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없는 부르짖음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잠 1: 27-30)
녹취자: 박정윤
때로는 우리 신앙의 경험은 굉장히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는거 같은데 도무지 신앙생활에 진전이 없거나 하나님의 도움으로부터 찾으면 찾을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은 형편에 놓인 지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커다란 안타까움입니다. 모든것이 그렇듯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무엇인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성경을 잘 탐구하고 찾아가면 거기서 답을 발견하고 거기서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부르는거 같은데 부르짖음이 부르짖음으로 그치고 도무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커다란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성경은 오히려 우리에게 부르짖으면 응답을 하겠고 찾으면 만나리라 라고 우리에게 많은 약속을 주고있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광경은 정반대로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찾아도 만나주지 않으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무엇때문인가 하는 것인데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크게 두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주님을 부르는 그것이 나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앞에 고통을 받거나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곤고하고 괴로운 일을 만날 때 우리는 고통스럽고 곤고하고 괴로운 일 자체를 보면서 그 고통 때문에 하나님앞에 부르짖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고통보다 더 고통스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보다는 고통을 통해 자기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잘못된 자신을 볼수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그러한 인식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주시고 어려움을 주신 것은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그에게 고난과 어려움을 주셨는데 불행하게도 이사람이 깨달은 사실은 너무 힘들고 괴롭다는 것밖에는 깨달은 것이 없다면 그가 부르짖고 도와달라고 말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의 고통을 멈추기 위한 부르짖음이지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파하시는 마음을 읽고 원래 자기가 서야할 자리로 돌아갈 부르짖음은 아니라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노하시는 가운데서도 진노하심을 통해 은혜로운 결과를 얻게 하고 싶으셔서 우리를 향해 진노하시기도 책망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사랑을 거절한 것은 큰 죄지만 책망하실 때 그 의미를 깨닫지못하고 책망속에서 하나님앞에서 반항하는 것은 더 커다란 문제를 불러 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오늘 말씀하시는 것은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게되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어려움에 처했을때 하나님을 찾지않고 누구를 찾겠으며 여호와께 부르짖지않고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겠습니까.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찾고 부르짖기전에 먼저 커다란 어려움과 위기를 만나면서 내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지금 내가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부르짖는 기도는 향기로운 기도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입니다. 자기가 있어야할 자리가 아닌 자리에서 부르짖는 기도는 많이 부르짖어도 여호와께서 듣지 않으시고 이름을 불러도 여호와는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진정한 기도의 능력의 뿌리는 순종하는 삶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대로 살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한걸음 한걸음 왔는데 벼랑끝에 섰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하나님이 구름을 보내든지 하늘가마를 보내서라도 우리를 실어나르시겠지 떨어지게 하시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담대함은 내 삶이 적어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있다하는 주님을 경외하는 삶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삶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고 순종하고 불순종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단지 어려움이 생겼을 때 그냥 부르짖어 무엇인가 해결해보겠다는 마음 하나만을 갖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앞에 기도하는것에 푸닥거리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는것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내가 서있는자리가 맞는가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지는 않은가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앞에 온전히 순종하고 주님이 서있으라하면 자리에서 부르짖는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과 감화를 줍니다. 그래서 참된 기도의 능력의 뿌리는 삶입니다. 기도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기도자체는 어렵지않지만 삶은 어렵습니다. 기도는 피흘릴일이 없는데 삶은 피를 요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한 주님을 경외하는 삶에서 만약 비롯되지 않는다면 그가 하나님을 찾는다해도 하나님이 기도와 간구를 듣지않으십니다.
두번째 하나님께서 고통가운데 부르짖는 기도를 안들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지식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무슨뜻이냐하면 하나님앞에 어려움속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동기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단 마음에서 비롯된 기도라고 할 것 같으면 그는 전심으로 이제껏 자기를 이렇게 불순종하게 만들었던 지식을 버리고 주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게 하는 지식을 간절히 구하고 찾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이 내게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와는 아랑곳하지않고 나는 내가 알아서 산다는 것은 무엇과 똑같냐하면 하나님 우리에게 이렇게 공경해라 저렇게 순종해라 이게 내뜻이다 저게 내뜻이다 자꾸 얘기하지마십시오 내가 알아서 섬겨 드리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뒷방 노인네 취급하는 것입니다. 요즘 나이 많이 든 노인들은 사람취급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로서 건장하고 사회활동할때는 나이에 의해 승복을 하는데 아주 많이 먹으면 완전히 실권없이 취급합니다. 가끔가서 용돈이나 주고 때대서 상이나 갖다주면 그거로 만족이나 하라고 하는것과 같습니다. 아무삶에 대한 주권이 없고 가정 생활에 주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알아서 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가려져있고 철저하게 어둡기 때문에 선을 악인줄 알고 행하고 악을 선이라 알고 행할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예수 믿기전에는 더 심했고 예수믿은 다음에도 성령과 말씀의 빛아래 살지않는 사람은 어두운 사람입니다. 예수믿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다 한참가다 하나님이 무너뜨려 회개하게 하시면 자기 살아온 시간들이 바보같기 짝이없을까 하면서 회개하고 애통해 합니다. 후회하고있는 날들도 기도하면서 살았고 교제하며 살았고 구역예배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산것이 다 산것이냐 눈뜬 것이 다 눈뜬것이냐 깨어있는 것이 다 깨어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아무리 찾고 부르짖어도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순종하고 영광을 돌리면서 사는 사람이다 할거같으면 당연히 그가 하나님이 자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이냐 그것을 하나님앞에 완전히 헤아리고 간구해야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몇번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지못하면 영광가운데 달려갈 인생이 수렁에 쳐박혀 헤어나질 못합니다. 그것을 알아야합니다. 길을 잘못들어섰으면 열심을 내면 낼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집니다. 가끔가다 고속도로 가다보면 불자동차가 오면서 비참하게 사고장면볼 때 난 확신합니다. 부딪힌 사람보고 다시 운전해 하면 그 자리에서 사고나겠습니까 작은 차이가 그 기로에서 차를 안전하고 쾌적하게 달리게도 만들고 비탈로 내리굴러 인명을 앗아가고 재산을 잃어버리게도 만듭니다. 동작대교 지날 때 생각나는게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동작대교 온누리교회에서 차를 몰고오는데 천천히 가면되는데 얼마나 밟았으면 그냥가다 인도를 올라가서 철장을 뚫고 떨어졌는데 그 밑에 88도로인데 여름휴가간다고 남의 식구까지 6명이 프라이드 타고 갔는데 위에서 누가 사고가 나겠냐고 생각하겠느냐 지붕을 뚫고 와서 들이받아 사람을 다 죽였습니다. 사고낸사람이 또 살았는데 그 사람이 산 것이 산인생이겠느냐는것입니다. 간발의 작은 차이가 엄청나게 많은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우리 인생을 살면서 몇번만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면 우리의 인생은 회복하기 어려울정도로 비참한 파멸의 상태로 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위기와 고난가운데 있고 어려움속에 있을때에 우리들이 정말 하나님앞에 부르짖는다고 할거 같으면 우리는 단지 고통 때문에 부르짖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그런것에서 회복되기 위해서 주앞에 부르짖는 사람들이 모두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지식을 간절히 찾는 마음을 갖아야합니다. 여태 실패하고 무너진 인생을 사는것은 현실과 씨름하다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 사람들중에 게으르게 살았기 때문에 불행했던 사람이 있습니까. 아예 일하기 싫어하고 인생의 아무 모험도 싫어하고 성실성이 없는 사람들은 위기를 만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빌어먹고 깡통이나 차고 돌아다니는데 거지가 무슨 위기를 만나겠습니까. 무언가 해보려하고 성실하게 살고 순간순간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고 도전을 하고 호전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 위기가 옵니다. 잘해볼려고 몸부림을 치고 최선을 다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커다란 좌절에 빠지고 위기에 떨어지고 커다란 낭패를 보게될 때 그 지점에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내 지혜로는 내 인생이 안되는구나를 깊이 깨닫고 이제는 내 인생이 왜이리 망가졌는지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밑천으로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그럴때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럴 때 간구하면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런 마음과 사모함을 가지고 매순간마다 하나님앞에 동일한 마음을 품으면서 아버지앞에 나가야합니다.
그래서 주위 여러분들에게 이런 부르짖고 싶어하고 도움받고 싶어하지만 스스로 어찌할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위기에 부딪혔을 때 때로는 위기를 해결하는 것과는 상관없는거 같아 보이는 일들에 몰두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하고 자신의 삶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내 지혜로 살아왔던 모든 날들이 가져다준 쓰라린 결과를 보면서 주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보도록 말씀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