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할 마음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스10:10~11)
자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2005년이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은혜를 내려 주시고 금년 한 해도 저희들에게 섬기고 살 수 있는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가 얼마동안 이 세상에 살든지 하나님 잘 섬기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전할 때 이 말씀이 큰 은혜가 되도록 도와주시고 특별히 새해 말씀 사경회를 앞두고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깊은 나침반이 되도록 도우셔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준비하고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은 시리즈 설교는 아니구요 일단 다다음 주에 있을 사경회를 어떻게 기다려야 할 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순종할 마음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순종할 마음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읽은 본문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죠.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때였습니다. 에스라라고 하는 지도자의 인도하에 이제 그들이 고토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때는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한 때였고 바벨론은 커다란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다시 그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이때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식민지에 대한 종교 융화 정책을 폅니다. 넓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보면 하나님이 그 모든 역사의 섭리를 주도하신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왕의 허락을 받고 고토로 돌아갈 수 있는 조치가 내립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토로 돌아갈 때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모든 사람이 돌아간 것은 아니고 돌아갈 사람들을 모집해서 그 사람들이 예루살렘 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죠.
에스라라는 경건하고 학문 깊고 신실한 지도자를 만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위대한 일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포로로 끌려 간 지 70년 세월이 지났는데 그걸 떨치고 다시 고향에 돌아간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북의 고향이신 분들있죠. 통일이 되면 내일 당장 모든 세간 팔아 보따리 싸서 이북으로 갈 용의가 있을 것 같습니까? 그건 하나의 감상이지 현실적인 많은 문제가 있잖아요. 이 사람들 70년이니 10살에 온 사람이 89세가 될 정도였으니까 10세 밑의 사람들은 기억도 안 날 테고, 그러니 여기 쫗아간 많은 사람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기 보다는 조상들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죠. 자기들의 고향도 아닌 조상의 고향으로 돌아간 이유는 뭐죠?이게 신앙심때문이었단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가요. 거기서 예루살렘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성전의 규모를 축소한 소박한 성전도 지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더구나 여기 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간 거예요. 하나님의 신에 깊은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죠. 그러니 이렇게 올라 간 사람들은 70년 간 자기 기반을 다 버리고 오직 신앙때문에 믿음의 고향인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하고 경배할 마음으로 올라가게 된 거죠. 그 땅이 비어있었습니까? 아니에요. 이미 다른 민족이 들어와 살고 있었거든요. 옛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하죠. 왕이 명령을 내렸으나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고토로 돌아오는 꼴을 눈뜨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와 분쟁을 일으켰어요. 그러니 다 삶의 근거지를 두고 신앙을 가지고 부모의 고향으로 왔는데, 환영을 받는게 아니라 시기하고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사면에 가득했습니다. 그러고도 거기에서 믿음으로 성전을 지은 거죠.
그러니 그 사람들의 신앙이 참 본받을 만한 신앙을 가진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 건축만 하라그래도 도망가는 교인이 많은 세상인데 이 사람들은 아예 가산을 정리해서 성전을 지으러 올라간 사람들입니다. 신앙이 뛰어난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 신앙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도 우리가 한 마디로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 지 측정은 할 수 없지만, 이 지도자인 에스라의 귀에 아주 가슴 아프게 하는 소문들이 들렸어요. 그 소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지도자들이 이렇게 고토로 돌아와서 장가를 들었는데 이방 여자들과 결혼을 했다더라......이건 분명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일을 행했다더라 소문이 들려오는데 진상을 파악해보니 이게 정말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얘기를 듣자 에스라는 제일 먼저 그들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성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문에 엎드려서 한동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신을 지도해 줄 최고의 지도자가 성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문에 엎드려서 애곡을 하고 있으니 처음에는 사람들이 서로 눈을 흘기며 이게 웬일이냐 왜 에스라 선생님이 저리 슬피 울고 계시냐? 많은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아는 사람들의 입으로 지도자 에스라가 저렇게 가슴 아파 흐느낀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그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백성들의 지도자의 불순종 때문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어린 아이로 부터 어른 까지 하나씩 둘씩 에스라가 엎드려 우는 그 뒤에 죽 엎드려 함께 흐느끼며 애곡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에스라는 감상적이고 주저주저 하는 그런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학문을 많이 공부했고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건하며 또 무슨 일이 있건 간에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하고 일어나는 모든 일의 어려움을 볼때마다 항상 지도자인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자기의 죄악인 것처럼 토하며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 에스라는 그냥 그런 정도로 그치는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한 사람 개인의 신앙으로는 훌륭했을 것이에요. 그러나 그는 아주 결단이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거할 수 있는 지도력이 있는 지도자였어요. 그가 지극히 온화한 성품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귀환을 인도했고, 위기때마다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렸던 주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정치꾼이 아니라 주님의 사람이었고 모사꾼이 아니라 주님의 율법을 깊이 연구하여, 왕까지도 주님의 율법 하면 에스라에게 물어보라고 인정할 정도의 학문의 세계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흐느끼고 말도 없이 그 긴 시간을 하나님 앞에 애곡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보고는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 이 에스라를 통해 보여지는 거예요. 눈물을 씻고 기도를 끝내고 난 후에 이 에스라는 여호와 하난 사람방에 들어가 금식하며 또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이제 나는 이들의 지도자로서 무엇을 해야할 지 내가 판단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의 최대한의 권한을 행사햤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족속들, 포로로 돌아온 모든 족속들은 삼일 내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라, 오지 않으면 그재산을 다 적몰하고 너희들의 호적의 이름까지 지우겠다. 왜 그럴 수 있을 정도의 공포를 할 수 있었냐하면 바벨론왕이 그에게 그런 행정적 권한까지 주었던 것이에요,
그는 백성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게중에는 아무것도 선포되는 것이 없지만 이미 흐느기고 우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일인가 의아한 사람, 불안한 사람 에스라에게 한번 대들어보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도 섞여 있던 때에요. 비는 펑펑 쏟아지던 때였습니다. 이제 지도자 에스라가 연설을 하는 거죠.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너희들이 범죄하였다. 더군다나 지도자들로서 너희가 이방여인에게 장가를 들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추악한 일을 했다는 소문이 있으니 이는 얼마나 더러운 것이냐,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하나님 말씀을 이들에게 선포햇어요. 그랬더니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그들이 순종하겠다고 모두 외친 것이었어요. 순종하겠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뭘해야 하는 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들으며 순종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순종이 굉장히 이행하기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물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왜 이방여자에게 장가들었을까? 그 명확한 뜻을 우리는 모르죠. 어쩌면 포로 상태에서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 여자들과 남자들 숫자가 안 맞아 짝이 안 맞았던지 아니며 아예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못 생긴 여자들만 골라서 올라왔는지 우리는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어요. 이렇게 됐건 저렇게 됐건 확실한 사실 하나는 그들이 처음에 예루살렘에 올라올 때 하나님께 감동 받았던 신앙의 순수함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건 변명이 불가능한 것이었어요. 신앙이 식은 것이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신앙이 사라지게 되면 욕망이 커지게 되는 거죠. 그게 뭐 별겁니까? 별거 아니에요. 여러분 늘 얘기할 때 기본신앙 얘기하는 데 그걸 좀 봤으면 좋겠어요. 기본 신앙이 뭔데요? 그게 뭔데요? 주일날 졸고 가더라도 어쨌든지 교회 오는거? 그게 무슨 기본 신앙이에요? 신앙이라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깊이 복종하는 거예요. 기본이 대체 뭐예요? 뭘 얘기하고 싶어 제가 이러는 거죠?
성화에도 끝이 없지만 신앙의 미끄러짐에도 끝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옛날 얘기만 하는 사람들이에요. 내가 옛날에.....늘 옛날 얘기만 하는 사람 치고 현재 신통한 사람 없다고 제가 늘 얘기하잖아요. 옛날에 어쨌는데.......우리 같았으면 70년 본거지를 떠나 신앙 때문에 예루살렘에 갈 수 있었을 까요?요즘처럼 재기 좋아하는 신앙인들은 못갔을 거라고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단언할 수 있어요.
난 오늘 여기와서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 저를 포함해서, 하나님이 오늘 밤에 “야, 이제 한국 집어치우고 중국으로 선교사로 가라....아니며 중국보다 더 가난한 저 캄보디아 같은 나라로 가라 너네 애들 데리고 떠나라” 그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아멘 하고 갈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 거기 사립학교 있나요? 우리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우리 집사람은 침대 없으면 못 자는데, 전 기관지가 약해서 먼지나는 고장에선 못살거든요. 그러기 십상 아닐까요? 그렇게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미끄러지고 나니까 이방 여자에게 장가를 드는 거예요. 율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파괴하는 겁니다. 신앙이 떨어지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신앙이 떨어진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방여자라고 할지라도 혼일을 헸어요. 결혼을 했고 살다보니 부부 되어 아이까지 낳았어요. 그런데 율법에 의하면 이 사람들을 내치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순종하기 쉽겠느냐 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마음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율법에는 살인하지 말라 했는데,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사람을 미워하면 그게 살인이다 하신거죠. 그러니까 율법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율법이 살인하지 말라, 이 이야기는 율법이 우리 행위의 외형을 규제하는 건데 사실 그 하나님의 명령에 진정으로 순종하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 거잖아요. 미워하게 되면 그 미워하는 감정이 그를 죽이는 살인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딱 잘라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거꾸로 구약시대 사람들이 범하던 오류를 신약시대 사람들이 범해요. 뭐냐면 구약시대 사람들은 마음이야 어쨌건 그런 것 상관없이 일단 살인하지 않으면 내가 살인을 안 한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신약시대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을 해요. 아,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은 살인과 마찬가지 구나. 또 성경에 보면 간음하지 말라 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자라고 합니다. 그렇구나 결국은 간음할 마음을 품은 게 간음과 마찬가지구나. 그러니 자기가 그런 죄를 범했을 때 오히려 이러한 사실들을 자기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해요. 그래요. 나 그런 죄를 지었다. 그런데 너희들 중에 미워하지 않는 자 누구 있느냐? 너희 중 음욕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너나 나나 그 놈이 그놈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건 달라요. 본질적으로는 서로 통하는 데 다른 것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마음으로 이미 간음하였다. 마음으로,라는 말을 이미 덧붙이셨어요. 왜냐하면 마음으로 사람을 살인하면 마음의 질서가 깨져요. 그런데 실제로 내가 사람을 죽이면 이 사물들이 질서가 깨지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아세요?
그래서 가끔 교도소에 전도 가거나 그 사람들의 신앙 간증을 보면 한 순간의 혈기로 일을 저질러요. 그런데 그것을 일평생 그 결과를 짊어지고 형장에서 죽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마음의 질서와 사물의 질서의 다른 점이에요. 마음의 범죄로만 그치면 마음과 영혼이 파괴되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 되죠.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계속 파괴되는 겁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 피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거죠. 미워하는 자신이 파괴되요. 그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그 사람의 영혼과 마음이 막 부서져 나가요. 그런데 마음이 부서지는 걸로 끝나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지고 그 속에서 혼란을 느끼고 그 속에서 영적인 고통이 오고 그런 정도로 끝나요. 그런데 그 미워하는 마음은 진짜로 표츌디어 사람을 죽인다던지 참지 못하고 엄청난 욕설을 퍼부어 관계가 깨어진다던지 하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는 질서가 깨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여간 경찰이 잡으러 오는 거죠. 같은 게 아니에요. 이 사람들도 보세요. 이방여자를 향해서 음욕을 품었다 칩시다 그러면 영혼이 파괴되겠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그 뜨거웠던 신앙의 감동이 식겠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겠죠. 그리고 학사 에스라처럼 이렇게 훌륭한 학문의 사람, 신앙의 사람, 지도력을 갖춘 사람이 주옥같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도 은혜를 받을 수 없겠죠. 그걸로 끝나요. 그런데 그것을 마음의 죄로 그치지 않고 직접 장가를 들어버렸어요. 결혼 관계가 성립되고 그 다음엔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이죠. 이방인 여자가 낳았는데 얘는 태어나서 그 사람을 아빠라고 하죠. 인간이 정이들고 가족이 된 거예요. 어느 날 하나님 말씀의 빛이 확 비추니까 이거는 천벌을 받을 죄를 지은 거죠. 그런데 순종할 수 있겠어요?
가장 좋은 것은 마음으로라도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자기를 잘 다스려야 해요. 그게 마음 지킴의 교리에요. 새뮤얼 러더포드라고 하는 청교도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의 신앙 생활은 절벽 사이에 통나무를 놓고 그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부주의 하거나 무지하면 사정없이 굴러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그렇게 생각하나요? 아니잖아요. 나 예수 믿고 구원 받았지.......그러고는 자기는 아무데로나 다 가도 된다고 생각해요. 말같데 소갈 데 다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교거리로 바꾸는 사람들,.....그러니 구원을 어떻게 생각하냐면 구원 받기 전에 괴롭다가 주님을 믿은 다음에는 자유다. 이 자유가 진리의 빛을 받고 그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의 자유지 눈 감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혈기,정욕 탐욕 욕망 시키는 대로 막 뛰어다니는 이게 자유입니까? 그 자유가 있나요? 그 자신이 이미 욕망에 사로 잡힌 사람인데 그 안에 자유가 있냐는 거죠. 그러니 계곡 사이에통나무를 놓고 하나 하나 진리를 배우고 지키며 그 말씀의 빛 앞에 물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사람들을 율법 주의자, 믿음이 없는 사람, 꽉 막힌 사람, 그렇게 비난을 하며 자기는 수없이 떨어지는 거죠. 떨어지면, 그 속에선 얘기할 게 없고. 여러분 떨어진 적 많잖아요. 그게 지옥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면 얼마나 섭섭하겠어요?그게 지옥인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겠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그 안에서 못 올라오면 영원히 가는 거지뭐. 그런데 꼭 지옥이 아니더라도 여러분 영혼의 깊음 속에 떨어졌을 때가 그럴 때 아니에요. 그래서 요한 칼빈 선생은 자신의 책속에서 이런 얘길 했어요. 회개한 사람이 첫 번째 맺는 열매가 주의깊음,이에요. 회개할 때 그 사람을 가장 원통하게 만드는 것은 경솔함에 대해서입니다. 그러면 안 됐었는데 왜 내가 깊이 생각을 안 하고 그랬었을까? 그런데 왜 그걸 몰라요? 그걸 모르고 냅따 뛰어다니며 살아가는 거예요. 자기 깐에는 정말 열심히 사는 것 같고 자유인 같은 데 방탕한 거에요. 생명이 있나요? 주님이 느껴집니까? 그러니 이들이 범죄하고 나니 새로운 사물들의 질서가 생겨난 거예요. 이게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죄가 점점 자라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사물들의 질서를 만들어 놓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해도 거기서 돌이켜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잖아요. 마음에 그칠 때야 이를 악물고 마음 한번 누르면, 비록 이방여자에게 그런 감정을 품었다 해도 내가 하나님 자녀로 이러면 안 되지 하면 되요. 그런데 교제라도 했으면 절교선언하러 가야 되잖아요. 교제 정도로 끝났으면 나 하나님의 사람이거든, 이제 이렇게 살 수 없어 하고 절교 선언하고 오면되요., 그런데 결혼했어요. 그러니 이제 이혼을 해야 해요. 아이를 낳았어요. 아이가 엄마 아빠 헤어지지 말라고 울고 불고 매달려요. 이런 상황을 만난 거예요. 그러니 그냥 제일 좋은 것은 마음까지 다 지키면서 주님께 붙어 사는 게 제일 좋아요. 거기서 실패하면 마음으로라도 범죄하지 않으려 해야해요. 그게 무너지면 마음의 범죄롤 끝나야 해요. 정말 행동으로까지 가면, 그 파괴적 위력과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이런 상황이 된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진짜 할 수 있겠냐구요. 이 여자를 정말 사랑하느냐 마느냐는 차치하고라도 정말 할 수 있겠냐구요.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말했어요?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얼마나 어려운 결단이겠어요. 한번 상상력을 동원해 묵상해 봐요. 어린 아이들이 아빠 우리 두고 가지마, 우리 가라 하지마, 아빠 사랑해 하며 매달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가야 한다. 왜? 율법에 그렇게 써있거든. 율법이 그러면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지. 다 낳아놓고 말이지. 아빠 나 낳을 땐 율법 없었어? 그래서 죄인이 죄의 길에서 못 돌이기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걸 하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강력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는가 하는 걸 보여주잖아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결단은 정말 성경에 몇 번 볼 수 없을 정말 위대한 결단이에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가족관계를 파괴하고 하나님께 돌아서는 게 쉽겠어요. 혼자 나가 목 매어 죽어버리는 게 쉽겠어요? 후자가 훨씬 쉬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잘, 들어보세요. 이게 어떤 문제가 있냐하면, 죄를 제일 먼저 발견했을 때 그것들을 정리하기 가장 쉬울 떄거든요. 근데 우리는 그걸 품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거예요. 미움이든지 정욕이든지 탐욕이든 처음 발견했을 때 이러면 안 돼 하고 탁 끊는게 가장 빨리 끊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품어. 그리고 한편으로 품으며 한편으로 이걸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한편으론 껴안고 한편으론 능력을 주십시오.....이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점점 이 속에서 사라져 가는 거죠. 그러다 결국 나중에는 불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이들이 결단을 하고 순종을 하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 결단을 한 거예요. 뭐가 이것을 가능케 했냐? 그건 회개가 가져다 준 힘이었어요. 어떤 회개? 에스라가 먼저 성전 문 앞에서 엎드려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인것처럼 간절히 기도한 것. 그게 교회 공동체거든요. 그래서 한 사람이 주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지체들의 연약한 부분이 자기의 책임인 듯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아파하게 되는 거죠. 그게 몸이에요.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게되면 다른 지체들의 허물이 그냥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이게 되는 거죠. 그리고 자신의 것으로 보이지 않아요. 거기서 많은 시험들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에스라가 바로 그런 마음을 갖고 자기는 동참한 적도 없는 죄, 은밀히 그런 죄를 지으라고 유혹한 적도 없는 그 죄 때문에, 그들의 죄가 자기의 죄인 듯 느껴져서 하나님 앞에 그들을 대신해 통회하는 거예요. 한 사람의 그리스도 인이 주님을 사랑하는 지 아닌지는 남을 위해서 아픈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지 아닌 지에 달려있어요. 왜나면 그 사랑이 까리따스의 사랑인데, 그 지순의 사랑은 교통적 사랑이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 사랑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체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져요. 그러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다른 사람 누군가가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할 정도로 불쌍한 사람이에요. 그가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이든지 간에 그는 그냥 그런 영혼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결심을 이미 하게 된 것은 예전에 이런 잘못된 가족관계를 세우게 했던 욕심과 탐욕보다 더 커다란 은혜의 충격이 그들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은혜를 통한 영혼의 각성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다고 믿어졌던 이 어마어마한 일을 향해 결단할 마음이 생겨나게 된 거예요. 그러고 나니 에스라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지금 이 인생의 위기 상활에서 자기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이 사람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결심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하나님의 율법을 더 연구하고 더 자기가 먼저 지키고 그 백성들에게 이 율법을 가르쳐야 되겠다. 이 세가지를 결심해야 했어요. 그러니 이 사람들이 얼마나 풍부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가르침 속에서 살았을 지 생각해 보세요. 풍성한 교훈 속에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거예요. 에스라가 결심한 일이 몇가지라구요? 세가지예요. 첫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자기가 먼저 지키고, 그리고는 그 백성들에게 그 말씀을 가르치고. 그런데 자기는 연구도 안 하고 지키지도 않고 잘 믿으라고 막 떠들고 다니는 그런 직업적인 꾼이 아니었어요. 셋 중에 두 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거예요. 그리고 하나는 가르치는 그 일에 자신을 다 바쳤으니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돌아가서도 얼마나 풍부한 말씀이 이 학사 에스라에게 들렸겠어요. 이 에스라는 말하자면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최고의 학자요, 최고의 목회자였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보내신 거예요. 그러니 이 사람들은 그 깊은 학문에서 우러나오는, 그러면서도 샌님처럼 공부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죠. 게다가 백성들을 깊이 사랑해서 그 사랑으로 백성을 가르치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 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최고의 목회자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배려였죠.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너무나 곤고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으니까 하나님이 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특별히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붙여서 그들의 지도자 되게 하셨던 거예요. 잘 들어 보세요. 자기도 뭔가 몸부림을 치고 입만 열면 뭘 잘 가르치는데 별로 아는 게 없는 사람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에스라는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람이었어요. 끊임없이 뭔가만 배운다고 하는데 가르치는 것도 잘 하는데 자기는 안 지키는 사람들 있잖아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사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 그거라잖아요. 집에서도 이렇게 하세요? 아이고.....정말 남편께서 행복하시겠네요. 뭐가 행복해요. 매일 컵라면 끓여먹고 출근하는 거 우리가 아는데. 그러니까 에스라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또 가끔 드물긴 하지만, 공부도 많이 하셨어 개인적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어. 근데 하여간 가르치는 건 뭔 소린지 못 알아 듣겠어. 난 경험해 봤어요. 그런 분 있어요. 진짜. 학교에 가도. 교수님 중에. 진짜 질문을 하면 끝없이 지식이 나와. 근데 왜 그걸 강의할 때 그걸 못 가르쳐주냐 이거예요. 왜 누군가 찔러야지만 나오냐는 거예요. 근데 이 사람은 그 세 개를 다했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제가 구약에서 늘 본받아야 할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 그러니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웃기는 건 그 이방 여인과 잠자리 같이 하고 애들 낳으면서 그 말씀을 들은 거예요. 그 말씀을. 그럼 누구 잘못이에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 가능하다는 거예요. 이러고 다니니 에스라의 가르침을 받았을 때 티끌 만큼도 마음에 다가오는게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은데 근본적으로 삶을 돌이키게 할 수는 없는 거죠. 지엽적인 문제를 매일 물고 늘어지는 거죠. 목사님, 이번에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나니 늘 듣던 말씀인데 특별히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걸 결정하는 것은 순종할 마음을 갖고 들으니 한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 아니에요. 아, 하나님의 말씀이 비록 내가 가족을 이루었지만, 여기 살아도 돌이키라고 말씀하시는구나. 내가 사지를 절단하는 것 같은 아픔을 느껴도 내가 돌아서야 하리라. 그런 결단을 가지고 말씀을 들은 적이 없잖아요. 그러니 가르침은 많지만 이들의 뼛속 깊이 들어가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한 경험은 없었던 거죠. 그러니 이렇게 올바르지 않은 삶의 방식을 오랫동안 이어가고 있었던 겁니다.그런데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우리의 목회자를 통해 말씀하실 지라도 내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듣고 그 말씀이 내게 무엇을 명하든지 내가 순종하리라 하는 결심을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에스라가 여태까지는 한시간씩 설교 준비했는데 이날 나왔을 때는 열시간 쯤 준비하고 나왔을까요?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설교라고 하는 것은 그냥 차 있으면 나오고 안 차 있으면 준비를 해도 별로 안 나와요. 무슨 뜻인지 아세요? 그럼 이 사람은 뭐 백성들이 죄를 지었다며? 그래? 내 각본에 의하면 가서 기도 좀 하고 금식도 좀 하고 말을 해야 할 텐데 그 설교 오늘 준비해서 회개시키러 가야지 그랬겠냐 얘기예요. 그냥 가서 성전에 가서 들어 가지도 못하고 대성통곡하고 울었던 것그리고 여호와 하난의 방에 들어가서 금식하고 나타나서 그냥 나오는 대로 이야기한 겁니다. 평소에 해주던 그 교훈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 전체를, 공동체 전체를, 그들의 마음 전부를 뒤집어놓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말씀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특별한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들어보고 내게 도움이 되면 한 번 해보지, 그게 아니라, 내가 그 말씀에 순종하리라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깊이 말씀을 들을 때 들리는 역사가 일어난 겁니다. 그러면 뭘 준비해야 되겠어요? 먼저 여러분들이 제일 먼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은혜를 주면 순종하도록 노력하지요 그거 말고 사경회에서 무슨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실지 모르지만 이 이번 만큼은 내 모든 것을 걸고 내게 아무리 많은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아무리 많은 요구를 하신다 할 지라도 순종하겠습니다. 제가 복종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같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시고 새롭게 해 주시도록 말씀을 붙들고 사경회를 위해서 함께 하나님 앞에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