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드러내는 직장생활
(2010년 설교모음)
설교기간|2010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성실한 생활(잠6:6-9) 2010.3.9 교직원예배 1
2. 허물을 덮는 생활(잠17:9) 2010.3.18 교직원예배 7
3. 동료의 명예를 지킴(잠11:13) 2010.3.23 교직원예배 12
4. 타인에게 겸손함(잠13:10) 2010.3.30 교직원예배 18
5. 자기 발전에 노력함(딤전4:15) 2010.4.6 교직원예배 22
6. 충고에 열린 마음(잠17:10) 2010.4.13 교직원예배 26
7. 직업의 영광(잠27:23-27) 2010.4.27 교직원예배 30
8. 하나님께 높임을 사람에게 존경을(잠16:7) 2010.5.4 교직원예배 36
9. 마음과 혀(잠10:20) 2010.5.11 교직원예배 43
1.성실한 생활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려움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언 6:6~9)
개미는 아마 곤충 중에서도 매우 작은 그런 미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지혜자는 우리보고 그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개미보고 배우라고 그러는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게으른 자, 게으른 자 보고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 이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 게으르다는 정의를 어떻게 내립니까? 여러분 볼 때 게으름 그러면 떠오르는 생각이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퍼질러 자는거 그런 거가 게으름이라고 대표적으로 떠오르고 그담에 뭘 시켜도 계속 하품을 하고 엉덩이가 천근만근 무거워서 안 일어나는 거 이런 것들이 게으른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또 게으른 사람들의 공통점이 또 잘 먹죠, 그죠? 그래서 배가 피둥피둥 나오고 움직이기 싫어하고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성경에서 말하는 관점은 게으른 자도 게으른 게 아니라고 판단하고 부지런한 자도 부지런한 게 아니라고 판단을 해요 그래서 성경적으로 볼 때 이 게으름의 극복이 부지런함이 아니라 지혜에요 지혜, 지혜를 통해서 게으름에서 부지런함으로 극복이 되는 거라 이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연적인 부지런함 그 자체를 별로 칭찬하지 않아요. 진정한 덕 있는 부지런함은 삶의 방향과 목표도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고 그리고 그것을 향해 부지런히 가는 그런 부지런함일 때에 그것을 진정한 근면함이라 보는 거라 이것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이 진짜 모든 방면에서 게으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마음이 끌리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지런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지금은 다 가고 없는데, 교역자 회의를 하는데 목사님, 묻지도 않았는데 너무 사역이 많아서 정신없이 바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하는데 그날 밤에 키넥스에서 만났어요. 이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방향과 추진력 둘 다를 보고 이야기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에요. 이야기 하면 한없이 길지만 요약을 하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개미에게 가서 배워라 그런데 7절과 8절에서 개미에게 배우는 2가지를 이야기하는데 7절에서는 자발적으로 일한다 이거에요. 그게 부지런함입니다. 자발적으로 일한다. 사람마다 특성이 있어서 각각 달라,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라 주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창조적인 사람들이야. 그래서 그냥 지금 이러이러한 일을, ‘교회를 지어야 되겠거든 한번 자네 소신껏 한번 지어봐’ 그렇게 지시를 내리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머리 자체가 활발히 움직이면서 고딕형의 교회를 만들까 아니면 무슨 뭐 바로크식의 교회를 만들까 아니면 현대건축적인 교회를 만들까 이게 자기가 자신이 알아서 한번 해보는데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창의적이지 않아 그래서 구체적으로 내려줘야 됩니다. ‘내가 원하는 거는 고딕이거든 그리고 너무 카톨릭 티 나는건 싫으니까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런 정도의 교회를 한번 지으려고 해. 그러니까 구체적인 계획을 한번 세워봐’ 이럴 때에 아주 안정감을 느끼고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일을 맡길 때에는 그 사람의 성향을 어떤가를 보고 각각 다르게 일을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전자의 사람에게 그림까지 다 그려주고 던져주면 ‘내가 뭐 자기 시다바리인가 뭐 다했네, 그럼 뭐 자기가 하면 되겠네. 왜 나보고 하라고 그래’ 이런 반응을 보이는 반면 후자의 사람에게 그렇게 주면 ‘하 정말 목사님 어쩌면 이렇게 자상하고 친절하실까? 내가 잘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째로 갖다 맡기면 ‘아이구 이게 자기는 이런 거 할 수 있나, 왜 나보고 이렇게 힘든 걸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뭘 도대체 구름 잡는 거야 뭐야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라는 거야’ 그렇게 투덜거리고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얼른 파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미는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자발적으로. 그래서 게으르다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타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모두 게으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좀 청소 좀 하거라, 네 이렇게 가야 되는데 여기 좀 청소 좀 하거라 그러고 나갔어 그런데 손가락 가리킨 데만 청소하는 것입니다. 여기 좀 청소 좀 하거라 하니까 바닥에 가서 목사님이 손을 그릴 때 그 원이 어딘가를 찾아내 가지고 거기만 막 닦는 것입니다. 아이구 여기도 닦아야지 그러면 여기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할 수 없이 여기 여기 좀 청소해라 그랬더니 유리창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 네 번 지시를 하게 되는데 이거는 타율적인 것입니다. 그 사람 마음 안에 일을 하기는 하지만 청소를 해서 이 공간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되겠다 라고 하는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게으르냐 아니에요. 이 공간을 청소하라 그러면 게으를지 모르지만 여기서 탁구를 해라 그러면 굉장히 부지런할 수 있고, 담요 깔아놓고 놀면 뭐하니 한 푼이라도 벌자 하고 화투를 돌리면 그러면 아마 열을 올리면서 누가 이겼다 졌다 할지 몰라. 열렬할지 몰라. 우리나라에 가장 큰 문제가 뭐냐 하면 자발적 백수야. 취업의 기회가 있는데도 안가는 것입니다. 자발적 백수야. 그게 청년들의 자발적 백수율이 40만이 넘는데요. 그 사람들이 뭐냐 하면 취업의 기회를 못 얻은 게 아니라 취업의 기회가 있는데도 그까짓 돈 이러면서 안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못하는 거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타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절대로 그 조직에 이바지 할 수 없고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일 자체가 주어지지 않아요. 직장생활을 하던지 교회생활을 하던지 간에 한번 이야기 했을 때 마음이 자기가 지시한 것을 따라와 주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물론 이 교회를 야 요기 좀 청소해라 라고 이야기 할 때 거기만 청소한다고 했을 때 일곱, 여덟 번 지시를 하면 결국 다하지 않겠어요? 어 그런 태도로 일을 하면 그 다음에는 시키는 사람은 직장생활을 할 때 그렇게 하면 사람은 일을 시키는 에너지가 너무 과다하게 사람들이 있으면 지도자가 에너지를 골고루 나눠야 되잖아요.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하수도 구멍에서 수채 빠져나가듯이 과도한 에너지를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 마음이 꽉 닫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역, 혹은 직장생활을 위해서는 이 안에서 자발성을 가지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발성을. 그래서 옛날에 교역자 한명이 있었는데 부서를 하나 맡겼는데 아주 죽을 쒀요. 그래서 그때는 내가 지금보다 훨씬 열혈 했으니까 심하게 야단을 쳤어요. 그러고 나중에 네가 그렇게 사역을 해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목회를 하려고 하느냐 하고 야단을 쳤더니 그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백을 하는데 아주 충격적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제가 3년을 사역을 했는데 2년간은 계속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될 리가 있어요? 자발성이 들어올 여지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미는 두목도, 간역자도, 주권자도 없으되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자발성을, 그러면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 자발성이 생기지 않는다 그 자체가 마음이 게으른 것입니다. 게으른 것 자체가 사실 마음에 연결된 문제거든요. 그래서 찰스 스윈녹이 청교도가 그런 말을 했어요.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은 몸은 예배당에 나와 있지만 영혼은 마음은 침상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뒹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아주 가혹하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니까는 자발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이 게으르다는 것이고 선한 일에 대한 자발성이 없다는 것은 그 영혼의 부패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그 마음이 주님의 은혜로 다스려지고 있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영적 순발력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할 동기를 부여받을 때 용수철처럼 탁 튀어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군인정신이 충만한 사람의 특징이 막 담배피고 놀고 퍼질러서 쉬는 시간에 누워있다가도 집합! 그러면 용수철처럼 탁 튀어나가서 집합하는 사람이 그게 군인이지 집합! 그러고 이야기했는데 ‘어이 씨 야야 일어나래. 일어나, 일어나.’ 방위나 그러는 거지. 현역 군인들, 그것도 특전사나 해병대는 안 그런단 말이야. 기왕이면 특전사나 해병대 같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어야 되잖아. 자발적이어야 돼요 그래서 제일 훌륭한 일꾼이 누구냐 하면 주님이 자기 자신의 생각을 부여하실 때 그거를 주님의 마음을 그것을 깊이 이해해서 임무만 부여받은 게 아니라 임무를 부여하시는 주님의 마음도 함께 부여받는 사람, 그래서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영혼을 보실 때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셨던 그 마음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고 하는 것을 2개를 같이 받아야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것을 2개를 같이 받아야지 그게 진정으로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자발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화의 최고의 상태가 어떤 거냐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분여 받아서 당신 자신이 우리의 창조세계를 향해서 가지고 계신 하나님 자신의 자발적인 사랑을 본뜨는 것입니다. 그게 간격이 없이 거의 일치를 이루는 순발력을 갖게 되는 것, 그게 바로 말하자면 고도의 성화된 상태라 이렇게 보는 거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으른 것을 자발성이 없는 것이다 그 이야기에요. 그래서 일을 하면 자기가 그것을 자발적으로 하는지 타율적으로 하는지 인간도 아는데 하나님이 모르시겠어요? 그렇게 때문에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섬기는 것이 아니에요. 자기 자신이 자발적으로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고 이렇게 해서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들은 일의 성취의 품질에 있어서 타율적으로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엊그저께는 목욕탕을 갔는데 목욕탕 지어진지가 꽤 됐어요. 목욕탕 보면 가운데 이렇게 구멍을 뚫어서 우윳빛 유리를 끼우고 위에서 빛이 이렇게 내려오잖아. 거기 펜치가 있더라고, 펜치하고 그 다음에 전선 끊어진 게 있더라고 보여 그게 그거를 5,6년 동안 가만히 내버려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거를 공사한 녀석들도 타발적인 녀석들이고 그 다음에 그거를 인수받아서 그 저기 하는 사람들도 맨날 거기 앉으면 펜치하고 보일 텐데 나 같으면 의자라도 놓고 올라가서 그 하나면 밀고 꺼내면 꺼내질 텐데 그거를 안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율성이 없는 것입니다. 타발성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어요. 지도자가 되면 조직의 재앙입니다.
지혜자는 개미에게서 그걸 배우라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라. 다른 품질이 나오는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김연아 이야기 하도 해서 나는 그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또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읽었을 것입니다. 오서코치 이야기 나와서. 김연아 엄마가 와서 자기보고 코치를 맡아달라고 하는데 그때 처음 만났대요. 한번 타보라 그랬는데 굉장히 우울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그 다음에 심지어는 스케이트를 타는데 표정 자체가 싫은 일을 하는 것 같고 의무를 하는 것 같아서 불행해 보이기까지 했데요. 그래서 코치를 맡으면서 제일 한 것을 그것을 즐기게 하는 거, 즐거워서 하게 되는 것 그래서 우리가 즐겨서 하게 될 때에 잘하게 되고 즐겁게 하게 될 때에 최고로 자발적인 상태로 하게 될 때에 신들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이 난다고 그러잖아. 최고의 자발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달걀껍질을 기가 막히게 깐다 그러면 신들렸다고 표현합니다. 달걀껍질 까는 신이 들렸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이 최고의 완전성을 낳는 원인이기 때문에요. 똑같애요. 우리가 진짜로 신들리면, 성령이 들리면 신나는 것입니다. 왜냐면 선한 일이니까. 신들린 우리보고 죄를 지으라 그러면 타발적이 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허물라 그러면 주저주저 하겠지만 그 하나님의 마음이신 성령께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라고 그럴 때 그분의 신에 감동된 사람들은 모두 신명이 나는 것입니다. 증거가 있잖아요. 장막을 지을 때 그죠? 그거를 모세가 물건을 끌어온 게 아니라 이러 이러한 것을 지어야 되겠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그 애굽에서 갖고 와서 혹시라도 여차하면 그걸 팔아서 쓸려고 모아두었던 그 값진 보석과 금, 은 그리고 색실 이런 것들을 다 가지고 나오잖아요. 그게 왜냐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신 들려서. 예루살렘 돌아가 봐야 그 적군들이 기다리고 있고 죽을지도 모르는데 포위되어 있는데 고레스 왕의 허가서 한 장 가지고 간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거지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어요? 70년이나 거기서 잔뼈가 굳어진 타국생활인데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것 다 아랑곳 하지 않고 집을 다 버리고 생활기반 버리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수만 명이 떠나잖아. 왜 떠났다는 거예요? 신들려서 떠났다고 나와,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사람들이 떠났다 이것입니다. 신들리면 그런 자발성이 주어지는 거라 이것입니다. 세상에 교회 어려운 것이 뭐냐 하면 은혜 떨어진 사람들하고 교회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자꾸 그게 무게로 작용이 되어서 할 수 있는데도 못한다고 계속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발성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자발성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의무적으로 행했던 일들은 하늘나라에서 주님을 섬긴 날로 기록이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의무적으로 한 것은 결국은 자기 위해서 한 것인데 그게 어떻게 하나님 섬긴 게 되겠어요.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일에 모본을 보이셨잖아요. 얼마든지 그분 스스로 부유하신 분인데 말인데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잖아요. 그리고 누가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당신 자신이 스스로 즐겁게 자기의 생명을 화목제물로 아버지를 위해서 바치잖아요. 그런 거라 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부지런함 이거는 자발성이다, 자발성이다 이 이야기입니다. 자발적이어야 한다. 더 할 이야기 많지만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에 이제 8절에 넘어가면 먹을 것을 여름동안 예비하며 추수 때까지 양식을 모으니라, 그랬잖아요.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열매를, 미래의 열매를 위한 현재적인 희생입니다. 수고지요, 수고. 미래의 열매를 위한 현재적인 희생입니다. 그것입니다. 현재적인 희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있는 사역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목회자의 경우 뭐냐 하면 시간을 사용하는데 자기를 재생산하기 위한 시간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 그런데 모두 다 산출하는 시간이야. 그런데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쏟아 붓는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고 묻겠지요. 목회자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잖아요. 그것은 단순히 외국어를 배운다, 뭐한다, 공부를 한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을 쏟아 부어서 기도하는 시간도 산출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입받는 시간이잖아요. 기도 안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상할 일도 기도를 통해서 은혜를 많이 받으면 마음의 평강을 누리고 지체들의 부족한 점들을 용납할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죠? 성경을 읽으면서 진리를 깨달으면서 감화를 받아, 그러면 그런 감화를 받지 못했을 때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의무였는데 말씀이 내게 은혜를 주니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것도 전부 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예비하는 거잖아요. 그뿐만이 아니죠. 오늘도 우리가 공부하면서 그런 이야기 내가 했지만 더 열심히 해야 됩니다. 내가 부탁하는 건 뭐냐 하면 이게 여러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리더십은 리더십이 굳게 서는 건 뭐냐 하면 세상적인 리더십은 다르게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기독교적인 리더십은, 참된 리더십은 뭐냐 하면 지식과 사랑입니다. 사랑에 있어 본이 되고 지식에 있어 나보다 뛰어나게 될 때 그것이 응집되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그 자원을 가진 만큼의 다른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지식도 없고 사랑도 없는데 삶만 높은 삶을 살려고 그러니까 결국은 어떻게 되겠어요? 배 나온 사람이 배꼽티 입고 그 다음에 다리 길이가 상체길이의 ½밖에 안 되는 사람이 김연아 흉내 내는 꼴이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우리 이슬이가 대학에 입학했는데 걔가 별로 안 꾸미잖아. 학교를 갔다 오더니 친구를 만났더니 “야 너 그 꼴을 하고 학교를 갔다 왔냐? 너 대학이 어떤 덴데 너 그러고 다니냐?” 그러니까 얘가 자극을 받았어요. 가기 전에 인터넷 카페에 “우리 서울여대 무슨 모임 어쩌고저쩌고. 우리 같이 한번 만나자” 그러더래요. 얘들이 우르르 나왔어요. 얘는 평소에 입는 대로 잠바 떼기 걸치고 나갔어요. 나갔는데 보니까 얘가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빠 장난이 아니야” 애들이 완전히 쫙 빼입고 왔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를 졸라서 빼딱구두를 하나 사서 하루를 신고 나더니 “아빠 이게 보통 고문이 아니야. 내가 죽는 줄 알았어. 인간들이 어떻게 이런걸 신고 다녀. 엉덩이 하고 여기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어” 그런 거지.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발전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지. 그래서 내가 항상 이야기 하는 게 교회 지을 때도 그러는 것입니다. 아주 미관이 좋으면서도 관리하기에 좀 편하고 그래야 됩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이야기했어요. “편한 거 좋아하는 여자치고 예쁜 여자 봤습니까?” 결국 이 두 가지의 가치는 공존할 수가 없어요. 교회나 건물을 지을 때 그저 청소 안 해도 되고 아무렇게나 발로 차도 끄떡없고 그렇게 하면 교회 건물을 머슴처럼 지어야 됩니다. 그래도 좀 아낙네처럼 예쁘장하게 해서 들어왔을 때 “야 참 좋다, 여기 참 예쁘다” 이러려면 청소도 더 많이 해야 되고 돈도 더 들어가고 관리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옛날에 방배동 교회에 있을 때 대담한 자매 하나가 나한테 와서 “목사님, 저 할 말이 있습니다”, “해봐라”, “목사님 저 시집 좀 책임지고 보내 주세요”, “그래, 내가 3년 안에 보내줄게. 그 대신 3년 동안에 3가지만 하면 내 보내주마. 첫째, 화장을 예쁘게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어라. 절대 그 엉덩이 찢어진 청바지 입고 슬리퍼 끌고 교회오지 말고. 두 번째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거라. 그 다음에 세 번째 말수를 줄여라. 그리고 말하고 싶을 때는 사람들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라. 그 약속을 지키면 내가 3년 안에 책임지고 보내주마” 자기가 약속을 못 지켰어요. 그래서 나도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벌써 40이 넘어 50을 향해 가고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됩니다. 산출만 해서는 인간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데 얼마나 산출을 하겠어요. 나중에 산출하다 산출하다 그 다음에 안 되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이것밖에 없는데 그걸 뻥튀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크게 부풀려 가지고 많은 것처럼 꺼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니까 쌀 한 줌 밖에 안 되도 곡물을 뻥튀기 가지고 팽창을 하면 한 자루가 나오잖아요. 뻥뻥 하고 들어간 게 뭐입니다. 허위지.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해서 결국은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걸 변명할 필요가 없어요. 그걸 소화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꾸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그다음에 여건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다 이런 이야기에요. 미래를 위해서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이야기 하는 게 아까도 내가 교역자에게 이야기한 게 공부해야 됩니다. 공부. 성도들이 쉽게 이야기해서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7, 8번 들은 사람도 있다는데 완전히 책 내용을 이해할 거 아니에요. 엊그제도 영미 이야기 들으니까 스물 몇 살 밖에 안 되는데 ‘도덕적 통치’에 대해서 자기는 못 이해하는 게 없다는 사람도 나왔다니까 다 알 거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허기진다고 느낌을 받지 않겠느냐 이거에요. 그러면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이 충분히 내가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빙산이 나온 것처럼 하나를 알아서 하나가 아니라 아홉 개는 묻혀있고 위에 있는 빙산이 10분의 1일 떠오르는 건데 이거를 가지고 가르치는 건데 그걸 자기 자신이 충분히 예비를 해야 되잖아요. 언제 어떻게 쓰여질 지 누가 알 수 있겠어요. 자기 자신을 잘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거지요. 그래서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 업무를 하면서도 자기 업무와 관계가 되어서 사용될 지도 모르는 일들을 위해서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하면서 자기를 일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고 그러한 노력이 있을 때 그가 어디에 가든지 간에 환영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카이스트에서 지금 대학에서 얄짤없는 게 정년이잖아요. 65세면 칼같이 자르는데 5명을 70세로 연장시켜줬어요. 연장시켜준 이유가 뭐냐고 했더니 이런 훌륭한 분들을 조기에 은퇴시킴으로써 지식을 사장하는 것은 한국의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 매우 애석한 것이다. 그래서 실력이 안 되는 교수들은 다 퇴출시켜 버리고 실력이 되는 교수들은 65세의 정년을 70세로 연장시켜 주잖아요. 그래서 항상 말하자면 예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거에요. 예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돼요? 여러분 알다시피 여름동안에 모은 것은 여름동안에 먹을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베짱이가 보기에는 쓸모없는 일을 개미가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어디에 가든지 사람들에게 놓치고 싶지 않은 그리고 언제든지 다시 부르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 이거에요.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이고 또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사람됨은 그 사람의 일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고 그 사람이 일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람됨을 형성해 가요. 그래서 덜렁거리는 사람도 꼼꼼하게 일하다 보면 성격이 꼼꼼해 져요. 그리고 부지런해지고. 그렇게 하면서 주님 앞에서 어디에 가든지 꼭 필요한 사람들로 그렇게 인정받으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보람 있는 삶이 되겠어요. 더욱이 우리가 교회를 섬기면서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나 직원들이 서로를 보기에 ‘저분은 참 꼭 필요한 분이다. 내가 저분과 함께 한 교회를 섬기게 되어서 참 감사하다. 어디 가서 저런 사람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런 느낌을 주면서 사역을 하면 그것이 참 아름다운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허물을 덮는 생활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 17:9)
녹취자 : 김세나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아멘. 무슨 공동체든지 간에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항상 결함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할 때 어느 형제가 와서 목사님, 제가 정말 흠이 없는 교회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실 교회들은 너무 혼란스럽고 그리고 결함이 많습니다 라고 그랬더니 스펄전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그런 교회가 혹시 발견되거든 형제는 절대 그 교회 가지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그랬더니 만약에 그런 교회가 없겠지만, 혹시 있다면 당신이 들어가는 즉시 결함 있는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끊임없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된 삶을 살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도 그렇게 결함이 많은데,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직장에는 얼마나 웃기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어요. 동의할 수 없는 일들이 아주 자주 많이 있습니다. 직장 생활도 해 봤고, 나는 학교에서도 생활해 봤지만 정말 그러한 동의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적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거기에 몸담지 않고 모든 것을 그만 두려면, 그것은 문제가 다르지만, 몸담고 생활을 하려면 그러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지혜롭게 극복하면서 살 것인가 하는 것들을 생각을 해야지 되는 것입니다. 교회든지 직장이든지 간에 옳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전체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는 우리가 개혁을 해 나가야 되지 않겠어요. 이 개혁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보면 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를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몸이 병이 있고 문제가 있으면 그러면 그 몸이 문제 있는 병들을 고쳐 나가잖아요. 그 고쳐나가는 것은 항상 이 몸 자체의 생명을 고려하면서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 같은 것들은 여기저기 망가지면 공장에 들어가는 길에 한꺼번에 수리해가지고 나오지만 우리 몸은 그렇게 안 됩니다. 그래서 병원에 들어가는 길에 여기도 수술하고, 저기도 수술하고 그렇게 한꺼번에 안 됩니다. 그 이유가 몸의 생명을 고려해서 하나씩 하나씩 원기를 복 돋으면서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혁한다, 자기 삶을 개혁한다, 사회를 개혁한다 라고 할 때에는 결국은 한 순간에 의협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개혁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개혁이 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그렇게 오래토록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화) 내가 내수동 교회에 있을 때인데 젊은 대학생들이 좀 교회에 대해서 뭐 좀 반감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 반감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타당성이 있고, 부분적으로는 타당성이 없지만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뭐냐 하면 15년만 참아라. 이게 뭐냐 하면 너희들이 그렇게 교회가 이런 것을 고쳤으면 좋겠다 이런 것을 올바르지 않게 한다. 이렇게 너희들이 고민을 한다면 15년만 참아라. 그러면 너희들이 지금 스물 대여섯 쯤 되었으니까 15년 쯤 지나면 40세 이고, 그러면 장로님도 많지 않은 교회에서 안수집사들이 되고 하면 너희들이 원하는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지 않느냐. 대게 그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러니까 진정한 교회의 개혁은 의협심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래토록 참는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는 변화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제 그런 그렇게 그런 성격이 교회 속에나 직장 속에나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아주 분명한 것이고, 그리고 그래야 하는 것인데 오늘 여기에서는 그러한 모든 일들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흘러야 할 인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교회 생활이든 직장 생활이든지 간에 사람들과의 관계 그것을 토대로 해서 그 조직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목조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이 그 일들을 직접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회사는 시간과 경비를 투자해서 이익을 창출하는 일에 헌신하고 교회는 그 모든 자원들을 사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나라를 이 땅에 회복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그렇지만, 동일한 점은 뭐냐 하면 직장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다음에 교회도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해 나가는 관계 속에서 자기의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화)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라고 하는 것을 일반 경영학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터득했습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포드 시스템이 도입되었을 때 전 세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그저 모여 앉아서 주먹구구식으로 기계를 만들었는데 컨베어시스템 이라는 것을 도입을 해서 그래서 그것이 흘러가면서 각각 분업화 된 일을 하면서 1분 30초에 포드 자동차가 한 대씩 저 끝에서 툭 툭 툭 툭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때에 전 세계 사람들이 굉장히 커다란 충격을 받았죠. 일이 전문화 되니까 볼트 조이는 사람은 5년, 10년 동안 그 자리에서 볼트만 조이니까 세계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칠하는 사람은 칠만 하니까 세계 최고가 되고요. 그런데 그것에서부터 이제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가 뭐냐 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를 점점 못 느끼기 시작을 합니다. 소위 이야기 하는 그 일의 비인간화가 포드 시스템을 통해서 촉진되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열 명이 달라붙어서 자동차를 함께 만들 때에는 야, 우리 다 만들었다. 만세. 하는 게 있었는데, 만세가 없는 것입니다. 근무 시간에 끝날 때까지 계속 놀 수가 없죠. 조이면 딱 시간 안배를 해서 이동을 하면 그 때까지 조이는게 끝나야 합니다. 그 다음 차가 들어오고, 그러니까 이제 비인간화가 촉진되고 여러분, 복음주의 동향에서 제가 이야기 했지만, 분업화가 가지고 온 그 아주 심각한 그 말하자면 폐해였어요. 그래서 이제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 요즘 들어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사람들을 이렇게 묶어 주는 일에 그 경영적으로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이제 입사할 때 아주 강도 높은 뭐라 그럽니까. 지옥 훈련, 그런 것들을 통해서 뭐 사람들을 외국으로 데려가서 굉장히 위험한데 거기에다가 사람들을 안전 상고를 갖춘 다음에 몇 십 킬로씩 트래킹을, 트래킹을 아니라 뭐죠. 보트 타고 내려오는 것, 래프팅을 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굉장히 높은 산을 오르게 하는 트래킹을 한다든지 이런 등등의 것들을 시키는 이유가 바로 무엇 때문이냐 하면 그렇게 앞으로 일을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요즘은 포드 시스템들이 부분적으로는 이어질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전혀 다른 개념의 방법들이 동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속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람들을 향한, 그 따뜻한 배려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빛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해 나가면서 어떤 모순들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고치고 그렇게 해서 효율화 하고 하는 일들은 절실하게 필요하고 최악의 직장의 형태가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무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언젠가는 곪고 곪아서 나중에는 확하고 터져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교회도 어떤 일들을 해 나갈 때에 그것을 불합리한 점이 있고, 모순되는 점이 있으면 그것을 도출해 내고 그리고 그것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들을 가져야지만, 발전을 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원들이 낭비가 되지 않는 가운데 일을 해나가는 것이지, 내가 싫은 소리 왜 하랴. 이렇게 하면서 모든 것을 덮어 주면 어느 한 순간에는 아주 더럽혀지고 그것이 곪아서 결국은 교회 몸에 큰 상처를 내고 그리고 효율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단점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일과 인간관계를 분리시킬 줄을 몰라. 그게 문제에요. 이렇게 회의하다가 누가 뭘 이야기 하는데, 목사님 그 의견은 이런, 이런 점에서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이야기하면, 저 자식이 나한테 대해서 지금 뭐 반감을 가지고 있나. 이렇게 일하고 인간관계를 자꾸 혼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뭐냐 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아이고 내가 떠들어서 뭘 하랴. 가만히 있어야지. 그렇게 하면서 함께 동반 추락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유능한 지도자는 그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자꾸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그래서 어떤 일이 이치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일이 조금 잘못되어 나아갔을 때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상하지만, 많이 잘못하였을 때에는 많이 상하잖아요. 그렇게 많이 상하기 전에 항상 기회를 주어서 그 사람들이 기회를 주어서 그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나 일에 대한 다른 생각들을 말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잘 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옳게 판단하고 평가하고 해서 반영을 하고 그렇게 고쳐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화) 제가 한 4년, 4년 넘었나 5년 되었나요. 미국에 그 뉴저지에 있는 어느 교회에 갔는데, 교회가 꽤 커요. 천 한 2-300 명 모이는 큰 교회인데 가서 집회를 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셨어요. 그리고 저녁때 이제 재직들이 모여서 같이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희 교회에는 교인들이 다 3년 미만입니다. 그러냐고 목사님이 아주 기도 많이 하시고 전도 설교를 잘 하시는데 1년째에는 너무 너무 전도 되어서 행복해하고 2년째에는 혼란스러워하고 3년째에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4년째는 나간대요. 에이, 좀 과장이 심하구나. 그래서 나는 숙소에서 묵는데, 부목사가 나를 데리러 온 것입니다. 아침에, 새벽집회, 아침집회 이렇게 데리고 다녀야 하잖아. 아니 이 친구가 아침을 안 사주는 것입니다. 나는 밥 얻어먹는 거 싫어하니까. 첫날은 내가 냈는데, 계속 내가 돈 계산할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경우가 좀 그렇다. 그래도 강사가 왔는데 한번이냐 내가 내지만, 그런데 모든 것을 단 10원도 안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한테 그 게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실은 뭐 누구한테 게기는 거 싫어하는데 그래서 내가 다 냈지. 그런데 나중에 의문이 풀렸어요. 그 때도 또 아침인가 밥을 먹고 그리고 나오는데,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돈이 없어서, 그래서 돈을 안 가져왔다는 뜻인 줄 알았어요. 절대 그렇게 강사를 대접한 영수증을 가지고 교회를 가면 돈을 안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무슨 그런 교회가 있냐. 너가 사 먹은 것도 아니고 그랬더니, 그때야 이제 털어 놓으면서 목사님 저희 교회가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장년이 1200명 모이니까 아이들도 6-700명 모이지 않겠어요. 2천명 가까운 교회인데 교회 행정 직원이 넷이야. 그런데 현금 출납을 담당하는 이 여직원과 행정을 담당하는 여직원이 이 둘이 있는데 장로 부인이야. 그러니까 장로들이 교회를 통제하기 위해서 자기 마누라를 간사로 집어넣어 둔것입니다. 월급 받으면서. 그 교회가 그러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야, 진짜 너무 이상하다. 어떻게 그렇게 하냐. 그래서 3년 차에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교회를 나간대. 왜 그래요. 이것은 무엇인가 아주 현저하게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이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에요. 전적으로 지도자의 책임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그 속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해 나갈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잘 귀를 기울여 들으면서 그것을 결함이야 늘 있겠지만, 조금 더 좋은 조직으로 조금 더 좋은 조직으로 이렇게 만들어가서 거기에 있는 지체들이 무엇인가 어려운 점이나 잘못된 점들을 이야기 하면 지도자에 의해서 그리고 자기 조직에 의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함께 최소한 고민을 해준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도자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뭐냐 하면, 그런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 어떤 문제들을 이야기 할 경우에 아까 이야기 했듯이 우리 민족은 굉장히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사람들이 되어서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혼돈한 것입니다. 미국에 갔을 때 사람들이 놀란 게 뭐냐 하면 한국이 굉장한 나라구나. 이게 뭐냐 하면 대통령 두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사형 언도를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게 한국의 위상을 굉장히 높였습니다. 물론 이제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렇게 생각 안하죠. 전혀 달라. 중국은 뭐냐 하면, 어떻게 너네 그러냐. 왜, 그러면 그렇게 돈을 해 먹고 나쁜 짓을 해 먹지 않았느냐. 그래도 그렇지 어른이신데, 어떻게 감옥에 집어넣느냐. 집안의 망신이 아니냐.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드디어 한국이 이제 민주화 되는 구나.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뒤집어진 게 뭐냐 하면 기소해서 감옥에 쳐 넣은 지 2년 반 만에 석방 시켜 준 것입니다. 그런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수사한 기록이 10만 쪽이래. 10만 쪽. 이해가요? 수사 기록이. 300페이지짜리 책 30권이야. 300권이네. 300권이야. 그렇게 방대한 기록을 남겼으니 얼마나 지독하게 수사를 했겠어. 그 들어간 돈이 수 백 억이야. 그게 옛날에 클린턴 뭐야 성추문 사건 하는데 스타 검사가 530억을 썼잖아. 그런데 그것을 2년 반 만에 풀어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말 웃기는 나라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혼돈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일에 대한 생각과 사람에 대한 감정이 뒤 섞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라도 바꿔 나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사람의 허물을 거듭 말하지 마라. 여기에서 이것은 옳은 조직을, 교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 비효율적이고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해서 일을 해내가자고 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벌써 그 사람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허물을 거듭 말하는 것, 그렇게 될 때에 끊임없는 관계의 파괴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그러면 끊임없이 관계가 파괴되면 그 조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것을 잘 생각을 하면서 이 조직이 어느 정도까지 개혁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것을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 고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대학에 있을 때, 어떻게 중요한 일들이 결정되는가를 보면서 참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교수를 임용을 할 때에는 일단 신앙, 인품, 그런 것들도 들어가겠지만, 실력이 이제 문제가 아니겠어요. 그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보는데 전부다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서 통과가 되었어요. 통과가 되어서 이제 이 사람이 교수가 될 텐데 쭉 이야기 하다가 이 사람은 이렇고, 이 사람은 이렇고 쭉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위의 어른 한 분이 근데 걔는 싸가지가 없어. 그러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야. 모든게 전부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것이 뭐냐 하면 이게 꼭 좋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과의 관계가 피할 수 없이 중요하구나. 그것을 아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함께 생활을 하면서 결국 사랑이라고 하는 것 자체는 관계거든요. 관계. 관계를 맺는 거거든. 그래서 사람들,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어 가는 것, 그것이 가장 훌륭한 이해에요. 우리는 이러한 좋은 모본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제자들이 모이고 또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겨났어요. 그래서 생겨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가난한 자들을 돕고 병든 자들을 고치게 그렇게 분부하셨어요. 이런 일들을 해 나가면서 사람들이 더더욱 한 마음이 되고 이런 일을 해 나가면서 주님께서는 말씀에 의해서 참답게 변화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가려내요.
사도바울의 경우를 보면 고린도교회에서 쓴 편지에서나 골로새 교회 혹은 빌립보서에, 빌립보 교회에 쓴 편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함께 주님의 일을 섬기고 봉사해 나가면서 이 사람들이 더욱 사랑으로 하나 되고 그리고 더욱 더 은혜로서 좋은 결속을 이루는 그러한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의 경우를 보더라도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은 교회였는데 그렇게 사도바울의 일을 사역을 돕고 섬기면서 오히려 에바브로 디도의 일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했어도 그렇게 교회가 서로 돕고 복음 안에서 교통하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빌립보 교회가 같은 마음을 품고 그 협력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역량은 뭐냐 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내가 함께 있는 모든 지체들에게 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나눠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더 큰 일을 위해서 이바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물을 덮는 그러한 생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무슨 뭘 고치고 바꾸고 하는 그런 일들을 하지 말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그것들이 조직 안에서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그러면서 각 사람들에게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일수록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해야 하는데, 의견이 다르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품으면서 대화를 하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더 좋은 화합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허물을 덮는 사람이 필요하다. 저 사람의 어떤 부족을 보면 그러한 부족 때문에 나를 하나님이 여기에 두셨구나 생각을 하고 그것을 자기가 보완해 나가는 역할을 자처하고 그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이 자기를 세워주시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이 세상에 창조하실 때 똑같이 창조하지 않으시고 각각 다르게 창조하셨어요. 사랑이 없으면 서로서로 다른 것이 갈등의 요인이 되지만, 사랑이 있으면 서로서로 다른 것이 참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다른 것이 은혜가 되어서 함께 하나님의 일을 섬겨 가는데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주님의 일을 하나님께로 받았으면 잘 완수해야지만 하나님 앞에 잘하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 하나가 하나님 앞에 잘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잘 해도 우리 함께 잘 하지 않으면 나의 잘함이, 잘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잘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하모니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허물을 덮는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그것을 악감정을 가지고 거듭거듭 말하는 것은 관계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이곳에 보내어서 주님의 교회와 성도와 그리고 이 세상을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우리를 불러 주셨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곳에서 주님을 섬겨가는 이것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실현하는 길이고, 또 우리가 주님 앞에 보람을 얻는 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곳에서 주님을 섬겨갈 때 오래참고 신앙적으로 배운 대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부족을 볼 때마다 저런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기를 보충하고 기워주라고 여기에 나를 세우셨구나 생각하고 오히려 거기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3.동료의 명예를 지킴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것을 숨기느니라(잠 11:13)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함께 복음사역을 하거나 또는 직장생활을 하던지 간에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그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는 길이다'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 세 번째는 우리들이 직장생활을 하던지 이렇게 복음사역을 함께 하던지 간에 사람이 모인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고임을 받으면서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명예를 보존해 줘야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까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것을 숨기느니라' 그랬습니다. 이 글을 쓸 때 저자가 누구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이 부분을 기록하였는지는 우리는 모르겠죠. 그렇지만 특정한 사람의 이름은 몰라도 우리에 마음속에 그려지는 사람은 있습니다. 두루 다닌다고 했으니까 이 사람은 굉장히 활동적이고 활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담한다고 했으니까 이 사람은 말하기를 매우 즐겨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해서 여러 사람과 관련을 맺으면서 무엇인가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 내놓으면서 담화하는 그런 습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런 사람은 절제가 없는 방탕한 기질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방탕이라고 하는 것은 꼭 술 먹고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이렇게 막 현저하게 나쁘게 살아가는 것만이 방탕이 아닙니다. 음식의 절제를 없는 것이 식생활에 방탕이고 그리고 언어의 절제가 없는 것이 말의 방탕입니다. 잠에 절제가 없는 것이 잠, 수면의 방탕입니다. 그렇죠? 또 우리가 살면서 놀이가 꼭 필요하죠. 그렇지만 그 놀이에 규모 없이 자기를 내어맡기게 되는 것은 그것이 바로 그 휴식의 방탕입니다. 이런 식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방탕의 개념은 뭐냐 하면 일정한 규모와 필요를 넘어서는 마음의 흐트러짐입니다.
거기에 자기를 맡기게 되면 사람이 음식을 먹어야 되는데, 먹으면서 제가 항상 우리 딸에게도 주의를 주는 게 먹을 때에는 사람이니까 맛있는 거에 끌리지만 거기에 온전히 자기를 맡기면 건강을 해친다 그러니까 먹기 싫어도 브로컬리 같은 거 먹기 싫어도 이성적으로 몸에 좋다지 그러면서 억지로 먹어 버릇을 해서 먹기 싫은 것도 먹고, 먹고 싶은 것도 절제를 해서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이게 식생활이고 이런 한도 안에서는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방탕으로 흘러버리면 이 음식에 단맛이 사람을 막 잡아끌고 앞서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수면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잠올 때 자고 깰 때 딱 깨면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다음엔 이 질서가 흐트러지면서 그만 자도 되는데 몸이 잠을 계속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걸 안돼 하고 떨치고 일어나야지만 그것이 사람이 잠을 자는 것이지, 거기에 자기 몸을 맡겨버리면 잠이 사람을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게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말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얼마나 말이라고 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여러분 얼굴 예쁜 사람하고 사는 것보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 때에 맞는 말로 사람들에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하고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한 삶입니다. 왜냐하면 용모에 유효기간은 6개월이야. 그러니까 조리 있게 말을 잘하고 사람에 마음을 추스려 줄 수 있는 이런 사람하고 사는 게 좋은 것입니다. 직장생활에서도 보면 두 종류에 사람은 항상 소외돼. 뭐냐면 크레뮬린 같아서 무슨 마음이 속에 있는지 입을 꽉 닫고 사는 철벽같은 사람하고 그 다음에 입을 열면 배설하듯이 말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 양쪽 다 소외됩니다. 진짜 중요한 정보는 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그렇게 꼭 필요하지만 우리가 말을 하고 싶어도 참고, 아 정말 하기 싫은데도 그것을 사람들에게 일부러 힘들여서 조리 있게 말하고 설득하고 꼭 필요하잖아요?
오늘 아침에 신문에 보니까 미국이 혁명이 일어났더구만. 백 년만에 의료보험이 개혁되었어요. 우리 여기 사니까 심각성을 잘 모르죠? 엄청납니다. 우리 나라 좋은 나라입니다. '나 너무 아파요' 그러고 구급차 부르면 170만원서부터 시작입니다. 170만원 아니지 1700불이니까 200만원부터 시작입니다. 그러고 한껏 많이 나오면 3500불까지 나옵니다. 뭐가? 그 엠블런스 사용요금이 500만원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고 구급실 응급실에 실려 들어가서 의사가 진찰해 본 다음에 별거 아니시네요. 그냥 집에 가서 쉬시면 됩니다. 그러면 1000불 나온답니다. 그러니까 그 개혁을 하는데, 그래서 이제 오늘 신문에 오바마는 설득에 성공했다 그래서 자기 의원들을 다 설득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겁니까?
그런데 그것을 내버려 두면 사람이 말을 끌고 다니는 게 아니라 말이 사람을 끌고 다녀요. 누가 그런 예기를 하더래요. 개학을 해서 학교에 갔더니 어느 여대생이 그러더래. 야야야야야야야 아구 말마려워 죽겠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말 마려워서 죽겠다고 해. 응? 오줌 마려운 것처럼. 배설이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 방탕과 사랑이 아주 유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유사하냐면 사랑이 많은 사람도 늘 사람을 찾아요. 언어에 방탕한 기질이 있는 사람도 사람을 찾아. 그런데 사랑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그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사람을 찾고, 언어에 방탕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안에 있는 말을 쏟아놓기 위해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에 방탕이 있는 사람들이 맺는 사람들과에 관계는 신뢰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언제도 제가 한번 국제전화를 받았어요.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니 전화로 이야기를 하는데 루마니안가 어디로 꼭 와달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다음에 연락합시다하고 끊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어느 목사가 그래요. "형님." "왜?" "형님 그 사람 잘 알잖아?' "알지 학교 다닐 때 알지." "10개 말하는 거 5개정도만 믿어. 다 믿지 마. 생각 많이 하고 그 말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것들이 뭐죠? 바로 신뢰하기 어려운 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에 적절한 사람들이 인격적인 관계를 참 잘 맺습니다. 말이 너무 없거나 너무 많으면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잘 들어봐요 사랑은 없는 것도 있게 하고 있는 것도 없게 해 놀라워요. 사랑은 없는 것도 있게 하고 있는 것도 없게 해 그게 사랑에 놀라운 힘입니다. 그런 사람이 인제 두루 다니면서 한담하는 사람인데 원래 이 '한담'이란 말이 무슨 의미냐 하면 성향적으로 말을 하기 좋아하는 기질이 있는데, 그것을 자신의 여가생활처럼 삼는 사람입니다. 이게 습성이죠. 그런 사람들의 행동이 결국은 어떤 한 위험을 내포합니다. 근데 그 위험이 뭐냐 하면 남의 비밀을 말하는 거지. 남의 비밀을 말하는 거.
여기서 이야기하는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뭐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자기 이익에 침해가 되는 모든 것들이 비밀이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알려질때 그 사람에 명예에 누가 되는 것, 그런 것을 여기서 가리키는 것입니다. 비밀입니다. 그러면 그 히브리어로 보면 이렇게 '감추다' 그런 거거든요. 다른 사람이 감추는 것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주는 드러내는 그런 일들을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것이 바로 말에 절제가 없이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사람들의 단점입니다. 근데 그렇게 되면 사실 우리들에 대화를 가만히 보면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은 사람들에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합니다. 그러나 특별하고 예기치 못한 일들은 사람들에게 강한 관심을 끌어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다소간에 영웅심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말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주 집중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말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내가 이렇게 말을 할 때 집중을 안 하고 딴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멸시하는 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말을 할 때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근데 한담하는 사람들에 특징은 영웅 심리적인 집중에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냐 하면 같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거기에 뭐가 들어가냐 이그제너레이션 과장이 들어가요 보태는 말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정직에 위배되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똑같은 사실인데도 그것을 사실대로 말하면서 선후를 바꾼다던지 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 화법에 문제가 아니라 사실을 과장하거나 그 위에 추측을 보태어서 그래서 그것을 크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부풀려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굉장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이 사람들에게 말하게 될 때에 거기서 정보적인 우월감 같은 것들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 왜 그 말을 이렇게 많이 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은 이렇게 좀 정신과적인 질환이 생겨날 때 사람들이 딱 두 종류로 가잖아요? 완전히 자폐증증세로 가서 말을 안 하는 사람과 그담에 말이 굉장히 술 먹으면서 이렇게 점진 조절이 안 될 때 막 언어가 막 남발되잖아요. 그런 경우죠. 그래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 비밀을 누설합니다. 그런데 잠시 다른 사람들에 비밀을 말해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자신에 그 이야기가 오가는 담화방의 주인공이 되는 것에 대한 댓가는 굉장히 큰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한번 쏟아진 다음엔 다시 담을 수 가 없어요. 그래서 잠시 그 대화에 자리에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것은 순간에 만족이고, 이후에는 굉장히 커다란 댓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에 말을 대놓고 못하고 뒤에서 하는 것을 가르쳐서 뒷담화라고 합니다. 담화. 뒤에서 담화한다. 다마가 일본말로 공이야 공 그렇죠. 그래서 옛날에 다마치기한다 그러잖아 그렇지? 전구 다마좀 갈아라 할때 다마가 일본말이란 말입니다. 뒷다마고 하면 뭐냐하면 당구에서 뒤에 쳐가지고 뒤통수치는 것을 뒷다마라고 그러는 거거든. 그러니까 그 다마가 뒷담화는 뒷다마야. 그래서 뒷담화는 뒤다마야. 그래서 뒤에서 뒤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해서 대놓고 "임성호 실장은 참 한국에 빌게이츠야" 이러면 이 사람이 자기 놀리나 이렇게 생각해. 그럴 때도 사람이 기분이 좋을 수 있지만은 더 좋은 건 뭐냐 하면 3자를 통해서 그 이야기가 들어갔을 때 "야 우리 어저께 목사님하고 가다가 우연히 버스 간에서 만났는데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네 이야기 나왔거든? 야 목사님이 너를 굉장히 뛰어나게 생각하시더라. 한국에 발게이츠라고 그러더라"그러면 그 말은 자기 자신이 굉장히 명예로운 것입니다. 그러면 그걸 뒤집어서 생각을 해봐. 이렇게 할때. "나는 개인적으로 양 목사님 별루입니다."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했을 때도 기분이 좀 나쁘지만 나중에 이야기 들으니까 "목사님 엊그제 뭐 홍자매하고 그 다음에 자매하고 같이 전철을 타고 가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거든요. 근데 아 정말 양 목사는 엄청 갈구대요." 이렇게 들으면 더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칭찬도 욕도 정면에서 했을 때보다도 이렇게 제3자를 통해서 이렇게 들어오게 되었을 때 그때에 더 큰 기쁨과 모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뒷담화의 심각성을 여러분이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참 그런 뒷담화를 거의 안하던 사람들이 우리 교회 여럿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에 특징은 뭐냐 하면 절대 그 사람이 없는데서 그 사람에 단점이나 결점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러면 무슨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건 아닙니다. 이게 여러분 쭉 심방하고 와서 나한테 보고 안하면 그 여러분 부교역자라고 할 수 있겠어? 이게 또 뒷담화 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안 되지.
여기서 이야기하는 뒷담화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 특별한 아주 분명하고 뚜렷한 목적이 있으면 이야기할 수 있죠. 응? 이야기할 수 있죠. 근데 그게 아니라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뭐냐 하면 자 기속에 있는 그런, 대화 자리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그런 욕구에 의해서 쏟아져 나오는 언어의 배설적인 작용으로써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하고는 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비밀을 그렇게 누설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듣는 사람들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아 저사람 그런 남에 이야기를 그렇게 중요한 비밀들을 누설하는 것을 들을 때 여러분 무슨 얘길 해? 그 앞에서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그랬어? 어떻게 알았어? 야 놀랍구나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그 사람들은 마음을 잠그기 시작합니다. '야 저사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진심을 말하지 말아야겠다. 조심해야겠다. 저 사람이 지금은 나한테 와서 그 사람 이야기를 하지만 또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알면 저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는가?'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몇년전에도 교역자들에게 그런 이야기 했죠? 말에 절제가 없는 사람들에게 비밀을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언어와 마음과 행동을 통해서 신뢰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제 대조되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것을 숨기느니라.'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함께 사역을 하면서, 사람들과에 관계라고 하는 것은 메아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악을 쓰면 저 사람에 마음을 통해서 내가 악소리가 들려와요. 노래를 부르면 저 사람에 마음을 통해서 노래가 내게 들려와요. 그게 인간관계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것을 숨기느리라. 그 마음속에 그것을 이렇게 깊이 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긴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다른 사람들의 명예를 보존해 주는 것입니다. 보존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회하다보면 교회 옮기고 와서 전에 있던 교회 더럽게 씹는 사람 있거든요? 똑같이 하고 떠납니다. 80%이상 사실입니다. 똑같이 하고 떠납니다. 똑같이. 전에 있던 교회에서 돈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떠난 사람에 의해서 돈으로 문제 일으킵니다. 옛날에 어느 교인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 뭐 다 간 사람들이죠.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이렇게 방황하다가 열린교회를 찾아와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 그래요?" 근데 이제 이름은 이야기를 안 해. 항상 이야기가. 그래서 내가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에서도 다 사실이야. 근데 전부다 다 간유리 처리했어요. 이름만 대면 여러분이 다 아는 사람들이 거기 되게 많아.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한다 거기에도 나오고. "정말 그 교회에 대해서 실망을 하고 여기에 왔습니다." "왜요?"그랬더니 자기가 어느 교회에서 장로로 투표가 당선이 됐대요. "그래서요?" 담임 목사님이 조용히 방에 들어오라고 그러더니 백지를 하나 딱 내놓더래요. "성도로써 최고의 영광인 장로가 됐으니 한번 써봐 "그러더래요. 돈을 얼마나 낼지 여기다 헌금을 얼마 써봐라. 그래서 인제 썼대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딱 보더니 "기도하고 와서 다시 써" 그러더래요. 그래갖고 그 담에 다시 갔대요. "써봐" 썼대요. 그랬더니 찢어버리면서 쓰레기통에 탁 놓더니 "다시 기도해" 그러더래요. 그래서 인제 "어떻게 그럴 수 가 있습니까? 장로가 되면 하나님 앞에 봉사하면 되는 거지, 돈 주고 사는 겁니까?" 그 이야기를 듣는데 '참 그 목사님 왜 그랬을까?' 사실 그럴 필요까진 없잖아요? 그렇게 해서 돈을 뭐 그 사람이 10억을 써도 뭐 별로 감동안하지. 우리 교회 같으면 100먹쯤 쓰면 감동을 하겠지. 빚 다 갚으니까. 100억을 내겠어 50억을 내겠어? 얼마 전에도 뭐 장로 뭐 권사된다고 뭐 돈을 몇 푼씩 거둔다고 그러다가 뭐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뭐 다투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웃긴다. 웃긴다고 그랬어요. 내가. 내가 그랬어요. 그 중에 사람보고 "아이 보시오, 당신들이 돈을 걷어서 100억을 모을 꺼요? 50억을 모을 꺼요? 여러분이 모두 힘 합해서 5억을 내놔도 담임목사는 개인적으로 추호도 감동 안 해." 물론 나 감동시키려고 헌금하는 건 아니지만 교회 살림에 도움도 안 돼 5억은. 응? 내가 오죽했으면 그랬어요. 아니 그렇게 10몇 년 동안 나하고 같이 살고도 나를 모르오? 근데 그런 것입니다. 근데 마음속에 약간에 왜 그 같은 목사로써 좀 창피한 마음과 사소한 분노도 일어났어요. '그 왜 목사가 그럴까?' 그 사람이 결국 건축헌금 수천만 원 떼먹고 도망갔잖아. 안내고 갔어요. 근데 그걸 딱 보면서 야 올때 그 모습 그대로 구나. 올때 그 모습으로 왔다가 은혜 많이 받고 억제되어 있다가 은혜 떨어지면 그 모습 고대로 다시 교회 앞에 맡겼던 옷 다시 입고 또 떠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본성은 하나님에 복음이 침투해서 그 인간을 바꿔놓기 전까지는 그건 운명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의 본성은 안 바뀌는 것이다. 숙명입니다. 숙명. 그럼 무슨 뜻이냐 하면 결국은 말에 말을 절제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는 그 기질과 마음은 가정에서나 친척들과의 관계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똑같은 것입니다. 복음이 스며들어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요? 마음이 신실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됩니다. 사람들은 다른 것을 그런 것을 숨기는 것입니다. 숨기는 거. 그래서 그것을 보호하고 덮어주는 것입니다. 덮어 둔다고 해서 그것에 모두 동의하기 때문에 덮어두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마태복음에 보면 마리아가 잉태된 것이 이미 나타났을 때 요셉이 조용히 그것을 덮어두었죠. 그 일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었기 때문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의로운 사람이면 다 까발려서 개혁을 해야 되잖아? 근데 그렇지가 않고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조용히 덮어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에 명예를 보존해 준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신실한 사람들은 그것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과에 관계를 쭉 보존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래서 여러분이 조심해야 됩니다. 그 저기 어느 이단이 하도 문제를 일으켰을 때, 최근에, 그때 담임목사님이 귀에 들려오기를 그 교회 어느 장로님이 그 이단에 속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는 이야기가 여러 사람을 통해서 들려온 것입니다. 단상에서 "지금 이단이 교회를 넘보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개 장로도 거기에 따라다니는 사람이라" 그러고 선포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교회가 발칵 뒤집혔죠. 나중에 다 조사를 해보니까 아니야. 그러니 그게 인제 목회자가 역습을 당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참고,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보존해 주려고해도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언젠가 그것을 드러나게 하셔서 그래서 하나님에 뜻대로 그 일들을 처결하십니다. 뒷담화하지 말고 오히려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에 명예를 보존하고 높여주고 사랑하고 칭찬하고 할 때 그때에 여러분 에게도 똑같은 것들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의 삶에 구체적인 실천들이 이 잠언 속에 담긴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명료한 계시에 말씀에 지혜로워진 사람들의 삶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말에 있어서 깊이 절제하고, 다른 사람들의 명예를 잘 보존해주어서 어디로 가든지 여러분이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4.타인에게 겸손함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3:10)
용서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따로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 안에서 살고 싶은 사랑의 속성이 자기에게 죄를 지은 사람과 관련되어서 나타나는 그 속성에 빛깔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만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사랑의 본성이 자기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이익을 구하고 영광을 구하다가 나타나는 그 자기사랑의 빛깔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아주 높은 덕을 가지고 있어도 그 덕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칭찬을 받을 때에는 참 옆에서 그 칭찬을 듣는 사람도 좋고 그 칭찬에 대상이 되는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데 본인스스로가 그렇게 칭찬을 하면 갑자기 그 덕이 빛이 바래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에 모든 지혜는 위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아래로는 사람들과에 관계 속에서 슬기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에 방법이 구원에 입구에서 우리를 지극히 겸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번에도 영국에 가서 그런 것을 그 생각을 했는데, 여러분이 잘 아는 존 번연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에 기질이 위필드하고 비슷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분이 원래 굉장히 쾌활하고 낙천적이었다고 그래요. 그러다가 이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영국의 청교도들 가운데 가장 가혹한 회심전야를 지낸 사람 중에 하나가 존 번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책 어바운딩 그레이즈라고 하는 책에 보면 그에 자전적인 고백이 나옵니다. 약 1년 6개월 동안을 성령에 조명을 받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충분히 회심하지는 못한, 거듭나지는 못한 고통스러운 상태가 1년 6개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때에 이 존 번연은 어느 날 베드포드 강가에 나와서 마음에 슬픔을 간직한 채 하나님께 돌아갈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자신에 처지를 한탄하며 '나는 베드포드 강가를 한가히 떠다니는 저 오리새끼가 정말 부럽다'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문을 우리가 두드릴때에 사람마다 회심경험에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주시는 것이
이 벌레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겸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그래서 구원에 문은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완전히 엎드린 채로 비천한 죄인의 모습으로 구원에 문을 두드리고 주님이 맞아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하나님을 멀리 떠난 우리 인간을 참 사람에 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는 첫 번째 실질적인 조치입니다. 그러면 이 겸손함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만 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비굴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겸손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적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저는 아주 소수에 제자들을 가지고 있죠. 본인들은 제자라고 그러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안하고 또 나를 스승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제자라고 생각하는 제자는 전 세계에 한 명도 없습니다. 서로서로 불일치하지만 그러나 오래 가르치면서 하나에 터득한 선생에 마음이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진정한 아비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은 결코 유능하고 똑똑하다는 이유 때문에만 사람을 사랑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의 관계 역시 사람의 관계이기 때문에 관계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없으면 그게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가냐 하면 부족하지만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고 배우려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사랑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주님 앞에 하나님, 저는 다 준비됐습니다. 이제 쓰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세가 애굽에서 그런 사람이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놀라운 학문과 큰 재주있는 마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의존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일평생 자기의 철학과 신학의 전범으로 삼았던 인물이 있습니다. 그게 구약에서는 어, 신약에서는 바울이고, 구약에서는 다윗이었어요. 그런데 그 아우구스티누스가 다윗을 그렇게 부러워했던 이유는 그에 왕위나 또 뛰어난 학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뭐 아마 학식에 있어서 따진다면 아우구스티누스가 다윗을 훨씬 능가했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 비범한 천재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자기에 고백록 속에서 참 우리에게 좌절스러운 고백을 한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나는 누구하나 일러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철학의 책들을 누구하나 깨우쳐주는 이 없이 나 스스로 터득하여 갔던 것입니다. 이 일이 대단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후에 내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때였습니다. 내가 이 놀라운 지혜의 비밀을 가르칠 때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총명하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나에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겨우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탁월한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가 다윗을 부러워했던 것은 두 가지도 아니고 하나였어요. 그게 뭐냐 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에 지혜와 사랑 앞에서 물같이 녹아내리는 어린 아이 같은 마음. 그것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였어요. 희생의 제사. 자기를 죽여 드리는 희생의 제사를 다윗처럼 자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하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교만하면 그것은 그가 사람을 향해 삶에 태도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꺾어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삶에 태도가 단순히 상식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사람의 태도가 잘못된 것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잘못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을 향한 태도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꺾어지는 사람들이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주, 그리고 이번 주에 그 목양세미나를 이렇게 교구별로 돌아보면서 아마 교역자들, 나만 아니라 교역자들도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그 구역장들이 온 마음을 다해서 영혼을 사랑하는 거 이렇게 보면서 우리는 그런 때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좀 무리겠지만 그러나 우리도 항상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서 뭐 그 사람도 항상 안 그랬을지 모르지만은 보면서 머리가 숙여졌어요. 맞아.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길러주신 양떼들도 자기에 양무리를 저렇게 사랑하고 수고하는데, 우리에 하나님을 향한 섬김과 양떼를 향한 봉사는 늘 끊어진 노래처럼 그렇게 단절될 때가 많잖아요? 그러면서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깨뜨려지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겸손하질 않게 되면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 우월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직장생활 속에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 말을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은 그가 유능하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유능하게 살아가는 모든 날들 속에서 그가 무능하게 드러나는 날을 기다려요. 교만한 사람은 적수가 많고 경계하는 사람이 많아요.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친구입니다.
제가 성남에 있는 어느 교회에 오래전에 집회를 가서 했는데, 그 교회 부목사님이 나를 간절히 청했어요. 그래서 그 사연이 너무 절실해서 내가 뭔데 그러고 말씀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강사를 모실 때 진심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어제도 편지가 하나 왔는데 저기 중국 연변에서 왔어요. 근데 열 명 내지 스무 명 목회자들이 모여서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는데, 구구절절이 사연을 다하고 마지막에는 어려운 부탁인줄 알지만은 목사님 꼭 한번 오셔서 우리에게 한 이틀 동안만이라도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오시면 재워는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썼어요.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나를 담임 목사방으로 모실 꺼 아닙니까. 목사님이 60한 5세 7세쯤 되셔서 은퇴를 앞두셨어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입니다. 근데 뭐 그저 시골스러우신 전형적인 목사님입니다. 근데 그 담임목사 방에 앉았는데 싸늘합니다. 그 분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애. 근데 그 왜 그럴까? 뭐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죠. 근데 뭐 그러고 뭐 나야 뭐 그렇게 신경쓰지 않으니까 차 한잔 마시고 와서 말씀전하고 오면 다시 만날 사람들이겠어요? 그렇지만 마음에 왜 난 이 교회 말씀을 전하러 바쁜데 왔고 이 목사님은 나를 통해서 어쨌든지 목회의 유익을 누리실텐데 왜 그럴까? 차를 마시고 목사님에 의례적으로 몇 마디 하고 조용히 침묵이 흘러요. 그래서 인제 내가 입을 열었어요. 목사님 이 교회에서 몇 년이나 목회를 하셨어요? 그러니까 이 교회를 개척해서 여태까지 해서 35년인가 40년 가까이를 하셨대요. 그러고 인제 몇 마디 나누다가 내가 그랬어요. 목사님 그래 이제 내가 10년 전이니까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지. "목사님" "예" 그러면서 이제 내 이야기를 뭐 이렇게, 그래서 내가 이랬어요. "목사님 그래도 저를 그냥 돌려보내시면 안 돼죠?" 눈을 둥그렇게 떠요. 그래도 목사님은 35년이나 넘게 교회를 목회하셨는데 저는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인데 그래도 목사님, 뭔가 목회에 있어서 중요한 비결을 하나만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그때서야 얼굴에 웃음이 확 피면서 "목사님 나 같은 이 시골구석에서 목회하는 사람이 아는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이제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책도 많이 쓰시고 교수도 하시고 목사님이 훨씬 더 잘 아시지요. 나도 목사님 책 몇 권 읽었는데."그러고 이야기가 줄줄 나와요. "아닙니다 목사님 그것은 우리 젊은 사람들이 그냥 성경을 대하면서 쓴 것이고요. 목사님은 이 교회를 세우셔서 삼사십년동안 이끌어 오시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터득하셨겠습니까? 그게 진수입니다."그랬더니 또 한번 사양을 하셔. "아닙니다. 목사님 제가 듣기 전에는 설교하러 안 올라가겠습니다."그랬더니. "그럼 제가 가르쳐드리지요. 첫째." 그러고 나오는데 새로 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어 내가 늘 책에 쓰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그게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직장에 상사들은 어떤 부하직원들을 사랑하냐 하면 양쪽이 아닌 사람, 혼자서도 잘해요 하는 사람도 싫어하고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매일 괴롭히는 사람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몰라서 매일 괴롭히는 사람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태만하게 내버려두는 사람은 벌써 눈 밖에 난 사람이고. 그래서 가끔은 물어보는 것입니다. 부장님 이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아니 이 사람아 그거 알아서하면 되잖아? 쉬운 일은 제가 다 알 수 있는데 이거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일러주십시오. 그러고 와서 묻는 사람들이 귀여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그러니까 겸손한 것은 우리에게 적수가 사라지게 만들어요. 옛날에 나도 들은 이야긴데 어느 출판사에 있는 목사가 책을 한권 냈는데 특정한 목사에 이름을 걸고 그 사람에 설교를 샅샅이 분석한 책을 한 권 냈어요. 근데 거 받아보고 나서 참 이상하다. 이 사람 뭐가 할일이 없어서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는 사람을 이제 막 목회를 시작하는 사람을 이렇게 책까지 써서 이렇게 괴롭힐까 그랬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주 사소한 것, 그 출판사에서 둘이 만났는데 나이가 훨씬 어린 그 목사가 반말을 했대. 그게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게 시작이 된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셨지만 이준표 목사님은 정말 겸손하신 분이었습니다. 내 그분에게서 몇가지 특징적인 것을 배웠어요. 차를 타고 가는데 전화가 비서를 통해서도 아니고 뚜루릉 왔어요. 아 비서를 통해서 왔어요. 그게 뭐냐면 이준표 목사님이 목사님하고 통화를 하고 싶어서 곧 전화를 하신답니다 그래요. 아니 전화를 하면 내가 전화를 올려야지 목사님이 왜 전화를 하냐 이렇고 전화를 끊었는데 따르릉 하고 전화가 왔어요. 김남준 목사님이십니까? 예 저 이준표입니다. 아 예 목사님 어쩐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저희 교회가 별세 목회 세미나를 일년에 한 번씩 하는데 강사로 꼭 와주십시오. 아 목사님 직원들 통해서 전화하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목사님 꼭 부탁합니다. 꼭 부탁합니다. 어떻게 거절을 해요? 가서 세미나를 하고 나오는데 목사님이 차 앞에까지, 나는 제발 불편하니까 내려오시지 말라고, 내려오시지 말라고 해도 뭐 이 노인이 한결 같이 그때까지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산타모 타고 다니는데 산타모 옆에 딱 서셔서 90도로 인사를 하는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안 올라가시면 제가 차에 승차안합니다. 그러니까 소용 없어요 막무가내입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그러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나 이 세미나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직접 전화를 드리니까 미국에서 한국에서 호주에서 유명한 목사님들이 와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참 감동을 받았어요. 그게 겸손입니다. 겸손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에 은혜가 있는 겁니다. 두 번째도 있는데 다음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시간에 기도할때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셔서 겸손하게 하시고 모든 사람 앞에 자기를 낮추어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우리를 도와달라고 우리같이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하나님이 사랑해주시고 오늘도 하나님이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신실하신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하오니 주여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 오늘 이 시간에도 함께해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 앞에 특별히 의지하게 해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주님이 낮아지신 것처럼 저희들이 또한 겸손하여 아버지 하나님 앞에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오며 저희들이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게 해주시옵서.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빌며 그리스도에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5.자기 발전에 노력함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디모데전서 4:15)
네 자로된 한자말 가운데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괄(刮)’은 ‘눈을 부비다’라는 뜻이고 ‘목’은 ‘눈(目)’이고 ‘상대(相對)’는 ‘마주본다’라는 그런 뜻 아닙니까? ‘눈을 부비면서 마주본다’ 라는 뜻입니다. 그 이야기는 ‘그 만큼 자기의 눈에 비치는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다’ 는 뜻입니다. 그럼 뭐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내가 이 사람이 이러하리라고 생각했던 바가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가 잘못된 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눈을 부비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말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앞에 나오는 내용이 경건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정절과 그리고 신앙의 교훈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에 착념하고 그런 기독교적인 덕에 있어서 성장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잖아요. 오늘 성경에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것은 나타내는 게 목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너를 볼 때에 괄목상대할 만큼 그렇게 사랑과 신앙의 정절과 기독교의 가르침과 이런 모든 교훈에 있어서 진보를 이루라 그런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눈을 부비고 보지 않을 수 없도록 눈부신 진보를 이루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진보는 결국 하나님의 내적인 영광을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진보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진보가 이루어 질 때 우리 자신도 주님을 닮아가고 또 우리가 주님 닮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참답게 주님을 닮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는 뜻입니다.
1차적으로야 오늘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모든 사람과 신앙의 정절과 가르치는 것과 이런 모든 영적이고 내적인 것이겠지요. 이런 것에서의 발전이야 말로 참다운 인간의 아름다움의 발전이요 선한 가치의 증진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한번 우리 각자에게 실제적인 삶에 적용을 해 보면 이것은 다른 방면에서도 지극히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여러분이 기독교 사역을 할 때에나 직장생활을 할 때에나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진력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을 때 잠시 즐기고 사라질 것들에 투자를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돈이 생겼는데 그것으로 맛있는 것을 먹고 재미있는 구경을 하고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소비하면서 향락의 즐거움에 빠지면 내일은 물질의 상실밖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과 돈을 가지고 여러분의 지성을 가꾸고 언어를 습득해서 열심히 노력하여 의사소통의 능력을 키우고 이렇게 이렇게 발전을 한다면 자신의 가치가 매우 높아지는 것입니다. 얼굴을 고치는데 돈을 많이 들이면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영원과 마음과 지성에 투자를 하면 그것을 그것 보다는 훨씬 오래가는 것입니다.
어제 내가 사실 주일날인데 정신없이 바빴어요. 내가 만난 손님만 25명쯤 됩니다. 예배사이에. 프랑스 사람이 한 분 왔어요. 근데 후회가 되는 것입니다. 한 2년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막대한 과외비를 지출하고 공부를 했는데 그래서 까막눈은 면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왔는데 한 마디도 못하겠는 것입니다. 자기도 영어도 못하니까 둘이 쭈그리고 앉아서 서로 눈치만 보다가 끝났는데 그때 후회가 되더라구요. 좀 할 때 열심히 해서 이렇게 그래도 우리교회를 보겠다고 방문한 사람한테 친절하고 따뜻한 감사의 말이라도 몇 마디 건넬 수 있으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했을까. 배운게 새하얗게 되고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정신에 투자를 하면 얼마나 놀라워요. 그런 일에 있어서 진보를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이번에도 카이스트(kaist)에서 다섯 명인가 두 명을 종신교수로 임명을 했더라구요. 학교의 전체적인 추세가 빨리 내보내는 겁니다. 65세에 칼같이 자르고 에누리 없습니다. 그런데 종신이라면 죽을 때까지 교수인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보통 그 사람의 지식이 탐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으면 육신의 기력도 쇠하고 고집도 세어서 새로운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나 사상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서서히 서서히 정신적인 불구가 되어가는 겁니다. 내가 요새 느끼는 게 제가 참 기계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지금 늙는다는 게 현저히 느껴지는 게 아이폰 받은 지가 벌써 지금 한주일이 됐는데 아직까지 집에 모셔 놓고 있습니다. 켜기만 하면 머리에서 현기증이 나요. 현란하게 아이콘이 돌아가는게 어제 뭘 또 잘못 건드렸더니 이 아이콘이 가만히 있는데 아니라 계속 춤을 춰요. 수십 개가 이게 왜 춤을 추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다가 막 두드리니까 제자리에 멎었어요. 그런데 왜 멎었는지도 아직도 모르겠어요.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겠고.
이게 인제 뭐냐 하면 정신적으로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오는 거예요 죽음은 망각에 가깝고 생명은 활발한 기억의 활동입니다. 다시, 죽음은 망각에 가깝고 생명은 활발한 기억의 활동입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상상력과 기억력, 연산력 이런 것들이 물 끓듯이 막 끓는 것입니다. 인제 정신의 죽음의 기운이 들어오면 죽음은 망각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깜박깜박 하지? 김수미도 그러잖아 그지? 그것도 죽음의 기운이 서서히 들어와서 그대나 나나 이제 늙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망각에. 그래서 망각의 질도 여러 가지인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들고 안경이 어디있나 하면 이건 건망증입니다. 이거는 비교적 초기입니다. 근데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 물어보면 이거는 인제 치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거는 단순한 깜박깜박하는 망각이 아니라 아주 보다 더 깊은 단계의 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를 생명이 남아있는 동안에 그렇게.,
엊그제도 밤에 학의천을 걸으니까 그게 청계산까지 통하게 만들었더라고요. 근데 정말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부지런히 걸어, 그게 왜 그렇겠어요. 뭐 500원을 주고 1000원을 준다면 그렇게 걷겠어요? 그게 왜냐하면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신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노력을 해야죠. 그래서 진보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여러 가지 약점이 있는데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는 선한 의지의 크기가 나이가 들면서 훨씬 더 커지는 것,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지식과 기술의 발전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것 참 이상하잖아요. 우리들이 회사에서 자동차를 만든다던지, 회사에서 일을 한다든지 일반적인 업무를 처리할 때는 머리가 희끗하고 인제 콜록콜록 그러면 빨리 사표내고 나가라고 하는데 예를 들자면 장인정신으로 무슨 칼을 만든다던지 조각을 한다든지 그럴 경우에는 젊은 사람은 잘 안 알아줘요. 벌써 잔뼈가 굵으면서 머리가 허해지고 그런 사람들이 인제 그런 건축이나 고건축이나 고예술이나 이런 것들에 자기의 혼신의 힘을 기울일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장인의 정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가치는 굉장히 높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끊임없는 지식의 발전이고 그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번에 복귀를 했다 그러는데 뭐 복귀를 하는 게 옳으냐 안 옳으냐 싸우는데 그거는 자기네들끼리 이야기고 나는 별 관심이 없어요. 근데 누가 들리는 이야기에 이건희 회장이 나가있는 동안에 정신없이 삼성이 내리막길을 갔답니다. 다 발표는 안됐지만 핸드폰을 비롯해서 전자 모든 부분에서. 그러면 그분은 우리가 생각할 때 ‘야 그 양반 참 천재구나 머리가 비상하구나’ 그렇게 생각 하겠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분이 독서량이 이틀에 한 권이래요, 이틀에 한 권.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책들을 접하고 그리고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의 사람들은 옛날에 왕이 하던 경연과 같이 그래서 각계의 전문적인 사람들과 만나면서 대화를 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계속 충전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인제 그런 것들을 전체적으로 연결하고 꿰고 하는 그런 머리는 있으니까 새로운 정보들을 계속 접하면서 자기 자신을 유지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5년 동안 직장에서 일을 했으면 1년 들어온 사람보다 5배는 아니더라도 2배는 더 잘할 수 있어야죠. 그래서 아랫사람들이 볼 때 '야 내가 못하는 것을 저분은 해내는구나' 그런데서 존경의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니나 내나 그러면 무슨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겠어요.
여러분이 오디오 같은 것을 보면 예를 들면 10만 원짜리 오디오는 있지도 않지만, 50만 원짜리 오디오를 샀어요. 그래서 보니까 아주 좋아 만족이 됩니다. 그래서 그거를 배를 투자해서 100만 원짜리를 사면 20%정도 좋아질지 몰라. 그래서 그렇게 그렇게 하다가 500만원까지 올라갔어요. 500만 원쯤 올라갔는데 90%정도 됐어요. 5%만 좀 더 올리고 싶어 그러면 550만 원짜리를 사면 95%가 되는 게 아니라 1000만원이나 1500만 원짜리를 사도 5%가 향상될까 말까 합니다. 그다음부터는 1%가 엄청난 그 돈을 투자해야지만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발전하는데는 큰 비용이 안 들지만 그러나 거기에서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투자와 헌신이 필요하게 되고 그 작은 차이 때문에 그러면서 다른 사람보다 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 얘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이 어디에 있던지 간에 여러분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에게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신앙적이고 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이 분발하고 또 한편으로는 일반은총적으로도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식과 기술과 그리고 그 모든 이해에 있어서 진보를 이루도록 노력을 해야지만 세월이 흘러가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소중하고 주님께 쓰임 받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빛을 드러내는 직장생활 1
6.충고에 열린 마음
“한 마디로 총명한 자를 경계하는 것이 매 백 개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이느니라 ” (잠언 17:10)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자신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는 거지요. 자신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이유는 개별적으로 보자면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결함이 있기 때문에 못 보는 것이지만 성향에 따라 각각 좀 차이가 나겠지만 그런 개별적인 것 너머에 있는 공통적으로 자기를 보지 못하게 하는 공통적이고 원천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자기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으면 사랑이 없는 사람이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해석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 가지고 있는 해석적 성격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은 사랑이 없기 때문에 무슨 사물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할 때 악하고 왜곡된 방법으로 해석을 합니다. 반면에 사랑이 많은 사람은 그것을 해석할 때 사랑이 시키는 방식대로 해석을 합니다. 사랑이 시키는 방식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관계를 계속해서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해석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우리가 우리는 떠나서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우리와는 절연을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에 맞게끔 우리를 해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좋은 면도 있지만은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것은 공정하게 자기를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는 요인이 되어서 총명을 가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보고 자기를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자기가 하나님 밖에 있는 자기면 사랑해서는 안 되는 자기이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면 이미 그 안에 자기가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별도로 사랑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말 한마디의 충고는 총명한 자를 경계하게 하는데 미련한 자는 매 백대를 때려도 결국은 영향을 별로 받지를 않는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은 심하게 사람을 다루어도 이게 올바로 야단치는 사람의 말하려고 하는 그 충고가 가슴에 깊이 박혀 영향을 끼치게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총명한 사람은 한 마디의 말이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혀서 그래서 그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총명입니다. 모든 말이 아니라 진리에 부합하는 어떤 말이 주어질 때 그 말을 한 사람의 어떤 권위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그 말과 일치를 이루는 진리에 대한 감각 때문에 그 사람의 충고를 굳게 붙들게 되는 것, 이게 바로 총명이 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면 미련한 사람은 아무리 진실하게 이야기 하고, 심지어는 책망하면서 말하고, 오늘 성경에 말하는 바와 같이 때릴 지라도 그는 결코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를 떠난 완고함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비참한 범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이런 하나님의 총명을 주시기를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데 때로는 선하고 좋은 말로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악한 말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언젠가 한번 여러분에게 그런 충고를 드린 것이 기억이 나는데 나는 원래 천성이 마음이 유리그릇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잘 아시는 우리 할머니는 늘 언제나 걱정하셨어요. “너는 마음이 유리 같아서 이 다음에 너 큰일 못한다. 그러니 어떻게 마음이 그렇게 사내가 마음이 그렇게 여리냐” 그러셨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그게 가장 힘든 나 나름대로의 십자가였어요. 전도사 때의 일이었는데 왜 이렇게 내 주위에는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은지. 또 그 교회는 유난히 그런 말을 많이 썼어요. 그래서 교회에 그런 단어가 유행하는 게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성경에는 별로 안 나오는데 단어인데. 상처라는 그런 말도 보면 자기를 본위로 하는 그런 어떤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가 들어오면서부터 아주 굉장히 유행하게 된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 그 자체를 말하자면 피해를 입는 존재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든지 뭘 행하든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피해를 입는 존재라고 보는 것입니다. 상처를 입은 게 죄겠어요. 뭐 한 대 때려서 맞아서 상처를 났는데 친 놈이 나쁜 놈이지. 성경은 그런 식으로 인간의 상처를 설명 안하거든요. 그 이야기는 뭐 접어둡시다. 아주 긴 이야기니까. 어쨌든 그런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며칠씩 잠을 못 잤어요. 그런데 그러고는 끝났는데 교회를 하면서 특히 초창기에 험한 교인들이 참 많이 왔어요. 은혜도 많이 받았지만 은혜가 떨어지면 뭐 할 말 못 할 말 막 퍼붓고 그랬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마음이 너무 상하고 괴롭고 그러면서 어느 날 기도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이 이런 모습을 기뻐하실까? 누가 뭐라 그래서 파르르 마음이 끓어 가지고 우월감에 빠지고, 또 누가 뭐라 그랬다 그래서 싸늘하게 식어서 곧 죽어 버리고 싶은 정도로 좌절하고, 또 누가 뭐라 그랬다 그래서 용기가 확 생기고, 또 누가 뭐라 그랬다 그래서 기운이 하나도 없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는 이런 것을 이렇게 요동치는 삶은 어떤 식으로든지 성령 안에 붙들린 삶이 아니다.
그러면서 인제 조나단 애드워즈의 글에 보면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받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 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분도 목회하면서 비난을 많이 받으신 분이니까. 그런 여러 가지 자료들과 나 자신의 경험을 반성하면서 하나 아주 뚜렷한 원칙을 세워놓게 되었고 그 원칙이 이제껏 인생을 살면서 나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지키는 아주 중요한 방어기제가 되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해도 무시하지 말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도 한 번에 모두 신뢰하지는 말자. 그러면 어떻게 하냐 때로는 뭐 아주 황당무계한 그런 비난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전혀 사실도 아니고 근거도 전혀 없는 그런 말도 안되는 비난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될게 뭐냐 하면 내가 그런 사실이 없어도 그런 걸 사람들을 통해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비난을 받게 만드시는 그것도 사실 하나님이 주신 환경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건 내가 사실이 아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개소리 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럼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사건들을 통해서 비난한 사람은 의도하지 않은 전혀 다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요. 그래서 그 다음서 부터는 어떤 이야기를 듣든지 간에 그대로 들고 사람 앞에 옮기지 말고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요. 그리고 주님 앞에 마음을 비우고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이렇게 이렇게 말도 안되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실이 아닌데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면 그것은 수단이 되어서 하나님이 다른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시골에서 불 떼면 왜 부지깽이 있지요. 부지깽이는 대개 뭘로 하냐면 쇠같은 건 그때 흔치 않으니까 나무 중에서 좀 딱딱하고 불이 잘 안 붙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럼 부지깽이를 놓고 나무가 있는데 이상하게 불이 잘 안타, 그러면 부지깽이를 집어 넣고 나무를 이렇게 들쳐 버려요. 그때 아궁이 입장에서 나무가 들어오는 거야, 자기네와 동질이야, 그런데 그 나무는 처음서부터 아궁이에 들어갈 때 자기를 불태워서 함께 타오르려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다른 나무를 쑤셔 버려 가지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하려고 들어간 것입니다. 똑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교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쟁들이 결국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싸우다가 자기도 보호하지 못하고 교회에도 상처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L.A. 다녀왔는데 참 걱정입니다. 내가 오죽했으면 당신들이 L.A.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됩니다. 가는 교회마다 싸움질입니다. 동양 선교교회(?)는 교인이 천명 남았답니다. 영국에 갔을 때 부목사였던 사람을 만났는데 진짜로 교회당에서 장로님들에게 각목으로 두들겨 맞았다고 합니다. 본인이 이야기 하니까 거짓말이겠어요? 그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기도 하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정리해 주셔요. 그래서 옳지 않은 비난이지만 그걸 통해서 나에게 비난하는 사람이 도전하지 않는 다른 내용을 깨닫게 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말도 안 된다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나도 널 그렇게 생각한다’ 라고 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뼈아프게 충고해 주거나 비난한 그 사람은 하나님이 발람에게 보낸 사자와 같은 사람 아닙니까? 더 갔으면 멸망했을 텐데 안되니까 나귀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꾸짖으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총명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자신들이 받는 비난이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것이 바로 총명입니다. 그래서 내게 닥쳐오는 내가 원하는 사건, 원하지 않는 사건, 좋은 일, 나쁜 일,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터득하게 되는 거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충고를 받았을 때 그것이 마음에 아파도 그것을 그대로 반응하지 말고 주님께 가지고 나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다 비우고.
그런데 여러분에게 한 번 물어 봅시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충고를 할 때 여러분은 천사가 하는 거짓말을 믿겠어요, 악마가 하는 참말을 믿겠어요. 왜 대답을 못해,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충고를 하는데 천사가 하는 거짓말을 믿겠어, 악마가 하는 참말을 믿겠어. (대답 - 천사가 하는 거짓말) 그러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 자체가 말이 좀 안되지만. 악마가 참말을 차라리 믿어야지. 천사의 아부보다는 악마의 진실한 충고를 믿어야지. 외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참이냐 거짓이냐가 문제 아니예요? 비슷한 유비가 될지 모르지만 어느 청교도가 그런 말을 남겼죠? “나 혼자 걷는 천국보다는 주님과 함께 지나는 지옥의 불길이 좋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게 유사한 거 아니예요? 악마가 참말을 할 리는 없지만. 참말도 가끔 합니다. 뭐예요?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잖아요. 예수님 보고.
그러니까 중요한 거는 그런 참됨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흔들었다고 흔들리면 사람의 사람이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깊이 귀를 기울이며 그러나 그것에 흔들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여 나를 깨우치는 하나님께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부족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계속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7.직업의 영광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 되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 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잠 27:23-27)
녹취자: 윤은정
우린 이 구절을 설교를 들을 때마다 ‘영혼들을 잘 돌보는 데에 마음을 쏟자’ 이렇게 대부분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점이고, 이걸 하나의 성경구절을 예증으로 사용해서 적용을 한 것입니다. 왜 잠언에 나온 뜻은 뭐냐하면 ‘자기 직업에 충실하라’ 그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는 농경사회이긴 해도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산업이 목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목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이 이야기는 솔로몬이 잠언자들에게 자녀0이지만은 그게 이제 개인적인 소신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깨우치게 하는 삶의 일반의 지혜라는 교훈입니다. 즉, 이 잠언을 기록할 때에 그 지혜자의 마음에 있는 것은, 주님을 진심으로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이, 이 세상 속에 살아갈 때에 수많은 관계를 맺습니다. 친구와도 관계를 맺고, 동업자와도 관계를 맺고, 이웃과도 관계를 맺고, 여성도 관계를 갖고, 아이와 남편과 자식하고 이렇게 관계를 갖잖아요? 그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하나이지만, 그 수많은 관계들과 접촉을 할 때에 그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순전하게 생각하고 경외할 때에는 그 관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이는 것이 이 잠언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은 가슴에 다가오지 않아도, 구체적인 삶속에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이 뜻인지를 헤아려서 자기도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사람인가를 확인해준 체크리스트적인 성격이 있는 거라 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러분께 있지만 모두 주님 앞에 세워놓고 보면 신앙의 분량이 다 다를 겁니다. 여기도 분명히 뜸으로 하나님 앞에 주님을 사랑하면서 살고, 그 정도에 못 미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주님만이 아십니다. 지혜도 똑같습니다. 지혜도 여러분이 다 같이 이렇게 있지만 나이 순서로 놔야. 할 수 없는 사람은 머리가 얼룩얼룩해도 못 깨닫습니다. 지혜도 여러분마다 크기가 다릅니다. 그런데 그런 지혜가 여러분에게 각각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안보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속에 있는 그 지혜는 여러분이 다 무엇과 관계를 맺고 움직여야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얼굴은 저렇게 진짜 샤프하게 생겼는데, 야, 진짜 지혜 없구나!’ 이렇게 판단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니, 어떻게 사람이 굼뜬 것 같고, 어떻게 제 몫을 하겠나 그래?’, ‘야 정말 놀랍다. 저런 지혜가 있을까? 뭐,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떻게 저럴까? 야, 참 훌륭하다.’ 이런 사람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지혜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의 크기만큼만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압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렇겠죠? ‘목사님, 그럼, 지혜 없는 사람은 대개 교만하겠네요?’ 그게 아니고, 또, 형편없이 자기를 얕잡아 봐가지고 자기 죄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지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이제 읽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양떼와 소떼를 부지런히 살펴라’ 이 이야기는 뭐냐하면, 구약성경에서 ‘살피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면, 초병이 성위에서 이렇게 적이 오는지를 꼼꼼히 돌아보는 것 같은 그런 태도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뭐 군대갔다온 사람들은 다 알겠지 만은, 사람이 이렇게 가끔 교통사고가 나는데, 조서에 말 안 되는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면으로 충돌을 한다든지 아니면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차를 어마어마한 속도로 와서 들이 받는다든지, 우리 임성우실장도 수술하고 교회 못 나왔잖아요? 그런 것입니다. 그때 경찰기 가서 조서를 쓰면 ‘저는 전방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였습니다.’ 이렇게 조서를 씁니다. 어떻게 전방을 태만히 할 수가 있나? 그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살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제 직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목축을 하는 사람이 직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양떼와 소떼를 돌아볼 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있어야 돌아보지. 뭐 푸줏간에나 가야지만 돌아보지, 뭐 양떼, 소떼가 없잖아요. 이것은 직업을 가리키는 거라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이끌어내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기의 본무인 직업에 마음을 쏟는 다 이 이야기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직업을 영어로 뭐라고 그래요? occupation 이라고 합니다. 그게 라틴어 보카치오에서 온 것입니다. 보카치오는 뭐냐하면 보체는 ‘목소리’고, 복칭어는 ‘부르심’ 그 뜻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직업이고, 예전의 중세시대에는 이런 직업 활동들을 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뭐 수도원 같은 데가, 안 그런데도 있지만, 그래서 그러던 것을 종교 개혁자들이 소위 이야기하는 직업 소명론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언젠가도 이야기 했지만, 칼빈이 그렇게 내세에 대해서 강력하게 설교 하면서 자신의 제네바 시를 공업중심의 도시로 바꾼 경제 개혁의 인물이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직업소명의 사상이 아주 투철해진 것이 어디냐 면 청교도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미국도 초창기에는 그런 직업소명의 정신을 가지고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갖고 있는 직업에 대해서 긍지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절대로 그 직업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이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여러분이 큰 회사에 사장이라면 어떤 사람을 쓰겠어요? 능력은 있는데, ‘아이, 재수 없이 이 직장에 들어왔구나.’ 이런 사람을 쓰겠어요? 아니면 능력이 조금 떨어지지만은 ‘이 회사는 나에게 참 과분하다. 주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주셨다!’ 이렇게 믿는 사람을 여러분은 사용하겠어요? 누구를 사용할 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한번 제가 여러분에게 예화를 드렸습니다만 일본 기전이라고 하는 회사에서 직원들을 뽑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뽑았냐 면 일류대 나온 사람들을 다 배제해 버린 것입니다. 그다음에 사장이 직접 면접을 해서 ‘차렷! 열중 셧! 앞으로 나란히!’ 이것을 큰소리로 하는 사람, 이것이 첫 번째, 두 번째, 뽑아주면 ‘이 은혜가 백골난망입니다.’라고 진심으로 외칠 사람들만 뽑았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했냐면 좋은 대학교 나온 사람만큼 월급을 주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회사가 그 경영기법을 가지고 일본의 기자르 분야를 휩쓸었습니다. 거의 신화적인 경영으로 남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강해지는 비결이 뭐냐 하면, 전깃줄에 앉아서 ‘수틀리면 가면되지‘ 이러는 사람들은 수없는 무기를 들려줘도 영적 전쟁에서 집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여기에 와 있는 것, ’하나님의 참 놀라운 은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주 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직업에 대해서 가져야할 태도는 그것을 갖는 것입니다.
제가 직장을 다녀보니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안 합니다. 어떻게 생각 하냐 면 능력이 미치는 사람과 미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지는데,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운명이려니.’ 하고 다니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실력이 없어 이 직장에 왔고, 나는 재수가 없어 여기에 왔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은 분에 넘치는 직장이고, 자기에게는 수준에 안 맞는 직장이다.’ 이렇게 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쓰십니다. 능력이 모자라도.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연합을 이루어 당신의 교회를 섬겨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맞고 있는 이 일에 대해서 참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래서 여러분이 맡고 있는 사역과 직업에 대해서 마음을 쏟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빌어먹을 놈의 직장’ 이렇게 하고 근무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압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으로 소명을 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7년 5개월을 했습니다. 정확하게. 그리고, 마지막에 이제 우체국장을 하다가 그만 뒀는데, 처음에 3년은 사표를 써서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그리고, 하여튼 토요일이면 막 살 것 같고, 주일 저녁이면 근심이 시작돼서 월요일 아침이면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그렇게 직장을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유능하게 보였을 리가 있습니까? 3년 동안 그렇게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고, 깊이 은혜를 받고 난 다음에 내가 생각해도 내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4년 반은,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요셉처럼 직장생활 했습니다. 심지어 나를 놓고, 부서장 둘이서 싸우는 것도 봤습니다. 서로 가지고 가겠다고,,, 마지막 승진하는 날에는 여기 최고 책임자가 나를 불러서 ‘자네, 오후에 승진한다. 가고 싶은데 있으면 어디든지 이야기하라. 내가 보내주마.’ 그리고 갈 수 있는 곳을 리스트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도 높은 사람 등살에 힘이 들어서 ’나도 한번 대장해보자‘ 그러고 딱, 찍었더니, 그 자리에서 전화해서, ’이사람, 아주 탁월한 사람이 가는데, 후회 안할 거야, 그쪽으로 발령을 내주게' 그러고 전화를 딱 끊었어요. 그래서 5월 16일 날 나락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에 우체국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가서 100일 동안 죽을 고생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만 뒀는데, 어쨌든 그랬습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왜냐하면 어짜피 그때 나는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직장에서 영광 볼 거라고 생각 안하고, 신학교 들어가기 직전도 그렇게 열심히 했습니다. 직장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새벽 일찍 나가서 그래서 사무실에 청소 여직원들이 할 건데도 내가 통에 물까지 퍼가지고 옷 다 벗고, 깨끗이 배란다까지 닦아놓고, 여직원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자기들이 해야 될 일을 그렇게 해주니까.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신선한 공기가 확 들어올 때 창문을 열고, 그리고 이제, 기도하고, 그리고 이제 말씀보고, 그러면서 이제 모든 게 끝나면 사람들이 서서히 출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표창도 받았어요.
그래서 직장을 그만 두고 나서 5년 동안 그 후배들이 저한테 연락을 했어요. 찾아오기도 하고, 일 물어보려고, 두 번 당좌가 바뀌었는데도 물어보려고 찾아왔어요. 그렇게 일을 하면서 그 중 후배는 그래요. ‘이분은 도대체 누구며 얼굴을 좀 봤으면 좋겠다’고, 왜? 그랬더니 ‘문서를 몇 년째를 다 뒤지면서 이렇게 시키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은 공무원 중에 누가 있냐?’ 그래서 제주도 출장도 가고 그랬습니다. 너무너무 행복하게 보냈고, 그때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늘 하나님의 손에 붙여주셔서 전도했습니다. 그중에 이미 권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전도 받고, 방황하던 형제하나는 목사가 되어 제주도가서 목회 잘 하고 있고,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을 순간순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 자신이 우리에게 맡긴 직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주님을 섬기는 마음을 갖는 사람들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6절에 보니까 뭐라고 하냐면 이렇게 나옵니다. ‘어린 양의 털은 네 옷이며 염소는 밭을 사는 값이 되며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 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 이것이 뭐냐 하면 직업의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보람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직업에 대한 소명과 사랑이 먼저이고, 그리고 거기에서 과실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자기 직업에 마음을 쏟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반듯이 열매를 주십니다. 지극히 예외적으로 권한을 받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건 다른 방법으로도 갚아주십니다. 영광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인정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요셉을 한번 이렇게 보세요. 그 요셉이 얼마나 고난을 많이 겪었어요? 그죠? 헤치는 사람도 많았고,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영광을 주시잖아요. 종으로 있을 때에 단발에 총리의 영광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종들의 우두머리로서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감옥에 들어가서 죄수의 몸이 되었더니 죄수 중 을이 되는 조서의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수의 몸에서 풀려나와 바로의 수하에 들어가니까 바로가 ‘높이로 말하자면 나밖에 없다. 그리고 너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니라’ 하면서 그 총리의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들어나는 것입니다. 잘 들으세요. 0에 실수가 뭐냐 하면 노예로 있는 동안에 총리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마당쇠들 중에는 총리의 영광을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고, 일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고, 마당서 빗자루를 쓸고 있는 동안은 그 직업에 충실하면서 마당쇠의 영광을 구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장을 옮겨주십니다. 그 감옥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떨어진 것 아니에요? 그런데도 거기서도 또, 감사하면서 열심히 그렇게 있으면 거기서도 인정을 받아서 죄수 가운데 영광을 주어서 자유롭게 다니게 만들어 줍니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나는 굉장히 감명 깊게 받거든요?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요. 근데 너무너무 거기서 나오는 바그너의 그 곡을 아주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어요. 한때 그냥 열심히 들었는데, 거기에서도 보면 굉장히 오래 산 흑인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제 내보내 주랴, 마랴, 그런데 계속 떨어지잖아요? 보내 주랴, 그랬더니, 이제 그 사람이 ‘네가 나가도 되겠느냐? 내보내고 상을 주라’라는데 이 사람은 아주 그렇게 이야기를 하잖아요. 거기서 ‘나는 이제 나의 죄 값에 대해서 깊이 뉘우쳤고, 그리고 나의 인생은 이제 감옥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소신을 쭉 필역하는데, 이 심사관들이 깊은 감동을 받잖아요? 그리고 자유하게 하잖아요? 그런 것입니다. 몸이 자유로와도 마음이 갇혀있는 사람이 있고, 몸이 갇혀있어도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직업의 영광이 주어진 것입니다. 반듯이 주어집니다.
두 방식으로 주어지는데 섭리 속에서 주어지며, 어떻게 주어지냐면, 모두의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때, 그때 그 사람에게는 이 세상,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합당한 영광을 줍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축복 속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당신께 충성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보니까 소떼와 양떼에 마음을 두는데, ‘거기에 얻는 그것이 너의 옷이 되고, 염소가 밭을 사는 값이 되고, 그리고 그 염소가 너의 여종의 음식이 되리라.’ 벌써 번영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목을 하다가 밭을 사라. 그리고 자기가 양떼와 소떼를 치다가 종들을 거느립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역을 하면서도 보면 능력이 많고 하기 싫은 사람들보다, 능력이 없고, 능력은 부족하지만 자기를 써주는 것을 지극히 영광으로 아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난 목회하면서 직분 안 받겠다고, 붙들고 사정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몇 사람 좀 시켰으면 좋겠는데, 그걸 사양하고 다 빼버렸습니다. 다음에. 그건 자기 생각이고 주어질지는 두고 봐야죠.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직업에 충실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부심이 있고,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본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중보자적 사역은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보케이션의 의미에 있어서는 우리의 모든 직업과 하나님의, 하여튼 측면 다르지만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이 특히 마틴 루터가 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리고 신성하다고까지 이야기 하잖아요? 그러면서 이제 말하자면 보카치오의 말하자면 유일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모든지 하나님의 소명이다’ 라는 사상을 칼빈도 강조하고, 합니다. 그래서 일이 있는 동안에 분복은 자기가 이 세계의 어느 한 모퉁이를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직업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렇게 자기 직업을 소명으로 느끼며 살아갈 때에 어려움을 주십니다. 그때마다 주님을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인내하므로 이 길을 걸어갑니다. 더욱이 여러분은 복음사역과 관련이 있는 이 일을 감당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절대 이 일은 하나님 앞에 정말 아름다움입니다. 영광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교회를 많이 섬긴 후에 직장생활에서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지은 사람들로 기록이 되기 위해서, 마치 다니엘이 다리오왕 밑에서 그랬지만은, 그러나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라고 불러주었듯이, 그렇게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야 합니다. 어려움도 있죠. 왜 없겠어요. 그죠? 다 다 알아요. 요즘은 좀 좋은 시대가 됐나? 옛날에 회사에 있고 그럴 때에는 퇴근하고 교회 본당에 들어가서 찔끔찔끔 울고, 교역자들도 어떤 때는 나한테 혼나고 가서 예배당에 가서 펑펑 울고, 그랬습니다. 나는 또 안 그랬나? 나도 또 가가지고 그러고. 그렇죠. 어려움 많죠. 그래도 그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좋은 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희생도 있다. 생각을 하면서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있는 일이 기도의 중심자리에 오게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직업의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작은 것에 충성한 사람을 높은 곳에 들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시간에는 더 요긴하고 재미있는 설교로 여러분을 만나겠습니다.
8.하나님께 높임을 사람에게 존경을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언 16:7)
저는 지난주에 여러분에게 오늘은 승진하는 방법에 대해 방법이라고 하면 뭐하지만 직장에서 높임을 받는 비결이라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지난시간에 여러분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아마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혼자 일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모두 관련된 사람들이죠. 그래서 비록 혼자 하는 사업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여러 사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 우리 모든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는 일이 흘러들어가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면서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사람들의 소망이고 그러다 보면 각각 일의 중요도나 질서 때문에 사람마다 높낮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 자체가 높고 낮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나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야 동일하겠지만 일의 순서상 보다 비중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또 안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꼭 필요해도 그것이 비중이 높지 않고 작을 수 있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그런 질서들을 우리들이 잘 이해하면서 우리가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결국은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저히 안 되는 일인데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 놓으면 해 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능력이라고 하는데 그 능력은 대부분 육체의 힘을 가리키는 것 같은 그런 종류의 능력이 아니에요. 그래서 사람이 일을 해 나가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고 그들도 그 일을 해야 할 동기를 부여받게 해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기도 한 것입니다.
다 지난 이야기입니다만 우리 교회에 한동안 방송장비를 납품하고 방송시설을 보수해 주던 업체가 있었습니다. 뭐 잘했습니다. 잘했고 특별히 그 사람이 일하는데 있어서 저는 뭐 그렇게 특별한 하자나 속임수 같은 거 발견하지 못했고 또 이 양반이 아주 말씀을 그래도 비교적 사모합니다. 그래서 언제가 한번은 수요예배 땐데 아주 소리 때문에 교인들이 앞사람 몇 사람이 힘들어하고 심지어 공동의회에까지 앞자리에 앉으면 자꾸 앉으라고 해서 앉는데 설교가 안 들리는데 어떻게 좀 해 달라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어요. 그래서 불러서 방송시설을 다 둘러 보여 줬더니 150만원을 주면 잘 들리게 대충 손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요. 그때만 해도 150만원은 우리한테 작은 돈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하자 이렇게 결정을 사실 못했어요. 좀 생각을 해 보자. 그러고 나서 수요예배 시간이 되어서 수요예배를 드렸어요. 그런데 무슨 설교였는지 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하여튼 설교가 끝나고 저는 앞에서 나가는 교인들 요즘 하는 것처럼 그렇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는데 한참을 있더니 이 방송장비 업자가 나와, 눈이 시뻘겋게 부었어. 그러더니 악수를 하면서 그래요. “목사님, 정말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내일 아침에 우리 직원들 데리고 와서 그냥 공사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거 참 설교가 도움이 되는구나’ 그리고 이제 했어요. 잘 했고 그래서 여기 올 때 공사가 꽤 컸지요. 방송장비만 한 1억 가까이 들었을 겁니다. 영상하고. 영상하고 합치면 1억이 훨씬 넘었겠네요. 그래서 이제 그걸 공사를 줄려고 그랬어요. 내 마음속으로는 그랬지요. 그래서 이제 방송실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 사람하고 한번 의견을 이야기해보라 그랬더니 그 사람이 와서 직원들하고 다투고 간 것입니다. 그러니 일이 될 일이 없죠.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부정적인 평가들이 올라와요. 물론 내가 그냥 해 그러면 되겠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 그래서 그래도 그 친구가 잘 모르지만 일했는데 하고 그냥 접어 버렸죠. 나중에 와서 그렇게 나한테 섭섭하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이봐, 왕궁에 들어가서 임금을 만나려면 왕의 친구가 만나는 게 아니라 성문을 지키는 파수꾼의 친구가 왕을 만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왕의 친구라고 아무리 그래도 파수꾼이 문 안 열어주면 못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한 500여 명 모이는 교회에 방송 시설 공사를 한다고 해서 아주 친절하게 추천을 해서 내가 보냈습니다. 뭐 그 공사를 따서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게 했어요. 그걸 보면서 하나 깨닫는 게 뭐냐면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렇죠? 내 마음에는 자기에게 공사를 주고 싶어 한다는 라는 것이 자기에게 감지됐으면 겸손하게 직원들에게 어떻게 자기 회사가 다른 회사보다 만족스럽게 시공을 해서 적은 비용으로 교회에 유익을 줄 수 있는지를 겸손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서 사람들을 설득해야지요. 기술적인 문제가 이심전심으로 되겠어요?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 그 후로 그 사람들은 교회와 관계된 모든 일에서 완벽하게 배재가 되었어요. 그래서 보면서 참 사업을 왜 그렇게 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우리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간절히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바에 이르는 길을 보여 줍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일을 못해서 상사에게도 누를 끼치고 직원들에게도 원망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번째 타입은 직원들은 너무 좋아해, 그런데 그 사람을 고용한 사람은 별로 좋아하질 않아. 세 번째 유형은 윗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하는데 동료들은 지겹게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높은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잘 받고 동료들에게는 신망을 얻고 그리고 수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존경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아요. 직장 다니는 사람 심방을 가서 꼭 기도해 주는 게 그 세 가지에요. 윗사람에게는 인정을 받고, 동료에게는 신망을 얻고, 아랫사람들에게는 존경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게 있으면 저게 부족하고 저게 있으면 이게 부족하고 사람마다 그렇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설명할 수 있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니까 어떻게 그 세 이해관계를 다 맞춰줄 수 있겠느냐. 어느 한 쪽의 인정을 받는다면 다른 한쪽에는 손해를 끼칠 수 있을 것이다. 물론이죠. 그러니까 그런 서로 이익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 있어서는 저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사람에게는 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가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신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꼭 일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아요. 평소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겸손하고 이런 것들을 잘 하는 사람은 일을 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이익을 좀 건드릴 때가 와도 저항이 적은데 평소에 감정이 안 좋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일을 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희생을 줘야할 경우에는 굉장히 강한 반발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렇게 평소에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그 모든 관계를 해 나갈 때 그 관계를 진통제처럼 해나가면 안되고 보약처럼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진통제는 아프기 전에는 안 먹고 참을 때까지는 참아 봐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5분 내에 효과가 오기를 기대하면서 먹는 것이 진통제에요. 그런 것이 바로 뇌물 같은 게 바로 그런 거 아니에요. 이번에도 신문에 여주군수인가 그 사람은 생각이 거의 없는 사람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해서 아직까지 충분히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은 사람에게 돈을 2억씩 그렇게 해 가지고 주는데 상대방을 그런 사건을 수없이 다뤄본 검사입니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아마 틀림없이 그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가서 전해주고 난리가 났을 겁니다. 소용없습니다. 나중에 줬었다. 근데 돌려받았다. 그거 전부 다 사회에서 매장된 거 우리 최근에 몇 년 동안에 다 봤잖아요. 돌려 줬다는 거 뭐 모르고 받았다는 거 상투적인 어법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냥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데도 그냥 얄짤없이 너 죽고 내가 살아야지 소용없다. 그러고 경찰관 데리고 가서 막바로 포장 열어 가지고 현행범으로 체포됐잖아요. 그런 것들이 뭡니까. 그 이전까지 뭐가 있었던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고통스러워서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거는 굉장히 추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굴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하면서 당당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두 가지인데 권력이 워낙 크든가 두 번째의 경우는 평소에 많은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어서 그래서 자기를 도울 만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경우에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어울리는 행동인지 한 번 보기 바랍니다. 나는 공직생활을 잠깐 했지만 난 가난한 사람들이 공무원 되는 것을 좀 반대합니다. 가난하면 공무원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는데 그런데 할 수 있으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돈 많고 돈 많아야지만 공무원을 한다 그런 뜻이 아니라 사회가 발전을 해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이거지요. 월급을 보고 공무원을 하는 게 아니라 보람을 공무원을 하는 사회가 돼야지만 좋겠다. 왜냐하면 너무 유혹이 많아요. 이번에도 공보의 한 사람이 구속이 됐잖아요. 군대 안가고 이제 시골 같은데 보건소에서 근무하잖아요. 근무했는데 공보의 맨 처음에 가니까 홀로 거기 와서 쭈그리고 시골에 있는 거 아니에요. 얼마나 외롭겠어요. 그러니까 제약회사에서 그 사람하고 친구할 만한 또래를 딱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구 쓸쓸하네. 저녁이나 같이 합시다” 하고 보내는 것입니다. 그게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저녁 먹고 일 이야기 전혀 안하고 얼마나 외로우냐, 우리 한번 당구라도 좀 치러 갈래. 이러면서 친구처럼 지내다가 50만원을 건네주기 시작한 게 시작이 되어서 계속 해가지고 3년 동안에 1억 3천만 원을 뇌물을 받았대요. 그거 구속이죠.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되냐 그냥 가짜 처방전을 막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자기가 처방전을 내리고 가서 자기가 약을 사는 것입니다. 그럼 그 돈은 나라에서 주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주는데 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다. 제약회사에서 사와야 되잖아요. 그럼 제약회사에서 약이 막 팔려나가는 것입니다. 그거의 20%정도를 리베이트로 통장에 넣어주는 것입니다. 1억 3천만 원 정도면 10년 이상 징역 살아야 합니다. 젊은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진통제 같은 인간관계입니다. 그에 비해서 보약과 같은 인간관계는 보약을 먹을 때 오늘 먹고 오늘 밤에 힘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봄에 먹으면 가을에 힘이 나는 것입니다. 가을에 잘 먹으면 겨울을 이기고 봄이 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평소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 만나랴. 연극 제목도 있잖아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호의를 베풀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업무 능력이 워낙 탁월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하고 비교할 때 비교가 안 되지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회사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승진시키거나 높은 자리를 줄 때 고민을 안 합니다. 그러면 이제 그런 것들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아주 적은 차이 밖에 없을 때 그때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잘 지내는 사람들. 그래서 직장에서 사람들을 높일 때 업무능력이 워낙 탁월하면 묻히지요.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것도 회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개척 초기여서 이 사업이 성공할 지 실패할지 몰라, 그럴 경우에는 업무능력이 최고입니다. 다른 것은 고려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안정적이어서 누구도 갖다 놓면 굴러가는 회사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런 탁월한 게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으로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이렇게 보면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우리들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사람들로부터, 동료들로부터 신망을 받는 사람들이 승진을 하고 아래 사람들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 승진을 했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될 사람이 됐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지 못하고 이변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동의를 잘 안 해 주려고 합니다. 그게 이제 모든 이후에 일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걸림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는 일이 흘러가는 통로인 것입니다.
저는 우체국장으로 가기 전에 체신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사실 잘 몰랐어요. 너무 어리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에 이렇게 보면 회사의 돌아가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일도 잘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정보들이 어떻게 흘러 들어오나 그랬더니 그게 문서나 공식회의석상에서 흘러 들어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통해서 그 정보가 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벌써 문서가 내려오기 전에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다 알아요. 그 사람들이 그 직장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주 원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나름대로 직장생활을 해 나가는 비밀들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야비하고 치사하게 생활하는 사람들도 봤지만 자기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당당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참 많이 보았어요.
주님이 우리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혹은 소금이라 말씀하셨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언제나 이 세상과 잘 지내라는 뜻이 아니셔요. 그렇지만 예를 들면 빌 게이츠라는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싫어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미국에)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치만 싫어하는 사람이든지 좋아하는 사람이든지 사람들은 나뉘지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하다못해 똥을 퍼도 똥 퍼는 사람들 무리 속에서 그런 사람이 되라 이거에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고 있는 고유한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 모본이 되는 사람이어야 된다 이거에요. 그래야지만 그것이 정상적인 영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그러한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원수들이 있는데 이 원수라는 말이 히브리말로는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괴롭히는 사람들,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하고 화목하기는 굉장히 어렵잖아요.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지도자로서 살아가다 보면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의견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그리고 함께 가게 하는 거 그게 어려운 거고 그래서 지도자는 다른 사람보다 대접을 좀 받는 유익이 있지만 정신의 고통은 훨씬 더 많이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자격은 정신의 크기가 큰 사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정신의 크기가 크지 않으면 자기의 일들을 감당해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자기에게 늘 박수치는 사람이 있겠어요. 이 세상에 아무도 그렇지 않고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나쁜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도 그런 대우는 못 받으셨어요. 진리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비위를 맞춘다면 잠시 동안은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자기가 가야할 길이 있고 주님께로부터 받는 죽연이 있다면 그 죽연을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할 수 있겠어요. 오늘은 이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하지만 또 내일은 오늘 그 사람을 만족시키면 내일은 또 다른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기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두렵고 힘이 들면 지도자를 하질 말아야 돼. 그냥 바닥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서 거기에 만족을 하면서 사는 그냥 하수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갈등은 없어요. 아무 문제없어요. 지도자가 되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저는 우리 손동희 권사님 간증을 두 번을 들었고요. 손양원 목사님 딸이잖아요. 그분이 여수에서도 목회를 하셨고요, 포항에서도 목회를 하셨어요. 오래는 안 하셨는데 여수요양원에서 그렇게 목회를 하셨어요. 근데 난 깜짝 놀랐는 게 여수 요양원에 그분들이 굉장히 오래 된 분들이거든요. 그분에 대한 아주 열렬한 사모의 념이 몇 년이 흐를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아니에요. 그래서 그 중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오늘날의 손양원 목사님의 평가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을 품고 그리고 심지어는 책까지 쓰고 그랬어요. 그분을 본격적으로 비방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자기는 그런 것들을 좀 바로 잡고 싶다. 그게 뭐냐 하면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는 거 아니에요. 그것을 어디에서 듣겠냐 하면 손동희 권사님이 이야기 하는데 그 마지막 순교하시기 전 목회하시던 교회에서 그렇게 몇몇 교인들인 그렇게 목사님을 괴롭혔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마치 목사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비방을 하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난 모르지만 사실 손양원 목사님은 우리나라에서 보다도 사실 일본에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도 그분의 일화가 많이 알려졌어요. 그렇게 미국이 만약에 빌리 그래함 목사를 자랑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주기철 목사님과 함께 깊이 존경을 받으시는 그런 분인데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까지 하는데 그런 분인데 그분도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 세상에 주변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그런 게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 유일한 비결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비방하는데 주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그러면 회개하고 괜찮다 그러면 주님을 의지하고 살고 그렇게 조금 살다가 그냥 불꽃처럼 반짝하다가 죽는 게 인생입니다. 언제나 그런 게 있게 마련이지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갈등이 정말 애매히 당하는 갈등이고 고통인지 아니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되어서 당하는 것인지, 또 둘 다 상관없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디아포라 같은 거. 아디아포라 같은 거. 그런 것들은 사실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데 사람들이 자유를 안주기 때문에 내가 비난을 받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유함을 가지고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나요. 그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게 한다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목회를 하다가 교회를 비난하고 욕하던 사람이 회심했을 때 그 회심의 효과는 평소에 교회에 우호적이던 사람이 회심한 것보다 훨씬 커다란 효과를 나타내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비난하는 입을 닫고 마음을 겸비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이제 지도자로서의 영광이죠. 이러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나간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지경을 계속 넓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에 의해서 높임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 요긴한 사람으로 삼아주시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할 뿐이죠.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삶입니다.
주선애 박사라고 장신대 대학원장을 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셨죠. 권사님입니다. 그분이 아마 프리스턴에서 공부하셨나 그랬어요. 아주 굉장히 신앙으로 그렇게 사신 분입니다. 미국 유학 중에도 새벽이면 그냥 깜깜한 창고에 들어가서 그렇게 새벽기도를 하고 그랬더니 기숙사에서 한국에서 온 저 여학생이 새벽마다 몽유병 환자처럼 어디로 간다고 소문이 나서 굉장히 처음에 힘들었는데 그 비밀을 알았던 미국 학생들이 나도 기도하는데 좀 데리고 가 달라고 그래서 이제 창고에 가서 기도를 하면서 그 사람들까지 은혜 받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분이 대학원장 하실 때도 그렇고 평생 직함이 되게 많았어요.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하죠. 그죠? 그래서 기자가 물었어요. “뭐 그렇게 하시는 일이 많고 직함이 20개가 넘던데 혹시 명예욕이 있는 게 아니냐” 그렇게 그런 식으로 돌려서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인상 깊은 간증을 합니다. 처음엔 나도 안 그러려고 그랬는데 어느 날 성경을 읽으면서 마리아의 고백이 나오더래요. “주의 미천한 종이오니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저 사람들이 내가 필요하다는데 나 같은 미천한 종이 무엇이길래 하면서 주님께 순종하다 보니 이렇게 많은 일들을 맡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더라고요.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경을 넓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실 때 하나님이 할 수 있으면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함께 교회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여러분이 생활해 나가면서 그러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하고 그 관계를 통해서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자체를 기쁨으로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많이 사랑스러워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노력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과 좀 다른 신앙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를 하셔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행위를 기뻐하실 때라는 것입니다. 그 무슨 뜻입니까? 성경으로 볼 때 하나님은 행위는 기뻐하시는데 사람은 싫어하시는 그런 거 없구요, 행위가 좋을지라도 사람의 됨됨이가 주님의 마음에 기쁘지 않으면 그 행위가 아름다울수록 주님께는 역겹고 반대로 행위가 좀 모자라도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정말 아름다우면 오히려 그 모자라는 행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는 반드시 최종적인 일치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행위를 기뻐하시면.’ 이라는 것은 결국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신다면.’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앞에 부분은 관계고 뒷부분은 예수님이 하시려고 하는 일입니다. 사랑하시니까 그가 하시려는 일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결론은 명료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으면서 인생을 살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높여주셔요. 정말 높여 주셔요. 그래서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고 마음속에 주님이 좋아하시는 일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면서 거기에 자기를 맞추려고 하는 마음을 간곡히 가질 때 그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들어서 사람들에게 높이시고 잠시 자기와 어그러지고 맞섰던 사람들도 그들을 하나님께서 굴복시키셔서 자기 자신에게로 원수라도 되돌려 화목하게 하시는 일들을 능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는 방법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다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우리 엊그제 드라마로 잠깐 봤던 다니엘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경우 아닙니까? 요셉과 같은 경우도 웅변적인 증거이지요.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정해 주실 때, 우리를 당신 자신이 사랑해 주실 때 그때 사람들 앞에서도 우리를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론은 분명하지요. 결국은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해주고 그들을 돕고 섬기고 하는 이러한 노예의 유전자를 가진 정신, 그것이 발현되는 궁극적인 자원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겠다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사람들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은혜를 받아야할 필요성을 더 많이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9.마음과 혀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잠언 10:20)
우리가 모든 인간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한자의 인(人)자를 보면 두 개의 획이 서로 기대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게 사실은 사람에 대한 동양인의 개념이죠. 그러니까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다른 사람을 기대면서 살아가게 될 뿐만 아니라 존재 규정에 있어서도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람이 아무도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있으면 짐승입니다.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규정해 놓고 보면 사실은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우리 자신도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는 것도 동기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난 자기의 태도를 성찰함으로써 자기가 누구인지를 파악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인간 때문에 사실은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에서나 직장 생활에서나 심지어는 여러분이 결혼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결국 자신의 사람됨은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신자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목표요 그것은 참 사람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면 그렇게 참된 사람이 되고 난 다음에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그림이 무엇일까요?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지만은 만약에 우리가 완전히 성화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어서 신은 아니지만 그러나 정말 참 인간이 되었다 그럴 때 그 마지막의 모습은 무엇이겠어요. 병을 고치고, 예언은 하고, 귀신을 내어 쫓고, 큰 은사를 행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어요. “나는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에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그런 것을 행하는 것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완성된 인간의 모습은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그의 마음과 삶에서 넘쳐나게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일 것이다”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만약에 온전한 성화의 상태에 이 땅에서라도 이르게 된다면 그 모습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관계들을 기뻐하고 그리고 그렇게 맺은 관계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피조물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 때문에 덕을 입게 하는 그것이 참된 인간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사랑이에요, 사랑. 사랑이외에는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 우리 교회에도 직장 선교회가 있지만 이 직장 선교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제가 직장에 다니면서 변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획에도 없었던 직장에서 성경공부를 제가 인도하면서 아마 홍보실 같은데서 1978년도, 9년도 신앙계를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벌써 30년도 넘었잖아요. 그죠? 그때 내가 쓴 기고한 글이 있습니다. 그거 한번 찾아봐요. 아마 직장선교하는 사람들에게 주면 상당한 도전이 될 것입니다. 그때는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아주 또렷이 기억이 나요. 78년도 아니면 9년도 아니면 80년도, 81년도 일수도 있습니다. 그 사입니다. 꽤 긴 분량의 기고문을 썼어요. 그러고서 주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 후에 내가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고 목사도 나오고 자모도 나오고 작년에는 전화를 해서 자기가 어느 교회에 권사가 되었다고 충청도에서 전화가 와요. 방송 듣고 전화를 했다고. 그런데 그때 제가 경험한 것입니다. 그때는 금식기도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어쨌든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그러고 보니까 은혜를 받기 전에는 관계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것이 직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참 감동적이었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바빠요. 직장 생활이 지금이나 그때나. 그런데 추수감사절 때 되면 이거보다 조금 작은 방이었는데 가득 모여요. 그래서 한 50명에서 70명까지 모였어요. 그때 이제 외부의 목사님 모셔다가 말씀전하고 우리가 떡도 하고 해서 추수 감사 예배를 드렸는데 그렇게 감동적이었어요. 거기서 내가 또렷하게 한 경험이 뭐냐 하면 야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오지랖이 넓어지는구나. 나와 상관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어려운 일을 당하면 가슴 아프고 그리고 기쁜 일을 당하면 나도 마음이 기쁘고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관계에요. 사람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이미 맺은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그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성향인데 그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오늘 성경이 참 재미있게 의인의 혀와 악인의 마음을 대조합니다. 그래서 뭐라 그러냐면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지만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고 나와요. 이 자체가 아주 엄청나게 많은 메시지들을 포함하지만 시간관계상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그때였는지는 모르는데 역사에 보면 은이 금보다 더 비쌌던 때가 있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게 어느 정도 근거 있는지 모르지만 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에게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이렇게 말 안하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이렇게 거꾸로 말하잖아요. 그래서 그때가 바로 은이 금보다 더 비쌌던 때다 그러는데 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지 저는 그것까지는 조사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은은 금과 더불어서 변하지 않는, 불변의 가치, 화려함 그것이 은이었어요. 더욱이 시편에는 연단한 은 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아홉 번 단련한 은과 같이’ 라고 나와요. 그 아홉 번은 히브리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아홉 번은 실제 숫자적인 아홉 번이 아니라 무한히 계속된다는 거지요. 그러면 여러 번 그렇게 은을 녹여서 정화시키고 히브리말로 ‘바한’이라고 그러는데 그게 이제 정련시키는 것입니다. 정련시키고 정련시키고 정련시키고 하면 그것이 아주 순도 높은 은이 되는 것입니다. 순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순은의 특징은 귀함과 변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 같은 거 보면 무엇인가 사용하지 않으면 누렇게 때가 낀 것 같아도 그것은 겉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은 자체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이 닦으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귀부인들의 묘나 이런 것들을 보면 모든 신체부위들이 다 썩어서 사라졌는데 옆에 놓여 있던 은붙이들은 그대로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의 가치에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여기서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 그런 사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그래서 의인과 악인의 대조는 뭐냐 하면 특히 이 시가서에서 의인과 악인의 대조가 뭐냐 하면 한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또 한사람은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의인과 악인의 대조에요. 이미 구약에서도 이 의인의 개념은 justification by faith 이신 칭의 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음으로써 의롭게 된 자라는 개념은 아주 풍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주신 율법을 지키면서 살도록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모두다 수동태에요. 그런 피덤(?)을 입은 사람 그게 ‘하시드’에요. 히브리 말로 ‘헤세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성도고 의인입니다. 그래서 의인인데도 때로는 악인과 같이 살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도 여전히 의인입니다. 그래서 어느 청교도가 그런 책을 썼지요. “어둠 속을 걷는 빛의 자녀들” 분명히 빛의 자녀인데도 때로는 영적인 침체 속에서 어둠 속을 걸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의인은 바로 그런 개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이 사람, 그 사람의 존재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 아니에요? 주님의 사람으로. 이 사람들의 혀는 순은과 같다. 이게 무슨 뜻이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알고, 경외하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 그 속에서 움직이는 그 혀가 만들어 내는 수많은 말들은 순은과 같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비록 아주 어린 아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전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성도라면 그 사람에게서는 늘 배울 것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배울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지금도 내가 잊혀지지 않는데 우리 아들이 그때 6살쯤 됐는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어요. 밥을 먹다가 그때 무엇 때문인지 우리나라가 굉장히 갈등이 심했고 조정할 사람이 없었어요. 그때는 왕이 있는 나라가 참 부러웠어요. 네덜란드 같은 경우 여왕이 있거든요. 오일쇼크가 나가지고 생 난리죠. 기름 좀 아껴 쓰자 그래도 말들을 안 들어요. 신문에다가 기름 아껴 쓰자고 도배질을 하며 광고를 해도 좀처럼 말을 안 들어요. 여왕이 자전거를 타고 외출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영향을 끼쳐서 여왕페하도 기름을 아끼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시는데 우리 정신 차리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좀 권력이 많이 기울었지만 옛날에 태국의 푸미폰 국왕 같은 경우 양쪽 정파가 피터지게 싸워요. 마지막까지 왕은 가만히 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불러요. 양쪽이 왕궁에 들어와서 왕 앞에 갈 때 저 문을 열면서부터 무릎으로 기어서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지 마라” 한 마디 하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우리나라도 좀 왕을 없앤 게 그게 미국하고 일본하고 특히 미국이 잘못한 거다. 왕을 남겼어야 되는데’ 그랬더니 이 6살 된 애가 밥을 퍼먹더니 갑자기 숟가락을 놓더니 고개를 똑바로 들고 이야기합니다. “아빠 그건 아니지. 우리 왕은 예수님 한 분이신데 그분을 잘 믿고 순종하면 되지 왕이 왜 또 필요해”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진짜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안 믿으니까 주님을 왕으로 안 믿으니까 그게 문제지 또 하나의 왕이 없어서 문제인가 그래서 뭐 졌다 그랬지요. 뭐. 그런데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그 아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뜻대로 살려고 하면 그 어린 아이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는 것입니다. 배울 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신앙생활, 아주 가치 있는 가르침을 의인의 혀는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으면서 뭐 감동받은 구절이 수없이 많고 오늘 아침에도 사실은 마당에서 묵상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 anthology를 내가 한번 편찬해 보면 참 좋겠다. 뭐 수없이 아름다운 말들이 나와요. 그 중 하나가 “모든 풍부한 가르침은 어떤 삶을 사느냐 에서 나온다” 그게 바로 뭐냐 하면 의인의 삶입니다. 물론 의인도 때로는 넘어질 때가 있죠. 때로는 낙심할 때도 있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죠. 그러나 항상 그에게는 새로운 지식과 지혜의 빛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래서 시인이 그런 고백을 하죠. “나를 이 죄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 도를 알리겠습니다” 무슨 뜻이에요? “범죄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이 침체 속에서 건져주시고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 목회 사역을 하면서 우리가 실수하고 잘못한 것이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데 얼마나 크게 이바지하는지를 경험하게 되잖아요. 시집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효부소리만 들으면서 며느리로 살았던 사람들은 가르쳐 줄게 별로 없어요. 근데 자기도 시어머니가 미운 것입니다. 갈등을 해, 고통을 받아, 그래서 때로는 포달도 떨고 이러면서 갈등을 하다 주님을 만나고 인생을 사는 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빛으로 돌아와. 그래서 사랑해, 화합해 그리고 참된 며느리가 돼, 혹은 참된 아들이 돼. 그럴 때에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잠시 미끄러지고 어둠 속에 살았던 그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서 더 많은 것이 배울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늘 하는 이야기가 난 요셉보다는 야곱에게서 더 많이 배운다. 왜? 처음부터 요셉 같은 사람이 아니야. 처음부터 그렇게 순전하고 주님만 바라고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적용점이 별로 없어요. 늘 가까이 바라보기에는 너무 먼 요셉 이렇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런데 야곱을 우리를 보는 것 같잖아요. 꾀부리고 까불고 얻어터지고 그러다 회개하고 그러면서 주님의 사람이 되어가서 마지막엔 130세에 그 위대한 바로를 축복하잖아요. 그렇게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풍부한 가르침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뭐냐면 일관성입니다. 일관성. 이거는 언제나 은입니다. 변함이 없어요. 만약에 더울 때 색깔이 변하고 추울 때 빛깔이 변하고 그 다음에 어두울 때 양과 질이 변한다면 그건 은이 아니죠. 언제나 동일한 것입니다. 불변의 가치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 삶이 바로 그렇게 불변하는 삶이 되어야 됩니다. 불변하는 분은 주님밖에 없지만은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의지하며 살아갈수록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삶은 일관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관성이 어디에서 나와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나와요. 그게 일관성입니다. 끊임없이 같은 마음에서 한결같은 삶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언약백성의 삶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수준과 상태는 같지 않아요. 수준이 높아도 상태가 안 좋을 수도 있고 또 상태가 아주 좋아도 신앙의 수준이 낮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성화되면 성화될수록 이 상태와 수준의 거의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깊은 사람들의 특징은 요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동하지 않아요.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을까요? 결국은 선한 의지의 크기 문제에요. 선한 의지의 크기 문제. 그래서 한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이고 한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이 지닌 선한 의지의 크기에요. 그래서 그 선한 의지의 크기에요. 사랑은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또 선한 의지가 올바르게 행사될 때 사랑은 촉진되어요. 그래서 이제 은혜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고 그것이 의지적으로는 그의 의지 자체가 변화가 온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의지를 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연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죄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온전히 우리도 그 뜻이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일시적이겠지요.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았을 때, 우리도 그런 결심 참 많이 했죠. 그렇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1992년도에 제가 어느 기도원에 설교를 하러 갔어요. 1월인가 2월인가로 기억이 되는데 하여튼 가면서 운전을 하면서도 그렇게 마음을 녹이셨어요. 사실 지금부터 18년 전인가 그런데 수없이 집회를 다니면서 그 본문을 기억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때 요한복음 1장 15절인가를 설교했어요. 그런데 설교단에 올라가는데 마음이 막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설교하러 올라가기 전에 바깥에서 기도하면서 그랬어요. ‘아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온전히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설교할 때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셨어요. 그때에 우리 도현정 자매가 22살의 나이로 그 설교를 듣고 있었죠. 그죠? 대학생으로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죠. 근데 그렇게 마음이 하나님 앞에 순간적으로 이 생명도 달라시면 하는 그것은 우리가 순간적으로는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관성이 있어야 됩니다. 계속해서. 충동된 선한 의지의 크기가 아니라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의지 자체가 강화된 그런 힘으로써 흔들리지 않아요. 이게 바로 청교도와 위대한 영적인 인물들의 불변하는 특징이었단 말입니다. 결국은 이런 의지의 크기에요. 악인에게는 이것이 적어요. 그래서 늘 쟁반위에 쏟아놓은 물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구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자치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사람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거니와” “사람은 외모로 취하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할 때 그 중심이 바로 이러한 선한 의지의 크기에요. 그것이 있을 때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하나님 앞에 쓸모없는 사람인데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셔서 그래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들이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리해서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함께 교회를 섬기는 이때는 우리가 선교와 복음사역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 속에 복음을 전하고 영혼들을 섬김으로써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의 말하자면 모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함께 이루어 가고 있는 이 공동체적 삶이 여러분이 주님을 위하여 섬기고 살아가는 그 생활의 결과로써 기대가 되는 그 공동체의 모습을 여기서 먼저 구현해 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선교의 원리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바로 그렇게 성육신하셔서 당신 자신의 인격 안에서 당신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을 바꾸어 놓고 싶어 하시는 그 인격의 질을 보여 주셨고 당신의 펼쳐진 삶을 통해서 당신이 온전히 전파된 후에는 이 땅에 이루어질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당신 자신 인격 안에서 보여주시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마음에서 인격이 인격에서 삶이 흘러나오고 다시 삶은 관계로 흘러 나가서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섬기며 살아가는 이 과정을 하나님 앞에 그렇게 이용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거울처럼 마주 보면서 그렇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면서 주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갈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제도 목사님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 어느 젊은 목사님이 그래요. 너무 괴로웠다고 그래요. 교회가 힘드니까 그렇겠죠. 그래서 교인들한테 상처받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아픈 것만큼 성숙한다. 그 과정이 다 필요한 과정이고 그러면서 목회자도 사람이 되어가고 교회도 교회답게 되어가는 거다.” 근데 그 말이 굉장히 가슴에 와 닿던 모양입니다. 자기 부인한테 “여보,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김 목사님도 못된 교인 만나서 고생 많이 했어.” 그래요.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아냐. 나는 그렇진 않았다. 내가 워낙 사람이 나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모질게 연단하질 않으셨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나 언제나 있는 일이다.” 그러면서 내가 위로를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면서 나와 부딪혀서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볼 때마다 거울이라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거울. ‘아 그렇구나’ 저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고 거울을 보면서 ‘아 나의 삶에 이런 모난 부분이 저런 사람을 만나서 나타나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거울로 보고. 그래서 가장 자기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정직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그렇게 변화되어 나아갈 때 그게 한 두 번이면 별거 아니지만 그렇게 5년, 10년 지나고 나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섬기는 동안에 이렇게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빛을 드러내는 직장생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