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바라는 자의 승리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미가서 7장 7,8절 말씀)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명절기간에도 주님위해 사랑해주시고 오늘 이처럼 또한 금요일이 되어서 주님 앞에 우리들을 불러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셔서 우리의 삶의 지혜와 그리고 주님께 드리고자 하는 거룩한 사랑을 새롭게 하시옵서. 힘이 없는 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자기를 이길 수없는 자들에게는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자라고 해서 넘어지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라고 해서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청교도가 아주 가슴에 와 닿는 말을 하나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는 죄가 없는 하나님의 한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이 없었던 아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슨뜻 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죄인인데 죄 없으신 분은 한분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슬픔이 없는 아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조차도 슬픔이 있는 생애를 사셨다 이거죠.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넘어지고 혹은 우리의 죄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또 우리가 연약해서 넘어지는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 경우에는 이 두 가지가 결합이 되어서 결국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거죠. 근데 오늘 여기서 미가서 선지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엎드려 내 대적이여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나는 엎드러지지만 다시 일어난다. 두고 봐라. 엎드러진다. 그러나 나는 다시 일어난다, ’
(예화) 저는 가끔 올림픽 같은데서 보면 나오지만 그 한번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그 몇 해 동안을 제때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오직 그 한번을 위해서 몇 해 동안을 몸부림을 치면서 노력을 했는데 그만 달리다가 그 위에서 넘어지는 것을 봅니다. 안타깝습니다. 내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다시 일어나 달릴 때 그 사람이 승리하지 못했지만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받습니다.
제가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잠시 걸려서 넘어지는 것과 아예 주저앉는 있는 것과 등 돌리고 반대편으로 가는 것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미가 선지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자. 잠시 네가 승리 하는 것과 같아서 환호성을 보내지만 나는 넘어진다, 나는 엎드려졌다. 그러나 영원히 엎드려지지도 않고 나는 반드시 일어선다. 우리 신앙의 사람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넘어지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넘어지는 걸 어떡합니까?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넘어지지 말았어야죠. 그러나 넘어졌습니다. 손해를 봤죠. 그런데 거기서 잃어버린 것들만 생각하고 손해를 생각하고 있으면 더 커다란 손해가 생겨나는 거를 어떻게 합니까? 넘어지지 말았어야 했죠.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했죠. 그런데 일어났습니다. 넘어졌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이제 그가 이전에 자기가 겪었던 그 실패를 가장 최소화 하고 또 심지어는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엎드러졌으나 다시 일어날 것이요. 일어나는 것밖에는 나에게 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실패 속에서 자기연민에 빠지게 하 것은 성령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시키는 것입니다. 실패해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이 여겨주실 때 소망이 있는 것이지, 자기가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주님을 향해서 불타는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향해 불붙는 열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자기를 아랑곳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충성된 삶을 살도록 채찍질을 해서 어떻게 보면 학대하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만이 충성스런 생애를 살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엎드러지지 말았어야죠. 그러나 엎드러졌을 때 나는 반드시 일어서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그렇게 일어설 수 있는 성도들 되길 바랍니다. 거기 오래 엎드러져 있으면 이제는 말이죠. 그냥 엎드러져 있으면 어떤 일이 생기냐면 비유로 말하자면 이거 아니예요?
(예화) 애들이 반바지를 입고 그냥 뛰어다니다가 그러다 운동장에서 엎드러져서 쭉 무릎이 깝니다. 금방 새빨갛게 까지고 모래가 박힙니다. 수돗가에 가서 씻긴 씻지만 피가 줄줄 흐릅니다. 그래도 말이죠. 소독해주고 하룻저녁 자고나면 꾸덕꾸덕하게 말라버립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더러운 손으로 만지고 오물이 들어가면 곪기 시작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그러니까 엎드러진 그곳에서 그 즉시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왜 넘어졌던 간에 부패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넘어져선 안 되죠. 즉시 일어나야 되죠.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 그렇게 말합니다. ‘엎드러졌으나 날인하여 기뻐하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곧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이런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두 번째 말합니다.
어두움 가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될 것이라. 이건 신앙생활을 해나가거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 바를 모를 때 그런 캄캄한 밤 그것을 얘기하는 것이죠. (예화) 여러분 옛날에는 밤바다를 항해하던 배들이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은대로 돛을 달고 그리고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가지 않았습니까? 가는 방향이 자기하고 원하지 않으면 방향을 바꾸곤 했죠. 바람이 불 때까지 노를 저어 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정말 나침반도 없던 시대는 유일한 항해 잡이는 하늘의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그 별빛을 보고 그 별빛의 인도를 받으며 갔습니다. 구름이 가리고 별빛이 보이지 않은 날은 정말 방향을 잡을 수 없었겠죠. 망망대해에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때가 온다는 겁니다.
이런 때가 올 때 그 때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입니다. 그 빛이 우리에게 비춰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 때 그 때 우리는 안전한 포구에 도달할 수 있잖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런 빛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많은 빛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캄캄 주차장 안에서 내 자동차도 분간하기 어려워 간신히 찾을 때는 찬란한 빛이 아니라 실낱같은 빛 하나 필요해요. 왜요? 열쇠 구멍 찾기 위해서 우리가 너무 캄캄한 가운데 있을 때에 정말 하나님의 한줄기 빛이 우리 앞에 비추면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붙들고 걸어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인도가 되고 우리의 도우심이 되고 우리의 능력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성경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에게 이 미가 선지자가 어떠한 마음을 가졌을 때 이런 소망, 즉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나고 내가 흑암 속에 들어갔으나 거기서도 여호와의 진리의 빛이 나를 인도하리라고 하는 이런 소망의 불붙을 수 있었던 때에 이 선지자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 이었을까요? 오늘날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본다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우러러보고 여호와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넘어져도 일어날 소망이 있고 어둠가운데 들어서서도 결국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실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결국은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우리 인류 전체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번 보셨습니까? (예화) 큰 소 500kg가 넘게 나가는 어마어마한 커다란 소가 몇 백Kg가 나가는 큰 소가 조그만 소모는 목동 손에 이끌려서 순순히 따라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코에 꼈잖아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모든 우리의 육체 우리의 지체 우리 몸에 있는 모든 생각이 다 지 갈 때로 갈려고 하지. 하나님께 순종하며 갈려고 합니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때가 얼마나 드문지 여러분 알죠?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의 육체에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속에 있는 모든 지체와 생각 한번 내버려두면 어떻게 됩니까. 온통 자기 뜻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명절이 다가와서 며칠 기도에 소홀하고 나면 마음이 메마릅니다. 이것저것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을 고삐 꿰어서 끌고 가지 않으면 말이죠. 우리들이 감당할 수 없다는 거예요. 뭘? 우리자신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게 고삐 꿰어서 끌고 가는 게 뭐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주님 바라보고 사는 거죠.. 죄가 유혹을 받을 때에도 주님 바라보고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주님이 죄를 위해 죽으시사 이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구하신 이 육체로 범죄 하겠는가? 그래서 유혹으로 치더라도 요구함은 우리의 육체도 고삐 뀝니다. 게으르게 살려고 하는 우리의 육체가 우리의 영혼을 좀먹지 않습니까? 우리의 영적인 생활을 파괴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죽도록 고생하며 사시는 예수그리스도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사시는 그분을 봅니다. 게으름이 없이 성실하게 사셨고 몸과 마음을 받쳐 주님을 위해 살고 우리를 위해 사셨던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던 그분의 고난의 넘치는 생애를 압니다. 계속 우리는 안위를 따르는 대신 오히려 안위하는 삶을 미워하고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고생하면서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도록 우리자신을 타이르고 채찍질합니다. 그래서 고삐에 뀁니다. 이런 식으로 불법하게 살려고 하는 우리 자신도 주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쫓아 살도록 고삐를 뀁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고 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 한분이 임관 하시는 대로 끌려가면 됩니다.
(예화) 저는 취미생활이라는 것을 이다음에 한번해보고 싶은데 리모콘으로 날아다니는 모형비행기를 조정해보고 싶습니다. 목사님 애들같이 뭡니까. 아닙니다. 한강고수부지에 한번 나가 봤더니 머리 하얀 할아버지부터 애들까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더군요. 비행기 모양도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능히 실을 수 있을 정도로 꽤 큰 것부터 20c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것까지 모양도 전투기, 여객기, 헬기, 하여튼 골고루 있습니다. 그래서 수직으로 이착륙이 되더라구요. 그 헬기가. 거기다 모터를 달아가지고 거기다 특수기능을 집어넣고 리모콘으로 조정하는데 이게 옛날에는 줄로 달아서 돌렸는데 그게 아니라, 반경 1km내에서 조정이 된답니다. 1km, 1km 즉, 2km죠, 2km짜리 큰 원 안에서는 다 통제가 되는 거죠. 어쨌든 그 날아다니는 소리도 굉장히 우렁찹니다. 그러면서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커다란 비행긴데 꽤 멀리 날아서 조그만 점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리모콘 하나로 컨트롤 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만드는 기계도 제대로 과학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면 주군의 손에 있어서 통제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고 그리고 기본적으로 우리들의 모든 지체의 잘못된 욕망을 한 코에 꿰어서 끌고 갈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되면 하나님이 지시에 움직여 간다 말이에요. 하나님이 어떤 길로 인도하시겠어요. 안전하고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길로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 이 외에 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 이외에 누가 순종하는 자들이 돼주시는 여호와의 상급에 희망을 걸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안 그래요? 당연하잖아요. 그럼 무슨 문제로 말미암아서 하여튼 통제를 벗어나는 때가 있단 말이에요. 50만원 100만원 250만원씩 물체가 곤두박질치는 거요, 박살나는 거요.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로 주님을 바라는 마음 이게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모두 코 꿰어서 끌고 갈 수 있는 그러한 말하자면 관건이 되었단 말씀입니다. 그렇게 주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 슬픈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많이 이세상의 복을 받아도 고난이 와도 시시때때로 주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넘어져도 일어납니다. 어둠 속에 있어도 결국은 여호와께서 빛이 되어주셔서 어둠에 밝은 빛을 비춰 주셔서 그로 하여금 걸어 나올 길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걸어들어 갔는지는 몰라도 그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백성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신앙생활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