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지 않는 전병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호 7:8)
호세아서 7장입니다. 호세아서 7장 8절입니다. 8절서부터 10절까지만 읽겠습니다. 시작 “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 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오후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모이진 않았습니다마는 그러나 주님 축복하시고 은혜를 배 푸셔서 말씀을 들출 때 하나님께서 들어나게 하시고 들을 때 깨닫게 하시며 깨달을 때 우리들이 받아 드릴 수 있도록 역사 하셔서 말씀으로 저희들의 삶이 새로워지고 새로워진 삶속에서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이 호세아서는 북 왕국의 선지자 호세아에 의해서 기록된 그 성지서입니다. 호세아라는 말이 결국은 예수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호세아 여호수아 예수 다 같은 말입니다. 구원이라 그런 뜻인데 이 호세아가 예언을 한 당시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어떠했는가. 이야기를 많이 못하고 조금만 하고 그리고 이 부분을 더듬어 볼려고 합니다. 북 왕국과 남 왕국이 갈라진 것은 솔로몬 이후의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르호브암 이라는 왕이 솔로몬에 이어 왕에 오르게 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용기는 있지만 대단히 어리석은 인물이었습니다. 결국은 나라가 반으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갈라졌는데 그 갈라진 비율이 말이에요. 비교가 안 될 정도였어요. 북 왕국에는 열 지파 이고 남 왕국에는 두 지파 밖에 대지 않았어요. 땅으로 보나 지파의 수로 보나 북 왕국이 훨씬 더 큰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라가 갈라지는 것은 허락은 하셨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셨던 것은 아니에요. 결국은 유다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갈라지는 아픔을 마지하게 된 거죠. 우리나라하고 똑같이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이 더 넓고 남쪽이 좁은 그런 나라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뭐 그 얘기는 다 아는 이야기고 북 왕국에는 아주 그 시대를 북왕국의 시대를 보면 은 그 북왕국의 북 왕국에서 아주 훌륭한 군주가 몇 사람 나왔어요. 그 훌륭하다는 말은 신앙적으로 훌륭하다는 말이 아니라 세속적인 통치로 볼 때에 그래도 좀 난 인물 세 사람이 나왔는데 한사람은 여르브암 일세고 그다음에 오물이라는 왕 이였고 그 다음에 세 번째가 여로브암 2세 데 이 호세아서를 쓸 때는 이 여로브암 2세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 왕이 예후 왕가의 여르브암 왕이었는데 이 왕은 북 왕국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저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할 정도로 아주 영명한 군주였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그 군권을 장학하고 40년 동안을 왕 노릇을 했는데 나라가 강성해지고 그리고 나라가 한없이 뻗어나갔어요. 그래서 솔로몬 이후로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고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해외에서 무역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들였는데 사람들이 엄청 잘 살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침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데 그 침대가 상아로 깎아 만든 침대요. 상아로 깎아 만들었으니까. 상아 도장 요만한 것 하나만도 돈 십만 원씩 가는데 그걸로 얼마나 잘 침대를 깎아 만들 정도니까 부유층의 사치한 생활이 어느 정도인가 알 수 있죠? 그 시대에 벌써 여름이면 여름 별장으로 놀러 가고 겨울이면 겨울 별장으로 놀러가는 이런 아주 호화스런 생활을 즐기던 그런 시대요. 그 모든 태평하던 시대에 하나님께서 호세아라는 선지자를 보내는 거죠. 영명한 군주였지만 가장 커다란 흠 가장 커다란 흠이라기보다는 하여튼 그 영명한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 만한 큰 결점이 있었는데 신앙이 없다는 거지 신앙이 신앙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이 이것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도 뭔가 수준 높은 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돼요. 여러분 나라가 돈을 많이 벌고 국민소득이 6000불 7000불 하는데 이제 10000불정도로 올라가면 사람들 하는 이야기가 모든 국민생활이 아주 현격하게 바뀌기 시작 한다는 거요. 지금 벌써 바뀌기 시작 하죠 이제는 사람들이 한시간당 일하는데 돈을 얼마를 주나 에 의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야지 일을 해요. 그러니까 한시간당 내가 놀면 그 즐거운 게 얼마큼쯤 되나 그것을 계산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임금이 터무니없이 올라가는 거죠. 뭐 불과 한 2년 사이에 자동차 세차하는 것이 4000원에서 시작해서 지금 10000원으로 올라왔어요. 그런 정도로 이렇게 모든 소득이 높아지면서 나라가 잘살게 되어지면 은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나뿐일 이 많이 일어나요. 사람들은 더 많이 놀고 즐기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는 기껏 놀아 봤자 무슨 기차타고 어디놀러가고 지금 자가용 타고 어디가고 시골사람들 모여가지고 어디 관광버스타고 가다가 가끔 굴르기도 하지만 꼭 어쩌다 놀러가는 사람들이 굴르더라고요. 맨날 놀러가는 사람들은 안굴르고 개꾼 이런 사람들만 맨날 놀러 가는 것이 아니고 어쩌다 놀러가는 사람들이 굴러요. 우리같이 아예 가지 말던지 안 굴르잖아요. 그런데 하여튼 그렇게 등산을 간다. 낚시를 간다. 기껏해야 조금 수준 높은 사람 스키를 탄다. 골프를 친다. 이러는데 10000불 이상 올라가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바퀴냐면 이제 바다로 나가는 거요. 레저가 해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데요. 그 다음에 소득이 더 높아지면 비행 이런 것 비행기 면허가 자동차 면허 따는 것처럼 쉬워져가지고 그래서 그저 시골에 가서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답답하면 은 그 비행기를 몰고 산 사이를 누비면서 강사 이를 누비면서 그렇게 드라이브를 하는 시대가 온다 이거요. 그렇게 잘살게 되어지면 은 세상이 그렇게 반듯이 좋아지느냐? 교회는 아주 커다란 하여튼 더 커다란 벽에 직면하게 되는 거요. 왜 그래요? 사람들이 1940대에 1차 세계대전 일어났을 때에 사람들이 왜 예수를 안 믿었냐면 하나님이 살 아계시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비참해 질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를 안 믿었거든요. 그리고 50년대에 들어와 가지고는 구라파도 그렇고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우리들이 역사를 봐서 알잖아요. 남자 평균 수명이 서른일곱인가 밖에 안됐어요. 젊은 나이에 다 죽는 거요. 자연사하는 거죠. 전쟁에 죽고 그러는 속에서 사람들은 뭐라고 말했냐면 너무 먹고 살기가 바빠서 예수를 믿을 시간이 없다. 요즈음 어떻게 돼요 다 사람들이 다들 잘살게 된 다음에는 뭐라고 그러냐면 그것 꼭 믿어야 되냐 왜 그 안 믿어도 살 수 있는데 그 뭐 도우는 것은 그만두고 그냥 하나님은 가만히 계서도 우리는 그 절박하게 그 도움이 필요하지가 않다 그런 세상으로 가는 거죠. 신앙이 없고 나라가 잘살게 되어지면 은 그러면은 그 결과는 항상 선교 적으로 볼 때 애로 사항이 되는 거예요.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래서 지난 상반기에 여러분들이 구령의 열정 책을 공짜로 논아주고 그리고 읽으라고 강조를 해서 거의 다 읽었을 거예요.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기 보면 그런 이야기 나오잖아요. 오스와대스미슨 목사가 구라파로 부흥회를 인도를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나 받아들이지 않아요. 러시아로 선교를 떠났는데 러시아에서는 사람들이 그 갈망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 드리려고 하는 거여요. 그러니까 그런 차이가 바로 물질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호세아시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잘살게 되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잘살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잘살게 되면 문제가 적은 대 모든 사람들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잘사는 사람들이 아주 딱 갈라지는 거요. 잘사는 사람은 아주 잘살고 못 사는 사람들은 아주 못 살고 그래요. 그래 파라과이 선교사 왔었는데 전에 얘기 할 때 들어보니 하여튼 파라과이에서는 젊은 처자들이 와가지고 가정부 파출부 일을 해주는데 한 달 내내 일한다음에 30000원을 주면은 몸 둘 바를 모른데 그게 너무나 후해서 임금이 너무 후해서 30000원 이면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파출부 품삯 밖에는 안 되잖아요. 그런데 한 달을 시키고도 30000원이면 된대요. 인도네시아 같은 데서도 약간 도심지를 벗어나면 대학을 나온 사람이 하루 8시간을 한 달 일해도 80000원 밖에 안준데요. 그런데 그것도 아주 후한거래요. 그런데 또 그 땅에는 밀이예요.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벽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집들이 즐비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참 대문이 열리면 볼보 벤츠 할 거 없이 서너 대 외제 승용차가 쏟다져 나오는 그러한 나라에요. 돈을 벌어서 나라가 불안정하니까 자기네 땅에다 투자는 안하고 거기서 쓸어 모아가지고 외국에 같다가 투자를 하고 외국에 갖다가 저금을 하는 거예요. 그런 세상이 되니까 점점 살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차이가 극심해져요. 그렇게 되면 은 거기에서 받듯이 그 땅에서는 기독교가 실패를 하는 거예요. 남미에서 천주교는 실패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선교 지로써 다시 부각이 되는 거예요.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그런 재분배의 기능을 할 수 있어야지만 된다 이거죠.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라가 부요하게 되었는데도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 가면은 그렇게 비참함이 옛날 다 같이 가난하게 살 때보다 더 비참한 거란 말이 예요. 다 같이 달동네 살 때는 문제가 안 되었는데 아 이사람 저 사람 다 집사가지고 나가고 자가용 굴리고 나갈 때 나만 달동네 살고 있으면 은 내가 옛날보다 더 가난해 진 것 같다 이거요. 분명 신문을 보면 은 국민 소득은 올라갔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더 비참하게 가난해 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거요. 이 모든 일들이 과연 어떻게 해서 일어나느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결국은 말하자면 사회가 무조건 신앙이 없이 잘살게 되기 때문에 그런 거요 그런 것들을 깊이 통찰하면서 우리는 기도를 좀 수준을 높게 해야 한다 이거요. 사람들이 돈 많고 잘살게 되고 신앙의 감화가 없으면 그럼 점점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요. 그런데 오늘 뭐라고 그랬냐하면 그런 속에서 선지자가 그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가운데 그때 이 7장에서 한 가지 죄에 대해서 책망하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너무 세속적이다 그러면서 얘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아브라함이 열방에 혼잡 되니 저는 뒤집지 않는 전병이로다. 그랬거든요. 전병이라는 말이 뭔지 아세요? 불에다 구워서 만드는 떡이 예요. 요즈음 우리가 말하는 부침개 그런 거 아니면 붜 팥을 가운데 집어넣고 만두처럼 만들어 부처 먹는 수수 지지미 그런 거 말하자면 그런 거겠죠. 그런데 뒤집지 않는 전병이로다. 무슨 얘기냐면 빈대떡을 굽는데 밀가루를 잔득 집어넣고 빈대떡은 얇게 굽는 게 말하자면 그게 제주에요. 아주 얇게 거의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구우면서 가장자리는 약간 두텁게 해가지고 마르지 않도록 그렇게 해서 굽는 것이 재주라고 그래요. 누가 사람들이 그런데 이제 밀가루를 붓고 쌀가루를 붓던지 반죽을 해서 그렇게 해서 구웠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밑이 너무 뜨거워서 새카맣게 탔어요. 위에는 완전히 생거에요. 그러니까 이쪽 반 굽고 그다음에 저쪽 뒤집어서 굽고 양쪽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야지만 이게 먹음직한 전병이 대는데 이 전병을 한쪽만 구워져가지고 한쪽은 바짝 타고 위에는 날게 되어버리니까 전병이 잰 병이 되어 버린 거죠. 그래서 먹을래야 먹을 수 없는 밑에는 타서 못 먹고 위에는 날거라서 못 먹고 그런 상황이 된 거요. 이게 무슨 얘기에요. 이 뒤집지 않은 전병이란 말이 이 선지자가 의미하는 것은 뭐죠? 그 시대의 문화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식이 빵이었잖아요. 빵을 구워서 먹는단 말이 예요. 우리도 밥을 하다보면 질어질 때 있고 데질때가 있죠. 옛날에 저의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아니? 그게 뭐냐고 내가 60년 동안 밥을 했는데 지금도 질게 될 적이 있고 데게 될 적이 있으니 이 밥하는 것보다 힘든 것이 없단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도 맨날 구워먹는 빵이지만은 지금까지 해왔는데도 어느새 일어나서 보니까 이상하게 어느새 온도조절을 잘못했는지 밑에는 새까맣게 타고 위에는 날거예요. 위에는 반죽이 그냥 있고 밑에는 새까맣게 탔어요. 위는 설익어서 못 먹고 아래는 타버려서 못 먹는 못 쓰는 빵이 나오는 거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나마도 없으면 그것을 먹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거 어때요 아래 먹을 때는 다 타서 못 먹고 위에 먹을 때는 익지 않아서 먹으니까는 소화가 안 되고 하여튼 그 맛이 익지 않은 음식과 바짝 타버린 음식을 함께 먹으니까 하여튼 역겨울 거 아니에요. 못 먹는 이 뜻이에요. 하여튼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런 상황이 되었다는 거예요. 에브라임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별명이에요. 왜 그러냐면 왕국이 둘로 갈라질 때 북 왕국에서 제일 기발을 높이 늘고 리더 격을 했던 게 에브라임 지파거든요. 그러니까 에브라임이 그 말하자면 별명이 된 거예요. 에브라임이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그 뒤집지 않은 전병인데 그 뒤집지 않은 전병이 왜 대냐 하면은 왜 대야보다도 뒤집지 않은 전병인데 또 동시에 뒤집지 않은 전병이 어떤 일들이 일어났냐면 열방의 혼잡이 된 일들이 일어난 거요. 쉽게 얘기해서 애기죠.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는 사람들이 열기가 뜨거운데 정치수완이 외교수완이 군사정책이 여러 번 아주 뛰어났어요. 그래서 그 백성들을 지도 했던 거죠. 그런 쪽에는 사람들이 이제 살아가는 그 열심히 아주 극심해 관심도 많고 그러니까 어때요. 사람들이 그 속에서 어떻게 유행을 요즘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유행을 따라 살고 어떻게 좋은걸 먹고 어디로 신나게 여행을 다니고 뭘 해야지만 우리의 인생을 즐길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뜨거운 열심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아주 날거에요. 응, 이런 일들이 바로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는 말의 의미 그러니까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종합적인 거요. 그렇죠. 어때요. 열심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또 인생도 열심히 살아야 돼요. 예, 결국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거니까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문제가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의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거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 받은 그대로 열심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살 때에 그때에 우리들에게 은혜가 되는 거요. 그 때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게 되는 거죠. 그렇게 열심히 살고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 그때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정말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냐. 이 얘기죠. 그런데 이 에브라임이 뒤집지 않은 전병인데 한쪽은 다 타버리고 한쪽은 다 날건데 신앙이 세속적인 데로만 발달을 하고 신령한 대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상태를 얘기하는 거요.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받을 실만 하지 않다는 거죠. 또 반대의 경우도 많잖아요. 집안 살림은 막 내 팽개치고 말이에요. 맨날 기도원이나 가서 불이나 땔려고 하고 말이 예요. 박수나 치러 다니고 그리고 말이야 소위 얘기해서 말이야 교회에 미친 사람처럼 말이야 그렇게만 다니고 자기의 모든 그 말하자면 가정이라는 든 지 그 모든 것들은 팽개쳐버리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또 반대로 또 뒤집혀 진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는 다 영적인 미성숙에서 온 거요. 잘못된 신앙이에요 보다 더 성숙해야 되요. 그럼 어떻게 되요. 신앙이 종합적이 되는 거죠. 종합적이라기보다도 신앙이 모든 삶에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요.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그래서 믿음이 충만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해지니까 그러니까 나의 삶이 더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되고 그리고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이런 삶들이 계속되는 거예요. 그런 삶을 살다가 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니까. 그 예배가 감격적인 예배가 되는 거죠. 무슨 얘기냐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많이 하고 그 기도대로 살 때 기도의 응답이 우리에게 능력 있게 와 닫고 또 그렇게 살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그 사람의 기도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이지 아니냐 이거죠. 예를 들면 주일학교를 예를 들어서 합시다. 오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데 주님 구역도 마찬가지죠. 주님 구역장으로써의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내가 이 구역의 식구들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연락한번도 안하고 신방한번도 안하고 그러면 그거는 참된 기도가 아니죠. 주일학교 선생이 어느 날 알아봤는데 내가 다른 교회 있을 때 선생들 조금 밖에 없는데 선생이 혼자 앉아 있어요. 우리 반 아이들 아무도 안 나왔어요. 그 왜 아무도 안나 왔나 모르겠어요. 다른 반 다 공부하는데 자기는 혼자 성경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러니까 하는 이야기가 그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 우리 학급을 부흥시켜주시고 많은 영혼들 우리에게 보내 주시 읍소서 그렇게 기도를 했으면 그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진짜 영혼들에게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죠. 그리고 신방을 해야죠. 그리고 권면해야죠. 그때 기도가 힘 있게 역사 하는 것이지 골방에서 세계는 골방에서 움직여진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골방에서 산 사람들이 아니라 골방에서 그렇게 기도하면서 세상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삶을 봐요. 모두가 골방 밖에 나왔을 때에는 정말 뜨겁게 그 기도를 따라서 살려고 노력 했던 사람들이예요. 예, 마찬 가지잖아요. 하나님 예를 들면 은 우리에게 새로운 하나 됨을 주시옵소서. 자기가 하나 됨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죠. 그래서 그렇게 응답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결국은 어때요. 하나님의 참된 은혜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은혜가 영적인 삶에만 머물러 있도록 그렇게 만들지 않는다는 거죠. 응, 그 은혜가 영적인 삶에만 머물러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들의 삶의 모든 방면에 영향을 주어서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뒤집지 않는 전병과 같은 이런 상태가 될 수가 없는 것이죠. 어때요. 신앙이 생기고 은혜가 부어지고 그리고 믿음이 충만해지면 그것이 삶에 영향을 끼쳐서 그것이 삶을 바꾸어 놓아요. 마음을 변화시켜요.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하던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요. 책임이 없는 사람을 바꿔서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봉사할 수 없는 사람들을 기쁨으로 봉사하게 만들어요. 자기를 위해 물질을 쓰던 사람들을 바꾸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물질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요. 그런 변화가 영원부터 오는 거예요. 한쪽만 있고 한쪽은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모두 잘못된 신앙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정말 삶에 있어서도 모범적이 되어야 되요. 응, 삶에 있어서도 무슨 이야기냐면 가정의 주부다 그러면 가정 일을 다 하느라고 예수를 믿을 시간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그러나 예수를 다 믿으면서도 가정일 들을 다 잘 돌볼 수 있어야 되요. 내가 인정 안 해주는 여전도 회원들이 누구냐 하면 말이에요. 집에 갔을 때 아 어느 집에 가면은 정말 영적으로 골이 아픈 것이 아니라 육신적으로 골이 아파요. 신발은 어디부터 시작 되냐면 대문서부터 신발이 깔려 있는데 그 사람 어떻게 된 사람인지 왼쪽 신발은 여기 있고 오른쪽 신발은 저쪽가 있으니까 어떻게 뛰어갔는지 모르지만 신발이 왼쪽신발은 대문 앞에 있는데 오른쪽 신발을 댓돌에 가 있어 발길이가 얼마나 기른지 모르지만 그러고 갔는데 그릇 냄비 장난감 할 것 없이 줄줄이 사탕으로 쭉 깔아 놓았어요. 발 디딜 틈이 없어요. 그런데 열심이에요. 그런데 그 심리를 잘 분석해 보면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일하고 교회에 있는 게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있는 거보다 훨씬 더 좋은 거요.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둘 다 좋아야 되요. 왜 그래 내가 여기 계실 때 주님이 함께 있다가 집에 가면 주님이 나와 함께 가셔서 거기서 일하는 거죠. 거기서 어느 목사님이 그래요. 어디 여성에게 얘기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러니까 아 목사님 저는 요 교회에서 주의 일을 할 때는 너무 신나고 힘이 솟아 나오는데요. 세속적인 일을 할 때는 영적으로 기운이 빠져 나가는 것 같아요. 거 상당히 수준이 높아 보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세속적인 일이 뭡니까? 아 그거야 집에서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하는 일 얼마나 이게 허무한 인생의 굴복하는 거냐. 이게 다 모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어서 여자들이 이 고생을 하는 건데 이게 무슨 하나님 앞에 상 받을 일이 있냐. 그건 전적으로 신학이 잘못된 거요. 그것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일이예요. 믿습니까? 그것도가 아니라 그게 하나님이 상주실만 한 일이예요. 열심히 잘 일을 하고 그래야지 하여튼 직장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직장이 아주 많아요. 왜 그러냐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직장에서 싫어하는 이유는 뭐냐 하면 이 뒤집지 않은 전병 같은 개념 때문이에요. 그 무슨 얘기냐면 으 이 사람들이 말이에요. 직장을 다니는데 직장에서 예수 믿는 사람 그러면 대부분 인상이 뭐냐 하면 직장에 다니는데도 예수 믿는 사람은 잘 어울리지 않고 독선적이고 따지기 좋아하고 응 그다음에 모이기 좋아하고 응 그리고 직장에서 책임 안 지려고 하고 그리고 하여튼 그러한 대명사에요. 어, 직장에서 이렇게 내 직장 다닐 때 보면 은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승진한 사람이 없어 그거 뭐냐면 세상에 대한 욕망을 초월해서가 아니라 내가 볼 때는 못나서 승진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개중에는 물론 나는 승진 같은 것 필요 없다. 내가 참 겸손하게 바닥에서 기면서 모든 사람을 섬기겠다. 하나님의 신학이 아니에요. 내가 직장에 다닐 때 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강조하는 것이 뭐냐면 그리스도인으로써 빛을 바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야 되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되요. 내가 살아지면 모든 사람이 아쉬워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된다 이거요. 그게 보통이 아니라 아주 특별해야 되요. 왜 그래요 직장에서 가만히 보면 역사는 다 밤에 이루어져요. 역사는 밤에 어떻게 퇴근하고 가가지고 술집에 가서 술 먹으면 아 누구는 어디로 간데 누구는 누가 찍어 놓았데. 어떤 사람은 평이 어떻데 어떤 사람은 짤라야 되겠어. 어떤 사람은 올려야 되겠어. 거기서 사람들은 아부하고 아첨하고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말하자면 복막을 치는 거요. 복선을 깔면서 그래 예수 믿는 사람은 꼴릴 것이 없잖아요. 그런데 나 여자들은 문제가 적은 줄 알았더니 아이구 여자들도 굉장히 심각하더라고요. 직장 다니는 그리스도인들 얘기하는데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래요. 같이 가도 꼭 튀를 내고 안받아먹지 앞 도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많으면 문화가 바뀌는데 그건 또 아니거든 그중에는 나날이 신자들이 많아가지고 거기가지고 거기서 어울려 가지고 또 맥없이 잘사는 사람들이 많단 말이죠. 세상이 바뀌지 않는 거죠. 그러고 와서는 교회서 살면 교회서 살며 그러니까 이게 진짜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 교회는 교회대로의 삶 세상에서는 세상대로의 삶 그래 이게 교회 올 때는 이거 벗고 그리고 이거 이것 벗고 이게 뭔지 알죠. 여기다 놓고 와가지고 예배들이고 갈 때는 다시 은혜 받고 아멘 그리고 또 쓰고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대체 어디서 사람들이 신앙생활 오래했는데도 그런 이중성을 못 면하는 거요. 그러니까 그 이중성에 대해서 포기하고 사는 거요.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아세요. 자기 속에 세상을 이기고 세상의 물결에서 거슬러서 살아가려고 하는 그러한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그런 욕망 그러한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신앙 이런 것들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또 가만 보면 예수님을 믿는 직장인들 끼리 모여서 직장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은혜와 사랑이 넘치고 매일 교회 다니는 기분으로 출근 할 것 같아요? 어림없는 얘기에요. 어끄저개 내가 직원예배 보면서도 그랬어요. 내가 그랬어요. 이 세상에서 제일 은혜 받기 힘든 사람이 누구냐면 기독교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응, 기독교 단체 . 그렇게 일하는 것을 주위에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출발은 그랬지 그러나 출발은 그랬는지 모르지만은 그것을 계속 유지하면서 살아가기는 예수 안 믿는 단체에서 술자리 안 쫒아가고 믿음을 지키면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어요. 훨씬 더 힘들어요. 우리교회 교역자들은 안 그렇지만 예배시간 되어서 문밖에서 안 들어오고 문밖에서 서성서성 하고 딴 데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다 누구냐면 그 교회 전도사 아니면 부목사들이에요. 응, 왜 그래요. 그다음에 누구에요. 제일 설교 듣고 깨지지 않는 사람이 누구냐면 그 교회 사찰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크게 감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교회 직원들이라고요. 좀 심한 이야기 이지만 그것 보다 더 심한 사람은 누구냐면 목회자에요. 지지난 석 달 되었나. 어느 교회 가서 저녁예배 가서 설교하는데 교인들이 은혜 받는데 뒤에서 계속 조는 분이 있었어요. 누군지 내가 말 안하겠어요. 그러니 무슨 선한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 모두 가 전부가 다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은 신앙의 상태를 보여 주는 거예요. 응,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얘기하는 것이 뭐냐면 온전한 사람 온전한 신앙 온전한 믿음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그 온전함을 아주 강조하는 거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정말 그럴 수 없는 사정라면 모르지만 직장에서 교회일 하면 안 돼 사적일 같은 일 하면 안 돼 직장에 가서 모든 사람들이 다 바빠서 보고 있는데 자기 혼자 앉아서 주보 친다고 뚜뚜락 뚜뚜락 하고 앉아 있는 .그런 것들이 다 전부다 덕이 안 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오늘 이 호세아 선지자께서 보여준바 가 뭐냐면 이스라엘은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 이거요. 그 얘기는 온전하게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하지 않다 이거요. 삶과 신앙이 분리되고 영적인 삶과 실제적인 삶이 분리 되어 버리는 거 그런 거들은 결국은 이 영적인 삶의 부분도 참다운 것이 아님을 보여준 거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교회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열심히 뭔가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회의를 하고 뭔가 열심히 하면 그게 교회 부흥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기능이 복잡하게 움직인다. 고해서 그것이 부흥이 일어난 것은 아니에요. 왜 그래요? 특히 젊은 학생들 특히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중고등학생은 더 그래요. 그게 뭐냐면 교회에서 찬송 부르고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노는 게 도서관에서 고요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거든 응 그 재미있는 부분은 어떤 면에서는 신앙적으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 인 것도 인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나 많은 거요. 응, 교회 앉아서 밤늦게 까지 기타치고 말이에요. 그 중고등학생들 그러잖아요. 그 부모들이 그렇게 교회를 아주 싫어해요. 애들을 공부를 못하게 만드니까 그것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가 충만히 넘쳐서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젠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한가하게 신앙이란 이름으로 말하자면 만약에 안일한 생각을 택한 쪽으로 가는 거요. 모든 하나님 앞에 다급하게 살아야할 긴장 같은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삶이 그렇게 분리가 되어버리는 거요. 그러니까 문제가 많아지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은 삶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요. 어때요. 오늘 하나님 앞에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듣고 많이 은혜를 받았으면 그다음에 뒤집어서 우리의 삶이 익을 수 있도록 살아가야 대요. 그래서 어떻게 돼요. 받은바 말씀의 은혜를 가지고 우리의 삶이 개선되어야 돼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 우리의 삶을 고치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 바뀌어져 나가야 돼요. 바꿔진 가운데 다시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면서 우리의 삶이 온전한 삶으로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빵을 먹든지 저는 아주 빵을 먹으면서도 나뿐 버릇인데 누렇게 익었는데 좀 심하게 익은 부분은 절대로 안 먹어요. 떼놓고 먹어요. 자고 몸에 좋지 안다고 하는데 왜 먹어요. 고기도 굽다가 새카맣게 되면 은 그 부분은 잘라내고 안 먹어요. 뒤집지 않은 전병 하나님께서 지금 선지자를 통해서 뭘 얘기 하냐면 애야 너희들 맨날 빵먹지 너희들의 삶과 너희들의 신앙의 상태가 나한테 어떤가 알고 싶지 너희 매일 빵먹지 예 그때 밑에는 바짝 타고 밑에는 완전히 생거 있지 내! 너네 그걸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 있겠니? 그걸 어떻게 먹습니까? 너희들이 나한테 그렇다 너희들이 나한테 그렇다 그러면 우리는 온전한 삶이 되어야 되요. 그러면 우리는 신앙의 수준이 높아지고 은혜를 많이 체험할수록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되요. 그래서 어때요. 변화되어서 물질에 대한 생각들도 달라져야 되요. 그렇죠. 이 세상에 출세나 이런 생각도 달라져야 되요. 이젠 인생의 목표와 가치가 거듭 나야 되요. 그리고 어때요. 예수를 믿고 사람 자체가 바뀌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대 착한 사람이 되어야 돼 그래서 이전에 그렇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변화가 되니까 다른 사람이 좀 덕을 볼 수 있어야 되요. 덕을 볼 수 있어야 되요. 그게 바로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는 말씀이 통하는 거예요. 내가 집안에서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집안사람들이 덕을 좀 봐야지 그 얘기는 내가 신앙의 길을 포기하면서 까지 가족들의 비유를 맞추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진리와 그다음에 믿음에 갈 길이 그런 문제 말고는 내가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남편들이 더 행복해져야죠. 내가 믿고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아내가 더 즐거워 져야죠. 내가 믿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나로 말미암아서 더 기뻐하고 편해하고 그리고 착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야죠. 그렇지 않아요? 교회 와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간이라도 빼줄것처럼 그러고 집에 와서 있는 신경질 없는 신경질 다 내고 쓰레기통 발길로 뻥뻥 차고 심지어는 상 갖다 집어던지고 말이죠. 심지어는 뭐 무슨 교회 다니는 집사들 부부도 말이죠. 주먹을 가지고 오락가락 하고 그러더라고 참 못 말리는 사건이죠. 그러니 뭐가 되겠어요. 목사님 올라가서 우리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사모님이 이불을 가지고 오더래요. 왜 그러냐고 나 이 강대에서 매일 살았으면 좋겠다고 응 내려오면 완전히 사람이 돌변해 버리는 거요. 뒤집지 않은 전병이에요. 그것을 가리켜서 예수그리스도는 위선이라고 그러는 거요. 이 세상에 제일 소망 없는 것이 위선이에요. 차라리 사람이 악해가지고 그대로 드러냈을 때 나는 악하옵나이다. 나는 죄와 악함이 가득하게 찾으나 그런 사람들은 희망이 있어요. 위선하는 사람들은 희망이 없어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속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기도 속는 거요. 아 나는 잘난 사람인데 그러고 속는 거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고 나서는 그 은혜가 뒤집지 않은 전병이 아니라 잘 뒤집은 전병과 같은 은혜가 그러한 신앙이 성숙되어진다면 정말 자기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해 져야 되요. 여러분 돌아봐요. 내가 예수를 믿고 열린 교회 일 년 다니기 때문에 덕본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꼽아 봐요. 없으면 생각 많이 해야 해요. 덕을 봐요. 은혜를 받으니까 나는 네가 은혜를 받으니까 내가 너무 편하다 내가 은혜를 받고 변화되니까 아 우리 아버지가 나를 너무 좋아하신다. 딸이 변화되니까…….그래서 뭐라고 했냐면 옛날에 직장 생활할 때 자매가 성격이 괴팍했어요. 그런 사라들이 있잖아요.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무서워요. 평범하지 않으니까 여자가 그러면 못쓰거든요 남자도 마찬 가지지만 뭐 한번 틀어지면 말이에요. 이게 대체 입이 부은 게 직장에서 일주일도 좋고 이주일도 좋고 다음 월급 탈 때 까지 말 안하는 거요. 그래 월급 탈 때까지 맨날 그러고 살 으니 그래봤자 겁날 사람이 없지만 얼마나 불편해요 한사람이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 나오는 게 실은 거요. 그리고 예수 믿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거요. 그리고 주일날 가가지고 또 막 박수치고 불 때고 이게 도대체 뭐에요. 그러더니 진짜 성경 공부하면서 직장에서 변화를 받았어요. 야우선 변화 받으니까 사람이 친절해져 오 범사에 친절해져 제대로 변화 반은 거죠. 그러니까 그 아버지가 뭐라고 하냐면 네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느냐! 야 너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느냐 네가 여태까지 초등학교 들어가서 여태까지 변한 것보다 일 년 사이에 더 많이 변했구나. 도대체 너를 그렇게 변화시킨 힘이 뭐냐? 그랬더니 그리스도 예수가 나를 이렇게 변화시켰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한번 그 예수를 믿어 보자 삶이 이치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그게 온전히 익은 거요. 우리는 어때요. 열뻐치는 일이 이고 비비 마음에 꼬이는 일이 있으면 예수님 잠깐 실레 신앙을 덮어놓고 그 다음에 신앙을 떠나서 신앙을 떠나면 어떻게 해 무슨 말 할 때 믿음을 떠나서 믿음을 떠나면 어떻게 해 믿음을 가지고 얘기 해야지 신앙을 떠나서 얘기 해보자고 신앙을 떠나서 생각해 보면 망하는 거야 그러면서 오히려 예수를 믿고 나서 말하자면 더 신경질이 늘고 영적인 침체가 오면 그것 가지고 바가지 더 글꼬. 그 다음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물어보더래. 여보! 예수 믿는 게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아, 얼마나 신경질을 내고 얼마나 사람이 변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또 어때요. 그러고 나서는 또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고 하고 다 회개하고 보상심리가 있어서 삶이 말하자면 그 무슨 떡 같으니까 그래가지고 보상심리에 오가지고 헌금을 많이 내고 몸으로 때우려고 하는 거죠. 이런 부정은 전부다 뒤집지 않은 전병이에요. 온전하게 익어가야 되요. 성숙된 경건함 . 성숙된 믿음 이것이 필요한 거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양단된 꿋꿋함 이 두 가지가 언제나 우리의 삶속에 동행해야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은 이렇게 뒤집지 않은 전병이 되는데 그 뒤집지 않은 전병이 된 이유가 뭐냐면 열방에 혼잡이 된 이유라기보다는 열방이 혼잡 되는 일과 전병이 된 것과 똑 같은 상황이 된 거죠. 열방이 혼잡이 되다 무슨 뜻이에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써의 독특성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 뜻이에요. 그래서 열방에 혼잡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 얘기는 무슨 얘기냐면 하나님께서 많은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믿음에 백성을 택하시는 거예요. 이 무슨 뜻이냐면 왜 하나님께서 그 열방의 많은 백성들 가운데 하나를 하나님이 택하셨냐. 처음에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에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면서 다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뿐이에요. 응, 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해요. 일반적인 은총과 특별한 은총이 전부가 하나가 되어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없어요. 다 거룩한 거요. 천국에 가도 그래요 다 거룩한 게에요 . 속된 것이 없고 다 거룩한 것이에요. 거룩하고 속된 것 그 자체가 무엇이냐면 구별이 되기 때문인데 구별이 안 되는 거예요. 왜 다 거룩하니까. 흐르는 시냇물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리고 생명나무 실과를 보면서도 하늘의 구름과 하늘의 별과 달과 이런 모든 새와 이런 모든 것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사람들이 모두 깊이 느끼고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죠. 그런데 어떻게 되요. 죄가 들어오고 난 다음서 부터는 이제는 그런 거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느낄 수가 없는 거요. 오히려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서운 생각이 드는 거요. 그래서 어때요? 물을 섬기는 신들이 생겨나요. 달을 보면서도 무서운 생각이 드는 거요. 해를 보면서도 해안태 잘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요. 그래서 이렇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와 미신은 그런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부터 출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직접 알 수가 없거든 그러니 할 수 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택하는 거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삶이 수준에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수준에 못 미치면 수준에 못 미친 대로 그 걸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어때요. 삶이 워낙 수준에 못 미치면 우리를 통해 들어나는 하나님도 원래 수준에 못 미치는 하나님 밖에는 안 들어나는 거죠. 교회가 영적인 상태가 아주 수준이 높을 때는 정말 수준 높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세상에 보여주는 거요. 그 수준이 못 미치는 못 미치는 데로 그렇게 하나님이 그렇게 보이는 거요. 그렇게 보이는 거요. 그러니까 어때요 예전에 요즘에 무슨 불교계에서 무슨 감투를 놓고 싸운다고 그러는데 기독교보다 좀 심한 것 같아요. 우리는 그래도 좀 시원치안은건 있기는 하지만 강목을 휘두르고 폭력배까지 동원하지 않는데 하 그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네 불교는 필요한지 모르겠는데 중들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는 거죠.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신앙은 참 필요하지만 교회가 정말 필요하냐. 그건 왜 그래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온전해지지 않으니까 이러한 선교에 커다란 장애가 되어버리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택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택하셨는데 그들은 결국 구별되거든요. 세상 사람들과 구별 되요. 정상적이고 뒤집지 않는 전병이 아니라 잘 뒤집은 전병이 되어서 온전한 삶을 살면 그는 틀림없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게 되어요.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요. 당연하죠.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과 세상을 소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똑같이 인생을 살 수 있겠느냐 이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혼 잡되기 때문에 입술로는 살아가는 사람들과 안 믿는 사람들과 똑 같은 거요. 온 잡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혼 잡된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와 혼 잡된 사람들이 드리는 그 헌 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헌신과 그 제사가 그것이 마음에 진정으로 구별되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온전해 지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숙제에요. 그럼 오늘 시간이 없어서 깊이 얘기를 못합니다만 잘 생각을 해봐 여러분들 때문에 사람들이 복을 받아야 돼 그리고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야 돼 자기 성격으로부터 부딪치면서 고통을 받는 걸 가지고 뭐 주님을 위해서ㅗ 고난을 받는 것처럼 인간에게 다 그런 미화에 그렇게 착각을 하고 싶은 미화의 심리의식이 있게 마련이에요. 자기가 못해서 그러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올골리자을 통해서 에브라임이 혼 잡될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이거요.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까 혼 잡되게 되었다는 것이죠. 예수를 믿고 세상의 사람들과 구별된 안 믿는 사람들과 구별된 예수를 믿었는데도 안 믿는 사람들하고 예기가 잘 통하면 이상한 거요 좀 가치관이나 인생관이나 이런 모든 것들이 새롭게 태어나 그리고 인생 자체를 그들과는 전혀 다른 시야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댄 다라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은 신앙적인 삶에 있어서 뒤집지 않은 전병 같은 이러한 불균형한 삶을 살게 되니까 결국은 열방에 속에서는 혼잡된 것으로 나타나는 거요. 그러니까 어때요. 열방 속에서 이스라엘이 갈등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이 세상에서 갈등을 느껴야 되요. 무슨 갈등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 아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래 그 속에서 갈등을 느끼는 거죠 그것이 신앙이 살아 있다는 증거에요. 그리고 그 신앙이 더 훌륭한 신앙이라면 그 갈등 속에서 갈등을 이기고 급기야는 내 안에서 살고 싶어 하는 성령이 그렇게 살라고 나에게 말씀으로 가르쳐 준 삶을 용감하게 실천하면서 그 삶 때문에 나에게 갈등을 일으키게 된 그 갈등들을 제압하면서 나의 삶으로 그들의 삶도 바꾸어 놓고 생각도 바꾸어놓고 그리고 변화시켜놓는 그런 힘을 가지고 나아갈 때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적인 삶이죠. 으 갈등을 가지고 직장생활 속에서 갈등을 가지고 그러나 기껏 마지막에 하는 이야기가 아 다 때려치고 곰탕집이나 차릴까봐 곰탕집 차리면 자기 마음대로 주일 지킬 수 있고 그 다음에 콩나라 팥나라 하는 사람 없고 그렇죠. 그러나 그런 세상이 어떻게 될까 한번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전부다 정부요직이나 이런 세상을 움직이는 자리는 안 믿는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장사나 하고 있을 거요. 그것 현실도피라 생각하는 거죠. 세상 속에서 갈등을 느끼면서 그 속에서 모든 믿음에 사람들이 그런 갈등을 느끼면서 사는 거요.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석이지 않고 나의 독특성 즉 하나님의 복음의 독특성 신앙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의 독특성들을 거기에서 들어나는 거요. 그러면서도 믿음이냐 현실이냐 할 때 언제든지 믿음을 택하는 거요. 그러면서 그 두 가지가 양립 할 수 때에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로 말미암아 편해지고 복을 받고 그리고 나 때문에 사람들이 덕을 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요. 직장에서도 예수를 믿고 이웃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예수를 믿으면 말하자면 사람이 영악해 지니까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고 손해 볼 주아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논리로 따지기 보다는 사랑으로 사람을 감화시키고 이유나 변명을 대는 것 보다는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사람들 위에 굴림하고 지배하려고 하기보다는 낮은데서 스스로 허리를 굽히고 섬길 줄 아는 그러한 정신을 그리스도에게 배우면서 살아가는 거요. 그런 독특성들을 우리들이 들어낼 수 있어야 된다 이거죠. 이스라엘이 신앙을 잃어버리니까 열방이 완전히 혼잡 된 거요. 그렇게 되니까 결국은 뒤집지 않은 전병 같은 신앙상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거죠. 결국은 세상은 받을만한 이스라엘이 되었는데. 이해하시죠. 세상은 받아줄만한 이스라엘이 되었는데 세상에 받아줄만한 이스라엘이 될 정도로 혼잡하면 혼잡할수록 이스라엘의 신앙의 상태는 점점 더 뒤집지 않은 전병이 되어서 한쪽은 더 맹렬하게 타들어가는 거요. 나중에는 호떡 밑에 불꽃이 생길 정도로 타들어가고 위에는 완전히 더 생거여서 밀가루 냄새가 푹푹날 정도로 이렇게 되어가는 거요. 그렇게 되니까 결국은 그렇게 되면 될 수록 하나님 앞에는 받아드릴 만한 존재가 못되어가는 거요. 이런 것 들이 모두 신앙의 모든 불균형들이에요. 호세아는 지금 이것을 꾸짖고 있는 것이에요. 이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거요. 이들이 완전히 하나님을 버렸어요. 완전히 신앙을 버렸어요? 그 형식을 모두 떠났어요. 아니라는 거요. 요즘 우리말로 얘기하면 이들이 교회 출석을 안 ?기로 했어요? 아니에요. 십일조 안했어요? 예배를 빠졌어요? 구역예배를 안 드렸어요. 아니에요. 다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독특성이 없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여기 시집 안간 사람들 많잖아요. 시집 가면은 그러면 결혼을 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그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요. 이쪽 집에서건 저쪽 집에서건 말이에요. 내가 장가를 들었다든지 어느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든지 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 때문에 다른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거기 간 것 보다는 직장이 이익을 보고 유익을 얻을 수 있어야 돼요. 그렇게 될 때 비료서 우리는 열방에 혼 잡되지 않는 독특성을 지니면서 살아가는 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사람들로 만드는 거요. 어디로 가든지 우리들은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 주님 뭐라고 하셨어요? 너희는 세상에 빛이요.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라 너희들이 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나니 등경위에 둔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이 너희들을 모두 등경위에 두지 너희를 말 아래 두지 아니한다. 왜? 빛이 이야기된 빛이니까 모든 사람에게 들어나게 돼요. 그때 우리들은 더 성숙된 삶을 살아야 되요. 예수를 믿고 더 친정해지고 집에서도 모든 가족들이 내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복을 받을 수 있는 응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요. 사람들이 내가 신앙을 가진 비밀을 알고 싶어 하고 그리고 그 믿음의 비밀에 대해 동참하고 싶어 하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되잖아요. 예수를 믿었는데 가장 불행해 보이는 얼굴로 살아간다면 예수 믿으세요. 그럼 뭐라고 그래요. 내가 그 스트레스를 왜 받아 내가 왜 그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교회 나가겠느냐. 그러더라니 까요. 야, 교회 다니는 것도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나 그런 경우에 복음은 전해지지 않는 것이죠.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잘 뒤집혀진 전병과 같은 삶이 되어서 여러분의 삶의 모든 부분들이 하나님이 받으시기 합당한 부분으로 변화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같이 이 시간 한 음성으로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열방에 구별되게 하시고 그리고 균형을 잃어버린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은 이러한 신앙생활이 되지 않고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들이 골고루 익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만한 그런 신앙의 삶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같이 한 음성으로 기도 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사랑이 많으신 내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 하옵나이다. 주님께서 이 시간에도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주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오니 주여 도와주시고 붙잡아 주시옵소서 저의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이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삶과 그리고 우리의 신앙적인 삶이 이분화 되어져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 저희들이 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더 온전한 마음으로 더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열방가운데 우리를 구별하시고 세상가운데서 우리를 갈라 내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독특성들을 보이시고 믿음으로 따라가는 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고 그것으로 말미암아서 세상을 변화 시키고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유익을 얻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착하고 진실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시간에도 우리를 도우시고 붙잡아주시길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하나님 그리하여 저희들이 흑암에 있는 많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며 믿음에 비밀이 무엇이고 신앙에 참된 오묘함이 무엇인지를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들어내고 보여 줄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도 붙잡아 주시고 도와주시길 원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