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인생의 유일한 소망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시편 103편 15절~17절 상)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이야기는 문학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 인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그 말이 딱 들어맞는지 정말 흐르는 세월이 무서우리만치 빠릅니다. 그렇게 세월이 빠른 것을 느낄 때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가,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게 신속히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어느 한 순간에 우리들이 정말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우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아직 어린 사람들은 저희에게 다 똑같은 이야기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정말 빠릅니다.
그대들은 아직 그런 느낌이 안 들지 모르지만 저는 세월이 흐르는 것이 정말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야속하리만치 안타깝습니다. 지나고 보면 주님을 믿기 전에는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도 몰랐고, 하나님이 계신지도 몰랐기 때문에 인간을 이 세상에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못살았고,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똑 부러지도록 자기 자신을 드리는 신앙의 결단이 부족했기 때문에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한 삶을 살아서 덧없는 인생을 흘려보냈습니다.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참사랑을 알고 난 다음에는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의 악함과 패역들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실을 하나님 앞에 드려 보지도 못한 채 우리 자신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은혜와 줄다리기 하는 동안에 신속하게 세월이 떠나가 버립니다. 그러면서 떠나가 버리는 세월을 보면서 도대체 이 세월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 왔으며 내 인생의 긴 날 중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날이 어디에 있는가 보는 거죠. 그러면서 어느 한 순간에 부쩍 늙어가는 자신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정말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시편에 보니까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그 영화는 그 풀에 꽃과 같도다.”· 그랬습니다. 풀은 오늘 무성한가 하면 얼마가 지나면 그 풀이 모두 가을이 와서 시들어 떨어지고 가을이 오기 전에 농부들이 논둑에서 그 풀을 베어 던져버리면 벤 풀이 마르는 것은 한나절이 걸리지 않습니다. 한나절이 지나기 전에 모두 말라비틀어지고, 2~3일이 지나면 청소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검불이 되어서 논둑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허공중에 흩어지는 것이 풀의 운명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 그것과 같고,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누리는 영화라고 하는 것은 그 풀끝에 매달린 꽃과 같으니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풀이라고 되어있는 이것은 아주 고급스러운 양난과 같은 그런 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서 같은 곳에 보면 이 풀이 하찌르 라고 되어 있는데 이 풀들은 그저 흔하게 이름도 없이 돋아나는 그런 흔히 볼 수 있는 풀들입니다. 그런 잡초와 같이 돋아난 이름 모를 풀들 위에 매달린 그 꽃은 사람들이 관상용으로도 쓰지 않습니다. 그냥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꽃이지 많은 사람들이 그 꽃을 보며 감탄하지도 않고, 그렇게 태어난 꽃잎은 어떤 경우에는 일생동안 단 한사람의 눈길도 단 한순간도 받아본 일 없이 생장하다가 허공중에 말라서 흩어져 버리는 것이 이 잡초 거기에 매달려 있는 꽃의 처지입니다
인간의 영화가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온갖 탐욕과 죄악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 심지어는 하나님을 알고 난 우리들조차도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이 꺾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 완고함과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집요한 불순종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더 많이 소유 하고, 더 많이 누리고자 하는 물질에 대한 탐욕과 하나님보다는 나 자신을 만족하게 하며 살고 싶어 하는 강한 욕망이 그 안에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엎어지고 넘어지면서도 이런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구하여야 할 기도 제목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런 욕심과 그리고 인간의 탐욕에 미혹되어서 우리의 인생의 진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그런 기도입니다 . 탐욕과 더러운 죄에 대한 욕심과 하나님보다 자기를 위하는 자아 숭배적인 사상이 사라진 그곳에 비로소 진실한 삶의 지혜가 보이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슬기로운 인생인지를 깨닫게 되는 각성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빠른 세월이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지난 한 해 새해를 맞으면서 방배동에서 신년 예배를 드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훌쩍 한해가 지나버렸고, 그리고 교회를 세운지가 엊그제 같고, 지금도 눈을 감으면 개척예배 드리는 그 순간에 지체들의 떠드는 소리 박수소리 찬송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데 벌써 8년 9년이라는 세월이 바람과 같이 흘러 버렸습니다. 지나간 날들만 그렇게 빨리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와 같은 속도로 지나가고 있고, 앞으로는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들이 정말 무엇을 붙들면서 살아야 할지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그 모든 날들은 풀과 같고, 그 인생 속에서 획득한 영화라고 하는 것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으니 시인이 이것을 말하는 것은 인생의 날들, 그리고 그 인생의 날들 동안에 우리들이 환호해야 하는 그 영화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날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 앞에 구하고 얼마나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정말 어리석고 비참한지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부분적으로 다 그런 시기를 경험하겠습니다마는, 나이가 빠르면 30대 후반에 올수 있지만, 늦으면 50쯤 돼서 올수도 있습니다. 아주 늦으면 60가까이 돼서도 온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면 어린 사람들이 사춘기를 경험한 것처럼 나이가 들면서 그런 비슷한 것을 경험하는데 틀린 차이점이 뭐냐면 앞에는 희망과 불안 이런 것들이 뒤엉킨 가운데 경험되는 젊은 날의 경험인데 반해서 후자는 허무, 그 다음에 낙담, 실망 이런 파괴적인 감정들이 밀려오는 것이죠. 전자도 자기의 신체의 변화를 자각하면서 일어나고 후자도 자기의 신체의 변화를 자각하면서 일어납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까 수염이 나기 시작하고, 그리고 몸에 털이 나기 시작하고,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고 ,육체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후자도 마찬가지로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니까 팍삭 늙었어요. 그리고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고, 그리고 골 깊게 패이기 시작하고, 젊은 날의 그 모습이 아니야. 거기서 허망하고....
그래서 제 아는 분들 가운데는 크리스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질병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을 여러 사람 만났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 이냐하면 인생자체가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가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잊어버리고 살아서 그런 거죠. 사실 있는데 항상 그것을 직시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걸 잊어버리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의 날이 풀과 같고 영화가 그 풀에 꽃과 같은 것을 기억하면서도 그런 것들 말고 불변하는 그 무엇을 가슴에 담아둘 수 있는 그런 세계를 갖고 있지 않으면 너나 할 것 없이 그런 낙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육체의 날이 풀과 같아서 그 허무를 느낀 사람들이 겨우 택한 것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영화를 택했다면 풀이 허무해서 꽃을 택한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꽃도 풀에 매달려 있으니 풀이 베어져 길가에 흩어지면 꽃의 영광도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요 우리의 육체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육체와 함께 모든 것이 잊혀지고 쇠하여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도다. 젊은 나이에 주님을 만나고 긴 세월동안 복음 사역에 헌신했고 그도 사람인지라 주님을 위해서 섬기며 산 날들은 아름다운 신앙의 날이었지만 오는 백발과 늙음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다가오는 백발, 그리고 물러가는 홍안을 무엇으로 잡아둘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후패해 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후패해 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났는데도 우리처럼 낙심하고 허무한 인생의 느낌 앞에서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그런 내면의 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속사람의 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얘기지요.
그래서 우리의 육체는 늙으라고 내버려 두고 우리의 영혼은 늙게 하지 말고 그 영혼을 잘 관리하고 보살펴서 마지막 날에는 우리의 육체의 이 초라한 껍질을 깨고 주님 앞으로 갈 때에는 정말 아름답게 가꾸어서 신부와 같이 단장한 속사람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그래서 우리 구주를 배울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그렇게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져서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날마다 그렇게 새로워지는 내면의 세계를 가져야 할 것에 대해서 성경은 오늘 말하기를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혼부터 영혼까지 이른다.”하는 거죠 이것이 뭐냐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삶. 육체는 늙고 그리고 그 영화는 이 세상에서 모두 베어진 풀에 매달린 꽃과 같이 말라서 흩어져도 이 세상의 어떤 낫으로도 베일 수 없는 세계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그 영혼의 인자하심, 그것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고 어떤 것으로 빼앗아 갈 수가 없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깊이 기억하고 그리고 우리들이 그것을 가슴에 아로새기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죠.
내년 한 해 에도 내년 한해에는 올해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올 해 성취하지 못했던 일들을 내년에는 성취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여러분들에게 기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자신이 변화되어 진실한 신자가 되고 싶다고 늘 눈물을 흘리는 경건한 소원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궁색한 월세방을 좀 편안한 전세로라도 옮겨가고 싶다고 하는 삶의 처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많은 소원들이 주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이루어져서 내년 한해에 기쁜 날이 여러분들에게 참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의 소원일 뿐이고 내년 한 해라고 해서 금년 한 해보다 저절로 더 살기 쉬워지고 새로 오는 한해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난 해 보다는 저절로 행복해질 것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라고 하는 모든 것이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사람됨에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우리가 새해를 접수하면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변화되었기 때문에 진동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안에 가졌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많이 받기 때문에 올 한해를 정복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어떻게 우리 앞에 다가오는 한해를 보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운 도우심이 없이는 새해의 한 해 동안의 풍랑을 우리들이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도 이미 항해해 본 인생의 바다를 노 저어 가지 않습니다. 언제나 새해가 주어지면 그 시간과 공간들은 미지의 땅입니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누가 살아보고 와서 2003년이 어땠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이 우리는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시간의 바다에 우리의 인생의 배를 띄웁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정말 하나님이 금년 한해도 우리의 인생을 도와주시면 우리가 승리하고 기쁨이 있을 것이고 주님이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고, 죄에 넘어지고 불순종에 뒹굴도록 우리를 방치하시면 우리의 인생이 정말 최악의 한해를 맞이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은 우리들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올 한 해 동안도 가장 간절히 구해야 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는 잊지 않고 그것을 기억해 주셔서 우리에게 선하게 갚으셔서 앞으로도 우리들이 이 세상의 환경에 매이지 않고 주님을 섬기며 옳게 살도록 도와주시고 때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부득이한 우리의 연약함을 인해서 넘어져서 실족할 때에도 한번의 잘못으로 우리의 인생을 끝장내지 마시고, 넘어진 어린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부모와 같이 우리를 인생의 넘어진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넘어졌기 때문에 더 불쌍히 여기tu서 우리에게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실 때 우리는 넘어져도 일어나고 쓰러져도 다시 달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우리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강퍅해져서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대들고 불순종하며 걸어가다가 큰 환란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우리들의 그 많은 악과 그리고 주님께 불순종 하는 일에 담대했던 철면피한 과거들을 보지마시고 지금 뼈저리게 지난날들을 회개하며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용서해 달라고 비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때에 애처롭게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뉘우치는 우리의 그 간구 때문에 예전에 우리가 주님을 거스리며 행했던 죄악이 주님의 마음에 생각나지 않고 그 아버지의 마음 우리를 향한 부성이 자극을 받아서 우리의 모든 과거를 깨끗이 용서해주고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주시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께 들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간단한 말로 하나님의 인자, 혹은 하나님의 자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내년 한 해도 우리를 호위하고 두른다면,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서, 고난의 파도도 넘고 역경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것입니다. 홍해 바다와 같은 난관 앞에서도, 기적을 볼 것이고 마라와 같이 쓴 물을 머금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불평대신 하나님께 노래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요. 하나님의 은혜.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새해 한 해 에는 여러분들이 이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은혜로 넘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그런 인자를 누구에게 베푸시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그런 인자의 은혜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하신다고, 불평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생을 다루시는 그 방식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을 합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잘못 살아도 형통하게 죄악 가운데 버려두시고, 하나님이 나만 집어내셔서 조목조목 나의 잘못을 따지고 나를 연단하신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 놓은 자식이 되시겠습니까. 얻어맞고라도 하나님이 새롭게 고쳐주시는 친 자식이 되고 싶으십니까.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삶의 초점을 바꾸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삶의 초점은 하나도 바꾸지 않고 교회 마당만 밟는 사람들의 그 삶을 보시면서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자식새끼 낳아서 길렀는데, 이놈들이 어버이날도 안 찾아오고, 자기 생일날에도 안 찾아오고 무슨 명절이 되었는데도 인사한번 하러 오는 적 없고 빈 말이라도 아버님 전상서 어머님께 편지 한 장 올리는 법 없고 괜히 해 보는 행동으로라도 전화 한 통 해서 날씨도 추운데 아버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런 염려 한 번 해주지 않는 자식들이 자기 돈 쓸 일 있을 때면 또박또박 나타나서 고지서를 내미는 그 자식들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부모로서 멸시 당한다, 라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들에게 정말 경배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하시지만, 동시에 가족이 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삶의 목표는 하나도 안 바꾸고 뇌물을 드리듯이 주일날 와서 예배 한 번 드리고 돌아가는 그런 신앙의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삶의 초점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한 번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이 나에게 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그 축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왜 2003년 한 해도 살아보려고 하느냐고 누가 물으면, 2002년까지 살아온 날들이 너무나 주님을 경외한 날들이 없었기 때문에 한 번 원 없이 주님을 공경해 보고 싶어서 새해에도 살아있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우리의 인생의 이유가 좀 바뀌어야 됩니다. 우리의 날들은 풀과 같고 그 육체의 영화는, 그 풀끝에 매달리는 풀꽃과 같은데 그런 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삶은 그렇게 바람이 불면 말라버리고 아무것도 그것을 기억해 주지 않는 잡초와 잡초 끝에 매달린 풀꽃과는 대조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말하기를 세상도 지나가고 그 정욕도 지나가되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는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내년 한 해에도 여러분들의 삶에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직장생활 하던 사람이 지리멸렬한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의욕에 차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고, 오랫동안 사업하던 사람들이 사업을 접고 직장에 취직할 수도 있습니다. 학교의 도서관을 바쁘게 오고가던 청년들이 이제 사회 초년생으로 발을 들여 놓을 수도 있고 처녀 총각으로 자유롭게 살았던 형제, 자매들이 선남, 선녀를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는 변화도 찾아올 것입니다. 어떤 변화가 찾아오던지 간에 그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지 않으면, 인생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풀끝에 매달린 꽃과 같은 영화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답고 언제까지 빛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겉 사람은 쇠하고,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어서 우리의 홍안을 빼앗기고 백발을 물려받는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정말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고만 있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헛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섬기며 살았던 성도의 일생은 하나님의 나라의 책에 모두 기록될 것이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주님을 섬기며 살기 위해서 흘렸던 눈물들은 주 앞에 서는 그 날에 면류관에 매달릴 찬란한 아름다운 보석 알맹이가 되어서 되돌아 올 것입니다. 더욱이 주님을 위해서 많은 땀을 흘리고 그리고 사명이 아니었더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십자가와 고난의 길을 걸어가며 무릎이 까지고 그리고 그 얼굴이 악마의 손톱자국으로 가득 하리만치 진리와 사명을 따라 살았던 성도들의 전투적인 삶은 하나님의 나라의 책에 아름다운 전사의 삶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피 묻은 전투복을 벗고 아름다운 세마포 옷을 입을 때에 그들은 비로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 인생 여정 끝내어 저 건너편에 이를 때
하늘 문 열고 말하리. 예수 인도 하셨네.
그 때에는 이 세상에 누렸던 많은 영화와 육체의 안일함. 세상에 속한 소유 그런 것들은, 모두 부끄러운 것이 될 것이고, 눈물을 흘리며 어두운 세상에서 빛 되신 주님 끌어안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라줘도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 우리 주님에게 단 한 순간이라도 기쁨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행하면 내가 무엇을 드리면, 내가 어떤 것을 위해서 살면, 그 분의 마음에 그런 기쁨이 넘칠까를 생각하며 경외하면서 살 때, 그 때 그 사람의 인생의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에는 우리들이 다른 것 다 잃어버려도, 하나는 꼭 손에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금년 한 해에도 사단은 끊임없이 역사해서 우리의 마음을 노략질 할 것이고 세상에는 풍랑과 파도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죄의 물결은 넘실거리고, 그리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할수록 믿는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마귀의 사자와 같이 우는 소리들은 우리의 삶의 현장 곳곳에서 들려올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보다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금년 한 해에 펼쳐진 날 중에 단 하루도 주님을 경외하며 살지 않는 날이 없도록 부족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드리면서, 그렇게 사랑받고 살아서 그래서 지난 날 동안 일생을 살아오면서 여러분이 불순종과 죄악으로 허물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게 그 분의 마음 기쁘게 해 드리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