 심었습니다. 풍요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곡식을 너무나 많이 추수하게 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쌓아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는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머리에 지혜를 짜내고 큰 창고를 짓고 이 곡식을 저장해두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아 즐거워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밤에 네 영혼을 찾으면 그리하면 너의 소유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세상에서 있는 즐거움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느끼는 즐거움 이것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있는 모든 즐거움과 기쁨들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잠시 후에는 그 즐거움이 끝나고 인생의 진실 앞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밭을 사서 즐거움 때문에 이 사람은 너무나 소중한 잔치에 참여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이 잔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잔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걱정 때문에 소를 시험해보고 시험해봐야 이미 산 소인데 무를 수도 없고 어떻게 합니까. 많은 걱정이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줍니다. 기쁨과 사람 때문에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구원의 기회를 주신 이유에는 오늘 주인을 통해서 주님이 어떻게 하실지 보여주십니다. 주인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서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와서 잔치에 참여하라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못 간다고 하더이다. 정직하게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분노하였습니다.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호의를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주인의 호의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 주인은 분노하였습니다. 음식 하나를 장만하고 짐승 하나를 잡고 음료하나를 준비하고 잔치 상에 수저를 놓으면서 이 주인은 거기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즐거워할 그 순간을 고대했습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 그 사람들이 와서 자기의 잔치자리에 와서 즐거워해줄 그 일을 보면서 기뻐하고 그리고 즐거워하면서 그 일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거절했습니다.
확실히 잔치 집에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결혼식에 가서 사람들이 썰렁하면 그 결혼이 꼭 무슨 사연이 있는 결혼식 같습니다. 집안에서 아마 엄청나게 반대를 하더니 결국은 집안 식구들이 꼴도 안 보겠다고 안 온 모양이다. 아니면 이게 형식적으로는 한번 가는 장가지만 아마 서 너 번 갔나보다. 그러니까 부조도 한번이지 네 번씩이나 할 수 없다. 그래서 안 나오나보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연이 있은 결혼식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잔치 집에 많이 가보았지만 주인이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불평하는 집은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 이유는 왜 그렇습니까? 손님들이 들고 오는 그 봉투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밥값이 많이 나오고 떡값이 많이 나와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즐겁게 먹어주면 신나는 것입니다.
어느 잔치 집에서 큰 통돼지를 하나 잡았습니다. 그래서 바비큐를 해났습니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서 접시를 들고 사람들이 한 바퀴씩 도는데 반이 먹었는데 통돼지가 다 떨어졌습니다. 주인집에서 너무 즐거워했습니다. 오늘 잔치 음식 모자라겠다. 그러는데 전혀 걱정하는 빛이 아닙니다. 그렇게 잔치 집에는 사람이 와서 함께 먹어주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잘 준비해서 왔는데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있으면 왜 그런지 신이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기왕에 만들어놓은 것 한사람씩 와서 더 먹어봤자 표도 안 나는 것인데 많은 사람이 와서 먹으면 신이 납니다. 숟가락을 놓고 만들 자리를 마련하면서 이 주인은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온 사람들이 손에 손을 붙잡고 아! 우리를 이렇게 초대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잔치를 준비하시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잔치분위기를 생각하면서 오래전부터 잔치를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죽으셔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온 사람들을 구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부터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비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뒤에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대속제물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짐승을 들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언젠가는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구세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고 우리가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는 구원의 때를 미리 바라보며 환영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 나라에 잔치 자리를 즐거워하고 그 나라에 잔치 자리에 우리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경배해야 할 구원의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앞에 그 잔치 자리가 벌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으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호의를 거절하자 주인의 그 간절한 호의는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랬는데 바로 그런 구원을 약속을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오래도록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참으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구원의 모든 초청이 끝나고 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내가 초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초청하였는데도 이들이 거절하였으니 하면서 이 주인은 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진노한 가운데서도 이 주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이 거절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서 꽃피우게 된 신약시대의 장면을 가르쳐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종들을 불러서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가라. 가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있는 그런 곳에 가지 말고 길거리나 산울가로 가서 길거리에는 거렁뱅이가 많고 산울 가에는 노동자들이 많은 곳입니다. 거기에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가난한 자와 병신과 소경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강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강권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강요가 아닙니다. 가서 오랏줄로 묶어서 끌고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이고 간절한 권면을 뜻하는 것입니다. 왜 이 잔치에 와야 하는지 그리고 이 잔치가 얼마나 훌륭하고 축복된 자리인지 인격적으로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그들의 지성을 깨우치고, 그들의 인격에 호소해서 그들로 하여금 감화 받고 그들 스스로 잔치자리에 나오도록 만들어주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에 있어서도 이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주인이 부른 자들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경되고 저는 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과 저는 자들을 불렀습니다.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이 잔치에 나올 사람들 같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배고프기 때문에 그 잔치 상을 원합니다. 병신들은 자기와 같이 병신들을 잔치에 초대해주는 그 주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소경은 원래 하늘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생각되었습니다만 그래서 그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호의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주인은 고관대작들이 먹는 아름다운 잔치 상을 예비하고 여기에 오도록 이 소경들을 불렀기 때문에 이 소경들은 올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자들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부축해서 데려갈 종들까지 보내주었기 때문에 사람들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부른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였고 어떻게 살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를 사모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도와주심 속에서 인생을 영위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자기의 모든 염려와 근심과 고통을 하나님께 맡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런 가난한 사람들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부르시는 것입니다. 일찍이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모두 준비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르시기룰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여 천국이 그대들의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병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세상에서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병신과 다름없고 세상에서 이렇게 쳐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든 것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고 병신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자기를 높이는 교만한 마음이 없는 사람들 오늘도 주님은 당신의 잔치자리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에서 잔치에 참여할만한 사람이 전혀 그 잔치에 초대석에 앉지 못하고 세상에서 지위와 그리고 부귀를 따지는 그런 잔치에 있을 수 없는 버려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 잔치 상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소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일 일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사람들, 그리고 자기야말로 어리석고 우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소경과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로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는 자들과 같은 사람들도 주님의 나라에서는 대접받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스스로 일어날 수가 없어서 일어날 때마다 손을 벌리고 누군가의 복음을 원하는 사람들, 의지할 사람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주님이 가장 좋은 잔치자리에 앉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늘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고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구원을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생각하지도 않고 성경을 읽지도 않고 예배에 출석하지도 않은 세리와 창녀와 기생과 거지들과 병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먼저 들어갔습니다.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죄인이었기 때문에, 불쌍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먼저 구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바로 성경을 많이 읽고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보다 더 간절하게 마음에 가난함으로 뭔가 잔치자리와 같은 그런 영혼의 진정한 기쁨을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었지만 늘 그들은 그 죄로부터 해방되어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해를 누리고 살고 싶어 하는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온다고 하면서 우리가 교회 속에서도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려고 하지도 않고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지도 않는다면 오히려 세상에서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러면서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하나님 앞에는 천국에 가까이 와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 우리는 혹은 우리가 부유하기 때문에, 혹은 지식 때문에, 혹은 건강 때문에, 우리가 믿는 그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기를 연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가 자랑하는 부유나 우리가 자랑하는 지식이나 우리가 자랑하는 건강이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훼방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스스로 가난하고 병들고 그리고 소경되고 저는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 주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여기에서 “오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종들이 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주인은 직접 가지 않고 종들을 보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오소서 라고 말할 수 있는 종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 종들을 보십시오. 열심히 가서 전했지만 한사람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주인에게 그대로 정직하게 고했습니다. 전도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누가 추수할 자인지는 우리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전도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보고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해보면 그들 가운데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추수하도록 예비하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승패의 의무가 아니라 오소서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한 자나, 천한 자나, 병든 자나, 병신이나, 그리고 저는 자나, 소경이나, 가난한 자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맛보고 우리가 경험하여야 할 하나님의 잔칫상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준비되어있다고 소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인지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잔치자리에 모두 들어가자고 권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사랑을 예비하고 지금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고 주홍과 같이 붉은 죄로 얼룩진 사람들을 눈과 같이 희게 하여 당신과 사귀는 자로 만들어주시는 것이 그분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은 오늘도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잔치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담장 너머에서 잔치자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흘깃흘깃 쳐다보며 군침을 삼키던 사람들이 이제 그 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 잔치 상에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에게는 즐거움입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오시고 아직까지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신 분들에게 내가 말합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나온 것을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믿습니까? 아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주님이 여러분들을 위해서 예비해놓으신 이 천국에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나를 구원해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오래도록 교회에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고 회개하지 못하신 분,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남들은 나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주지만 그러나 왠지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고백이 없는 사람들, 아직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 불신앙의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우리가 대답해봐야 합니다. 한 주일학교 어린아이가 불치의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늘 기도하던 소원이 있었는데 아빠가 예수를 믿는 것이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이 아이는 병상에서 계속해서 아빠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완악한 아버지는 불쌍한 아들의 병을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복음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운명하는 순간이 다가왔는데도 아빠, 예수를 믿어요. 간곡히 부탁하는 이 아들 앞에 그래. 나도 주님을 믿을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빠에게서 어린 아이는 숨을 거두면서 아빠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이제 내가 죽을 텐데 내가 주님 앞에 가면 아빠가 왜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말씀드릴까요.
하나님을 아직도 주님으로 믿지 않는 여러분들이 여기 계시다면 오늘 여러분들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집을 나간 자식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님의 곁을 떠난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1996. 6. 16. 주일오전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4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막11:12-14)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예수님께서 이적을 통해서 당신의 뜻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드러내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이적 가운데 이 이적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저주를 하심으로 이적을 보이셨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저주함으로서 그 이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뭔가를 보여주시고자 했던 것이 이 마가복음 11장에 나오는 무화과사건이 유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베다니에서 나오실 때는 바로 고난 주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찬송소리를 들으며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그 다음날 일어난 일입니다. 이 사건은 요일로 보자면 월요일이고 계절로 보자면 4월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우 시장하셨다고 오늘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다니에서 나오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매우 시장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잠시 후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진정한 구원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많은 능력과 그리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일어났습니다. 귀신들린 자들이 나가서 온전하게 되고 그들의 놀라운 삶을 고치고 인생을 고치고 육체를 고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주리시며 시장하시니 인간의 결핍에 자신을 복종시키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하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은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제물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드려져야 했던 것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연약함을 그대로 지니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능력이 없거나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인간으로서 맛볼 수 있는 모든 슬픔과 고통을 모두 맛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스스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연약함을 그대로 자처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온 천하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어졌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그리스도 없이는 만들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당신을 십자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난의 주간에 들어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시장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결핍에 자기를 복종시키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실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이 느끼고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결핍을 자신도 체험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이 경험하는 모든 인간의 육체의 나약함과 인간의 육체의 모든 한계를 그대로 경험하심으로 말미암아서 후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실 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그 인간의 비참한 형편과 함께 그렇게 죄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들, 그리고 그 인간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연약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인지를 깨닫게 되셨던 것입니다.
세상에 계실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실 때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그렇게 매일매일 하나님께로부터 베풀어지는 육신의 양식을 필요로 하는 삶 속에 사시기를 스스로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뒤에는 말씀 한마디로 무화과가 저주받고 말라버리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그 앞에는 한조각의 떡이 없어서 배고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천사들도 우리의 약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천군과 천사들이라도 인간들 세계 속에 깃들어있는 하나님 없이 살수 없는 그 인간의 나약함, 인간의 연약함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배고픔과 춥고 고달픈 육신의 모든 한계를 체험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인간들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 없이 살수 없는 성도들인지를 그리스도 예수로 하여금 깊이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한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의 아픔을 깊이 느끼면서 그 사람의 고통을 깊이 공감하면서 기도하는 중보기도는 그렇지 못한 기도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고 위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서로 지켜야 할 형편을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에 보면 고통을 당하거나 병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있는 장로들을 청하여 오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또한 성도들에게는 자신 속에 있는 고통과 아픔을 지체들에게 말하고 목회자에게 알려주어야 할 의무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경건했던 믿음의 사람, 로버트 멕체인 목사는 그래서 토요일이면 늘 심방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토요일은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말씀을 준비해야지 돌아다니면 안 되는데 그 사람은 토요일이면 늘 심방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설교준비는 다른 날하고 토요일 날 병들고 약하고 슬퍼하고 고통 하는 자들을 심방하다보면 정말 직업적으로고 아니라 그 영혼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그 영혼들을 품에 안고 젖을 물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야 할 간절한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깊이 느끼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할 때는 파괴적이고 놀라운 중보기도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기도는 깊이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깊이 깨닫게 하실 때 그때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셔서 우리를 위해서 요한복음 17장에 그 위대한 대제사장의 기도를 간절히 드릴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눈물과 피와 사랑과 고통과 불로 녹아내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러시겠습니까? 우리와 같이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우리와 똑같이 한결같이 고통을 당하시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육체의 약함을 그대로 복종되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모두 아는 그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왕자로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신 한 형제로서 하나님 앞에 전도하며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적의 사건 앞에 예수께서 시장하신 모습을 성경이 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얼마나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 낮아지셨는가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참된 사랑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그 어떤 건강한 영적인 삶도 있을 수 없고 우리의 올바른 신앙생활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깊이 이해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또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의를 위해서 자신의 하나님으로서 그 인간의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오히려 포기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신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낮아지셔서 우리의 모든 연약한 것들을 모두 체험하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으니 우리로 또한 그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렇게 형제를 향해 그리스도를 향해 낮아질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무화과나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예수님은 잎사귀가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시장하셨기 때문에 그 무화과 잎에 뭐가 있나 하고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어떻게 거기 뭐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모를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배고프면 뭘 먹어야한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라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기억해야 합니다. 멀리 있는 잎사귀가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시면서 가까이 다가가셨지만 잎사귀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는 무화과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무화과 때가 아직 안되었으니까 무화과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에게 영원토록 사람이 너에게서 열매를 따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저주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우선, 주님이 이 사건을 말씀하신 것이 예루살렘 입성과 뒤에 성전을 정결케 하는 사건과 함께 나온다는 점에서 이것은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경고라는 사실을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두 가지 과목이 자주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무화과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포도나무입니다. 이사야에서는 이스라엘을 이 두 나무로 비유한 풍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서 5장은 이스라엘 백성은 포도원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포도원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무화과나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무화과나무를 향한 저주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국가적인 저주라고 하여도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한 교회로 보고 그 교회를 향해 예수께서 저주하신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첫 번째 진리는 이것입니다. 본질적인 변화는 반드시 열매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잎사귀밖에 없는 무화과나무는 잎이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었습니다. 반드시 잎이 있으면 열매가 있어야 할 이 나무가 잎만 있고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질적으로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본질적인 변화는 반드시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화단에 나무가 몇 개 있었는데 화분에 담았습니다. 그 중에 죽은 나무를 전부 갖다가 저 구석에 보이지 않게 치웠습니다. 나무 화분이니 쏟아버릴 수는 없고 안 보이는 곳에 갖다났습니다. 그런데 비가 몇 번 온 뒤에 가보니까 버려진 화분에서 다시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물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무가 살아있는 것은 그 나무의 뿌리를 굳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자라나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 그 나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적인 변화는 반드시 열매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열매를 맺으려고 애를 써서가 아니라 늘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는 생명의 상태를 유지함으로 말미암아서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신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 사건은 단지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질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형식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또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절기마다 사람들은 대회로 모이고 또 절기로 모였습니다. 안식일마다 사람들은 모였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죄사했습니다. 수많은 제사장들이 성전을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로 심으실 때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의와 신의 열매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이 세상 백성들과는 다른 의로운 삶을 살아가고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의를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특징을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삶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며 의뢰하는 믿음 속에서 살아가기를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제든지 이 신앙생활을 종교생활로 바꾸려고 하고 영적인 삶을 교회생활로 바꾸려고 하는 경향이 언제나 있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 사건을 보면서 본질적인 변화는 반드시 열매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잎사귀만 매달렸기 때문에 무화과나무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잎사귀와 함께 반드시 있어야 할 열매 없음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인간에게는 어떤 종교적인 심리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인 의무를 감당하면서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할 때 사람들은 흔히 그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겉모습을 가지고 사람들은 바꾸고 싶은 경우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그러면 종교적인 위선, 사람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는 교회생활과 신앙생활, 이런 것들을 통해서 스스로 본질적인 변화를 통해서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잎사귀가 없으면 열매가 없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잎사귀가 무화과나무 자신을 뒤덮었습니다. 그래서 열매가 있는지 없는지를 감추어버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때 우리의 모든 풍부한 신앙생활은 우리의 풍부한 교회 생활은 하나님 앞에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으면서 우리는 그 풍성한 교회생활, 늘 교회에 출석하고 남보다 뛰어난 열심히 늘 교회를 섬기고 언제나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니는 그런 사람의 삶, 그런 사람의 삶을 통해서 열매가 드러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감추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서부터 열매 맺기를 포기한 삶입니다. 지금 이 나무는 잎사귀 때문에 책망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잎사귀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될까요? 앙상한 나무에 열매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죽은 나무입니다. 때가 4월입니다. 이제 잎사귀를 내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과목들이 잎을 내고 그렇게 푸른빛을 띠는 그때입니다. 그때에 잎사귀조차도 없으면 그 나무는 죽은 나무입니다. 지금 주님은 잎사귀를 책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본질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잎사귀 때문이 아니라 열매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 모든 것들에서 좀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쉬고 싶을 때 쉬면 늘어나는 것은 부패와 게으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는 우리의 열심 없는 교회생활, 우리가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열심히 있는 우리의 종교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적인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주일날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가서 우리에게 아무런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변화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어떤 삶을 살게 하시는지를 오늘 우리가 알지 아니하면 우리가 평생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 앞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난하셨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런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셨습니다.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열심은 탁월할 정도여서 감히 웬만한 사람이 쫓아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의가 서기관보다 낫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보다 나은 그 의가 어떻게 획득되어집니까?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나약함과 그리고 모든 비참함에 자기를 굴복시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하신 사실을 깨달아 알고 우리의 심령이 진정한 변화를 경험할 때 그때 우리는 서기관보다 나은 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많이 다녀도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우리의 본질이 하나님 앞에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설교하면서 보면 모든 교회가 다 그렇겠습니다만, 우리 교회를 포함해서 모든 교회의 교인들, 또한 저를 포함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습니다. 교회에 오는 것도 참아주고, 헌금하는 것도 참아주고, 봉사하는 것도 참아주는데 끝까지 못 참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못 참습니다. 그만큼 변화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마른 무화과나무 앞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본질이 변화되지 않으면 너희의 그 풍성한 종교적인 생활이 사람들은 보면서 감탄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님께서 이처럼 본질적인 변화를 깊이 갈망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풍성한 잎사귀와 같은 교회생활을 돌아보면서 이것들이 나의 신앙생활에 정말 무엇을 가져다주는 것인가를 본질적으로 다시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성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들 때문에 우리가 변화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간절한 변화를 그리워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살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룰 드리러 나오는 태도가 시장을 보러 가는 태도와는 달라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예배에 나왔을 때 우리가 언제부터 꿈꾸었습니까. 그리고 어떤 갈망으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예배드려질 그 순간을 꿈꾸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 나왔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이런 의식을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려야 합니다.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우리의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의 습관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생명이 깃들어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그 풍성한 종교적인 수많은 행사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들이 안식일마다 모이는 회당에 수많은 무리들에 하나님께서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문제는 그 백성들이 진정으로 변화되어서 본질이 바뀌어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는 이런 일들을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말씀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나면 놀라운 열매들이 맺혀지게 됩니다. 그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변화를 받고 나면 본질적으로 변화되고 나면 그것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피가 흐르지 않던 발에 피가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감각이 살아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가끔 들에 나무를 심거나 혹은 꽃꽂이를 하는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식목일날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잘라서 개나리 같은 것으로 꽃꽂이를 합니다. 잘라서 갖다 꽃아 놓으면 피게 됩니다. 개나리가 피면 그 개나리를 쳐서 때로는 잎이 달리고 꽃이 달려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을 죽 밭에다 꽃아 놓으면 이른 아침에 심어놓으면 점심시간에 해가 내려쬡니다. 그러면 거기에 매달렸던 이파리가 다 죽는 것 같습니다. 다 마릅니다. 그러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다시 이파리가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뿌리가 내리기시작하면서 그 안에 생명이 돋아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질적인 변화도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를 보고 또 우리 자신을 경험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혼이 하나님 앞에 놀라운 변화를 받고 나면 그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서 열매를 못 맺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본질이 바뀌고 나면 혼란 자체가 바꾸어집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와 붙어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접붙여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그 진액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을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제나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그 진액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변화를 받고 부분적으로 바뀌고 나면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생명의 수액을 먹지 않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변화 받지 못하고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을 때는 그런 것이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너무나 잘 아십니다. 특히 거듭났고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교회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맛보았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의 진액을 먹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깊이 예수님께서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꿀 때까지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변화되고 나면 이제는 세상에 있는 돈이나 명예나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먹어도, 먹어도 목마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이 놀라운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답게 변화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매일매일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는 그 생명의 양식을 먹고 싶어 합니다. 왜? 그것이 변화된 자신의 본질을 얘기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병이 들면 세상에 없는 것 해다 주어도 안 먹습니다. 먹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몸살이 나서 며칠 앓고 나면 그때야 소고기국을 끓여줍니다. 맛이 하나도 없습니다. 잘 먹고 싶을 때 그때도 끓여주면 좋을 텐데 건강할 때는 일절 없다가 몸이 아파서 동리에 다라니에 이고 온 아줌마를 할머니를 불러서 그것도 외상으로 고기를 사서 끓여줍니다. 그때는 맛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병들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시시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도 가서 어떻게 한 시간을 견디나. 오늘은 왜 그렇게 찬송을 많이 하나. 아니 오늘은 왜 기도를 두 시간씩이나 하나. 오늘은 제발 우리 목사님이 열 받지 말아야 한 시간 안에 끝날 건데. 이런 생각하면서 교회를 나옵니다. 그러나 변화를 받고 나면 이 속에서 변화된 본질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그 영혼의 갈망들이 영혼에 간절한 요구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거기 은혜의 물에 담기고 싶어 합니다. 마시고 싶어 하고 먹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한 주일에 한 번씩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는 것 가지고는 도저히 갈증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요일까지 나오고, 그래도 채워지지 않아서 금요일 날 나오고, 그것도 채워지지 않으니까 새벽에 나오고, 그것도 채워지지 않아서 책을 읽고, 그것도 채워지지 않아서 기도하고 수시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구합니다. 이런 영적인 필요들이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이것은 영혼에 본질의 변화를 유지하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나무가 밑으로부터 온도가 맞고 나무가 지하에서 끊임없이 물을 빨아들이는데 그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나무가 연구대상입니다. 끊임없이 생명의 수액을 먹으면서 반드시 열매를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온도가 맞고 기온이 맞고 그리고 끊임없이 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나무에게 제발 열매 맺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나무 자신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열매가 맺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께서 지적하고 싶으셨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잘못되어있는 이 관계를 예수님께서는 지적하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본질적인 변화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 변화되지 않으면 그러면 우리는 아무 열매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서 목회자들을 통해서 또 주위에 있는 지체들을 통해서 열매 맺는 삶을 살라고 경고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열매 맺는 삶을 가르쳐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현 듯 인생의 막이 내리고 그리고 내 인생과 의미를(?)하고 여러분들이 바구니를 들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죄와 탐욕과 저주받을 이 세상의 육신의 열매가 가득한 것을 여러분 손에 들고 있는 이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깨달아 안다면 하나님 앞에 아마 소스라치게 놀랄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정해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내가 가르친 학생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 제가 설교를 하러 갔습니다. 6년 정도 지나면서 100명 정도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것도 동기들 가운데 예가 없을 정도로 빨리 성장한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물어봤습니다. 첫해에 얼마나 모이던가 하고 물었더니 한 30명 될까 말까 모이고, 그 다음에 얼마나 모이더냐. 한 40명 정도 모이고, 그 다음에 얼마나 모이던가. 계속해서 안 늘어났다고 합니다. 안 늘어날 때 그 목회자가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기도하면서 매달리니까 3-4년 정도 되니까 한 50명 정도 되더랍니다. 5년 지나면서 한 6-7-명 정도, 그러면서 6년이 되어오면서 100여명 정도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사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봤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늘어나는데 정말 목회자의 양심으로 볼 때 변화된 영혼의 수치는 어떻겠나. 물어보니까 목사님, 그게 참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정말 사람들은 모이는데 자기가 보기에도 100-120명 모여도 자기가 보기에도 목회자의 양심으로 저 사람은 예수를 정말 만난 사람이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열댓 가정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은 야단을 치고 뭐라고 말해도 죽어도 하나님의 교회를 떠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 사람들이 충성하고 그 사람들이 봉사해서 그래서 이번에 큰 교회로 옮겼습니다. 우리 교회에 한 세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그런 교회입니다. 결국 공통된 모든 목회자들의 고뇌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다른 곳에도 가지 않으시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에게 정말 참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참된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복음이었는데 그리고 우리는 말로 하지만 그분은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정말 이적과 표적을 통해서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가끔 모여서 이야기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시고 이적으로 그 복음을 확증하시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놀라운 하늘나라의 비밀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시면서 일평생을 사셨고 이제는 그의 공생애가 마무리되는 고난주간의 시점까지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질적으로 변화되지 않은 이 무화과나무를 기다리고 있는 심판대에서 경고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실 때 그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정말 그 모든 종교생활이 풍성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인과 세리와 같은 사람들은 훨씬 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은 바로 이렇게 숨겨놓고 은밀하게 짓는 죄, 그리고 종교적인 껍질 속에서 인간이 짓는 모든 죄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소망이 없습니다. 오히려 공개적인 죄인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양심을 가책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셨을 때 죄인과 세리들이 오히려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께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의지하고 믿을 것이 없었습니다. 정말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주고 그리고 망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쳐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그 구원의 역사가 아니면 자기에게 진정한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죄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죄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영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풍성한 종교생활도 자기 자신들의 영혼의 모든 그 염려와 자신의 영혼들을 향하여 가져야 할 그 모든 관심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여러분이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본질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변화 받지 못한 사람이 변화 받은 사람을 좇아가면서 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질이 하나님 앞에 변화될 때 우리는 물 흘러가는 것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들을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본질적으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열매를 구하러 다니는,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구하러 다닌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열매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어떤 삶인지를 하나님 앞에 깊이 깨닫고 무화과나무보다 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본질적으로 변화되도록 우리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열매가 없는 우리의 삶을 보면서 슬퍼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가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끊임없이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이 많은 이파리들이 주님의 관심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여러분들을 영혼이 하나님 앞에 본질적으로 변화되어서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을 깊이 느끼고 거기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진액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이되기를 하나님께서 너무나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진노하셔서 메마른 이 나무를 보면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 믿음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것들을 목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열매 맺지 않은 이 나무가 내가 저주하면 반드시 말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경고거리가 되리라고 하는 그 확신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주님이 부르신 나무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부르셔서 그래서 여러분들을 이제 이 열린 교회로 옮겨 심으셨습니다. 때를 따라서 햇빛을 주시고, 때룰 따라서 물을 주시고, 때를 따라 가지를 쳐주시고, 때를 따라 해충을 잡아주십니다. 비료를 주시고 주위를 두루 파서 많은 결실을 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맺고 본질적으로 변화됨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에게 베풀어주셨던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해보십시오. 알지 못하는 우리를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고 그리고 우리는 고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고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책망하고 교훈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의 가지를 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의 비를 부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자라가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여러분, 농부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안 주신 것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많은 변화의 때를 잃어버리고 살아오지 않습니까? 교회에 나간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다니라고 명하신 교회에서 떠나지 않고 다닌다는 그런 이유, 그리고 작은 것들을 하나님 앞에 섬기고 있다는 이런 이유 등등의 이 모든 일들로 우리의 마음이 부요해지고 그리고 본질적으로 변화되기를 싫어하고 그날 하루하루 때우듯이 직장에 가서 출근부 도장 찍고 월급 받아가는 사람들처럼 우리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퇴근시간만 기다리면서 한 시간에 얼마짜리 계산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사람이 도장을 찍습니까. 의무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간만 가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든지 시간만 가기를, 시간당 이천 원이니까. 시간 가기를 기다립니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소중한 변화의 기회들을 수없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인생이 촛불처럼 타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진정으로 변화되고 본질적으로 변화된 삶이 되어서 열매 맺는 것이 하나님께 급한 일입니까, 우리에게 급한 일입니까? 너무 심각합니까? 우리에게 너무나 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늘 변화해도 수시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약에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나 명예에 대한 그런 집중된 마음만큼만 우리가 우리의 영혼에 대해서 잠시만이라도 지속적으로 마음을 기울인다면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복된 사람들로 보일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사업을 하는 사람들, 뭔가 커다란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7번 쓰러져도 8번 일어나면 결국은 이기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룸에 있어서 정말 입지전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인간승리라고 불러질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것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한하게 제공해주시는 영혼의 변화, 본질적인 변화로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수많은 변화들을 그렇게 간절히 목마르며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잠시 떠올랐다가는 곧 흩어지고 잠시 떠올랐다가는 곧 잊어지는 이런 속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이 무화과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주리시면서 까지 그렇게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시고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는 그 이유를 성경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서 너희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심은 내 백성이니라.”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하나님의 무화과과수원에서 너희는 풍성한 열매로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주위에 두루 파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변화를 갈망하며 열매를 맺는 데로 나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1996. 6. 23. 주일오전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5
새사람을 입으라(골3:9-10)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이 성경구절이 조금 말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 번 번역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9절과 10절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원문성경에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너희는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는 옛 자아, 너희의 옛 생활과 함께 옛말을 벗어버렸고 또 새로운 자아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새 자아는 자신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형상 안에서 지식 속에서 새롭게 되어져가고 있는 새 자아입니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제 그 번역을 좀 유의하시고 오늘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옛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은 다음에는 새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옛 사람에게는 옛 생활이 있고 새 사람에게는 새 생활이 있습니다. 여러분, 옛 생활은 어떤 생활이었습니까? 옛 생활에 대해서 성경이 주고 있는 그림은 옛 생활에 속한 사람들은 욕심과 육체의 정욕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옛 생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골로새서 3장에서는 사도가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니까 너희는 위에 것을 생각하라.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런 성도의 신령한 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 지금 3장을 기록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의 신령한 생활과 함께 그 성도들이 신령한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철저히 죽여야 할 생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옛 생활입니다. 옛 사고, 옛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럼 왜 옛 생활이 이렇게 옛 생활, 또 옛 사고, 옛 습관 이런 것이 있는가. 그것은 쫓아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의해서 애굽에서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을 떠나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애굽을 떠나오고 난 다음에 결코 바로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요히 가도록 만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옛 생활이 생활을 추적해오는 그 그림을 이미 그때 보여주었는데 애굽의 병사들이 쫓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결국 두 가지의 커다란 반대에 부딪힌 것입니다. 무언가 하면 미래를 향해 신앙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현재의 난관,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뒤에서 추적하는 옛 생활의 습관, 옛 사람의 모습 이것이 우리들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에게는 옛 습관이 있고 그리고 그 옛 사람은 감각과 자기의 혈기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의 모습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인데 결국 이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은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욕심을 죽이는 삶을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예수를 믿기 전에도 여러분들 가운데 비교적 착한 삶을 살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형편없이 사는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도덕적인 생활을 해온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생활도 결국 뒤집어보면 그 속에서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과 감각이지 결국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주관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각각 이 세상의 선한 뜻을 바라보면서 살고 또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추구하면서 사는 옛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도 뒤집어보면 그 모든 삶이 우리의 삶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그리고 그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데서 비롯된 도덕적인 생활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그 생각과 감각과 혈기와 육체의 원하는 바를 따라 살아온 것이 바로 옛 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옛 생활을 그리스도인들이 자꾸 쫓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 생활이 끊임없이 추격해서 우리로 하여금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옛 생활의 멍에를 씌워서 옛 생활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옛 생활의 습관이 우리를 추격해올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거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들이 맛보고 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알고 지식에 새로움을 입고 오늘 우리로 하여금 옛 사람을 버리고 새로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어진 피조물이 되어서 주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오늘 우리가 갖지 않으면 우리는 옛 사람의 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오늘 우리에게 언제나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제가 아니라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항상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하는 하늘의 은혜룰 공급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들으신 분들은 몇 번 들으셨는데 제가 담배를 많이 핀 사람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갑, 반씩 담배를 피었습니다. 지금은 그러신 분은 여기에 없겠습니다만 그런데 하여튼 인간의 열심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몇 번씩 결심해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도하니까 은혜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담배를 끊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안 되어서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까 담배 연기만 맡으면 그 속에서 똥내가 나더랍니다. 그러니 그 전날까지 맛있게 핀 담배를 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신비한 방법으로 끊어 주실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닙니다. 담배를 끊었는데 그 다음부터 모든 사람 앞에 라이터도 주고 담배도 주고 그렇게 담배를 끊었다고 공언을 일부러 했습니다. 왜 그러면 창피해서라도 끝까지 안 필까봐. 그렇게 끊었는데 팔일 동안 금단현상이 나타났는데 밥만 먹고 나면 사람이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담배를 핍니다. 예비군 훈련을 가면 사람들이 담배 한 대를 나누어서 먹으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결국 끊었습니다. 사탕을 두 봉지씩 먹으면서 악착같이 끊었는데 3년 가까이 꿈에 보입니다. 담배 한 대씩 피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는 좌석버스를 타고 가는데 앞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혀 의식이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서 흠! 하고 들이마시는데 그게 담배를 끊은지 3년 반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옛 사람의 습관이 얼마나 집요하게 우리를 추적해오는지 말도 못합니다.
누가 이 세상에서의 죄에서 이제 나는 자유로워졌다.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옛 생활의 습관은 본성적으로 타고났고 수 십 년의 세월을 지속해왔습니다. 경건한 신앙으로 결심을 하고 새롭게 살고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워하며 살기로 결심한 모든 신앙의 결심 신앙의 생활은 이제 겨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습관을 따라 기도하신 예수님, 여러분, 기도의 습관이 거목처럼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까? 뭐가 뿌리를 내렸습니까. 며칠만 쉬어보십시오. 기도를 안 하는 게 왜 그렇게 편한지, 새벽기도 며칠만 안 나가보십시오. 맛들입니다. 이거 할 만하구나. 왜 우리의 본성 자체가 타락했습니다. 거기에다 우리의 신앙이 깨어있으면 그것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옛 생활에 습관을 벗어버리고 살아가는데 그 신앙조차 없으면 오늘 그런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따라 살아가게 만드는 그 오늘 현재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신앙생활조차 없으면 우리는 옛 사람의 습관이 우리에게 달려오게 우리는 쫓아가서 오래간만이라고 하면서 끌어안고 사랑할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게 옛 생활입니다.
그래서 어느 염장을 하는 장로님이 아주 인상 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닷물을 퍼다가 밭에 올려놓고 28일쯤 지나면 햇빛이 비추면 소금이 되는데 물이 약간 섞인 소금이 됩니다. 그래서 긁어놓으면 바짝 마른 소금이 됩니다. 그것을 소금 가마니에 담아서 묶어놓고 배에다 실습니다. 그런데 겨울에 김장할 때 그 소금을 풀어서 소금물을 만들어서 하려면 이 소금이 그렇게 안 녹습니다. 더군다나 날도 춥고 그러면 정말 안 녹습니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나는 게 김장을 담글 때 빨래방망이 같은 것을 집어넣고 막 흔듭니다. 그래도 잘 녹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소금을 배에 실다가 떨어트려서 바닷물 속에 풍덩! 들어가고 나니까 잠깐 사이에 집게로 다시 꺼냈는데 한 2분밖에 안 흘렀는데 가마니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 장로님 하는 말씀이 성도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서 취해 온 존재가 아니라 죄 많은 세상에서 더럽게 살아가는 인간들을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불러내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소금이 바다에서 취해진 것처럼 성도들도 세상에서 취했기 때문에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기만 하면 성도의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순간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죄에 물들어서 옛 사람의 생활을 즐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옛 생활과 행위를 벗어버리고 살아가지 못하게 되면 새사람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새사람을 입고 생활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말만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우리의 삶으로는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고 진실에 있어서는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우상에 숭배하는 탐심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옛 생활의 생활은 이렇게 감각과 혈기를 따라가는 삶이고 새사람의 생활은 이성과 양심을 따라서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니 이 삶이 계속 승리해가고 이 삶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부단히 옛 사람과, 옛 생활과, 옛 행위를 벗어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이 옛 사람과 옛 행위가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이 말하기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려라. 옛 사람과 그 행위는 하나입니다. 변화되지 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변화되지 못한 옛 사람의 습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한 번에 은혜 받은 것 번쩍 들어서 다 깨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 습관에 지면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쩜 주위에서 보면 헌신도 그렇게 잘하고 지체들을 위해서 아까운 것도 없이 그저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그렇게 아까운 것도 없이 마음도 넓습니다. 아무 것이나 막 줍니다. 그렇게 열심히 섬기다가 어느 한순간에 팩! 하고 토라지면서 입으로 여태껏 쌓아놓았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들을 다 깨트려버립니다. 말로 다 깨트려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옛 사람의 행위와 습관이 우리로 한번 사로잡고 우리의 신앙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은 우리의 자아가 그것과 딱 만나게 되면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때 옛날에 하던 가락이 나옵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옛 사람과 옛 행위는 우리들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매일매일 벗어버려야 할 죄악, 매일매일 벗어버려야 할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숙제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너희가 은혜를 받으면 된다고 말하면 된다고 하지 아니하고 옛 생활의 습관과 행위를 벗어버린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 옛 생활과 옛 행위의 습관을 매일매일 벗어버릴 때 비로소 성숙된 모습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 사랑이 많은 사도가 뭐라고 말합니까?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 사람이 죽을 때 어떤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월남전에서 전쟁을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을 죽인 경험을 해서 고통하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첫 번 살인이 가장 무섭고 그리고 첫 번 살인 후에 두 번, 세 번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죽이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첫 번 살인할 때 표적에다 대고 그렇게 총을 많이 쏘고 별의별 이야기를 많이 듣고 영화에서는 그렇게 살인한 내용을 많이 보고 전쟁에서 폭탄이 떨어져서 수백 명이 한꺼번에 죽는 것을 수없이 많이 봤지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직장에 있던 동료 한사람이 밤 근무를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화해무드가 되었습니다만 그때는 정말 무섭던 시절입니다. 순찰을 하는데 물론 다 실탄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부석! 하고 탁! 만났는데 북괴군하고 불과 몇 미터 앞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 순간 어떻게 했는가? 했더니 그쪽도 이쪽도 모두 동태처럼 얼었다고 합니다. 방아쇠에 손을 꼈는데 손끝하나 못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북 애들이 씩! 하고 한번 웃으니까 그 웃음이 이제 계기가 되어서 서로 고개를 돌리고 흩어졌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없이 총을 쏘고 그랬는데도 적군을 만날 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살인의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살인을 하고 와서 며칠씩 악몽에 눌리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습관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오늘 옛 지체에 대해서 오늘 사도는 말하기를 죽여 버려라. 그것이 옛 습관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죽여 버려라. 한번 죽이는 것은 어렵지만 그러나 두 번, 세 번 죽이면 그 다음에는 우리의 옛 지체를 죽이는 일에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거룩해지고 경건해지고 그렇습니다.
여러분, 참게를 아십니까? 그 게가 장조림을 해먹으면 아주 맛있습니다. 그 참게가 원래 밀물에서 내려갑니다. 바다로 내려가서 새끼를 까고 그 새끼가 다시 민물로 올라옵니다. 그러다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다시 바다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참게는 어디서 많이 사는가 하면 바다하고 민물하고 겹쳐서 만나는 그런 곳에 아주 많이 삽니다. 그런데 이게 참 재미있습니다. 게가 털이 북실북실하게 났습니다. 그리고 게가 많이 있는데 그 게가 일생동안 한 24번 정도 허물을 벗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허물을 벗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어느 날 물속을 들여다보면 한 마리의 게가 두 마리의 게로 변합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다리에 있는 껍질까지 확 벗어서 그 껍질을 내버려두고 거기서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털, 그 다음에 게 껍질모양, 그것이 껍데기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거기서 나옵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거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바닷가에서 살면서 그 게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무엇인가 하면 집에서 어항에다 기르면 그렇게 빨리 벗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한번만 벗으면 벗는 즉시 쑥 큽니다. 또 한 번 벗을 때 쑥 자라고 그런데 게가 영양상태가 좋고 잘 먹으면 이것을 빨리 벗어버립니다. 잘 먹지 못하고 환경이 별로 좋지 않으면 잘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지체의 욕심을 죽이고 그리고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 버리면 한번 우리들의 옛 생활의 신앙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나면 우리의 신앙은 무척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이제 이 정도면 넘어섰구나. 또 옛 생활과 그 행위를 한번 벗어버리게 되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를 벗어버리게 된 것을 기뻐하시는구나. 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또 부쩍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깨닫는 것이 많고 영적으로 기도를 하고 많은 것을 공급받으면 옛 생활의 습관을 자꾸 벗어버리게 됩니다. 왜 새로운 자아가 우리 속에서 계속 생명을 갖고 역사하니까 옛 생활과 자꾸 충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옛 생활과 옛 자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꾸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벗어버릴 수 있는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을 때 우리는 이 옛 생활의 습관을 벗어버리게 되면 우리의 신앙이 부쩍부쩍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교회에 다니면 주일날 돈을 벌까, 나올까? 갈등을 많이 하는데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신앙적으로 새로워지게 되면 이제 그런 것을 가지고는 갈등하지 않습니다. 세끼 먹지 누구는 네끼를 먹나. 주일은 주님의 날이야. 주일을 지킬 수 있는 담대함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전에는 내가 믿음을 따라서만 살면 주위에 있는 내 사람들이 나를 멀리할 줄도 모르고 내 신앙을 따라서 살면 내가 사람들로부터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사는 일들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고 나니까 그러니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결심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옛 생활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성숙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옛 생활을 벗어버릴 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고 그리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만큼 깨달아 알고 결심하고 그것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더 깊은 뜻과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옛 생활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자기의 옛 생활 속에서는 육체의 감각과 그리고 혈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지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를 누리고 사람들을 지배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인간의 지혜와 사람의 지식은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신령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령한 지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 것인가 하는 것이 내 인생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의 관심이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신령한 삶을 살아가는 것, 은혜로운 신앙생활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이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자기를 창조하신 형상 안에서, 지식 안에서 새롭게 되어지는 자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고 은혜를 부어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 닮게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낳으면 자녀를 이 세상에 생명체로 만드는 것이 여러분들의 결혼의 목적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커가지 않으면 인간이, 인간이 아닙니다. 1850년에 (?)남부지방에 생세레라고(?) 하는 지방이 있는데 거기에서 13세 된 아이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 산속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정글북에서 나오는 소년처럼 짐승들과 그렇게 큰 것입니다. 그러다 포획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어 다니면서 짐승소리를 내면서 어두운 곳을 찾아서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려다가 사회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회인으로 만들려고 무려 십 몇 년 동안 아주 열심히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서 아이를 가르쳤습니다. 결국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결국 하나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낳게 하시고 구원해주셨는데 만약에 우리가 구원을 받고도 계속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새사람이 되어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태어났으나 짐승처럼 밀림을 울부짖고 돌아다니는 짐승과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안 됩니다. 그것 말고도 몇 가지의 사례가 있는데 학자들의 마지막 결론은 어린 시절의 인간 속에서 교육받지 않은 인간을 새롭게 교육해서 사회인으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계속해서 새롭게 예수를 믿고 우리의 신앙이 어려서부터 계속 새사람으로 변화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형상을 좇아내야 합니다. 이 형상은 하나님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본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간다는 것은 성품에 있어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 거룩하심과 그 사랑과 그리고 그의 지식과 그의 도덕적인 성품을 우리들이 매일매일 닮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원해내신 목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내신 것이 단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게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또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해내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결국은 날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당신의 형상을 좇아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열심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말씀과 신앙의 칼을 들고 여러분 속에 솟아나는 육체의 옛 욕심과 옛 자아의 성품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호하고 모진 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옛 자아는 찌르거나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습관이 공갈치고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것 가지고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생활과 옛 자아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옛 사람의 생활과 그 습관과 죄악 아래로 집요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옛 생활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옛 행위를 버리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고 또 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따라서 옛 사람을 죽이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은혜로 구원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을 감사하며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은총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죄 많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싸우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말씀을 듣고 깨달은 다음에 그 깨달음을 즉각적으로 실천하고 이것을 실천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옛 생활, 옛 자아를 죽이려고 할 때 그때 우리의 신앙생활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가 죄와 더불어 싸우되 피 흘리기 까지 싸우지를 아니하였도다.” 말했습니다. 살인을 하는 독한 마음으로 옛 생활에 칼을 꽂는 그런 비장한 각오가 있을 때 그때 그것을 실천할 때 그때 우리는 옛 사람이 벗어지고 그리고 새사람은 우리 안에 빠른 속도로 분리되어가는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우리들의 의무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말씀과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주었을 때 즉각적으로 그 말씀을 실천하고 결심하고자 하는 그런 강인한 노력이 우리를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힘을 다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역사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일하시는 것이 보여 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죄와 그리고 이 세상에서 땅에 속한 지체를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새사람을 살아나게 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보여주십니다. 눈물 흘리는 곳에 기쁨이 있듯이 죽이는 곳에 살리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그런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그 본질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감각과 혈기를 따라 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이 별로 필요 없지만 그러나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매일매일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새로운 지식을 섭취하는 일에 우리는 마음을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미리 알게 하신 우리의 신앙생활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활을 주관할 수 있도록 그렇게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지식에 마음을 쏟고 그것을 얻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그런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작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는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의 인격의 향기를 보고 죄인의 마음을 감동시킨 그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이 새로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옛 생활과 옛 자아를 벗어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듣기만 하고 흘려버리는 자들이 아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끌려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얼마든지 거기에서 벗어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방법이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자기의 속건 제물로 드리셨다고 말합니다. “내 생명을 누가 뉘게서 취하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옛 생활과 그 행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본받아서 우리의 옛 자아와 옛 지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것처럼 옛 사람과 옛 행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은 기뻐하셔서 그들을 새롭게 살리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제 일 년 동안 새롭게 신앙생활을 해야지 되겠다고 마음을 가졌는지 6개월이 이제 지나가고 있습니다. 반 토막이 다 흘러갔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목표가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도 목표가 있었을 것입니다. 진리를 새롭게 깨달아 아는 데서도 목표가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 지금 6개월 동안에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인격에 어떤 진도가 있었는지 보게 해주시옵소서. 말씀을 듣고 깨닫고 흘려버리는 생활들을 반복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있었지만 우리의 못된 자아와 못된 지체를 한 번씩 건드리고는 지나갔지만 한 번도 죽여보지 못한 신앙생활을 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못하고 있었다면 하나님 오늘이 바로 우리의 땅에 있는 그 육체를 죽이는 날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질적으로 새로운 자아를 입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살게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열매 맺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생활이 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1996. 6. 30. 주일오전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6
하나님의 노래, 그리스도의 포도원(사5:1-2)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의 선지자였습니다. (?)받았을 때에 시대에 대해서 말하기를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수아와 히스기야 시대에 이 선지자 이사야가 소명을 받고 활동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때는 주전 740년에서 681년 사이였으니까 아마스나 호세아같은 이런 쟁쟁한 선지자들과 거의 같은 시대에 예언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던 이 시대는 남왕국 유다 나라의 역사에 후반부에 속합니다. 그의 예언사역 중에는 히스기야와 같은 훌륭한 임금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러나 결국 그의 예언사역이 끝난 후에 유다의 역사는 급속히 내리막길을 향해 치닫고 결국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성경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만 교회 전승에 의하면 이 선지자 이사야는 악한 왕 므낫세에게 핍박을 받아서 마지막에는 그 므낫세가 이 선지자를 체포해서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가 이사야라고는 분명히 나오지 않지만 히브리서 11장에서 고난 받는 주의 종들의 기록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그와 유사한 묘사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하기 오래 전에 그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하게 전해주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시고 돌보시는지를 상기시키는 것과 동시에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66장 가운데 처음에 나오는 1장부터 6장에서는 유대민족에 대한 죄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책망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루고자 하는 본문은 바로 그 중에 5번째 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와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셔야 했습니다. 다양한 방법과 그리고 다양한 생각, 그리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편견들을 가지고 고집들을 가지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신 가운데 1장에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그러니까 핑계대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오히려 변론하자고까지 말씀하시면서 그러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를 말이 있다. 그것은 너희가 나에게로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너희의 죄를 정결케 하고 양털과 같이 희게 해서 내가 너희를 하나님의 백성 삼은 그 거룩한 뜻을 나타내고야 말리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이 5번째 장 여기에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노래로 지어진 이 5장을 통해서 이방 가운데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과 그들에게 거시는 하나님의 기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거셨던 이 노래로 쓰여진 이 성경이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하여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거셨던 그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기대가 오늘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고 또 아버지의 기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자식이 있는데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도무지 헤아리지 않고 살아가려고 한다면 그는 부모는 있으나 사실은 후레자식처럼 살아가는 놈일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원리를 아버지에게 적용시켜야 합니다. 자식을 기르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즉시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모습을 비추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멋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노심초사하시는 것처럼 당신의 피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그런 마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먼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노래에 대해서 말합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는 지난 주간에 이 성경을 우연히 읽다가 묵상을 하면서 아!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관대 참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실까! 여기서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명백히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포도원지기로 삼으셔서 우리를 돌보시도록 맡기셨습니다. 그 유명한 성경의 예화 가운데 포도나무를 삼은 포도원의 비유가 누가복음 13장에 나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을 예수님을 과원지기로 등장하십니다. 3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는 주인의 요구에 대해서 과원지기는 주님이여 금년에도 제발 그대로 두시옵소서. 금년에는 내가 더 열심히 두루 파고 거룸도 주고 그렇게 하리니 이후에도 만일 실과가 맺지 아니하면 그때 찍어 버려주시옵소서.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포도원을 위해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노래가 되십니다. 늘 충성하는 일군들은 그 충성하는 일군을 가진 주인들에게 언제나 자랑거리요, 노래가 됩니다.
저도 다른 곳에 가서 목회자들과 이야기를 할 때 목회자들은 자기들 교회의 자랑을 많이 합니다. 그때 제가 자랑하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에서 충성되이 하나님을 보면서 섬기고 있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입니다. 저에게는 언제나 자랑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똑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품삯을 주고 일군을 부리는 주인들의 자랑거리가 역시 늘 충성하는 일군인 것처럼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나무들이 열매를 맺고 결실을 입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변함없이 충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에게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자랑거리입니다. 늘 충성하는 일군들이 하나님의 집에서도 자랑거리가 됩니다.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위해 피 흘리며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충실하게 일하시고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당신의 백성들이 포도원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며 기도하는 그리스도 예수는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에게는 노래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이 땅에 계실 때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 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아래서 뿐만 아니라 하늘위에서도 보좌우편에서 간구하고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큼 이 땅에 포도원으로 부름 받은 이 세상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버지를 기뻐하는 열매를 충만하게 맺게 되기를 사모하고 고대하시는 분이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도 교회를 사랑합니다. 주님의 교회에 택한 일군들도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교회 사랑과 그리고 이 교회에 대한 헌신은 그리스도 예수의 헌신과 사랑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언제나 아버지를 자랑하셨고 또 아버지는 그렇게 충성스럽게 주님을 위해서 일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에서는 예수님의 별명을 “아멘”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명하시기만 하면 아멘! 하고 충성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충성된 증인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노래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당신이 택한 백성들인 우리 곧 포도원인 우리에게도 하나님에게는 노래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 포도원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가장 훌륭한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믿습니까?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경매에 나온 길가의 토지를 2-300평 싸게 샀습니다. 그리고는 만날 때마다 그 땅 자랑입니다. 오늘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아 내가 사놓은 땅이 글쎄 옆에 큰 길이 난다더라. 났다는 것이 아니라 난다더라. 그 다음에 또 한참 있다가 무슨 이야기로 자랑하나. 큰 개발계획이 지금 수립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더라. 나중에 자랑할거리가 없으니까 그 땅에 펌프를 묻었더니 희한한 물이 나오더라. 아무튼 만나기만 하면 그 땅이 자랑거리입니다.
하나님에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로서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이 세상에 척박한 땅들은 가시와 엉겅퀴밖에 남은 것이 없는 황야와 같을지라도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룰 맺음으로서 탐스럽게 결실한 것을 보면서 다른 백성들이 척박한 땅에서 더러 아름다운 열매를 결실하는 땅들인 우리를 보고 포도원 농부인 그리고 포도원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으니까 우리는 별로 실감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번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각이라고 하는 훌륭한 수단이 있습니다. 생각의 날개를 한번 펼쳐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끝없는 들판을 한없이 걸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덤불들이 보이고 그리고 나무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가시와 엉겅퀴들뿐입니다. 그리고 아주 험악하게 생긴 그런 관목들로만 덤불지어진 곳에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만큼 지나게 되었는데 과실을 탐스럽게 맺은 훌륭한 나무가 한 밭을 이루면서 한 계곡에 가득 들어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다른 땅은 우리에게 아무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는 그 열매, 나무를 올라가서 그 나무의 실과를 따고 그것을 터트려서 먹고 그리고 배부르고 목마름을 해갈한다고 할 때 그는 그 나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그 나무가 열매를 생산하고 있는 땅이 얼마나 우리에게 기쁨을 주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우리 같은 포도원도 노래의 제목으로 삼으십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성도는 존귀한 자, 저의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성도는 존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전에 우리는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였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열매를 맺고 죄악의 열매들을 맺었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타락의 쓴 뿌리들을 깊이, 깊이 박으며 자랐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급기야 진노의 대상이었고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실 때마다 불쾌하게 여기셨고 심판을 생각하실 수밖에 없으신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노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었고 우리를 생각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즐거우신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전에 진노의 대상이었던 우리 때문에 오늘은 기뻐하고 이전에는 불쾌하셨던 우리를 보고 기쁨을 이기시지 못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되셨습니까. 그것은 모두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노의 자녀였으나 지금은 축복의 자녀가 되었고 전에는 우리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고통하시고 슬퍼하시는 이 세상의 자녀였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보시면서 조금이라도 좋게 생각하실만한 그 무엇이 하나님에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모두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시고 또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 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에게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베푸실 수 있도록 길을 여셨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그의 십자가에 부르심으로 저주와 진노는 기쁨과 자랑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노래 거리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세상의 비웃음거리였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포도원이 되어서 이제는 하나님에게 노래거리가 되었고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노래가 되었고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의 깊이와 넒이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크신 긍휼하심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 일을 볼 적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그 사랑과 그 긍휼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봅니다. 또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자기의 외아들을 보는 그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 사랑하는 아들이 얼마나 그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과 화목 시키려고 했는지를 하나님은 보게 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이 관계가 그 자체가 하나님께는 노래가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 예수께 위탁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복음을 전하라” 따라서 아버지는 우리가 당신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께 모든 권세를 위탁하셨으니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와 더불어 맺은 그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승리의 삶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와 그리스도가 맺고 있는 이 관계를 노래로 삼으시는 이유는 죄인 된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만 비로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올바른 관계를 누리고 살아가면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자랑거리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님에게 자랑거리가 될 게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의 힘을 자랑합니까? 하나님은 온 천하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지혜를 자랑합니까? 사도도 기뻐하며 지혜와 부요하며 하나님의 지혜의 부요함 앞에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임을 말해주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을 인해서 우리가 자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에게는 이 천하에 모든 것이 전부다 그분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와 맺고 있는 이 관계를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희 안에 있으며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와 그리스도께서 맺은 이 관계는 하나님에게는 영원히 노래가 됩니다. 죄 가운데 당신이 창조한 백성, 당신이 만들어놓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지닌 이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형벌 받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그리스도가 여셨습니다. 그리고 죄 가운데 살아서 하나님을 반역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리스도와 맺은 그 관계 때문에 그 백성들이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줄을 깨닫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합니다. 그리고 그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속에 하나님의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깊이 느끼고 그 예수님의 참된 마음을 통해서 아버지의 생각을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그런 사모함이 그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관계를 한없이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노래가 되는 이 그리스도의 노래가 오늘 우리에게도 노래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건지신 그리스도 예수의 놀라운 사랑이 저절로 우리의 노래거리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저절로 기쁨이 되고 있습니까?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와 이루신 이 관계를 오늘 우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과 영적인 풍성함을 마음에 풍족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죽이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우리가 관계 맺기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이 은혜주실 자를 찾아가셔서 그리스도 예수의 참된 사랑을 우리 속에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가 되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새롭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그리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신 그 참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 매이는 사랑을 보면서 그 목 매이는 사랑을 발견하면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참된 사랑에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그리스도 예수의 하신 일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그 사랑을 입은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지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헤아려주시도록 기도하는 것과 함께 또한 마음을 다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은 사모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사랑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예수로 인해서 기뻐하는 그것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참된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충만하게 타올라서 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기쁘게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노래의 제목이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도 그리스도가 노래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져 그에게서 나오는 수목을 먹고 열매 맺는 것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의 신비입니다.
지난번에 바레도에(?) 집회하러 내려갔더니 그 기도원에 간판을 붙여났는데 '고로쇠를 팝니다.' 하고 쓰여 있는데 난 그래도 국어실력이 별로 없는 사람은 아닌데 아니 고로쇠를 판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이게 소에 거는 고리인가 그랬더니 고로쇠라고 써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수액입니다. 골리수라고 그런다고 하는데 그게 무엇인가 하면 이제 봄이 되면 물이 오르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서 참 잔인한 것이기도 한데 나무에 물이 오르는 것을 보고 우리가 버들가지에 물이 올랐다. 어떻다. 그러는데 물이 이렇게 한참 올라올 때 위를 껍질을 벗겨서 그래서 계속 물이 올라오게 만든 다음에 그 수액이 가지로 가는 것을 차단해서 병에다 빼서 담은 것인데 그게 한말에 오만 원이었습니다. 그것도 싼 것이지 요즘은 요만한 병에다 하나 넣어서 천 원씩 받으니까 오만원이면 수 백병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말에 오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채취하기가 무섭게 서울 사람들이 불티나게 사간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게 동맥경화에도 좋고 또 간에도 좋고 하여튼 만병통치약입니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닙니까? 뭐가 많이 붙어있습니다. 뿌리가 뽑아 올려서 그 가지에 공급해주는 물이 그렇게 좋은 물을 공급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는 그 땅에서 뭘 그렇게 좋은 물을 먹겠어요. 뿌리는 그냥 산에서 흘러내리는 흙탕물을 먹고도 자신은 그것을 빨아들였을지라도 그 나뭇가지를 향해서는 그렇게 고영양가에 말하자면 정죄된 수액을 한없이 공급해주는 것입니다. 노란색이 꼭 영양제 색깔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공급해주니까 가지는 그것을 먹고 그 다음에 거기에서 그 나무에 속한 그 아름다운 열매를 한없이 맺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뿌리처럼 고난을 보셨으나 그리스도 예수는 그 쓰디씀이 고난을 보셨으나 그리스도의 고난의 결과로 말미암아서 우리에게 공급되는 것은 한없는 양분입니다. 그리고 한없이 열매 맺기에 적합한 그런 수액들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공급해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정말 맺기를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의 아름다운 열매와 승리하는 능력은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이렇게 영적으로 그분의 은혜의 세계에 깊은 뿌리를 박고 거기에서 생수를 쭉 빨아들이면서 그 진액을 먹고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먹고 자라야 합니다. 그 은혜의 샘에서 생수가 올라온 사람들은 신앙생활 하는 것이 너무나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 통로가 막혀있는 사람들은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나 고달프고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이 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어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결국은 찾고자 하고 애쓰고자 하지만 그러나 맺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랑에 열매는 범죄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는 은혜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사람들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열매를 맺고 그 열매 때문에 심판을 받지만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고 그 은혜로 맺은 열매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2절은 포도원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세상에 가시와 찔래와 엉겅퀴를 여는 이 세상에 모든 악한 백성들과는 달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은 백성들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고 배려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속받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땅을 파고 돌을 제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사람을 포도원 삼으시기 위해서 세심히 배려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포도원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아버지의 포도원이 되기에 합당할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척박한 땅 중에서 가장 척박하고 돌밖에는 있는 것이 없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돌짝밭과 같은 우리의 심령에서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돌맹이들을 걷어내셨습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마음속에 모든 자갈들을 걷으시고 때로는 큰 바위를 거두어내시고 그리고 부드러운 흙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심어져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마음의 밭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옛날 사람은 아닙니다만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가끔 인근의 산에 가보면 정말 초등학교 옛날 사회교과서에나 나오는 화전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땅에 소유개념이 없고 그냥 나라에 구교지에 나무를 꺾고 불을 확 질러서 풀섶을 다 태우고 그러면 이제 땅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그 땅이 기름진 땅이고 돌맹이가 하나도 없는 땅이고 또 경사가 하나도 없는 땅이어야 하는데 그런 땅들은 이미 다른 사람이 다 일구었기 때문에 그런 땅은 나무를 자르고 풀섶에 불을 태워서 평지를 만들어놓았다고 하더라도 일은 그때부터입니다. 그래도 보면 소라도 있는 집은 그 소에다 쟁기를 걸고 하지만 화전이나 일구어먹고 다니는 그 천한 사람들이 그런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쟁기를 남자가 짊어지고 밭을 갈면서 골을 파고 지나가면 돌맹이가 심지어는 머리통만하고 심지어는 큰 가방만한 돌맹이가 나옵니다. 그것을 일구어냅니다. 그러니까 남자 한사람이 몇 달 동안 일구어내 봐야 만들어놓은 밭이라봐야 몇 평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일구어놓고 나면 그 다음에는 기름집니다. 처녀토입니다. 수백 년 동안 잎이 떨어져서 거름이 되고 잎이 떨어져서 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일단 일구어놓기만 하면 거기에서 무도 나오고 배추도 나오고 아름다운 과실을 많이 맺는 밭이 됩니다. 그러면 땅값이 달라집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믿지 못하게 하는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와 더러운 돌맹이들이 가득 차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있는 그 돌들을 걷어내십니다. 어느 한순간에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복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돌맹이를 거두어버리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만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위해서도 이렇게 사랑으로 역사하시며 우리를 예수님을 믿는 이 백성으로 여기까지 데리고 오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시기를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포도 중에서 최상품의 포도, 다시 말해서 적어도 포도나무 종자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하는 말은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애굽땅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먼저 시내산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11개월 동안 있으면서 옛사람의 애굽의 모든 생활의 찌꺼기와 때들을 벗겨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천하에 모든 만민, 어느 누구에게도 주신 적이 없는 율법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규례룰 주시고 또 그 하나님의 말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섬기는 주의 종들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참 도룰 찾기를 원하나 그릇된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의 어리석고 타락한 모습은 그들 가운데 좋은 포도나무가 심기진 못한 자의 불행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어서 극상품의 포도나무가 심겨지는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복음과, 거짓된 복음과 잘못된 진리의 길로 걸어가므로 말미암아 타락의 길을 갈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썩어지지 않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고 그리고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라며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할지를 알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밀히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명백하고 밝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거룩하고 깨끗한 말씀에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가장 좋은 말씀의 포도나무로 우리 가운데 심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회개하고 그리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옛 모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고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어리석고 비참한 인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높고 기이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뜻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나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에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이 변하여 그리고 어른과 같은 생각으로 변해지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전에는 단지 듣기만 하였지만 이제는 만지게 해주시고 그리고 이전에는 단지 생각하기만 하였던 것을 오늘날 우리들이 말씀을 통해 경험하고 체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심으신 그 말씀의 모든 씨앗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자라고 있는가 하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그 말씀들과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가 그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뿌리신 그 씨앗이 우리의 이 세상에 있는 염려와 근심과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완악함으로 열매 맺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돌봄을 입으며 살아가도록 놀라운 신앙의 특권을 주셨던 것을 오늘 상기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상기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 가운데 심으신 하나님의 이 말씀의 포도나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이 진리의 포도나무,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 우리를 끊임없이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의 포도원의 망대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때의 망대는 크게 두 가지로 용도로 쓰였다고 합니다. 하나는 그 망대에서 농부들이 별장처럼 쉬는 곳이고, 또 한편으로는 포도원의 담장을 허무는 도둑들과 그리고 그 과수원을 헤치는 여우와 같은 것을 농부가 감시하기 위해서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으로 구원하셨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데 그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여러분들을 구하여 내실 뿐만 아니라 구하여 내신 다음에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망대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지키는 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용사가 되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과 더불어서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여러분들을 이기고자 하는 자를 치셨습니다. 악한 대적들이 교회를 둘러쌓을 때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자들이 두 세 사람이라도 있기만 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언약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그들의 대적들을 자기의 원수로 삼으셨으며 하나님의 백성의 포도원을 넘보는 여우들을 물리쳐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며 여기까지 걸어온 모든 신앙생활에 여정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신앙생활의 실패는 우리가 그 실패의 대가로 주어지는 이 세상의 즐거움들을 즐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심령의 포도원의 망대에 계셔서 온 밭을 두루 살피고 계십니다. 교회에 망대에 계셔서 이 포도원을 허무는 자들을 진멸하기 위해서 온 땅을 두루 감찰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돌보시도록 그리스도를 우리의 포도원에 포도원지기로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오늘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용사가 되시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위한 전투자가 되셔서 누구든지 이기기를 원하는 자들의 편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늘 기도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미래에 대한 비관과 염려 때문에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교회를 지키시고 그 백성들을 지키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아버지가 파주신 술틀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술틀을 팠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 못했지만 사진으로 많이 봤습니다. 포도가 이스라엘 백성의 주된 수완물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입니다. 지금도 에스골 골짜기에 가면 포도 한 송이에 4.5키로 내지 6키로짜리 포도가 생산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정탐을 하러 갈 때 두 사람이 꿸 채에다 포도를 한 송이 꿰어서 가져왔다고 하는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과일 점에 가서 보면 알지만 배도 보관하고 사과도 보관을 하지만 포도는 보관이 안 됩니다. 만약에 냉장고에 보관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속에서 과일이 근육이 생겨서 육질이 질겨져서 결국은 애써서 냉장해두어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질겨서 못 먹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열매를 보관하는 방법은 그것을 이제 즙 틀에 넣어서 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짜서 그 술을 부대에 넣어서 지하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포도주가 더 맛있게 익어서 그 포도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예전에 방학 때 가끔 내려가면 겨울에 명절이 되면 동리의 유지, 그리고 특별히 저희 아버님이 큰 가게를 하셨기 때문에 보부상들이 와서 우리 가게에서 물건을 많이 받아갔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을 이제 일 년에 한 번씩 명절 때면 불러서 집에서 한상 차려서 대접합니다. 그때 시골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 가게의 마크가 찍힌 달력을 주는 것이고, 두 번째가 바로 이 포도주입니다. 그때는 강원도는 포도가 흔하지 앟고 머루가 흔해서 가을에 이제 사람을 사서 머루를 따거나 아니면 시장에 많이 나왔을 때 그 머루를 많이 사다가 큰 독에다 집어놓고 술을 조금 붓고 그 다음에 이제 인삼을 몇 뿌리 집어놓고 뚜껑을 덮어 내버려둡니다. 그러면 이제 그게 겨울쯤 되면 아주 맛있게 됩니다. 저는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은 아주 맛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갛게 된 머루주를 한 국자 떠서 이런 컵에다 따라서 인삼을 나박김치 썰 듯이 썰어서 그것을 잔에다 하나 얹어서 주면 시골 노인네들 장사하는 그분들이 아주 최고로 칩니다. 아주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골에서 한겨울에 천연포도주가 어디서 나겠습니까. 그 머루주를 먹으면서 그렇게 우애를 돈독하게 해서 물건을 팔고는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처럼 술틀을 파셨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놀라운 은혜가 이웃들에게 얼마나 기쁨이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으면 아버지만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포도원의 열매를 맺고 그 포도들이 즙이 되어서 보관되어서 모든 이웃들에게 기쁨이 될 것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은혜를 받고 우리가 변화를 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면서 열매를 맺으면 우리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아내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면 남편이 덕 보는 것입니다. 왜 잔소리와 바가지는 사라지고 기쁨과 은혜가 충만함으로 주께 하듯이 섬기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남편들은 아내를 예수 잘 믿게 하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예수를 잘 믿고 은혜를 받으면 아내가 덕을 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으면 남편의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이 변해서 성령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주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며 사랑해주니까 우리는 남편이 은혜받기를 또 아내는 기대하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고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열매를 맺으면 우리만 기쁘고 하나님만 기쁜 것이 아니라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이웃들에게도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랬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하나님의 기대와 좌절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대는 좋은 포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대하실 만큼 그렇게 끊임없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땅을 고르고 거기에 돌맹이와 그리고 그 모든 뿌리들을 걷어내시고 또 거기에 기름진 땅을 두시고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고 그리고 망대를 심어서 악한 자들의 헤침을 막고 그리고 술틀을 파서 그 맺힌 열매를 보관하고 그리하여 그 열매가 하나님과 이웃에게 기쁨이 되도록 충분히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매 없는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며 일하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우리의 신앙생활에 발자취를 돌아보며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 많이 일하셨고 우리를 위해서 충만하게 일하셨는지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신 그 큰 일,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얼마나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인격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인격의 그 아름다움을 우리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 앞에 행하셨던 그 놀라운 섬김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셨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영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그 하나님의 부요한 은혜를 누리고 맛보고 살아가야할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누리셨던 영적인 삶을 깨닫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가 인격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섬김 안에서 우리의 모든 삶의 현실 속에서 열매를 맺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도 그러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 포도를 맺었다고 되어있습니다. 들 포도, 이것은 모양은 포도이나 변질된 포도입니다. 들 포도는 못 먹어봤지만 똘배는 먹어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개똥참외는 먹어봤을 것입니다. 개똥참외가 뭡니까? 사람이 참외를 먹고 변을 봤더니 미처 씨가 소화가 안 되고 그냥 변으로 나왔는데 그것을 거름을 퍼서 땅에 뿌렸더니 그것이 우연히 뿌리를 내려서 거기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똑같은 참외 씬데 사람의 돌봄을 받지 않으니까 거기에서 참외가 나기는 나는데 그게 개똥참외입니다. 길가에 서있는 그런 복숭아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돌 복숭아입니다. 돌배. 이런 것들은 정말 모양은 과일 모양을 하고 있지만 성질이 그 과일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열매를 보고 포도원에서 자라고 배나무 밭에서 자란 그 아름다운 배의 맛을 생각하며 다가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실망을 주는 것입니다.
한번은 새로 만든 공원에 갔는데 어느 야유회를 갔나, 어땠나 했는데 일군들이 요만한 열매들이 맺힌 복숭아나무의 열매가 참 보기가 예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일삼아서 그것을 다 따내기에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가서 아니 왜 따냐고 보기에 좋은데 그랬더니 이것을 다 따내지 않으면 나무를 버린다고 하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아직 열매 맺힐 때가 안 되었는데 이게 지금 때가 되니까 자기도 모르게 착각하고 열매를 맺는데 이것은 요만큼 밖에 자라지 않고 더덕더덕 자라는 것을 내버려두면 진짜 3년 뒤에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야 될 때가 되어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에 수십 명의 인부를 사서 공원에 있는 새로 심은 나무의 열매를 돈을 들여서 따는 것입니다.
들 포도도 하나님에게는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입니다. 쓴 뿌리에서 나오는 열매들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데서 나오는 아름다운 열매가 아니고 겉모양으로는 신앙이 있지만 그러나 신앙과 믿음을 가장한 위선이 바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들 포도입니다. 들 포도라도 하나님께서 감사함으로 받아주시면 하나님입니까, 아닙니까? 하나님은 이 들 포도가 아니라 정말 아름다운 포도 열매를 맛보실 수 있을 만큼 주님이 충분히 배려하시고 충분히 일하셨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나무도 좋은 나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심으셨는데 그런데 들 포도가 맺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토록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돌보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그 좌절된 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열매를 맺고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결실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웃과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서 기쁨을 주는 그런 신앙의 열매를 맺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세례 요한이 제일처음 4백 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그쳤던 이스라엘 역사 속에 등장하여서 제일 먼저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열매를 맺지 않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미 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열매 맺지 아니하는 자마다 찍어서 불에 던지우리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지키면서 살수 없었을 때 선지자를 보내어서 그 이상을 들려주셨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제사장을 보내어서 사죄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 목매어하며 하나님의 심정을 전해주는 말씀의 증인들을 보내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혹은 울면서 흐느끼면서 통곡하면서 벌거벗고 거리를 누비면서 하나님의 종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타락하기에 이름난 여인에게 장가들면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어떻게 충만하게 나타났는지를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포도원을 향한 마음이었습니다. 자나 깨나 하나님의 마음은 포도원에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도 하나님의 마음은 포도원에 있었습니다. 비가 올 때도 하나님은 포도원 때문에 염려하셨습니다. 햇빛이 날 때 하나님은 포도원 때문에 그 햇빛을 기뻐하셨습니다. 여우가 그 포도원 주위를 돌아다닐 때 하나님은 경계하셨고 악한 자들이 그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싸우셔서 그들을 퇴치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은 이렇게 열매를 맺기를 너무나 사모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모하는 그리운 열망은 아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를 영적인 이스라엘의 새 포도원으로 삼으시면서 하나님의 이 거룩한 갈망은 이제야 성취될 것이라고 하나님이 생각하셨습니다. 이제 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이 포도원을 너희 가운데 세웠으니 이제 이 백성들이야말로 내가 기뻐하는 열매를 맺으리라. 하나님이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모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오늘도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이곳에 와서 변화 받고 회개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아가던 인생이 변하여 주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을 모르던 무지한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참사랑에 대해서 더욱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그 은혜를 찬미하는 백성들로 변화 받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열매 맺기를 원하는 일념으로 오늘도 혹시 금년 한해만 참으면 어떨까? 그리고 우리의 심령을 기경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씨앗을 심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꿈꿉시다. 하나님 이 조국의 교회와 또 우리 교회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생수의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담기어서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줄줄이 맺어서 언제든지 하나님이 누구에게든지 우리를 자랑하시고 싶어 하시는 그런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 되도록 그래서 열매 맺은 우리를 보고 우리를 보는 사람들마다 그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포도원의 주인이시고 또 포도원 과원지기이신 하나님과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나도록 만들어드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