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즐거움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 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떨리는도다.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6-18).
하박국 선지자는 유대 말기에 선지자 노릇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바벨론이 이미 유대 나라를 삼킬 지경이 되었고 나라가 완전히 주권을 잃어버린것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나라 대한제국 말기처럼 이미 나라는 기울대로 완전히 기울어서 회생의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어느나라든지간에 이런 상황이 될 때에는 나라를 배신하고 그 나라를 지배하게될 적국의 빌붇는 간신배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 사람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왕궁의 이런 세력들이 광범위하게 펼쳐 졌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공의를 굽게 하는 배신자들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불공평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 이런 속에서 어떻게 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내버려 두십니까? 이것이 선지자의 깊은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은 잠시 일어나는 일이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 진다는 믿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고백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진전된 이야기들은 하나님이 예고하신 심판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더 가깝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기도속에서 적군이 쳐들어 오는 임박한 환란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말발굽소리와 군대들이 쳐들어 오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때 자기의 창자가 흔들렸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영혼의 깊은 자리입니다. 자체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입술이 달달 떨릴 정도로 두려움이 생겨나게 되었고 환란의 날을 기다리면서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오고 처소에서 몸이 덜덜 떨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커다란 환란이 일어 나는 것들이 선지자에게 느껴지게 될 때 선지자 자신도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유다 백성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심판에 대한 일정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보다도 더 커다란 감격이 이 선지자의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에 나오는 이야기 즉 뭐냐하면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하며 나오는데 없으며 없으며 라고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뭐냐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서 농사가 안되고 경제가 파탄된 것을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파멸된 상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바로 그런 마당에서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유다 민족을 심판하셔서 커다란 멸망에 쓸어 버리셨는데 어떻게 이 사람은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까? 아침 설교와 연관을 지어보자면 이것은 지금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현재 혹은 과거에 일어난것처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에게는 언제나 그런 것들이 가능했으니까요? 그러면 좋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먹고 살려면 무화과 나무에도 포도나무에도 감람나무에도 외양간에도 소가 있어야지 그것이 사람 사는 것인데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전쟁으로 인해서 깨끗이 사라져 버린 황폐한 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선지자가 나는 오히려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라고 노래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결국 선지자가 1장에서 고민했던 문제, 어떻게 악인이 저렇게 번성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곧 심판한다 그랬는데 마지막 3장에 와서는 그 심판이 실행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의 마음속에 아 그렇구나! 악인의 번성은 잠시이고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은 반드시 이렇게 하시는 분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으면서 결국은 인간의 눈에는 모순처럼 보이는 상황 그 너머에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통활하시며 다스리시며 당신의 주권을 행하시는 놀라운 광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온 땅에 당신을 하나님이 알든지 모르든지 주인이 되어 이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선지자는 항시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심판속에 살아도 들어 났기 때문에 이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그렇게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설교한 것처럼 하나님은 좋은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좋은것을 주실때도 있지만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서 좋은 것으로도 우리가 받을 수 없는 더 큰 것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우리의 눈에 나빠 보이는 것을 통해서 주시는 더 좋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비로소 좋은 것을 통해서 좋은 것을 주실때에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은 시편 73편 기자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73편 25절입니다. 22절부터 보겠습니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좋은 것을 주시면 좋은 것을 주신 일 때문에 기쁜것이 아니라 그렇게 까지 나를 생각하시고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 때문에 감격하고 기뻐하는 신앙을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에게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C급의 믿음으로 시작해서 A급의 믿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광경을 선지자들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의 삶속에 적용해 봅시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쁜것도 감사하고 좋은것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쁜것도 나쁜것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만들어 주고 좋은 것은 좋은 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 때문에 결국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감사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범사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일입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 모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매 순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 가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들을 붙들어 주셔서 하나님 많이 의지하며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때로는 이 하박국 선지자들처럼 우리가 믿음이 어렸을 때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해서 감사하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다가 나중에 신앙이 깊어지게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이 감사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정말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우리들이 부모님을 여의고 세월이 많이 지나가도 그냥 부모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줄 때만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얻어 맞고 책망하던 것이 그리워 지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마음으로라도 느껴지는데 하물며 완전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코 악을 행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때리시면 그때는 감사하지 않던 사람도 인생이 지나가고 나면 그렇게 때리시고 우리를 징계 하시면서까지 우리를 버리지 안으시고 이끄셨던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철이 들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1년동안 우리에게 정말 좋은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이야기 해서... 개인적으로도 생각을 해 보니까 정말 좋은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설교속에서 다 표현을 못했는데 참 감동이었습니다. 좋은 것을 통해서만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빠 보이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결국은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항상 우리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재미 있는 것이 불은 똑 같은 불인데 그 불에 무엇을 갖다 대는가에 따라서 불의 색깔은 틀려 집니다. 거기에 물에 젖은 나무를 대었을 때 불의 색깔과 플라스틱을 대었을 때의 색깔과 구리를 갖다 대었을때의 색깔이 다릅니다. 그리고 전선줄을 갖다 대었을 때의 색깔이 각각 다릅니다. 어떤때는 파란 빛으로 어떨때는 새빨간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똑 같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을 행해 선을 베푸시는 분이신데 우리가 그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사는가에 따라 각각 다른 빛깔의 하나님으로 다가 오지만 그 빛깔이 많아도 불은 하나인 것처럼 똑같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들에게 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가져다가 댈때마다 다른 색깔이 나와도 불은 동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 불길이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태도는 거기에 갖다 대는 재료입니다. 그래서 선하신 하나님이 때로는 책망하시는 모습으로 선하신 하나님이 때로는 우리를 연단 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하나님의 필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서 한결 같이 선하시고 변함이 없이 좋으신 그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이야말로 정말 감사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 한해 동안을 돌아 보십시요. 그러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쁜일도 일어 났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꿉니다. 그 나빠 보이는 그 일을 통해서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내가 받을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내가 받을 수 있었구나 그럴 때 우리는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