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01.05 수요예배
패하고 흥함을 위한 표적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0-35)
지난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 그분의 출현 하나에 그의 온 영혼이 매인 바 되어서 그분을 뵙기 전까지 죽기를 원해도 죽을 수 없었던 시므온의 생애를 보면서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모든 영혼의 초점이 어디로 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던 것입니다.
이어서 시므온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기를 안고 찬양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말했던 것입니다. 시므온은 먼저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을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분이었습니다. 왜,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가 한 구속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오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그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신 것이 그를 믿던지 믿지 않던지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이심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만민을 위한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만을 위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만민 앞에 만민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메시야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그 은혜와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지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은혜가 가득 찬 그런 교회가 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 예수가 교회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만민의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시고 모든 사람이 그 분 앞에 돌려 드려야 할 마땅한 그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려서 만민을 위하여 세워진 그리스도 예수가 경배를 받는 그 날을 우리들이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방을 비취는 빛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이방을 비취는 빛인 것입니다. 지금 이 어두운 세상이 왜 이렇게 어두운 세상이 되었습니까? 왜 사람들은 멸망할 줄 모르면서 그 멸망을 향하여 그 멸망을 사랑하는 자처럼 그 심판과 멸망의 구덩이를 향하여 달려가면서도 자신이 가고 있는 향방을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모두 어둠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는 이 세상의 모든 빛은 참으로 빛을 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을 알아야만 비로소 이 모든 이방이 빛을 얻게 되고 그리고 인생의 진리와 그리고 삶의 갈 길과 우리가 왜 사는지와 그 모든 인생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빛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그리스도를 모르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온 것에 대해서 우리는 이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왔을 때 처음 찬미를 받으시고 하나님을 향해 영광이 돌려지는 시므온의 기도 속에서 이방의 빛으로 불리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이 어두운 세상은 시대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그리스도를 더욱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모르고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그리고 핍박하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그리하여 더 비참하고 그리고 도무지 회복할 길이 없는 개탄스러운 형편으로 세상이 악화되어 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비참하게 타락해 가는 세상을 인하여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바로 그러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방의 빛으로 나타나야 할 그리스도 예수 그러한 고통하는 세상이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더 찬란한 빛을 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세상이 빛을 잃어버리고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바로 절망할 때가 소망을 가지고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라고 하는 생각을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리스도 예수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설교해도 늘 그리스도를 말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므온은 얼마나 예리한 통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까? 다윗이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다윗의 보좌가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말하기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은 이 세상에 있는 찬란한 것들을 쌓아 올리고 이 세상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소유하고 쌓아올림으로 말미암아 그것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영광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소유한 교회가 하나님 앞에 영광된 교회인 것입니다. 보십시오. 주님의 이스라엘은 그리스도가 없으면 영광이 없는 백성이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그 분이 오셔서 약속대로 이스라엘의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오실 그 때에 비로소 이스라엘은 주님의 백성의 영광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달아야 될 때가 왔다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의 최대의 영광은 무엇이겠습니까? 훌륭한 건물도 아니고 아름다운 악기도 아니고 모여드는 수많은 인파도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충만히 소유하게 있는 교회, 그것이 바로 그래서 그 그리스도 예수가 너무나 충만하게 소유되어서 그래서 가득한 그리스도 예수가 이제는 그 교회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의 배에서 생수처럼 차고 넘쳐서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흘러가고 흘러가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그 그리스도의 생수에 목축이게 할 수 있는 그러한 교회가 바로 하나님 앞에 영광된 교회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은 아름다운 건물도 없었고 웅장한 성가대도 없었고 현란한 악기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를 충만하게 소유한 교회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지 너무나 많이 소유해서 그 사람들이 나아가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할 때 사람들은 그들에게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 예수를 소유하는 것이 교회의 영광이라면 교회가 그리스도를 소유한다고 하는 말은 너무나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까? 교회 속에서 속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충만하게 소유하고 있으면 그 교회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충만하고 한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충만하게 충만되고 있습니까?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이 그에게 붙들린바 되어져서 그래서 오늘 하루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았습니까? 오늘 하루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겼습니까? 그리고 오늘 이처럼 살아있고 우리가 또 한번 밤을 맞고 또 한 번 새로운 날을 기대하는 것도 오직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살아나신 이 고통하고 어두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 그 분을 향하여 우리의 삶이 고정되어있냐는 것입니다. 험악한 세상을 이기고 죄악의 물결을 거스려 싸우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서 살리신 그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이스라엘의 참 영광이신 그리스도 예수,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의 영광은 이 세상의 있는 것들을 누리는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있는 것들을 얼마나 소유하고 이 세상에 있는 얼마나 것들로 우리들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면 이 세상에서 높임을 받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미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의 모든 복락과 하나님의 성도의 모든 아름다운 기업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예수, 그 분을 충만히 소유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이스라엘 위하여 찬양을 올려야 했던 이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들으면서 이 열린 교회 속에서 이 세상 속에서 때 묻고 그리고 그릇 살아온 모든 것들을 세탁하고 그리고 새롭게 진리와 의로 말미암아 지으심을 받는 영혼의 변화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어서 시므온이 본격적으로 이 아이에 대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그 예언을 보니까 아이가 그렇게 수 천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나서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그런다면 아이를 안고 왔으면 덕담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예) 저는 그런 것 참 잘 못했요. 뭐, 그렇게 정직한 사람도 아닌데.... 옛날에 제가 섬기던 교회 목사님은 심방을 이렇게 가서... 애가 똑같으게 생긴 것 아니잖아요. 잘 생긴 애도 있도, 못 생긴 애도 있고, 생기다 만 애도 있고 그렇잖아요. 우리는 그저 학교 선생을 하도 해서 그런지 이쁘면 이쁘고 미우면 밉고, 맛있으면 맛있고, 맛 없으면 맛 없고 둘 중에 하나에요. 그러니까 그거 뭐 못 생겼다는 걸 야, 너는 못 생겼구나! 라고 말은 안하더라도 그게 보통 노력을 해가지고는 여기서 잘 생겼다는 말이 않나오는데 목사님은 정말 메주같이 생긴 애 한테 야, 너는 참 잘생겼다. 어쩌면 이렇게 잘생겼느냐, 장군 같으다. 못 생긴 사람들만 장군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덕담을 잘하세요. 그러면서 저보고 늘 충고하셨어요. 그런거를 배워야 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가지고 이제 33일 쯤 되어서 왔으니까 그러면은 누구든지 이렇게 해야 인지상정 아니에요? 아이가 참 아름답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이스라엘의 위로요, 주의 백성의 영광이라고 했으니까 아, 아이가 과연 하나님의 커다란 구원 사역을 이룰만 하다 라고 해야만 할텐데 그 위에 나온 그렇게 일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시선이 고정이 되어서 그가 오시지 않으면 죽을 수도 그렇게 기다렸던 시므온이 하는 말은 결코 유쾌한 말이 아니에요. 보세요. 그 예언이 어떻게 보면 불길하게조차 들리는 그러한 예언이에요. 한번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천군 천사들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로다. 그러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런 찬송이 나와야 될 터인데 이 아이는 이스라엘 백성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서 세움을 얻었고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모든 사람의 생각을,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그랬거든요.
이제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시므온은 오늘 말하기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패함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누가 패한다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이 패배한다는 거에요. 누구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왔던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완전히 패배하는, 그런 일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패하는 일이 없이는 흥하는 일도 없는 것이에요. 흥함도 없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요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패배의 비밀을 경험한 사람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먼저 패하고 그 다음에 흥함을 얻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패배해 보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망해보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의 흥하게 하시는 그 놀라운 영적인 부요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여러분 패배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 이 의미는 이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완전히 패배되는 것, 그래서 어떻게 되요?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나의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고 정말 비참한 죄인 외에 이 세상에 도무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제까지 살아왔던 내 인생의 모든 계획과 그리고 내가 이제껏 까지 붙들고 살아왔던 나의 그 나됨과 그리고 나의 그 자만하던 마음과 교만하고 그리고 나의 하나님 없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그 극도의 영적인 교만함들이 그리스도 예수 앞에 여지없이 패배되어질 때 그 패배를 깨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부요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구속의 놀라운 신비와 하나님의 그 크신 은총을 힘입으며 한없는 영적인 부요 속에서 하늘을 향하여 살 수 있었던 위대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주제파악을 한 사람들이었어요. 인생이 왜 주제 파악이 안되? 주제파악을 못해 주제 파악을 못한다는 것은 칼빈의 설명의 들으면 하나님을 모른다는 거에요. 칼빈 선생이 뭐라고 했나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 자신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안다” 어, 주제파악을 못하는 거에요. 주제 파악을 못하니까 언제나 육신이 성성하게 살아있고 그리고 자기가 큰 거에요. 그리스도 예수는 언제나, 주님을 영접했지만 입헌 군주국의 왕 정도 대우를 해드리고 십일조나 가끔 갖다 드리고 예배에 가끔 참석해서 한번씩 참배하고 그리고 나머지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거에요. 왜, 이런 결과가 오는 것입니까? 패함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진실로 패배해 보지 않고는 그리스도에 나타난 그 십자가의 부요함을 우리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여러분은 먼저 패배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앞 에 “하나님이여!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예수 앞에서 패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패하되 대충 패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패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껍질을 깨고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부요함!, 그래요” 언제 우리가 “주 없이 살 수 없네 내 주는 아신다” 정말 진심으로 이 찬송을 부르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 수 있습니까? 주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날들을 주없이 대충 우리들이 삽니까? 주 없이 대충 넉끈히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사람이 이 찬양을 진심으로 하게 됩니까? 그리스도 앞에 진심으로 패배했던 사람, 그리스도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자기 아집과 교만과 더러운 죄악과 그리고 자기의 그 모든 선입견과 그 모든 부도덕한 것들이 샅샅이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날 때 비로소 그는 그리스도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깊이 패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우리는 그 십자가를 보고 그 그리스도 예수의 오심을 바라보면서 그 분이 오셔야 했던 그 사실 자체가 바로 우리를 패배시켜야 하는 이유임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하였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무도 구원에 다가갈 수 없던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보냄을 받았고 지금은 시므온의 품안에 안겨 있는 것입니다. 그 아기 예수가 오신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해 그리스도 예수를 향해 깊은 패배로 하나님이 우리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이 세상을 그리스도 예수 앞에 세상을 패배시킬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영광스럽게 증거할 때 사람들을 그 앞에 패배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그리스도 예수의 증거앞에 사람들이 그 동안 살아왔던 그 모든 교만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왔던 그 모든 방만한 삶들이 그 앞에 고백되고 ,그리고 그 앞에 갑자기 자기가 아무것도 붙들것이 없고 ,믿을 것이 없고, 붙잡을 것이 없는 그런 외로운 사람이 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의 패배는 우리에게 영원한 좌절을 주지만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패배하는 그 영적인 패배는 우리에게 참된 하나님의 위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집회의 최고의 목표가 그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패배케 하는 집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리스도 예수의 그 부요함과 그 하늘의 신령한 복과 그리고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같은 성정을 가지고 먹고 마시며 이 땅을 살았으면서도 마치 하나님 밖에 없는 것처럼 살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장엄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패배하지 않은 사람, 그리스도 앞에 자기가 다 무너지는 패배를 하나님 앞에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앞에, 우리 앞에 쌓아 주시는 그 놀라운 부요함에 눈 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깊이. 깊이, 아직까지도 무너지지 못한 자신의 그 자아와 아집을 예수 앞에 세우며 여지없이 주께서 자존심마저 짓밟으시고 처참하게 무너뜨려 버려주시도록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그 때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다시 흥하게 세우시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예수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서 세움을 입으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늘의 영광을 버렸지만 그 댓가는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천사들의 아름다운 찬송소리와 성도의 창화하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지만 오시자마자 헤롯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창의 표적이 되었고 칼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시므온의 품에 안겨서 일생을 어떻게 사실 것인지를 이미 예언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인생은 비방으로 얼룩진 인생이었고 비방을 위해서 태어난 자처럼 그렇게 모든 비방의 표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도 이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 왜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를 미워합니까? 왜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사람들이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비방이며 복음을 향한 비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온전히 들리움을 받지 못하고 이렇게 표적이 될 때에 우리는 오히려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그리스도가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불현듯 이 세상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눈 뜨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무엇입니까? 놀랍고 강력한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을 향하여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스리고 복음을 반역하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십자가는 하나님 내가 아니면 너희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대해 세상은 뭐라고 대꾸합니까? 우리에게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 우리를 구원할 자는 우리 자신뿐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떠나라! 너희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다. 해 아래 한 사람도 죄인이 아닌 자가 없노라 말할 때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선한 마음이 있어서 그것을 힘쓰고 애써서 그것을 가꾸어 가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소망이 없다 말할 때 우리는 기대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 말할 때 그들은 우리를 믿고 의지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코 이 세상에 중립 지대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뜨겁게 사랑하던지 아니면 그를 표적삼아 비방하던지 인생은 언제나 이 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렇게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서 세움을 입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세상을 살아가실 때에 당신이 고난을 받고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조금도 괴로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것을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셨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이루어져 가는 것을 인하여 기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모든 세상에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따라 가고 그 분처럼 살고, 그 분을 본 받고 그리고 그 분의 참된 길을 제자로서 걸어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와 같은 성격의 비방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핍박이 있습니까? 기뻐하십시오. 두려워마십시오 당연하게 여기십시오 이 비방 받는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우심을 입었고 우리는 그 분이 그런 분인 줄을 알고 따랐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처음부터 이렇게 고난이 예고된 생애였던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이 세상을 향하여 자기를 환영해주도록 제스처를 쓰신 적이 있습니까? 세상이 왜 나를 영접해주지 않을까 고민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도리어 자기의 목숨을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시기 위하여 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가 져야 할 태도를 오늘 성경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뚜렷하게 따라갈수록 우리는 이 세상에서 비방 받는 표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결국은 비방하는 표적으로 삼다가 마지막에는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화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손과 악수하고 그 입에 입을 맞추고 그의 품에 안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으로부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된 것처럼 우리도 또한 세상 가운데서 비방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백성인가 하는 표적은 그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이 세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그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느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핍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기를 원하는데 그 예수가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었음으로 우리도 또한 그 예수로 말미암아 당하는 그 비방의 표적이 우리도 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으로 말미암아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다시한번 비방하는 그 세상을 향하여 참된 소망이 오직 그리스도 예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세상과 더불어 손잡고 함께 그리스도를 비방하는 표적으로 삼았던 적이 있었던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겸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분명한 신앙이 있는 곳에는 분명한 비방이 있었습니다. 사단도 마찬가지죠, 여러분들이 대충 살고 적당히 살아가면은 사단은 그런 거 관심도 안 가져요, 관심을 가지면 뭐해요 이미 다 총도 없고 칼도 없고 아무것도 제 구실도 못하면서 교회에 와서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사람 나오나 마나니까 차라리 신경도 안 써요, 그러나 뭔가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살고 예수의 정신대로 살아보려고 오늘 당장 애를 써 봐요 금방 부딪치는 부딪침들이 있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이기고 그리고 더 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부요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리아는 여기에서 일생에 잊혀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예언을 받게 되죠.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 예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그래서 그 십자가 아래서 눈물을 흘리며 육신으로 낳은 이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하는 그 순간에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파겠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도 이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여자여! 하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렇게 모진 고난을 이 마리아는 받기로 이렇게 예고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말하기를 ‘예수를 젖먹인 여인이 복이 있도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세상적으로 볼 때 이 마리아는 아무런 행복한 인생이 아니었어요. 정말 세상적으로 말하면 상처밖에 없고 피눈물 나는 인생이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수 일을 하시면서 기적을 행하면서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까? 기적을 행해서 입을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까? 이제는 다 자라서 성인이 되니까 가정을 버리고 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를 만나게 된 때에는 하늘 높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며 죽어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깊이 찔러오는 그 고통의 칼날을 온 몸으로 받아야 했던 여인이 바로 마리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러한 성취 가운데 경험하는 고통이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이 고통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죠? 우리의 고통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의 육신, 우리의 삶, 이것 하나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우리 자신의 행복에 매여 있는 그런 고통이었습니까? 원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고통이었습니까? 마리아의 고통은 바로 이런 고통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복이 있는 삶입니까? 비록 세상에서는 가장 불행한 아내요 가장 불행한 어머니였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이 여인보다 큰 여인이 없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참된 성도들의 이 마음을 찌르는 것과 같은 칼날 그 고통의 이유가. 그러니까 고통을 받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 상급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의 이유가 무엇이냐, 무엇을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고통스러운가,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살았고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만을 위하여 일하고, 그리스도 예수만을 위하여 죽었었는지를 되 돌이켜 보면서 그는 얼마나 자기의 많은 나날들이 오직 그리스도 한분께 매여서 정말로 버리운 바와 같이 그런 세월을 지냈던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내가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의 사형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치 말고 죽은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시는 줄을 의뢰하려 하겠음이라’ 이 모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가운데 끊임없는 마음의 고통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오늘 마리아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이 이것이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예고된 고통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 살다가 시련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가운데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다가 기꺼이 고난을 받고 마음의 고생을 하는 이러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주님의 기도합니다.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러 함이니라’ 고 그랬습니다. 보십시오, 마리아는 애매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칼이 마음을 찌르는 고통을 받기로 이미 예고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비방 받는 표적이 되는 것도 예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많은 백성의 패하고 흥함을 받는 표적이 되는 이러한 일들도 예고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는 모든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보십시오, 세상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가 누구신지를 대하는 그 태도를 보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드러난다고 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율법을 지키고 주님을 공경하고 경건한 체 해도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태도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그들의 마음의 생각은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속에서 들려져야 된다고 봐요. 여러분들은 다 말씀에 대해서 기본적인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니까 지금 설교를 잘 듣고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저는 많이 당해봤어요.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면 증거할수록 사람들이 너무 너무 괴로워하는 거에요. 왜 그래요. 그리스도를 증거하니까 그리스도 말고 자기네들이 서있던 발판이 흔들리는 거에요. 그리스도는 우리가 붙들고 서 있는 그 모든 신앙 생활의 그 의로움을 백지로 만드는 거에요. 왜?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오 우리의 소망이라고 말할 때 그리스도 이외의 것들을 붙잡으면서 하나님께로 다가가기를 원하고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그 모든 발판들은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이죠. 견디지 못해 하는 것이죠.
그래서 무슨 설교를 하던지 간에 그리스도 예수는 항상 중심에 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설교를 계속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죠, ‘너무 치우쳤다’ 내가 그랬어요. 그래, 나는 치우쳤다. 나는 다시는 균형잡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께 치우쳤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께 치우치지 못한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너희가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께 있는 그 부요함을 아느냐? 나는 하나님이 나를 더욱 더 그리스도 예수께 치우치게 만들어서 마지막에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및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노라 그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께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낙인 찍힌 사람이 되기를 원해요.
보십시오, 이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 속에 무슨 마음이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주지 않는 유대인을 향하여 말하셨습니다. “너희 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경외함이 없는 것을 내가 알았노라” 그리스도를 향한 태도는 그 마음의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을 들을 때 여러분의 마음은 여전히 뛰고 있습니까? 감격합니까? 그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부요함을 인하여 기뻐합니까? 오늘 아침도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감격을 맞이했습니까? 어떻게 살아가던지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그의 태도가 그의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한 마음은 그리스도를 향한 태도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그 마음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시므온의 품에 안겨 있는 이 아기 예수는 이와 같이 불행하고 조금도 기쁠 것이 없는 인생을 향하여 예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성취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아기가 옴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지,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자인지, 거짓 되이 섬기는 자인지, 참으로 마음으로 할례 된 백성인지, 육체의 할례는 받았으나 마음으로는 할례 되지 못한 백성인지를 그리스도 예수를 말미암아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이 드러내시면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충분히 하나님, 그 분 앞에만 여러분의 마음이 향하여지고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심령이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만 붙들린바 되기를 원하는 이런 소원이 여러분의 소원이 되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이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예수의 복음은 전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더 널리 전파됨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참된 구원과 심판을 알리는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어두움 속에 살아가면서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절망을 주고 패배케 하여서 그리스도 예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그 곳에 사람들은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숨어 있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찌하던지 너희는 오늘날 너희의 할 바를 택하라, 내가 이 그리스도를 어찌하랴,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으랴, 놓아주랴, 이 그리스도 예수 앞에 너희가 무릎을 꿇으랴, 아니면 이 십자가을 향하여 돌을 던지랴, 아니면 이 십자가를 향하여 이 돌을 던지랴, 결단을 촉구하게 하는 제2의 그리스도의 보내신바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하나님 앞에 결단을 하고 소망으로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바 되고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를 보여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