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만 더 기회를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눅13:6~9)
녹취자: 김경애
Ⅰ. 들어가는 말
한해가 이렇게 저물고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한해를 돌아볼 마음이 생겨나지요. 그리고 아쉬움과 미련이 남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우리의 인생을 농사를 짓는 것에 비유한다면 한해를 모두 보내고 나서 맺은 열매가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죠.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하신 비유 가운데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거기에 심겨진 무화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고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이고 과원지기는 예수님이시고 그렇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이 성경에 보면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우선 첫째는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두 번째는 변호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세 번째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되어있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 나옵니다. 어떤 주인이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아니 포도원에 왜 무화과나무를 심었을까?’ 그렇게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원래 신명기에 보면 두 종자를 함께 씨를 뿌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실수의 경우에는 예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도원이 있으면 포도원의 빈 공간에다가 무화과나무를 심어서 함께 경작을 했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 옛날에 논둑에다가 콩 같은 것들을 심듯이 아마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이제 이 주인이 와서 때가 되니까 무화가 나무의 열매가 맺었는가 하고 무화과나무를 들여다보았더니 열매가 없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과원지기에게 ‘이것을 찍어버려라.’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포도원은 이사야서에 보면 이스라엘이라고 되어있고 호세아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화과나무로 묘사됩니다. 그러니까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요, 거기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니 오늘날로 말하자면 이 포도원은 교회요, 그리고 거기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주인이 와서 열매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구하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열매입니다. 의와 신과 공평의 열매를 자기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열매를 맺음으로써 우리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맺은 열매 때문에 변화된 사람, 변화된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 자신이 기쁘고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그렇게 변화된 열매를 맺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열매를 구하시는 것이죠.
Ⅱ. 본문해설
오늘 성경에 보면 농부가 열매를 구할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 세 가지가 나오는데 우선 첫째는 이 농부는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두 번째는 과원지기를 그 포도원에 보내서 무화과나무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삼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포도원주인은 자기의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할만한 자격이 있었다는 것이죠. 여기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불신자의 상태에서 건져내셔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만드셔서 교회에 우리를 한 회원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내셨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후에도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시게 하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수시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작용을 하셨습니다. 포도나무를 돌보는 농부처럼 때를 따라 가지를 치고 거름을 주고 가꾸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열매를 구할만하신 분이시라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는 오래 참으셨습니다. 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 무화과나무의 열매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삼 년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삼 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와 관련을 지어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마리아 이 세 사람을 기준으로 세 시대로 나누어서 그것이 삼 년으로 암시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보다 더 성경에 부합하는 교훈은 그냥 삼 년은 삼 년일 뿐입니다. 무화과나무의 특성이 일반적으로 심은 지 3년 만에 열매를 거두게 되어있고 또 삼 년이 되는 해에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영영 열매를 못 맺는 나무가 되기가 아주 쉬운 것이 무화과나무의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 년이라고 여기에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죠.
1. 열매를 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우리들이 누구였습니까? 뭐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우리의 근본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방인처럼 살았고 하나님 모르기를 짐승처럼 무지하게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좇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육체의 현저한 악을 도모하며 살던 세상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렇게 버려진 삶을 사는 것을 차마 보실 수가 없어서 그래서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믿음이라는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실이나 우리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지 않고 그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셔서 우리에게 남들은 믿어지지 않는 복음의 진리가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남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천국복음이 우리의 마음에는 믿어지게 하셨고 다른 사람은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그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찾아오시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 세상의 더러운 땅에서 떠내어서 그래서 성결한 하나님의 나라에 한 무화과나무로 그 포도원에 심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새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죠. 우리에게 무슨 선한 것이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구원받을만한 어떤 자격이 있었습니까? 그 포도원에 들어와서 심겨질만한 어떤 특별한 공로가 우리에게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원히 기쁘신 뜻을 따라서 우리를 그 세상의 밭에서 캐내어 주님의 교회에 심으셨습니다. 이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렇게 우리를 퍼 옮겨 심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여러분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포도원 밖에서 몹쓸 육체의 더러운 열매와 사악한 과실들을 맺으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것을 자신의 삶의 본분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갔을 것입니다. 영적인 암흑과 무지 속에서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알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도 없는 가운데 살았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버려두시고 아직까지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우리들은 구원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그래서 이제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랬다면 우리들이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더 많이 닮는 인격의 열매,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를 맺어서 아버지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의 본분이 아니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셨지만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우리를 구원하실만한 구원의 근거가 필요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을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구속의 근거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지만 우리가 그 믿음을 자랑할 수 없는 것은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 아버지의 선물이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는 우리가 비록 믿었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형벌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는 것이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의 근거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시고 성령님으로 우리의 마음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약속대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당신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우리에게 가르치셨던 많은 진리들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짐승과 다름없는 삶에서 변화되어 성도의 삶을 이어가게끔 만들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암흑과 무지 속에서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던 사람들을 하나님의 찬란한 복음의 광채와 영광의 빛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셔서 우리를 풍부한 진리의 말씀 속에서 살게끔 만들어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분은 우리의 마음 안에 계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이끄시고 예배시간마다 자기의 얼굴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만나주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의지하며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그래서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을 잊어버리고 사는 동안에도 그분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모두 세시며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고 죄로 인해서 그들이 상한 갈대와 같을 때에도 아주 꺾지 않으시고 자신의 허물을 인해서 꺼져가는 등불과 같을 때에도 그 심지를 아주 끄지 아니하시는 그런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끝나지 아니한 사역이 남아있으니 그것은 보좌 우편에서 당신이 심어놓은 무화과나무와 같은 자기의 백성들을 위해서 아버지께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늘나라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여전히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우리를 위해 비시면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아버지의 나라에 심겨진 사명을 감당해 나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을 버리고 이 낮고 천한 땅에 내려오셨으며 오셔서 우리에게 당신의 온 몸을 교육 재료로 삼으셔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주시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말씀으로 가르쳐주시고 진리가 어떤 것인지를 그의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삶을 사셔야했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구속의 길을 여시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서 당신은 아버지께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를 주님의 품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은 비천하리만치 낮아지셨습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은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시면서 멸시와 욕을 한 몸에 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은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서 저주를 받아 끊어진 자처럼 그렇게 자신의 생애를 십자가에서 마감하셨습니다. 하늘에 오르셔서도 여전히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지금도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읽을 때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우리를 향해 품고계시는 당신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속에 스며들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소망이 없는 죄인들을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역사 속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도저히 더 이상은 살아갈 수 없는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에게 당신의 은혜를 보여주셔서 거기서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하도록 만들어주시는 분도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구원받은 자기의 백성들을 향한 그 돌보시는 정성과 그 목자로서의 끊임없는 사랑은 이렇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지고 계신 놀라운 사랑을 당신 자신이 직접 영적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당신이 사랑하는 교회, 당신이 세운 목회자들, 당신이 세운 성숙한 사랑하는 지체들을 통해서 자기의 백성들을 돌보는 도구로 삼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을 돌보시되 영적으로 그들에게 직접 은혜를 베푸시기도 하고 또 당신이 사랑하는 교회와 목회자와 사랑하는 지체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을 때에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을 더듬어도 알 수 없을 때에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없을 때에 성령 충만한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가는 지체들을 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배우게 만들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 같은 쓸모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한번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희생인데 그렇게 자기의 생명을 버리신 후에도 돌이킬 줄 모르는 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역사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온갖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고 돌보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왜 그럴까요? 바로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열매를 향한 예수님의 그 마음은 이미 요한복음 15장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열매를 많이 맺으면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정말 복된 삶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으로서 주님 앞에서 살아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삶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 삶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생각나는 그런 삶을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보면서 죄 많은 이 세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 마음을 믿음이 연약한 사람과 심지어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생각나게 해주는 그런 사람, 그런 마음, 그런 열매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이 오래 참으셨기 때문에 열매를 구할만한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순리적인 분이시고 폭압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무화과나무를 심고 일 년도 안 되어서 열매를 내놓으라고 닦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중생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그리고 많은 성화의 은혜를 통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돌보아주십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끔 만들어주시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알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시고 그리고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를 주셔서 기도의 은혜를 통해서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진리를 간직하고 열매 맺게 하도록 그렇게 살 수 있게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곤고하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도 우리들이 홀로 낙심하지 않도록 우리가 간구할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우리의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의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날마다 우리에게 갈 길을 여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시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면서 마땅히 열매가 맺혀져야할 그때에 가서는 우리에게 열매를 구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은 부당하게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땅하고 합당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그 열매를 요구하시고 그 열매를 우리에게 간절히 찾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도 많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후에도 얼마나 오래도록 우리를 참으셨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한번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다음에 우리가 패역의 길에도 돌이키고 불순종을 고치지 않는다고 단숨에 우리를 찍어서 타는 불 가운데 던져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낙심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다시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매 순간마다 인격적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에는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갈 바를 알지 못할 때에는 진리의 말씀의 빛으로 비추어서 우리로 하여금 어디로 가야할지를 깨닫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렇게 매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도해 오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만큼 우리의 믿음으로부터 파산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남아서 거미줄 같은 신앙이나마 붙들고 살아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정말 멸절되고 말았을 것이며 이렇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주님이 주시는 많은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신앙을 가지고 살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조급하고 하나님이 내 마음대로 행동해주시지 않는다고 앙탈을 부리고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 대드는 적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일체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열매 맺기를 기다려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열매를 우리에게 요구하실만한 분이십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참 큽니다. 그래서 우리를 비관하지만 않고 한 해 동안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축복을 세어보면 이루 헤아릴 수가 없고 그리고 가치 없는 죄인들을 왜 이렇게 많이 사랑하시고 왜 이렇게 큰 은혜들을 베풀어주셨는지 우리는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만입이 있어도 그렇게 일 년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이 많은 은혜들을 다 찬송할 수 없고 정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넓으신 사랑과 은혜를 기록한다고 해도 다 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위대한 일을 행해주셔서 교회를 옮기게 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가 되었죠. 여태껏 방배동에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방배동교회 앞을 지나가면서 다 무너진 터를 내려다보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눈에 선한데 아마 참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주일마다 몇 십대씩 견인되어가서 딱지를 발부받았을 것이고 밥그릇을 들고 1층, 2층, 본당까지 밀려들어와서 식당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사택의 교역자들은 다 쫓겨났을 것이고 거기는 크고 작은 교회학교 교실이 되거나 교구실이 되어서 그 작은 엘리베이터 하나를 타기 위해서 사람들이 줄을 섰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갈 데가 없어서 그 계단 위를 뛰어다니고 난간위에 위험하게 매어달리고 담장을 서커스 하듯이 걸어 다니면서 우리의 마음을 졸였을 것이고 어쩌면 사고가 났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꿈꾸는 것과 같을 일을 하셔서 우리를 여기에 보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죠. 교회를 이렇게 옮기고도 시험에 들지 않고 더 많은 성도들을 보내어 주셔서 한 가족이 되게 하셨고 지체들은 사랑가운데 묶여져서 서로를 섬기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IMF이후로 가장 어렵다고 하는 시기인 금년 한 해 동안에도 특별히 굶고 어려워하지 않고 많은 성도들이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베풀어주신 이 은혜를 우리가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조금밖에 충성하지 못했는데도 이렇게 많은 열매를 주셨다면 우리들이 좀 더 순결하고 주님 앞에서 좀 더 깨끗하고 사심이 없는 마음으로 우리의 중심을 바쳐서 주님을 섬기고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좀 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돌보았더라면 그래서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해서 더 많이 울어주고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해서 더 많이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는 종 된 섬김의 자세로 영혼들을 섬겼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아마 꿈꾸는 것 같은 더 위해한 하나님의 일들을, 열매들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한해를 지나며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무한히 감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이렇게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님의 섬김을 받게 하시고 이렇게 오래 참아주시는 하나님의 그 인내 앞에서 더 많이 열매 맺지 못한 것을 인해서 하나님 앞에 많이 마음 아파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우리를 사람 되게 하시려고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진노하시는 음성으로, 때로는 우리를 끌어안으시는 뜨거운 사랑으로 진리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돌 같은 마음을 녹이셨습니다. 우리 몸에 깊이 배인 불순종의 삶과 짐승과 방불한 패역한 삶으로부터 우리를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서 때리시고 어루만지시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우리를 타이르고 권면하고 사랑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정말 우리를 사람 되게 하시려고 그래서 우리를 진실한 신자가 되게 하시고 싶으셔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은혜를 주시고 참으셔서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조잡하기 짝이 없던 우리의 인격이 얼마나 많이 변했습니까? 특별히 자기만을 사랑하던 이기심으로 가득한 우리의 이런 인격이 얼마나 변했습니까? 자기가 이제껏 까지 믿어오고 살아온 것이 최고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던 깨어질 줄 모르던 자기의 그 집요한 아집이 얼마나 많이 깨뜨려져서 주님이 보실 때 우리들이 주님 안에 있는 은혜의 새 피조물이 되었습니까? 무엇이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어떤 것으로 우리 주님의 마음에 가장 기쁨을 드릴 수 있을까요?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와 같은 기름으로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변화된 여러분 자신입니다.
(찬양)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주님을 닮기를 간절히 원하네.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닮는 것
그게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집을 멀리 떠난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군대에 가거나 먼 외국에 떠나거나 혹은 부득이한 이유로 자식을 불행하게도 멀리 요양소 같은 곳에 보낸 연로한 부모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자녀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당신의 품에 안기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아름다운 열매는 우리 자신이에요.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서 믿음이 없던 사람들이 믿음으로 충만해지고 세상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하늘에 소망에 불타는 마음이 되고 자기밖에 모르던 야비한 사람들이 변해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연약한 지체들을 많이 사랑하게 되는 그런 인격적인 변화, 그래서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생각할 때에 마음에 기쁨이 되는 그런 인격적인 변화의 열매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또 있으니 그것은 우리의 삶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그 이후에는 그 삶은 자기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이제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해서 생명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여러분들이 무슨 지위를 누리고 어떤 물질들을 소유하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썩어질 육체로부터 썩어질 멸망을 거둘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섬기고 사는 사람들은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인생의 모든 기회와 시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과 기회들이 되도록 우리가 그렇게 살아 드려야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친절히 행하며 복음에 빛 된 삶을 사는 것도 착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을 따라서 우리에게 부가된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우리는 한해가 저무는 이즈음에서 열매가 어떤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자리, 내가 아니면 설 수 없는 그 부르심의 자리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많이 열매를 남겨드렸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많은 직분을 주셔서 일하게 하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한, 두 개의 직분을 주셔서 섬기게도 하시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큰일을 맡겨주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작은 일을 맡겨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이 주신 사람들에게는 많이 구하시고 적게 맡기신 사람들에게는 적게 구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열매의 크기나 개수가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내게 이 사명을 맡겨주셨을 때에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셨느냐? 그리고 그 열매를 남기기 위해서 우리들이 어떻게 분투하는 모습으로 충성되게 하나님 앞에 살았느냐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각자에게 세워주신 하나님의 자리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섬기며 살도록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는 여러분이 아니면 비어있을 수밖에 없는 그 사명의 자리이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거기에 세워주시려고 오래전에 여러분들들 택해서 다른 사람들이 받지 못하는 특별한 은혜를 받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복음의 비밀들을 파악하게끔 만들어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열매들을 우리들이 맺었습니까?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자리에서 얼마큼 헌신하면서 살았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직분을 따라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세워주신 그 자리 거기가 여호와의 집을 지키는 문지기의 자리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맡은 그 자리에서 많이 기도했습니까? 맡은 그 자리에서 우리들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많은 열매를 남겨서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 거기서 우리는 많이 울었습니까? 날마다 순간순간 밀려오는 안일한 삶을 향한 유혹을 뿌리치고 사명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주님이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애쓰는 삶을 살았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만큼 많은 열매를 맺어드렸습니까? 특별히 영혼을 맡겨주셔서 돌보게 하신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말할 수 없이 크고 주님이 그렇게 당신의 분신과 같은 영혼들을 우리의 품에 맡겨주셨을 때에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셨던 것은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그들을 섬기고 예수님처럼 그들 자신을 위해서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울어주고 예수님처럼 자신의 눈물과 땀과 피를 드려 영혼들을 섬겨서 당신의 교회를 온전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할만 해서 우리를 거기에 세워주셨고 열매를 맺을만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영혼들을 위해서 섬기도록 거기에 세워주셨습니다.
얼마나 우리들이 열매를 맺었습니까? 한해는 지나갔고 이제 그 한해는 다시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일 년이라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내버렸고 우리의 인생은 타들어가는 초처럼 그렇게 일정분량 줄어들었습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는 하나님께 쓰는 아름다운 사랑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편지지요,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타오르고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촉동간입니다. 시간이 없이는 주님을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랑을 고백할 수 없고 시간이 없으면 주님을 위해서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예수님의 십자가 다른 한편에 있던 강도와 같이 그렇게 섬기고 싶어도 섬길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주님이 그 험한 죄의 길에서 복음의 밝은 빛으로 우리를 건져주셨고 끊임없이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은혜로 수많은 주님의 섬김을 받으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여기에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로 영혼을 섬기게 하셨고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이 땅의 영혼들을 돌보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사신 이 백성들을 여기게 세워놓으셨습니다.
한 해 동안에 많은 영혼들을 보내주셨고 여러분들이 이처럼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까지도 추수되어야할 비참한 영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서 주님을 찬송하고 빛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노래해도 우리는 그 사람들을 많다고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불신자처럼 살아가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과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지와 영혼의 암흑가운데서 스러져가는 태어나기는 했지만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보면 우리들이 맺은 열매를 보며 우리는 통탄해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를 버리고 조금 더 정결해지고 조금만 더 나의 아집을 꺾고 조금만 더 내가 가진 물질과 그리고 주님이 주신 재능과 섬기라고 주신 은사와 그리고 물질을 영혼들을 위해서 쏟아 부었더라면 우리는 더 많은 면류관과 같은 사랑하는 지체들을 이 교회 속에서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오래 참으시면서 우리에게 열매를 구하시는 분이었는데 우리들은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 앞에 깊이 죄송해하고 그리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해를 충성스럽게 살아갈 결심을 다져야하는 것입니다.
2. 변명하시는 예수님
두 번째로 보니까 변명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한해만 더 남겨두어 달라고 아버지께 간절히 호소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순전히 과원지기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과일이라는 것은 재주가 좋아서 자라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똑같은 배 밭인데 앞집의 배 맛하고 옆집의 배 맛하고 틀리지요. 그래서 미국에 가도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그 신고 배를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얼핏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와 똑같은 것을 미국에서 만들어 보려고 여러 사람이 배 밭을 만들었는데 성공을 못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저는 잘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먹골의 배 밭에 가서 배를 먹어도 어느 집의 배는 맛이 있고 어느 집의 배는 맛이 없습니다. 그게 불과 한 2, 30미터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배 맛이 다른데 그리고 그 동네에서 벗어나서 한 십리나 이십 리를 가면 거기는 전혀 또 배가 안 돼요. 그래서 특산지라는 것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은 과원지기만의 잘못이 아니란 말이죠. 땅, 그 다음에 거기에 심겨진 과수의 품종, 그다음에 그 과수가 자기고 있는 생장력, 주위의 기후 등 다양한 것 들이 다 해당되거든요. 요소가 되는데도 오늘 이 과원지기는 마치 그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전부 자기 책임인 것처럼 ‘한번만 더 참아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나무 주위를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서 충성스럽게 섬겨서 무화과나무로 열매를 맺게 해드리겠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정말 우리는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만나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서 아버지께 사과하며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도록 그렇게 기도하시는 그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모든 기회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또 우리를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진리의 말씀을 주시고 이렇게 목양을 받고 성도들의 섬김을 받으면서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온갖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이 예수님이신데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했을 때에 하나님께 용서를 빈다고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그분이 무엇을 잘못하셨습니까? 그분이 잘못하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어떻게 영혼들을 섬기셨는지 기록에 남겨진 예수님의 생애를 더듬어 보십시오. 지금은 비록 낮고 천한 사람의 몸을 벗어버리시고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보좌 우편에서 온 땅과 하늘을 두루 다스리시는 통치주가 되셨지만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시는 마음은 동일합니다.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영광과 존귀를 한 몸에 받으시지만 그러나 그분의 마음은 여전히 목자의 마음이고 그리고 과원지기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 하나하나를 돌보시기 위해서 지금도 당신의 자녀들의 삶의 한복판에 나타나십니다. 그들이 곤고해할 때 가슴 아파하시고, 불순종하고 죄의 길을 걸어갈 때에 우시고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할 때 기뻐하시며, 그들이 많은 열매를 맺을 때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우리들이 인격적으로 성화되어서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지 못한 것, 우리들이 열심히 섬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를 많이 맺지 못했던 것이 어떻게 과원지기이신 예수님의 잘못이실 수 있습니까? 그분이 비난받으실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고 지금도 주고 계시고 앞으로도 주실 것입니다. 당신에게 은혜를 구하고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외면하신 적이 있습니까? 이름난 죄인과 흉악한 죄인들이 당신 앞에 나아와서 참회하며 사죄의 은혜를 구할 때에 그들의 과거를 보고 그들을 용납하지 않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낌없이 자기를 모두 주셨고 지금도 도움이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당신 자신까지라도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들이 열매를 맺지 못했는데 아버지께 용서를 빌며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탄원하시며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우리를 더 다듬고 우리에게 더 많이 은혜를 주셔서 열매를 맺게 해드리겠다고 하는 예수님의 이 간절한 탄원과 변명을 대하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얼마나 예수님의 마음에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도 살아가는 삶이 아프시고 안타까우셨으면 예수님 자신이 이런 비유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찌르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지금 이 시간에도 보좌의 우편에서 우리의 열매 없는 것을 인해서 하나님 앞에 인내의 용서를 구하시는 예수님의 이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고 예수님의 이 중보자적인 사랑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면서 그렇게 열매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격과 그리고 생활의 열매를 맺어서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여러분들이 간절히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착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십자가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나를 주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데 깊이 열매 맺지 못한 것을 아파하고 여러분의 마음에는 정말 예수님께 기쁨을 드리며 살아가고 싶은 그 소원이 있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불순종하며 살아가고자하는 악한 마음을 버리고 그 착한 마음이 여러분 속에서 일어나야합니다. 주님이 어떻게 여러분들을 사랑하셨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을 시종일관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원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한 순간도 여러분들을 혼자 내버려둔 적이 없습니다.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난 어두운 죄의 길에서 마귀에 의해서 내팽개쳐졌을 그때에도 마지막으로 다가오셔서 여러분들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씻겨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죄와 불순종으로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엎드려져 강도를 만난 자와 같이 된 여러분들을 싸매시고 주막까지 업어 나르신 분도 주님밖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해드리면서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분이 열매를 원하십니다. 그 열매를 보고 그분께 기쁨을 드리고 그분이 기뻐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찬양)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육체에 있을 때에나 육체를 떠날 때나 오직 그분을 기쁘시게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그의 이름은 주님의 품에 고이 간직될 것이며 그들의 삶이 남겨준 아름다운 족적들은 찬란한 보석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육체의 자랑도 육체의 정욕도 이 세상의 안목의 모든 영광도 다 사라져가는 것이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산 사람들은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해도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변명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무개 집사, 아무개 형제, 아무개 지체가 아직 변화되지 않았지만 하나님 아버지! 한해만 더 기회를 주시면 제가 변화 받도록 많이 도와주어서 그래서 예전에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보다 배나 기쁨을 드리는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겠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중보하시는 탄원 때문에 우리들이 한해가 저물어가고 또 한해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에 깊이 감격하며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심판하시는 하나님
마지막 세 번째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보면 ‘열매를 맺으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국부적으로 보면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당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애쓰시면서 주님께 이미 받았던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고, 즉 주후 70년에 디도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민족적인 멸망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역시 이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금 우리는 마지막 시대의 마지막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심판의 날이 매우 가까이 왔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알곡과 같은 백성으로 열매를 맺으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 하늘을 열고 은혜를 물 붓듯이 부어주시는 때입니다. 마지막을 준비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 구약의 성도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열심을 가지고 은혜를 받고 진도하지 못할 나라를 우리가 받아 누리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히 사모해야합니다. 마른 뼈와 같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 없음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마른 뼈가 어떻게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양하겠으며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을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 어두운 세상을 향해 빛을 받으라고 말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이 세상을 향해 우리 주 예수의 구원하는 아름다운 청을 사람들에게 선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참된 진리의 말씀과 함께 우리를 불타게 만드는 뜨겁게 만드는 하나님의 불이 필요합니다. 은혜의 불, 성령의 불이 필요합니다. 어두운 시대를 이기며 살 수 있게 하는 불같은 사랑과 횃불처럼 타오르게 만들 수 있는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불이 우리의 마음속에 간절히 필요합니다.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젊은이나 노인이나 죄인이나 어떤 사람과 상관없이 진실 되게 회개하고 아버지의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 붓듯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깊이 회개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난 한 해 동안도 받았던 많은 은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의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 그 앞에서 과거의 불순종을 회개하고 진리의 빛 가운데도 돌아오게 하셨던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이처럼 여러분들이 열매를 맺으면서 다시 살 수 있게끔 주시는 하나님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느 순간에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심판의 때가옵니다. 그때에는 주님께 열매를 맺지 못한 자와 열매를 맺은 자가 뚜렷이 구별될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으면서 살았던 사람들은 주님께 많이 칭찬을 받을 것이며 주님이 많은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게으름과 나태와 안일 속에서 미끄러진 삶을 살면서 열매를 맺지 못했던 불순종한 사람들은 크게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뜨거운 마음으로 마지막에 약속하신 그 은혜를 열렬하게 구하고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면 내가 주님을 온 마음과 온 몸을 다해서 섬겨서 많은 열매를 맺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