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4-17)
오늘 이 열왕기하 오늘 읽어드린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어져서 잘 알다시피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나뉘어지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북왕국 이스라엘에 아합이라는 왕이 오므리 왕조에 등극을 하게 됩니다. 이 아합이라는 왕의 이름도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 아합보다는 그 부인이 우리에게 매우 유명합니다. 소위 얘기하는 이세벨이라고 하는 여인이죠. 여러분 이 아합이 다스리던 이 시대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대였습니다.
아주 재주가 많고 아주 특별한 그 지혜를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 속에서 공급을 받는 지혜가 아니라 순전히 인간의 머리를 굴리면서 그 인간의 머리로 짜낸 그러한 지혜였습니다. 이렇게 자기 지혜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이 사람이 다스리던 나라의 치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할 리가 없었죠. 많은 어려움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아합의 치세에는, 아합은 아주 세속적인 왕으로서 그 순전한 사기꾼적인 정치수완을 의지해서 나라를 다스리던 신앙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소망이 없는 시대에 더욱이 그 악한 어두움을 더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 하여 이세벨이라는 왕후였습니다. 태양 민족 출신으로서 이 이스라엘을 바알 종교로 선교하기 위해서 특별한 사명을 띠고 이 여인이 이 가나안 땅에 시집을 오게 된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 와서 하나님의 사람을 억압하고 그리고 바알 종교를 확산하는 일에 헌신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그 선지자 역사에서 유명한 엘리사와 엘리야라고 하는 그 능력의 종들을 하나님께서 이 역사에 보내신 겁니다. 세상이 어둡고 캄캄하면 캄캄할수록 하나님은 더 강력한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셔서 그 시대를 다스리고 어거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엘리야와 엘리사, 이 사람들을 보내심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는 여전히 악하고 어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나게 해 주는 도구가 있었는데 북방에 있는 아람이라고 하는 그런 군대였습니다. 나라였습니다. 오늘도 아람이라고 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치려고 덤벼드는데 이상하게 침실에서 모여서 왕이 작전을 짜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치면은 이상하게 도대체 누가 저들과 내통을 했는지 가는 길목에 딱 도사리고 있다고 내복을 해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공격을 당하니까 이제 아람왕이 소리를 지르며 말하기를 “도대체 첩자가 어느 놈인지 찾아내라” 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부하가 말하기를 “왕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 첩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고 하는 아주 특별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데 왕, 당신이 침실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중얼 중얼 거리는 것도 다 들을 수 있는 신통한 영역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그놈을 먼저 잡아야지만 우리가 이스라엘을 치겠구나! 그 놈이 어디에 있느냐?” “도단이라고 하는 작은 성에 있습니다.” “그래! 거기로 가자!” 그러면서 밤중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도단 성을 겹겹이 에워쌌습니다. 겹겹이 에워싸서 결국은 이 성을 공략하고 마지막에는 엘리사를 잡아내서 죽여 버리고 이제 이스라엘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근데 이 성에는 오늘 두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똑같은 아람 군대의 공격을 받는 그러한 같은 상황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여주는 지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 소위 엘리사의 사환과 그리고 선지자 엘리사 이 두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이 이 큰 사건에 직면하기 전에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들이 밤에 와서 그 성을 에워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혀 그런 적군의 침입이 없을 것 같던 비교적 안전한 성 도단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수많은 아람 나라의 말과 병거와 군대가 겹겹이 에워싸서 창과 활을 겨누고 칼을 빼들고 이제 성안에 들어있는 사람을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성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는 한 밤중에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하나님의 사람을 붙잡고자 하는 이 악한 아람나라의 군대의 공략이 모두 사람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그 밤에 이러한 철저한 준비되고 그리고 오직 이 사람들을 공략하고 이들을 죽이기 위한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말이 동원되고 병거가 동원되고 수많은 군사들이 무장한 가운데 이 성을 향하여 준비되어 성을 에워싸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보십시오. 이 모든 일들은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그저 덩기 덩기 살아가고 하루 먹고 마시고 즐겁고 그러면서 별 생각없이 인생을 살아 가다고 어느 날 아침에 우리는 뜻밖에 환난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서 자기의 인생을 바라보니까 자기의 인생이 참 위기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평화롭게 살던 그 이전의 그 모든 평안은 깨어지고 어느 덧 자기의 인생이 커다란 환난과 그리고 큰 어려움에 직면해서 큰 인생의 파도 앞에 아무 힘없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에 우리는 늘 말하기를 문득 우리가 환난을 만난 것 같다. 뜻밖에 우리가 재앙을 만난 것 같고 우리 앞에 부딪치고 있는 인생의 이 힘겹고 어려운 문제들이 오늘 갑자기 내 앞에 생겼고 그리고 이유없이 이 큰 어려움들이 내 인생에 미친 것 같지만 그러나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아람의 군대가 그 선지자의 사환이 아침에 나와서 성 밖을 바라볼 때에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이 일들이 철저하게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꼼꼼한 계획과 아주 착실한 준비 속에서 성안에 있는 엘리사와 엘리사의 사환을 멸하고자 하는 이 시도가 차근차근히 온 밤에 걸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닥친 환난도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닥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친 커다란 시련과 그리고 어려움도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닥친 것이 아닙니다. 서서히 우리에게는 인생의 어두운 밤이 준비되었고 그리고 우리가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바른 것을 바르게 보지 못하게 참된 것을 참되게 여기지 못하는 이러한 신앙적인 흑암이 찾아올 때에 사단의 세력들은 그 어두움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파멸하고 우리를 신앙의 길에서 추락시키고자 하는 아주 치밀하고 꼼꼼한 시도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무도 이 밤에 이렇게 많은 말과 이렇게 많은 병거와 이렇게 많은 군사가 한 사람 엘리사의 목숨을 노리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되고 있음을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했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리들이 신앙적인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지금은 비록 그 어두움 속에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지라도 그 어둠 속에서 우리의 대적들은 우리의 영혼을 파멸하고 우리의 인생을 넘어뜨리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에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고 천사를 모아서 그리고 그들을 땅에 파송하시면서 낱낱이 이제 애굽에 난 모든 처음 난 첫 태생들을 치고 멸하기 위한 그 지시를 하달하신 것처럼 이렇게 인생의 캄캄한 밤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이 도단 성에 있는 엘리사와 그리고 이 사환 바로 이렇게 아람 군대에 의해서 겹겹이 둘러싸인 일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일들이 밤에 이루어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살고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그러한 어두움을 지날 때에 말과 병거와 수많은 악한 원수들이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신앙생활을 공략하기 위해서 에워싸고 있을 때에 인생과 신앙에 있어서 평안한 밤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나 밝은 낮에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며 그가 자기에게 주신 양식인 하나님의 일을 행하며 그와 더불어 기쁨으로 살아가는 이러한 한낮과 같은 삶 속에서만 참된 평안을 누릴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그 겹겹의 시련들과 그리고 여러분들을 에워싸고 있는 그 철통과 같은 말과 병거와 그리고 군사들로 무장한 그 모든 악한 원수들의 대적들을 여러분들이 보고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은 그 모든 일들이 여러분의 인생의 밤에 이루어졌음을 시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밤에 이러한 많은 악한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서 우리의 믿음을 파멸하고 우리의 인생을 향하여 도전해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눈을 한낱 밝은 빛 가운데 행하며 다시는 우리의 신앙과 인생에 이러한 밤이 깃들어서 악한 자들의 공략의 목표가 우리의 인생이 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그 이튿날 아침에 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수종을 드는 그 사환이 일찍 일어나서 그래서 부지런히 성을 둘러보았습니다. 성밖을 바라보면서 그가 할 말을 잃어버리면서 입을 벌렸습니다. 그리고 한 말이 “아아, 우리가 도대체 어찌하여야 합니까? 아아,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무엇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눈을 뜨고 성밖을 바라보니 중무장한 아람의 군대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서 물 샐 틈 없는 포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그 사이를 빠져 나가서 산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 때에 이 사람이 어찌 하오리이까? 탄식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6절에 보니까 이 사람은 선지자의 생도였습니다. 앞으로 선지자가 될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었든 모양입니다. 이렇게 생도가 되어서 선지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이미 유명하고 훌륭한 엘리사를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엘리사를 섬기는 그 사람이 그리고 명색이 선지자의 생도이던 이 사람이 눈을 뜨고 그 성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아람의 군대를 보면서 즉시 부르짖었던 함성이 아아, 우리가 어찌하오리이까? 그 절망의 탄식이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는 대신에 아람의 철통과 같은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고 있는 아람의 군대가 보였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도움이 보이는 대신에 이 악한 아람의 군대의 번쩍이는 창과 뾰족한 활이 자기들의 심장을 향하여 겨누어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은 크게 낙망하고 낙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낙망하고 낙심을 하고 있었던 이 엘리사 선지자의 수종 들던 이 사환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사람은 지금 자기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성과 군대요 그리고 무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고 하나님을 위해서 말씀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그 땅에 펴기 위해 특별히 보냄을 받았던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이 살아가고 있던 이 엘리사의 사환이 그는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아직 엘리야가 아직 일찍 일어나지도 않은 시간에 먼저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일찍이 일어나 나가서 보았다고 말합니다. 일찍 일어나서 그래서 밖으로 나아가서 성에 무슨 이상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는 면밀하고 부지런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면밀하고 부지런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부지런한 것이 그가 그렇게 부지런하게 섬기는 것이 그의 믿음이 없는 것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습니다. 일찍 일어났으나 그가 본 것은 아람의 군대요 아람의 군대를 보았으나 그 입에서 일찍 일어났으나 그 입에서 터져 나와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슬픈 탄식과 그리고 절망에 울부짖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도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문득 눈을 뜨며 이렇게 우리를 둘러싸는 환난과 그리고 그 커다란 위협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로 하여금 어찌 하리이까? 부르짖게 만드는 것은 바로 절망이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는 부지런한 것도 도움이 되지 않고 성실한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이른 아침 일어나서 성을 돌아보고 엘리사의 주변을 돌아보면서 섬기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은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사환의 모습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소유하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세상 속에서 시련을 만나고 그 시련 속에서 두려워하는 이러한 세상 사람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는 쓰지만은 그러나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그것을 굳게 믿고 주님이 우리와 어떤 관계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붙드는지를 굳게 믿는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엘리사의 수종을 들던 이 사환은 이렇게 지극히 영적인 권능을 소유하고 있었던 탁월한 영적인 사람 엘리사의 수종을 들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는 이렇게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으며 하나님의 힘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을 펼쳐 보이는 사람이었지만은 그 큰 능력과 그리고 말씀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원하고 손을 펴는 이적으로 세상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던 이 스승 엘리사의 생생한 신앙의 역사와 영적인 위대한 사역을 바라보면서도 오늘 아람의 군대에게 둘려 싸였을 때에 그의 믿음은 간곳 없고 주저앉아서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탄식하며 부르짖는 이러한 처지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갖는 것이지 이적을 많이 보는 것이 아니에요. 이적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함입니다. 사람들이 이적을 바라보고 그 이적 속에서 믿음을 섭취하고 그 신앙이 믿던 바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으로 말미암아 견고해지는 이러한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적은 우리에게 의미가 별로 없는 것이지요. 마치 예루살렘에서 헤롯이 예수를 잡아다놓고 무슨 요술을 행하는가 보자고 하되 예수께서 아무 일도 행하지 아니하시니 때려서 빌라도에게 다시 보내니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엘리사의 사환은 오늘 어찌 하리이까? 말하면서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합니다. 우리가... 마치 절망하고 있는 자기의 절망에 엘리사 선지자도 동의해 주고 있는 것처럼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환이 성을 에워싸고 있는 아람의 말과 병거와 군사들을 보자 선지자여 그 분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능력을 받고 이제껏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면 이스라엘 위에 위대한 이적을 행하면서 말씀을 증거하는 능력있는 선지자의 삶을 살아온 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한 사람의 믿음 없음은 많은 사람들을 또한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불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에 우리 때문에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하게 되고 우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사람들이 낙심하고 패배하고 후회할 수밖에 없는 그것이 자기의 형편이라고 하는 이러한 패배를 안겨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엘리사는 이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호들갑을 떨면서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말할 때에 엘리사가 나타나서 첫 번째 한 말은 두려워하지 말라 이 사람은 아람 군대를 보기도 전에 오히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무엇이 엘리사로 하여금 이 수많은 병거들이 둘러싸서 수많은 말이 둘러싸고 군사들이 에워싸서 활을 겨누고 창을 겨누며 성을 향하여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이 위기의 순간에 두려워하지 말라 말할 수 있었습니까? 그 사람에게는 무엇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사환에게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엘리사에게 있었다고 하는 것을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무엇입니까?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아람 군대의 말의 발목을 꺾을 수 있는 칼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수많은 활을 막을 수 있는 그 방패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는 그 날라 오는 수많은 창을 막아 설 수 있는 어떤 무력이 있었기 때문에 너희가, 네가 두려워하지 말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에게는 비록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와 그리고 적과 대적하여 싸울 수 있는 창칼이 그에게는 없었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그 무엇이 있었으니 이것은 바로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그 분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오직 그 믿음이 그로 하여금 염려하지 말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도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이렇게 사환이 자기가 있는 성을 둘러싸고 있는 그 수많은 병거들과 군사와 말을 보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그거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언제든지 그들을 멸할 수 있는 그러한 권세를 가진 사람이 그런 말을 해야지만 말빨이 서지를 않겠습니까? 그러나 선지자에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 이들이 노리던 것은 엘리사의 사환이 아니라 바로 엘리사 바로 그의 목숨이었습니다. 그들이 활을 겨누고 창을 겨누고 있는 것은 이 사환을 향해서가 아니라 엘리사의 심장을 향해서 겨누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엘리사를 붙잡아 엘리사를 죽이고야 말리라는 결의에 불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선지자가 사환에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바울을 봅니다. 바울이 로마로 호송당하는 가운데 그 배를 타고 유라굴로 라고 하는 폭풍을 지나게 되지 않습니까? 유라굴로 라고 하는 폭풍을 지나면서 가게 될 때에 그 많은 군인들과 함께 그 바다를 항해 할 때에 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풍랑을 만나게 되니까 쌀 뭐 양식과 모든 집기를 다 버리고 그래도 마지막에는 풍랑이 일어서 배가 파산되는 직전까지 오게 되는데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뭐라고 말합니까? 선장과 그리고 거기의 선원들과 모든 그 군사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에 손발이 묶여 있는 그 포로인 바울이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엊저녁에 내게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큰 풍랑을 만나 고생을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 누구도 목숨은 상하지 않을 것이다 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너희는 안심하라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 것입니까? 포로가 되어서 군사들에게 끌려가는 중에 손발이 묶인 채 이리 뒹글며 저리 뒹글며 제복을 입고 배를 항해하고 그리고 그 죄수들을 신문하고 호송하고 있는 그 늠름한 병사들을 향해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 모든 환난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을 안심시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누리면서 이 어두운 폭풍 속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는 이 끔찍한 시련과 이 끔찍한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입고 그에게로 특별한 은혜를 입고 이 사환에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이러한 힘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여러분 주위에 상처입고 그 다음에 시련을 당하고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자유와 위로와 평안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믿음, 그러한 신앙을 소유하고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지는 그 큰 은혜를 매일 힘입으면서 매일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 속에 그 생명을 힘입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환난보다 더 큰 하나님의 능력과 위기보다 더 권세가 있는 하나님의 손에 볼 수 있는 믿음이 그들에게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큰 소리를 쳐도 그 큰 소리가 근거가 없으면 쉰 소리가 되고 맙니다. 만약에 엘리사가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했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하나의 인간의 베짱이었다면 그 베짱이 결코 아람 군대의 손에서 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베짱이나 이것은 자기를 믿는 자부심이 아니라 그에게는 이 사환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엘리사가 눈을 들어 밖을 쫙 내다보니 이 사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그림이 보였습니다. 아람 군대는 세 겹으로 둘러쌌는데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는 열 겹 스무 겹으로 아람 군대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아람 군대는 선지자가 있는 도단 성을 포위했다고 믿었으나 그러나 실상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에 도망할 틈도 남기지 못한 채 철통같이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바둑을 두면서 한 점을 잡으려다가 자기의 대마가 죽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엘리사 한 사람을 이제 완전히 포위했다라고 그렇게 판단했을 때 사실은 자신이 더 철저하게 포위가 되어서 가운데서는 능력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로부터 공격을 받고 밖으로는 하나님의 군대로부터 공격을 받는 선지자와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에 포위가 된 이상한 작전 지도가 보여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작전 지도는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는 이 엘리사에게만 보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엘리사가 선지자에게 두려워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적인 베짱이 아니었습니다. 될 대로 되라지, 한번 해볼 테면 해 보라지, 밀어부쳐 봐야지, 하는 인간적인 베짱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베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베짱이 없는 사람을 훨씬 더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베짱이 많은 사람은 99.9%는 교만하고 짐승과 같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두렵고 떨리고 그리고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이러한 겸비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주님의 도움에 힘입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지자가 바로 이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환난에 싸였으나 그 환난에 둘러싸고 있는 큰 아람나라의 병거를 둘러싸고 있는 천국의 병거가 아람나라의 그 후즐근한 오합지졸을 둘러싸고 있는 그 능력의 천군천사들을 봅니다. 이 세상 그저 잘 달려봐야 한 시간에 100km도 못 가는 아람나라의 말이 아니라 하늘을 가르며 이 땅으로 내려와 언제든지 달릴 수 있는 천국의 말고 병거와 온 통 수십 겹으로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오직 누구만 바라볼 수 있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지시를 받으면서 엘리사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이 사환이 바라보았던 이 세상과 자기의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세상 사람들의 눈이며 신앙을 가졌어도 육신적인 신앙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면 이 엘리사가 바라보았던 이 시각이야말로 참으로 깨어있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믿음의 시각인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아람 군대의 위협 앞에서 싸워 볼 힘과 용기도 내지 못하고 백기를 들고 성밖으로 항복을 하려 나가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람의 군대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성을 에워싸고 한 밤중에 여러분들을 에워쌈으로 아침에 문득 일어날 때에 병거들의 덜거덕거리는 소리와 말들의 달리는 소리와 수많은 적군들의 함성 지르는 소리를 여러분들로 하여금 듣게 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고는 낙망하고 주저앉으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에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정말 전심으로 하나님을 위기 속에서도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이 그렇게 깨어서 지내지 못했던 이 어두운 인생의 밤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이 모든 곤고하고 위기로 몰고 갔던 이 모든 일들의 우환이 이루어졌고 그리고 그 일들로 말미암아 문득 이른 아침에 이러한 환난과 시련을 만나게 되었음을 알게 함으로 ( )
하나님이 정말 하나님이 마음을 안 먹으니까 그렇지 마음을 먹으면 못할게 무엇이 있습니까? 그게 여러분의 아주 단순한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 해요. 그리고 그것을 붙잡으면 우리가 시련 속에서도 헤어나 올 수 있는 밧줄을 붙잡는 거에요. 다시 반복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먹으시면 할 수 있으세요. 만약에 하나님이 마음을 먹어도 못하시는 일이 있다면 우리가 그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할 수 가 있어요? 나는 신앙을 버려요. 하나님이 할려고 하는데 하실 수가 없다. 그럴수가 있습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위기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 시련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것이 바로 신앙이 주는 실제적인 유익이 아니에요? 보십시오. 사람들은 아람 나라와 왕의 저주와 그리고 소리치고 있는 군대들을 향하여 이를 갈다고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은 그런 심정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요. 그러나 보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람 나라의 군대를 보면서 성을 둘러싸심으로 말미암아서 이 육신의 시각으로 밖에는 자기의 인생을 바라볼 줄 모르는 이 엘리사의 사환과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영적인 엘리사가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그분과의 교통을 누리면서 살아가지 못할 때에 우리들이 받게 되는 어려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시련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은 반드시 시련을 만나게 되었어요. 자기의 죄 때문에, 아니면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거에요. 큰 시련을 만나게 되는 거에요. 그리고 그 시련 속에서 우리를 하나님을 더 깊이 배우게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늘 관심은 시련과 환난이 아니라 어떻게 그 시련과 환난 속에서도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시련 속에 들으면서 가는 거에요. 귀를 기울이고 시련 가운데 있을 때마다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보세요. 훅.....콱,... 파도가 치는 소리에요. 파도가 높이 칠 때는 5, 6m 10m 15m까지 광풍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그 커다란 배가 낙엽처럼 흔들리면서 때로는 파도가 때려서 쇠로 만든 배가 깨지기도 합니다. 엄청난 파도가 치면 우리는 그 배의 앞머리에 서서 그 자기 인생 앞에서 춤추듯이 밀어닥치고 있는 수많은 인생의 시련의 파도가 그 하늘 꼭대기까지 치솟았다가 물 아래로 떨어지면서 부딪치는 그 굉음 속에서 우리는 질리게 되요. 마치 저 멀리 밀려오는 파도 위에 굴려오고 있는 수많은 흰 거품들이 죽음의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고 닥아오고 있는 죽음의 사자들이 흰 이빨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나의 손이 너를 붙들고 나 여호와의 의로운 손이 너를 지키시리라.
한때 저는 아주 어렸을 때에 그 인생의 시련을 당할 때 그 그림 한 장을 참 좋아햇습니다. 지금은 유치한 것 같아서 안 가지고 있는데. 그 파도가 막 치는 바다를 어떤 청년이 키를 잡고 항해 해 나가는데 예수닙이 이 쪽에서 왼손으로 어깨를 딱 잡으시고 그리고 손을 내밀면서 저쪽으로 항진을 계속하라는 그 그림이었습니다. 뭐 조잡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지만은 한때 그 그림을 볼 적마다 그 밑에 써져있는 오늘 읽어 드린 그 시편 구절을 적어 놓은 것을 보면서 힘을 얻곤 했던 기억이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 시련과 커다란 파도와 그리고 인생의 위기가 닥칠 때에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람군대들이에요. 왜 그래요. 이렇게 긴 인생의 밤을 지내면서 그 밤을 통해서 철저하게 악한 것들이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인생에 도전하기 위해서 해하려고 하는 위기와 시련을 가져다주었을 때에 우리는 육신의 눈만 발달을 하였지 영적인 눈들이 거의 쇠하여진 상황이에요. 이런 시련을 만나게 될 때에 그 때에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원수들이 시련과 만나 상처를 주는 것이에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시련과 어려움을 만날 때에는 여러분 한 번 그 시련을 깊이 응시해 보십시오. 거기에서 인생을 헤어날 길이 있습니까? 환난이 오되 하나가 아니라 파도처럼 계속 밀려올 때 헤어날 길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아무리 그 파도를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그 파도 속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도울 수 있는 힘은 그 파도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나와서 우리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을 여십시오. 위를 바라보십시오. 오늘 이 엘리사 선지자는 이러한 커다란 시련은 시련이 아닐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치 아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얘야,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말하는지를 아니?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저희와 함께 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단다. 그렇게 말을 해도 이 사환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때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여호와여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까 눈에 있는 한 껍질을 딱 벗기시니까 이 사환의 눈에도 엘리사가 보는 그것을 딱 보였는데 바로 이 도단 성을 둘러싼 아람의 수많은 군대들 주위를 에워싸고 하나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수 백배의 군사들이 되는 그 엄청난 하늘의 군대들이 그 눈에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요? 결국 인생의 커다란 시련과 환난에 직면했을 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부지런해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은 그러나 오늘 부지런한 것도 복이 별로 안되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남보다 한 발 더 실망한 것뿐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죄악의 잠을 잘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러한 시련을 만났을 때에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우리의 인생의 시련과 환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한 번 바꿔 보는 거에요. 그래서 육신의 눈에서 믿음의 눈으로 육체의 안목에서 영적인 안목으로 자기의 시련과 환난을 바라 볼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해요. 그것이 중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우리가 참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누구든지 시험을 만나거든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누구든지 시험을 만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지혜를 구하라. 그 지혜가 머릿속에서 짜낸 공교한 인간의 방책이나 술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런 지혜를 보고, 이런 지혜, 엘리사의 수종 드는 자가 볼 수 없었던 그 장면을 영안이 열리자 보게 되었던 것처럼 이렇게 육신 속에 다가오는 육체적인 환난과 이 인생에서의 위기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그리고 그 위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참으로 보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이런 지혜 이것을 하나님이 가지라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먹으신 모든 것을 행 할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수많은 아람 나라의 군대들이 밤에 와서 겹겹이 에워싸는 것을 엘리사도 못 봤고 엘리사의 사환도 못 봤고 아무도 못 봤습니다. 그러나 누구는 보셨습니까? 하나님은 보셨어요. 그 때에 하나님이 당신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아침에 일어나서 성을 에워싸고 있는 이 아람의 군대를 바라보면서 아,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이 말을 하게 되는 것을 주님이 원하셨습니까? 아, 천국이다 주님이 그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밤에 아람 군대가 도단을 에워싸고 그 아침에 선지자와 선지자의 사환이 일어나서 밖을 볼 때에 그 아람 군대들이 둘러싸고 위험에 찬 그러한 함성으로 도단을 향하여 쳐들어온 장면을 보게 만드신 것 이유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는 이렇게 우리를 둘러싼 위기가 심각하고 이렇게 나의 인생을 둘러 싼 시련이 막중함으로 지금 나에게는 보통이 아니라 특별한 하나님의 능력과 주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백을 하면서 그러한 특별한 구원을 청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매어달리는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평소에 하던 대로 한 것입니다. 두려워서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는 이 사환을 향하여 뭐라고 했습니까? 얘야, 내가 기도를 해 주마, 기도를 하자, 그리고 기도를 하매 영안이 보여서 이 도단성을 에워싼 그 악한 아람 군대를 주위에 진 치고 수많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시련의 때를 지나게 하시고 위기의 때를 지나게 하실 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이정도의 시련쯤은 내가 넉근히 이길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거기 가만히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얼마나 잘하나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주님이 뭐라 하시겠어요. 환난이 심하고 위기가 가득할 때 수많은 말과 병거와 군사들이 자기의 인생을 에워싸고 공략할 때 그러한 위기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여, 우리에게는 특별한 하나님의 군대가 필요하옵나이다. 특별한 하나님의 구원의 군대가 우리에게 요청되옵나이다. 그러면 특별한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은 특별히 구원을 요청해야 되요. 여러분 적군이 쳐들어와서 나라가 전부다 함락되어서 죽게 되었는데 언제 들어갈지 모르는 편지 한 장 띄우면서 될 수 있으면 오고 할 수 없으면 할 수 없고 그렇게 청원문서를 넣어가지고 상대방에서 원조를 해 주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상황에 처하였을 때 장군들은 혈서를 써서 그것을 본국에 보내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마다않고 자기의 본부로 달려와서 위기에 처한 자들을 구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원하는 도움이 다급하니까 특별하니까 하나님 앞에 특별히 매달리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이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성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시련이 와도 어려운 상황을 아무리 되씹고 곱씹어 보아도 원망스러운 것은 세상과 자기 팔자와 그리고 사람밖에는 없어요. 그러한 것들을 과감히 벗어 버리고 하나님은 원하시면 하실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주께 부르짖고 주 앞에 도움을 청하면 주님은 이 도단 성에 하늘의 군대를 내려 보내신 하나님이 오늘 도단성과 같은 것에 둘러싸여 있는 나의 인생이 그리고 아람 군대와 같은 수많은 시련에 둘러싸여 있는 나의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이여 구원의 군대를 보내시사 이들을 부끄럽게 하시고ㅓ 주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주시는 기회로 삼아서 오히려 환난 속에서 더 큰 환난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안심하라고 위로하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