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알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3-6)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시는 하나님께로 귀순하게 하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는 그 마음은 너무나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당신에게로 끊임없이 돌이키시려고 노력을 하시고 실제로 그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인간이라는 것이 쉽게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까 너희의 인애가 아침 이슬과 같도다. 아침에 이슬이 맺혀있지만 해가 뜨고 나면 그 이슬은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슬과 같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가도 해가 뜨면 사라지는 이슬과 같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소위 너희가 이야기 하는 사랑이요 믿음이 아니냐. 그러니까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시려고 언제든지 애를 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여러 모양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는 길이 여태까지 참 옳은 길인 줄 알았는데 말씀을 듣고 깊이 깨닫고 나니까 아, 이게 이 길이 아니구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여태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분명히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길이요 기뻐하시는 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걸어갔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 길 뿐만 아니라 길 주위의 모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는 길이 참 잘못된 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귀에 안 들어오다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두운 마음의 눈을 밝히시니까 참된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돌이키시게 하십니다.
또 어떤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어도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가책이 일어나죠.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이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의 가책을 또 들게 하십니다. 때로는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너무 깨닫지 못하니까 이 길로 갈 수 없고 저 길로 갈 수 밖에 없도록 ,이 길로 못가고 저 길로 갈 수 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환경을 막으셔서 그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저히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야단을 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는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최고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심판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포기하시면 로마서 1장에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두십니다. 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못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경고하십니다. 그죠? 앞으로 일어날 큰일을 때론 작은 일로 경고 하십니다. 때론 앞으로 당할 큰 슬픔을 작은 슬픔으로 경고하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읽을 줄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생을 허락하셔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귀를 잡고 ‘돌아오라’ 소리를 치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론 우리에게 사건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끊임없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서 주님이 도저히 불가능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징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프게 하실 때 하나님은 동일한 아픔을 가지고 그 하나님의 자녀들을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당신이 원하시는 삶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권고하시고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고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목적은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깨달으면 끝납니다. 깨달으면 끝납니다.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게 하시기 위해서 훈련시키시는 시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강해지면 끝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너희가 시험을 만나거든 그 시험이 물러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가운데서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고 그렇게 권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때리시고 찢으셔서라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 부름에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치고 때리신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더 크고 놀라운 위로와 싸매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 증명을 가지고 계시고, 누구도 이것을 포기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돌이키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는 지를 오늘 호세아 선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왜? 너희가 아무 일 없고, 평안하고, 잘 먹고, 잘 살고, 그러고 나면 그것이 축복이고 또 너희에게 고통이 오면 그것이 모두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가면서 큰 환난과 시련을 당하면 제사를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재물을 드리면 하나님의 마음이 풀리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제물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 불타는 것이 아니라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죄와 그리고 하나님 앞에 불결한 것들이 타 태워지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참다운 변화가 그들이 드리는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 여호와의 나오심은 새벽에 때가 되면 해가 떠서 볕이 비치는 것과 같이 그렇게 하나님은 모두들 이제는 하나님의 도움이 끊어졌다 할 때에 도움이 나타나고 여호와께서 이제는 우리에게서 사라지신 것 같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그 찬란한 그 임재의 빛을 드러내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비가 매우 귀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비가 오면, 이른 비입니다. 그 때 파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늦은 비가 오면, 그 늦은 비를 맞고 마지막에 성숙한 다음에 늦은 비 이후에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번의 비가 때 맞춰 오지 아니하면 농사는 흉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무슨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때가 되매 파종시기에 비를 내리시고, 그리고 때가 되매 비를 내리셔서 다시 그 곡식을 성숙하게 하시는 그 농사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농사를 지으면서 그렇게 일정하게 때가 되면 무슨 약속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는 것, 아침이면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을 너희들이 느껴야 되지 않느냐, 불성실하고 불신실한 것 약속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그 시편에 이른 대로 사람이 고통 가운데 거하고 곤고함 가운데 영원히 갈 길을 몰라 헤매는 이 모든 고통스러운 일들은 하나님께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버리므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라. 그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리고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에게 아침이 되매 빛을 주시고 그리고 이른 비가 내릴 철이 되매 이른 비를 주셔서 파종하게 하시고, 그리고 늦은 비가 내리게 하셔서 곡식을 거두게 하시는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거기에 늘 계시지만 우리들은 수시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그의 신실하신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지 아니 하시고 만약에 우리의 참된 구원과 모든 믿음이 우리의 신앙의 상태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에 달렸다고 한다면 우리의 이 구원의 이력서는 마치 주민등록의 전출입신고 하는 그 자국처럼 구원받았다가 취소되었다가 구원받았다가 취소되었다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선지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이 세상에 인간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모든 고통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았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그 지식 때문에 그것을 사다리 삼아서 깊은 수렁에서 나왔습니다. 곤고함과 위기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가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알았고 자신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그 시련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그 시련 속에서 참다운 회복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붙들고 그들은 구출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그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극한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고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시련의 골짜기에서도 자기가 가야할 길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부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과 역경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시련 자체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우리를 그 시련 가운데 두시고 그 시련 너머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배우는 것이 그 시련으로부터 자신을 이기는 가장 훌륭한 지름길이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타오르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찢으셨으나, 그리고 치셨으나, 고통 받고 있으나, 캄캄한 가운데 있으나, 흑암 가운데 있으나,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믿게 하고, 신실한 하나님을 붙들게 하고, 의지하게 하고, 그 하나님을 인하여 시련을 이길 힘을 공급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서 이런 지식을 우리에게 충만하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별명이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가장 큰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묻고 계십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떻게 하랴? 그리고 유다야,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뭘 원하느냐? 에브라임아, 너 무얼 원하느냐? 내가 너희를 어떤 사랑으로 인도해서 여기까지 너희를 이끌어내서 그 캄캄한 애굽의 땅에서 너희가 종살이 할 때 내가 너희를 독수리가 새끼를 날개로 업어 나름과 같이 너희를 날라서 광야에 때로는 전갈이 나오고, 때로는 물이 없어, 마르고 때로는 악한 나라 이방 군대들의 기습이 있고, 때로는 홍해가 앞을 가리고, 때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여리고 성과 같은 장벽이 너희 앞에 있었을 때, 누가 너희를 인도하랴. 그것을 추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모든 힘은 과거를 회상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입니다. 과거가 없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과거를 보면서 새 힘과 용기와 그리고 위로를 얻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랴? 그 놀라운 사랑에 대하여 에브라임은 올바르게 반응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주셔서 그를 시련 가운데 건지시고, 폭풍 가운데 구출해 내셨고, 그리고 여리고성을 부수시고, 요단을 마르게 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셔서 짓지 않은 집에서 살며, 심지 않은 포도나무의 실과를 먹게 하셨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따라가셨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춰 주셨습니다. 때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어보기도 하셨습니다. 이리 가고자 할 때 마치 어린아이 팔에 억지로 이끌려 가는 부모처럼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시면서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부르셨습니다. 한 번에 징계가 있기 전에 그 전에 수많은 경고가 있는 것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들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고를 무시하면 하나님께서 정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러잖아요. 이야기하다가 하도 기가 막히면 내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니? 어떻게 해주리? 정말로 해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도 기가 막히니까 묻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걸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하나님이 물을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이 하나님을 향해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어떻게 하리이까? 여호와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물어야 되는데 하나님이 하도 기가 막히니까 유다야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에브라임아,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자식이 하도 속을 석이면 부모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는 그리고 얘야 도대체 내가 너를 어떻게 해 주랴 어떻게 하면 네가 사람이 되겠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부르던지 성경을 볼 때 우리들이 지울 수 없는 인상은 하나님이 우리의 인자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그 자녀들의 상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그 돌아옴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느끼든 하나님은 언제나 인자하신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악하고 성품이 모질기 때문에 우리는 자녀들에게 바르게 하지 못할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찬양)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한참 은혜 생활할 때 지체를 이렇게 쳐다보면 그럼 안 되는데 계속 딴 길로 갑니다. 그러면 옆에서 그를 위해 기도하면 마음이 너무 슬퍼서 이 찬송을 부릅니다. 도망가기는 지가 가고 우는 거는 왜 내가 웁니까?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은혜 받은 사람들에게 기도의 영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끊임없이 부르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시잖아요.
하나님이 그 에브라임과 유다를 향해서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하랴?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정말 너희가 내게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내가 무엇이든지 다해주고 싶구나. 도대체 어떡하면 네가 나에게 돌아올 수 있겠느냐? 선지자는 오늘 그렇게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겠느냐? 선지자는 안타깝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뭐 어려서 그렇게 크게 부모님들에게 야단을 맞으면서 살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기억이 납니다. 호되게 얻어맞고 얻어맞기 전에는 두려움이 먼저 생기죠. 잘못했으니까. 그리고 공포가 극도에 달하는 것은 몽둥이를 들고 다가오실 때 이제 공포가 극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막 얻어맞는 게 시작이 되고 나면 오히려 공포가 덜합니다. 실컷 얻어맞고 끝나고 나면 이제 아파서 울죠. 그 다음에 부모가 안아주면 그 다음에는 사랑에 겨워서 우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께로 돌이키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때리셨기 때문에 싸매어주시고 치셨기 때문에 우리를 고치십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요.
그래서 오늘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호소합니다.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구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는 말씀을 들으면서, 아, 그래 참 이렇게 살아야 돼. 정말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 어떻게 살까?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느껴질 때에는 이전에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지금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 모든 고통이 강물처럼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 때는 마음속에서 여리지만 그러나 강한 결심이 일어납니다. 그래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내가 살지 않으면 내가 어디서 살 수 있겠나? 그런데 그게 견고하지 못하고 오래 가지를 못하고 너무 약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름 같아요. 구름이 한 쪽에 보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보면 또 구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큰 그림을 그리다가 갑자기 허공중에 아주 작게 휴지가 찢어지는 것처럼 찢어져서 그래서 다 날아가고 없어져 버려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 선지자는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아 하나님을 행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 마음에 선한 결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아하, 그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그런데 마음속에 질문하는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랑 없이 살 수 있어? 아하, 도저히 살 수 없어. 그래 하나님의 사랑대로 내가 살아야지. 그런 결심이 속에서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개와 같고 구름과 같고 이슬과 같아서 잠시 있다가는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가는 또 나타나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이 더 견고해지고 그리고 우리에게 왜 그런 은혜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주장하고 주관해서 우리가 예배에서 그걸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끝나고 나아가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속에서 그 어떤 곳에서 시련이 있고 문제가 있는 나의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그 은혜가 나를 주장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붙들어서 유혹과 시련을 이기고 고난과 핍박을 이기고 고통과 환란을 이기며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는 이런 견고한 믿음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도록 허락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말합니다. 너의 이 인애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인애가 그렇게 있다가는 사라지고 그리고 또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고 하는 것처럼 정함이 없이 그렇게 하나님이 너희를 향해 베푼 사랑은 한이 없지만 너희가 하나님을 향해서 가진 그 사랑과 인애가 너무나 작으니까 그것이 환경과 시련이 너희에게 크게 다가올 때 곧 사라지고 유혹이 다가올 때 그것을 붙들고 살지 못할 정도로 작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결국은 너희들은 그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은 것이 아니냐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얘들아 나는, 나는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하나님이 건져내시고, 그를 낳으시고, 젖을 물리시고, 그리고 그들을 자라게 하시고, 그들과 함께 혼인관계를 맺으시고, 그러면서 성숙해 왔는데 하나님은 또다시 나는 주님이 답답한 것이 뭐요? 얘들아 너희는 내가 누구인지를 좀 알아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 오늘 선지자는 또한 말합니다.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하나님이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기 때문이다. 얘들아, 내가 정말 원하는 산 제물은 바로 너희의 마음, 너희의 마음을 나에게 다오. 예배를 드릴 때에도 좀 몸만 나오지 말고, 헌금만 가지고 나오지 말고, 예배를 나올 때도 네 마음을 다 드려서 하나님이 이 마음에 진정한 사랑과 이 고백을 받으셔야 될 텐데. 하나님이 내가 이렇게 드리는 마음으로 다 드리는 이 예배를 안 받으시면 어떡하나.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가장 좋은 마음을 다 드릴 수 있을까.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어질 것 것이 아니라 나는 네 마음을 원한다. 내 사랑을 보라. 내 사랑이 언제 너희에게 형식적일 때가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형식적일 때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식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사랑해주시면 누가 당신을 인정해 줄 것 같아서 형식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마음을 다 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에게 작은 것 하나를 주실 때에도 주님은 마음을 다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자녀가 이것을 누리면서 이 세상에서 나의 이름을 배반치 않고 살아야 할 텐데, 최선을 다해서 마음을 다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건성으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 적이 있어요? 알았다. 알았다. 대충대충 하고 빨리 끝내라. 나도 시간 없다. 하나님은 그런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다해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하나님 앞에다 드리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나 번제가 아니다. 너희는 교회를 크게 지어놓고 훌륭한 제물을 제단에 잔뜩 쌓아놓고 그걸 가지고 너희는 스스로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말하지만은 그러나 기억하라. 나는 마음이 있는 곳에 있느니라.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가 마음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리고 마음으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래서 항상 진심으로 내 앞에 나아오는 그 사람, 나는 그 사람을 찾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이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음을 다해서 정말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알고 싶어 하고 애를 쓰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도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럼 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데? 뭐 이 모양대로 사는 거지. 그러면 세상이 변화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거기에 하나님과의 샬롬, 그리고 거기에 참된 생명과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끊임없이 부르십니다. 오늘도 여러분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는 그 무한한 방법들을 그때는 몰랐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하,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거였구나, 깨닫게 되는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든지 세월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불순종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거였는데 그러지 마시고, 오늘 나를 부르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느끼게 해 주시옵소서. 여러분은 환경 때문에 고통하고 이 세상에서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 때문에 고통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는 여러분을 인해서 고통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바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갑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