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화목하라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욥22:21-22)
녹취자 : 이경순
욥기 22장에 나오는 오늘 읽은 이 말씀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축복받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문제를 모두 느낍니다. 인생의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궁핍하면 궁핍한걸 느끼고 고통하면 고통하는 것을 느끼도록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두 느낍니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느끼고 사랑을 받지 못하면 외롭다는 사실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제 그 문제의 원인도 느끼는것 만큼이나 다 문제의 원인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문제들을 직면하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의 불행, 자신의 인생의 고독, 자기가 처한 어려움, 이 많은 것들이 모두 다양한 환경과 다양한 여건을 통해서 자기에게 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각기 생각하기를 자기를 불행하게 하는 요인이 매우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이유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행복할 때는 그런 생각을 안합니다. 나는 저 사람이 행복해 하는 것과는 아주 특별하게 다른 독특한 이유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뛰어난 영적인 사람이나 특별한 인물 아니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원인에 있어서는 모두들 아주 자기만의 독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제 인간의 불행의 문제를 극복하게 할 수 있는 일반적인 말씀의 방법보다는 각자 자기가 매우 독특한 이유 때문에 어려워서 자기는 그야말로 매우 독특한 치료와 돌봄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한마디로 줄여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면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하고 많은 문제들의 핵심을 꿰뚫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먼저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양하고 많은 문제들 때문에 자신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영혼의 관계가 자신의 삶을 불만족으로 몰아가고 자신의 삶을 고통으로 어두움가운데로 데려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불화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복주시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축복과 은혜를 정말 제대로 살려서 하나님앞에 축복받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철이 아닙니다만 여러분 가을철이 되면 농부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옛날에는 탈곡기가 있습니다. 그 탈곡기가 지금이야 모터로 돌아가지만 전에는 발로 계속 밟으면 못 같은 철사가 달려있는 통이 막 돌아갑니다. 거기다 대고 볏단을 갔다가 대면 낟알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내기를 하는 것만큼 힘이 듭니다. 시커먼 얼굴에 죽을 거같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그 일들을 해 냅니다. 한쪽에서는 거두어 오고 한쪽에서는 털고 한쪽에서는 낟알을 다시 부대에 담고 하는 일들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합니다.
그러나 모내기를 할 때는 사람들이 그렇게 즐겁지 않아도 탈곡을 하고 추수를 할 때는 사람들이 비지땀을 흘러도 사람들이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생하는 것이 결국은 한겨울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주시는 한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읽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복주시기 위해서 필연적인 과정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어려움, 주님이 우리를 진정으로 축복하기 위해서 잠시 당하는 고난, 우리의 믿음이 진정 순전한지를 하나님이 보시기 위해서 우리를 벌판에 홀로세우시는 그러한 훈련, 이러한 것들이 정말 축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봄부터 여름 가을에 이르기 까지 죽도록 허리가 휘도록 고생을 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이제 낱알까지 알차게 영글어서 모두 베인바 되어서 이제 가을의 뜨거운 태양볕 아래서 모두 마르게 되어서 이제 그것을 털기만 하면 부대에 담을 텐데 이제 그것을 털면서 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내가 왜 계속해야 하나 하고 불만과 원망 속에서 집어치워서 봄부터 가을까지 지은 모든 농사의 소득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는 그런 일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만이 이 고난과 어려움이 주님이 내게 복주시기 위해서 주시는 어려움이라는 것을 압니다. 사실 주님이 복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 어려움은 없습니다.
한번 제가 말씀드려 볼까요. 자 그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았다고 칩시다. 그런데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다고 칩시다. 이건 애매히 당한 고난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복주시기 않으면 누구를 복주시겠습니까 또 그가 만약에 잘못했다고 칩시다. 하나님 앞에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교만하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고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자기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다가 그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에게 고난을 주셨다고 칩시다. 그러면 왜 결국은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로 하여금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것 아닙니까 깨닫고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시지 않으시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것 이것이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곳에서 아무리 자기의 불행한 원인, 자기의 고통 하는 원인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몸부림치며 뛰어다녀도 사람이 구차해 보이고 추해보이고 더러워 보입니다. 돈을 쫓아다니면 사람이 구차해보이고 사람에게 매달리며 그 인생이 너무 측은하게 보이는 겁니다.
우리는 막판에 가도 말이죠. 우리는 거룩한 자존심을 가진 성도들답게 사는 사람이 돼야지 양반이 얼어 죽어도 곁불을 안 쬔다고 하는 그러한 자존심을 하나님의 성도들인 우리들이 가져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인생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근본적인 것을 두드릴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곤고하고 그리고 어려움이 겹치는가. 그거 알잖아요.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가운데 고난을 당할 때는 고난의 농도보다도 더 빛깔이 짙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와 감격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없고 그저 무거운 짐이 내리 누르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계속될 때는 적어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가지고 있는 관계가 그 태도를 하나님 고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문제의 근본은 하나님과의 화목이 깨뜨려진 것 여러분들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분 스스로 손에 넣는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나 이 세상에서의 어떤 형통한 삶 이런 것들이 눈에 크게 들어올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모두 같다 버려도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무엇을 주고도 여러분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다스리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산다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단지 참고 견디고 이를 악물고 이기는 것만이 그것이 믿음이 아니란 말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에서 볼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야 너 참 억세게 재수없군’ 이렇게 말할 때 아니야 그것은 재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한테 하시는 일이다 이렇게 말할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러한 마음과 사랑을 우리가 하나님앞에 갖도록 그렇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먼저 하나님과 내가 화목한가 생각해 보고 고난당하고 어려움 당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과 지금 화목합니까. 하나님과 화목하면 고난이 겁날 것이 없고 시련이 겁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끔찍이 사랑하는 내가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가만히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또 만약에 보고 계산다면 거기에 매우 매우 범상치 않은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래도 주님을 의지하고 저래도 주님을 신뢰하면서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한가 하는 것을 먼저 돌아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할 때 우리는 평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왜 염려와 근심이 우리의 영혼 속에 파고 들어와서 우리의 심령의 골수를 깊이 녹이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이 평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의 화목, 마음의 평안, 하나님의 축복 이 세 가지는 나뉘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는 것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그것은 잠시 실패로 말미암아 맛보는 평화든지 둘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관계를 등지고 하나님과의 화목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둡고 불안한 그림자가 반드시 깃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깊이 깨닫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마음은 다른 사람이 단속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주인은 여러분이고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도 여러분입니다. 누구도 대신 여러분들의 인생과 신앙생활을 살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우리인생은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넘치는 평안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우리에게 가장 다가온 놀라운 인격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평안입니다. 이제는 안절부절하던 그 일들도 이제는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쩔줄 몰라하던 일도 이제는 요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 이외에는 그렇게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물결이 치고 풍랑이 일어날 때 그 물결과 풍랑을 보고 곤두박질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에 떨어지는 것과 같고 이렇게 요동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바깥에 있을 때 사는 삶 아닙니까?
세상이 주워 먹으라고 고기라도 몇점 던져주면 그냥 좋아서 낄낄거리고 어쩔 줄 모르고 그러다가 조금 어려움이 닥치고 고통스러운 일이 닥치면 그냥 죽어라 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이 원인이 무엇인지 샅샅이 찾아내어서 결국은 궁극적인 원인도 아닌 인간을 미워하고 사람의 가슴에 칼 꽂고 하는 그러면서 범죄하면서 살아오는 짐승과 같은 삶이 흔들리는 그런 삶이 바로 그리스도를 모르는 옛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의 놀라운 특징은 평안입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궁핍이나 내 눈앞에 닥친 가시적인 시련이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배반하고 떠났을 때에도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우리들이 서있다면 복음의 반석위에 우리가 서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들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그런 인격적인 특징과 평안을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향해서 주님 말씀하신는 것입니다. Where is your faith? 너의 믿음이 어디있는가?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파도와 같이 가랑잎과 같이 그렇게 흔들리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무슨 좋은 것을 얻을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안절부절 하고 평안을 잃고 사는 사람들은 말입니다. 축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계속 덜덜 떨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러한 안절부절 하는 사람 세상 사람들도 복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물며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을 받았던 사람들이 평안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고 할 것 같으면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중대하게 병들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거기를 두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기억 하십시오 영원히 진리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하나님이 장단맞춰주시리라고 여러분들의 장단에 맞추어서 하나님이 춤추실 때를 기다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위해서 지음 받으신 분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은바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주님의 뜻을 위해 살도록 그리스도 예수의 거룩한 피로 씻은바 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믿을 때 우리는 이미 이런 고백을 한 겁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과 화목한 생활을 하겠노라고 하는 결심이 이미 서려있는 것입니다.
평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그런 삶을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어디 있냐고 물으시지 않습니까. 그때 여러분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오주여 전당포에 맡기었나이다.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아니 오년동안 그 교회에서 묻어두고 왔나이다. 그렇게 말해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실한 삶은 부실한 하나님과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 하라 그리하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은 아 그렇구나 생각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가 인생을 살면서 뭔가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기도할 때 그때 어땠습니까. 제일먼저 무엇인가 큰 기도의 제목이 떠오를 때 기도하기 전에 평안하다면 그 사람은 둘 중 하나입니다. 엄청나게 믿음이 뛰어난 사람이든지 아니면 멍청하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후자일 가능성이 훨씬 더 많습니다. 머릿속에 아무리 손을 휘저어보아도 돌맹에 밖에 안 잡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걱정과 근심을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절히 기도하고 그러니까 그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니까 우리의 기도를 밀어주시고 그런 게 느껴지고 그러면서 기도할 때 이상하게 하나님 앞에 놀라운 응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제일먼저 하나님이 그 일를 통해서 역사하실 거라는 응답이 어떻게 찾아오십니까. 하나님이 무엇으로, 평안으로 찾아오십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이해가 안갑니다 왜 눈으로 보고 증거로 보고 아 그렇구나. 안심을 하고 들어와야 하는데 믿음에서는 이런 일반법칙이 적용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벌써 무엇인가 들어오는 겁니다. 평안이 그러면서 아 평안이 밀려오는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실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하나님이 해주시겠구나. 아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구나 하고 믿게 되는 겁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러면 복이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법칙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는 항상 반대로 들어가잖아요. 하나님 복을 주시옵소서. 그래야 평안하겠나이다. 그리고 하나님하고도 잘 지내겠습니다. 완전히 거꾸로 우리가 생각합니다.
그러면 백날 가도 곤고한 거하고 기도하는라고 고통을 당하는 거하고는 별개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괴로워 하는 것과 믿음을 따라 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은 똑같은 게 아닙니다. 불신앙의 갈등과 거룩한 번민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린 정반대입니다. 주여 복을 주시옵소서. 내가 믿겠나이다. 그러면 나도 평안에 들것이고 주님께도 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과 평안 하라 하나님과 화목 하라 그리하면 너희들에게 복이 임하리라 하나님의 관계를 돌아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해지고 또 평안해지고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또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두 가지입니다. 제일먼저 네 인생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이라. 그 입에서 나오는 교훈을 듣고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면 하나님 제가 너무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예요. 가장 정신을 차리고 주님을 바라볼 때에는 평지를 걸어갈 때가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 때 어두운 길을 걸어갈 때 주님의 손을 꼭 붙들어야 됩니다.
(예화)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구경을 기본적 있어요, 애들이 부모들 손잡으려고 합니까, 참 여기저기 극장 뛰어다니고 막 그러잖아요. 문을 딱 열고 캄캄한데 들어가면 엄마아빠 손 꽉 잡고 놓지 않습니다. 그런 태도로 살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평안한 때는 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같다가 기껏해야 가장 하나님의 음성이 필요하고 그 입에서 나오는 교훈이 필요한 그때에 바보같이 하나님 말씀을 듣기에는 하나님 제사정이 너무 딱합니다. 주님도 저 같은 자리에 한번 있어보세요.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 있을 이유도 없으신 분이시고 아무자리에나 그런 말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제일 바보 같은 겁니다. 마귀가 사단이 가장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그거예요. 풍요할 때는 풍요해서 하나님 교훈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막 흔든다. 보태주면서 마음을 흔들고 그 다음에 또 커다란 어려움을 만나서 곤고해지면 곤고한 것 때문에 마음을 흩트려서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도록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그게 뭐냐 이거야 해결할 길이 있는가. 그리고 막 혼자 버둥거리고 혼자 버둥거리는 가운데 결국은 버둥거리는 상황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은 마치 뭐와 똑같으냐면 똥물에 목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진짜 똥물 말고 개천에 고여 있는 물이 그냥 물이 조용히 고여 있다가 가만 내버려 두면 그래도 맑은 물이예요. 그 속에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면 밑에서 더러운 것들이 다 올라와서 다 뒤집어쓰게 됩니다. 가만히 코 박고 있으면 맑은 물인데 거기서 살겠다고 허우적거리니까 뒤집어쓰는 겁니다. 그렇게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두드리지 않고 그러면서 거기에서 버텨보겠다고 몸부림 치는 가운데 죄악이 다시 그런 맘을 얽어매는 거예요. 어려움 속에서 더 큰 어려움이 뒤엉키면서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그런 고리를 끊어 버려야 되는 거예요. 끊기 싫으면 더 고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없이 고난 중에 처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훈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생을 실컷 시키시는 겁니다. 그것만큼 가장 훌륭한 방법입니다. 고생을 실컷 시키셔서 자기의 힘대로 몸부림을 쳐보다가 결국은 얼마나 마지막에 비참하게 되는지 세상도 잃어버리고 하나님도 잃어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 내가 하나님 의지 할지 않고는 살수 없는 인생이구나. 그걸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뭘 깨달았습니까. 자기혼자 살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진작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왜 그제야 깨닫습니까. 고액의 과외비를 지불하고서야 깨닫는 이유는 뭡니까. 사교육이 그렇게 좋은가요. 교회에서 가르치는 공교육이 더 좋지 좋지않습니까. 그래서 커다란 어려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시련의 폭풍이 오고 곤고한 생명이 그때 생각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것처럼 내가 홀로 망루에 서리다 주님과 단독으로 대면하리라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나님 앞에 홀로 내가 나아가서 주께 여쭈어 보리다. 그리고 하나님 내 인생의 폭풍이 어찌된 일이옵나이까. 하나님 앞에 여쭈어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그속에서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해 주시는 힘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결국은 돌아오는 과정을 3년 후든 5년 후든 10년 후든 반드시 거쳐서야 그 인생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화목하게 돌이키시고 평안을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왜 그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데 빨리 돌아와서 희생을 줄여야 됩니다. 그리고 거기 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성경은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두라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는 겁니다. 그래서 환경이 가져다준 절망적인 상황을 가슴에 새겨봐야 절망밖에는 찾아올 것이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으시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위기 상황 속에서 내게 말씀하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위로와 힘을 얻고 거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나면 이제는 커다란 시련이 우리의 인생을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하고 평안도 다시 찾고 주님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하고 하면서 그 시련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복 받을 만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당신의 용량에 맞게 우리를 변화시켜 주신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하늘에서 단비가 쏟아져 내린다 하더라고 양동이 들고 오는 사람은 양동이로 받아 갈 것이고 컵을 들고 오는 사람은 정성을 다 기울여서 컵에다 한 컵 받아갈 것이고 수저들고 오는 사람은 한 수저 받아 갖고 가는 겁니다. 생각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고 하나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왜 흔들리고 그럽니까. 그렇게 살아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꼭두각시처럼 줄 하나에 매달려 가지고 춤추고 쓰러지고 울고 흐느끼고 그런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