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붙들려 산다는 것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우리들이 종종 주님께 붙들려 산다 그런 표현을 합니다. 그게 늘 쓰는 말이지만은 그게 뭘 의미 하는지 막연하게는 알고 있지만 우리가 구체적으로는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주님께 붙들려 산다고 하는데 사람이고 물질이라면 손아귀로 눈가를 붙들고 있으면 그 사람을 붙잡고 있는 것 이지만 하나님은 본질상 영이신 분이시니 우리가 그런 식으로 붙들려 살지는 않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붙들려 산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속박과 같아서 내가 자유 내게 자유가 없어지는 것이 붙잡혀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으시는 방법은 그런 물리적인 강제력으로 붙드시는 방법이 아니 예요. 힘은 힘인데 그 힘이 물리적으로 우리에 의지를 속박하는 그런 종류에 붙들림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사용해서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향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종류에 신비한 붙들림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붙들고 계서도 사실은 우리가 주님께 붙들린 상태를 우리의 의지로 기뻐하여야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분께 붙들려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이예요.
그러면 우리가 주님께 붙들려 산다. 그러는데 그러면 그게 무슨 뜻인가 결국은 주님에 주님께 붙들려 산다는 것은 주님이 하시고 싶으신 것이 나고 행하고 싶은 것이 되어서 주님과 나 사이에 일치가 이루어지는 한 방향에 의지를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의지가 그렇게 합체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방향도 같아야 하고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찾는 방향도 같아야지만 그런 종류의 합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 붙들려 산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주시고 싶은 것이 우리도 알고 싶은바가 되고 주님이 우리에게 갖기를 원하시는 사랑이 우리도 갖고 싶은 사랑이 되고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도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 되어서 내가 신기하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살게 하셔서 사시는 것 같은 그런 일치의 삶이 바로 주님께 붙들려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보이시는 분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신 분이신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이렇게 당신과 일치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그 방향으로 능력을 주시고 그렇게 하시는 것일까요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오늘 성경 본문에 답으로 나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사도바울이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 하노니 뭐 부탁 한다는 거지요? 너희를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 하노니 마치 엄마가 어디 먼 길을 떠나면서 지 자식들을 친척집이나 이웃집에 맡기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아이들을 맡기고 갈 테니 내가 돌아올 때 까지 잘 돌봐 주십시요 하고 맡기고 가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잖아요 그런데 그 맡아주시는 그 대상이 뭐냐 하면은 주와 및 그 분의 말씀 이예요. 어떻게 보면 주님과 말씀에게 우리를 부탁하는 것 같지만 여기에서 주와 그리고 한 이것은 동격을 나타내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 곧 그 은혜의 말씀께 내가 너희를 맡기노니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맡긴다 하는 것은 은혜의 말씀께 우리를 부탁하는 것 이지요.
그러면 사도 바울이 순교할지도 모르는 이 길을 떠나면서 자기의 사랑하는 양떼의 에베소 교회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게 무엇 이였습니까? 이들을 내가 더 이상 목양할 수 없이 버려두고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이 사람들을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고 떠났던 것 이예요. 그러면 은혜의 말씀께 부탁했단 것은 무슨 뜻 입니까? 이 사람을 이 사람들을 이 사람들에게 끈임없이 영양을 미쳐서 주님께 붙들려 살도록 그렇게 주님이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주님이 사랑 하시길 원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또 주님이 하시고 싶은 일을 하도록 일치한 마음을 품게 만들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에 말씀에 붙들려 산다고 해서 그사람이 사람이 아닙니까? 똑같은 죄 많은 세상에 유혹에 빠질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질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똑같은 환경에서 시험에 들어 악으로 미끄러지고 어떤 사람은 똑같은 환경에서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주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나올까요?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를 붙드는 자를 붙드십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붙들며 살고자 할 때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러분들이 주님에 말씀을 붙들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오히려 여러분들을 붙들었다는 느낌을 받는 거죠.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에 대한 작용은 우리가 선경을 읽으면 성경을 읽지만 그러나 어 진정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는 내가 성경을 읽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읽는다는 느낌을 받는 거여. 그래서 내가 전혀 몰랐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니까 그 말씀이 나를 읽어서 우리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게 만들어 주고 또 우리의 모습을 깨닿게 만들어주고, 우리의 모습에 대해 회계하게 되고 하는 등등의 작용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에 사도가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을 부탁하고 싶었던 이유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군대생활이 아닙니다. 누가 감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충성스럽게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감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간섭받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주님을 사랑할 때 충성스런 삶을 살게 되듯이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은 억압과 강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에 그 감동을 받고 그 말씀에 굳게 붙들릴 때 그는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이 자녀를 교육할 때에도 우리가 교육이 아무리 중요하지만 성령님의 교육만은 못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오래도록 자녀를 돌보고 가르쳐야 되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맛을 알아서 그래서 스스로 말씀을 대할 때에 거기에서 깨닫고 그리고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그런 작용이 있을 때에 그 자녀는 우리가 돌볼 때에도 돌봐지고 우리가 돌볼 수 없을 때에도 그 아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돌봐지고 우리가 잔소리 하고 충고 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아이의 지식에 살아 있어서 성령의 검이 그 말씀을 사용할 때 우리 아이들은 고쳐지고 변화 되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우리에 아이들에게만 일어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꼭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며 그 말씀이 우리에 마음에 붙잡히고 움직이는 일이 있을 때에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주장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에 의해서 주장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이예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워낙 불결하고 악하기 때문에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무릎을 꿇으며 기도를 해도 저녁때는 불순종하기 쉬운 게 우리에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 조차라도 없다면 우리는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지 마음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마음을 많이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설교를 듣던지 책을 읽든지 성경을 읽든지 간에 어째든 감동을 받아서 흔들리고 그 말씀이 나를 꽉 붙드는 것 같은 은혜의 경험이 살아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께 순종하며 사는 올 한해가 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 행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께 순종하는 사람들과 동행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