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신학
녹취자: 최원정
오래간만에 정말 반갑습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에 여기서 뵈었으니까 제가 꼭 10개월 만에 여러분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평안하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난 10개월 동안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고 2주전에는 허리 수술을 하고 첫 번째 여행으로 여기로 오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번에 올 때 새로운 책을 가지고 오고 싶었는데 계획보다 출판이 늦어져서 여러분들에게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내년에 1월정도 2권의 새로운 책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하는 것은 ‘아름다움과 신학’이라는 주제입니다. 우리가 흔히 신학이라고 하면 목사가 될 사람들이 하는 공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아주 좁은 의미에서 신학이 무엇인가 라고 말하면 목회자가 되기 위한 학문적인 훈련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찌 보면 신학입니다. 왜냐하면 신에 대한 어떤 지식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을 알만한 모든 지각들을 인간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결국 싫든지 좋든지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은 이 땅을 살아가는 자신의 운명이 하늘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하나님에 대해서 보다 더 구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전에는 그냥 막연히 신이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인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도 믿고 예수님도 믿는데 왜 이렇게 신앙생활이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자꾸 미끄러질까? 라고 말입니다.
저는 최근에 5년 동안 2000페이지의 책을 썼습니다. 제목은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 라는 이름의 책입니다. 3권으로 내기로 하고 그중의 1/3을 지난 3월에 출판을 했습니다. 그 책에서 나오는 내용들 중 일부를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어떻게 이런 문제를 다룰 것인가. 아까 말씀 드린 왜 신앙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미끄러질까? 라는 질문은 목회자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를 포함해서 모든 교인들이 매일매일 마주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목회에 있어서 소명을 받게 됩니다. 소명을 받게 된다는 것은 평신도들이 가지고 있는 소명과는 완전히 다른 그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같은 사람은 목회자의 소명과 평신도의 소명을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 크기의 문제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구원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말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체험이 아주 커서 그 이상의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줍니다. 사도바울이 구원받지 못한 자기의 친척들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저주를 받아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이 구원받기를 바란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구원의 경험과 같은 종류의 것이지만 정도가 매우 큰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지, 일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으로는 만족이 안돼서 자기 자신을 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목회자의 소명의 체험입니다. (하지만) 그런 목회자의 소명의 체험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항상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그런 소명의 체험이 있고 그의 소명의 체험을 매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명을 유지하는 것은 순간적인 영적인 체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속적인 성화의 과정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그럼 ‘올바른 신학 함’이란 무엇일까요? ‘신학 함’ 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지식과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도 사랑 속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예화) 실제로 우리 집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친척 중에 한 분이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나 오셨는데 사회적으로 아주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하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무덤에 별로 찾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실로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와서 조상들이 있는 산소를 찾아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 동네에 있는 일가 어른들이 와서 맞이해주었습니다. 이분이 걸어서 자기 아버지 산소를 찾아올라 갔습니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 엎드리니까 옛날 생각이 나면서 슬프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울었습니다. 뒤에 있는 어느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 너 왜 거기서 우냐? 거기 네 아버지 산소가 아니고 네 아버지 산소는 저 위에 있어.” 자기 아버지 산소가 아닌 곳에서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지식을 포함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사랑은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지식은 사랑이고 진정한 사랑은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신학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목회자만 할 일입니까, 아니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까?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입니다. 결국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인류가 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럼 또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참으로 알고 사랑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삶이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중국에서 나온 많은 작품들 가운데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삼국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국에 셰익스피어 전집이 있다면 중국에는 삼국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자라나는 세대에 인문학 교육이 따로 필요가 없고 셰익스피어의 전집을 읽으면 인생에 대한 공부가 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삼국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 그 사람들의 생각과 처세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예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제가 2011년도에 중국에서 방영되었던 신삼국지 96편을 모두 봤습니다. 한 편이 거의 45분~1시간 정도 되는데 96편이었으니까 거의 90시간을 집중해서 몰아서 봤습니다. 최근에는 수문제와 수양제, 당고조와 당태종까지의 역사, 고구려와의 전쟁, 당나라와 수나라 시대의 역사를 보고 있습니다. 중국역사를 어렸을 때 배운 것을 다시 돌아보니까 한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일주일 입원해 있는데 96편을 봤으니까 완전히 삼국지속에 들어가서 아침부터 새벽까지 삼국지 속에 살았습니다. 하루에 13시간 정도 봤습니다. 내가 있는 한국이 남의 나라 같고 중국이 우리나라같이 느껴질 정도로 몰입해서 살았습니다. 삼국지에서 보면 위, 촉, 오가 서로 패권을 다투기 위해서 치열하게 모략과 전쟁으로 끊임없이 투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근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은 오직 하나입니다. ‘천하통일’ 근데 남에 의해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일해서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유비도 그렇고 많은 영웅호걸들이 죽을 때 남기는 말이 천하를 통일하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습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은 천하통일을 사랑했습니다. 한 성을 점령하면 그 사람들 속에 있는 생각은 그 성에서 군대를 몇 명 동원할 수 있고 쌀이 얼마나 나오고, 이런 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어쨌든 저에게 굉장히 감동이었고 어렸을 때 읽은 삼국지를 내용은 알고 있지만 잊어버렸던 장면들을 상상 속이 아니라 화면으로 보니까 정말 잘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한국에서 1년 동안 KBS에서 연속해서 방송을 했습니다. 많은 남자들이 아주 열광을 하면서 삼국지를 봤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그런 것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천하를 통일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에 대한 지식, 통일에 대한 열망을 사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들의 삶이 전부 그 목적을 위해 삶이 재편이 됩니다.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든지 사랑하는 것에 의해서 살면 삶이 다시 편성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율법사가 질문을 합니다. “율법 중에 제일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질문합니까? “주 너희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해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도 이와 같으니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래서 爱(아이) 라는 말 하나로 통합합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그 사랑이 이웃을 향해 펼쳐지는 사람들의 삶은 그 가치에 의해서 모두 재편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숙제는 어떻게 하면 내가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입니다.
(찬양)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주님이 물으시네.
실패한 베드로에게 찾아 오셔서 예수님은 질문하셨습니다. “왜 나를 믿으니? 너는 나를 위해 죽을래?”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이 가장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숙제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겠느냐? 사랑의 심리적인 원인은 아름다움입니다. 美[měi] 혹은 漂亮[piàoliang]. 예쁘고 아름다울 때 사람들은 마음이 끌리면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을 하나님께 적용해 보십시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 때 그 심리적인 동기를 찾아보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이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이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그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람들을 사귀면서 똑같지 않습니까? 처음에 만날 때에는 얼굴을 봅니다. 중국 교회에도 결혼을 빨리 못하는 자매들이 많죠? 한국에도 그런 자매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을 갖게 되니까 이제 사람만 괜찮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근데 믿음이 있는 남자들이 믿음이 있는 여자들 보다 숫자가 적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이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점점 교회 안에 결혼하지 못하고 나이가 많은 자매가 많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시집을 잘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근데 진짜 얼굴이 예쁘면 다 갑니다. 어떤 사람은 한 사람도 접근을 안 하는데 어떤 사람은 7-8명씩 접근을 해서 결혼합니다. 근데 외모의 아름다움은 유효기간이 한 6개월 밖에 안 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얼굴을 보지만 결혼하고 나면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근데 문제는 결혼하기 전에 너무 예뻤는데 같이 살아보니까 그것뿐이고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이 발견이 안 됩니다. 그럴 때 오히려 예쁜 얼굴은 배신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것은 여자들이 남자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영화배우처럼 잘생겼습니다. 말도 잘하고 매너도 있습니다. 그래서 속아서 결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돈도 못 벌고 능력도 없고 머리에 든 것도 없습니다. 그럴 때에는 잘 생긴 얼굴, 커다란 키, 매너가 뛰어난 모든 것들이 배신감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꾸준히 사랑이 계속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그 사람 안에서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이 발견될 때에 사랑이 지속됩니다.
그 다음을 보겠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 사랑이기도 합니다. 그럼 도대체 하나님을 안다. 사랑한다고 할 때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두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 속성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님이 이런 분이셨구나 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속성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속성의 시행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이 속성에 대한 것이라면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역사해서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라고 아는 것이 두 번째 지식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나를 대해주시는 분이신가를 알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 안에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기 위해서 우리 지성의 자격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인간에게 두 가지 감정이 일어나게 되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너무 높고 위대하시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가 얘기했듯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면서 두려운 떨림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쳐서 하나님을 멀리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계속 이끌리게 되는 그런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도 사랑하게 되면 존중하게 됩니다. 존중하게 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높고 우리와 비교될 수 없는 위대한 분이라 생각할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것을 이끌리는 사랑과 함께 그 둘을 ‘경외’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적인 목회의 전통은 칼빈 같은 사람이 강조한 것은 “지식과 사랑의 조화”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이고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학문을 통해 배워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자체가 참 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면서 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는 참 도이신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삼국지를 96편을 보면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늘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나면 “하늘이 나를 도우셨다.” “나는 천명을 따라서 천하를 통일하려고 한다.” 그 사람들이 막연하게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를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성립되게 위해서는 내가 사랑하면 그분이 내 사랑을 받는 것을 아시고 그것으로 그분이 나를 또 사랑해주시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사랑이 성립됩니다. 칼빈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여 나의 마음을 당신께 드리나이다. 기꺼이 그리고 진심으로.” 손에 심장을 들고 있는 것을 제네바의 문장으로 사용을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은 하나님의 뜻에 딱 맞게 살려고 애를 쓰는 마음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완전해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될 수 있습니다.
화면에 나오는 저 끝의 그림은 옥스퍼드의 링컨 칼리지 벽에 세워진 존 웨슬레의 기념물입니다. 그 때에 이 사람들이 ‘홀리 클럽’이라고 하는 클럽을 만들어서 함께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조지 휫필드, 웨슬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모여서 영국을 복음으로 구원한 운동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들을 가르쳐서 영어로 methodist라고 불렀습니다. methodist라는 말은 흔히 감리교도라고 번역을 하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영어로 method는 방법, 방식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슨 방식이냐면 삶의 방식입니다. 저기서 기도하던 사람들이 삶에 있어서 엄정성을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methodist라는 말이 붙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삶이 특별히 달라진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조지 휫필드라는 사람인데, 영국의 전설적인 설교자였고 많은 감화를 끼쳤던 인물입니다. 이 사람 같은 경우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고 있는 가장 중요한 표이다.’ 라고 봤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사람은) 유명한 존 웨슬리입니다. 이 사람이 말하자면 감리교의 창시자이고 종교적인 신앙적인 체험과 성결한 생활을 역설했습니다. 그래서 굉장한 열정적인 설교자였고 60년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마다 약 1,000편의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보통 2-3편의 설교를 했는데 이 사람이 말을 타고 여행한 거리는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도 똑같이 지식과 사랑이 나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강조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을 요약을 해서 말하자면 이런 그림이 나오게 됩니다. 참된 개혁주의의 목표는 지식과 사랑이 결합된 것이고 그것이 학문적인 지성과 목회적인 실천이 아울러져서 성도들에게 계승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교회의 전통임에도 불구하고 현대교회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분리의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신학으로써 학문을 공부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일치를 이루지 않고 분리되는 것입니다. 설교는 단순한 윤리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 설교는 기독교 사상을 무엇인가를 크게 보여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윤리적 설교)이 참된 신학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신학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분리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학이란 무엇인가 보겠습니다. 3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식과 경건, 목회가 함께 일치를 이루어서 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올바른 신학 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을 복음주의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의 이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두 개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종교개혁과 그 이후에 이어진 개혁주의라고 하는 역사적인 정통주의가 하나의 뿌리입니다. 두 번째는 18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났던 부흥주의가 또 하나의 뿌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흥주의라고 하는 것은 18세기에 영국에서 조나단 에드워즈 이후로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부흥에 영향을 받아서 열정적이고 감정적이고 다소 신비적인 그러한 체험 위주의 신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흥주의가 오늘날 복음주의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딱딱하게 굳어진 것 같았던 지식 중심의 신앙을 탈피해서 신앙에 대한 새로운 갈망을 불러일으키고 근대 설교 운동에 이바지하였고 사회개혁에 공헌을 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부정적인 면, 어두운 면도 갖고 있습니다. 우선 목회자직에 대한 반지성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 마치 공부를 잘 한 사람이 아니면 의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목사는 지성적으로 철저하게 준비된 사람들만이 목사가 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었는데 부흥주의와 함께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예화)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은 의대입니다. 서울에 있는 아주 좋은 학교의 의대에는 굉장히 어렵고 지방에 있는 의대들도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지방에 있는 의과대학이라 할지라도 의과대학에 지망하려면 전국수학능력시험에서 1% 안에 들어야 합니다. 1% 안에 들지 않으면 원서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어려움의 정도와 압박이 1% 안에 정도 드는 거리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따라 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턴쉽, 레지던트쉽을 거칩니다. 전문의 시험을 봅니다. 그 후에 산부인과 의사, 외과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최소한 10-15년 정도 걸립니다. 그 대신 그렇게 공부를 하면 상당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전문적인 의사가 되고 나면 한 달에 10만 위안정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상당한 경력을 쌓아야 합니다. 그것이 큰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상당한 보수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사도 그런 사람들이 목사가 될 수 있다고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정도로 목사가 되기 위해 공부해야 할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근데 그러한 전통이 18세기부터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에 있는 그림을 보시면 분위기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까? 산 속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서 설교를 하는지 찬송을 하는지 어떤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있고 한쪽에서는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18세기에 켄터키 지방에 있었던 부흥회의 한 장면입니다. 이런 부흥주의가 극단적인 성령체험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자유를 하나님이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옛날에는 공부하고 머리 좋고 훌륭한 가문에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 목사가 될 수 있었지만 성령을 받기만 하면 누구든 목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라고 하는 영국의 유명한 복음주의 저술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기적의 시대가 이르렀다고 믿었던 이들은 설교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설교자를 따로 구별해 두는 일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원래 이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었는데 주님을 만나고 커다란 변화를 받고 부흥 운동가가 됩니다. 이성보다 감정을 학문보다 열정을 중시하는 반지성주의적인 경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설교를 하고 있고 무디의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에 이르러서 벌써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철저한 공부를 통해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개혁주의적인 전통들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20세기에 가서 오순절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부흥주의에서 은사주의로 넘어가게 됩니다.
조지 휫필드(Geroge Whitefield)같은 사람이 비교적 건전했지만 역시 이런 영향을 끼침으로써 많은 결과들을 교회 역사에 가져오게 됩니다. 이 사람은 영국에서 선술집의 직원이었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전도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했지만 깊은 신학보다 열정에 사로잡혔던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미국을 건너가서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사람은 설교에 거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설교가 얼마나 생생했는지를 알려주는 여러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인의 비참함을 설명하기 위해서 예화를 들었습니다. 장님이 개 한 마리를 끌고 지팡이를 가지고 가까스로 강아지의 인도를 받으며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를 놓쳐서 개가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지팡이로 두들기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낭떠러지가 바로 앞에 있는데 계속해서 두드리며 낭떠러지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설교 시간에 예를 들은 것입니다. 묘사가 얼마나 생생했는지 사람들이 막 몰입을 해서 그 설교를 들었습니다. 휫필드가 말합니다. 두드리며 걸어가는데 벼랑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발이 벼랑 끝에 까지 왔습니다. 그 귀족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서 그리로 가면 안돼! 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정도로 아주 생생한 묘사를 했기 때문에 탁월한 설교자로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 에드워즈는 미국 최고의 신학자이었습니다. 주관적인 충동, 어느 순간에 마음에 확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둘이 서로 의견이 달랐습니다. 조지 마스던(George M. Marsden)이라고 하는 사람은 세계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연구에서 최고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에드워즈와 휫필드를 대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휫필드가 영적인 ‘충동’을 따르는 것에 대해 에드워즈가 정직하게 꾸짖었을 때, 그 순회 설교자는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전혀 확신하지 못한 채 오히려 냉정하게 그 주제를 무시했던 것 같다. ……그 두 복음 전도자는 굳건한 협력자로 남았지만 가까이에서 함께 사역을 하기에는 그 방식이 너무 달랐다.”
그래서 결국 올바른 신학함이란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구속사의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타락하고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이 구원해가시는 역사는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름다우신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관한 책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그림을 보시면 기독교의 구속의 역사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것을 바라 볼 때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곧 하나님이 어떤 성품에서 이제 이런 구속의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 성품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데 깨닫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결국 목회자직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먼저 아름다운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인지를 보여주는 것, 그래서 언어와 인격과 생활로써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연구가이신 조지 마스턴 교수) 이 사람과 제가 미국에 가서 강가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하여 2시간 가까이 이야기하면서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회자의 본질적인 사명이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 목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쁘게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이 분은 로이드 존스인데 여러분도 이곳에서 책을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설교와 설교자』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설교는 불같은 논리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시키는 추론이다.” 그래서 “설교란 곧 신학을 설교하는 것이다.” 설교를 듣고 나면 하나님이 누구이고 이 세상이 무엇이고 내가 누구인가라고 하는 것을 깨닫도록 만들어주는 진리가 설교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설교 속에 이런 것이 깃들기 위해서 상당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목회의 소명은 유지되기 위해서 성경적인 의무를 마음에다가 꽉 묶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답게 목회자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결심들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탐구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인지를 인식하고 그 때의 마음에서 정이 출렁거리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것이 반복되면서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니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더욱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 마음에 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향이 강화됩니다.
열심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가야 하는 것이 목회자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이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무한한 하나님의 위대함인 동시에 무한한 하나님의 완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계속 공부를 해왔습니다. 우리가 교회가 한 5000명 정도 모이니까 그렇게 작은 교회는 아닙니다. 할 일이 엄청 나게 많습니다. 종종 다른 사람이 묻습니다. “작지 않는 교회를 이끌어 가고 늘 바쁜데 언제 공부할 시간이 있습니까?” 물론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자기가 너무나 하고 싶은 것은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너무나 하고 싶은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지 너무나 하고 싶으면 결국은 하게 마련입니다. 우선 공부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읽어보십시오. “설교자들 중 누가 자신이 선포하는 바를 이미 온전히 살아 내었고 지금도 충분히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진실한 설교자 중 누가 설교와 삶의 불일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성경 말씀을 읽거나 신학을 공부하거나 설교를 준비할 때는 물론, 그것을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선포하고 난 후에도 스스로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그런 자기 자신의 부족을 알기 때문에 더욱더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목회를 위해서 필요한 지식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훨씬 종합적인 체계적인 지식이어야 합니다. 거기서 삶의 지혜, 세계, 인생에 대한 통일성 있는 판단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만보다 겸손을 배워야 하고 어떠한 지식도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갖게 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사람 앞에서 중국 문자를 써서 미안합니다.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중국어로) “천리마가 한 번 크게 뛴다고 하더라도 열 걸음을 나아갈 수 없고 노둔한 말일지라도 열흘을 달리면 역시 거기에 미칠 수가 있다. 일의 성과는 멈추지 않고 계속 하는 데 있다.” 무슨 뜻인지 다 아시겠죠? 『순자』의 ‘권학편’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글자를 어떻게 읽죠? “천리마” 삼국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토마입니다. 하루에 천리를 달려가는 말입니다. “노마”는 못난 말입니다. 평범한 말입니다. 천리마가 한번 뛴다고 해서 한걸음에 가는 것이지 10걸음을 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노둔한 말이라도 10일 동안 달려가면 거기에 미치지 못하겠느냐. 일의 성과라고 하는 것은 그치지 않고 계속 하는 데에 있다.
다음에 나오는 인물은 어거스틴이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쓴 책 중에 유명한 책이『고백론』입니다. 아마 서양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10권의 책을 꼽는다면 거기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책입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책을 읽어봤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이 놀랍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천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유독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진정 천재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비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은 누군데 놀라운 천재성을 주시고 나는 이 사람이 쓴 책을 열심히 노력을 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을 정도밖에 안되게 창조하셨습니까? 나는 왜 그런 천재성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려니 생각했습니다. 마치 천재적인 지성을 부러워할 시간에 공부를 더 하라고 타이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신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신학이 예쁘기 때문입니다. 신학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다루는 학문이고 거룩한 진리입니다. 그 다음을 넘겨보면, (화면에 나오는) 이 사람은 1881-1972년도까지 살았던 흐로샤이데라는 주석가입니다. 우연히 봤는데 이 사람의 책이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이름의 문장에 책 뒤에 기록이 되어있었습니다. 적어도 이 책이 1900년도, 한 1930년도쯤 쓰였을텐데, 이 사람이 쓴 책 자체는 17세기의 책인데 이 사람(흐로샤이데)이 가지고 있다가 서점으로 나와서 우연히 구입을 하게 된 책입니다. 저도 이 사람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살아서는 못 만났지만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세계적인 유명한 주석가입니다. 이 사람의 책이 제 서가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냐면 옛날에 가난하게 공부할 때는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샀습니다. 지금은 책은 살 수 있는데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젊었을 때 공부만 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서재에 들어가면 수많은 책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저를 좀 읽어주세요. 저도 좀 봐주세요. 저는 지금 들어 왔어요. 나는 몇 년 전에 들어왔는데 나는 건드리지도 않아요?” 55,000권의 책들이 그 방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어떤 사람이 제 서재를 보고 물었습니다. “목사님, 모두 이 책을 읽으셨어요?” “내가 계산 해 보니까 이 책을 모두 읽으려면 370년이 걸린다.” 그러나 이제 아무리 부족하다하더라도 힘을 다해 열심히 노력을 할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매일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그렇게 조금 부족한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모자란만큼 하나님을 계속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가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손에는 항상 성경과 책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자기가 은혜를 받으면서 읽는 성경 구절과 책이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워가는 것입니다. 좋은 책을 올바르게 읽는 것은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훌륭한 목사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알고 꾸준히 책을 읽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살아가면서 자기 수입의 일정한 부분에 계속 책을 사는데 투자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지식으로 채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지식이 머리에만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내려와서 뜨거운 기도가 되도록 해야 하고 더욱더 열렬한 사랑이 되어서 삶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은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인지를 그런 사람에게 더욱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들에게 한 강의와 가르침에 대해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질문) 감사합니다. 옛날에 설교를 들을 때 설교와 신학이 분리된 것을 느꼈고, 설교가 마치 냉장고에서 꺼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학의 기본 범위라던가 잘 모르는데 목사가 되려면 반드시 신학공부에서 신학공부과정을 끝내야 목사가 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답변) 그렇게 해야지 자기가 아는 것을 정확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기적인 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질문) 중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중국 교회가 힘써야 할 중요한 것은 교회를 짓는 것보다 좋은 학교를 만들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훌륭한 선생님을 모셔다가 훌륭한 일꾼을 길러내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