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공부 방법론(8)
녹취자 : 조원정
이런 것들은 우리가 굉장히 자본주의에 대해서 저항하고 미워해야할 부분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아주 우습게 알고 인간의 존엄성을 어떤 물질의 유무나 사회적인 계급의 높고 낮음에 의해서 짓밟을 수 있는 이런 식의 정치체제나 사회체제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항거하고 투쟁해서 없애버려야 할 그런 것들입니다.
인문학은 비판하고 분석하고 사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학문입니다. 이처럼 인문학은 인간조건에 대한 학문들을 다루는 것입니다. 신학은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서 이웃도 행복하게 하고 자기도 행복하게 해서 하나님께 결국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다루는 학문이 신학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학이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과 인문학이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답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두 분야에 관심사가 상당부분 중첩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인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르치고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떠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가 알고 그렇게 하면서 신학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신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문학에 관한 지식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이유는 다음 네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첫째는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목사는 신자에게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설교를 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원래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 끼친 위대한 문학 작품을 통해서 사유의 방식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에 대한 공부는 보편적인 인류가 추구해온 가치와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옳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루하게 자기를 충고할 때 그것이 기분 나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설교하지마!” 중국에도 그런 말을 씁니까? 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설교 하면 그것은 지루하고 나의 삶과는 상관이 없는 귀찮은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전혀 지식이 없이 설교를 하면 그 사람들에게는 진짜 설교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보편성인 인간성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인류가 남긴 그런 문화적인, 정신적인 유산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비판함으로서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함입니다. 여기에는 철학과 종교, 문학과 역사, 음악과 미술, 이런 것들을 인문학이 포괄을 합니다. 그것은 각각 방식과 깊이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의 조건과 존재의 목표, 삶의 방식 등등을 다루는 것입니다.
이런 근원적인 주제들에 대해서 문학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철학은 답을 제시합니다. 종교는 이런 것들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입니다. 예술은 어떤 받은 인상과 자극에 의해서 새로운 생각을 예술로 확 표현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상으로서의 논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생각을 확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들이 후에 아주 구체적인 형태로 이제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과 예술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잘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세례를 주고 있는데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 표정이 더 웃깁니다. 이 사람이 세례받기 위해 벌거벗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상을 잔뜩 쓰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표정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휴 추워 죽겠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세례를 주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인상을 쓰면서 자기 세례를 받을 때를 기다리는데 그 표정이 “에이씨, 제기랄” 마사초라는 화가의 그림입니다. 여기 아주 중대한 코드가 있습니다. 자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고 천국을 갑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대표하는 종교가 계속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도 사회의 관습과 모든 것을 볼 때 세례를 안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세례를 안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그 사람이 베드로 시대 때 그 사람을 그렸다기보다는 자기가 가진 그 생각을 그림 속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뭐 세례를 받고 천국에 가? 에이씨 제기랄” 추웠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됩니까? 그럼 그 사람은 무슨 거대한 사상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저런 힘으로 의해서 행복을 찾아간다. 그건 아니라는 것을 이 그림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그림이 있는데 아시시 프란치스코가 죽었는데 부활을 했습니다. 제자들이 막 울고 있는데 아시시 프란치스코가 나타난 것입니다. 많은 제자들이 울고 있다가 모두 고개를 들면서 스승님을 막 이렇게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중에 딱 한 제자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스승님이 부활해 오셨는데 안 쳐다봅니다. 물론 잠깐은 봤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그림이 나오는가 하면 혼자서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 그림 앞을 지나면서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학자들이 얘기하기를 최초의 르네상스 맨이라고 합니다. 내가 스승님을 사랑합니다. 나도 스승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드디어 오셨습니다.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어떻게 죽은 인간이 살아날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코드들을 제일 먼저 예술가들이 막 분출해 내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문학작품들이 그려내고 철학이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이런 질문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했는가를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 주는 유익입니다.
셋째로는 인간의 삶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회에 관해서 얼마나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계십니까? 나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을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속에서 분노가 생겨납니다. 어떻게 인간을 이렇게 하찮게 여기고 우습게 깔보는 사회가 되었을까?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은 사회의 권력으로 마구 짓밟는 그런 사회가 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얘기해서 'globalization'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도 똑같이 따라갈 것입니다. 한국은 동네에 있는 조그만 가게들이 다 없어졌습니다. 조그만 목욕탕들도 다 없어졌습니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들어와 가지고 다 초토화 시켜 버렸습니다. 최근에 우리 동네에 목욕탕이 하나 생겼는데 목욕탕 하나를 짓는데 1억 위안이 들었습니다. 들어가면 없는 것이 없이 너무 잘해 놓은 것입니다. 요금은 조그만 목욕탕하고 똑같습니다. 조그만 목욕탕은 경쟁력이 없어서 모두 문을 닫아 버립니다. 사람들 다 실직합니다. 그리고 그 목욕탕에 가서 청소하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 자본은 대기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서점을 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사장님 이 책 얼마에요? 하고 물어봅니다. 이것이 얼마입니다. 그 자리에서 아이폰을 켭니다. 막 넘겨보면서 아휴 비쌉니다. 저쪽 가게가 더 쌉니다. 결국 망했습니다. 이런 것이 좋은 것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가게에 정감이 있고 이웃과의 관계가 있고 하는 이런 것들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여러분도 백화점이나 이런데 들어가서 막 화려한데 가서 물건을 사고하면서 도대체 이것이 오늘날 우리사회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를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여러분도 돈 많이 벌어서 그런데 가서 돈을 쓰고 싶고 그렇게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만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는 거짓된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별로 안 좋게 생각하죠? 어느 날 우리 김 선생이 노랗게 물을 들이고 왔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그렇게 했냐고 물어봅니다. 그런데 물어볼 때 심정이 어떤 심정입니까? 굉장히 기이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것을 기이하게 생각하는 자체가 기이한 것입니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물론 나는 그렇게 안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했을 때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 목사가, 전도사가, 노란 물을 들일수가 있냐고 생각하는 자체가 거짓된 속박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속박을 강요하는 것, 그 자체가 사랑의 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사람들이 하도 커피를 많이 타먹으니까 교회에다 자판기를 하나 사놓았습니다. 장로님이 올라오셔서 대표기도를 하시는데 흑흑흑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드디어 우리 교회가 세속화 되었습니다. 자판기가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은 확고하게 교회에는 그런 것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웃깁니까?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서는 눈물이 안 나오는데 교회 들어온 자판기 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또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80년대일인데 예배 시간에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기타를 치는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때 장로님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또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드디어 우리 교회가 세속화 되었습니다. 이 세상 악기라고 할 수 있는 기타가 드디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무엇 때문입니까? 인문학적 사고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하는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다니면서 목회자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 보셨을 것입니다. 신앙이 정말 좋고 기도도 많이 합니다. 희생적입니다. 그런데 절대 같이 사역하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막혔습니다. 그런 사람 본적 있을 것입니다. 없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그렇습니까? 그런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선물이 뭔가 하면 분재입니다. 나는 오자마자 갖다 버립니다. 나는 혐오합니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도록 사람도 그렇게 대접하고 식물도 그렇게 대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새장에서 새 기르는 사람 있습니다. 자기를 한번 그렇게 길러 보라 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사람을 진리가 허락하는 한 자유롭게 살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진리는 속박하되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자유를 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비판적인 능력을 준다는 얘깁니다.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인문학은 크게 문사철로 요약이 됩니다. 즉, 문학, 역사, 철학, 이것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는 대개 이런 인문학을 문학과 언어학, 역사학과 고고학, 철학과 종교학, 미학과 예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신학까지 인문학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로마시대 때는 소위 얘기하는 삼학 사과가 있었습니다. 문법, 수사학, 논리학, 이것이 삼학입니다. 사과는 기하학, 수학, 천문학, 음악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참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삼학 사과를 이수해야 된다고 봤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인문학이 민주사회에서 평등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이바지하는 것이 진정한 인문학의 기여도겠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인문학의 열풍이 꽤 불고 있습니까? 별로입니까? 돈벌이가 안 된답니다. 이런 것도 있습니다. 정부에서 인문학의 열풍이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통제를 가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을 깊이 공부하다가 보면 필연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인문학의 열풍을 넘어서 거의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30년 전에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사회에 대해서 아주 비판적입니다. 어느 나라가 어떤 일을 위해서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었다고 하는 것들도 감동을 많이 받습니다. 인문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굉장히 미개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대중심리에 의해서 이런 것들 말입니다. 전체성에 의해서 주체성이 사라진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분별한 애국주의 같은 것들도 굉장히 견제해야 합니다. 이런 열풍들이 교회에도 불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문학과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 세계관을 갖는 문제입니다. 인문학적인 소양을 가지고 현대정신을 이해하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신학공부가 어떤 신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세계를 보게 해주는 사상적인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세계관의 관점을 가지고 설교도 하고, 목회도 하고, 성경도 가르치고 할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려면 아까 말한 대로 전체적인 지혜들을 통합하는 학문으로서 신학을 추구하지 않으면 그런 올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설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음 작품들을 여러분에게 읽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도예베르트, 프란시스 쉐퍼, 볼렌 호벤, 슈피얼, 이런 사람들의 책들을 읽으면서 기독교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헤르만 도예베르트의 책들 가운데 서양문화의 뿌리, 기독교 철학의 초월적인 문제, 이론적 사유의 신비판, 이보다 더 유명한 책이 한권 더 있는데 서양 사상의 황혼에서, 그 다음에 프란시tm 쉐퍼, 특별히 그의 유명한 책, 이성으로의 도피, 거기 계시는 하나님, 거기 계시며 말씀 하시는 하나님,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 예술과 성경,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것들은 아주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작품입니다. 그 외에도 굉장히 중요한 한 사람을 소개해 드립니다. 낸시 피어시라는 인물입니다. 다음에 찰스 콜슨, 헬무트 틸리케, 아더 홈스, 알빈 플란팅가, 내가 그 동생을 만났는데 우리 형은 하나님의 용사입니다. 그럽니다. 다음에 니콜라스 월트스토퍼, 제임스 사이어, 알버트 월터스, 더 중요한 사람 알려드립니다. 마커놀, 마이클 호튼, 데이비드 웰즈, 이분은 내가 몇 번 만났습니다. 몇 달 전에도 편지가 오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호튼은 원주에 자주 옵니다.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교수입니다. 젊은 신학자인데 글을 잘 씁니다. 여기 와서 강의를 해 주기로 했는데 시간을 못 맞추고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한번 만나게 해 주겠습니다.
5월 말에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 제가 학위 수여식에 설교하러 갑니다. 그때 내가 가서 다시 한 번 얘기를 해서 잘하면 올해, 아니면 내년에는 여러분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1년에 한 번 정도는 세계적인 학자를 만나게 해주고 자극을 받고 여러분 미래에 그렇게 세계 교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에 와서는 제가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어떤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되는지에 대해 강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 어디까지 이 얘기를 계속 들어야지만 우리가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것인가? 지금 겨우 현관문에 들어왔습니다. 철학 이야기가 나온 다음에 철학 안에서 고대 그리스철학, 중세철학, 근대철학, 현대철학, 동북아철학, 불교철학, 힌두교철학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자연과학, 그 다음에 신학으로 들어와서 초대교회 교부들, 아우구스 티누스, 중세신학자들, 토마스 아퀴나스, 이슬람 철학자들, 알파라비, 아비첸나, 가잘리, 아베리오즈, 다음에 유대철학자들, 중세말기 철학자들, 마르틴 루터, 멜랑히톤, 존 칼빈, 데오르드 베자, 쯔빙글리, 요한 블링거, 피터마트 베르키글리, 개혁파 정통주의로 들어와서 우르시누스 유니우스, 푸치우스, 에인즈, 퍼킨스, 폴라누스, 마스트리히트, 튜레틴, 존 오웬, 잔키우스, 그 외에 여러 신학자들, 그 다음에 청교도, 언약도, 화란 제 2종교계의 신학자들, 다음에 조나단 에드워즈, 다음에 현대 개혁신학자들, 이렇게 해서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올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진도가 나가겠습니다. 다음 7월 14일에 성도에 제가 옵니다. 여러분이 그 시간에 모이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된다 하면 그때 올 때 여기에 들렀다가 몇 시간이라도 강의를 하고 갈 때에 신학에 있어서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하고 또 어떤 식으로 철학을 공부하면 신학 하는데 잘못된 신학을 하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매일 어떻게 성경 읽고 묵상하십니까?
(답변) 아침에 합니다. 성경을 읽고 원문 성경을 읽고 한글 성경을 읽고 거기에서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고 그것들을 찾아내서 메모를 하는 식으로 합니다.
(질문) 우리에게 권면을 해 준다면 어떤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좋겠습니까?
(답변) 열심히, 아침에는 조금 읽고 묵상을 많이 한다면 저녁때는 묵상을 조금 하고 많이 읽고, 반대로 아침에는 묵상을 조금하고 많이 읽고 저녁에는 묵상을 많이 하고 조금 읽고 그런 식으로 다독과 정독을 병행해 가면 좋습니다.
(질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임하는데 성경을 보면 이 사람들이 이러이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내용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해를 하면 됩니까?
(답변) 그것은 은혜를 어떤 의미로 썼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내가 내 선행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구원을 거저 주셨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너 네 교회 불났다는데 너무 힘들겠다. 어떻게 견디고 있니? 많이 힘들어, 그렇지만 은혜로 이기고 있어. 그것은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으니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그때 그 은혜는 구원의 길 자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학적인 생각이 필요한 것이 하나의 단어가 나와도 성경 속에서 어떻게 분류될 수 있는가? 어떻게 다중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를 추적하고 분석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방대한 양들의 공부들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질문) 우리는 경건을 도모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가정에 관한 질문인데 감독님의 영적인 성장에 맞추어서 어떻게 가정을 이끌어가고 사모님과의 영적인 교류와 성장을 어떻게 맞추어 갑니까?
(답변)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가족들이 모두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면서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교회 자체가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으면 우리도 가족들이 시간을 가지려고 애를 쓰고 서로 사랑을 표현하고 서로 위해서 기도하고 아이들이 지금은 다 컸으니까 괜찮지만 어렸을 때는 우리도 굉장히 속상하고 힘든 적이 많았습니다. 기도하면서 가정을 잘 꾸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애들은 아주 어렸을 때 회심해서 신앙생활 잘하고 아들을 벌써 장가가서 8월이면 내가 할아버지가 되고 딸은 대학교 4학년입니다. 우리 부부도 결혼 한지 34년 되었습니다.싸운 적은 별로 없고 말다툼 한 적은 있습니다. 말다툼을 해도 막 이러지는 않고 왜 그러냐, 이런 말다툼입니다. 마지막 말다툼 한 것이 19년 전입니다. 그 후로는 말다툼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말다툼 안 할 예정입니다.
(질문) 학교 다니면서 히브리어 배우다가 힘들어 가지고 ... 신대원 들어가셔서 두 시간 듣고 깨닫고 잘했다고 하셨는데 혹시 두 시간 동안 들었던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지요?
(답변) 제가 히브리어를 잘 가르칩니다. 알파벳을 모르는 학생들을 데려다가 5일 만에 창세기 1장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것을 강의하면 여기 히브리어 선생님들이 썰렁해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선생님들도 탁월한데 여러분도 노력을 덜해서 그럴 것입니다. 선생 탓을 하지 말라.
(질문) 신학 공부하는데 다섯 가지 얘기를 하셨는데 언어, 철학, 인문학등 신학교 1학년에 막 인문학 했는데 체계적으로 효율적으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는지요?
(답변) 공부를 우선 1학년이니까 열심히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공부하고 신학 책과 인문학 책을 읽는 것을 7대 3정도로 균형을 맞추어서 인문학 책을 3정도 읽고 신학 책들을 7정도 읽고 그리고 2학년 올라가면 2대 8정도, 3학년 까지 그렇게 하면서 공부를 해 나가면 좋은데 가능하면 대학교 1학년 때 목회자가 될 결심을 하고 그때부터 계획을 하면 훨씬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