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공부 방법론 (7)
녹취자: 김경애, 이경순
좋은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첫째 무엇이었습니까? 지식의 탁월성, 윤리의 탁월성, 은혜의 탁월성입니다. 사실 중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좋은 목회자가 되려면 은혜를 많이 받아야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동의를 합니다. 그런데 아주 탁월한 윤리의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동의를 조금 합니다. 조금! 그런데 탁월한 지식의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데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게 크게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동의합니까? 그러면 우리의 지금 아까 그래프에서 감성과 지성의 진자운동을 보면 지금 지성적으로 가있는 것입니까? 중심에 있는 것입니까? 감성적으로 가있는 것입니까? 중간입니까? 감정적으로 많이 가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현실적으로 우리들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목적은 은혜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고 사랑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세 가지의 균형을 이룬 목회자들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실 탁월한 윤리적인 삶을 살고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는 것은 사실은 이것이 신학교에서 제도를 통해서 저절로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물론 학교에서는 윤리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지도를 할 것입니다. 또 모여서 같이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도록 학교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어떤 윤리적인 그런 것들을 분명히 세워야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어떻게 윤리적인 삶을 살 것이며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은혜를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개인생활 즉 신앙생활의 여하에 달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학교에서 이 사람들이 윤리적인 생활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매일 쫓아다니면서 감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에 달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학교가 3년 동안에 집중적으로 여러분에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최소한 이런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신학교 때 가르쳐주고 또 이런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서 자기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은 저하고 여러 번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많은 공부들을 상당히 오랫동안 해야지만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조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공부를 이렇게 강조하다보니까 공부가 중심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목회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이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결국은 욕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호기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런 호기심을 위해서 계속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그것은 세상 사랑의 한 형태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을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는 재미를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철저한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열심은 적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하는 간절하고 거룩한 은혜의 갈망도 결핍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머리만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전도도 하지 않습니다. 기도도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만약에 인생을 살아가면 설교에 감화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공부하는데 재미가 붙은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합니다. 그것이 지식의 자랑이 됩니다. 목회자를 만나도 자기보다 지식이 모자라는 사람을 만나면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자랑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병들게 됩니다. 그러니까 학교를 다닐 때 열심히 공부를 하고 목회를 할 때에는 목회를 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야지 자기가 조금 배운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자랑하고 가르치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면 그 사람은 깊이 있는 목회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충고했습니까? ‘많이 선생 되지 마라.’ 항상 자기가 선생이라는 의식보다는 학생이라는 의식 속에서 살아야합니다.
목회는 풍선 같은 목회가 있고 빙산 같은 목회가 있습니다. 풍선은 무엇입니까? 풍선은 물위에 완전히 뜹니다. 물 위에 올라온 것이 풍선의 전부입니다. 어떤 사람이 현란한 말로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고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는 것의 전부입니다. 그것이 풍선목회입니다. 그런 설교를 들은 다음에 무엇이 궁금해서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대답하거나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아는 것을 이미 다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빙산은 다릅니다. 빙산은 9/10는 물 아래 가라앉고 물 위에 올라온 것은 1/10밖에 되지 않습니다. 무슨 뜻으로 이 예화를 드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까? 아는 것은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어야 하고 그것은 이 속에서 말하지 않은 가운데 삭히고 소화되고 자기 속에 익숙해지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까? 깊고, 높고, 맑고, 푸르게 그것이 목회자에게 주는 표어입니다. 깊고, 높고, 맑고 푸르게입니다. 깊게는 사상과 학문의 깊이입니다. 높이는 지혜와 신앙입니다. 맑게는 마음과 윤리입니다. 그리고 푸르게는 열매와 번성함입니다. 그것을 일평생 가슴에 새겨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것들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목회의 시기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이미 벌써 교회를 시작하고 담임목회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그냥 열심히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할 수 있으면 교역자 생활하는 시기를 늦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신도로 섬기면서 교회의 목회적인 의무에서 자유로운 가운데 한 2년 정도는 공부에만 헌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열심으로써 그것들을 감당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학교공부에 충실히 하라는 것입니다. 학교공부에 충실해서 최소한의 신학공부를 위한 과목들을 성실하게 이수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신학대학원 1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엄청나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아침 8시 반에 학교를 가면 수업이 끝나면 저녁 8신 20분이었습니다. 그러니 언제 리포트를 쓰고 책을 읽습니까? 그래도 어쨌든 한 학기를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2명이 우리 집에 놀러왔습니다. 그래서 결혼식을 한 앨범도 보고 놀았습니다. 놀다가 한 친구가 캐비닛을 열면서 ‘이것이 뭐야?’ 그러면서 무엇을 꺼냈습니다. 1학기 동안 제가 학교에 낸 리포트였습니다. 그랬는데 정성껏 타이프를 쳐서 리포트를 냈는데 한학기동안 낸 리포트를 모아보니까 A4 용지 500페이지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우울하게 있다가 집에 돌아갔습니다. 며칠 있다가 만났습니다. ‘그날 왜 너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니? 그랬더니 그 학생이 솔직히 이야기했습니다. 너희 집에 가서 네가 한 학기 동안 쓴 리포트를 보았는데 자기 것과 너무 비교가 되어서 자기는 그냥 대충 쓰고 친구 것도 보고 쓰고 해서 내서 요만큼밖에 안 되는데 너는 500페이지나 되더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학교공부를 철저히 하려고 애를 쓰라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 잘하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이런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이제 기말에 시험을 봅니다. 그런데 학과목이 예를 들자면 지금 내가 지난번에 와서 4시간, 오늘 와서 4시간 강의해서 8시간을 강의한 것이 한 과목이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내가 필기도 해놨을 것이고 교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시험을 보기 전에 선생님의 강의를 노트를 보면서 다시 회상하고 관련된 책을 모두 읽어서 그 과목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러면 한 학기에 배운 것을 이런 식으로 모두 목차를 써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것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이 학교의 뒷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산의 길을 따라서 산책을 합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나무들을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한 학기동안 강의한 내용을 그 학생들에게 그 나무에게 요약을 해서 전부 강의를 해보는 것입니다. ‘이번 제 강의할 내용은 목사와 신학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목사는 누구고 어떤 공부를 해야 합니까?’ 그러면서 여기에 적힌 내용을 따라서 목차는 암기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살을 붙이면서 모든 나무를 향하여 강의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러면 교수님이 무슨 문제를 내든지 메이꽌시입니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문제를 미리 가르쳐주세요. 그러면 그것만 공부할게요.’ 이러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쉽지만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교수님이 가르치지 않은 내용들도 막 생각이 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산에 서있는 수많은 나무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는 학생들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굉장히 훌륭한 학습방법이었습니다. 어떤 과목을 공부했을 때 그 과목 전체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훌륭한 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철저히 시간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쓸모없이 낭비하는 시간을 없애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핸드폰을 쓰고 있습니다. 10년쯤 된 핸드폰입니다. 사실 10년 정도 쓰면 다 망가집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똑같은 중고 5개를 샀습니다. 망가져서 A/S센터에서 고쳐달라고 그랬더니 부품이 없어서 고치지 못한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핸드폰을 주면서 이것을 뜯어서 이것을 고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없습니다. 전화가 오고 문자를 보낼 수 있으면 That‘s OK. 그리고 모든 시간을 책을 읽는 일에 쏟아야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철저히 아끼도록 몸에 배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책상에서 읽는 책, 소파 옆에는 소파 옆에서 읽는 책, 침실에는 침대에서 읽는 책, 화장실에서는 똥 눌 때 읽는 책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독서하는 일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려고 애를 써야하는 것입니다. 목회할 때는 목회하는 일에 전념해야하고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일에 헌신해야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같은 일을 할 때 빨리 빨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효율성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잠을 줄이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6시간이상 잠자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어쩔 수 없을 때에는 더 잘 수 있고 또 자야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편안하게 하면서 성취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자, 6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 손들어보십시오. 나는 5시간, 4시간, 6시간, 7시간 손들어보십시오. 8시간, 10시간 손들어보십시오. 잠을 줄여야합니다. 그러면서 공부에 헌신해야합니다. 나이가 들게 되면 수면의 품질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잠이 안 오면서도 일부러 누워있어야지만 피로가 풀리는 그럴 때가옵니다. 열심히 살되 시간을 아껴야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면 항상 시간이 없다고 그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잠을 덜 주무시면 시간이 납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신학공부를 즐겨야합니다. 여러분이 논어 중에 옹야 편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요지자’ 그 의미를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머리가 좋은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일이 즐거워서 하는 사람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학공부 자체에서 어떤 해결을 얻는 것을 기뻐해야합니다. 사람들이 자꾸 내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취미는 아닙니다. 여행하는 것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안가면 안달이 나고 그래야 취미인데 나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뭐냐 하면 경치가 좋은 곳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소박한 음식을 먹고 사랑하는 제자들이나 동료들과 함께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은 아주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나서 내 이야기도 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화란의 알펜도르 신학교의 총장하고 동부 웨스트민스터의 총장하고 두 사람이 교회에 왔는데 설교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만나러 와서 어거스틴 파크에서 밤늦게까지 신학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가졌는데 너무 행복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이외에는 특별한 욕심이 없습니다. 나는 아무 것이나 잘 먹는 편이지만 무엇을 먹어야겠다고 막 찾는 사람도 아닙니다. 특별한 취미도 없습니다. 왜? 진리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신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공부인지를 압니다. 왜냐하면 신학이 진리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푸치우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17세기의 화란의 신학자였습니다. 그냥 흔히 영어발음으로 보에티우스라고 부릅니다. 써보십시오. voetius 그런데 보에티우스라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b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b는 중세시대의 철학자이고 이 사람은 개혁파정통주의 신학자입니다. 보에티우스가 쓴 유명한 책이 인터넷에 두드려보면 나옵니다. 'Consolation of Philosophy' 라는 책입니다.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입니다. 유명한 책입니다. B의 보에티우스 말고 V의 보에티우스 혹은 푸치우스라는 사람이 ‘코르타 떼올로기아’ 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코르타는 무엇이냐 하면 타락한 신학, 혹은 오염된 신학이라는 뜻입니다. 다음과 같은 지식이 없으면 신학이 오염된 신학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언어입니다. 특히 희랍어와 히브리어에 대해 무지하면 거기에서 쌓아올린 신학이 오염된 신학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역사와 고대문화입니다. 특히 교회사에 대해서 무지하게 되면 이렇게 오염된 신학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문법, 문헌학,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등의 학문에 대해서 무지하면 오염된 신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네 번째는 경건의 실천과 교회에서 양떼들을 목양하는데서 실패한 사람이 한 신학이 경우에는 오염된 신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뭐냐 하면 이런 것입니다. 네가 올바른 신학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목회를 하는데 그런데 목회가 실패합니다. 그 다음에 열심히 경건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학공부는 계속합니다. 그러면 그 신학이 오염된 신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 설명해보십시오. 왜 그렇게 되겠습니까? 올바른 신학을 했는데 왜 목회에 실패하고 경건을 열심히 실천하지 않으면 그 신학이 왜 오염된 신학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설명해보십시오. 다시 들어보십시오. 올바른 신학을 배웠습니다.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목회에 실패하고 경건생활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올바르게 배운 것을 올바르게 전달해도 코르타 떼올로기아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대답해보겠습니까? 이런 이야기입니다. 신학의 내용은 옳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옳게 전달해줍니다. 그러면 지식이 전달됩니다. 여기에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학의 목표는 지식과 그런 지식의 전달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설교를 들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우리도 공부했습니다. 성경해석에 문제가 없습니다.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내용도 정확하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다 들었을 때 감동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달해준 방식이 아닙니다. 여러분 영어에서 Sermon 과 Preaching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Sermon은 뭐라고 번역합니까? 설교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니까 Sermon은 설교의 내용입니다. Preaching은 설교하는 행위입니다. 아까 그 사람의 경우에는 Sermon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Preaching에 마땅히 있어야할 성령의 감화, 그 다음에 그 말씀대로 살아온 사람만의 자신감 있는 인격적인 영향력, 이런 것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코르타 떼올로기아 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교부들의 저작을 포함한 중요한 글들, 성경에 대한 석의적 작업에 대한 무지, 그런 무지가 있을 때에 코르타 떼올로기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석의라는 말을 배웠습니까? ‘Exegesis’ 주해하고는 다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성경을 히브리어면 히브리어, 희랍어면 희랍어의 Text를 놓고 일차적인 청중에게 이 말이 무슨 의미였을까를 문법과 그 다음에 신학, 역사를 통해서 첫 번째 의미를 추출 해내는 것 그것을 ‘석의’ Exegesis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휘치우스가 이 다섯 가지의 분야에 대해서 무지하면 코르타 떼올로기아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거기서 최소한 이정도 공부를 해야지만 이만한 영역의 공부를 해야지만 코르타 떼올로기아가 되지 않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해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다섯 가지를 노트를 보면서 이야기해보십시오. 첫 번째가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언어입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입니다. 두 번째가 역사와 고대문화 특히 교회역사에 대한 지식입니다. 세 번째는 문법, 문헌학,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포함한 일반학문 네 번째는 경건의 실천과 교회의 목양 이것이 신학공부에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교부들의 저작과 성경에 대한 석의입니다. 이것이면 충분하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요약할 수 없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신학교육의 내용이 바로 이 다섯 가지라는 뜻입니다.
자, 그러면 그것을 지금부터 펼쳐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연구를 위한 언어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첫째는 성경해석을 위한 공부입니다. 제일 먼저 꼽아야 될 것이 구약성경이 무슨 언어로 되어 있습니까? 히브리어입니다. 히브리어가 대부분으로 되어 있고 아람어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를 먼저 공부해야 됩니다. 히브리어 공부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의 저자들이 사유에 있어서는 헬라어로 사유를 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사유를 하던 유대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는 그림 같은 언어이고 헬라어는 선(줄)같은 언어입니다. 희랍어는 정확하고 논리적인 표현에 적합한 언어이고 히브리어는 시를 쓰기에 적합한 서정적인 언어입니다. 히브리어를 공부한사람 손들어 보세요. 지금도 계속 히브리어를 계속 읽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히브리어를 계속 공부를 해야 되는데 히브리어가 쓰는 것도 반대편이고 문법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도 맨 처음 학부 다닐 때 히브리어를 공부하다가 포기했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와서 아주 탁월한 선생님을 만나서 두 시간 강의를 듣고 내가 공부방법이 틀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터득해서 그담에 독학을 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때 나의 의문은 하나님은 당신의 계시를 모든 사람이 아는 게 원하시는 바일까요? 몰랐으면 하는 게 하나님의 소원일까요? 아는 게 소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웬만한 사람이면 공부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만드셨을까요? 쉽게 만드셨을까요? 리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학년 가을 학기 때 겨울방학이 시작하면서 작심하고 창세기 1장1절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겨울에 1월 달까지 17장까지 읽었습니다. 하나하나 다 파싱하면서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점 하나도 왜 이게 들어갔는지 다 밝히면서 17장까지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루돌프 기텔의 제3판하고 그담에 비블리아 헤브라이커 스트루가르텐서 비에이치스판일겁니다. 그래서 하다가 보니까 나나에 있는 비평장치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라틴어를 좀 익히면서 비평장치를 가지고 본문 비평하는 법을 배웠는데 히브리어 유니버시티 바이블이라는 구약성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이치 유 비 라고 하는데 인터넷에 쳐보면 볼 수 있는데 아직 완성이 안 되었습니다. 1945년도부터 100년 계획으로 히브리어 성경을 다시 편집하겠다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이스라엘에서 시작을 했는데 20년 만에 1장에서 10장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속도가 조금 붙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100년 안에 못 끝날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성경이 완성이 되면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는 가장 완벽한 성경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성경을 어느 사본을 가지고 기초 본문을 만들고 차이나는 것들 밑에 전부다 후노트를 붙여서 비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많이 쓰는 비 에이치는 12세기에 레닌그라드사본을 기초 본문으로 한 것인데 이 히브리 유니버스티바이블은 그보다 100년이 앞선11세기 알레포 사본을 기초 본문으로 했습니다. 어쨌든 신학대학원 다닐 때에 구약성경 전체 3분의2를 읽었습니다. 물론 다른 공부도 하고 교회봉사도 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 어쨌든 3분의2를 읽었습니다.
친구들이 휴식시간에 놀 때 나는 히브리어 성경 펼쳐놓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갈 때는 단어를 외었습니다. 나중에는 유대인들이 읽는 두루마리 모음 없는 것을 읽었습니다. 완전히 안 읽었던 것을 읽으면 잘 안 읽히는데 읽은 부분들을 다시 두루마리로 읽으면 읽혀졌습니다. 정말 신났던 것은 신명기서를 읽을 때였습니다. 제가 읽은 바로는 구약성경전체에서 신명기 같은 명문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히브리어성경을 읽는데 직독 직해가 되는 겁니다. 그 때 한 페이지를 다 읽었는데 거의 모르는 단어가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에 한 페이지를 다 읽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속의 내용이 광대하게 밀려오는 겁니다. 정말 기쁘고 감동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무슨 성경을 읽어도 일단 사전만 가지고 있으면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문법책만 하면 안 되고 문법과 아주 좋은 신 텍스 구문론 이라고 있습니다. 그런 책들을 더 읽으면서 문장을 다루는 방법들을 이해하면서 성경을 해석해 나가는 연습을 계속하면 여러분도 히브리어 성경을 읽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 때 공부할 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설교할 때 항상 히브리어 원문을 확인하고 설교에 대한 작성을 하는 겁니다. 되게 재미있습니다. 특히 엑스지스시라고 하는 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원본은 없지만 지금 있는 것은 사본하고 역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본은 전부다 파피루스나 아니면 양피지로 되어 있고 분량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원 자료에 우리들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누가 히브리어 성경 가지고 있습니까? 히브리어 성경을 펼쳐보면 나나에 아파라투스트루트투스라고하는데 비평장치가 나옵니다. 각주가 나옵니다. 거기에 수많은 이상한 기호들이 쓰여 있는데 그 기호들을 읽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보면 거기에 이런 사본에는 요 내용부터 요 내용이 빠지고 이 내용이 있다 혹은 사마리아오경에는 이렇게 나오는데 사실 그것을 아람어에서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이런 의미가 된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정보들이 여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정보들을 가지고 원래의 원본이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논리적으로 추적해 내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많은 사본이 있는데 대부분이 그것을 지지해줍니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사본만 다른 의견을 냅니다. 그러면 원본이 그거일 가능성이 많은 겁니다. 또 어떤 사본은 에이라고 이야기 하고 어떤 사본은 비라고 이야기하는 대립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오래된 사본을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이것을 다 판단을 하면서 원래의 원본을 찾아가는 작업을 가리켜서 텍스투얼컨티시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고 옛날처럼 많이 읽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때 공부한 것이 지금 너무너무 유익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공부해야 될 언어가 구약 아람어입니다. 이것은 지금현재 에스라서 4장 5장 6장 7장 일부 그담에 다니엘서 2장서부터 7장까지 그런 정도가 아람어 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람어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히브리어를 잘 공부 하고나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3학년 때 이 과목을 선택해서 수강생이 10명도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3학년 1학기 때 아람어 텍스트를 다 읽었습니다. 특히 그 아람어에 대한 공부는 셈족언어에 대한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담에 3학년 때 나 혼자 공부한 게 우가릭 언어였습니다. 우가릭어는 히브리어의 사촌쯤 되는 언어입니다. 그런데 쐐기글자, 설형문자입니다. 그것을 공부했습니다. 우가리틱 텍스트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사이러스골드리스 한 560페이지정도 되는 책이었는데 혼자 공부를 해서 가나안 신화들을 조금씩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게 한 1800년에서 2200년 전 언어입니다. 거기에 그 당시 주고받았던 연애편지도 나오고 영수증도 나오고 관공서의 재판판결문도 나오고 별의별 문헌들이 맛있습니다. 그런데서 흥미를 막 느끼면서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좋아하면 자기가 하게 되는 것처럼 그 때 그러면서 아카드어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카드어가 바로 여러분이 역사시간에 배운 함무라비법전을 읽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함무라비법전이 구약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유는 함무라비법전은 주전 18세기 것인데 이러이러하면 이러이러할지니라. 하면서 민법의 양식이 나오는데 if then 그래서 누가 사람을 때리면 그는 반드시 벌을 할지니라. 이런 식인데 똑같은 양식이 함무라비법전에 나옵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올라가면 수메르어로 올라가는데 그것은 주전3천 년 전 언어입니다. 그담에 졸업한 후에는 모압비문을 선생님과 같이 탁본뜬것을 읽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러면서 바빴지만 아주 재미있는 신학대학원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Th. M 일학년을 지날 때에 예수님을 깊이만나면서 그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한때는 그것을 공부해서 세계적인 학자가 되겠다는 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나를 미국에 있는 랍비들이 가리키는 좋은 학교에 아주 높이 추천해주겠다고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주님을 깊이 만나면서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적은 것인가 하는 것을 알고 버렸습니다.
그담에는 무슨 공부를 해야 될까요? 힐라위를 공부할 때는 힐라위에는 세 개의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제일 오래된 그리스어가 호메릭 그릭입니다. 그 호메릭 그릭을 공부하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이런 것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그담에 두 번째 범주가 클래식 그릭 고전 그리스어입니다. 고전 그릭을 읽으면 여러분이 알듯이 동방교부들이 남긴 신학 작품들 고전 그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담에 여러분이 아까 본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같은 원본이 고전 히랍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담에 마지막 세 번째 언어가 제일 쉬운 희랍어인데 그게 바로 코이네 히랍어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들은 되게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코이네 희랍어라도 공부를 해라 그러면 신약성경이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열심히 희랍어를 익혀서 희랍어로 신약성경을 읽어가고 설교할 때 희랍성경을 늘 참고할 수 있도록 그렇게 공부를 해야 됩니다. 여기까지는 성경자체를 공부하기위한 언어입니다. 그담에 공부해야 될 것은 아까 이야기한 그리스어라는 것은 코이네만 하면 되는데 여기서는 라틴어와 고전그리스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동방교부와 서방교부들이 있습니다. 동방교부들은 주 언어가 고전 그리스어였고 서방교부들은 글을 쓸 때 라인어로 썼습니다. 알다시피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좌우합니다. 그래서 원전은 번역본이 전달해줄 수없는 아주 놀라운 사상들을 전달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 18세기까지만 해도 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라틴어로 읽고 쓰고 그리스어로 읽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세 가지가 기본적인 신학자로서의 준비였습니다. 우리는 신학대학원 입학할 때에 입학시험과목에 라틴어가 있었습니다. 놀랍죠? 그것을 1월 달에 학생들에게 라틴어 하고 희랍어 강좌를 엽니다. 그리고 하루에 8시간씩 가르칩니다. 오전4시간 희랍어, 오후4시간 라틴어를 가르치고 매일매일 시험을 봅니다. 그리고 점수가 나오면 그 성적표를 가지고 신학대학원 시험에 응시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이 입학점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때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는 것이 20대 1이었습니다. 1200명이 모여서 그중에 60명만 석사과정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피를 말리게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거기에서 90점내지 95점을 맞아야만 통과가 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왜 공부해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누가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입학만 한 다음에 집어치워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50이 넘어서 다시 라틴어를 과외선생을 불러다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겨우 까막눈은 면했지만 그러나 너무 부족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만약에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라틴어와 고전그리스어 외에 중세 불어를 공부하면 매우 좋습니다. 개혁파 정통주의자들 가운데 마를 로라, 모르네, 비레, 상디에, 드몰렝, 이런 학자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그 글을 중세불어로 썼습니다. 그 중세불어는 현대불어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따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담에 영어공부인데 영어는 옛날작품들은 현대영어가지고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사전을 하나 소개시켜드리겠는데 20권으로 된 옥스퍼드잉글리쉬 딕셔너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책이 나오지 않고 일렉트릭전자책으로만 나옵니다. 그 사전이 굉장히 좋습니다. 예를 들자면 시티즌이라는 영어 시민을 뜻하는 단어가 나오면 그러면 그것을 10세기부터 세기별로 뜻이 나옵니다. 방대한 사전입니다. 그 사전이 없으면 15세기, 16세기, 17세기에 나온 영어작품들은 읽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미가 많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담에 공부해야 될 것은 현대어로 들어갑니다. 영어, 독일어, 불어, 화란어입니다. 스페인어도 만약에 알면 상당히 유용합니다. 그러나 너무 욕심내지 말고 영어, 독일어, 불어, 화란어입니다. 영어는 현대에 신학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개신교에 미국이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미국이 좋고 싫고 상관없이 기독교에 대한 자료들이 미국자료들이 우리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그런데 진짜 깊이 읽는 기독교사상에 대한 논의들 교부들에 대한 이런 논의들 특히 종교개혁에 관한 수많은 글들이 독일어로 되어 있습니다. 어거스틴을 비롯해서 초대교회 교부들에 대한 연구를 불란서 학자들이 꽉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야에 공부를 하려면 불어자료들을 읽을 수 있으면 날개를 단것처럼 풍부한 이해력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화란어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네덜란드 언어입니다. 그 언어는 왜 유용하냐면 종교개혁이후로 개혁신학의 유산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나라가 화란입니다. 왜냐하면 각국에서 핍박을 받은 사람들이 마지막에 정착한곳이 화란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엄청난 개혁주의 유산들이 축적이 된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여러분이 고서방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90퍼센트 이상이 화란에서 사온 것입니다. 무지무지하게 비쌉니다. 지난번에 한번 가서 불링거의 책이 있기에 너무 탐이 나서 사려고 했는데 요만한 것 딱 한권이었습니다. 얼마를 달라고 했냐면 한권에 오만위엔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100만 위안 어치 책을 사도 요만한 가방으로 하나밖에 안됩니다. 그담에 만약에 청교도와 웨일즈의 부흥운동에 관한 자료들을 읽고 싶다면 웨일즈 어를 공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럼 정리해 봅시다. 제일먼저 성경자체를 읽기위해서는 히브리어, 아람어, 코이네 헬라어, 그담에 동방교부와 서방교부들의 작품을 읽기위해서는 라틴어, 고전 그리스어, 그담에 중세의 작품들을 읽으려면 중세불어 그담에 이제 나오는 게 영어, 독일어, 불어, 화란어, 스페인어 이런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은 어학을 하기에는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나이든 사람들은 세 개만 하세요, 그러니까 히브리어 , 아람어, 희랍어 이렇게 세 개하고 젊은 사람들은 도전을 해야 합니다. 나한테 아카드어를 가리켜준 선생님은 22개 국어를 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불어책을 놓고 바로 독일어로 읽습니다. 대단합니다. 젊은데 왜 못합니까? 덜 자고 집중하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고등학교 때 중국무협지가 최고의 인기였습니다. 우리학교에 공부 되게 안하는 말썽쟁이가 있었습니다. 맨 날 수업시간에 중국무협지만 보는 겁니다. 그러더니 이 친구가 대학을 한문학과를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너 거기 왜 갔냐? 그랬더니 무협지를 너무너무 원문으로 읽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산하고 일본이 매우 가깝습니다. 텔레비전도 잡힙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애들이 엄마 아빠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본어를 열심히 배웁니다. 왜냐하면 일본만화영화가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그것을 너무 보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6학년 애들이 모여서 자기네들끼리 일본어를 공부하는 겁니다. 그래서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중국에도 한류 팬들이 있지 않습니까? 공항에도 가면 꽃다발 들고 있는 애들이 있습니다. 걔네들 한국어 열심히 배웁니다. 한국어가 어렵습니다. 왜 배우냐고 물어보니까 별에서 온 그대를 보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려고 배우는데 우리는 진리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인데 왜 못하겠습니까? 한국에 이런 시조가 있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들이 제 아니 오르고 산 만 높다 하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겠다면서,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리겠다면서 그런데 예수님이 공부하라고 그러십니다. 그럼 해야 됩니다. 이삭처럼 그러니까 열심히 지금 여기 젊은 사람들 말하지만 다하세요. 라틴어, 희랍어까지 열심히 하세요 그래서 라틴어를 우리말처럼 읽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합니다. 그러려면 덜 놀고 덜 쉬고 덜 자고 덜 즐기고 그리고 온전히 공부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신학교 다니다가 응급실에 실려 갈 때까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이야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화투를 쳤습니다. 얼마를 쳤는지 모릅니다. 물마시고 뭐 좀 먹고 떠나지도 않고 거기서 계속 화투를 친 겁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노름을 하기 시작했는데 다 수염이 나온 노인네들이 되었습니다. 돈을 따기 위해서도 그렇게 몰입을 하는데 그런 어떤 집중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기록이 있습니다. 앉은자리에서 17시간을 히브리어 성경을 읽었습니다. 여기에 빵, 여기에 물, 여기 밑에는 요강 그리고 더 기록은 22시간동안 한자리에서 안 움직이고 에세이를 썼습니다. 그래서 한 이 년 전에 총신에 가서 이것을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엄청나게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김 목사님 흉내를 내자 그리고 진짜 여기다가 물 가져놓고 빵 가져 놓고 매달린 것입니다. 세 명이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는 이야기가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김 목사님은 할 수 있었고 우리는 못한다. 그다음부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할 수 있다 나는 굳게 믿었습니다. 학교 다니다 공부하다 죽으면 순교이다. 아름다운 영혼으로 하나님께 갈 거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3년 동안을 신대원을 다녔는데 지금도 내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내가 너무 부족하고 하나님 앞에 모자라는 게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내 양심을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못한다. 삼년을 다시 돌려보내주셔도 나는 그이상은 못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삼년을 살았다. 그런 점에서 나의 신대원 생활에 대해서 나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내가 다니던 학교를 가면 눈물이 납니다. 여러분도 이삼년을 자기와 부단히 싸우면서 온전한 헌신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