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아주시길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는도다"(애 3:49-50).
이 예레미아 애가는 남한국 유다가 망하고 나서 그 파괴된 예루살렘을 보면서 예레미아 선지자가 지은 시입니다. 그래서 슬픈노래라 하여 예레미아 애가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게된 상황에서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예레미아의 애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교회론적으로 또 선교적으로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 같은 것 가지고 있지 않고 그리고 교회의 예배당에서 우리가 모인다고 하더라도 신학적으로 신약의 예배당은 구약의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이 바라보고 있던 많은 구속의 사실들과 그리고 의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모두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 익어서 이런 저런 용어들을 사용하는데 잘 가려서 사용을 하고 기도하고 가르쳐야 할 줄 압니다. 예를들자면 예물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구약의 성전에 바쳐지던 헌물을 가리키던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성경에 보면 이렇게 예배의 시간에 바쳐지던 헌금의 이야기가 안 나오고 이것을 연보라고 불렀지 예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또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도 신약적인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교회당 혹은 교회 굳이 건물을 지칭하려면 예배당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제사라고 부르고 하는 것들은 모두 옳지 않은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아뭏튼 예루살렘 성전은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이미 성전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레미아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탄식하며 통곡하는 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의미로 새롭게 다가와야 하겠다 이것이 바로 신약적인 적용이다 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더 이상 우리에게 의미가 없지만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은 영적인 교회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도들의 연합인 이 영적인 연합, 유기체적인 생명의 연합, 유기체적인 섬김의 연합, 유기체적인 통치의 연합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성전이 항상 건전하고 건강하게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서 건물도 화려해지고 매우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교회는 영적으로 볼 때는 육적으로 눈에 보이는 건물과 달라서 이 영적인 안목에서 보면 오늘날 교회는 세속주의의 폭탄을 맞아서 한쪽이 깨뜨려지고 인본주의의 폭탄을 맞아서 깨뜨려지고 비성경적인 신비주의의 공격을 받아서 구멍이 뚤어지고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 날 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바로 이렇게 한편으로는 이렇게 영적인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들로부터 싸워 교회를 지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망가진 교회를 구석구석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의 교회의 모습은 어떻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가리켜서 너희 몸은 성령이 계시는 전이 아니냐 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공동체적으로 연결이 되어서 보이지 않는 교회, 성전을 형성하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이며 주님이 계시는 전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육체적인것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공동체적으로 본다면 우리의 보이지 않는 열린교회의 보이지 않는 교회는 어떤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까요? 어떤 대적들이 교회를 허물기 위해서 폭탄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또 교회안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가라지처럼 교회의 영성을, 교회의 경건을 허물어 뜨리고 복음적인 교리들을 훼손하려고 할까요? 이런것들을 눈여겨 잘 보며 교회를 지켜내는 일이 중요 합니다.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주님과 견고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성과 성품과 생활의 성숙을 이루어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교회가 든든히 서 있는 교인입니다. 그러나 미끄러지고 주님 사랑에서 베반하고 그리고 많은 상처를 입고 마음에 쓴뿌리를 간직할때 이것은 파괴된 성전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오늘 이 예레미아 선지자는 고백하기를 나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그치지 않고 쉬지 않고 계속 흘러 내린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예레미아가 얼마나 극도의 슬픔에 잠겨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흘린 눈물이나 혹은 난리통에 가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우는 울부짖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파괴되는 것에 대한 슬픔이 없고 대적들이 거룩한 교회를 이긴것에 대한 고통 이었습니다. 이런 눈물이 우리안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은혜안에서 주님을 늘 사랑하며 사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해 미끌어 졌을때에는, 미끌어 져서 침윤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말씀에 비추어 보고 나의 살아가는 이 생활이 주님이 원하시는 생활로 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그리고 나의 이 마음의 생각이 주님의 생각으로 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 있는지 이것을 깨닫고 슬퍼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혼의 모든 회복과 온전함은 이렇게 자신의 영혼이 질병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치료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계실 때 친히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의인을 위함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키 위해 왔노라 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자에게라만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것은 건강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건강하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치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던 생애를 보면 도덕적인 사람들 편에 서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죄 많은 사람들 편에 서시지도 않았습니다. 도덕적인것과 죄 많은 것도 중요한 구별이지만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자 편에 서셨습니다. 그가 비록 부유한자라도 마음이 가난하고 주님을 찿는 사람 가까이 계셨고 그가 비록 죄를 지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낙인이 찍힌 자라도 주님을 의지하고 찿는 마음이 있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면 주님이 찿아 가셔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새 삶을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러한 공동체를 위해 흘릴 눈물이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소위 말하는 영성이라는 것이 개인주의화 되어 버려서 그래서 내 행복을 위한 영성이고 그저 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영성 같이 이렇게 타락한 영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고 세상을 바꾸어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게 하시기 위함인데 그렇게 뻗어 나가는 영성이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오르러들어서 내 마음에 평안을 주는 영성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레미아 선지자는 어떻게 보면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흐르는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멈추지 아니하고 계속 슬픔속에 잠겨 있습니다. 동족의 죄에 대한 회개와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돌이켜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탄원의 눈물이 아니겠습니까? 스스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교회안에는 자기 힘으로 자기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회심하지 못하는 우리의 가족들은 더더욱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때 희망은 여러분들이 그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 주는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받으실 하나님의 영광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살아가는 현재의 상태를 비교하며 눈물을 흘리고 울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아는 오늘 이렇게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할때 다른곳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애굽의 강대함을 의지할 수도 없고 다른 나라의 외세를 끌어 들여 이 난을 극복하게 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결사대를 조직해서 무장 항거 하는것도 선지자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 보시기를 기다리는 도다 라고 말입니다. 혼란스러운것 같고 주님이 예루살렘을 버리신것 같지만 여전히 시인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은 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이런저런 일들이 우리에게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을 주지만 그래서 주님을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찢어지게 하고 주님을 향한 사랑이 온전히 성장하지 못하도록 가로 막지만 그러나 결국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 이신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분의 장중에 붙들려 움직여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 보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수련회에서 바라는 것도 바로 그런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을때는 언제나 지적인 충격이 있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문제를 이렇게만 바라 보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보니까 하나님은 내 인생의 문제를 나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순종할 수도 없고 그것을 깨닫기 까지는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나면 순종할 마음도 생기고 깨닫고 나면 하나님께 감사할 마음도 생겨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음을 모아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번 수련회에 많은 지체들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그리고 곤고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영혼들이 어떻게 하든지 이 수련회에 가서 주님을 만나고 깊이 변화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수련회가 하나님의 전인 우리를 고치고 또 보이지 않는 교회인 이 교회의 영적인 그러한 것들을 치료하고 고쳐서 그래서 건강한 교회로 주님앞에 서게 되고 우리도 그 몸의 지체로 다시 서게 되는 그런 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