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 제8과
녹취자: 백지영
오늘 8과에서는 목회자와 성화의 삶,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과 성화의 삶이 되겠습니다.
문제 1) "목회는 자신과의 대면이다."라는 말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영혼을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애쓰거나 영혼의 목양을 위해 힘쓰면서,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그 일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자, 이렇게 함께 경험을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인도하면서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답변들을 이끌어내는 것이 구역장과 순장의 역할입니다.
목양을 하는 사람들,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결국 마지막에 가보면 도달하는 것은 자신의 성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이 영혼을 섬기면서 그 사람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과 영혼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신을 깎고 다듬으시며 사람 만들어 가시는 과정이 하나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은 은혜 안에서 거룩해지며 영혼을 섬기는 모든 과정이 자기 자신이 성숙되어가는 과정이 되도록 신앙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거나 역경을 만나면 낙심하고 좌절하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면서 그런 시련과 역경들을 이겨내면 그것을 통해서 우리들이 주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그렇게 살아내려고 몸부림을 치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능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존재의 울림이 있는 삶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처음은 부족하지만 그렇게 영혼들을 돌보고, 끌어안고 기도하고, 어려움이 오면 그 어려움을 견디고 하나님 앞에 살면서 그러면서 양떼들도 온전해 지고 자기도 온전해져가는 삶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문제 2) 영혼을 섬기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실천적 자격을 말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그러한 자격들 때문에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최근 부부가 서로 다투었거나 가족과 언쟁을 했던 지체들부터 나누어 봅시다.
세 가지 실천적인 자격이 나오는데, 첫째는 지성입니다. 두 번째는 담대함 혹은 용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기술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목양의 기술입니다. 이것을 비유하기를 독수리의 눈, 사자의 심장, 그 다음에 여인의 손길, 모든 여인들의 손길이 이렇게 섬세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여자의 손길은 남자의 손길보다 훨씬 더 섬세하니까 이렇게 잡아 본 것입니다.
독수리는 10킬로미터를 볼 수 있는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100미터만 넘어도 사물을 분간하기가 어려운데 10킬로에 떨어져 있는 사물까지도 또렷이 볼 수 있는 탁월한 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지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목양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목양이 “양떼를 돌본다.” 그것이 아닙니다. 목양의 중심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진리와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게 자기 것이 아니라 이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진리이고 사랑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중심으로 목양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진리가 무엇인지는 알았습니다. “아, 이게 진리구나.”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다 보니까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질문이 많이 생깁니다. 또 혹은 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답대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때에 이 옆에서 다른 사람이, 이미 이런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이 사람을 잘 돕는 것입니다. 어떻게 돕습니까? 진리를 더 상세하게 가르쳐 주고, 사랑으로 그 진리를 어떻게 자신의 삶에 적용해야 되는지를 찬찬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스스로 삶으로써 이 진리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사랑으로 살아갈 때 그 삶이 어떤 삶인지 그리고 그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양입니다.
원래 ‘목양’, ‘양육’이라는 말 자체가 무슨 뜻이냐 하면 ‘든든하게 세워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히브리말로 ‘아막’이라고 하는데 ‘아멘’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옵니다. 힘이 없는 것을 굳건히 세워서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것, 그것이 ‘양육’, ‘목양’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나 양떼를 돌보는 그런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이 궁극적인 관심 자체는 진리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해서 그래서 이 진리를 따라서 살 수 있게끔 만들어줄 것인가 그것이 목양을 하는 동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목양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진리를 깨닫고 이 진리를 끊임없이 배워서 진리를 알려고 하는 지성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가 영혼을 돌보아야 할 그런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사람은 뛰어난 독수리의 시력에 비견될 만한 지성을 소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독수리의 눈 같은 지성은 고도의 지성을 말하는데 이것과 함께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신령한 지혜입니다. 그래서 고도의 지성이 인간의 영혼과 정신 안에서 발생하는 작용들에 대한 이해, 그것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보다도 정확하게 세계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 다음에 자연을 이해하고 하는 것이 이런 지성이라면, 하나님의 주권, 은혜, 그래서 그런 신령한 은혜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 안에서 작용해서 다양한 역사를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신령한 지혜입니다. 이러한 신령한 지혜는 성경말씀을 잘 믿음으로, 이런 지성들은 부지런히 공부함으로써, 그리고 이것을 실천적인 삶으로 살아냄으로써 이런 고도의 지성과 신령한 지혜가 점점 더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정말 배우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그러한 목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자의 심장과 같은 담대함입니다. 진리를 선포할 때에는 항상 그 진리를 대적하고 방해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진리의 가장 뛰어난 점은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은 이런 질서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치관과 그리고 성경적인 질서가 잘 세워지면 세워질수록 악은 자기 자리를 찾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이것이 악이고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빛으로 많이 묘사되지만 그러나 악은 항상 어두움으로 묘사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진리는 밝은 빛을 주어서 그래서 사람들이 이러한 질서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도와주고, 어두움은 이것들을 흐리게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에 도달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어두움들을 주관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을 성경이 악의 세력 혹은 사탄의 세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칠 때에 이 진리를 진리라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가르쳐야지 이 진리를 사람들이 싫어할까 좋아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진리를 다루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진리를 다루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의사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몸을 객관적으로 보고 정확한 지식에 의해서 진단을 내리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어떤 약을 써야 되는지를 판결해 주는 사람입니다. 환자가 무엇을 좋아하고 안 하고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 수술 받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 때로는 담대하게 나설 수 있는 강인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어떻게 지혜롭게 그 사람에게 맞게끔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이고, 그 진리 자체가 진리라는 사실이 가장 고려가 되어야지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이것이 진리에 대한 태도입니다.
세 번째는 여인의 손길 같은 목회의 기술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본다는 것, 목양은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아주 세심하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푸줏간에서 고기를 다루는 정육점에 있는 사람은 그냥 필요한 부위가 어딥니까 하고 큰 칼을 내리쳐서 고기를 끊어내서 달아주면 됩니다. 그러나 의사는 사람의 몸을 수술할 때 자기 목적만 이루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없이 지나가는 핏줄과 신경과 힘줄 모든 것을 고려를 해서 자신의 시술이 환자의 몸에 어떤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고려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아까 이야기한대로 지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이렇게 아는 대로 환자의 몸에 시술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언젠가 한번 의사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수술이 있고 아주 정교한 수술이 있는데, 그 정교한 수술은 진짜 잘 하는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타고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성들도 보면 많이 배우지 않아도 바느질 같은 것을 가르쳐주면 아주 꼼꼼하게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 배워도 절대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듯이 의사도 마찬가지로 손 매무새 자체가 아주 섬세해서 기가 막히게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누가 선교지에서, 후진국입니다, 수술을 했는데 수술자국을 보여주는데 내가 수술을 해도 저렇게는 안 할 것 같았습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꼭 빨랫줄로 엮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기계도 문제이겠지만, 하는 사람이 아주 정교하게 환자를 배려해서 시술을 한 것과 대충 꿰맨 것은 나중에 엄청난 상처의 차이를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수술을 잘 하는 사람은 심지어 살에 저절로 접히는 부분 거기에다가 싹 찢고 해서 살이 자연스럽게 접히면 그 수술한 것 자체가 안 보이게끔 그런 정도로 수술을 합니다. 기술이 뛰어난 것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배우면 진짜 맛있게 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로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타고난 기술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강조해야 될 것은, 그렇게 높은 경지에 도달해서 차이가 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겠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기술을 익히느냐 입니다. 이것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에서 생활의 달인 같은 것을 보면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반복해서 그것을 실행하고 그러면서도 잘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게 그렇게 기술이 습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충성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 이 두 개는 항상 하나로 묶여서 나옵니다. 충성된 삶을 살면 반드시 그 속에서 얻는 자연적인 지혜 그리고 도덕적인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것이 충성과 지혜 이 두 개를 통해서 목회의 기술은 향상되는 것입니다. “이만큼만 하면 됐지 뭘.” 그런 사람들에게는 발전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온전해 지려고 노력을 할 때 영혼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 지혜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의 기술을 이야기하는데 목양의 기술, 영혼을 돌보는 기술인데, 오랫동안 충성스럽게 영혼을 돌보아서 그래서 관록이 쌓인 구역장이나 교역자는 기술이 뛰어납니다. 어떤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그리고 진리를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탁월한 이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의 기술이 필요한데, 그렇지만 그것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게 무엇이냐 하면 아무리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도 그 방법이 성경의 진리와 부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동기도 성경의 진리와 부합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결과도 성경의 진리와 부합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방법도 성경의 진리와 부합해야 되고 그래서 그런 방법을 사용하면 더 많은 결과물은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과연 그런 것이 성경적인 방법인가를 생각하고 반성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동기, 어떤 목양을 하고 목양의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 동기가 올바른지를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성경적인 결과여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탁월한 목회기술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리와 성령의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기술과 성경적인 기준을 동시에 강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목양, 목양을 하는 사람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착한 인격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맡기시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을 물어보십니다. 그게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하는 착한 인격, 이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영혼을 돌보는 목양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지성, 하나님을 잘 믿고 성경을, 신학을 부지런히 탐구해서 무지한 사람들에게 항상 배울 것이 있도록 지적인 진보를 위해서 애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력,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양떼들에게 감화를 줄 수 있는 그러한 힘, 하나님이 저 사람과는 매우 특별히 함께 하신다는 감동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가 기술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경우에 있을 때 어떻게 저 사람을 다루어야 할지 또 어떻게 그 사람을 권하고 또 어떻게 그 사람을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할 수 있을지, 많은 충성스러운 봉사 속에서 지혜가 생겨남으로 기술이 향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성품 속에 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성품이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을 가진 성품이 될 때에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함께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세월이 많이 지나가고 나서 정말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경건한 추억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목양을 받는 모든 양떼들이 모두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슴에 간직하고 추억으로 삼으면서 그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위해서 흘린 눈물, 땀, 고통을 누가 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것들을 참고 이기면서 감당해 나가는 가운데 진정한 목양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온전하게 이미 이렇게 된 사람은 없습니다. 목양을 하면서 한 마리의 양으로서 양떼들과 함께 자기도 끊임없이 온전해져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주님의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문제 3) 목회와 리더십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어니스트 새클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받았던 느낌이나 깨달은 생각을 나누어 봅시다.
제가 여러 해 전에 읽은 책입니다. ‘새클턴의 위대한 항해’라는 한 600페이지 정도 되는 두꺼운 책입니다. 아기자기하고 그렇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지루하기는 한데, 그런데 참 많은 도전을 주었습니다. 새클턴은 영국의 탐험가인데 이 사람의 세 번째 원정에 대한 실화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남극횡단을 목표로 갔지만 결국은 조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을 살리려면 조난을 당한 곳에서 약 1400킬로미터를 바다로 항해를 해서 가서 거기서 구조요청을 해야 합니다. 1400킬로미터이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서울에서 부산가는 거리의 약 3배쯤 되는데 지금처럼 전동기가 달린 배가 아니라 그냥 돛단배에 의지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배에서 나침반과 삼각자 이런 것들을 가지고 이것을 그리면서 그쪽으로 항해를 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새클턴이 떠나면서 생각을 합니다. 새클턴이 여기 남아 있으면 이 사람들을 다 통솔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대원들 두고 가야 하는데 돌아오는데 얼마나 걸릴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때에 새클턴이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면서, 자기는 자기 말 잘 듣는 사람 데리고 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말을 잘 듣고 자기 지시를 따를 사람들은 남겨두고 아주 거칠고 문제를 일으킬만한 사람들만 골라서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 이쪽에 있는 사람들을 안전하도록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 대신 자기는 데리고 간 사람들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추운 겨울에 펭귄을 잡아서 얼은 고기를 뜯어먹으면서 연명을 하면서 결극 구조가 됩니다. 결국 이 사람은 탐험을 떠났다가 죽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에 있어서 목표는 실패했지만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어서 그것이 책으로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자, 이제 거기에 많은 이야기들이 앞에 리더십에 대해서 나옵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니까 여기서 다 반복할 필요는 없고, 여러분들이 읽고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하라고 하면 아마 사람마다 할 얘기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도 돌아보고,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 목양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리더십의 어떤 부분들이 조심해야 될 부분인가 하는 것들을 미리 배우고 이야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리더십과 인격이 너무 중요한데, 목양자가 지녀야 할 지도력의 핵심은 희생하는 리더십입니다. 자기가 희생하려고 할 때, 그때에 따르는 사람들이 복종을 하고 순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종처럼 낮아진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괴로움과 고통은 자신이 짊어져야 하고, 자기의 희생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떼들을 돌보지만 그리고 사랑도 하겠지만 그렇지만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영혼을 돌보고 사랑하지만 양떼들을 돌보는 목양자들이나 양떼들이나 모두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분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도하게 사람들을 의지하면 언제나 여기에서 낙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말고, 어떤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양떼들 때문에 목양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목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 4) 저자가 ‘예의바름’이라는 항목에서 거론하는 사례들이 몇 가지나 되는지 헤아려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찔림이 되었던 유사한 사건들을 반성하며 간증해 봅시다. 교회에 등록한 지 가장 오래된 사람과 가장 최근에 등록한 지체가 나누어 봅시다.
여기에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할 얘기가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 읽으시면서 몇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보고 적절한 사람들에게 시키도록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문제 5) “공짜를 미워함”에 나오는 예화, 이단이 제공한 무료여행의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점이나 혹은 “선한 양심을 가짐”에 나오는 사례들을 읽으며 느낀 점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거짓말 그리고 속임수, 정직하지 않은 사회, 그런 것들 속에 우리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채 묻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부정직한 사회 이런데서 그리스도인이 정직해 질 때 존재감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이 행동의 기준이 흔히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것이니까 내가 무슨 행동을 한들 문제가 되랴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행동을 할 때 사회적인 게 아니라 성경, 그리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이 지금 나를 보고 계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아, 저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인데 제천인가 어디를 내려갔습니다. 거기에서 한 교인을 만났는데, 자기를 집사라고 소개를 하면서 그 형제가 우리 교회 교리반을 제천에서부터 올라와서 12주인가 14주를 다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좀 듣게 해 달라고 교회에다 전화를 하니까 등록한 교인이 아니면 안 받아준다고 그래서 할 수 없이 허락도 안 받고 뒤에 앉아서 12주인가 14주를 매주 토요일마다 올라와서 개근을 해서 들었다고 합니다. 기특해서 교회에 전화해서 수료증 하나 만들어서 보내주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 하는 이야기 중에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설교를 듣는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주차장에서 혹시 남의 차 부딪치면 정직하게 자기가 부딪쳤다고 하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가족들을 데리고 봉고를 타고 잠깐 놀러 나갔는데 트럭을 진짜 세게 들이받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세게 들이받았는지 봉고가 쭉 찢어질 정도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트럭은 아무 이상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냥 가려고 하다가 설교 중에 들은 말씀이 생각이 나서 거기다가 써 붙였다고 합니다. “우리 집사람하고 아기하고 잠깐 외출 나왔다가 당신 차를 뒤의 이 부분을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혹시 뭐라도 망가진 것 같으면 이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시면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한참 있다가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물어달라고 하나보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는데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부인하고 아기는 괜찮으세요?” 그런데 자기 가슴이 뭉클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사고 낸 사람은 정직하게 자기가 이렇게 차를 박았다고 메모를 남기고, 오히려 피해를 본 사람은 전화를 해서 내 차는 괜찮은데 혹시 아기하고 같이 탔다는데 아기나 부인이 다치지 않았느냐고 걱정해 주는, 이게 얼마나 사람 사는 세상인가 말입니다.
한번 유튜브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물건인가 놀이시설 이용권인가를 싸게 판다고 내 놓았다고 합니다. 한 8만 원쯤 돼야지 구할 수 있는 것을 한 3만 원쯤에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쪽지로 얘기를 했답니다. 이렇게 좋은 이용권을 이렇게 싼 가격에 팔아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그리고는 3만원을 입금해야 되는데 5천원을 더 입금하면서, “더운 날씨에 얼마나 힘드세요? 5천원 더 보냈으니까 맛있는 점심 사드시고 오늘도 힘을 내세요.” 그리고는 웃음표시를 해서 보낸 것입니다. 그랬더니 한참 있더니 그 사람한테 다시 쪽지가 왔더랍니다.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돈 벌써 보냈는데요.”, “아니요. 돈 돌려 드리려고요.”, “왜요? 이용권이 다 팔렸나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먹고 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너무 착한 사람 같아서 그렇게 먹고 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또 쪽지를 보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정직하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5천원은 그냥 점심 사 드시고 3만원만 보내주세요.” 이 사람이 다시 “아닙니다. 너무 찔려서 3만 5천원 다 보냈습니다.” 그리고 눈물 표시를 해서 답장을 보내왔더랍니다.
한 사람만 정직하고 올바르게 하면 안 그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아, 이게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인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번 설교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식당에 갔다가 누구 줄 일이 있어서 신세계 상품권 20만원을 가지고 탁자 밑에다 놓고 밥을 먹었습니다. 나중에 선물 줄 텐데 위에 놓고 먹는 것은 좀 그래서 밑에다 놓고, 뇌물은 아니고 좋은 뜻에서 선물하려고 가지고 갔습니다. 앉았는데 종업원이 오더니 저 쪽에 더 좋은 방이 낳는데 그리로 가시겠느냐고 해서 그냥 덜렁 갔습니다. 밥을 먹고 선물을 주려고 보니까 선물이 없습니다. 지난 방에 두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거기 있겠지 그리고 물어보았더니 벌써 누가 가져간 것입니다. 한 팀이 밥을 먹고 나갔다니까 그것을 가지고 웬 떡이냐고 그리고 옷을 사 입던지 아니면 뭘 사다가 먹었던지 그랬을 것입니다.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갈까? 왜 우리 사는 세상은 이렇게 부정직하고 오히려 정직한 사람이 이상한 취급을 받는 그런 사회가 됐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원 이외에 공짜를 싫어합니다.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저는 싫어합니다. 선한 양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니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그런 선한 양심을 잘 보여주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