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살피라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애 3:40)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길들을 살피자, 조사하자 그리고 여호와께로 까지 돌아가자.” 그래서 ‘행위’라고 번역된 이 성경부분이 히브리어 성경에는 ‘길들’이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어렸을 때 추운 겨울이면 눈이 새벽에 하얗게 내린 학교 운동장이나 들판을 걸어가는 적이 있습니다. 한참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면 발자국이 쫒아옵니다. 발자국이 더 빨리 쫒아옵니다. 앞에는 하얀 눈이 있고 꼬부라져서 돌아가면 발자국도 꼬부라져서 돌아갑니다. 빨리 가면 빨리 쫒아오고 천천히 걸어가면 천천히 쫒아옵니다.
삶은 곧 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곧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걸어가면 걸어가는 것은 반드시 우리의 인생에 길을 만듭니다. 그래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떤 길로 걸어갈 지 바보가 아니면 예측할 수 있습니다. 걸어온 길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은 것 같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하나하나의 발걸음이 모아져서 기다란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은 생각 없이 걸어온 것 같은데 걸어 온 인생의 길을 뒤돌아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 길이 어떤 길이었는가, 또 이 길이 어떤 길이었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판단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내딛은 것 같지만 오랫동안 그 길을 걷고 나면 그 길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걸어온 그 길이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선한 길을 한 걸음이나 두 걸음 내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발걸음들이 모아져서 이룩되어진 인생의 길이 악한사람이 걷는 그 길이 선한 길일 수 없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그 인생의 많은 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길과 같을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를 사모하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길이 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있는 것들만 붙들고 살려고 하는 세속적인 사람의 발걸음과 똑같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좁은 문으로 넓은 문으로 넓은 길로 좁은 길로 가는 인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안목대로 사는 길은 세상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은 생명의 길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싫든지 좋든지 우리는 하루를 떠밀리듯이 살아갑니다. 죽지못해 살아가든 신이 나서 살아가든 지난주도 7일 동안 살아왔고 또 이번 주에도 일주일 동안 살아 갈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생명이 있는 날 동안 살아갈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길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길이 결정되어 간다라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구약의 인물들을 신앙을 평가하실 때 “이 사람은 다윗의 길로 행하였더라” “저 사람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더라” 어느 길을 걸어갔느냐가 하나님이 그 인생을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커다란 죄악으로 말미암아서 이제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민족이 모두 포로로 끌려간 비참한 멸망을 당해서 3장에서 그는 특별히 그 민족의 죄로 말미암아 당한 심판의 고통이 심하게 자기를 찌르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인간이 동원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을 동원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당하고 있는 비참한 상황을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애 3:1-3) 말했습니다.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애 3:5-6) 선지자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처하게 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는 그 비참함과 고난을 하나님 앞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길을 걷느냐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판단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큰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볼 때에 이 선지자는 그 길이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고통을 당해서 아파하고 괴로워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길을 돌아보려고 하지 아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고 우리가 위기를 만나고 역경을 만날 때 주님께서 하나님께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소연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고 고통에 처해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것만으로 우리의 고난의 문제가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선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길들을 살피자, 조사하자.’ 이 말은 샅샅이 찾는다는 것입니다. 걸어온 길, 지금 걷고 있는 길, 그 길을 살피고 조사해야 된다는 사실을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걷고 있는 이 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고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좋아하시는 길이신지 살피고 끊임없이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죄악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돌아가기 위하여 회개도 많이 하고 울부짖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길을 샅샅이 살피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잘못된 길을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미약함,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 생각은 알아도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힘의 부족,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길을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잘못 걸어갈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목자의 음성을 떠나서 그리고 목자의 품을 떠나서 잃어버린바 될 수 있고 그리고 양떼를 이끄는 목자의 음성을 거절하고 잃은 양이 되어서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고 유리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잘못 걸어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성경이 우리에게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샅샅이 우리의 길을 살피고 조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열심 있는 신앙으로도 잘못된 길을 걸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더더욱 자기의 길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자기가 살아가는 신앙생활에 제법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열심 있는 신앙 때문에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 걸어 간 길이 이유가 무엇이든지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하나님 앞에 판단 받는 우리의 인생은 마지막 결과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인생의 길이 어떤 길이었는가? 만약에 우리가 걸어간 인생의 길이 주님이 바라보실 때 곧고 올바른 길로 걸어가려고 애써왔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하고 어떠한 역경과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면서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쫒아서 살려고 애써온 길이라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게 된다면 그 사람이 인생을 걸어오면서 당했던 그 수많은 고난과 환란, 말씀을 따라 걷지 못하게 하던 그의 인생길을 위협하던 그 많은 재난과 어려움, 누구도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위기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기위해 받아야 했던 모든 핍박과 고난, 때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그 길에서 때로는 방황하고 고뇌하고 고통 하는 그 모든 부정적인 인생의 순간들은 하나님 앞에 더욱 빛나고 값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이 아니었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마음대로 살아온 길이었다면 그가 그렇게 살아오는 인생 가운데 겪어야 했던 많은 고난과 눈물 나는 아픔과 쓰라린 고뇌와 수많은 방황이 하나님 앞에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결국은 하나님 앞에 핑계거리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걷는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길을 샅샅이 살피고 조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살라고 요구하시는 삶의 표준을 벗어나 있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호 5:4)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던 것은 그들의 삶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니까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찾아갈 수 없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으니까 그들의 삶은 점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습관적인 죄가 우리의 연약이라는 이름 아래 지속적으로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선지자가 우리의 길들을 살피자, 조사하자. 그들이 걸어갔던 길이 한 길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수만 가지이듯이 그들이 걸어가는 삶의 길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시인은 마치 간첩이 적진을 탐지하듯이 그리고 스파이들이 적의 진지와 창고를 염탐하듯이 빠짐없이 샅샅이 살피고 조사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에게로까지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보면 사사기에 나오는 백성들과 흡사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사기에서 볼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이 어떤 것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축복해주시고 은혜를 주실 때 그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곧 타락합니다.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징계 받을 때 그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합니다. 주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십니다. 용서하시고 나면 하나님은 마땅히 당신의 언약을 받은 백성들에게 축복하십니다. 그들은 축복받은 후 다시 타락합니다. 이런 악순환들이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되풀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백성 삼으신 것은 이제는 옛 길로 가지 말고 새 길로 걸어가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옛 사람의 길을 버리고 새 사람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길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길을 살피고 조사하자고 말합니다.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생각 없이 발걸음을 내딛고 우리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뒤에 많은 우리의 발자국을 남깁니다. 우리는 미래의 일에 대해 대단히 많이 근심하고 염려합니다만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현재의 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생각합니까? 미래의 일에 대해서 염려하지만 오늘 이 한걸음 한걸음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길인지를 생각하는 일에 얼마나 많이 마음을 쏟고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너희의 지난 길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나간 길, 이제껏 우리가 살아오고 걸어온 길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풀 수 있는 모든 열쇠는 우리의 지나간 길을 살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떠한 사랑으로 인도하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고 이미 우리에게 때때로 주신 은혜가 무엇이고 나를 향해 보여주신 그 신실하심이 무엇인지를 회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그 놀라운 은혜와 우리에게 보여 주신 그 신실하신 사랑 그것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왔는가 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한번 돌아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 깊이 타락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저버리고 불순종과 범죄의 길을 걸어갔을 때 그들은 남다른 깊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결국은 경솔함과 부주의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염려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 개선이 없는 것입니다. 또 오늘 하루의 문제에 너무 매달리는 사람들은 뒤에 살아 온 자신의 삶을 돌아 볼 생각을 안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껏 까지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을 믿었을 때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이제껏 까지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거의 하나님을 알면서도 혹은 하나님을 모르는 가운데 죽은 자와 방불한 삶을 살고 그리고 상한 자와 같이 되어서 어찌 할 수 없고 살 수도 죽을 수도 없고 여기서 벗어 날 수도 없고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도 참된 길이 무엇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어도 무엇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인지 몰라서 방황하고 유리할 때 여러분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있는 그 길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길이 어떤 길이고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산태에 서 있으며 그리고 우리의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한 상황인지를 하나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고 그리고 위로부터 죄악의 사슬과 얽매인 것들로부터 우리를 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받았을 때 우리는 분명했습니다. 이제 남은 우리의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될 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왜 그래요? 너무나 비극적이고 슬퍼서 그래요?” “아니오. 갈 길이 너무나 분명하니까.” 환란이 닥치고 결핍이 닥치고 어떤 어려움이 도사린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은 정해졌고 내 뜻은 결정되었습니다. 언제까지나 나를 이 죄악에서 속량하시고 이 비참한 인생에서 건져주신 그 놀라운 사랑, 보답하며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인도 하셨을 때에 여러분 앞에 있는 인생의 길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비록 상세하게 내일, 내달, 내년, 십년 후, 이십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다 구체적으로 설명 할 수 없었지만은 그러나 움직일 수 없이 분명한 것이 있었어요. 그건 은혜 받고 나니까 미래에 대한 모든 염려가 사라져요. 주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어요. 주님 뜻대로 살면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이제는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면 된다. 그런데 은혜가 떨어지고 죄 가운데 빠지면 그 분명하던 길이 어두워지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고 어떻게 살아야 되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되고 자기가 무얼 하며 사는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든 시야가 흐려진다. 그렇게 분명하고 선명하고 간단해 보이던 인생길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큰 혼란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길을 떠난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고 말씀으로 날마다 나를 인도해 주셔서 내 인생길로 하여금 어느 길로 걸어가고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고 내가 어떻게 말씀에 부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인 하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 커다란 축복이었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귀한 것이 손에 있는 동안에는 귀한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귀하고 소중하던 것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 귀한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이제껏 까지 걸어온 인생길 가운데 여러분들을 특별히 움직이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나면 완전한 삶을 살게 됩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은혜를 주셨는데도 여러분들은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전히 죄가 강력하게 역사하고 붙어 다닙니다. 그리고 그 죄가 끈질기게 눌러 붙어서 여러분의 삶을 방해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벌하였지만은 원주민들이 그 영토를 끝까지 떠나지 아니하고 눌러 붙어 앉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에 커다란 손상을 가져다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죄는 끊임없이 눌러 붙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는 완전하고 놀라운 은혜일지 모르지만 우리 자신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 안에서 죄를 이기며 싸우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또 하나님이 완전한 은혜를 주셔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때 우리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늘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반응 할 수 있는 귀가 열려 있으니까 잘못 걸어갔으면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면 나는 이렇게 좋다고 나는 도저히 그걸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살아갔는데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해 보면 그래도 내 마음에 도저히 안 들지만 그 길 걸어가야 됩니다. 누구든 다 용서해도 그 인간 하나는 내가 도저히 용서를 못했는데 하나님 앞에 기도하니까 듣고 깨달으니까 그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은혜 받는 사람들은 마음에 고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우리에게 밀려올 때 먼저 우리에게 큰 고통이 일어납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은혜가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하여금 은혜 되지 못하는 우리 속에 있는 잘못된 자아와 악한 것들을 말씀이 무너뜨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깨뜨려지고 부서지지 아니하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길속에서 잘못된 길을 수없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며 걸어가야 될 텐데 그런데 올바른 길을 걸어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니겠는가? 이 세상을 살다 간 그 어떤 그리스도인도 어떤 성도들도 똑바른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은 없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길이 이렇게 되어있는데 그 길을 비척거리면서도 천국까지 가냐, 아니면 그냥 가다가 저 쪽으로 빠져서 출발한 길은 보였는데 다시 돌아온 길은 보이지 않느냐, 아니면 출발하자마자 멀리 나갔다가 인생길 끝날 때 돌아왔느냐 그런 차이입니다.
진리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어려움도 있고 고난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귀한 것을 귀한 것인 줄 모른다고 말씀드린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믿음 생활 해 나가면서도 우리가 온전한 신앙생활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그때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깊이 돌이키고 뉘우치고 다시 결심해요.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잠시 한 두 발걸음은 잘못된 길로 걸어가게 해도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귀한 것인 줄을 그 귀한 것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너무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오랜 시간 동안 쌓이면 그다음엔 스스로 자기의 길을 살펴 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하던 미래의 길은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현재 자기가 어느 지점에 서 있었는가 하는 인식이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걸어왔던 수많은 길은 돌아보기엔 너무나 엄청난 길입니다. 잘못됐습니다. 어디서부터 풀고 어디서부터 돌려 놓아야할 지 알 수 없는 길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떡하면 잘 먹고 편히 살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이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관심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을 바꿀 때 가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걸어 온 길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사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이 고집,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이런 길들을 걸어오게 한 마음에 있는 수많은 생각들,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마음, 이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 길을 계속 걸어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수없이 예배하고 집회를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삶을 하나님 앞에 바꾸도록 도전받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만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또한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도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로 까지 돌아가자’ 혹은 ‘우리가 우리의 길을 살피고 돌아가자.’ 또한 ‘우리가 여호와께로 까지 우리가 돌아가자’ 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으로써 이렇게 여호와에게로 까지 돌아가자고 말합니까? 여러분 ,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몇 미터 거리를 규칙적으로 유지하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입니까? 100미터쯤 유지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너무나 뜨거워서 50미터쯤 유지하고 살아갑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 거리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곁에서 동행하는 것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충만한 영광을 드러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선지자는 무너져버린 이스라엘의 왕국을 바라보면서 그 이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뻐하시고 왕국과 동행하셨을 때 수많은 이방의 백성들이 그 나라에 조공을 드리며 그 왕께 절하기 위하여 사신들이 몰려왔던 그 영광스러운 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사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율법을 가르치고 증거 할 때 수많은 백성들의 믿음의 반응이 있고 왕궁 가운데 여호와를 경외함이 있고 왕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사랑이 있는 여호와께로 돌아가 그 나라, 그 때를 그리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집을 떠나간 탕자, 집 잃은 양과 같지 아니하고 집안에 있어서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을 기뻐하지 못하고 살아갔던 그 아들과 같이 하나님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교회생활 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지 않습니까? 일정한 선을 우리의 인생가운데 그어놓고 기독교 신앙 가운데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주일 예배 한번 드려 주는 것이다, 십일조를 하는 것이다, 혹은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정도가 내가 하나님 앞에 할 수 있는 정도다, 줄을 그어놓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성경은 이러한 신앙생활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좇는 것이 아니면 버리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이 아니면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회색 지대는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우리의 생과 우리의 모든 뜻, 그리고 우리의 마음,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모든 인생의 계획,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내 인생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나를 죄 가운데 구해 주셔서 나를 사망의 자리에서 소생케 해주신 우리 하나님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 성경의 증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 있어서 회색지대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좇는 것과 버리는 것은 오직 양자택일의 문제이지 중간에 있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비유에서 말씀하실 때 천국은 마치 그물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물을 바다에서 확 쳐서 수많은 물고기를 거두어 드린 다음 그 다음 거기에서 쓸 수 있는 물고기와 쓸 수 없는 물고기를 거두어 내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물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가 절대로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오직 교회는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줄 뿐입니다. 우리는 각자 말씀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선지자는 우리에게 여호와에게로 까지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죄를 몇 가지 회개하거나 아니면 우리들이 이제껏 가지고 있었고 나라가 멸망하게 된 몇 가지 동기, 몇 가지 잘못들을 고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여호와에게로 까지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가 간구하고 기도할 때 가징 가까이에서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시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우리 앞에 신앙적으로 뛰어나고 놀라운 신앙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뛰어나게 지혜로웠습니까? 우리보다 용기 있었습니까? 우리보다 건강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우리보다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이었습니까? 우리보다 매우 특별한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물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모든 똑같은 연약한 인생들이었습니다. 참 위대한 위인들을 보면 깊이 타락하고 죄 가운데 빠졌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새롭게 쓰임을 받아서 놀라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태어나면서 위대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질그릇처럼 연약하고 바보와 같이 어리석은 데도 그렇게 여호와에게로 까지 돌아가 사니까 지혜가 없을 땐 그들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식이 부족할 땐 하나님이 지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용기가 없고 바보와 같이 매우 연약하고 심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강한 힘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용기 있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지지난 주간에 ‘칼빈’ 선생님의 전기를 읽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결국은 자랑할 것이 하나님 밖에 없구나,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합당치 않은 사람을 택하십니다. 가장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하나님을 섬기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택하셔서 영광스럽게 하나님을 섬기게끔 만드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위대한 삶이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칼빈’ 선생님이 얼마나 연약하고 겁이 많고 심약하고 온 몸이 삼시까지 질병으로 그 사람이 걸어가면 그랬대요. 저기 종합병원 걸어간다고 했다고 합니다. 치질부터 시작해서 편두통과 온 몸에 30가지가 넘는 그 당시에 30가지니까 요즘 발달된 의학으로 조사하면 결국은 테스트를 다 해보고 나면은 살아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 심약한 청년이 프랑스에서 종교개혁을 위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는 도망가다시피 제네바에 가서 막 하룻밤만 묵고 종교개혁이 환영받는 도시로 돌아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땐 이미 그가 기독교 강요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썼을 때입니다. 그 책이 나오자마자 1000권의 책이 삽시간에 팔리면서 종교개혁 사상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개혁사상이 무엇인가, 참된 성경적인 신앙이 무엇인가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 그 방대한 책에 깜짝 놀란 것입니다. 그 유명한 제네바 종교 개혁에 주도자인 ‘파렐’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칼빈’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얘기했습니다. “당신의 여행은 끝났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는 오늘 하룻밤 묵고 떠나갈 사람입니다.” “그건 당신의 계획이고 끝났습니다.” “나는 이제 해야 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끝났습니다.” “ 저는 병도 많고 심약하여서 이러한 커다란 종교개혁에 투쟁을 이 도시에서 감당해 나간다는 것은 저에겐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선 저에게는 종교개혁을 하는 매우 아름다운 좋은 책을 써야 할 계획이 꽉 차 있습니다. 돌아가서 그것을 쓸 것입니다.” ‘파렐’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약 이 도시를 떠나면 나는 당신의 모든 휴식과 모든 삶에 저주를 퍼 부으시길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당신의 휴식은 끝났고 당신은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와 같이 그 말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거기에서 삽니다. 중간에서 쫓겨났죠? 결국 24년이라는 삶을 피나는 투쟁을 해가면서 자기 편지 속에 뭐라고 말했냐면 하루에 10번씩이라도 죽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아주 연약한 사람을 들어서 24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수많은 대적들과 원수들에 둘러싸여 하나님을 섬기며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로 돌아가 사람들에게는 강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을 붙들고 의뢰하며 사니까 정말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한번은 종교개혁을 하는 목사들과 그리고 종교개혁을 반대하는 가톨릭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개토론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가장 극렬하게 종교개혁을 반대하던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할 수 없이 퍼 부었어요. 그 때 요점은 교부들의 영감 된 저작을 무시하고 당신들은 해괴망측한 사상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칼빈이 조용히 일어서서 원고도 하나도 없이 무명의 핼쑥한 청년이 일어나서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하나씩 둘씩 모두 논박해 나가면서 거의 완벽하게 그 교부들의 모든 저작을 외우면서 인용을 했습니다. 설교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인용을 하면서 “당신은 교부들의 저작을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양심적으로 고백을 해야 합니다.” 말이 끝났을 때 가톨릭 수도사가 자리에서 힘없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은 설교로써 명성을 날리던 악랄한 비판자이었습니다. 일어나더니 그 사람은 아주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모두 허물어진 음성으로 그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오는 이 젊은 칼빈의 말을 들으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와 오류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성령을 거스른 지는 진리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칼빈 선생의 오늘이 답변을 들으면서 이제껏 살아온 나의 모든 신앙생활이 너무나 커다란 무지와 오류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백성들을 가르칠 수 없어서 이 자리에서 사제로서의 옷을 벗겠습니다. 하며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는 사람들은 모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연약함은 하나님의 강함을 누리게 되는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은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길들을 살피고 조사하여서 돌아가되 100미터까지만 돌아가거나 50미터 앞까지 줄긋지 말고 믿으려면 확 달라붙어 믿고 아니면 그만두자는 이야기입니다. ‘분명하게 믿고 그만두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편리할 때 그리스도인을 밝히면서 이익을 받을 수 있을 때 예수쟁이라는 이름을 밝히면서 살아가는 그런 이율배반적인 위선적인 생각은 집어치우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삶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그리스도인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선지자는 여호와에게로까지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아니 성전이 눈에 띌 때 까지 아니 여호와 그분이 100미터 앞에 있을 때 까지 아니, 오직 여호와의 품에 안길 때 까지 여호와와 동행할 때 까지 돌아가자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저녁부터 4박 5일 동안 집회를 갖게 됩니다. 그동안에 우리는 우리의 길들을 살피고 조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지점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떨어졌는가? 우리가 여호와에게로까지 돌아갈 필요가 그리고 여호와에게로까지 돌아가는 삶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들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우리가 이 수련회를 통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백성답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